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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정상회담, 언론이 놓친 이야기

시진핑 주석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 김정은 위원장 “첫 해외 방문지 중국 마땅”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조선)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의 이목이 온통 북중 두 정상에게 쏠렸다.

관례적으로 비공식 방문에선 볼 수 없던 중국인민해방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와 군악대의 사열을 실내인 인민대회당에서 거행하는가 하면, 정상회담에 이은 인민대회당에서의 환영연회에는 시진핑 주석 내외는 물론 중국 리커창 국무원 총리를 비롯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고위급관료들이 총출동했다. 중국 외교 역사상 외국 국가원수를 위한 환영연회를 이처럼 준비한 것은 초특급 예우라 할만하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 일행이 탄 기차가 북중 국경도시 단둥에 도착하자 역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이 마중 나와 극진히 예우했다. 쑹타오 부장은 지난해 11월 시진핑 주석의 특사로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 결과 통보차 북을 방문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회담록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회장에서 두 정상이 한 연설을 보면 대략적인 기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을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라고 부르며, 특별한 시기에 이루어진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방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특별한 시기’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대한 의의’에 대해 북한(조선)과 중국 쌍방이 “두 나라 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는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쌍방 사이의 의사소통을 심화시키고 협조를 강화하며 협력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나의 첫 외국 방문의 발걸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라고 화답했다.

북중관계에 대해 시 주석은 “전통적인 중조 친선은 두 당, 두 나라 노세대 영도자들께서 친히 마련하고 품을 들여 키우신 것”이라고 언급했고, 김 위원장은 “조중 두 나라 선대 영도자들께서 물려주신 고귀한 유산이며 공동의 재부인 조중 친선의 귀중함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었다고 답했다.

회담 성과와 관련해 시 주석은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세우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김 위원장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잇닿아 있는 형제적 이웃인 두 나라에 있어서 지역의 평화적 환경과 안정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것을 쟁취하고 수호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가를 똑똑히 새겼다”고 언급했다.

시 주석은 다소 긴 연설에서 김일성 주석이 40여 차례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를 만났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내가 기억하기에는 1983년 6월 김정일 총비서 동지께서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나의 아버지(시중쉰)가 김정일 총비서 동지를 역전에서 맞이했고 모진 더위를 무릅쓰고 고궁참관에 동행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끝으로 시 주석은 “친선적인 인방이며 친근한 동지로서 우리는 조선 동지들이 정치적 안정을 수호하고 경제발전을 추동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굳게 지지하며 조선의 사회주의건설 위업에서 새롭고 보다 큰 성과를 끊임없이 거둘 것을 축원하며 이를 확신”한다며, “나는 전통적인 중조 친선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대를 이어 계승하기 위해, 중조 두 나라의 융성번영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 동지와 이설주 여사의 건강을 축원해, 이 자리에 참석한 중조 쌍방 전체 동지들의 건강을 위해” 잔을 들자고 건배를 제의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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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소장의 모든 기사가 연재기사에

[알림] 한호석 소장의 모든 기사가 연재기사에
 
 
 
편집국 
기사입력: 2018/03/30 [03: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유태영 박사와 시사 대담을 나누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노길남 기자

 

한호석 소장이 개벽예감 연재를 시작한 것은 2012년 2월부터입니다. 하지만 자주시보 이전 기사들은 자주민보 폐간 문제로 보기 어려웠는데 최근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모든 기사를 자주시보에서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자주민보 관련 재판에서 예정웅 정세분석가의 글은 이적표현물로 판결을 받았지만, 한호석 소장의 글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다시 찾아 올렸습니다.

 

한호석 소장의 모든 기사는 자주시보 첫화면 맨 오른쪽 칸 중간 단에 있는 '연재기사' 꼭지에 있습니다. 기사제목을 딸각하면 기사만 뜨고 '한호석의 개벽예감'이라는 연재제목을 클릭하면 모든 기사 목록이 뜹니다. 

 

이번에 다시 모아 올리면서 살펴보니 한호석 소장의 분석이 매우 정확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으며 '북의 인공지능 전투함', '세계에서 가자 조용한 잠수함이 북에 있다' 등등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한호석 소장이 미리 분석 소개했던 북의 이런 무기들이 후에 적지 않게 현실로 증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북에서 공개하지 않은 것도 앞으로 공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결국 북의 군사력은 미국, 러시아도 압도할 세계 최강이라는 것입니다. 

 

외교는 결국 나라의 힘이 좌우합니다. 그 힘의 핵심은 군사력입니다. 한호석 소장이 분석한 북의 군사력을 살펴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천동지할 한반도 대격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분석 전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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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주 집 팔라더니…청 참모·장차관 24명 여전히 다주택자

비거주 집 팔라더니…청 참모·장차관 24명 여전히 다주택자

등록 :2018-03-29 20:37수정 :2018-03-29 22:48

 

 

다주택 꼬리표 못 뗀 공직자들
청와대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등 
핵심참모 52명 중 14명 다주택 
김상곤 부총리 등 장관급 10명

문 대통령은 홍은동 자택 처분 
김현미 국토장관도 올해 매각 

부동산 정책 이끄는 국토부 
1급 이상 8명 중 4명 다주택 
경제 컨트롤타워 기재부도 3명
※ 누르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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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기준으로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여전히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과열을 억제하겠다며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고강도 규제를 쏟아냈지만, 고위 공직자들도 아직 다주택자 꼬리표를 못 떼고 있는 셈이다.

 

29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 공직자(1급 이상) 정기 재산변동 사항'을 보면, 정부 부처 장차관급과 청와대 핵심 참모진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들이 보유한 주택은 서울 강남·송파구,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들에 쏠려 있다.

 

청와대 소속 1급 이상 공직자 52명 가운데 다주택자는 14명이나 된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아파트 두채(7억700만원·5억7천만원)를 갖고 있고, 박종규 재정기획관은 자신과 배우자 명의로 서울 강동구 고덕동(8억2400만원)과 서초구 우면동(7억3600만원)에 각각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다주택자 비중이 너무 높다는 비판이 일자, 청와대는 이날 ‘실거주 목적’ 또는 ‘매각 추진중’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김상곤 교육부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등 장관급 인사 10명도 다주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 가운데 절반(5명)만 부동산 투기 우려가 있는 조정대상지역(서울 25개 자치구·세종·성남 등 40곳)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강경화 장관과 박은정 위원장은 주택을 3채나 보유한 3주택자였다. 박 위원장 쪽은 지난 2월 종로구 오피스텔을 팔아 현재는 2주택자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택 처분 문제를 놓고 야당의 비판을 받았던 김상곤 교육부총리는 본인 명의로 강남구 대치동에 래미안팰리스 아파트(11억4400만원)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양아파트(5억3200만원)를 보유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매각 의사를 밝히라고 요구하자, “강남 아파트를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았고,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주택정책을 이끄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경기 연천군 단독주택을 동생에게 처분해 간신히 다주택자 꼬리표를 뗐지만,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작성된 이번 재산변동 내역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이번 대책의 핵심은 집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팔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양도소득세가 중과되는)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니면 좀 파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장관의 강력한 권유에도 국토부는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중 다주택자 비중이 높은 부처로 꼽힌다. 김 장관을 제외하고도 1급 이상 간부 8명 중 절반(4명)이 다주택자였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 고위 공직자 9명 중에서도 다주택자가 3명이나 된다. 특히 구윤철 기재부 예산실장은 서울 강남과 분당, 세종, 마포 등에 4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4주택자’였다. 물론 주택을 처분해 다주택자 꼬리표를 뗀 경우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빌라(2억8500만원)를 처분해 경남 양산 자택 하나만을 보유한 1주택자가 됐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배우자 명의 부산 해운대 아파트(2억1900만원)를 처분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다른 공직자들은 지방이나 비강남 주택을 먼저 처분하고, 강남4구의 고가 주택을 보유해 소위 말하는 ‘똘똘한 한 채’ 흐름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고 있다. 조국 수석은 부산 아파트를 판 대신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7억7400만원)를 보유하고 있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동작구 상도동 래미안아파트(4억8200만원)를 처분하고 강남구 자곡동 래미안강남힐즈 아파트(8억300만원)를 남겨뒀다. 손병석 국토부 차관은 세종시와 서초구 방배동의 주택을 처분한 자금으로 강남구 대치동 쌍용2차아파트(16억5000만원)를 부부 공동 명의로 새로 매입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용기 의원(자유한국당)이 1급 이상 공직자 655명의 재산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2채 이상 다주택자는 275명(약 42%)이었다. 또 강남4구에 보유한 고위 공직자의 주택은 289채에 달했고, 3주택 이상 보유자도 80명이었다.

