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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몇 동과 책 한 권... 놀이

행복의 건축 - 10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책 속에서 재인용.
르 코르뷔지에,  - 고객들에게 그들의 소유물을 최소로 유지하라고 권하며......
"오늘날 가정 생활은 우리가 가구를 소유해야 한다는 개탄스런 관념 때문에 마비되고 있습니다. 그런 관념을 근절하고 그 대신 장비라는 관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
"[현대인이] 원하는 것은 수도사의 방이다. 조명과 난방이 잘 되어 있고 모퉁이에서 별을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실행가능한 모범'
'건물 몇 동과 책 한 권'
'백 명'
'자신의 규모나 건축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향'
'끈기와 조심성' 그리고 '게임'
"
취향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절망하지 않도록, 이전의 미학적 혁명을 이루는데 필요한 수단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생각해 보는게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만한 실행가능한 모범을 제시하는데 보통 건물 몇 동과 책 한 권이면 충분했다. 보통 '이탈리아 르네상스'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알려진 발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참가자들이 이뤄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니체는 그것이 실제로는 불과 백명 정도가 해낸 일이라고 말한다. 또 교과서에서 '고전주의의 재탄생'이라고 부르는 혁신 작업은 그보다 적은 수의 옹호자들에게 의존했다. 브루넬레스키의 고아원이라는 단 하나의 건물과 레오네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건축론>이라는 한 권의 논문만으로도 세계는 새로운 감수성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팔라디오 스타일을 영국의 풍경에 박아 넣는데는 콜런 캠블의 <영국의 건축가들> 단 한 권이면 충분했고 20세기의 환경을 구축한 많은 것들의 출현을 결정하는 데는 르 코르뷔지에의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200여 페이지면 충분했다. 어떤 건물들 - 슈뢰더 하우스, 판스워스 하우스, 캘리포니아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등 - 은 자신의 규모나 건축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이 모든 건축적 변화에서 처음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의 끈기는 그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자원만큼이나 중요했다. 건축의 위대한 혁명가들은 예술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을 겸비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고 생각할 줄도 알았지만, 의뢰인과 정치가들을 달래고, 유혹하고, 괴롭히고, 또 끈기와 조심성을 잃지 않고 그들과 오랫동안 게임을 할 줄도 알았다.
"
 
 
그리고 또 한 권...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 10점
한경애 지음/그린비
 
기분 좋은 선물...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가공할 정도로 희망적인 문장 하나...
 
"놀이는 언제나 더 잘 노는 법을 가르쳐준다."
 
"일단은 놀기 시작해야 한다. 정말로 잘 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즐거움을 자극하고 소비하는 무수한 장난감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서툴게 시작해도 좋다. 일단 놀기 시작하면 우린 점점 더 잘 놀게 될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건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풋. 노~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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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린과 고르의 생활

지음님의 [Farewell to Andre Gorz] 에 관련된 글.

고르의 작품이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D에게 보낸 편지 - 10점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학고재

대표적인 저술들이 단 한권도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라는 식으로 포장되어,
순식간에 번역, 출간된 그의 마지막 편지.
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얄팍한 책 두께만큼이나 얄팍한 현실에 화가 나서 안 읽을라다가... 결국 읽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게다.
그들의 죽음을 다룬 신문 기사 한 편 이상의 감동적인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철학적인 면모를 발견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분량 자체도 얼마 없긴 하지만, 들뢰즈와 바타유 등에 대한 철학적인 언급들은 번역자가 이해하지 못한 채 옮겼음이 틀림없다.

오히려 봐야 할 것은 그들의 생활이다.


소파, 책꽂이, 탁자, 의자, 전기난로... 당신은 마치 수도자같은 나의 이런 세간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지요. 나 또한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여준다는게 놀랍지 않았고요.

우리는 출발할 때 가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둘이서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대로 살겠다고, 그리고 당신의 눈길과 목소리와 향기와 가는 손가락과 당신이 당신의 몸으로 사는 방식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겠다고 동의하는 것만으로 미래는 온통 우리에게 활짝 열리게 되어 있었지요.

