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 솔직하기

먹는 것에 솔직하기

 

먹는 즐거움에 대해서 솔직해야겠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고백하지 못했던 비밀을 털어놓은 것처럼 홀가분한 심정이다. 왜 나는 먹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금기 영역이나 되는 것처럼 가슴에 꽁꽁 싸매고 살았을까? 내 인생에서 하루도 못 굶고, 한 순간도 건너뛰지 못하는 ‘먹는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소회 한 번 밝히지 못했을까.

인생에 자신 없어서 아닌가. 인생을 자신 있게 산 사람이라면 나처럼 못난 행동은 안 했을 것 같다. 기실 이런 심리를 살짝 들추고 보면 짙은 회색빛, 부정적인 시각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충분히 벌지 못하고 남이 알아주는 직책이나 직업을 지녀 여봐란 듯이 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적극적으로 산 사람이라면 자기 입속으로 들어가는 ‘피가 되고 살이 될’ 음식에 대해서 자신만의 관점과 당당한 태도와 함께 진지한 자세를 지니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중년 이후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생의 영향이 지대했던 것 같다. 딸내미가 비만이다 보니 동생은 그 애 앞에서 안 먹고 절식(絶食)하는 모습을 보이느라 밥상 앞에서는 늘 고성과 감시와 위선과 허세와 명령이 빈번했다 모욕적인 언사와 핀잔이 서슴없이 동원되었던 적이 많았다. 이에 대항하여 조카는 수긍하는 자세와는 달리 거부와 반항, 길길이 날뛰는 사나움을 보여왔다. 당연히 날선 기 싸움과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몇 년, 몇 십 개월이 지나다 보니 즐겁고 행복한 식사가, 좋은 것을 먹고 싶어하는 욕구가 큰 잘못이나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자주 연출되었다.  처음엔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티끌처럼 작은 것들이 모아져 점점 부정적이고 어두운 그림자로 자릴 잡게 되었다. "금식을 하는 고독한 수행자가 못 되고 어찌 넌 돼지처럼 살찐 것이냐?'는 식의 질책과 감시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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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과 먹거리를 대하는 지점에서 나의 문제는 여자라는 점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매끼니 식사를 준비해야 입으로 음식이 들어갈 수 있으니, 가녀린, 게으른 내 손에, 식구들의 밥이 달려있으니. 족쇄처럼 자유를 구속한다 인식되고, 혼자서만 책임을 짊어진다는 것이 불공평하다 생각하는 식이어서 반항하고 싶고 거부하고 싶고 내려놓고 싶은 짐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짓눌러 콤플렉스를 안겨주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했으면 얼마나 했으며 아이들을 거둬먹였으면 얼마나 잘 거둬먹였겠는가만, 잘한 것 없다는 자격지심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거다. 어떤 땐 나처럼 몸약하고 일 하기 싫어하고 밥하기 싫어하고 반찬 만들기 싫어하는 사람은 다시 없다는 전제 하에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의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 같은 나의 원인도 상당하고, 동생한테 영향 받아 깊숙히 물들어 있는 음식과 먹거리에 대한 전도된 의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딴 부정적인 생각은 과감히 털어버리려고 한다. 한쪽으로 쫘악~ 밀치고 털어내어 저 아래 골짜기에 떨어뜨려 박살내려한다. 매 순간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받아들이자. 똑같이 주어지는 음식을 앞에 둔 시간과 기회에 앞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생각을 최대치로 끌어내자.

그리 못한다면 행복한 인간이 못 될 거다. “헛배웠어! 지성적인 인간이 아니었구만!” 이렇게 말해주며 단순 솔직해질 거다. 그 시간들을 음미하면서 행복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손수 조리해서 먹든, 음식점에 가서 먹든, 매끼마다 내 의지대로 자신 있게 메뉴를 선택하여 먹고 산다는 기회의 수중함과 멋진 생을 긍정하고, 인간에게나 맹수에게나 미물에게나 생명이 있는 것들이 먹는 모든 행위는 아주 고유한 생명의식에 해당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내 몸과 내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와 음식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매순간의 퍼퍼먼스이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난 이제부터 ‘먹는 것에 솔직하리라.’ 다짐하면서 어제의 식사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김포에서 두 끼를 먹었다. 점심으로 갈치조림, 저녁으로 부대찌개를, 그 중 가수 홍진영이 모델로 나오는 ‘박가네 부대찌개’에서 먹은 저녁밥이 맛있다고 자평한다.

