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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여행

지음님의 [자전거의 단점] 에 관련된 글.

어제 짝꿍네 집에 갔다. 가서 바로 집으로 돌아오게 될지 아니면 하루 묵고 올지 확실하지 않아서 자전거를 두고 갔다.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가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하철 자리맡기 실력도 형편없어졌다.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서서 갔어야 했다. 심지어는 원래 있던 자리에 가만히만 있었어도 훨씬 빨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원래는 '아줌마'들 뺨친다는 평을 듣기도 했었는데. 하튼 잔차를 타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오늘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왔다. 사실 나는 아직 바뀐 버스체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서울버스가 개편된 것은 내가 잔차를 타기 시작한 다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100원을 아끼기 위해서, 환승할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공부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편이지만,  문제는 요금이 아니라 노선이다. 심지어 나는 우리집에 가는 버스 번호도 자주 잊어버려 엉뚱한 버스를 타기도 한다.

 

(예를들어 이런 건 해 본 적이 있다. 세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는 일을 보고 돌아와야 할 경우... 버스를 타고 가서, 근처 지하철 입구쪽에 카드를 찍고, 일을 보고, 돌아와서 지하철 개찰구 출구 쪽에 카드를 찍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800원짜리 코스. 이해가 가실라나? 버스 환승은 30분이지만, 지하철은 3시간이다. 더 강한 사람들은 여기에다가 처음과 마지막에 지하철을 한번씩 추가해서 3시간-5번환승-800원의 절정 신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튼 오늘도 그랬는데, 두 번만 타도 됐을 것을, 네 번이나 갈아타면서 왔다. 전혀 엉뚱한 곳을 돌아돌아 왔다. 갈아탈 때마다 잔차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재미도 있었다. 원래도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더 좋아할 뿐더러... 읽고 있던 책이 특히 재밌었고... 그리고 평소 출근 시간에 비해서는 훨씬 빨리 출발한 편이었기 때문에... 서울 곳곳을 헤메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폭신한 햇빛은 발걸음도 가볍게 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출근한 아침, 이것도 역시 잔차가 준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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