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청 취향과 역사 그리고 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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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중개채널을 바꿨다. 이전까지는 ‘티브이 로드’라는 지역 케이블이었지만 지금은 올레 TV다. 인터넷과 TV시청과 인터넷전화 그리고 ‘에그’라고 하는 무선 휴대용 서비스까지 4개의 상품을 한데 묶어서 패키지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나의 TV 시청 경향이 많이 달라지게 됐다. 전에는 못 보던 방송을 접하게 됐는가 하면 그동안 즐겨 보던 두 세 개의 채널은 잘 잡히지 않아서 멀리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 중 새로 친숙해진 채널은 상생방송과 승마채널과 동아 TV와 같은 채널이다. 그 중에서 상생방송이라는 채널은 처음 보는 방송국이고 JTV에서 하는 손석희의 뉴스 보기는 공교롭게 중개채널을 바꾼 후 챙겨 보는 프로가 됐다.

 

최근에는 역사 강좌가 많은 상생방송을 가장 많이 시청한 것 같다. ‘환단고기’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더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그런데 역사프로를 시청하는 것은 단순하게 시청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부분이 있었다. 공부하듯이 외워야 할 점이 다. 내가 만약 학생이라면 시험 때문에라도 역사지식을 달달 외웠을 것이다. 그 덕에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할 때 기억한 것을 제시하며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헌데 외우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탓에 막상 대화를 하려니까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없어서 대화중에 역사 내용을 제시하면서 말하지 못하니까 구체성이 없고 겉도는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심심풀이로 보는 드라마나 코미디프로와 같이 보고 털어버리는 식으로 역사강의를 접근해서는 안 되겠다. 뒤늦은 자각을 하며 내 사고체계를 수정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실황 녹화방송을 시청한 이야기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우리나라 역사는 9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광복”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역사 규명에 대해서 호소하는 자막을 보니 채널을 고정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역주자는 콘서트의 처음을 “대한민국은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입니다!” 하고 일성을 내뱉어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다 뜨끔했던 것이다.

 

동북아 역사는 지금 우리가 알다시피 중국은 자국 패권주의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일본은 군국주의화를 추구하는 것이어서 이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라는 부분에서 짠한 심정을 누룰 길이 없었다. 이는 일제 식민지시대 때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왜곡된 한국역사를 편찬한데서 가속화 됐다. 나아가서는 일제 때 ‘조선사편찬회’에서 양성된 역사학자들이 서울대 등 우리나라의 중요대학의 역사학과교수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들처럼 식민사관을 지닌 교사들을 판박이처럼 양성해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왜곡은 오늘 날의 강단 사학자들의 잘못이 크다.

 

이 같은 연장선에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이덕일 교수가 하는 강의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보충할 수 있었다. 이덕일 박사는, 1945년에 우리나라가 형식상의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역사해방이나 국어해방은 아직도 이뤄진 바가 없다고 역설했다. 그 근거를 하나하나 대는 대목에서 “이거 어쩌지? 우리가 이제까지 뭘 했나!” 탄식만 나오는 것이었다. 우리 역사는 일제 때 ‘조선사편찬회’에서 일본인 학자가 식민사관을 구축한 그대로 굳어지고 있고, 국어는 소리 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적는 표기방식이 아니고 뜬금없는 두음법칙이 생겨났고, 한글이 말을 표기하는데 불가능한 것이 없는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문자를 사용치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천재 언어학자인 세종대왕이 만든 국어 표기법칙을 지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열등한 민족이라는 선입관을 심어놓기 위해서 저질러 놓은 온갖 왜곡에 대해서 광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이래서 대한민국은 아직도 광복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공감한다. 우리나라를 일컫는 동이족이라는 말의 뜻도 새로 알게 됐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기를 ‘동이족’은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활을 잘 쏘는 동쪽 사람들이라는 뜻일 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일으킨 문명이 중국보다 앞선 문화라고 소개를 했다.