 

허승 노지원 김경욱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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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다시 경찰서 앞에 선 YTN 기자들

류제웅 부인 김재련, 15기 기자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당히 조사받을 것"
송창한 기자 | 승인 2018.03.29 13:21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류제웅 전 YTN기획조정실장의 부당한 취재압박을 비판한 YTN 15기 기자들이 류 전 실장의 부인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YTN 15기 기자들이 "류제웅과 최남수, 고소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게시글을 작성하였다"며 이들을 고소했다. 15기 기자들은 "성명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며 경찰서로 들어갔고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이하 YTN지부) 조합원들은 "9년 전 상황으로 돌아갔다"며 울분을 토했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는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YTN 15기 기자들이 류제웅 전 YTN기조실장의 부인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는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YTN 15기 기자들이 류제웅 전 YTN기조실장의 부인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출석했기 때문이다.(사진=미디어스)

류 전 실장이 이른바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제보를 받고 이를 삼성측에 알린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후,  YTN 15기 기자들은 지난 9일 사내게시판에 성명을 내어 류 전 실장이 사회부장 재직시절 위안부 문제와 세월호 사건에 대해 부당한 취재 압박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YTN 15기(김경수·우철희·이형원·임성호·최아영) 기자들은 성명에 "공교롭게도 당시 류제웅 부장의 아내인 김재련 변호사가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관련 업무를 다루는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이었다"며 "이후에는 졸속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이사까지 지냈는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 시민단체는 김 변호사를 '권력 지향적'인물로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해당 구절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5기 기자들을 고소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고소장에서 "피고소인들은 류제웅의 직장 후배들로 류제웅과 최남수, 고소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이 사건 게시글을 작성하였다"면서 "'최남수의 부적격함이 자명', '류제웅 실장이 상징하는 보도 적폐 등의 표현을 사용해 최남수와 류제웅에 대하여는 노골적인 비방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인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장에서 류 전 실장, 최 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15기 기자들에게 함께 덧씌웠다.

29일 오전 서울마포경찰서 앞에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YTN15기 기자들이 서 있다. 왼쪽부터 임성호 기자, 이형원 기자, 김경수 기자, 우철희 기자, 최아영 기자. (사진=미디어스)

15기 기자들은 경찰서 앞에서 "성명은 한 치의 거짓도 없다"며 당당히 조사를 받고 나오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기자(YTN 15기)는 "우리 5명은 잘못된, 부당한 지시에 부끄러워했고 괴로워했다. 그걸 글로 올렸을 뿐"이라며 "중요한 내용을 보지 못하고 성명에 들어간 표현을 문제 삼아 자신의 남편 회사 후배 5명을 고소한 김 변호사의 상황인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비방 목적이 아니었고,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조사받겠다"며 "이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에 나온 상황이 YTN의 현 주소"라고 총평했다.  

우철희 기자는 "정작 반성해야할 사람들은 부인 뒤에 숨고, 휴가를 갔는데 우리가 왜 (경찰서에)와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세월호'라는 세 글자가 나오면 스스로 부끄럽고 유족들께 죄송한 마음을 느낀다. 더 이상 그런 보도를 하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우 기자는 어제(28일) YTN주주총회 현장에서 최남수 사장에게 15기 기자들의 피고사실을 알리고, 고소장에 최 사장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최 사장에게 물었다. 최 사장은 "사내게시판을 보고 사실을 알았다", "고소장을 보지 못했다. 상황을 보고 파악해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우 기자는 이날 현장에서 "지금 이 시간까지 (최 사장에게)온 연락이 없다"며 "(김 변호사의 고소는)최 사장이 뒤에 숨어 본인을 비방해 고소하고 싶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형원 기자는 "어제 주총장에서 '순진한 후배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이 또 나왔다"며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들을 이용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월호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를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기자는 "최남수 사장 반대 투쟁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순진한 후배들 그만 좀 이용하라"며 "우리가 걱정된다며 최 사장 체제의 형사고소 과정을 왜 그냥 보고만 있나. 최남수 옆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해주면 그만"이라고 YTN 간부들을 질타했다.

임성호 기자는 류 전 실장의 부당한 취재지시, '삼성제보토스' 등이 성명을 작성하게된 직접적인 계기였다며 "이런 사람들과 이들을 비호하는 최남수 사장이 부적격 하다는 것을 성명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그것 외에는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해 썼던 글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아영 기자는 "가장 무서운 건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한 때 우리가 따랐던 선배들이 양심 고백을 한 후배들에게 법적 칼날을 들이댔다는 무자비함, 그리고 (최 사장)본인 때문에 직원들이 고소를 당했는데 그 사실을 사내게시판을 통해 확인했다는 무책임함과 무관심이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가 쓴 성명은 양심고백이었고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여기 계실 분들은 그 분들이 돼야 한다"고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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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 보도, 조선일보는 특별했다

[비평] 모두 ‘박근혜-최순실 만남’에 주목할 때, 괴담 주목한 조선…자유한국당 논평 주장과 비슷

정상근 기자 dal@mediatoday.co.kr  2018년 03월 29일 목요일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침실에서 관련 보고를 받았다.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10시20분의 상황이다. 그리고 이후 2시15분까지 행적은 모호하다. 최순실씨가 2시15분 경 검색 절차도 없이 청와대 관저로 들어왔고 직후 박근혜·최순실씨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과의 회의를 통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화장과 머리손질을 한 이후 중대본을 방문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발견이 힘드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다시 관저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28일 검찰이 발표한 ‘세월호 참사 보고 시간 조작 사건’ 등의 수사 결과를 요약하면 위와 같다. 참사 이후 국회 질의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 등에서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내놨던 해명과는 차이가 크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은 서면보고만 11차례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오후와 저녁, 총 2회 보고서를 출력해 박근혜씨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2016년 11월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간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 - 이것이 팩트입니다’ 등을 통해 주장했던, 10시 첫 보고, 10시15분 첫 지시 주장도 거짓이었다. “참사 당일 외부인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은 없다”던 정연국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말도 거짓이었다. 최순실씨가 청와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3월29일자. 한겨레 2면.
3월29일자. 한겨레 2면.
 

검찰의 발표대로라면, 세월호에 탑승했던 수백명의 승객들은 죽어가고 있었고, 당시 대통령은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청와대는 우왕좌왕하다 골든 타임을 놓쳤다. 하지만 청와대와 그 관계자들은 이를 덮고자 문서를 불법 조작하고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위증을 했다.

 

29일자 언론은 대체로 이 점에 초점을 맞췄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었고 최순실은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었다”고 비판했고 한겨레 역시 사설에서 “황당하고 참담하다”, “말문이 막힌다”고 개탄했다. 한국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국민일보 모두 박근혜씨가 최순실씨와 참사 당일 관저에서 회의를 했다는 점을 제목으로 뽑았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만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지면에 2개 전했는데 10면 윗 보도에는 “문 정부 검찰 “성형 시술·굿판…세월호 7시간 괴담 실체 없다””는 제목을 뽑았다. 기사의 시작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고 나온다. 

