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새벽에 잠이 깨는데 문득, 진짜 목걸이 하나, 양말을 신겨준 아기 한 명,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되었다. 그것이 바로 내 무의식 속의 아기, 상처 입은 유년의 내가 아닐까 싶었다. 정신분석을 통한 치료란 성인이 된 자기가 어린 시절의 자기를 보살펴주는 행위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아기에게 부모 역할을 한다'고 표현된 것도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그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이 바로 그것이구나 싶었다. 면담자가 아이들의 숫자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도 거기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내가 비로소 내 안의 상처 입은 아기를 알아보고, 그 아기를 보살피기 시작했다는 의미인 모양이었다. 문득, 가슴이 설레는 기분이었다. 2권 p.27
그럼에도 나는 모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 답을 찾으려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신화', '더 이상 모성은 없다', 그런 제목의 책들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자식과 먹이를 다퉜던 원시 시대의 어머니, 자식을 노동력으로 여겼던 중세의 어머니, 자식을 종속물로 여기는 현대의 어머니들을 보았다. 결국, 인간이 어머니라는 말에 만들어 씌운 이미지가 환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아요. 그런 책을 선택했던 것까지 제 상처였다는 것을요. 책을 읽으며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애쓰고, 어머니의 입장을 변명하려는 태도가 방어라는 것도 알겠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내 엄마가 나를 질투해서 나를 그 먼 곳에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요? 아무리 그것이 엄마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것이라 해도......." 2권 p.162
'유아의 본능적인 허기와 이에 수반되는 환상들이 만족되지 못한 상태로 머물게 되면, 정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무의식적으로 시기심과 분노의 보따리를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무의식적인 감정은 삶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성장을 저해한다. 만약 아이가 이러한 수준의 분노와 좌절에 고착된다면, 이때 시기심은 아기에게도 숨겨져야 하고, 아기의 자아 또한 시기심으로 인해 압도당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극심한 형태로 무의식 속에 깊이 억압된다.'
수유 습관이 시기심과 분노의 감정을 형성한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었다. 너무 철철 넘치는 젖도, 너무 부족한 젖도, 모두 아기에게 특별한 감정을 형성한다고 했다. 아기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가슴에 불룩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지 않는다고 분노한다고도 했다. 면담자가 거듭 질문했던, 어머니가 젖을 잘 먹였겠어요?라는 질문의 의미가 비로소 새롭게 이해되었다. p.163
"......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노이로제였던 거죠."
"정확해요."
나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찬찬히 나의 질투에 대해 꼽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에 낙하산 인사로 입사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했던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들에게서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그들이 인간성마저 좋다는 점이었다. 좋은 환경에서 잘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니 정서에 왜곡이 없었을 것이다. 그 부러움이 곧 질투였구나 싶었다. 면담자에 대한 전이가 심해질 때 면담자의 꽃이며 액자가 다 상처가 되었던 감정도 질투였다. 엄마가, 니네 학교에서 니가 제일 예쁘지?라고 했던 말이 질투심이었듯이 내가 누군가를 칭찬할 때 그 마음 밑바닥에 있는 감정도 명백히 질투심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내 속의 질투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외가로 보내진 이후의 식습관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분유나 이유식이 없던 시기였어요. 암죽이라는 걸 먹었다는데, 그게 곡물로 끓인 미음 같은 거였나 봐요. 또 밥할 때 물을 넉넉히 부어서 밥물이 끓을 때 그것을 떠서 설탕을 타주면 좋아했대요. 누룽지나 물에 만 밥을 좋아했다고 하고......."
누룽지를 건지는 숟가락을 들여다보면서 나온다, 나온다, 좋아했고, 아예 누룽지를 '나온다'라고 불렀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는 감정의 실체는 서러움과 분노인 듯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아기의 감정이었겠구나 싶었다.
"십팔 개월이라면 아직 젖도 제대로 못 떼었을 것 아녜요? 어떻게 그런 아기를, 그토록 먼 곳에 떼어놓을 수 있어요? 분유도 이유식도 없던 시대였잖아요."
내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면담자는 쉬지 않고 나를 자극해다.
"나 참,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 아기는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굉장히 화가 났을 것같아요. 지속적으로, 암죽을 먹을 때마다 화가 났을 것같아요. 화가 나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울다가 지치기도 하고, 어쩌면 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을 것 같아요."
또 엉뚱한 말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아기가 무슨 살고 싶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했겠는가 싶으면서도 그것이 정확한 무의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간단없이 시달렸던 열병과도 같은 자살 충동은 그 말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었다. 나는 빽빽한 명치와 가슴께를 양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 아기를 생각해봐요. 왜 십팔 개월 된 아기를......."