우리는 한 번도 생활과 소비 수준을 우리의 구매력 수준에 맞춰 높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늘 ‘호사스러운’ 생활 방식과 낭비를 싫어했습니다. 당신은 유행을 거부하고 당신 나름의 기준에 따라 유행을 판단했지요. 필요 없는 것을 공연히 필요하게 만드는 광고와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썼고요.
... 그 뒤 10년이 지나 우리는 결국 낡은 오스틴 차를 한 대 샀습니다. 차를 샀다고 해도 개인의 자가용 소유가 가증스런 정치적 선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잇는 가능성을 준다고 큰소리치면서 사실은 개개인을 서로 경쟁시키는 짓 말입니다.
... 그 때를 떠올리니 당신이 일곱 살 때부터, 진정한 사랑은 돈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돈을 무시했어요. 우리는 종종 돈을 기부하곤 했습니다.

당신이 회복하는 동안, 나는 예순 살이 되면 은퇴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예순 살이 될 때까지 몇 주 남았는지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음식을 만들고 당신이 힘을 되찾도록 도와줄 유기농산물을 사러 다니고 어느 대체요법을 연구한 사람이 당신에게 권한 기막히게 잘 듣는 치료제를 바그람 광장에 가서 주문하곤 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업.

도린의 직장... 극단 배우, 화가들의 모델, 영어 튜터, 헌 종이 수집, 관광 가이드... 당신은 어떤 일을 해도 당신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설령 노예선을 탔다 하더라도 당신은 훨훨 날개를 달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의기소침해졌지만요.

고르의 직장... 세계시민들 사무국장 비서, 화학제품 제조회사 자료정리 및 서류번역, 보험회사 직원, 탐정소설 번역, 유네스코 독일어 번역, 인도 대사관 무관의 비서, 석간 <파리 프레스> 외신 종합면 작성.


그들이 만든 공간...

우리의 삶은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아파트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 우리는 세계의 중심에 살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일로 만나는 사람들과 우리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들, 우리 친구들 사이의 구분은 모호해졌습니다.

“자율공간을 확장하되 그 자율공간을 단지 사적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실존주의... 생태주의...

‘실존주의자들’, 즉 정치권력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며 대안적 목표를 실천하려고 꾸준히 시도하면서 ‘삶을 바꿀’ 결심을 한 사람들...

생태주의란 삶의 양식이 되고 매일의 실천이면서 끊임없이 또 다른 문명을 요구하는 것이더군요...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해 온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늘 나보다 풍부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모든 차원에서 활짝 피어난 사람입니다. 언제나 삶을 정면돌파했지요. 반면에 나는 우리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면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고양이, 어슐러 르귄... 푸훗.

작은 시골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안돼서 당신은 회색 줄무늬 고양이를 집에 들였습니다. 굶주린 행색으로 우리 집 현관문 앞에서 항상 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던 고양이였지요. 고양이 피부에 오른 옴도 치료해주었습니다. 고양이가 처음으로 내 무릎에 뛰어올라 앉았을 때, 나는 정말이지 영광스럽기까지 했답니다.

앞으로는 우리를 미래에 투사하지 말고 이번에야 말로 정말 우리의 ‘현재’를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가져온 어슐러 르귄의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그 책 덕분에 이런 결심을 할 힘이 생겼습니다.


아무도 옮길 사람이 없다면... 고르의 <경제적 합리성 비판> 번역이나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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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서 길을 연다.

지음님의 [2층 침대 두 개가 있는 방] 에 관련된 글.


다이 호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 중

인생이란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 버리기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지금 나는 인생의 갖가지 고통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인생의 가장 귀중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서 길을 연다." - 레닌(레닌이 어디서 이런 얘기를 했을까? 아시는 분 손!)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잃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법이다. 얻어도 거만해지지 않고 잃어도 우울해지지 않는 경지에 달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득실을 따지는 기분에 스스로가 좌우되지 않도록 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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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자동차...

옆에 발레리의 글은 프라이부르크에서 묵었던 친구집에서 본 글귀다.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무서운 얘기지만 별 거 아니다.

 

자동차를 갖고, 자동차를 몰게 되면...

길이 넓어지길 바라고, 터널이 뚫리길 바라고, 고속도로가 놓이길 바라게 된다.

또, 기름값이 내리길 바라고, 유류세가 없어지길 바라고, 자동차값이 더 싸지길 바라고, 현대자동차가 잘 나가길 바라고, 파업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차창 밖 공기가 맑아지길 바라는 대신,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구매하게 된다.

모르지 요트를 갖게 되면 대운하도 찬성하게 될지...

