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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예술은 모방을 기초로 한다.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창의력 또한 자연의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
상상력의 발현.
회화작품을 읽어내는건 보는 자의 몫이다.
자신의 세계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어내는 것,
비평가의 몫은 오직 주관적 해독의 텍스트로 승화해내는 것이다.
영화<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물론 기초적 사실안에서 상상력의 살을 붙였다는 것이 더 맞겠지만 사실이기보다는 허구의 것을 사실과 교묘하게 접목시킨 내용의 결과물이다.
두가지를 느낀다.
하나는 “예술가에게 사회성은 없다”이고 두번째 17세기 여성의 삶, 그건 곧 착취의 삶이었다는 것이었다.
미술가에게는 후원자가 있었다.
후원자에게는 예술을 보는 안목과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게 하는 힘을 지녔다.
후원자는 예술가의 생사여탈까지 잡고 있는 권력자이자, 아름다운 예술을 비평 할줄 아는 평론가이기도 한 것이다.
예술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건 허락되기 어렵다.
우리가 아는 많은 근대 예술품들은 그 시대 후원자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장식을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현실과 예술의 경계는 예단하기 어려운 영역임에는 틀림없다.
현대에 와서 예술품은 투자가치의 도구로 전락한 듯하다.
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매겨지면서 등급화되었다,
예술의 상업화가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호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생존을 위해서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의 상업화란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베르메르.
예술가는 순수하게 예술에만 전념해야 하겠지만 그의 삶은 비겁하기만 하다.
그림을 그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감 강한 가장이기도 하겠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할수 있는건 침묵하는 것 뿐인 비겁한 남자이기도 하다.
<진주귀고리 소녀>를 쓴 작가가 그려낸 예술가의 모습일 뿐인가?
흐흠...글쎄....
17세기 여성의 삶
10대후반의 곱디고운 그녀의 살결, 하지만 찌든 그릇을 세척하고, 질펀한 바닥을 긁어내고, 추운겨울 딱딱하게 얼어버린 빨래를 걷어내느라 손가락사이 때는 빠질 겨를이 없다.
육체의 젊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빛나기만 하다.
그녀의 젊음을 탐하기 위해 남자들은 젊거나 늙었거나 하나같이 정신을 못 차린다.
잠시나마의 편안한 육신을 위해서라면 후원자의 맘을 훔칠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나마…젊은 시절 잠시 말이다.
돈많은 권력자는 새로운 젊은 육체를 탐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1회용품으로서의 기능을 다하면 버림받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예술을 보는 눈은 지녔지만 그 기술을 개발가능하지는 않다.
베르메르는 보조적 차원에서 그리트를 이용하지만 결코 자신의 예술을 전수하거나 그녀의 능력을 이끌어주려 하지는 않는다.
예술은 남자만의 것이므로…?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므로 또 다른 경쟁자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없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만 탐닉하기를 바랬겠지….
“예술과 사랑의 비밀이 누설된다”는 둥, “가을을 여는 매혹적인 로맨스” 라는 둥의 영화카피가 거슬린다.
“정신적 불륜”이라고 한마디로 규정한 지희의 말에 100%동감한다.
좀더 엄밀하게 정리하면 “비겁한 예술가의 정신적 불륜”이겠지…ㅋㅋ
베르메르의 집을 나와 조용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나머지 삶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난 절대로 그 영화가 매혹적인 로맨스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한때 아름다웠지만 자신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살이 피둥피둥 찌고 삶에 무게가 느껴지는 표정의 고깃집마누라가 되어 한평생 그냥그냥 살아갈 뿐이겠지.
내가 너무 현실적 상상력에 빠져있는 걸까?
또 다른 재미
회화전공자로서 또 다른 재미는 17세기 회화의 도구인 물감을 만드는 장면들, 캔버스의 모양 등이었다.
최근엔 빨리 마르면서 물에 섞어쓰나 효과는 유화의 질감을 내는 아크릴로 회화물감이 대체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인공 유화물감이 아닌 자연물에서 추출해낸 물감으로 회화작업을 하는 것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자연은 모든 칼라의 혼합체이다.
