안녕.
용산참사 현장에 오늘은 경찰과 용역과 구청직원들이 들이닥쳐서 현수막이랑 예술품들이랑 길거리에 세워놓은 꽃받침대랑 그런 것들을 죄다 강탈해갔어.
아마 소식을 들었을 거야.
용산에 왔는데, 분위기가 싸하더라고.
그랬더니 내가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
내가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야.
왜냐하면 워낙 경찰이 많았었으니까.
하지만 침탈이 있던 시각에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
이틀간 몸이 좀 안좋아서 누워 있었어.
내가 겉으론 건강해보이나봐?
실제로는 안 그래.
하루 정도 무리를 했다 싶으면 다음날, 다다음날은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번에도 좀 잠 안자고 일을 했더니 결국 지쳐 쓰러져 버렸어.
이틀간 몇 가지 할 일이 있엇는데, 몸이 꼼짝할 수 없더라.
그래서 겨우 밥만 먹고 계속 누워 있다가, 오늘은 그래도 좀 나아졌어.
몸이 나아졌더니 그동안 미뤄온 일들을 하다 보니까 오후가 되더라.
집에 고장난 보일러를 사람을 불러서 수리를 했어.
그동안 1년 이상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서 겨울엔 두꺼운 이불을 덮으면서 생활을 했고, 목욕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물을 끓여서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하는 정도였거든.
그런데 몸이 안좋아서 누워있다보니까 아무래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싶은 달콤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
지난 겨울에는 수도관까지 얼어붙는 바람에 열흘을 매일 물을 길어와서 쓰기도 했는데, 세계 1억명 이상이 물부족으로 고생을 하는데, 난 뜨거운 물에 무슨 호강이람 하는 생각에 보일러를 고치지 않고 그냥 살았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있어야겠더라.
그래서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서 고쳤어.
17년이 된 보일러인데, 임시로 고치긴 했는데, 수리하는 사람이 이제는 부품도 나오지 않고, 아무래도 이번 겨울을 쓰고 나면 더이상 사용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
새로 보일러를 사면 50만원은 한데.
당장 그럴 돈이 없어서 그냥 대충 고쳐달라고 햇어.
일단 뜨거운 물은 나오고, 아마 난방도 될 것 같은데, 모르겠다.
완전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또 들어.
게다가 5년을 낀 안경 다리가 완전히 부식이 되었어.
전부터 안경을 바꿔야지 했는데, 그게 언제부터인가 안경다리가 슬슬 끊어지기 시작하더니, 귀에 걸치는 부분이 조금씩 닳아서 녹색 접착제가 자꾸 겉으로 드러나는 거야.
난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몰랐는데, 안경점에 가서 물어보니까 얼굴에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은 땀 때문에 플라스틱 안경다리가 부식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구나...
하여튼 안경다리를 새것으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안경사가 안경알을 보면서, 이것도 꽤 낡았다고 은근히 새 안경으로 하나 아예 맞추라고 하더라.
흐흐, 안경알은 아직 잘 보인다고, 그래서 안경다리만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알에 맞는 테가 별로 없다면서 열심히 찾는 척을 하더라.
그러더니 결국 잘 맞는 안경테가 없다면서, 몇 가지를 추천했는데, 결국 난 안경알에 직접 구멍을 뚫어 사용하는 무테안경이란 것을 골라서 그걸 했어.
오랜만에 미뤄둔 일들을 하고 나니까 오후 3시 무렵이 되어서 용산현장에 도착했더니 또 침탈이 있었다고 하는 거야.
흠.
그래도 지지 말아야지.
다시 걸개그림도 걸고, 플래카드도 걸고, 벽에 그림도 그리고, 화단도 새로 세우고 해야지, 다짐을 해보는 중이야.
끝까지 지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