 

3월29일자. 조선일보 10면.
3월29일자. 조선일보 10면.
 

반면 타 매채의 검찰 발표와 관련한 지면의 첫 기사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경향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 오후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청와대 관저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관저 침실에서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 후에야 첫 상황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최순실씨와 회의를 했고, 최씨의 제안에 따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인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최순실씨가 당시 청와대 관저에 있었던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중앙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씨와 의논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했다고 검찰이 28일 밝혔다” 

한겨레 “‘박근혜 청와대’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의 부실 대처를 은폐하기 위해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시각을 20분 앞당긴 오전 10시로 조작한 것으로 28일 드러났다” 

한국일보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싼 수수께끼 일부가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3월29일자 경향신문 1면.
3월29일자 경향신문 1면.
 

반면 조선일보는 첫 기사에서 검찰 수사 결과에 위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대신 “‘세월호 7시간’ 의혹은 2016년 말에서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중요한 요소였다”며 “(검찰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을 때를 제외하고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시 박근혜씨를 둘러싼 ‘특정 인물과의 밀회’ 논란, ‘성형 시술’ 논란, ‘굿판’ 논란은 ‘괴담’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하단에 “박 전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과 관저서 대책회의” 제목의 별도 보도를 내긴 했지만, 이번 검찰 조사 결과 발표에서 ‘괴담’에 주목도를 더 높여 편집한 것은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또한 조선일보가 앞세운 해당 보도는 28일 이 사안과 관련해 발표된 자유한국당 논평과도 맞닿아 있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은 “검찰의 세월호 7시간 의혹 수사결과 발표에 경악한다”며 “7시간을 두고 정상적인 근무 상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 정윤회 씨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라를 뒤흔들었다”고 주장했다. 

홍 대변인은 이어 “세월호 7시간을 탓하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태워 올린 그 많은 세력과 사람들은 무엇이냐”라며 “박 전 대통령은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참사 발생을 알게 됐고, 최순실 씨가 청와대로 오기 전까지 국가안보실장,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 지시를 한 번씩 한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의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순실 씨를 청와대에서 만난 것에 대해 ‘사전에 예약된 만남’일 뿐”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 2014년 7월18일 최보식 칼럼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에서 “세간에는 ‘대통령이 그날 모처에서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며 “대통령을 둘러싼 루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가 정보지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에 등장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걸로 여겼다. (중략)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고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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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진핑 북중혈맹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3/29 14:20
  • 수정일
    2018/03/29 14: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은-시진핑 북중혈맹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3/29 [06: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부부의 양위안자이(양원재) 오찬 기념 사진     ©조선중앙통신

 

때로는 사진 한 장, 그림 한 편이 백마디 천마디로 말을 대신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표현한다. 

지난 26일, 27일 전격 진행된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그렇게 강조했던 북중혈맹관계 강화가 앞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란 느낌을 준 사진은 국빈관 양위안자이(養源齋)오찬장에서 두 정상 부부가 만나고 헤어질 때 나눈 인사 장면이었다.

 

▲ 북중정상 부부가 양위안자이(양원재)에서 자를 마시는 모습   
▲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부부의 화기애애한 국빈관 양원재 오찬    

 

이미 북중정상회담 후 성대한 만찬연회를 가졌음에도 가장 귀한 손님에게만 문을 여는 양위안자이(양원재)에서 북중 정상 부부는 차를 마시고 오찬을 나누었는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실무적이고 의례적 측면이 강한 만찬과 달리, 격이 없이 정을 나누기 위해 시진핑 주석이 특별히 마련한 오찬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이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케 하는 행보였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양원재 오찬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다. 하지만 양위안자이에서 만나고 헤어질 때 나눈 두 정상 부부의 인사는 더없이 친근하고 따뜻했다. 

 

북중관계가 새로운 높은 단계로 확고하게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 양원재 오찬을 위한 북중 정상의 만남 , 시진핑 주석의 미소가 더 없이 따뜻하다.

 

 

▲ 양위안자이(양원재) 오찬을 마치고 시진핑 주석과 헤어짐이 아쉬워, 찬 안에서도 손을 흔드는 다심한 김정은 위원장 부부 , 리설주 여사의 단아한 미소가 특히 인상적이다. 중국 누리꾼(네티즌)들도 단번에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며, 한류스타 송혜교처럼 곱다는 반응까지 내놓았다. 리설주 여사는 남측 대표단을 만날 때에도 더없이 따뜻하고 환한 미소로 환영해준 바 있다.  
▲ 차에 탄 김정은 위원장 부부를 향해 친근한 정을 다해 손을 흔드는 시진핑 주석 부부, 신진핑 주석의 따뜻한 미소에 북중관계의 밝은 앞날이 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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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초 '진보정당' 교섭단체 탄생, 그 의미는?

국회, 4교섭단체 체제로 재정비…'평화와 정의 의원모임' 탄생
2018.03.29 12:08:17
 

 

 

 

국회가 다시 '4교섭단체 체제'로의 재편을 앞두게 됐다. 원내 4당인 민주평화당(14석)과 5당 정의당(6석)이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잠정 합의하면서다. 

평화당 이용주, 정의당 윤소하 원내수석부대표는 29일 오전 기자 간담회를 열어 양당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총 6개항인 양당 합의문은, 공동 교섭단체의 명칭은 의석수를 기준으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으로 하며 대표는 양당 원내대표 2인으로 하되 국회 등록 대표는 번갈아 1명씩 하기로 했다. 초대 대표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맡기로 했다. 

이들은 공동 교섭단체 구성은 국회 운영과 관련해 공동 보조를 취하는 것일 뿐, 정책·선거 등에서는 "각 당의 정체성에 따라 고유의 독자적인 정당 활동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동 교섭단체 운영 기간은 등록시부터 20대 국회 종료시까지이며, 만약 그 전에 공동 교섭단체에서 탈퇴를 원하는 경우 상대 측에 1개월 전까지 통보하기로 했다. 

다만 정책·입법과 관련, 최소한의 공동 방침은 정해졌다. 이들은 "공동교섭단체는 한반도 평화 실현,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노동존중 사회 등 '8대 정책공조 과제'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8대 과제의 나머지는 권력기관 개혁, 국회 개혁, 식량주권 실현과 농수축산업 보호, 골목상권과 중소상공인 보호와 '미투' 운동 지지 등이다.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의 동참이 불발되면서 의석 기준이 교섭단체 기준 하한선(20명)을 간신히 유지하게 된 데 대해서는 "양당은 교섭단체의 안정적인 유지·발전을 위해 책임있는 노력을 다하기로 한다"는 문구가 합의문에 들어갔다. 이는 사실상 평화당 소속 현역 의원의 지방선거 출마를 자제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잠정 합의안이 도출됨에 따라 공동 교섭단체 구성까지는 양당의 최종 추인 절차만이 남게 됐다. 원내 중심인 평화당은 의원총회 통과가 무난할 전망이어서, 남은 변수는 31일로 예정된 정의당 전국위의 승인 여부다.  

앞서 정의당 대표 선거나 '민주사회당'으로의 당명 변경이 무산된 전례 등을 보면, 평당원들의 목소리가 강한 정의당 대의기관 회의의 결과는 예측이 쉽지 않다. 다만 각 정당의 정체성은 존중된다고 명시한 점, 당원들 사이에 대중적 인기가 높은 노회찬 원내대표가 초대 대표를 맡기로 한 점과 지난 17일 전국위에서 공동 교섭단체 구성 협상이 승인된 점 등을 놓고 보면 가결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으로 관측된다.  
 

