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희망을 노래하라 2005/10/27 22:49몸이 아프다.
걱정이다.
아프면 안되는데.
콧물이 나오고 감기 초기 증상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머리가 나빠도 돈이 있으면 고생을 하지 않지만 돈이 없으면 몸과 머리가 모두 고생이다.
난 몸과 머리가 고생을 할망정 돈을 쓰며 편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은 고생을 좀 했다.
초희가 멋지게 편곡해 준 '평화가 무엇이냐' 작업을 하느라 다시 오늘 하루를 꼬박 보내고 말았다.
쓸쓸하고 쌀쌀한 돕헤드 스튜디오, 사실은 책과 컴퓨터와 기타와 침대가 있는 내 방의 별칭인데,에서 일어나자마자 밥먹을 틈도 없이 이 곡 작업에 들어갔다.
초희는 미디로 작업해서 미디 파일을 나에게 넘겨주었는데, 실제로 공연을 할 때 그 곡을 반주로 사용하려면 그것에 진짜 악기 소리를 입혀서 뽑아내야 한다.
그러니까 컴퓨터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걸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컴퓨터 음악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초희가 편곡을 해서 내게 넘긴 파일은 전자신호의 모음이다.
손으로 그리면 악보겠지만 이걸 디지털 신호로 바꾼 것이 미디 파일이다.
각각의 악기를 언제, 무슨 음으로 얼마 동안 연주하라는 정보가 빼곡하게 담긴 신호들을 초희가 내게 넘긴 것이다.
난 그 신호들을 진짜 악기에 보내서 진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뽑아내 음악씨디로 만들어야 그것을 틀어놓고 기타를 치든 노래를 부르든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미디로 만든 파일을 마치 진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연주할 수 있도록 모아놓은 소리들을 음원(모듈)이라고 한다.
음원에는 수많은 악기의 실제(와 비슷한) 소리들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다.
가격이 비싼 신디사이저에는 좋은 음원이 들어가 있어서 키보드를 두들기기만 해도, 진짜 바이올린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진짜 트럼펫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디지털화된 소리라서 진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나같은 '막귀'에게는 그런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문제는 나에게 비싼 음원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컴퓨터에 꽂혀있는 사운드카드에는 싼 음원 칩이 내장되어 있어서, 미디 파일의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일반 컴퓨터로 미디 파일을 연주해본 적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 소리가 구리다.
이 소리를 실제 공연에서 반주로 쓸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폰카로 찍은 영상을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
이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기존에 써오던 방식은 미디대신 샘플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샘플이란 실제의 악기소리를 따와서 녹음해놓은 조그만 파일들인데, 이것도 잘만 사용하면 어느 정도 원하는 분위기를 맞춰낼 수는 있다.
하지만 샘플만 가지고는 내 맘대로 작곡과 편곡을 해서 원하는 음으로 뽑을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이번처럼 누가 멋지게 편곡을 해서 미디 파일로 넘겨주었을 경우, 난감해진다.
결국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소프트웨어 음원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잘만 모으면 그런데로 들어줄 만한 소프트웨어 음원들을 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싼 장비를 살 돈이 없으면 이렇게 7시간에 걸쳐 정신을 집중해 음원들을 모으고, 그것을 내 구닥다리 컴퓨터로 뽑아야 한다.
요즘에는 VSTi 라고 불리는 각종 버츄얼 악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도 컴퓨터의 최소 사양이 보통 펜티엄 4 이상은 되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처럼 펜티엄 3 컴퓨터로 이런 덩치가 큰 프로그램들을 돌리는 것이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다.
결국 완전히 맘에 들지는 않지만 오랜 수고 끝에 드럼과 트럼펫과 트럼본과 스트링과 피아노와 베이스의 음원들을 찾아내고, 각각의 트랙을 녹음하고, 그것을 믹싱해서 하나의 파일로 만들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느긋하게 목욕이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차가운 물로 느긋하게 목욕을 할 수는 없는 법.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파일을 완성시키고는, 급하게 씨디에 녹음해서 길바닥평화행동에 들고 나갔다.
이번 토요일에 삼성 바로보기 문화제에서 이 곡을 부를려면 사실 먼저 큰 공간에서 불러보아야 한다.
그래서 길바닥평화행동에서 불러보기로 하고 급하게 작업을 하다보니 덜컥 몸이 아파져버렸다.
뒷골이 땡기고, 몸에는 기운이 없어졌다.
서울 대학로에서 한 오늘의 길바닥평화행동은 40번째였는데, 오늘은 다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다들 몸이 안좋거나 아프다고 했다.
배가 고파서 자전거 타고 대학로 가는 길에 잠시 시장에 들러 떡을 샀다.
떡값으로는 떡을 사라는 말이 있어서 나는 검찰 꼬시는 대신 떡을 산 것이다.
3천원으로 검찰을 꼬실 수도 없겠지만 난 그럴 마음도 없다.
주린 배를 달래기에 3천원어치 떡은 넉넉한 편이었다.
심지어 사람들과 나눠먹고도 남았으니까.
떡을 먹었더니 좀 기운이 난다.
힘을 내서 노래를 부르고, 길바닥평화행동을 마쳤다.
오늘 밤은 푹 쉬고, 내일은 순례단과 결합하러 수원에 가야지.
나이키? 아나키!에 들어오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오늘 하루종일 내 기운을 빼앗은 이 곡을 공개하려고 한다.
돕헤드가 당신께 드리는 조그만 선물이라고 생각하시고 감상평도 적어주시라.
힘겨울 때 이 연주곡을 들어보시면 힘을 좀 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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