면담자는 다시 다그쳤다. p.166
"내 안에 있는 그런 요소는 뭐예요?"
"타인에 대해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점, 나는 도움받을 가치조차 없다는 판단, 그러면서도 타인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아, 말을 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말을 중단했다. 면담자는 틈을 주지 않고 되물었다.
"제일 끝에 한 말 다시 한 번 해볼래요?"
"타인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상한 느낌이 오면서 또 말을 중단했다. 바로 그것이었구나 싶었다.
.....
"언젠가 선생님이지적하신 대로, 내가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줄 것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이틀 동안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기거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퍼붓는 것도, 내 노동력을 투자해서 타인의 일을 돌봐주는 것도, 모두 셋째 딸 후남이의 생존법이었어요. 그 의식이 발전해서 이웃에게 도움되는 인간이 되고자 했고,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데까지 갔겠죠. 그 모든 행동의 본질은 결구,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였던 거예요."
말하고 나니 무언가 슬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가치관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가치관이 생긴 의식의 저 밑바닥, 그곳의 춥고 어둡고 헐벗은 구석에 대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신 분석 책에서 '어린 시절의 생존법을 성인이 될 때까지 질질 끌고 왔고, 그 때는 유익했던 그것이 이제는 삶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어린 시절의 생존법이 무엇을 말하는가 싶었는데,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p.176
"그 모든 딸들이 입을 모아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되뇌며 성장기를 보냈다고 말해요. 그들은 표면적으로 엄마처럼 되지 않았다는 사실으르 성공의 지표로 삼는 것같았어요."
늘 아파서 누워만 있던, 가사일을 하지 않던, 영원히 소아병적이었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던 여성. 그녀는 지금도 노동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증오를 남보다 많이 느끼는데 그 발단이 엄마인 것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독신이지만 한의사로서 자주적이고 책임감 강하고 경제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억압으로 갖고 있었어요. 엄마처럼 무지해질까 봐 공부에 전 인생을 걸고 학위를 따도 또 따는 여성, 엄마처럼 무책임해질까 봐 늘 과도한 책임을 떠맡고 쩔쩔매는 여성, 엄마처럼 폭력적일까 봐 모든 여성들에게 자매애적 친근함을 보이는 여성, 심지어는 엄마처럼 가족과 집안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 일부러 이기적이 된 여성....... 처음부터 눈에 띄던 그녀들의 특성이나 개성이 그 어머니의 이야기르르 들으니 환하게 이해되었어요. 그것이 바로 저들의 상처이고 콤플렉스구나. "
아, 이 말과 섞여 어떤 생각인가가 떠오르면서 방금 한 말이 고스란히 내 쪽으로 회절되었다. 내가 말을 중단하고 침묵 속에 있는 동안 면담자는 말없이 기다렸다.
"무슨 생각 했어요?"
"그 여성들은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 애써왔고 부분적으로는 그것에 성공했는지 몰라요. 그럼에도 말예요, 그들은 너무나 그들의 엄마와 동일한 면들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는 거죠. 한의사라는 여성이 그렇게 말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자주적이고 책임감 강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내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도피적인 사람인데요. 나는 한 번도 내 인생의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서본 적이 없어요.' 이제 생각하니 그 여성, 정말 똑똑하네요." p.180
"우리가 이미 말한 바 있잖아요. 사랑의 본질은 권력욕이라고. 그 당사자에게 매혹적인 것, 그 당사자의 생존에 가장 유익한 것, 그 당사자의 욕망과 일치하는 것이라거요. 사랑은 그러니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유지시키려는 본능과 맞닿아 있어요. 생식을 통한 종족보존의 욕구까지 포함해서 말예요."
"맞아요. 나는 사랑을 권력욕이라기보다는 생존 본능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아기들이 왜 엄마를 좋아하겠어요? 단지 엄마니까? 아니에요. 젖을 주고 보살펴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예요. 아기에게 엄마는 생존 그 자체죠. 학생들이 교사를 사랑하는 것, 여직원이 부서장을 흠모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교사나 부서장은 그들이 소속된 조직에서 그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존재인 거예요." p.223
"이 작업을 하면서 가끔 딜레마에 빠집니다. 과연 모든 사람들을 다 상식적이고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 특히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 말예요. 그들에게는 노이로제가 곧 창조력인데."
