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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 류미례편 ④]내 사랑 못난이 | ||||||
임신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해석은 아기의 영혼이 자신이 깃들 가정을 고른다는 것이다. 아기 천사들은 자신을 품어줄 엄마와 아빠를, 그리고 자신이 깃들 세상의 집들을 요모조모 따져보다가 고른다고 한다. 갑작스런 임신이었지만 내 몸에 자리잡은 작은 아기씨는 나를 선택한 영혼이었다. 어쩌자고 하고 많은 엄마들 중에서 나를 골랐니,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아기가 내게로 왔다. 지금은 자그마한 아기씨지만 그 자그마한 존재는 점점 커져가고 내 몸을 거쳐 나온 후에는 하은이 같은 아기가 되고 자라나는 것이다. 그 신비로운 경험을 겪고 난 후라서 원치 않는 임신이었지만 아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임신 초기의 비행은 위험하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작업도 작업이었지만 몇 년 만에 러시아의 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는 엄마의 그 밝은 얼굴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산부인과를 찾아서 의사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의사는 “권장하지는 않지만 꼭 가야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죠.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해주었다. 역시 또 나는 듣고 싶은 말을 들은 것이다. 유산의 불안에 떨면서도 멈출수 없던 작업 하지만 유산이 걱정됐다. 유산에 관한 가장 슬픈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작은 아기씨는 입덧으로 엄마한테 신호를 보낸다. 너무 작고 여려서 그 존재를 모를까 봐 아기는 "엄마, 내가 왔어요. 작지만 나 여기 있거든요" 하면서 자꾸 엄마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엄마가 아기를 위해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지 않으면 아기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 우리 엄마는 아직 날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나중에 우리 엄마가 준비가 되면 다시 와야지" 나는 내 아기가 그렇게 떠날까 봐 걱정됐다. 러시아 여행을 준비하고 비행을 하면서 나는 몇 번이고 아기한테 타일렀다. "아가야. 네가 찾아와서 무척 기쁘단다. 엄마가 바쁜 건 준비가 안 된 게 아니야. 엄마가 원래 이런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꼭 붙어있어야 해"
타국은 냄새로 다가온다. 지금도 기억나는 러시아의 그 독특한 냄새. 나는 밤마다 풋고추 먹는 꿈을 꾸며 괴로운 입덧을 했다. 현기증과 구토를 반복하며 누워있노라면 엄마가 애달파하며 말을 걸어왔다. “힘들지? 아래로 갈수록 더 힘들더라. 너를 낳을 땐 힘이 없어서 주사 맞고 낳았단다.” 둘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어떻게 여섯을 낳았을까? 엄마의 몸에서 가장 좋은 것들만을 뽑아서 아기의 몸을 만든다는데 엄마의 몸에는 지금 뭐가 남아있을까? 위로를 건네는 그 순간, 엄마는 내게 같은 여자였고 동료였다. 여성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 그래서 엄마와 딸은 친구가 될 수 있나보다. 러시아 촬영은 비틀거리는 화면들만 남겨주었다. 화면은 형편없었지만 그 여행 동안 나는 나와 엄마와 그리고 또 다른 엄마이면서 동료인 우리 셋째 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촬영 테이프들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하은이를 임신하고서 작업을 한 경험 때문에 편집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하은이를 임신했을 때에는 아기가 뱃속에만 있었지만 이번에는 뱃속 아기 말고도 돌봐야할 아기가 또 있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은 편집을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다. 저녁 6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뱃속의 아기와 돌봐야 할 아이 그리고 일 저녁 6시면 편집이 한창 리듬을 탈 즈음이다. 머리 속에 오고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놓칠 새라 메모를 하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흩어져가는 편집 리듬을 붙잡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날 편집한 분량을 집에 돌아와서 보는 것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매일 늦었고 그 때 내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바로 내 딸 하은이였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이모, 삼촌들이 나오는 <엄마…> 가편집본을 하은이는 열심히 보았다. 편집이 끝날 즈음, 하은은 음악과 대사를 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가족의 이야기라서인지 하은이는 정말 내 영화를 좋아해줬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내 영화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반도 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부실하더라도 완성하지 않으면 이 영화 또한 영영 엎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번에는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아니, 욕심은 낼지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전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의 세 번째 영화에서야 비로소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배운 것이다. 사무실 동료들이 큰 힘이 됐다. 하루를 마감하는 10분 동안 나는 매일매일 다음날 할 일을 적었다. 비록 내가 내일 나오지 못한다더라도 사무실의 다른 동료가 작업을 이어서 할 수 있도록 또박또박 메모를 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의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V-BAC이라는,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엄마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는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었다. 출산과정을 아기와 함께 겪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는 죽을지도 모른다며 그 위험한 일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병원을 찾는 데만도 많은 발품을 팔아야했다. 여의도 성모병원의 고위험 분만 주치의를 만남으로써 가능성은 마련됐다. 그리고 예정일보다 일찍 진통이 시작됐던 2월 25일 새벽, 남편은 힘 내야한다고 양푼에 밥을 한가득 비벼왔지만 나는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외로운 출산과 다소 엉뚱하게 시작된 둘째와의 첫 만남 보호자와 함께 하지 못하는 종합병원의 출산은 외롭다. 옆자리의 산모들이 몇 번 바뀌는 동안 간호사에게 “저는 분만 몇 기예요?” 하고 물으면 바쁜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직 가진통도 시작 안했거든요”하고 대답했고 “너무 배가 고픈데 집에 가면 안 될까요?” 그러면 “글쎄요, 아기가 나올 것 같진 않은데 V-BAC이라서…”하고 말끝을 흐렸다. 의사들은 아기가 내일 나올지 모레 나올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고 나는 아픈데도 ‘이건 가진통이라지’하며 참았다. 그러다 2월 26일 새벽 3시, 갑자기 아기를 낳았다. 고위험 분만이라서 진찰 때마다 특진을 받았는데 출산하는 순간 주치의는 옆에 있지도 않았다. 학생 같아 보이는 수련의가 내 아기를 받았고 나는 맨 정신으로 그 순간을 경험했다. 아기가 내 몸을 쑥 빠져 나오는 순간, 몸은 날아갈듯 했고 아기를 품에 안으며 나는 끝없는 성취감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 감격을 막 헤아리려는데 간호사가 말했다. “떨어뜨리지 마세요.” 나는 너무나 걱정돼서 “아기를 떨어뜨리는 엄마도 있나요?” 하고 물었다. 아기와의 첫 만남을 고작 “아기를 떨어뜨리는 엄마도 있나요?”라는 말로 시작하다니. 2004년 2월 26일 새벽 3시의 여의도 성모병원. 그 날 그 병원에는 산모가 너무 많아 나는 입원실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대기실의 빽빽한 침대 어느 한 편에서 내 아기와의 첫 만남을 곱씹었다. 참 못난이야. 머리는 왜 그렇게 삐뚤어졌담? 나는 방금 헤어진 내 못난이를 그리워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 류미례 감독은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1998년 '22일간의 고백' 조연출로 다큐작업을 시작했으며 2002년 '친구-나는 행복하다2'로 제27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중편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어 2003년 서울여성영화제 옥랑상, 2004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했다.하은이와 한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 ||||||
게시일 2006-02-07 14:54: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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