▲민주평화당 이용주(왼쪽)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의당 윤소하 원내수석부대표가 29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의 공동교섭단체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정의 공동 교섭단체, 기대 효과는? 

양당이 최종적으로 공동 교섭단체를 추인한다면, 국회는 현재의 3교섭단체(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체제에서 4교섭단체 체제로 되돌아가게 된다. 작년 11월 구 바른정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지 4개월 만이다.  

2016년 총선 후 20대 국회는 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의 3교섭단체로 출발했으나, 탄핵 사태를 기점으로 2017년 1월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이 분화되면서 약 11개월 동안 4교섭단체 체제로 운영됐었다.  

국회 운영의 '정식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교섭단체 수가 달라진 것은 향후 국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과거 범(汎)진보진영으로 분류됐던 구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거치며 범보수 쪽으로 색채 변경을 한 터라, 기존의 3교섭단체는 범진보 1(민주당) 대 범보수2(한국·바른미래) 구도로 평가됐었다. 평화·정의 모임이 등장하면 2대 2로 균형추가 맞춰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 나오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고, 여야 교섭단체 대표가 개헌 협상을 개시한 상황에서 기존의 우원식·김성태·김동철 등 3당 원내대표의 논의 테이블에 노회찬 원내대표가 끼게 될 전망이다. 앞서 3당 교섭단체 대표들은 지난 26일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 회동에서 "나머지 두 정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바로 참여하면 된다"는 데 합의했었다.  

또 이와는 별개로, 정의당의 교섭단체 구성은 진보정당사(史)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구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원내 진입에 성공한 이래, 진보정당은 국회에서 늘 소수 정당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자력으로 20석을 확보해 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진보정당이 처음으로 국회 운영의 파트너로서 목소리를 내게 됐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이번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소수당에 대한 배제가 있는 상황에서 정의당으로서는 불가피한 대응이었고, 국회 개혁이 중요함을 환기하는 면이 있다"면서도 "진보정당이 국회 운영에 관여도를 높이고 국정 참여 경험을 갖게 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에서 진보정당이 힘을 발휘하려면 연합 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차원이 다른 얘기지만, 정권 교체를 위해 DJP연대까지 나왔던 상황을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역주의 타파를 외쳐온 진보정당이 지역주의 기반 정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꾸려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서도 "평화당은 (대북정책 등에서)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앞으로가 중요하다. 얼마나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서민과 민중을 위한다는 진보정당이 이를 통해 뭘 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별 성과가 없을 경우 정체성 시비나 권력 추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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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권, “통일각서 열린 회담 모두 잘됐다”

(추가) 남북 고위급회담 오전 전체회의 종료..공동보도문 조율
판문점=공동취재단/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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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9  11: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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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왼쪽 리선권, 오른쪽 조명균. [사진-공동취재단]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윤영찬, 천해성 대표,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과 전종수, 김명일 단원이 오전 10시 3분경 회담장에 입장했으며, 바로 회담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는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확정하는 것이다. 

   
▲ 리선권 북측 단장이 통일각의 유래를 길게 설명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리선권 단장은 “통일각에 대해서 제가 좀 이야기하겠다. 위대한 장군님의 집중적인 발기에 따라서 1985년 8월에 완공됐다”고 유래를 설명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처럼, 통일각 안에서 열린 회담은 모두 잘됐다. 민족이 바라는 소망, 열망이 다 반영되고, 또, 통일각에서 진행되는 회담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좋은 결과물들이 이룩됐다.”

리 단장은 “그런 의미에서 남측 대표단 선생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놓고봐도 그렇고, 통일각에서 진행된 과거 회담을 염두에 봐도 그렇고, 회담이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명균 수석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 1월 9일 고위급회담에서 ‘시작이 반이다’고 했는데 “그 이상의 성과를 냈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초심(으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는 마음도 다시한번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회담도 그렇고 앞으로 진행되는 것들이 우리 북과 남의 최고지도자들의 결단에 의해서 모든 것들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수뇌 회담이 잘 성과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오늘 성의를 다해서 협의를 해야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오전 전체회의는 10시경 시작해서 50분 여분 만에 끝났다. [사진-공동취재단]

10시 53분께 1차 전체회의가 끝났다. 정상회담 일자 등에 대해 상호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보도문 도출을 위한 대표접촉이 이어진다.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 차려진 프레스센터에 들른 통일부 당국자는 “낮 12시 35분부터 57분까지 2대 2로 대표접촉을 하고 공동문안에 대해 협의했다”면서 “곧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9시34분께 남북 대표단은 통일각 로비에서 상견례를 했다.  

리 단장이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건네자 조명균 수석대표가 “평양에서 내려오는 길은 편안하셨습니까”라고 화답했다. 

(추가, 13:42)

<남북 고위급회담 1차 전체회의 모두발언>

리선권 : 서울에서 언제 떠났습니까?
조명균 : 서울에서 아침 저희가 7시 반에 출발했던가요.

리선권 : 내 기억에는 수석대표 선생이 통일각에 한 서너댓번 오시지 않았습니까
조명균 : 그 이상 될겁니다. 예 그 이상되고 마지막에 왓떤게 2007년 8월달에 그때 회담 때문에 온게 아니고 평양올라가는 길에 통일각에 잠시 여기 있다가 올라간게 아마 제가 통일각에 들른 거는 마지막일겁니다

