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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을 정리하고 있다.
평소에 정리하기를 멀리하다보니 책상주변이 산더미다.
사직의사는 오래 전부터 밝혀왔고, 사직이 기정사실화되도록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런데, 정작 사직을 준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컴퓨터며 책상이며 책장이 하나 가득인데
여태껏 정리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선거운동이다.
하지만 그건 이유의 절반도 못된다.
선거 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가.
내가 하던 일을 그만 둔 경험은 한번 뿐이다.
2000년도 초에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에 오려고 중도하차하였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그만 두었다.
그게 경험의 전부이다.
이번에 일을 그만 두는 건 새로운 걸 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기 위함 뿐이다.
그래서 그만 두기가 두려운가 보다.
정리도 않고 하루하루 지나길 개기다가 이제야 시작한다.
5년 7개월 보름의 일을 끝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민주노동당은 애증의 공간이다.
여전히 애정이 있긴하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업무에 끼어들기를 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많은 시간 상처 투성이로 지냈는가.
증오와 모멸, 험오, 분노가 엉클어졌던 공간이다.
그럼에도 떠나기 싫은 이유는,
이곳에 처음 올 때 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저 마음 구석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정확히는 이곳에 와서 키워왔던 구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자괴감일지도 모른다.
마치 사무실 한 자리를 차지한 나의 책상과 책장, 컴퓨터를 정리하는 건
나는 정리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당에서 일하면서 나름대로 성장했다.
이젠 그 성장의 기반을 상실한다는 느낌도 든다.
나는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가?
당직을 사직해 놓고선 이곳을 배회하는 건 부질없는 끈을 잘라버리기 싫어서겠지.
하지만 이곳에 나의 흔적을 최대한 남겨두지 않아야 자유롭게 나의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용기라 생각하고 귀찮음을 딛고 정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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