베르메르가 창밖을 가르키며 그리트에게 묻는다.
"무슨 색깔이지?"
"회색? 노랑, 파랑....구름이 저런색도 지니고 있네요.."
사물은 고유색을 지니고 있지만 빛에 의해 다양한 색깔을 띄게 된다.
인상파화가들이 빛이 많은 야외에서 그림그리기를 즐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수세기에 걸쳐 많은 화가들이 시행착오를 되풀이한 끝에 15세기에 이르러 반 에이크형제를 비롯한 플랑드르의 화가들에 의해 유화 기법이 체계화되었다.
반 에이크의 유화기법은 다음과 같다.
치밀한 나무결의 떡갈나무 판자를 기초재료로 하여 천연탄산칼슘을 동물성 아교(토끼 등의 皮膠)로 녹인 도료로 바탕칠을 한다. 반들반들하게 연마(硏磨)한 바탕 위에 수성 그림물감(달걀템페라)을 이용하여 가는 붓으로 정교하게 구도를 그린다. 건성유의 도막(塗膜)을 전면에 입히고 바탕을 비흡수성으로 만든다. 흰색을 섞은 고유색으로 각 색면을 칠한다. 흰색의 양을 줄이고 유색안료를 약간 많게 해서 제 2 층을 칠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투명한 그림물감의 짙음과 옅음을 바꾸면서 살을 붙여 나간다. 제작은 밝은 부분에서 어두운 부분으로 진행하고 그림물감은 불투명한 효과를 가지는 그림물감층 위에 차례로 투명도를 높인 그림물감층을 덧칠해간다. 그림물감층 전체의 두께는 밝은 부분일수록 얇고 그림자 부분은 두꺼워진다. 인물의 살결 부분에서는 엷은 분홍색이나 갈색의 투명도가 높은 그림물감층을 통해 희게 빛나는 바탕이 비쳐 보이는 효과를 이용하기 때문에 흰색 그림물감은 하이라이트로 약간만 사용한다.
영화속에서도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초벌단계의 인물유화작업과정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7세기에는 플랑드르의 P.P. 루벤스, 에스파냐의 D.R. 벨라스케스, 네덜란드의 H.R. 렘브란트 등 3사람에 의해 각각 독특한 기법이 완성되었다. 루벤스는 바탕을 희게 칠하고 수지를 섞은 아마인유를 사용한 엷은 칠 그림물감이라는 반 에이크 이후의 전통적인 플랑드르기법에 티치아노풍의 임파스토기법을 결합시켰다. 또한 항상 휘발성 정유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벨라스케스는 가볍고 재빠른 붓의 터치에 의한 임파스토 표현효과를 추구해, 18세기 F.J. 고야를 비롯하여 19세기 E. 마네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른바 보디컬러, 즉 체질(體質)을 많이 포함한 부피가 있는 그림물감을 사용하여 어두운 배경 속에서 빛을 집중해 인물이 부각되는 독특한 명암표현에 역점을 두었다. 17세기에 엷은 칠이나 두꺼운 임파스토, 투명한 글레이즈나 보디컬러 등, 유화기법상의 가능성은 모두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탕재료로서의 판자는 최상급 재료로 만들어야 했으므로 값이 비싸고, 큰 화면에 사용할 만한 판자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습도로 인해 변형될 우려가 많았다. 이에 비해 마포는 천을 잇대고 기워 크게 할 수도 있고 값이 싸며 운반하기에도 편리했다. 티치아노는 나무틀에 펼친 마포를 바탕재료로 이용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현대의 캔버스는 틀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천을 덧씌워 못 같은것으로 고정하여 습도로 인한 천의 변형을 최소하는 방법을 개발해낸다. 천중에는 습도로 인한 변형이 가장 적은 것이 마포로 대학시절 비싼 천은 돈이 없어 사용하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또 하나의 예술 장르
17세기 베르메르와 동시대 화가인 렘브란트의 작품이 연상되는 영화의 한 장면.