리선권 : 10년이 넘었으니까 감회가 깊겠습니다.
조명균 : 예

리선권 :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없이 나름대로의 큰 감회에 젖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통일각이 판문점이 민족 분열의 상징 아닙니까. 이 민족 분열의 상징인 판문각에 다름아닌 통일각이 세워졌기 때문에 그 의미 그 뜻이 아주 깊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일각에 대해서 제가 좀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 위대한 장군님이 직접적인 발계에 따라서 1985년 8월에 완공됐습니다. 다 아는 것처럼 8월 15일은 우리 민족 해방의 날이 아닙니까. 이거 천해성 차관이 815가 생일이니까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이럴 때 815를 계기로 통일각이 완공됨으로 해서 조국 통일이야 말로 우리 민족의 제2 해방의 날이라는 그런 의미가 들게 돼있습니다. 이제 들어오시면서 봐서 알겠지만 우리 통일각에는 우리 위대한 장군님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직접 다 와보신 곳입니다. 이 지구 상에 돌이켜보면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유구한 역사도 자랑하고 또 남다른 형식도 자랑하고 그런데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이 뭔가 하면 다 하나같이 과거를 해산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각처럼 우리 민족의 오늘과 내일을 반영한 그런 건축물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절세 위인들께서는 이 통일각을 돌아보시면 이름이 참 좋다는 것, 오늘 현재는 우리 민족의 최대 숙원인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뜻이 깊고 통일이 이룩된 다음에는 통일을 기념하는 그런 뜻에서도 또 의미가 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 또 해외에 사는 우리 겨레들에게 있어서 이 통일각은 민족의 열망을 반영한 마음의 상징이라고 이렇게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통일각에 들어오는 사람들 보면 다 표정들이 밝습니다. 왜냐하면 이 통일각이라는 현판 앞에 자기가 서보면 야 참다운 애국, 애족, 애민이 어디있나. 이 통일각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자문자답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환희적인 희열에 넘쳐서 내가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구나 이런 긍지감을 안고 들어서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잘못 살아온 과거 때문에 얼굴을 붉히면서 그 어떤 죄책감에 잡혀서 들어서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오늘 남측 대표단 성원의 표정을 제가 좀 봤습니다. 조명균 장관 선생, 천해성 대표 선생 다 이거 들어오는 거 보니까 표정이 밝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북남 대화 관계 개선을 위해서 애써오시고 또 민족의 틀에서 하고 있는 북남 수뇌 상봉의 준비 회담에 참가하니까 그거만으로도 민족을 위해서 뭔가 하나라도 기여하는 그런 성원이 되지 않겠는가. 또 그런 마음에서 표정이 밝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형식이 내용을 반영하는 것처럼 이 통일각 안에서 진행되는 북남 회담은 예외없이 잘됐습니다. 민족이 바라는 그 소망 그 열망이 다 반영됐고 또 이 통일각에서 진행하는 회담에서는 민족이 바라는 좋은 결과물들이 이룩됐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남측 대표단 선생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놓고 봐서도 그렇고 이 통일각에서 진행된 과거 회담을 염두에 두고 봐도 오늘 회담이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 북측 리선권 단장의 말이 길어지자, 물 한잔 마시는 조명균 남측 수석대표. [사진-공동취재단]
조명균 : (물 한잔 따라서 마심) 예 오늘 이렇게 저희 남측의 대표단을 우리 리선권 위원장을 비롯해서 북측 대표단이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 리선권 위원장께서 통일각에 대해서 상세하게 잘 설명해주셨는데 제가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지난번에 저희가 평화의집에서 회담을 했고 오늘 또 통일각에서 회담을 합니다. 그래서 평화와 통일이 이렇게 연결되는 좋은 의미가 그 자체에서 있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한 이름에 걸맞게 연결되는 그런 의미에 걸맞게 저희가 잘 협의해서 우리 내외에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성과를 잘 내야되겠다 이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오면서 이제 가만히 지난번 1월 9일날 우리가 1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할 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때 제가 드린 말씀이 우리가 첫술에 배가 부르랴 또 시작이 반이다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1월 9일 이후로 지금까지 3개월이 채 안되는 기간입니다만 이 기간 중에 진행된 여러 가지 남북간의 일들을 보게 되면 시작이 반이다는 말 이상의 좋은 성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자리를 빌어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평창동계 올림픽 패럴림픽에 우리 북측에서 고위급 대표단을 비롯해서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는데 저희가 보면서 느낀 것이 우리 북측 대표단이 모든 부문에 있어서 아주 성의있게 잘 준비를 해서 와서 저희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축하해주셨구나 하는 것을 저희 모든 사람들이 느꼈고 그런 점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어가지고 그때 참여하신 분들 또 그걸 위해서 뒤에서 수고하신 모든 북측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시작이 반이다 해서 그 이상의 성과를 이미 내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또 동시에 첫술이 배가 부르랴 하는 그런 초심 우리가 너무 또 많은 욕심을 부리기보다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이렇게 잘 해나가야 한다는 마음도 다시 한번 오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말씀 하신 대로 저의 표정을 보고 오늘 회담 또 이렇게 전망을 읽으셨다고 하는데 이미 다 들킨 거 같습니다(웃음). 어쨌든 저희는 그런 마음을 갖고 왔습니다. 오늘 회담에서 저희가 그동안 진행된 것도 그렇고 오늘 회담도 그렇고 앞으로 진행되는 것들이 우리 북과 남의 최고지도자들의 어떤 결단에 의해서 우리가 이렇게 모든 것들이 펽쳐지고 있는 상황인만큼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수뇌 회담이 잘 성과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오늘 저희가 성의를 다해서 협의를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말씀도 다시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리선권 : 기본발언에서도 좀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80여일 동안에 일찍이 북남 관계에서는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그런 사변적인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최고 지도부의 결단에 의해서 대규모 사절단들이 많이 나갔고 또 남측에 나온 사절단들에 대해서 남측에서 귀측에서 참으로 많은 성의가 그런 마음을 보태서 잘 대해줬습니다. 조선 속담에 있는 것처럼 같이 마음을 맞추고 뜻을 맞추고 노력과 힘을 합쳤기 때문에 이번에 평창을 비롯해서 민족사에 남을만한 그런 기록들이 옳게 이뤄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남측 수뇌부와 또 남측 인민들에게 우리 북측 동포들의 진심어린 감사의 뜻도 전해주기 바랍니다.

조명균 : 예, 감사합니다.

(통일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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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는 코끼리? 소화불량 막는 별식

조홍섭 2018. 03. 28
조회수 549 추천수 0
 
인도 밀림 산불현장서 ‘연기’ 뿜어내는 야생코끼리 발견
재 불어내고 숯 섭취 행동 추정…원숭이도 숯을 해독제로
 
_100579947_thesmokingelephant.png» 산불이 난 숲 바닥의 재를 코로 집어든 뒤 잎에 넣기 전에 바람을 불어내는 야생 인도코끼리의 모습. 야생동물보전협회(WCS) 인도 지부 제공.
 
야생동물보전협회(WCS) 인도 지부 직원들은 인도 남서부 나가라홀 국립공원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한 뒤 호랑이와 그 먹이동물을 장기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점검하러 가던 도중 이들은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야생 아시아코끼리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비나이 쿠마르 부지부장은 “산불을 막기 위해 일부러 소규모 불을 질러 반쯤 탄 축축한 활엽수림을 지나는데 길가에 출현한 암컷 코끼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23일 지부 누리집에 올린 글에 적었다. “코끼리는 코로 재를 한가득 집어 들어 입 가까이 가져간 뒤 훅 분 뒤 나머지를 입에 가져갔다”며 “꼭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본 이 지부의 코끼리 전문가 바룬 고스와미 박사는 “코끼리가 숯을 먹으려는 것 같다”고 누리집에서 밝혔다. 그는 “숯은 영양분이 없지만 독성물질을 흡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데다 배변을 쉽게 하는 완하제 기능을 해 야생동물이 종종 이용한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독성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숯을 섭취하는 콜로부스원숭이의 행동은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는 인도에서 들여온 인도아몬드와 망고나무가 있는데, 그곳에 사는 붉은콜로부스원숭이는 단백질이 풍부한 이 나무의 잎을 즐겨 먹는다. 문제는 이 잎에는 단백질뿐 아니라 페놀이라는 독성물질도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나무가 초식동물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이차 대사산물을 만든 것이다.
 
Olivier Lejade_1280px-Red_Colobus_7-1.jpg»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의 붉은콜로부스원숭이. 즐겨먹는 나뭇잎의 독성을 없애기 위해 숯을 먹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올리비에 르제이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원숭이의 해결책은 바로 숯을 먹는 것이다. 산불이 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만든 숯가마를 찾아가 숯을 앞다퉈 가져와 먹는다. 숯은 단백질은 그대로 두고 페놀만 흡수해, 이 지역 원숭이는 다른 지역 집단보다 출생률이 높다.
 
숯을 독성물질 중화에 활용하는 예는 사람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번 관찰로 야생 인도코끼리가 숯을 ‘야생 치료’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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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정상회담으로 사회주의 지향, 북중혈맹 합의

북중정상회담으로 사회주의 지향, 북중혈맹 합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3/28 [19: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8년 3월 26일 북중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는 중국 cctv 

 

북중정상회담 25부터 28일까지 전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외국방문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쑹타오 대외연락부장 등 고위간부들을 단둥으로 보내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최고의 예우를 다해 영접하였으며 28일 귀국할 때도 북경에서 단둥까지 쑹타오 부장 등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배웅하게 하였다.

 

먼저 북중정상회담을 진행하였고 이후 연회를 베풀고 환영 공연을 감상하였으며 다음날 양국 정상은 부부동반으로 오찬을 가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후진타오 주석이 직접 안내했던 중국과학원도 방문하였다. 

경호는 트럼프 대통령 방문 때보다 더 삼엄하였으며 중국이 외국 국빈에게 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의전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환영하였다.

회담과 모든 일정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즉, 논란 없이 모든 내용의 합의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본지의 예측대로 이미 정상회담 전에 충분한 사전 논의를 통해 양측이 합의에 이른 상황에서 북중정상회담을 진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593

 

환영만찬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환영연설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례연설이 있었는데 그 안에 주요 논의 내용과 합의내용이 들어있었다. 따라서 이 내용만 잘 분석하면 이번 북중정상회담의 핵심 합의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본다. 