"

자동차가 우리의 삶에 가져다준 모든 이득마다 그에 대응하는 손실이 있다. 어떤 신체부자유자에게 축복이 되는 바로 그 자동차가 사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평생토록 신체적 부자유자로 만든다. 어떤 노인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허용하는 바로 그 자동차로 인해 다른 노인들은 분주한 거리에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내게 된다. 어떤 아이들을 디즈니랜드로 데려다 주는 바로 그 차들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자기네 동네길에서 자유롭게 놀지 못한다. 우리들 중 몇몇을 편하게 직장에 갈 수 있게 하는 자동차들이 다른 사람들의 출근길을 점점 더 힘들게 만든다. 우리를 병원에 빨리 데려다 주는 바로 그 차들이 없었다면 애당초 우리가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우리들 중 몇몇의 사교생활을 넓혀준 바로 그 차들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은 동네와 거리를 잃고, 친구와 이웃 사람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불유쾌한 부작용을 넘어서 아마도 훨씬 더 불길한 문제가 있다. 즉, 자동차는 현대인의 영혼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자동차는 점차로 자아를 대신하고 있다.

"

- 볼프강 주커만, {파국을 향해 가는 자동차}, [녹색평론선집1], 녹색평론사

 

주식을 사면 주식가치가 오르길 바라고 기업과 금융 산업이 잘 나가길 바라게 된다.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길 바라게 되고, 철거와 재개발을 바라게 된다.

'가구들과 소유물들'이 많아질 수록 더 넓은 집 더 '안전한' 집을 바라게 된다.  

"

집과 가옥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가옥은 사람들이 가구들과 소유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그것은 사람들 자신보다는 가구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마련된 곳이다. 간디의 오두막이 함축하는 것은 인도 사회와의 완전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해지는 기쁨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이나 상품들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행복을 섭취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위축시킨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

- 이반 일리치, {간디의 오두막}, [녹색평론선집1],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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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 확정

아규/娥奎님의 [공간 마련] 에 관련된 글.

 

서울의 한 복판이지만 한적하다 못해 외진 곳.

해방촌과 이태원 사이.

터널 두 개와 지하도 한 개, 육교 한 개 그리고 남산 순환도로로 둘러 쌓인 곳.

남산 2호 터널과 3호 터널이 갈라지는/합쳐지는 곳.

1,2층은 사무실 3, 4층은 주택인 건물.

교통은 좋다고 하기에도 안좋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곳.

남대문, 명동, 서울역, 이태원, 동대문과 가까우면서도 장보러 어딜 가야할지 모르겠는 곳.

자전거 타고 숨막히는 터널을 통과하거나, 산바람 마시며 업힐과 다운힐을 하거나.

암튼 좀 특이한 곳에 서울 베이스캠프를 잡았습니다.

재밌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은데... 고민이 많습니다요.

차근차근 같이 풀어보자구요.

 

어쨌든... 아자아자!

입주는 2월 말... 한 달 내내 집들이나 해볼까 합니다요...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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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침대 두 개가 있는 방

다이 호우잉이 쓰고 신영복 선생이 옮긴 <사람아 아, 사람아!>를 다시 보고 있다.

보고 있던 책이 너무 난해한 탓에 볼 것이 없던 차에,

선배집에서 굴러다니는 책에 우연히 눈이 갔던 탓이다.

한 12년, 아니 15년 만인가?

 

재밌다.

예전에도 재밌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의 내가 아래와 같은 문장에 주목할 수 있었을까?

시 왕은 3층 화장실 옆의 작은 방을 열었다. 너무나 초라한 방이었다! 몹시 낡은 나무 상자 하나와 책이 가득한 선반 몇 개가 있는 것 외에는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방에는 2층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호 아저씨는 아래쪽에서 자고 위쪽에는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또 하나의 2층 침대는 비어 있었는데, 시 왕의 이야기에 의하면 단신 부임한 교직원이나 노동자가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를 하루 이틀 묵게 하는 데 사용된다고 했다. 침구는 더더구나 볼품이 없었다. 이불은 퇴색되어 꽃무늬가 회색에 가까웠고 그나마 몇 군데는 솜이 삐어져 나와 있었다. 베게는 작고 딱딱했으며 베갯잇 대신 그냥 수건을 감아 두었을 뿐이었다.

호 젠후라는 사람... 사랑과 혁명에 상처를 입고 떠나, 하루하루 '노동을 팔아서 밥으로 바꾸'고, 단 두 권의 책 <홍루몽>과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을 동무삼아, 10여년을 홀로 세상을 유랑하다 돌아온 사람의 방이다.

 

사람에 어울리는 방이다.

단지 허름하다는 것 말고, 비어 있다는 것, 혼자 사는 방에 2층 침대가 두 개 있다는 것...

