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게섯거라!'평화가 무엇이냐 2006/07/12 06:09매닉님의 [경악, 초조, 분노로 뜨고 지샌 새벽] 에 관련된 글.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휴.
기타를 잃어버렸다.
2006년 7월 9일 새벽 3시가 약간 넘은 시각, 평택경찰서 앞에서 폭력적으로 연행되던 바로 그 무렵 내 기타가 사라졌다.
애지중지하던 친구였는데, 며칠간 맘이 무척 아팠다.
애가 탔지만 그래도 이제는 보내줄 수밖에 없겠다.
이 기타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이 사준 기타다.
내가 원래 옛날에 갖고 있던 싸구려 기타가 너무 후진, 도저히 들어주기 힘든 소리가 나니까 긍휼히 여긴 평화바람 식구들이 내게 그 기타를 선물해주었다.
2003년 11월의 일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감동을 받은 순간 중 하나였다.
이 기타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며 변혁운동을 할 수 있도록 용기와 자신감을 준 친구이니 말이다.
수많은 곳에서 이 친구를 들고 노래를 불렀고, 수많은 밤을 이 친구와 함께 보냈다.
경찰의 폭력적 연행으로 몸만 다친 것이 아니었다.
주먹으로 때리면 육신이 아프지만 기타를 밟으면 마음이 무너진다.
난 기타를 퉁겨 마음을 울릴 작정이다.
울었다.
참, 그치지 않고 울음이 쏟아졌다.
평화행진 발걸음, 발걸음마다 내 어깨에 내려와 앉았던 평화를 염원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샘솟는 눈물로 흘러내렸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육신의 고달픔을 마다하지 않고 삼백리 길을 걸어간 우리들 하나하나의 절실한 마음이 다가와 맺혔다.
나는 보았다.
그렇구나.
우리는 백 명이 아니구나.
우리는 수 천, 수 만, 아니 수백만의 물결이구나.
흐름이구나.
도도하도다, 평화로 걸어가는 사람들이여.
수백만의 사람들이 함께 한 '평화야, 걷자'는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비록 많은 친구들이 폭력에 스려지고, 경찰에 잡혀가고, 감옥에 갇혔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달걀과 돌맹이에 맞아, 각목에 맞아,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혀 온몸이 아프고 아팠지만 아파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마음 깊이 함께 아파하던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자리에서 다시 글을 쓴다.
경찰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채증을 일삼았고, 폭력을 휘둘렀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볼 수 없었다.
용산 국방부 앞에서 우리는 불법채증을 하던 경찰을 발견하고 쫓아가 그 테잎을 파기했었다.
불법채증은 평택에서도 계속되었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벌어진 폭력적 연행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7월 9일 정오 무렵 평택경찰서 앞에서 열리고 있었다.
또다시 경찰은 몰래몰래 숨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참가자들의 신상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찍혀진 사진 한 장 때문에 누구는 훈방으로 나와도 될 일을 가지고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하는 것이다.
활동가 친구 하나가 그것을 목격하고 그 경찰에게 항의하며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했다.
위기를 느낀 경찰은 카메라를 들고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난 순간적으로 그 경찰의 뒤를 쫓았다.
달려갔다.
외쳤다.
'야, 경찰, 도망가지 말고 민중의 심판을 받아라'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지 않은 불법채증은 명백히 위법이다'
'경찰관이 뭐가 무서워서 도망가냐'
평택경찰서 정보과 소속임에 틀림없는 그 경찰은 더 빨리 도망쳤다.
난 악을 쓰면서 그를 쫓았다.
시민이 경찰을 잡아 불법을 자백하고 사과를 받아내려는 모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정의가 아닐까.
힘이 났다.
그러나 그 경찰은 평택경찰서 뒷골목을 상세하게도 알고 있었다.
1km를 쫓아가면서 나는 있는 힘껏 뛰랴, 또 큰 목소리로 외치랴 기진맥진해지고 있었다.
'시민여러분, 저 앞에 가는 경찰관 좀 잡아주세요'
'경찰관이 불법을 저지르고 쪽팔려서 도망가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이 잡아주세요!'
결국 그 경찰관은 미꾸라지처럼 도망쳐 평택경찰서 뒤편 어느 뒷골목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쉬웠지만 기분만은 통쾌했다.
불법을 저지르고 발각된 경찰관이 꽁무니를 내뺄 때는 반드시 쫓아가보자.
그리고 다같이 외쳐보자.
'경찰, 게섯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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