 

시진핑 주석은 환영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 동지의 이번 방문은 특별한 시기에 이루어진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방문으로서 김정은 위원장 동지께서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중조 두 당, 두 나라 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쌍방사이의 의사소통을 심화시키고 협조를 강화하며 협력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며 조중친선과 협력에 대한 합의를 가장 의의가 크다고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은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두 당,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에로 올려 세우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입니다."에 라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해 언급했다. 그것도 조중친선과 협력에 의해 형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이 이번 북중정상회담에 가장 중시한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 동지께서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중조 두 당, 두 나라 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쌍방사이의 의사소통을 심화시키고 협조를 강화하며 협력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부분이다. 북이 중국과 척을 지지 않고 북중친선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 중국 입장에서는 가장 큰 성과라는 것이다. 그에 기반해서 소통을 강화하고 협조와 협력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중국패싱'을 걱정했는데 그 우려를 덜었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이 북이다. 미국의 대중국포위망형성에서도 결정적인 지역이 북이라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으로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막대한 미국 자본이 한반도에 투자되면 중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히 중국이 무리하게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현재 북중관계는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된 상황이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 전에 중국은 북과의 관계를 호전시켜 놓아야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깊은 사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노세대 영도자들이 마련해준 조중혈맹을 강조하였다.

더불어 "국제 및 지역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우리 쌍방은 세계발전의 큰 흐름과 중조관계 발전의 전반적인 국면을 튼튼히 틀어쥐며 고위급 내왕을 강화하고 전략적 의사소통을 심화시키며 교류와 협조를 확대해나감으로써 두 나라와 두 나라 인민들에게 행복을 마련해주리라고 확신합니다."라며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북중관계를 흔들림 없이 강화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기존에는 필요할 때는 북중혈맹 운운했지만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미국의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등 북중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하였다.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시진핑 주석이 이렇게 강도 높게 북중혈맹을 강조한 것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으로부터 고립 우려가 기본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본지에서는 북의 뛰어난 군사력, 정확히 말해서 군사과학기술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도 평양을 방문하여 북과 군사기술협력을 이루어내기 위해 북의 미사일 개발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북이 위성을 쏘건 미사일을 쏘건 반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신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방문으로 계기로 합의 서명된 북과 군사기술협력을 진행한 후부터 러시아 무기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2005년 토폴M이 그 시작이었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593

 

러시아에 비해 군사과학기술이 떨어진 중국이기 때문에 북의 군사과학기술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이 북미정상회담으로 북과의 대결전을 일단락지을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남중국해문제 등 대중국 군사적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중국으로서는 매우 다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앞으로 북중관계는 이전과는 달리 훨씬 더 공고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사실 이런 중국의 입장은 그간 북이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내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런 환영 연설에 대한 답사에서 사회주의를 가장 강조하였다.

 

"나는 방금 습근평 총서기 동지와 조중 친선 관계발전과 절박한 조선반도 정세관리 문제들을 비롯해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깊이있는 의견을 나눴으며 조중 두 나라 사회주의 제도를 굳건히 다지고 두 나라 인민들에게 행복과 미래를 안겨주기 위한 공동의 의지를 확언했습니다.   

선대 수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사회주의 위업을 위한 성스러운 공동의 투쟁에서 맺어지고 역사의 온갖 돌풍 속에서도 자기의 본태를 지켜온 조중 친선관계를 새로운 높이에서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입니다.   

조선노동당과 조선 인민은 습근평 총서기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영도 밑에 귀국 인민이 새시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건설 위업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고 귀국의 국제적 권위가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 것을 자기 일처럼 기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습근평 총서기 동지의 현명한 영도 밑에 귀국 인민이 당 제19차대회가 제시한 과업을 빛나게 관철해 중화의 위대한 부흥을 이룩할 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이렇듯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회주의와 조중친선을 강조했는데 특히 양국 정상이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지키기로 합의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일 것이다. 

이는 중국이 반제자주진영으로 확고히 돌아서기로 했다는 것이며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데 북과 함께 하기로 합의했다는 말이다. 거기다가 '국제 및 지역정세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이런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것이라고 시진핑 주석이 공개 연설을 통해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에 어떤 북중정상회담보다 높은 수준에서 전략적 합의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

 

북미정상회만으로도 세계사적 대격변이 불가피한데 북중정상까지 새로운 세계질서를 개척하는데 합의함으로써 향후 세계사는 일대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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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서 '골든타임' 놓친 박근혜, 중대본 방문조차 최순실이 제안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3/28 22:57
  • 수정일
    2018/03/28 22: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인후염 치료로 침실에 있었을 거라 추정"

18.03.28 19:40l최종 업데이트 18.03.28 20:06l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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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검찰 수사 결과, 당시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적절하게 이뤄진 것으로 꾸미기 위해 실제 보고가 이뤄진 시각과 횟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고 혼자 침실에 있을 때, 세월호 구조의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당일 유일하게 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조차도 '비선 실세' 최순실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28일 검찰은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청와대의 '대통령 보고 조작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수사를 통해 그동안 논란이 됐던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행적도 드러났다. 참사 이후 계속 논란이 됐던 '박근혜 세월호 7시간'이 4년 만에 확인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침실에 머물며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보고와 지시가 이뤄졌을 리 만무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1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언론사 TV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했다. 센터는 오전 9시 24분께 청와대 문자메시지 발송시스템으로 내부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실무자들이 해경을 통해 선박명, 승선인원, 출항시간, 구조인원 등의 상황을 파악한 뒤, 오전 9시 57분께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완성했다. 

상황보고서는 VIP, 즉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보 초안을 전달받았고, 오전 10시쯤 휴대폰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연락을 두절한 채 관저에서 머물고 있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보고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 12분. 김 전 실장은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인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세월호 관련 상황보고서 1보가 올라갈 예정이니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말한 뒤,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에게도 전달을 지시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소식을 전할 방법은 '인편'뿐이었다. 모든 보고 시스템이 무너지고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동원된 것이다.

신 전 센터장의 지시를 받은 상황병은 관저까지 달려갔다. 검찰은 상황병이 상황실을 출발해관저에 도착하기까지 7분이 소요됐다고 봤다. 실제 검찰 수사관이 수사과정에서 청와대를 방문해 직접 달려 측정한 시간이다. 상황병은 오전 10시 19분쯤 박 전 대통령의 살림을 돕는 김아무개씨(71세)에게 보고서 1보를 전달했다. 김씨는 평소처럼 박 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보고서를 올려놓았다. 그때까지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다.

측근들 보고에 박근혜 "그래요?"

비슷한 시각인 오전 10시 20분. 김장수 전 실장의 전화를 받은 안 전 비서관과 이영선 행정관은 관저 내 침실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을 수차례 불렀다. 박 전 대통령은 그제야 침실 밖으로 나왔고, 이들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며 다시 침실로 들어가 오전 10시 22분쯤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가 사고 소식을 접수 한 지 1시간 3분 만에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상태였다. 세월호는 이날 오전 10시 17분 구조가 불가능한 상태로 침몰하고 있었다. 청와대도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사실을 알았다. 그때가 선내에서 마지막으로 카카오톡 메시시지가 발신된 시각이었다. 당초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의 첫 지시 시각을 당일 오전 10시 15분으로 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조작이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그 이후로도 박 전 대통령은 제대로 상황 보고를 받지 않았다. 대통령비서실은 총 11회에 걸쳐 상황보고를 작성해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계속 관저에서 나오지 않아 오후와 저녁 시간에만 각 1회씩 일괄 출력해 전달하는 데 그쳤다.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이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최씨는 특검 소환에 자진 출석해 삼성 뇌물관련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이 지난해 2월 9일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최씨는 특검 소환에 자진 출석해 삼성 뇌물관련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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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15분께 'A급 보안손님' 최순실씨가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청와대 관저로 들어왔다. 'A급 보안손님'은 실제 경호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라고 검찰은 밝혔다. 이들은 관저 안에 들어가기까지 어떠한 보안검색도 받지 않는다. 최순실씨, '비선의료진' 김영재 원장과 부인 박채윤씨, 이렇게 세 사람만 'A급 보안손님'의 특권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문고리 3인방은 머리를 맞댔다. 이 자리에서 중대본 방문을 제안한 것은 '비선실세' 최씨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의견을 따랐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주요 결정을 최씨가 이끈 것이다.