 

흔히 일컬어서 세계 4대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인 황화문명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중국의 역사보다도 우리의 역사가 앞선다는 주장을 귀 기울이게 됐다. 자랑하는 황화문명 보다도 우리 민족이 일군 ‘홍산문화’가 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더불어서 우리가 신화로만 주입 받고 있었던 단군신화가 신화가 아닌 찬란한 우리의 실제 역사라는 사실이다. 환인 환국과 환웅 배달국과 단군 조선은 47대 단군임금이 재임한 역사라 엄연한 국가라고 했다.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았던 것은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해서 왜곡된 결과이고 사대주의 사상 때문에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 됐다고 한다. 우리 역사는 총 4번에 걸쳐서 역사 왜곡이 있었었다고 한다. 삼국사기는 우리의 고대역사를 말살하고 고구려 역사를 부정한 역사서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삼국유사는 우리의 고대역사 부분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조금이나마 언급했지만 신화로 처리해버린 것이었기에 소각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에 이르러서 유교와 사대주의 사상에 절어서 왜곡된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세조와 예종과 성종까지 3대에 걸쳐서 역시 역사서를 수거하여 철저히 소각하는 불행을 저질렀다. 이러니 우리 역사서는 이래저래 말살될 수밖에 없었다. 이틈을 타서 중국은 우리 역사까지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고, 일본은 우리에게서 가져간 수많은 부분을 부정하면서 자국 역사의 미화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일인들에 의해 양성된 친일사학자들이 오늘날까지 역사계의 실권을 장악하고서 우리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고 있는 현실은 교학사에서 발간한 역사서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혼을 잃어버린 민족이다. 어서 우리의 혼과 얼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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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08:03 2013/12/0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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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하는 행동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5년 후에나 있을 대선 출마를 운운하는지 정말 역겹고도 가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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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TV 조선 장성민씨가 친노 문재인에게 한 마디 한 내용이다.

 

민주당내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지금 민주당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정권투쟁, 정권교체가 아니라 친노 주류세력에 대한 당권투쟁, 당권교체입니다. 민주당의 주류 친노들은 민주당을 깨고 나간 세력들입니다.

 

민주당의 기반과 당명으로 정권을 잡은 후, 스스로 민주당을 발로 걷어차고 나가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정치 분열세력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50년 만에 잡은 정권을 단 5년 만에 빼앗기는 무능함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창당한 열린우리당까지 공중분해시켜 버렸습니다.

 

창당 불과 4년도 못돼서... 그러자 오갈 데가 없게 된 친노세력들은 자신들 스스로 발로 걷어차고 나간 민주당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선 이번에는 또다시 민주당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에 들어와서 실패한 열린우리당식 정치를 그대로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집권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실패한 이유는 친노식 분열과 증오의 정치 때문입니다. 친노세력들은 지난 2번의 대선과 2번의 총선에서의 대참패를 민주당에게 안겨주는데 1등 공신이었습니다. 이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무능함과 무책임으로는 절대로 선거에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민주당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희망은 오직 민주당원과 대의원들에게만 있었습니다. 민주당원과 대의원들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분열의 정치로 국민적 공분만 사는 친노정치로는 더 이상 민주당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일찍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반노기치를 내건 김한길 후보를 당대표로 당선시켰습니다. 역시 민주당의 희망은 당원과 대의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노깃발을 내세워 당대표에 압도적으로 당선된 김한길 대표는 지금 어떤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당대표에 당선시켜 준 민주당원 대의원들의 뜻에 따른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들을 배신하고 있습니까? 이 시점에서 민주당이 살길은 정권투쟁이 아니라 친노 주류세력에 대한 당권투쟁에 있습니다. 최근 친노핵심인 문재인의원이 다시 민주당과 야권진영의 이름으로 대선출마를 시사한 것은 민주당과 당원 대의원들에게는 가장 절망적인 소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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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3 19:32 2013/12/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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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흐린,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회색빛 우중충한 날이면 뭔가 재밌는 것이 없을까 생각이 미친다. 일전에 남이섬에서 봤던 조형물 몇 개가 떠오른다. 정크예술 같기도 한 그 조형물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등심에 젖어본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시간은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니까. 현재와 미래를 온통 살만한 것으로 채우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며 그 소중한 기억 속을 거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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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입맛을 당기는 질 좋은 군것질이 옆에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손으로 집어 들면  따뜻해지고 입에 넣었을 때는 금방이라도 음~ 정말 맛있다 하면서 만족스럽기 짝이 없는 간식 말이다. 