여기서 느낀 점은 기존의 유명한 프랜차이즈라 해서 후발 메이커나 음식점 주인들이 대단하닥 쫄거나 납작 엎드릴 필요는 없다 싶다. 도전하여 새로운 메이커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박가네 부대찌개, 나름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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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7 18:06 2017/10/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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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묘역엘 갔다. 넓디넓은 동작동 국립현충원, 아주아주 후미진 한쪽 귀퉁이, 그러나 가보면 수백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솔 향기 가득하고 정말정말 아늑하고 양지 바른 곳이다. 

DJ 묘역은 언제 가봐도 작고 소박해서 몇 걸음만 거닐어도 내 집 안마당처럼 품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규모다. 그래서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해서 좋다. 묘역에서 내려다 보면 언덕 아래로는 이름 없는 무명용사들의 묘가 보인다. 그렇다. DJ를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이들은 어김없는 무명용사들이다.

생전에는 충성스런 동지들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던 선생이었다. 지금은 잠들어 있는 선생의 유택으로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손님들을 늘 반갑게 맞아주던 인심 좋은 주인장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DJ, 오늘도 여전히 넓고 푸근한 가슴으로 사람들을 맞아주고 있다. 

묘소에 닿기 직전, 길 한쪽에서 조그만 쉼터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예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면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바로 앞 조그만 언덕이 디제이 묘소다. 먼저 온 사람들의 말소리가 낮게 깔리며 인기척이 전해오는 지점이다. 조신한 몸가짐들이 가을 빛과 어우러지며 신선한 실루엣을 만둘어 준다.

그들을 보며 묘소 입구에 들어서면 소나무가 아치대형을 이루면서 푸른 낯빛으로 반긴다. DJ를 찾는 방문객들은이라면 사양치 말고 그 호의를 마음껏 누릴 일이다. DJ여! 도란도란 건네는 지지자들의 존경과 환호를 거침없이 받으시라.

이곳 DJ 묘역은, DJ가 생전에 보인 불굴의 의지와 민족에 대한 헌신을 못잊어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와 그에 대한 충정과 자부심을 발현하는 곳이다. 대통령께 대한 경례와 묵념 그리고 향을 사르는 간단한 의식으로 모임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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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대중 대통령님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오늘 방문은 내심 "디제이가 이 시대에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찾았다. 디제이 묘역을 거닐며 선생이 내게 건네는 기운을 받고 싶어서이다.

디제이는 불굴의 투지와 평생 멈출 줄 모르는 학구열로 민주주의와 남북문제 그리고 나라 안팎의 경제 등에서 해박한 천착의 결과물을 많이 내놨다. 책이다. 이책을 통해서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여간 믿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책을 통해서 디제이를 만나고 있기에 그렇다. 읽다보니 나의 지식의 용량과 소화력으로는 단기간에 다 따 담을 수 없는 비전과 지혜가 담겨 있음을 새삼 발견한다.

박사학위 너 댓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디제이 앞에서 큰소리를 못 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룬 것들은 최소 수십년을 앞서간 선구적인 주장과 지론으로 차있어서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하려면 맨발로 좇아가도 모자랄 부분이 너무 많을 것이다.

누가, 어느 누가? DJ처럼 정직하고 한결 같이 남들은 가지 않은 길을 가면서 길을 냈으며, 이론으로나 행동으로나 선구적인 토대를 세웠는가. 교수들이? 학자들이? 없다. 아니다. 그들은 김대중 선생처럼 선행적으로 학문적인 자주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선도한 적도 없고 주장한 적도 없고 학문적인 자존심을 가진 적도 없다.

남북문제나 통일에 관한 문제나 민족의 앞날에 관해서 선도적인 주장을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10년 20년 30년 40년 아니 70년 긴긴 세월이 다 가도록 입 닫고 귀 막고 눈 가린 학문적인 불구자들이었다. 옹색하고 비굴하게 살면서 면피용 말마디와 역사적으로나 정신사상사 측면에서 청맹과니로 살아온 사람들이 행세만 하려고 혈안이었다.

우리 모두는 김대중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옥에 갇혀 자유를 제약당하면서까지 한땀한땀 이루고 쌓아온 고난의 행군 덕분에 오늘 날 우리는 자유와 풍요를 구가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독재에 대해 항의할 줄 모르고 군부독재에 제대로 된 항거도 못하고 있을 때 김대중은 5번 죽을 고비에 6년 동안의 옥살이에 55번의 가택연금으로 민족의 한을 품어 안으며 모진 고난, 갖은 모욕, 치졸하고도 악랄한 핍박과 음해를 이기며 오로지 자신을 응원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을 위안 삼아으며 불굴의 의지로 일궈낸 옹골찬 업적들은 그가 디딘 걸음마다에 단단하게 맺혀 있다.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생에 대한 고결한 성실과 천착이 있었기에 이루게 된 그의 성공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로까지 보폭을 넓혀 그만의 콘텐츠로 되살아나 응집돼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남북문제 등에 유무형의 유산을 풍성하게 남기게 됐다.