그 뒤 윤전추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의 화장과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정아무개 자매에게 '상황이 급하니 빨리 청와대로 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순간에도 박 전 대통령의 머리 손질과 화장이 급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준비를 마친 뒤 오후 4시 33분 관저를 나섰다. 

오후 5시 15분.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중대본에 도착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엉뚱한 말을 하게 된다. 그는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며 세월호 참사 현장 상황과 매우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 오후 6시쯤, 관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그 뒤로도 본관으로 가지 않고 계속 관저에 머물렀다.

검찰 "미용시술 아냐... 전날 인후염 진료받아"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은 왜 당일 오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으며 세월호 참사 뒤에도 계속 관저에 머무른 걸까.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일각에선 불법 미용시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참사 다음 날인 17일 진도 체육관에 방문할 당시와 21일 수석비서관회의 참석 할 당시 사진에 박 전 대통령의 턱밑에 주삿바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비선의료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전날 인후염 진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시술이나 이상한 치료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가까운 거리에서 박 전 대통령을 모셨던 비서관이 유럽 순방을 다녀온 뒤로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의료용 가글을 받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 맞다. 평소에도 관저에서 생활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며, 위증 혐의를 받는 윤전추 행정관 또한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이날 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5인 회의니, 중대본 방문 결정 등에 관여한 것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사적 부분에 조력한 사람으로서 그에 관한 일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법정에 출석한 박근혜-최순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오른쪽 두번째 자리에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앉아 있다.
▲ 법정에 출석한 박근혜-최순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오른쪽 두번째 자리에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앉아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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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후속, 남북·미 군사협정 필요”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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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6  15: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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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한 커피숍에서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을 <통일뉴스>가 만났다. ‘남북기본협정’ 체결과 함께 ‘남북·미 3자 군사협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4월 말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남북, 북·미 정상들의 만남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물론, 이를 계기로 한반도 문제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기 때문.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남북기본협정’ 체결과 함께 ‘남북·미 3자 군사협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한 커피숍에서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을 <통일뉴스>가 만났다.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 정책자문위원으로 10.4선언 내에 종전선언을 담을 것을 제안했으며, 지난해 문재인 캠프에서 통일외교안보정책 작성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남북 정상회담 후속조치, ‘남북기본협정’ 체결을 통한 ‘남북조절위’ 조직
'남북.미 3자 군사회담'을 통한 군사균형 재정비

조성렬 연구위원은 다음달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남북기본협정’을 채택하고 국회가 비준할 것을 제안했다. “통일추진 과정에서 잠정협정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7.4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선언, 10.4선언의 내용은 시기에 안 맞는 내용도 있다. 그대로 반복할 수 없다”며 “합의의 정신을 존중하고 합리적인 내용을 계승해서 현재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남북관계의 새롭고 대담한 접근법’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6.15공동선언 2항을 보면,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며 “일단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6.15선언 2항을 다시 환기시키면서 이것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하는게 우선”이라고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이번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지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다 담아서 국회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길 바란다”고 지시한 바 있다.

조 연구위원은 ‘남북기본협정’을 이행할 기구로 과거 ‘남북조절위원회’를 제시했다. 

‘남북조절위원회’는 1972년 ‘7.4성명’ 6항에 따라 남북 간의 제반 문제와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가동됐으며, 위원장은 총리급 인사가 맡았다. 하지만 비정치.비군사적인 분야 우선 원칙을 내세운 남측과 정치.군사문제를 해소하자는 북측의 입장이 대립해 1979년 변칙대좌를 끝으로 사라졌다.

조 연구위원은 ‘남북조절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두고, “유럽연합(EU)의 초기 모습을 띤 유럽집행위(EC)와 유사하다”며 “10.4선언 이후에도 총리급 회담을 필두로 각종 회담구조를 만든 바 있다. 그런 부분을 참고하면 초보적인 형태나마 남북연합의 출발점을 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핵심적인 부분은 무엇보다도 남북조절위에서는 거의 논의하지 못한 군사적 긴장완화”라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북한이 요구하는 이른바 체제 안전보장의 군사적 안전보장조치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조 연구위원은 “일반적인 군비통제조치가 논의되어야 한다”며 “북한군, 한국군, 주한미군까지 포함해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한 행위자 간에 전반적인 군사구조에 대한 재편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반적인 군사적 균형을 맞추면서 군비통제가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거기에 상응하는 이른바 재래식 군사적 위협이 소멸될 수 있다”며 “실질적으로 비핵화 평화협정 논의와 병행해서 남북·미 3자 군사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게 이뤄지면 별도의 3자 군사협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즉, 통일을 위한 잠정협정인 ‘남북기본협정’ 이행을 위한 총리급 ‘남북조절위원회’에서 군사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되, 별도의 남북·미 3자 군사대화를 열어 군사적 균형을 맞추면서 3자 군사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안이다. 

조성렬, “북, 비핵화 의지 확고..CVIG는 한.미의 몫” 

   
▲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남북·미 최고지도자들 간의 만남으로 한반도 상황의 급변이 예고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남는 것은 비핵화 문제.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그러나 조성렬 연구위원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측이 북미대화를 하려면 비핵화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북측이 비핵화 문제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거꾸로 한발 더 나아가서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재 한반도 정세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북측이 비핵화를 통해서 단번에 한반도 비핵화 체제나 북미관계 정상화, 체제 안전보장 문제를 일괄타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북한으로서는 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군사강국이라는 목표달성이 질곡이 될 수 있다. 군사강국 목표가 결국 체제 안전이기 때문에, 체제 안전이라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라도 해결되면 경제강국 건설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주의 강국을 달성하겠다는 기본설계이다.”

북한이 경제강국의 걸림돌인 군사강국은 체제 안전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체제 안전에 대한 보장을 위해 비핵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주장인 것. 2016년 5월 당 7차 대회를 통해 김정은 체제를 굳건히 하고 남한, 미국과 대화를 위해 2017년까지 국가핵무력완성을 달성했으며, 지난해 12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을 홀로 등정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을 굳혔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에 남한과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조 연구위원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위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보장(CVIG)’를 담보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은 북한 지도부가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물어보지만, 거꾸로 물어본다면, 북한의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이 요구한 체제 안전에 대한 보장방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이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체제보장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면 북한의 비핵화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을 담보하는 평화협정이 능사는 아닐 터. 조 연구위원은 북한 당 7차 대회 결정서에 나온 ‘통일국가’를 언급하며, “북한의 입장에서 통일국가를 이룬다면, 결국 미국이든 중국이든 주변국이 통일국가인 남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남한을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북한은 이른바 연방제에 의한 평화보장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방법도 하나의 검토대상”이라고 말했다.

