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통
나의 화분 2006/10/06 16:20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이제야 한 잔 하고 있단다.
이제 안정을 좀 찾았어.
마치 폭풍이 몰아친 듯한 느낌이야.
바쁘고 힘들 때는 정말 이 전쟁같은 하루가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게 되더라.
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날이 있잖아.
어제가 그랬거든.
여기도 가야하고, 저기서도 오라고 하고, 날 부르는 곳은 많은데 다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디를 무시할 수도 없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어디가 다른 곳보다 더 급한지 잘 모르겠고 그랬어.
그렇게 바쁜 가운데 막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오더라.
평소에 나는 '외롭고 힘이 들 때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라'고 매일 외치고 다녔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어.
노래들이 막 떠오르고 나니까 이제는 이런 노래들을 함께 연주하고 부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1990년대 내내 억누르면서 지냈었어.
내가 흔쾌히 대학을 들어가겠다고 부모님과 동의를 한 것도 '대학에 들어가면 노래를 부르든 뭘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대학만 들어가다오'라고 그분들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사실 난 그렇게 뛰어난 연주자도 가수도 아니거든.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기고, 기타 치는 것을 즐길 뿐인데, 시대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들이 말야, 정말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뭘 한다고 나설 수가 없는 그런 억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애.
그래서 나도 '그렇게 니멋대로 허접하게 하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라'는 암묵적인 분위기에 질려 버렸던 것 같아.
물론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나는 공부는 안하고 록음악을 하는 밴드들과 어울리려고 했어.
그런데 내가 술을 못마시잖아.
그게 걸림돌이 되더라.
음악 하는 애들은 이상하게도 술을 매일 퍼마시는거야.
자연스럽게 난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와중에 4월 26일에 경대가 죽게 되었고..
난 단과대 노래패에 들어가서 90년대 내내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보내게 되었지.
하여간 이런저런 기나긴 억압의 세월이 계속 이어졌고, '실력 따위는 상관 없으니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지내자'고 스스로를 해방시켰다고나 할까? 그런 것이 1999년 무렵이었던 것 같아.
그 다음부터는 남의 말에 신경쓰지 않고 노래도 만들고, 기타도 치면서 다른 많은 일들을 조금씩 하게 되었어.
휴- 사실 난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데, 내가 진정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는 별로 없는 거야.
민중가요들도 좋은 것들이 많았지만 내가 정말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별로 없었거든.
내 감수성에 맞는 노래들 말야.
그래서 '에이, 나에게 맞는 노래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 불러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래서 이런저런 노래들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제는 나와 같이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