이곳 DJ묘역은 DJ가 생전에 보인 불굴의 의지와 민족에 대한 한없는 헌신을 못잊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와 순수한 충정과 자부심을 발현하는 곳이다. 대통령님께 대한 경례와 묵념 그리고 향을 사르는 간단한 의식으로 끝난다.

사진 한 장을 곁들인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오랜 수행비서였던 김종선 선생님이 찍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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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18:02 2017/10/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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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타임 '올해의 인물' 선정 프란치스코 교황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209867~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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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세기 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금 볼 수 있을까. 석가나 예수 같은 성인들을 지금 볼 수 있는 걸까. 볼 수도 있다. 석가에 대해서는 불경과 사찰에서 하는 각종 예불과 불사를 통해서, 예수에 대해서는 그가 대중들에게 행한 설교가 담긴 성경과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전례나 전승을 통해서다. 오늘 날엔 바로 내 이웃에 있는 주변인들의 신앙생활을 통해서도 해당 종교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석가나 예수 혹은 마호메트 혹은 신흥종교의 교주가 됐든 해당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언행을 들여다보며 갖가지 평가를 내리면서 종교창시자들을 알려고 애쓴다. 이번에 새로 탄생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호감과 감동으로 인해서 교황의 신앙인 가톨릭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낸다. 교황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던 차에 이번 연휴 기간에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을 찾았다.
 
늦은 밤 올레TV에서 골라본 영화였다. 그런데 아뿔싸 이 영화를 보면서 세 번이나 잠들어 버렸다. 네 번째 시도한 끝에 비로소 ending장면까지 보게 됐다.

네 번 만에 라니? 영화가 편안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랬던가 보다. 영화 속에서 나도 모르게 육신이 이완되어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음식으로 말하면 무공해 무 농약의 청정음식을 먹는 기분, 그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갔다. 서스펜스나 극적인 장면을 강조하려는 트릭이나 기교도, 깜짝 놀랄 반전도 없었다. 처음부터 단순한 서사구조로 전개되는 영화였고, 로마와 부에노스아이래스를 오가는 화면 속에서 교황의 일생이 군더더기 없이 펼쳐졌다.

내용은, ‘에나’라는 바티칸 주재 여기자가 부에노스아이래스의 대주교를 여러 번 인터뷰 하는 모습과 빈민가를 누비며 사목하는 신부의 소탈한 모습, 또 교황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로마를 오고가는 장면이 주축을 이룬다. 참고로 ‘호르헤 베르질리오’ 신부는 미혼모 에나의 딸에게 가톨릭 세례를 베풀어준 진보적인 신부였다. 에나가 미혼모라고 해서 다른 신부들은 율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꺼려하는 일을 기꺼이 도맡아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 같은 신부다.

베르질리오 추기경은 세 번째 참석한 교황선거에서 그 자신 교황에 선출된다. 전 세계인이 깜짝 놀라며 주목하는 순간은 누가 뭐래도 새 교황이 교황 복을 입고 성 베드로 성당이 보이는 베란다에 설 때이다. 광장에는 굴뚝에서 하얀 연기기 피어오르기를 고대하며 서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역사적인 장면의 목격자가 되기 위해서다.
 
교황비밀 선거인 콘클라베에서 뽑힌 새 교황이 교황 복을 입고 나와 신자들을 향해서 첫 강복을 베푸는 모습은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라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된다.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역사적인 목격자가 됐다는 감격을 맛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린다. 이들뿐만 아니라 새 교황의 모습을 뉴스로 내보내려는 취재기자들이나 영상기자들의 정성 또한 필설로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인내를 동반하는 시간이 된다.

이 영화를 보며 제일 좋았던 점은 고위성직자의 몸가짐과 언행을 음미하는 재미였다. 교황 역을 맡은 배우의 얼굴도 지적이면서도 빈자와 약자들을 향한 착한 목자로서의 표양을 확고하게 지키는 모습이 잘 드러나도록 연기를 했고,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소박한 모습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에는 초연하면서도 착한 목자로서 할 일은 담담하게 수행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엔딩장면도 좋았다. 정말인가 싶지만 교황이 되는 순간도 교황의복을 사양하고 평소에 입던 옷 그대로 성 베드로 광장에 내려다보이는 베란다로 나와 첫 임무를 시작한다. 교황의 첫 임무는 광장에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교황 강복을 내리는 일이다. 또 하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라는 노래를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부르는 속에서 끝나는 점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남자인데 목소리 톤을 높여 변형을 하며 부르는데 아주 특별한 감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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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9 16:49 2017/10/0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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