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과의 대화
나의 화분 2006/06/12 23:03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전경과 대화를 나눈다.
전경과의 대화나의 화분 2006/06/12 23:03검은사슴님의 [6월7일 도두2리 일인시위] 에 관련된 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하나 있다.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전경과 대화를 나눈다. 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라고 설득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에게 상관이 진압 명령을 내려도 하는 척만 하고 강경하게 진압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사람도 있다.
기타를 들고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들도 있다.
전경들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고 그저 대화를 나누려는 사람도 있고, 보다 적극적으로 비폭력 대화를 통해 폭력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종식시키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평화활동가들도 있다.
사실 난 오랫동안 전경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그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는 많이 질러보았고, 욕도 내뱉어 보았지만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고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렇게 못했다.
당장 내 머리통을 까려고 곤봉을 들고 달려드는 자들과 어떻게 차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날선 방패를 들고 눈을 부라리며 호시탐탐 '밟아버려!' '깔아뭉개!' '연행해' 진압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자들과 어떻게 말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인가.
권력의 앞잡이들의 구린 변명 따윈 듣고싶지도 않았다.
그들과 말을 하는 것 자체로 그들의 폭력을 용인해버리는 것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투쟁의지도 꺾고 싶지 않았다.
헬맷과 방패로 가려진 선연한 그들의 눈망울을 그저 무시해버렸다.
오랫동안 그래왔었다.
나와 전투경찰 사이에는 긴장과 대립만이 있을 뿐이었다.
시대는 아직 변하지 않고 멈춰버린 듯 했다.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언제부터인가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격렬한 대립이 끝나고 긴장과 마찰이 잦아들면 군복을 입고, 진압장구를 갖추고 거기 서있는 사람들과 대화도 조금씩 나누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증오와 분노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도 궁금해졌다.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문정현 신부님을 뵈러 간 날, 여지없이 내 발걸음은 그들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고, 기다리면서 할 일이 없었다.
말을 걸었다.
청와대 앞에서 문신부님이 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나를 막고 서있는 전투경찰들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뉴스나 신문을 볼 시간이 거의 없다면서 전경들은 수면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이런저런 일로 시달리고나면 잠자기 바쁘다는 것이 그들 일선 전투경찰들의 말이었다.
한국인 사장들로부터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취급을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기계 부품처럼 취급당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떠올랐다.
마이크를 잡고 명령을 내리는 경찰 간부들이 전경들의 인권부터 이렇게 제대로 챙기지 않으니 집회 참가자의 인권까지 챙길리는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별로 해줄 말이 없었다.
부당한 명령엔 거부하는 것이 양심을 갖고 사는 인간의 참된 용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 갈길을 막고 서있는 제복을 입은 청년들에게 그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음부턴 전경들에게 무엇이 용기있는 행동인지 말해주어야겠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했던 총과 진압봉을 내려놓는 것이 진짜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ta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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