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生生현장 5.18 광주 그 뜨거운 도시-5
- [생생한 르포] 자유공원, ‘5.18을 체험하는’ 대학생들! -5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5.18자유공원이다. 이곳 역시 상무대가 옮겨간 신도심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규모는 33058제곱평방미터, 당시 신군부에 의해 끌려가서 구타와 구금을 당하고 재판받고 수감되던 군사법정과 영창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재현한 곳이었다. 오직 민주화! 이를 위하여 드높은 이상을 외치며 젊음의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던 장소다. 그 항거는 인권, 평화, 화합의 상징으로서 기억된다.
그 당시 폭압을 몸소 겪었던 민주열사들이 군복을 입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신군부들이 자행한 만행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60대를 훨씬 넘은 듯한 노병들이었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그 날의 함성과 그 날의 항거를 잊지 말기를 염원하면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피 끓는 영원한 청춘이기에. 민주열사이기에 “여러 분 저는 당시에 전남 도청에 있었던 시민군이었습니다!” 드넓은 운동장에는 80명 혹은 100여 명 씩 무리를 이룬 학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날의 함성을 전해 듣고 있다.
들불열사기념비에 쪽에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신들은 충남대생으로서 충남대 동아리 연합회에서 ‘5.18광주항쟁기념식’에 단체로 참석한 학생들이라고 했다. 참석인원은 100명가량이라고 한다. 군사 법정 쪽으로 가니 거기도 학생들이 있었다. 눈을 들어보니 비슷한 젊은이들이 줄줄이 또 줄줄이 단체로 찾아들고 있었다. 깃발을 치켜 올리고 있는 학생들은 서울시 전역에서 모집돼 온 ‘평화나비’라는 역사동아리에 소속된 학생들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하얀 깃발을 펄럭이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자유공원 안쪽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가자던 뜨거운 맹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박정례/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