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더괴랄
분류없음 2014/09/10 03:04이 도시에 살기 시작한 첫 해 겨울, 발달심리학 (developmental psychology)을 가르치던 젊은 교수가 수업시간에 국제이주노동자의 날 (International Migrants’ Day, December 17th) 행사를 소개해줬다. 이 행사는 사실 발달심리학과는 하등 상관이 없던 터라 아이들 모두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 가면 학점 잘 받는 거야? 이번 에세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여기저기서 수군수군거리는 아이들. 아이들의 동요를 눈치챈 젊은 여성 교수는 가고 싶은 사람을 위해, 관심있는 사람을 위해 소개하는 거라면서 대화의 주제를 황급히 옮겼다. 어쨌든 이 젊은 여성교수의 마인드랄지, 관심사를 확연히 알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마침 공부하던 학교에서 그 행사가 열린다. 짝과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살고 있는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들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로는 나와 같은 케이스도 있고 경험자들을 받아들이는 케이스도 있고 혹은 계절별 가령, 농번기에 사람을 고용하는 (seasonal workers) 케이스도 있다. 그 중 가장 착취도(?)가 높은 케이스는 입주도우미 (living in Caregivers). 올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마가리타 Margarita (2012)"라는 영화를 보면 그 단면이 나온다. 영화는 다소 판타지스럽게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 속 입주도우미가 하는 일을 보면 '가노(家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짝과 함께 참여한 그 날 행사. 다소 나이브한 상태였던 내가 경악했던 것은 공장이나 공장형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워포인트로 보고 난 직후였다. "지구는 너무나 둥글다"는 것. 자본의 착취는 너무나 "닮았다"는 것. 참가자들은 주로 남미나 필리핀에서 왔고 그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까워하는 자본가들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일하다가 방광염에 걸리거나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몰라서, 혹은 몇 가지 조건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서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기계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저귀를 찬 이유는 노동시간을 정확히 지켜야하는 선진국형노동관리스탠다드 때문이었다. 출근할 때 찍는 출근부와 퇴근할 때 찍는 퇴근부의 시간이 정확히 맞아야 하는데 - 즉, 계약을 어기면 안되는데 - 일은 알차게 시켜야하겠고, 뽕을 뽑아먹어야 할테니 자본가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뭐가 될까. 그렇다. 쉬는 시간을 줄이면 된다. 그러니 그들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거다. 왜냐면 계약서엔 기저귀를 채우면 안된다는 게 없으니까.
입주도우미 (living in Caregivers) 의 경우엔 그 착취가 더 교묘하다. 입주도우미를 전제로 노동비자 (Work Permit)를 받으면 해당 노동자는 자신을 고용한 그 사람 아래에서만 일할 수 있다 (Closed Work Permit). 다른 일을 하거나 고용주를 임의로 바꾸는 것은 불법이다. 이 모든 내역이 노동비자에 써 있다. 일대일, 고용주 대 노동자. 매우 '평등한' 거래관계가 성립된다.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머물 거처도 줘, 밥도 먹여줘, 뭐가 불만이야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있다, 있더라.) 국제노동협약 따위야 개나 줘버려. 영화 마가리타를 보면 마가리타는 밥도 하고 애도 가르치고 지붕도 고치고 청소도 하고 고용주 커플의 상담도 해주고 못하는 일이 없다. 이 과정이 너무나 스무스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하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더라). 24/7 (24시간 일주일 내내)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건데 사람이, 로봇도 아닌 사람이 이게 가능하냐는 말이다. 일 년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못해? 하고 물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묻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자, 나에게 묻는 이들이여. 그것도 못해. 설마 그게 사실이야. 이 기사에 나오는 이주노동자처럼 일 년만 아니, 한 달만 살아보라.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7758.html
* 전세계 방방골골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고 다양하고 하는 일도 천가지만가지이긴 한데 정말 한국인고용주들은 심하다. 너무 노골적이라는 거다. 욕망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거다. 너는 나의 노예. 너의 육체도 정신도 나의 것. 너는 내가 돈을 더 벌기 위해 내 몸 편하기 위해 들여온 기계사람. ... 계약조건이나 법을 지키면서도 착취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아주 많은데 말이다. ---- 누가 더 괴랄...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