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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또 볼 일만 보고 오는 제주여행을 했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 준비했던 소설은 다 읽어버려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김연수의 새 책을 샀다.

줄거리가 궁금하면 중간에 뒤쪽을 먼저 찾아보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꾹 참았다. 

김연수의 섬세한 문장들을 마음에 새겨가며 읽다보니 진도는 더뎠다.

책은 잘 읽혔지만 나는 맹렬한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 가만히 덮었다.

그렇게 책을 덮고서 가만히 눈을 감거나 내 숨소리를 들어보곤 했다. 

500여 명의 혁명가가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갔다는 민생단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나는 결코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몰랐던" 김해연처럼.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세계가 어떻게 이뤄져있는지 모르진 않는다. 알면서도 외면한다.

허상인 줄 알면서도 매트릭스의 달콤한 스테이크를 위해 내통을 하던

<매트릭스>의 배신자처럼 나는 내 시간만을 붙잡고 산다.

단숨에 읽힐것같은 책을 억지로 덮고서 숨을 고르고 있자면

스쳐지나갔던 풍경들, 소리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목요일, 지하철역 가판대에서 <신동아> 광고지를 보다보니

'신정아 가정교사였던 아무개 기자의 기억' 뭐 이딴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그 기자는 몇 해 전 '00대 00과 87학번들의 명암' 뭐 이딴 제목으로

과대표였던 자기의 과거를 은근슬쩍 끼워넣으며

뉴라이트, IT 업체 사장, 교수, 민주노총 간부 등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창생들의 현재와 과거의 기억들을 오가는 웃기는 글을 무협지처럼 썼더랬다.  

과선배였던 그는 자신이 지도하던 후배에게 92년,"나는 이제 운동을 그만 둔다"면서

자신의 변화를 유려하고 산뜻한 말로 설명하고

그 끄트머리에 주먹을 날린 91학번 후배에게

"고맙다. 니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라고 말했었다.

이제 그는 저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젊었을 때엔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열망이 더 많았던 그들은

그렇게 금새 변해서 세상을 받아들이거나 세상의 일부가 되어간다.

 

나한테 그 인간을 욕할 자격은 없지만

지금 나는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혁명에 대해서 꿈이라고도 말 못하고

그래, 강마에의 말에 따르면 그건 그냥 별일 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하지만.....김연수의 소설을 읽다보면

나와 같은 사회적 나이를 가졌고 나와 같은 역사적 경험을 해왔던 그 사람.

또 나처럼 그렇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생활인이면서 

또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고민하고 그 자취로 나의 무감을 깨뜨려주는 그 사람.

그 사람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책 끄트머리 작가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네오를 떠올리게 했던 그 말.



..................

그리고 2008년이 찾아왔다.

한 신문사의 요청으로 나는 촛불시위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5월 31일 시청으로 나갔다.

그날 밤에 시위대는 효자동 입구까지 밀고 들어갔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전경들 바로 앞에 연좌했다.

다시 전경들 앞에 앉고 보니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그 모든 공포들,

공권력을 향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알만한 나이가 됐다.

 

결국 우리는 저들에게 진압당할 것이다. 초조했다.

그때 뒤 쪽에서 남총련의 깃발을 든 학생들이 나타났다.

그 깃발을 보는 순간, 우습게도 안심이 됐다.

우리 세대에게 남총련이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깃발을 들고 전경들 앞에까지 나온 남총련 학생들은 대오를 갖춰 자리에 앉았다.

남녀 학생들 몇몇이 앞으로 나갔다.

구호를 외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학생들이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런 애들을 믿고......

한참 웃었다.

그다음 날 새벽 경찰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을 때,

내가 분노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저렇게 새로운 아이들을 그토록 낡은 방식으로 대접하다니.

늙다리들. 구닥다리들.

 

결국 온 세계는 다시 나의 열망이 이뤄지도록 도와준 셈이었다.

그 학생들을 보고 나니 모든 게 명확해졌다.

많은 사람들의 열망 때문이든 아니든,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아닐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결국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

그게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복수해야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

그리하여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고칠 수 있었다.

결국 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내 오랜 열망을 이룰 수 있었던 건

그날 밤 효자동 전경들 앞에서 춤을 추던 학생들 덕분이다.

공포의 순간에 웃음을 터뜨릴 수 있게 해준 그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늙다리들은 더 이상 춤추지 못한다.

나는 춤추는 사람들이 좋다.

나 역시 그렇게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학생들처럼.

 

2008년 9월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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