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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

 

새벽길님의 [맘에 안드는 노동절 집회]

해미님의 [짜증을 넘어, 허탈한 노동절]

달군님의 [엄마는 모르실꺼야?]

스머프님의 [메이데이 에필로그..]

강철새잎님의 [투쟁하지 않는 노동절]

행인님의 [[마라톤] 메이데이 마라톤 참가]


등등 노동절 후기와 관련된 글일 것으로 믿음.

 

 

병원에 간다는 이유로 노동절 집회 및 행사 다 빼먹은 주제에 이런 글까지 쓰면 뻔뻔한 축으로 몰릴 수 있겠으나, 이제 뻔뻔하게 살 때도 되었으니 그냥 쓸란다.

 

2006년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노동절 행사는 말 그대로 '왕짜증'이었나보다. 요즘 스트레스에 민감한 내가 어느 곳에도 가지 않은 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블로그에서만 익숙한 블로거들을 만나지 못한 것, 그리고 찌라시 못 뿌린 건 안타깝고도 미안하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한심한 노동절 행사를 지적하고 있다. '아빠 힘내세요' '엄마는 모르실꺼야'에서는 확 깬다. 더더구나 그 망할 뽀스떠와 함께 의도된 컨셉이었다는 것에 뒤로 넘어간다. 그 한심함은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지역의 노동절 집회와도 비교된다. 메인 구호가 선거구호로만 채워지는 것도 어색하긴 하다. 보수정당 심판은 좋은 얘기지만 '투표소 가서 민주노동당 찍어라'하고 동일한 의미로 씌여지니 어색하고 민망한거다.

 

나는 이 모든 후기들의 의미를 이해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노총이 마라톤 대회를 연 건 좋은 본보기라 생각한다. 오만 잡것들 TV 나오게 판 벌려 준 게 한심하고, 명박이한테 감사나 하는 짓거리가 짜증날 뿐이다. 투쟁의 긴박함 없는 시청 잔디밭의 시민축제같은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나는 노동절 집회 뿐만 아니라 이 바닥 집회가 사실 다 짜증난다. 그건 그 집회에서 얘기하는 혹은 외치는 말과 구호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주저리는 새끼들만 주저리는 게 싫다. 그 씨방새들이 지껄인다고 투쟁의지가 높아지나? 힘이 커지나? 행사 주관자가 A부터 Z까지 다 결정하고 동원령 때리는 집회가 싫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집회 잘 안간다. 눈치 보여서 가거나 누구 만나서 노닥거리러 갈 뿐이다. 이제는 눈치 안보니 놀고 싶어지면 집회 나갈거다.

 

일년 내내 싸움없는 데 없고 갈등없는 데 없다. 투쟁은 일년 내내 해야 하니 하루쯤 놀면서 쉬자는 의미로 노동절 행사나 집회를 치렀으면 좋겠다. 개떼같이 모여서 재밌으려면 행사 주관자들이 A부터 Z까지 결정하는 행사는 꽝이다. 주관자는 판만 깔고 나서 찾아온 사람들이 알아서 놀게끔 빠져주는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거시기 연사들 주저리는 말보다는 집회장 여기저기에 나름대로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이래저래 듣는 게 더 유익하다고 믿는다.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을 KTX 승무원이 행여 마이크 잡고 얘기한들 직접 대면하고 얘기해 보는 것보다 좋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투쟁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 방향으로 모두 앉혀놓고 무대 위에서 발언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 그러는 모양인데, 난 천만의 말씀 만만의 팥떡이라 생각한다. 왠만한 선동가가 아니면 무대 위에서 발언해 봐야 감정이입도 안되고 주목도 잘 안된다. 하지만 얼굴 맞대고 대화하면 상대가 말을 썩 조리있게 하지 못해도 집중하게 되고 그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에 실려오는 의미를 알아챈다. 이런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당일에는 한정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파급력은 더 좋다고 믿고 있다.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행사장 여기저기에서 돌리는 거다.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 그리고, 연설하고 싶으면 연설하고, 호소할 게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호소하고, 책 팔고 싶으면 책 팔고, 전시하고 싶으면 전시하고. 물론, 돌아댕기고 싶으면 열나 돌아댕기고. 뭐, 좀 모두 모였으니 잼나는 거 해보자 싶으면 행진하며 웃고 떠들고. 개성 있는 플랭카드 따위 들고 와서 자랑도 해보고. 행진이 밋밋한 사람들을 위해 달리기도 하고. 까이꺼 노무현 싫으면 괜히 청와대 쪽으로도 기웃거려 보고. 안되면 말고. 좋잖아.

 

A부터 Z까지 주관자가 다 정하는 집회는 기본적으로 선택을 위해서 묻혀버리는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마이크가 권력이기 때문에 지들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한다. 적절히 정치세력간 안배를 고려하기도 하겠지만 생까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데서 힘을 얻으라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노동절 집회와 같은 행사에서는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으쌰 하면서 새로운 투쟁방향을 '총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게 일반적 운동권 정서인 듯해서 하는 말이다. 난 이게 운동권들이 갖고 있는 환상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투쟁방향이나 계획 따위는 집회 안 해도 이미 다 나와 있다. 사이트에 다 있다. 메일로도 온다. 모르겠으면 전화하면 다 안다. 그걸 노동절 집회와 같이 넓다란 곳에서 빽빽히 모인 사람들에게 마이크 잡고 떠든 들 뭐 달라지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 끄덕끄덕 하나?

 

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 평소에 못해본 거 해보고 못해본 말 해보고. 주관자가 할 말 다 정해놓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훈시하듯 지껄이고 노래하고 춤 추는 건 아주 오래 전에 '해방감'을 주었었다. 결코 지금은 아니다. 왜 예전엔 군화발 앞에서 집회를 했었나? 그 순간은 '해방감'을 주었으니까. 그래서 조직선 없어도 대중 집회에 사람들이 모이고 구경했던거다.

 

갑갑한 현실, 그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현실에서 하루쯤 해방감을 즐기는 날로 노동절을 삼아보자. 그걸 함께 즐기자고 하자. 하나 둘씩 모여서 더 커지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