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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만남'..

파티님의 [그땐그랬지] 에 관련된 글.

진보 블로그와 나는 어쩌면 아주 필연적인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이 글은 그와의 만남이 어떻게 우연을 넘어 필연의 끈으로 이어 졌는지 간략히 저술? 하는 글로 쓴다..



진보넷의 공동체 안, '꼬마게시판'을 쓰고 있었다. 꼬마 게시판을 쓰게 된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그곳으로 인도해주신 자가 바로 '산오리'님이었다.  그게 바로 어언 2002년 8월 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딱 3년전이 되겠구나..

 

첨엔 너무 신이 나서 아무것도 아닌일로 주절주절 거리기도 하고 때론 게을러 져서 몇일을 그냥 지나가 버리기도 했지만, 주변의 아우성을 무시할 수 없어 다시 돌아오곤 했었다.  그때 감비를 알게 되었고 감비 방에 들어 오는 무수한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때도 역시 '오프'라는걸 하게 되었는데 그 첫 오프에서 만난 사람들이 '네오'와 '술라'였다.  안면을 튼 사람들과는 꼬마에서도 가끔 안부를 전하거나 어쩌다 만나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다가 술라 역시 꼬마를 만들었고...(지금은 딴청이지만..)

 

그렇게 꼬마와 교감을 나누고 있던 중, 여기저기서 블로그란 단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도대체 블로그가 뭔가 싶어 네이버니 뭐니 하면서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네이버 검색결과, '블로그란 웹(web)과 항해 일지를 뜻하는 로그(log)의 합성어로, 웹 사이트 주인인 블로거(blogger)가 발행인이자 편집국장이며 기자이기도 한 인터넷상의 일인 언론사. 게시판 형식의 사이트에 자신의 일상적인 일기에서부터 사회적인 이슈에까지 개인이 자유롭게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려 디지털 논객...'이라고 나온다. 약간의 일기 형식을 띤다고도 들었던것 같았던 이 개념을 나도 한번 써먹어 보자고 나서면서 가입 했던게 네이버 블로그였다. 가입을 하면서 사람들이 찾아 오고, 덧글을 달고 찾아 가고 하는 일들이 마치 무슨 마실 다니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재미가 쏠쏠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광활한 그 공간에서 나와 취향이 비슷하거나 어느정도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란 가뭄에 콩나듯 어려운 일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풍요속의 빈곤이랄까..머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게 맞는 말일게다. 그러던 중, 진보넷의 몸담고 있던 어떤 활동가로부터 유언비어를 들었다. 진보넷도 곧 블로그 서비스를 하게 될것이라고..와~~~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블로그 서비스 개통된지 2틀만에 드뎌 입성을 하게 된것이다. (데모버전에도 참가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어리버리한 탓에 그만 기가 죽어 참여하진 못했고...)

 

#2. 입성중의 굴곡..

 

처음 꼬마를 개설할때 처럼 흥분의 도가니속 이었다.  아니 사실 꼬마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고 신이 났다고나 할까? ㅎ 그전에 꼬마을 쓰던 산오리와 감비 삐딱 등등이 모두 블로그로 집을 옮기기 시작했고 역시 나도 뒤를 이어 '이사'를 감행하게 된것이다.  그렇게 블질을 시작하면서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십몇년전에 벌써 알고 있던 사람도 있었고, 알면서도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주고 받게 된 이들도 있다.  입성중 가장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블질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갈막이라는 자가 내가 걸어 놓은 대문 사진에 시비를 걸게 되어 약간 옥신각신 했던 일이 있었다. 그 이후 익명의 덧글을 단 사람들이 너무 너무 궁금하게 되었고, 궁금증을 해소 하기라도 하듯 예상치 못한 오프가 있었다.  몰롯이 주최한 방문자 이벤트! 거기에 살짝 끼어서 자일리톨을 보았고 이름만 알고 있었던 달군을 만났던 것이다.  거기다 덤으로 온 몰롯의 후배, 에보까지..에보는 진보 블로그는 아니지만 아직 그의 블로그를 통해 교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제목에서 처럼 입성중 가장 큰 '굴곡'은 익명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나 컷다는 것이고, 화면을 만져가면서 나름대로 꾸며줘야 하는 압박이 컷는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하나 만지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알수가 없어 버벅대기 일쑤였고, 스킨하다 고치는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어 늘 '과외교습'을 받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누구는 그딴게 모가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나름대로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지금 역시 마찬가지지만..)

 

#3. 입성後

 

까딱하단 '중독'버전으로 갈뻔 했다는것..지금도 그 수준이 아니란 법은 없지만, 몇번의 오프를 하고 사람들을 알아갈 즈음 블질을 하지 않으면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로 집중이 되지 않기도 했다.  1년여 지난 요새는 다들 시큰둥 해졌는지 글도 뜸하고 활발한 교신과 교감도 드물긴 하지만....

입성후 내가 주최한 첫 오프인 '10월의 마지막 날'은 참 아늑하고 흥미로웠다.  특히 '이러나'양의 매력을 발견하곤 쉬 잊혀지지 않는 감동의 오프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교환의 미덕! 이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진보 블로그만의 장점이다.  많은 사회이슈를 한눈에 접할 수 있는 매체(참세상등..)가 있는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을 한단계 걸러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것은 개개인의 포스팅을 통한 나름의 분석력이 아닌가 싶다.  이 얼마나 훌륭한 기능을 가진 블로그란 말인가..개인적이면서 객관성을 띠기도 하고 어떤 파트의 문제를 다른 여럿과 함께 공유 할 있다는것..이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닷!!

 

#4. 그 밖의 에피소드..

 

포스팅을 하면서 미갱이 말했듯이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고민'해야 하는 점, 충분히 공감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왠만하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게 아니다. 라고 강력하게 '최면'을 걸기도 한다.  그러면 훨씬 글쓰기가 편해지고 가려서 해야 할 부분도 마구마구 쏟아져 나온다.(이럴때는 약간 절제가 필요하지만..) 어차피 블질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남의 눈치 까지 봐가면서 쓸 필요가 있을까??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얘기라면 살짝 '혼자보기'를 누르면 된다.

그래서 나는 포스팅을 하면서 한번도 존칭을 쓴적이 없다. 이 글은 내가 보기 편하기 위해 그리고 나를 돌아보기 위해 쓰는 일종의 '일기' 이기 때문에....

 

돌아보니 블질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크고 작은 몇번의 오프를 하면서 느낀게 몇가지 있다.  웹에서 만난 사람은 왠만하면 웹으로 끝나자는것..왜냐하면 그것이 상대방의 자존과 품위를 최대한 지켜주는 일임을 새록새록 느껴가기 때문이다.  글로써 그/녀를 만날때와 오프에서 만날때의 간극이 매우 크게 느껴지는것은 아마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모순과 비슷한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진보네가 붙여준 '오프이 여왕'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울때가 있다.  그건 바로 나의 실제 모습에서 오는 적잖은 실망감과 더불어 말만 과다하게 늘어 놓는 허풍쟁이의 상을 심어 주는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서 말이다.  궂이 오프를 하지 않아도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교감은 무궁무진하다는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쨌든 이제는 자중하고픈 마음 뿐이다.  온에서 더 활발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동안 애써준 개발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번주에 있는 블로그 돌잔치에서 더 많은 고민을 풀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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