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활동가가 무엇이냐
평화가 무엇이냐 2015/01/07 22:41아침에 일찍 일어나 대기업들이 은밀하게 벌이는 아쿠아리움에 대한 자료를 찾고, 분석기사를 쓰고, 사람들에게 이메일과 쪽지를 보내 알리고, 홈페이지 업데이트를 하고, 핫핑크돌핀스 회원관리 일을 하고, 전화를 걸고, 동물해방운동 전략을 짜고, 그러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전 11시가 훌쩍 넘어 부랴부랴 #강정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 달려나가 생명평화미사와 인간띠잇기에 참여하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고 춤을 추다가 중덕삼거리 식당에서 빈 자리가 없어 입구 옆 테이블에 서서 흑미가 섞인 맛난 밥과 김치, 깍두기, 종환 삼촌이 만든 채식 김치두부찌게를 겨우 뱃속에 채워 넣으며, 오랜만에 마을을 찾은 강정의 코 사람들과 문화연대 신유아와 야니, 써니 엄마와 또 평화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낮 1시가 넘어간다. 맞다. 국제팀 영자신문 발송작업을 같이 하기로 했지, 평화센터에 달려가 신문을 접고, 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봉하고, 우체국으로 실어나른다. 곧 이어 평화책방으로 자리를 옮겨 윤상효 삼촌과 미량이가 지킴이들 먹으라고 사주신 커피와 와플을 먹으며 올해 1년간의 거시적 활동계획과 미시적 사안들을 모조리 다루는 2시간 가량의 열띤 회의를 마치고 나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조금의 쉴 틈도 없이 군관사 천막 농성장으로 가니 마침 그곳을 지키며 추위에 몸이 얼었을 지킴이들이 반색을 한다. 교대를 하고서 난로에 앉아 불을 쬐며 차츰 어두워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바로 앞 좀전까지 굉음을 내며 땅바닥을 파헤치던 해군기지 진입로 공사 포크레인이 작업을 마치고 먼지투성이 노동자들이 퇴근을 준비한다. 그래, 너희들, 해군기지 공사장 노동자들도 집에 돌아갈 시간, 오후 6시라 이말이지. 마을을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건설노동자들. 그리고 군인들. 매섭게 바람이 몰아치고, 나는 퇴근이란 것을 해보고 싶은 소박한 마음을 품어보지만 돌아갈 가정도, 가족도, 반려동물도, 보일러가 돌아가고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단촐한 보금자리도 없는 나는 그저 농성장 천막에 앉아 난로를 쬐고 달메가 굽는 군고구마에 강정 주민이 들려주는 2007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 결성 주동자 18인의 무용담을 들으며 지친 허기도 달래고, 외로움도 달래고, 다시 찾아온 추위를 견뎌낸다. 지금 이 시간, 나만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별빛이 반짝이는 저 높은 70미터 굴뚝 위 이창근, 김정욱을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나지만 그럴수록 더욱 힘을 내보기로 하며 (신파같지만 어쩔 수 없음) 옆에 앉아계신 양윤모 선생님과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들고, 타이완 오키나와 친구들과 평화의 바다를 만들어 마침내 산이 되고 물이 되고 들이 되고 바람 되어 저 장벽을 걷어내고 거침없이 흘러가는 노래를 속으로만 나직하게 불러보는 중이다.
누가 나에게 '도대체 평화활동가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레 이렇게 주절주절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냥 꼼지락리며 늘상 전쟁같은 하루를 온몸으로 보내는 사람이다 라는 걸 보여주고자 이 글을 쓴다. 강정엔 이런 일상을 수년째 한결같이 맞이하는 평화활동가들이 30명 넘게 바글거리고 있다는 것도 덧붙이며 행여나 해군과 삼성, 경찰이 오판하여 우리의 삶터를 강제철거하고자 공격해 들어온다면 깊숙하게 감춰둔 발톱을 꺼내들고 역사를 움직이는 저항을 벌여나갈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밝혀두고자 한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그대, 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