피터 웨버 감독의 전작(프리다)에서도 그렇듯이 화면 하나하나가 한편의 회화를 보는 듯한
미장센과 촬영기법은 감독의 탁월한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 원작 <진주 귀고리 소녀>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
명쾌한 문체와 절제의 정서로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섹스신은 없어야 해요.” 할리우드의 악명 높은 취향에 지레 겁먹고 있던 트레이시 슈발리에(1962∼) 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영화 판권 계약 테이블에서 대뜸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원작에 담긴 절제의 정서를 이해한다고 말한 영국의 제작사 아처 스트리트 필름과 1999년 계약을 맺었다. 후일담에 의하면 슈발리에는 그리트 역에는 스칼렛 요한슨보다 훨씬 작고 마르고 눈에 띄지 않는 소녀를, 베르메르 역에는 앨런 릭맨을 상상했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자란 슈발리에는 학부를 마친 뒤 영국으로 이주했고, 1993년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영문학 창작 석사 과정을 마치고 처녀작 <버진 블루>를 1997년 출간했다. 슈발리에는 1998년 초, 19살 시절부터 방에 붙여놓았던 베르메르의 그림 안에 잠재된 무한한 이야기를 불현듯 발견했다. “베르메르가 내가 할 일을 다 해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전세계적으로 200만부가 팔렸다. 10대 여주인공, 어두운 사랑, 가족에 대한 책임과 예술의 아우라 등이 흥미진진하게 어우러진 이 소설에서 평자들은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정확하고 명쾌한 문체와 통찰력을 높이 샀다. 슈발리에는 이후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 직후를 살아간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추락하는 천사>, 중세 태피스트리를 둘러싼 예술가와 여인들의 다중시점 드라마 <여인과 일각수>를 내놓았다. 현재 슈발리에는 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한 작품을 2007년 출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 보듯 트레이시 슈발리에 소설은 영화로 변환하기 좋다. 풍부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고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은 선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의 역사소설은 프로이트 이전 시대를 산 극중 인물의 배경을 고려해, 심리분석을 늘어놓는 대신 주변 환경에 대한 인물의 반응과 행동을 건조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영화에 어울린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베르메르가 모범적인 가장이었다고 확신을 갖고 추정하는 애호가와 연구자들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타임스>에 2003년 10월 사이먼 젠킨스가 기고한 글 <베르메르, 당신은 모함당했다>가 대표적이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2004년 3월 베르메르 작품 36점을 모두 직접 감상해 평생의 숙원을 이뤘다.
하나. 쪽팔리면 그때부터 학교생활 쫑이야.
시커먼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로 교장의 차가 지나간다. 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경례!”를 외치며 젊은 시절을 보내는 1978년도 강남의 말죽거리 고등학생들…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건 또 다른 폭력뿐.
폭력을 쓰지 않으면 쪽 팔린다. 쪽팔리면 그때부터 학창시절은 쫑난다.
말 않듣는 학생을 향해 선생님은 많은 학생들 앞에서 머리를 치며 “니들 같은 놈 때문에 민주주의가 안되는거야!”라고 외친다.
흐흠…폭력쓰는 선생님 입에서 쏟아지는 대사치고는 너무나 아이러니 하다.
교장은 선생님의 뒤통수를 학생 뒤통수 날리듯 가볍게 내리친다.
폭력은 교육되어지는 거라는 감독의 암시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권력은 곧 폭력을 통해 쟁취된다는 암시다.
폭력으로 교육되어진 남성들이 만들어가는 이 나라.
폭력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다.
남자들만의 학교. 그들에게 질서는 폭력으로 시작하여 폭력으로 끝난다.
잼나는 건 회사에서 남자사원들에게서 느낀건데 공적인건 물론이고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서열을 은연중에 정한다는 것이었다. 딱히 물리적 폭력을 쓴건 아니지만 그건 다분히 인간적 관계에서조차 폭력적 방법이 그들만의 소통방식인 것같아 씁쓸했다.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여성들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다.
두울. 남성다움의 상징. 브루스 리.
쌍절권을 휘드르며 얼굴근육은 약간 오버하며 “아뵤~~”를 외치는 그는 지금보면 권상우에 비해 가슴근육도 볼품없는 약간 촌스런 남성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시절 남성들을 매료시키는 캐릭터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걸까?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1대 다수와의 싸움에도 굴하지 않으며 멋진 발차기와 쌍절권을 휘두르며 나쁜놈들을 향해 강한 기압소리를 내지르는 그는 분명 70~80년대 강한 남성적 아이콘의 대표주자로 손색없다.