'자기만의 방'에 누구라도 묵고 갈 수 있고...

손님이 묵고 어울리게 되면서 주인과 손님의 구별이 희미해지고...

마침내 자신도 손님의 한 사람이 되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방...

 

그런 방, 그런 집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문득...

  • 홍루몽은 어떤 책인고... 갑자기 관심이 가네...
  • 한반도의 온돌방 구조에서 침대는 바보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층 침대는 좀 끌린다. 한 방에 4명이 널부러져서 자는 것 보다는... 왠지 최소한의 개인공간 확보와 공중 공간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포기하기 힘든 장점이 있는 듯... 일반적인 방 구조에서 일부분을 복층화 하는 것이 가능할까? 흠...
  • 어서 마저 읽어야지... 한 번 본 건데도... 감동은 기억하는데 스토리가 거의 기억이 안난다... ㅠㅠ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긴 한데... 기억력 면에서는 십 몇 년 전의 내가 쫌 더 낫다는 걸 인정해야 하나... ㅋ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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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행의 목적지

라마단 기간을 마무리하는 최대의 명절 하리라야로 쿠알라룸푸르는 한산합니다.
친구들도 고향으로 많이 내려가서 늦게 올라오는 친구들은 얼굴도 못보고 이곳을 떠나겠군요.

17일 오전에 출발해서 쿠알라룸푸르 공항까지 약 70km의 고속도로!를 달려야 합니다.
18일 새벽 1시경에 비행기를 탑니다.
그리고 오전 8시 40분에는 다음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바로... 대한민국 서울이지요.

근 1년동안을 돌아다녔지만... 어딘가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떠나려고만 하면...
언제나 새로 여행을 시작하는 흥분에 잠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은 괜찮을까... 너무 힘든 고개에서 지쳐버리지는 않을까... 아찔하게 달리는 차들에 지레 겁을 먹지는 않을까...
새로 만나게 될 땅과 도시는 어떤 곳일까... 몸뚱아리 누일 곳은 있을까... 뭘 먹을 수 있고 뭘 먹어야 할까...
어느 구석을 돌아다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하고 싶고 또 무엇을 해야 할까...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서로의 말을 배우고 가르치고 그렇게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지도 한장 달랑 들고 맞닥뜨렸던 여느 도시들처럼, 서울도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아직 잠자리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고맙게도 그냥 재워주신다는 사람들 집을 전전하는 와중에, 바쁘게 집이든 절이든 장기간 머물 곳을 알아봐야죠.
무엇을 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책도 읽고, 인터넷도 쓰면서 정보를 모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계획을 잡아봐야죠.

우리의 여행이 여행이라기보다는 조금 색다른 또 하나의 삶이었던 것처럼...
새로 시작하는 삶 또한 조금 색다른 여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삶같은 여행, 여행같은 삶.

대한민국 서울.
우리같은 자전거 여행자에게 결코 만만한 도시는 아닙니다.
인구 천만이 넘는 공룡같은 도시.
집 임대료는 살인적으로 높고, 텐트 칠 빈 땅 하나 없는 도시.
자전거를 타고 몇시간을 달려도 빌딩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밭 한뙈기 찾아 보기 힘든 도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저렴한 먹거리,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채식 식당 하나 없는 도시.
자전거 메신저는 커녕 자전거 타고 시내를 돌아다느는 데만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도시.
그저 생활!하기 위해서 세계 최장 시간의 노동을 해야 하는 도시.

하지만 그동안의 여행/삶에서 쌓은 경험으로 잘 헤쳐나가 볼랍니다.
사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아무리 힘든 길에도 숨돌릴 곳은 있고, 오르막 뒤에는 내리막이, 내리막 뒤엔 오르막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
끝이 없어 보이는 먼 길도 그저 다음 한 번의 페달을 밟다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다는 것.
목적지보다는 길을 즐겨야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쑥 나타나 도와줄 구세주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
보고 싶고 보려고 애쓰면 보인다는 것...
이것들이 우리의 삶/여행에서 배운 것들(의 일부)입니다.

대한민국 서울.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말과 말 이상의 무엇이 통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거든요.
벌써부터 만나자는 사람들, 재워준다는 사람들이 넘쳐서 아주 행복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넉넉합니다.
이번 여행지에서는 좀 오~래 머물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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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우리집들

유럽에서의 191일동안 의 잠자리입니다.
어느 한 곳 사연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만, 일단은 간략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숙소 구분
교통
노숙 49 
캠프 21 
캠핑장 11 
스퀏
카라반
방문
친구 집 41 
새 친구 집 28 
24 
초대
총합계 191 

워낙 숙소가 다양해서 카테고리를 나누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지금 다시 구분을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어쨌든.

