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뭐했나
분류없음 2015/03/09 14:15여성의 날.
집회, 토론회, 행진. 올 해에는 아무런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살고 있는 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Repair Cafe 자원활동에 참여했다. 연례행사 활동의 패턴을 바꾼 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몇 달 전 토요일 정규근무 계약을 맺은 뒤로 토요일마다 열리는 Repair Cafe에 참여하지 못했다. 어차피 자원활동 (volunteering)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만큼, 할 수 있는 한,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일이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네가 하기로 해놓고서 왜 그래. 너만 바쁘냐. 그럼 미리 안된다고 했어야지. 이런 반응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몸에 베인 아주 이상한 습관 내지 반응이랄까, 잠재의식에 자리한 죄의식이라고 해야 하나.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미안함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그런 괴상한 거?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때 오는 박탈감. 아마도 그런 마음이 더 컸던 건 아닐까. 이 나라에서 오래 정착하기 어려우므로 물건을 고칠 때 필요한 연장을 하나 둘 장만하거나 그런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 난망하다. 커뮤니티 수업을 듣거나 수선하는 장인들을 만나 어울리는 일도 다소간에 버겁다. 이 일의 장점은 집안에 고장난 물건들을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거, 고치기 어려우면 천천히 배울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늙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거. 재미있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기에 판이 다 마련되어 있어 몸만 가면 되는데도 그게 어려울 때 --- 슬프다.
어쨌든 나도 여성이니까 나에게 축하를.
* 여성의 날 단상
한국에서 사회주의 (활동) 를 드러내어 하는 (일부) 집단-사람들도 그렇고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공공연하게 전파하며 활동하는 (일부) 집단-사람들도 그렇고 일정 정도 '강박'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무슨 강박이냐 하면, 모든 주제를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라는 깔대기로 다 담아내려는 것. 혹은 만기친람?
특히 여성의 날이 다가오거나 젠더-섹스 이슈가 결부되는 일 (가령 성폭력) 이 벌어질 때, 그리고 이 일이 피드백을 많이 받을 때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회주의자로서 무엇을 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로서 젠더 이슈에 대해 어떠어떠한 입장을 지녀야 한다; 사회주의자의 관점으로 젠더불평등을 바라봐야 한다; 사회주의자의 눈으로 성폭력에 반대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로 사는 일은 참 피곤하겠다 싶다. "사회주의자로서" 보다는
개인 김개똥은 젠더 이슈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개인 김개똥은 살아보니까 젠더불평등이 이런이런게 좋고 이런이런 게 불편했다; 개인 김개똥은 성폭력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일에 적극 공감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 사건이 성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개인 김개똥은 피해자라고 말하는 사람의 고통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왜냐하면....
... 이런 것에 더 관심이 간다. 사회주의라는 담론 (discourse)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더 간다.
정말 내가 지향하는 그것을 입으로 말하거나 손으로 타자하지 않아도 그 지향이 내 몸 안에서 무의식으로 작동하는 그런 개인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을 만날 수 있으면 아, 인생 잘 살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은 매우 사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