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삶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6/09/26 04:189/24 평화대행진이 잘 끝나고, 남은 우리들 몇몇은 술을 마시고 새벽에 9/25 평화대행진을 감행했다.
어느덧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새벽에도 자동차들이 지나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귀를 울려, 안그래도 멍멍하던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광화문 위를 점거하고 농성을 하던 친구들이 모두 무사히 풀러나 석방환영회를 열었다.
중서씨가 날 보더니 웃으며 농담조로,
"행진 한번 더 할까?"
한다.
힘들었지만, 이슈가 있다면, 필요하다면 언제든 행진은 이뤄져야 한다.
다만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몸이 축나거나 건강을 갉아먹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크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힘든 몸을 이끌고 아침선전전에, 행진에, 촛불집회에, 장거리 이동에, 짧은 식사시간까지 견디고, 평가까지 해낸 다음 자정 무렵 낯선 잠자리에 몸을 누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울 것이라는 꿈 때문이었다.
숫자계산에 젬병인 나는 군중을 보면 저게 도대체 몇 명쯤 될까 어림짐작을 하지도 못하는데, 9월 24일에 그 높고 커다란, 격리된 중앙무대에 기타를 들고 올라가 바라본 사람들의 숫자는 내 눈에 3만에서 5만은 족히 되어 보였다.
뿌듯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전혀 떨리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동고동락하며 기나긴 전국행진을 막 끝내고 무대에 함께 오른 행진단원들이었던 것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우리들은 무대 아래 길바닥에서 오지총의 노래에 맞춰 미친듯이 흥을 발산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하나가 된 우리들은 북을 치고, 탬버린을 두들기고, 엿가위를 짤랑이고, 머리를 흔들고, 지팡이를 치켜세우며 소리를 질러댔다.
제각각으로 살아있는 것들의 영롱한 향연이었다.
난 그것으로 족했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활력으로 가득차 있었기에 신이 났던 것이다.
긴 행진으로 몸이 엉망인 상태에서 노래를 하려니 음이 올라가지 않고 목소리가 갈라지는데, 그것도 행진단에 참여를 했기에 낼 수 있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정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전기를 통해 앰프로 소리를 확대시켜 울리지 않아도 우리들 각자가 내는 소리는 생생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세네 사람과 마주 보고 앉아 노래를 부를 때나 팽성주민 촛불행사 같은 규모의, 조그만 앰프 하나에 기타를 연결하고 길바닥 공연을 할 때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져버리면 노래를 부르는 행위에서 나와 듣는 사람들이 분리되어 버리는 것 같아서 난 어색해진다.
사실 형편없이 망가진 상태에서 노래를 하는 것은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모두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최소한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몸을 가꾸고 돌봐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의 활동에 그저 만족하고 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황새울을 자줏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고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8-18 번지.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미 지워진 곳이라 이곳으로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곳에서 새로 시작한 나의 삶이 나는 맘에 든다.
내가 꿈꿔왔던 '멀어지는 삶'이 이곳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멀어지는 삶
폭력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전쟁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자본주의로부터 멀어지는 삶
권력을 비판하면서 결국은 자신이 그 권력이 되어버리는 꼴을 우리는 얼마나 무수히 목격해왔던가.
근묵자흑(近墨者黑)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이란 항상 가까이 두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조용히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ta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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