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나무 바위 물
나의 화분 2006/10/07 13:28그때 칼이 얘기하기 시작했지.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 모든 것을 다 파괴할 수 있다. 이 예리한 날로 모든 것을 다 베어버릴 수 있다. 나를 잡는 자는 힘을 얻지만, 나에게 대항하려는 자에겐 오직 죽음뿐이지."
"거짓말!"
나무가 말했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 나는 거센 태풍이나 사나운 폭풍우에도 끄떡없다."
그렇게 칼과 나무가 서로 싸웠다네. 나무는 튼튼하고 단단했지. 그래서 칼에 대항했지. 그러자 칼이 나무를 토막내버리고 나무를 쓰러뜨렸다네.
"봐라, 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칼이 거만한 목소리로 다시 주장했지.
"그것 거짓말이야."
이번엔 바위가 말했다네.
"나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세다. 나는 아주 단단하고,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게다가 아주 무거우며, 내 속은 꽉차 있지."
칼과 바위가 서로 다투었지. 바위는 튼튼하고 의연했다네. 그래서 칼과 맞섰지. 그러자 칼이 바위를 마구 내려쳤지. 그러나 칼이 바위를 깨뜨릴 수는 없었지. 대신에 바위를 조각조각 잘라낼 수는 있었지. 칼은 날이 부러졌고, 바위는 박살이 났지.
"비겼다!"
칼과 바위가 말했지. 그리고 서로 울었지. 자기들이 벌인 쓸모 없는 싸움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거짓말들이지! 개울 가의 물은 이 싸움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지. 칼이 그를 보면서 말했지.
"너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약한 놈이야. 너는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적어도 너보다는 강해."
개울 가의 물에 맞서기 위해 칼이 힘차게 몸을 던졌지. 순간 난장판이 벌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네. 물고기들이 깜짝 놀랐지. 그러나 물은 칼의 공격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물은 조금씩 조금씩 형태를 갖추더니 칼을 감싸기 시작했지. 그러더니 강으로 강으로 계속 흘러갔다네. 그 강은 신들이 자신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큰 물'로 개울물을 데려갈 강이었지.
시간이 흐르자 물 속의 칼은 낡고 녹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예리한 날을 잃고 말았지. 물고기들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고 칼에 다가가 놀려댔지. 개울물 속의 칼은 자존심이 푹 꺾여버렸지. 날도 잃고 패배하고 만 것이지.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네.
"나는 물보다 강하긴 하다. 그러나 물을 해칠 수가 없었다. 물도 날 해치지는 않았다. 싸움도 없이 굴복하게 되었을 뿐."
어느새 새벽이 지나갔고, 해가 동편을 비추며 남자들과 여자들을 깨웠지. 새로워지려면 피곤해져야 했던 남자들과 여자들을 말일세. 남자들과 여자들은 어두운 한 귀퉁이에서 칼을 발견했지. 조각조각 부서진 바위와 쓰러진 나무도 발견했다네. 그리고 노래하면서 흘러가는 개울물도.
*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싸빠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박정훈 옮김, 다빈치, 2001년) 110-114쪽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