'교통'은 기차, 배 등 교통수단에서 잔 날.
'노숙'은 말그대로 노숙한 날.
'캠핑장'은 상업적으로 캠핑할 자리를 대여하는 곳에서 잔 날.
'캠프'는 로스톡 Anti G8 캠프, Earth First 캠프, Climate Action 캠프 세 곳에서 텐트치고 잔 날.
'스퀏'은 빈집 들어가서 잔 날. 친구들이 스퀏한 곳에 얹혀 잔 것은 제외.
'카라반'은 누가 비어있는 캠핑카에서 자게 해 준 날.
'방문'은 무작정 쳐들어가서 자게 해달라고 한 날.
'새 친구 집'은 현지에서 알게 된 친구들 집에서 잔 날.
'웹'은 warmshowers.org hospitalityclub.org globalfreeloaders.com 등 웹을 통해서 연락해서 구한 곳에서 잔 날.
'초대'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이 재워 준 날.

'스퀏', '카라반', '교통'이 실내냐 실외냐가 애매하고, '새 친구 집'이나 '방문', '초대' 등은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잔 날도 있기 때문에 역시 애매하지만.
굳이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자면, 각각 97일과 94일
텐트에서 지낸 날들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더 길게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실내에서 잔 날이 약간 더 많았군요.

결국, 상업적인 숙소에서 잔 날은 딱 11일. 숙박비를 낸 날은 그 중에서도 하루를 빼고... 10일.
정확한 가격은 가계부를 봐야 하지만 대략 150유로. 20만원.
6개월이 좀 넘었으니까 한 달 월세가 3만원 정도네요.
사실 이것도 초반에 비가 많이 내릴 때 집중되어 있을 뿐, 마지막 석달은 한 푼을 안썼네요.

아래는 참고로 '노숙' 49일을 장소에 따라 구분해 봤습니다.

숙소 구분
공원 16 
길가 11 

강변
쉼터
빈땅
해변
기차역
놀이터

정원
호숫가

유럽에서 오래 살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
전에도 한 번 포스팅 한 것 같지만... 모두 다 우리집입니다.

물론, 모두 자신의 공간을 기꺼이 우리와 함께 공유해 준 고맙고 훌륭한 사람들과
잠시 스쳐가는 두 사람을 넉넉히 안아준 산과 들, 강과 바다...
그리고 난데없는 불청객으로 고생했을 풀과 꽃들, 달팽이와 곤충들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영국 기후행동캠프에서 한 유목민 가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한동안 머무르던 곳을 떠나면서, 원형 천막을 걷어내자...
천막 때문에 햇빛을 못 본 풀들 때문에 푸른 초원에 누런 동그라미가 생겼더군요.
그 누런 동그라미의 한 가운데서 온 가족이 함께 제사를 지내며 말했습니다.
"참 좋은 땅이었다."

같은 심정입니다.
참 좋은 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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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마지막 날

유럽에서 지금까지 달린 거리 6585km.
남은 거리 15km.

약 6시간 후 공항으로 달려갑니다.

안녕. 유럽.
좋은 땅이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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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to Andre Gorz

"사랑하는 아내여, 오늘 그대는 꼭 82세를 맞았소,
그러나 그대는 늘 아름답고 우아하며 사랑스럽소.
생각해 보니 우리가 같이 한지 어연 58년을 맞았구료.
그러나 나는 당신을 그 어느때 보다 사랑하오.
게다가 마치 처음으로 당신과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감정을 아주 최근에 느끼기도 했다오.
당신과 함께 나는 생의 활력을 또 다시 느끼고 당신을 내 가슴에 안을때만이 삶이 가득차게 느껴진다오."

"Soon you'll be 82. You've lost six centimetres in height, you weigh just forty-five kilos, and you're still beautiful, gracious, desirable. We've lived together for fifty-eight years now, and I love you more than ever. Just a short while ago I fell in love with you anew, and once again I carry in my breast this gnawing emptiness which alone the warmth of your body against mine can assuage."

앙드레 고르, [아내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Letter to D)] 중 - 블로그, Fusions 에서 재인용


여행을 계획할 무렵, 프랑스에 가면 누굴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앙드레 고르였다.
물론 지네딘 지단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상상이었지만 말이다.