남성적 강함을 드러내면서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를 향한 강한 의지, 그러면서도 여성에게는 한없이 순수한 순진남.
이런 모습들은 지적이며 부드러움의 현대 남성상과는 차별점을 가지는 분명 다른 의미의 남성상이다.
공감하며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고, 기타한곡 정도는 튕길 줄 알며, 비오는 날 자신은 비를 맞더래도 여친에게 우산을 양보할 줄 알며, 불의를 보면 폭력으로 응대하지 않고 현명하게 피해갈 줄 아는 남자…그런 남자가 난 더 좋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기는 해도 관계맺기가 어렵다면 곤란하지 않을는지?
난 오래오래 남자랑 대화하고 싶다.
>>사족
이소령의 쌍절권으로 불의를? 평정하는 권상우의 모습이 너무너무 시원해보였던건 나도 모르게 폭력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권상우가 쌍절권을 휘두르며 5~8명을 혼자서 다 무찌르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던 속이 뻥 뚤렸다. 햐~~~ 시원했다.
남자들이 물리적 힘을 키우려는 이유가 이건가 보다.
문대성이 발차기 하나로 금메달을 손에 쥐고있을 때 그가 그렇게 남자답고 멋있어보였다면…흐흐흐흐….
셋. 70~80년대 문화
어코스틱 기타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하나정도는 튕길 수 있어야 유행에 뒤쳐지지 않을 것 같은 시절, 원나잇 티켓으로 하늘을 찌르는 디스코를 추고, 버스안내양 언니가 어렵게 어렵게 손님을 다태운뒤 “오라이~”를 위치던 그 시절…
그 시절은 그래도 낭만이 있어보인다.
왜일까?
지나간 과거는 모두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인가?
넷. 잉여인간
“대학을 가지 않으면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이 뭔지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거야..”
대학은 나왔으니 잉여인간은 면제된 듯하지만 난 여전히 잉여인간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평균인의 반대말은 곧 잉여인간인가보다.
다섯. 교육
“인간이 되야지.
서울대 연고대 나오면 뭐하나 고등학교 졸업해도 잘된사람 많다. 인간이 되야지…”
모 이런 말 하는 영화속 선생님의 대사를 신뢰할 수 없다. 그건 뉘앙스가 빈정댐때문이다.
자고로 공부잘해야 대접받고 상위 몇등안에 들어야 사람처럼 응대해주는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신다.
입시경쟁만으로도 모잘라 학교마다 서열을 매기자는 움직임이 보수적 교육계와 언론에서 일고 있다는데..
한국사회에서 공교육은 제역할을 하고 있는건가?
권상우가 마지막 학교에서 던진 말
"대학민국 학교! 다 *까라 그래!"
흐흠....
>>사족
권상우 넘 멋찌다!!
그에게는 육체에서 보여지는 강한 남성상과 쿨한 유머를 내뱉는 여유로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는 미소년의 남성상. 두가지 매력을 동시에 풍긴다.
물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는 남성적 육체와는 다른, 아담한 근육의 아름다운 선이 느껴지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같은 육체를 지녔다.
이미지 연구가 필요한 캐릭터다...ㅎㅎ
최소의 재료로 만든 기막힌 비빔밥, <화씨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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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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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을 하려고 했는데, 할 얘기를 다 해놓으셔서 덧글로 땜빵... 간만에 영화관람이라는 호사를 했는데, 그 영화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였습져. 잘 만들어진 화집을 넘겨보고 온 느낌. 원래 예술에는 문외한인데... 소품을 준비한 사람이 누군지 정말 궁금해지는 영화였어요. 제가 본 영화중 가장 완벽한 소품들. 불필요한 소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스크린의 화면 자체가 생생한 현실로 보여지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아, 저는 내용보다는 항상 소품이나 옥에 티 이런 거 찾는 것이 취미라서리... ㅋㅋ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