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경계를 넘어 2004/12/10 22:58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라고 한다.
조금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왕가리 마타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을 하면서 동시에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평화라는 요지의 수상연설을 했다.
이 흑인여성은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곳곳에서 숲을 살리는 등의 환경운동을 30년간 해왔다고 하는데, 그런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는지 케냐의 자연 환경은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눈여겨보았던 것은 노벨평화상이 올해에는 환경운동가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노벨평화상에서 말하는 평화란 보통 '긴장완화'를 통해 이 체제를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공을 세우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어떤 국제분쟁이 있다면, 그것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보통 그대로 놔둔 채 타협과 양보만을 이끌어내는 것이 평화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 지배와 식민주의 문제,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수탈 같은 것들은 노벨평화상이 말하는 평화에서는 모두 지워지고 만다.
나무가 잘려나가고 숲이 파괴되어 환경이 총체적으로 망가져가던 케냐에서 처음 나온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케냐를 그렇게 만든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벌였던 1960년대의 마우마우 게릴라가 아니라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30년 동안 숲을 되살리는데 공헌한 왕가리 마타이가 된 것은 이런 맥락이 아닐까.
물론 왕가리 마타이의 개인적 삶과 환경을 되살리려는 헌신적 노력은 절대로 과소평화가되어서는 안 된다. 사하라 사막 이북 지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을 제외하면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박사 학위를 받은 첫번째 여성이기도 한 왕가리 마타이는 '똑똑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중심적인 케냐 사회에서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경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명성을 쌓아 결국 정치계에도 진출하게 된다.
노벨평화상 100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상자가 나왔다고 해서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노벨상 위원회는 언제든 준비가 되면 부시에게도 평화상을 수여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만 평화를 얻기 위해 파괴되지 않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이번 노벨평화상의 조그만 의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평화와 환경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왕가리 마타이의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을 들으며 느끼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현실을 잠시 보자.
환경과 개발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은 이 나라의 하급 공무원들까지도 들먹일 정도로 상식 중의 상식이 된 모양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정부 기관과 대기업 등 누구보다도 대량으로 환경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자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수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대체 이들 정책결정자들, 권력자들이 이 '상식'을 갖고있기조차 한가 의심이 들 정도다.
골프장을 전국적으로 건설하려 하고, 국책사업이라며 핵폐기장과 고속철도 건설로 땅을 병들게 하고, 산의 맥을 끊는 구멍을 숭숭 뚫고 있는데, 여기에 무슨 '지속가능한 발전'이 있을까?
노골적으로 '우리는 지속불가능한 개발을 하겠다'고 선포하는 것 아닌가?
환경이 파괴된 곳에는 평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의 허구성을 모두가 인식하고 더 이상의 개발이 필요없는 사회로 가야 한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열심히 파괴하고, 그 자리에서 또 열심히 재건설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노력을 가상히 여겨 노벨평화상 같은 것을 수여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아예 파괴도 않고 건설도 않는 사회에서 서로 보듬어주고 따뜻하게 돌봐주며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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