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무렵에 시작했으니 말이다.
문득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앉아서 오줌을 누기로 했던 것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내가 사는 집에는 양변기가 하나 있는데, 그건 오줌을 누거나 똥을 누거나 같은 양의 물로 내려보내는 식이다.
그 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담아본 사람은 안다.
아직 담아본 적이 없다면 이렇게 해보라.
양변기 아래쪽에 보면 변기물통으로 보내는 물을 틀고 잠그는 꼭지가 있다.
그 꼭지를 먼저 완전히 잠근다.
그리고나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린다.
이제 변기물통은 완전히 비어 있다.
커다란 세수대야 같은 곳에 물을 채워서 변기물통에 넣어보면 얼마나 많은 물이 오줌이나 똥을 내려보내기 위해 사용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오래 전부터 절수를 하자면서 변기물통 안에 벽돌을 한 장씩 넣어두자는 캠페인 같은 것도 있었다.
난 물론 벽돌을 두 장 넣어두고 있다.
그럼에도 내려보낼 때 사용되는 물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최소한의 물로, 최소한의 전기를 소비하며, 최소한의 에너지로 살아보자고 다짐한 나는 그 많은 물의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줌은 변기에 싸지 않고 그냥 화장실 바닥에 싸기로 했다.
화장실 바닥에 싸다보니 자연스럽게 앉아서 싸게 된 것이다.
오줌을 바로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것에 대해 반론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줌이 환경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줌의 97%는 수분 아닌가.
내가 짐작하기로는 샴푸나 린스나 그런 것들을 사용하고 헹굴 때 나오는 물이 내 몸에서 나오는 오줌보다 더 환경에 나쁠 것 같다.
이를테면, 목이 마를 때 오줌을 마시며 버틸 수는 있지만 샴푸로 머리 감고 나오는 물을 마시며 버틸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신호가 올 때마다 털썩 주저 앉아서 과감히 오줌을 하수도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처음 앉아서 오줌을 누기 시작했을 때는 항문의 괄약근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오줌만 누려고 화장실 바닥에 앉았지만 어이가 없게도 대변까지 같이 나온 적도 있었다.
난 그 전에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항상 서서 오줌을 누었기 때문에 오줌을 눌 때 항문의 근육을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앉아서 일을 볼 때는 자연히 항문도 열리고 동시에 요도관도 열리도록 적응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앉아서도 두 부분을 따로따로 조절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고, 몇 번의 실수 끝에 나는 완전히 자유롭게 내 몸의 자세와 상관 없이 이 두 근육을 풀었다 조였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있을 때는 그렇게 계속해서 몇 년간 앉아서만 오줌을 누다보니 나와 같은 곳에서 1년 넘게 함께 살던 친구가 어느날 내가 공중화장실에서 서서 오줌을 누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돕, 너가 서서 오줌을 누는 건 처음 본다'
공중화장실에서는 바닥에 오줌을 눌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좌변기나 양변기에 오줌을 누면 물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나는 서서 오줌을 눈다.
앉아서 오줌을 누기 시작한 주요한 이유가 경제적인 것이었다고 적었지만 실은 나 자신을 본질적으로 바꿔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당시로서는 괴이해보였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세상은 너무나 차별적이었고, 너무나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사회의 그런 모습들은 고스란히 나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나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주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회를 향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허물자고 소리 높여 주장하기 이전에 내 몸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차별의 벽부터 허물어내야 했다.
그래서 내 몸을 나는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것들을 내가 완전히 거부한 채 몇 년을 살게 되면 이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이는 4-5년 전 나에게는 너무도 궁금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앉아서 오줌누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이밖에도 다른 많은 것들이 진행되었다.
나 자신이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내 일상의 24시간 안에서 직접 겪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매일매일의 몸부림이었다.
투쟁의 최전선에 내 몸을 오롯이 맡기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오로지 내 몸뚱이밖에 없었기에 일단 내가 가진 것부터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내 몸이 변화하면 그 몸을 기반으로 한 내 의식과 실천도 변화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몸과 의식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하나라고 믿었기에, 내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학습받고 주입받은 차별과 편견을 내 의식에서부터 먼저 몰아내기 위해서는 차별의 실체이자 편견의 숙주인 내 몸을 서서히 바꿔나가야 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내 자신이 변화해 가면서 내가 사회와 맺은 관계들도 변화해가길 바라면서, 그래서 결국 사회가 변화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많은 프로젝트들이 내 몸을 바꾸기 위해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난 결국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가?
그리고 내가 속한 관계의 그물망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럼으로써 저 높은 억압의 벽을 허물 힘이 과연 생겨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