어느새 10년정도 지나버린 얘기지만, [에콜로지스트 선언]을 시작으로
한글로 번역된 그의 모든 글을 찾아 본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다 제본하고, 도서관에도 없는 책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통해서 구하기도 했다.
물론, 홍지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대한 열정과는 감히 비교도 안되는 것이겠지만 꽤나 열심이었던 셈이다.
사실상 '고르를 읽자'에 다름 아니었던 세미나를 열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노동시간 단축 세미나 커리큘럼]
(세상에 이 자료가 아직 있다니... 훌륭하다. 진보넷!)

후기 산업사회 및 정보화 시대의 흐름을 읽는 시각,
근본적인 좌파이자 동시에 생태주의자,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문체,
무엇보다도 대안과 그 대안으로의 경로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제안...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 이전에, 말하자면 왠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프랑스에서 프랑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앙드레 고르를 화제로 올리기도 했다.
요새는 뭐하고 지내는데 조용하냐고..,

그리고 오늘 기사에서 그 대답을 얻었다.

지난달 25일 앙드레 고르와 부인 도린은 파리 근교 트로와의 자택에서 한 친구에 의해 숨진채 발견되었다.
그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 둘러 쌓인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고르는 평생 자신에게 영감을 준 도린이 암에 걸리자 83년 모든 지적활동을 그만두고 트로와로 옮겨가 아내와 조용히 살아왔다.
지난해에는 도린을 돌보면서 느낀 생각을 기록한 책 <아내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를 내기도 했다.


관련 기사에서 발췌
http://afp.google.com/article/ALeqM5gjWhcNZrlESesEMdHb_hDiVUXltQ
http://www.signandsight.com/intodaysfeuilletons/1556.html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710/h2007100118274184800.htm

마지막으로 그의 글을 읽은지가 한 참 되었고,
호기롭게 모았던 원서는 제대로 읽지도 못했으면서도,
왜 고르는 더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가?
왜 우리나라 학자들은 고르를 제대로 읽지도 못할 뿐더러, 하다못해 제대로된 단행본 한 권 번역하지 않는가?
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동안...

그는 아내를 간병하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두번째의 생으로 떠났다.

"우리는 한 사람이 죽었을 때 홀로 살아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종종 얘기하곤 했다.
우리에게 두번째의 생이 주어진다면, 또 다시 함께 살고 싶다고...."

Nous aimerions chacun ne pas survivre à la mort de l'autre. Nous nous sommes souvent dit que si, par impossible nous avions une seconde vie, nous voudrions la vivre ensemble.

-
앙드레 고르, [아내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Letter to D)] 중 - Le Figaro 기사에서 재인용.
  (불어를 영어로 자동번역해서 다시 번역한 것이라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는 그의 마지막 책에서 사랑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사랑은 도피가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사랑은, 곧 그의 '세상에 대한 도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항상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던 고르, 고르다운 죽음이라 할 것인가?

먹먹하다.
돌아가서 못 읽었던 책이나 다시 읽으련다.
달리 추모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말레이시아에서 남는 시간에 읽으려고 가져갔다가 역시나 못 읽고 그대로 돌려 보냈던 원서 한 권도 고르의 "Capitalism, Socialism, Ecology"이었군! 쩝쩝. 괜히 미안해 지는군.




- 제일 앞의 인용문은 고르의 마지막 저작인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일부분인데...
번역하려고 한참을 애쓰다가 아래 블로그에서 더 좋은 번역를 발견해서 그냥 옮깁니다. 여전히 마지막 문장은 석연치 않습니다만...
어떤 신문 기사보다도 좋군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분인데 프랑스 정치에 관한 글 등 다른 글들도 아주 재밌군요.
Fusions, [철학자 고르즈의 사랑을 위한 죽음]

- 고르에 관한 더 많은 자료는 역시나, 위키피디어 [앙드레 고르]

- 고르는 그의 책 제목인 [노동자 계급이여 안녕 farewell to working class]으로 악명이 높기도 했다. 그를 언급하는 글들의 반 수 이상은 '세상에... 노동자 계급이여 안녕이라니!!!' 라며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것으로 그친다. 하지만 그들이 책 제목 이상을 봤을지는 정말 의심스럽다.

- [에콜로지스트 선언]에 나오는 유토피아에는 자전거가 달린다. 자전거가!

- 마침 컴퓨터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들린다. 거 참.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강풀의 만화 최근작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나오는 장군봉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죽음. 못 보신 분들은 한 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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