"그렇지만 이 작업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금세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아니죠. 그렇지만 자신의 추진력이 뭔지도 모르는 채 냅다 내달리는 때와, 자신의 창조물 하나하나가 어떤 결함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알고 난 후의 열정이 같겠는가 하는 거죠." p.250
'페르소나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청중에게 나타내기 위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의미로 페르소나는 인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그 역할과 타인들의 요구에 맞추어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현대 생활의 복잡한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페르소나가 유용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매우 해로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역할자 자체가 도어 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자아는 오직 페르소나와만 동일시되어 성격의 다른 국면들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결국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팽창한 페르소나와 축소된 다른 성격의 국면들 사이에서 긴장을 초래하게 된다. 이 현상은 심리적 건강을 방해한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잘못 살았는가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성격을 오로지 페르소나에만 일치시키려 노력하며 성격의 나머지 측면들을 억눌러왔다. 면담자는 내게 그것을 꺼내 보여주는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초기에 면담자가 이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로 '사기치지 않기 위하여'라는 조건을 제시했었다. 이제야 그 말뜻의 본질이 이해되는 기분이다.
융은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는 것이 곧 자기라고 믿는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기 무렵에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성격이 목표로 하는 것은 페르소나를 축소시키고 나머지 성격을 개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역할이 다 속임수이다.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는 데 반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점이다. ' p.253
경호를 만난 후 차를 달려 아버지의 산소에 다녀왔다. 아버지가 살아 있어, 엄마에게 했듯이 3박 4일쯤 합숙하면서 길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구나 싶었다. 산소 앞에는 초겨울 햇살이 잔디며 마른 낙엽들 위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몸이 저리는 듯한 그리움, 안타까움, 막막함...... 그런 감정이 체험되었다. 거의 울음이 날 것같은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계절이 바뀌며 햇빛의 성질이 달라질 때마다 어김없이 한 번씩 경험하는 것이었다. 새로 돋는 이파리 위로 튀어오르는 봄빛을 보다가, 나무 그늘에 서서 눈이 멀 듯 강렬한 여름빛을 보다가, 코스모스를 쓰다듬는 잘 건조된 가을빛을 보다가, 화르르 불꽃이 피어오를 듯 유혹하는 겨울빛을 보다가, 그러다가 한 번씩 걸음이 멎곤 했다. 걸음을 멈추고 서 있으면 살갗이 마르면서 온 몸이 조이는 듯 저릿저릿한 감각이 뒤따랐다. 머릿속에 휑한 어지럼증이 지나가기도 했다. 그 황망함을 잘 따져보면 그 속에는 막연한 그리움, 입 안이 마르는 안타까움, 맥이 빠지는 절망, 꼼짝도 할 수 없는 막막함...... 그런 감정들이 들어 있곤 했다.
그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느닷없이, 강렬하게 솟구쳐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아 사람들이 이런 감정 때문에 알코홀릭, 워커홀릭, 혼외정사에 빠지는구나 싶기도 했다. 자신들이 찾는 게 거기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에라도 몰두하지 않으면 안되는 심리를 이해할 것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분명 워커홀릭이었다.
면담자에게 그 이야기를 한 다음 내가 발견한 놀랍고 치사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눈앞에서 화르르 타오르는 겨울빛을 보고 있는데 몽환처럼 그림 하나가 떠올랐어요. 햇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버스 다니는 큰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요. 온몸이 비틀리는 막막한 그리움, 살갗이 마르는 듯한 안타까움..... 그런 감각들의 실체가 거기 있었어요. 박탈당한 아버지에 대한 애착을 가슴에 품은 채 하염없이 들판과 동구 밖을 보고 있는 아이였죠. 그 감각이 모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유년의 감각 그대로였던 거예요."
너무 정확해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매듭을 풀자 또 한가지가 이해되었다. 내가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에 강렬하게 매혹되곤 했던 감정의 뿌리 역시 거듭 내게서 떠났던 아버지의 뒷모습에 닿아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뒷모습의 인간학, 뒷모습의 매혹에 대해서 정리해둔 것들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우스워지면서 가벼워졌다.
"그래도 그런 감각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선생님이 무의식의 뿌리를 어디까지 파헤쳐야 할지 모호하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알겠어요. 이제 다시는 그런 감각들이 주는 진한 정서적 체험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본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내달리지 않게 될 뿐이죠. 인간은 아무리 변해도 오퍼센트라고 했죠?" p.296
<누군가> 중
어린아이는 모든 어둠에서 괴물의 모습을 찾아낸다. 그리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는 그 어둠 속에 진짜 괴물이 숨어 있을 수가 있다. 한번 진짜 괴물을 본 사토미는 모든 어둠에 숨어 있는 괴물이 실체가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