군고구마와 따뜻한 오뎅과 오뎅국물도 좋다. 하긴 붕어빵이나 국화빵도 좋겠다. 아 참~ 빠질 수 없는 간식거리 그래 호떡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단연 압권인 것은 찐빵이다. 본래 찐빵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저 부담 없이 하나 사먹는 간식은 그저 호떡이 전부였다. 닭 꼬치 그러니까 닭 꼬치 같은 고기 종류는 길거리 간식으로 한 번도 사먹은 적이 없다. 뭐 아무거나 괜찮겠지만 말이다.

붕어빵은 대게 1000원에 3개인데 따뜻했을 때 딱 1개먹으면 별미다. 먹는 속도가 느린 사람은 세 개 째 먹을 때쯤에는 붕어빵은 영락없이 식어 있어서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붕어빵은 풀빵 종류라서 식으면 영 아니다.

호떡은 남대문 입구가 압권일 거다. 명동에서도 인기지만 명동 호떡은 남대문에서처럼 줄을 설 정도는 아니다. 호떡은, 야채호떡과 전부터 제일 흔하던 설탕과 계피가루와 해바라기씨 등을 혼합한 두 종류가 있는데 남대문 입구에서 파는 호떡은 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통에 하나 사먹을 엄두조차 못 내고 말았다. 번번이 잠시 바라만 보다가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정작 남대문 호떡 맛은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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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는 호떡 말고도 무지 성업 중인 먹거리가 있다. 찐빵이다. 이 찐빵은 비교적 수월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 찐빵 집은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인삼가게 중간에 두세 곳 있다. 국 대접닥만 한 크기의 찐빵들이 김을 내뿜으며 구미를 당긴다. 자연히 발길을 멈추고 하나 사서 입에 넣는다.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은 시각적으로 대만족이다. 먹음직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처럼 통통한 모양은 만져보고 싶은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김을 폴폴 내뿜으며 바쁜 몸놀림으로 사람들을 상대하는 가게 집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시장에 온 기분을 절로 느낀다. 이게 남대문의 새 명물이 되었다. 드디어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찐빵에 대한 기억 하나 더, 지난 9월이었다. 서울광장에서 국민보고대회를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일행은 민주당 노원 병 지역위원장인 이동섭 씨와 구의원 송인기, 시의원 김광수씨였는데 청량리 쪽으로 달리던 차가 동대문을 조금 지났을 때였다. 이동섭씨가 동대문에서 체육센터를 운영하던 때 찐빵을 엄청 사먹었노라고 빵집을 가리키면서 추억담을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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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차를 잠시 멈추고 일행 중 한 사람이 찐빵을 사서 한개 씩 안겨줬다. 에효~ 웬 찐빵이 그리도 뜨거워! 찐빵이 어찌나 뜨겁던지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호호 불며 이손에서 저 손으로 저글링을 하듯이 해야 했다.. 찐빵 하나를 먹느라 엄청 진땀을 빼던 기억이 가시질 않는다.

그런데 남이섬에도 찐빵을 먹을 줄이야. 것도 가마솥을 걸어놓고 현장에서 불을 떼며 팔고 있는 것을. 남이섬에 들어와 처음엔 구경에 정신이 팔려서 돌아다니기 바쁘다. 하지만 차츰 출출해지기 시작하는데 가마솥에서 김을 내뿜고 있는 찐빵을 보면 십중팔구 발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니가 하나 살래? 하는 뜻으로 친구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친구가 빵 두 개를 샀다. 근데 남이섬 찐빵은 너무 작다.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스친다. 기술과 관광지의 차이인가? 크기, 촉감, 앙꼬의 양에서 1천원 내고 사먹기에는 아무튼 좀 남대문이나 동대문에서 사먹은 것 보다는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어서 표현해 봤다. 사진들은 추억과 함께 세트메뉴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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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4 21:16 2013/11/2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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