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평화가 무엇이냐 2014/02/12 11:51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진숙은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에 대해 ‘1차 피해자는 GS 칼텍스’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그를 경질로 몰고 간 이 언급을 보며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윤진숙을 비롯한 해양수산부 공무원들, 나아가 중앙이나 지방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이 이와 같다. 육상생태계든 해양생태계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관료들은 ‘자연’을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 본다. 멸종 위기 해양 생물도 이들에겐 자원일 뿐이다. 그리고 이 자원을 이용할 권리는 기본적으로는 기업에게 있다. 기업들에게 자연의 개발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윤진숙 전 장관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바다는 돈 있는 자의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가르친 셈이다. 이 언급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불편했던지 지배계급은 그를 경질시켜 버렸지만, 이것은 박근혜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바, 단순한 고위 관료의 말실수라든가 해프닝이 아니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권 출범 후 재탄생한 해양수산부의 행보를 보면 이와 같은 국가기구의 역할(자연에 대한 기업의 무제한적 착취 보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기업의 상품 제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산업폐기물의 해양투기를 2014년부터 또다시 2년간 연장해 준 바 있다. 실제로 여러 기업들은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은 뒤 비용이 더 들어도 산업폐기물을 육상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힐 수밖에 없었다. 바다를 쓰레기처리장으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해양투기는 용납될 수 없는 사안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일부 기업들은 산업폐기물 육상처리시설을 새로 만드는 데 수십억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해수부에 해양투기 허용을 연장해 줄 것을 호소했고, 해수부는 SKC, 금호석유화학, 효성, 한솔케미칼, 백광산업 등의 기업들에 대해 해양투기를 2년 더 연장해 준 것이다. 만약 기업이나 정부가 해 양환경 보호에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지난 몇 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충분히 준비하고, 시설을 보충하여 해양투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어떤 가치도 희생한다는 기업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애초에 환경보호나 바다의 지속 가능한 보전보다는 기업의 이윤 보호에만 관심을 가진 해양수산부는 어처구니없게도 안 버릴 수 있는 산업쓰레기를 바다에 버려도 된다는 정책을 연장해 주었고, 그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폐기물의 해양투기를 허락하는 나라가 돼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을 받는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도 직접적 책임이 있는 해양수산부에서는 장관을 비롯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불법어업국으로 찍히는 수모를 당한 배경에는 원양기업들의 싹쓸이 조업을 비롯한 불법조업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참치를 잡는 한국의 원양기업들은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잡아들이기 위해 국제사회가 사용을 자제하기로 약속한 인공집어장치(FAD)를 사용한다. 문제는 인공집어장치에 참치 외에도 작은 물고기부터 쥐가오리, 돌고래, 청새치, 바다거북, 고래 등이 무차별적으로 걸려들고, 이들은 참치 캔의 원료로 사용할 수 없어 그래도 바다에 버려진다는 것이다. 이런 무제한적인 싹쓸이 조업 방식은 해양 동물의 씨를 말려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그런데 문제는 해양수산부가 이 한국 기업들의 싹쓸이 방식을 묵인, 방조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는 공무원들이 기업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이 나서서 불법 조업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할 때도 해수부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며 무시로 일관하였는데, 국제사회로부터 결국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되는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2014년 예산에서 신항만 개발에는 무려 5천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고도, 스스로가 보호 대상 해양생물로 지정한 멸종 위기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보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돌고래 쇼 업체로부터 국가가 몰수를 하고도 여전히 좁은 수조에 갇혀 있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 등의 자연 방류가 하루속히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할 해수부는 이런 예산을 한 푼도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해양 생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나마 배정된 해수부의 예산은 돌고래가 아니라 제주 지역에서 한화재벌이 세운 대규모 수족관으로 흘러들어 간다. 왜냐하면 그 수족관이 제주 지역에서 해수부에 의해 해양 동물 구조, 치료 기관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오늘도 돌고래 생태 설명회라는 이름의 동물쇼가 진행되고 있는데, 재주는 잡혀 온 돌고래가 부리고, 돈은 자본가가 거둬 가는 고약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의 파괴를 부추기고, 해양 동물의 고통에는 눈을 감는 기업과 정부를 보며 분노한다. 저들은 바다를 사유화하고자 한다. 그런데 바다는 육지처럼 금을 그어서 나눌 수가 없다. 땅은 지적도를 만들어 개인소유로 분할할 수가 있지만, 바다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의 사유화를 저지하고, 이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싸워 나가야 한다. 아니, 원칙적으로는 공유보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바다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해양수산부와 해양 기업들은 바다의 사유화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러저러한 해양 정책들을 착착 만들어 추진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바다는 영토처럼 경계를 나눌 수 없음을, 그래서 바다를 중심으로 모두가 이어져 있고, 이를 사유재산으로 만드는 모든 시도에 맞설 것을 가슴에 새겨 넣어야 한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이와 같은 다짐을 나눈 사람들이 오키나와, 타이완과 함께 제주도가 꼭짓점처럼 공유하는 바다 지대를 이른바 ‘동아시아 평화의 바다 지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 또 다시 대량의 원유가 유출되어 해양생태계가 망가진 여수 앞바다는 국내에서는 제대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멸종 위기 돌고래인 상괭이의 서식처이다. 우리는 먼저 여수의 피해 어민들과 함께 상괭이에게도, 그리고 향후 30년간 지속적으로 기름이 묻어 나올 환경 대재앙 앞에서 계속 고통을 받게 될 바다 생명들에게도 진심어린 사과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다는 우리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수유너머위클리 178호 2014년 2월 11일 기고문 http://suyunomo.net/?p=12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