   
▲ 조 연구위원은 북한이 헌법 상 핵보유국이라는 문구를 빼면서 비핵화 의지를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북, 헌법 상 핵보유국 빼는 조치로 ‘비핵화’ 의지 보일 것”

조 연구위원은 북한의 비핵화 실현 가능성을 상당히 크게 점쳤다. 북한 매체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현재까지 보도하지 않는 이유도 ‘비핵화’를 공식화하기 위한 내부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는 지난해 10월 당 제7기 전원회의, 12월 당 세포대회를 통해 북한 체제 내 장악력을 확보해 ‘비핵화’로 인한 내부 동요를 최소화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4월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이 과정에서 헌법 수정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정책을 설명하지 않겠나. 정책 전환에 대한 해명을 포함한 설명이 있을 것”이라며 “헌법에서 핵보유국이라는 명문을 미리 뺄 수도 있고 아니면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결과로 뺄 수 있다. 현재 헌법상 핵보유국을 명시하고 비핵화를 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이 달성되기는 어렵다. 그만큼 정교하고 견고한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이 20여 년간 어려운 상황에서 개발한 핵과 미사일을 포기시키는 내용을 한국과 미국이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해 줄 수 있는가가 어렵다”며 “트럼프와 김정은의 태도가 이번 기회의 창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로 이끌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미국을 견인하고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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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대못 박는 안산시장 후보님, 민중이 개돼지입니까?

[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세월호에 대못 박는 안산시장 후보님, 민중이 개돼지입니까?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발행 2018-03-26 08:48:23
수정 2018-03-26 08: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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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추모공원을 납골당이라며 건설을 반대하는 바른미래당 현수막
세월호 추모공원을 납골당이라며 건설을 반대하는 바른미래당 현수막ⓒ필자 제공
 
 

어차피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고들 합디다. 기왕에 하는 거짓말이면 강하고 확신있게 하라. 그러면 유권자들이 표를 준다. 
이것이 선거에서 이기는 전략이라고 저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선거철이 돌아왔나 보네요.
그래도 000씨, 서명한 글씨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너무했습니다.

“안산시는 화랑유원지 납골당 조성방침 즉각 철회하라!”

제가 사는 동네는 화랑유원지와 꽤 떨어져 있는 아파트 밀집지역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사거리에 당신의 당 이름으로 이런 현수막이 내걸렸더군요. 이제 참사 4년이 지났습니다. 가끔 화랑유원지를 지나면서 보이던 추모 현수막도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더군요. 유가족의 이해로 안산지 전역의 분향시설과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고 들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그 해 어느 정치인은 아이들을 가슴에 묻으라고 했었죠. 네. 이제 아이들의 부모들은 겨우 자식들을 가슴에 묻을 준비를 하고 있는 참입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소리랍니까.

낮에 동네마다 방송차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웅변조의 스피커에서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딱 두 단어였습니다. 
“납골당...(중략)... 죽음의 도시...(중략)”
그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섬뜩했습니다. 우리 모두 생명안전도시를 만들자고 하고 있는데, 죽음의 도시라니요.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고통에서 모든 이들이 벗어나고 치유받기 위해 노력한 지난 4년이었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고통에 직면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라 우리 모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면하지 않고, 온 국민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애쓴 4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이제 그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당신, 정치인들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이제 비로소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특조위가 세월호 변침의 원인을 4년간 은폐하려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자, 대통령은 우리가 몰아냈으니, 그 정도는 당신들이 밝혀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대체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입니까.

19일 바른미래당 안산시지역위원회는 안산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랑유원지 내 세월호 추모공원 조성을 반대한다"며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19일 바른미래당 안산시지역위원회는 안산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랑유원지 내 세월호 추모공원 조성을 반대한다"며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뉴시스

2016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안산시에 출마한 12명의 후보들이 서명을 했습니다. 거기 당신 이름도 있더군요. 
‘세월호 영령앞에서’, 첫 번째 항은 이랬습니다. 
“세월호 피해자와 가족들을 모욕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활동을 통해 피해자들과 안산시민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하겠다”‘ 
아이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아, 000후보님. 또 이런 말도 있더군요. 이슈를 선점하는 자가 이긴다. 찬반 여론을 형성하라. 
그래서입니까? 그래서 선택한 이슈가 안산시민의 가장 아픈 곳인 세월호입니까? 시민들이 분열되든 말든, 유가족들이 상처를 받든 말든, 심지어 자신의 지난날의 약속이 번복되더라도 당장 눈앞의 선거를 위해 그 아픈 이슈를 선점하기로 하셨습니까? 그래서 “안산이 죽음의 도시가 된다”고 시민들에게 부정한 인식과 공포심을 심어주기로 하신 겁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게 해서 당신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당신은 다시 약속을 뒤집지 않을까요? 통합의 시정을 할 수 있을까요? 약자를 배려하는 시정을 펼칠 수 있을까요? 선거 때면 재래시장을 돌고, 다시 거듭나겠다고 무릎을 꿇다가도 배지하나 달면 민중의 머리꼭대기에 군림하는 시장이 되지 않겠다 자신 할 수 있습니까? 한 번 약속을 어긴 사람이 두 번 약속을 어기기가 어려울까요?

선거 때가 돌아왔습니까? 
바른미래당 안산시장 후보 박주원님, 당신은 정말 민중이 개, 돼지로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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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 이상한 회담전략과 통일국가건설의 진리

[개벽예감 292]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 이상한 회담전략과 통일국가건설의 진리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3/26 [09: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전략, 너무 이상하다

2. 불행한 사태는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3. 조국통일방안을 절반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4. 남북정상회담을 비춰주는 통일국가건설의 진리

 

1.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전략, 너무 이상하다

 

남북정상회담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2018년 3월 15일 임종석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기구인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2018년 3월 21일 청와대에서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 회의에서 발언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는  그가 구상하는 남북정상회담전략이 담겼으므로, 분석적 고찰이 요구된다. 그의 발언 중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번 회담들과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 핵과 평화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합니다.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말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 실망과 걱정이 앞선다. 왜 그런가?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조국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다른 나라 국가수반과 비교하는 것은 못마땅한 일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위의 발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아래 발언이 매우 대조적으로 투영된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연설에서 “조국을 분열시키는 모든 행위와 수법은 모두 실패할 것이며, 인민의 지적과 역사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였고, “조국의 완전한 통일이 중화 아들딸 전체의 공통된 바람이자 중화민족의 근본적 이익”이라고 역설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통일을 중화민족의 염원이고 근본이익이라고 역설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의 ‘통’자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21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그의 회담전략을 그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회담전략에서 남북정상회담 의제와 조미정상회담 의제를 분별없이 뒤섞어놓았을 뿐 아니라, 그 어느 회담에서도 논의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의제까지 억지로 끌어들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의 통일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중대하고 시급하다. 대만은 중국 영토의 0.38%밖에 되지 않고, 대만인구는 중국인구의 1.68%밖에 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통일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중화민족의 자주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중국과 달리, 한반도는 국토의 약 절반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민족구성원 가운데 약 3분의 2는 남에, 약 3분의 1은 북에 있다. 이런 분단현실은 통일국가건설이야말로 절박하고 중대하고 시급한 과업이라는 점을 웅변한다. 명백하게도, 우리 민족에게 통일국가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요구이고,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최고과업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의 ‘통’자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통일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그런 이상한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실망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은 덕담을 주고받다가 끝마치는 간담회가 아니다. 그 회담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받들어 통일국가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을 대전환의 계기로 되어야 한다. 과거경험이 그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통일국가건설의 원칙과 방도를 명시한 6.15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였고,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강령을 명시한 10.4 선언을 채택함으로서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 달 뒤 판문점에서 열리게 될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당연히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는 중대한 성과가 나와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외면하고 다른 생각만 하고 있다. 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위에 인용한 발언에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말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드러난다. 이 말은 한반도가 통일되든 말든 상관없고, 남북이 서로 간섭하지 말고 서로 피해주지 않는 ‘평온한 분단체제’에서 각기 따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에 인용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읽어보면, 그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문제를 논의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해야 할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면, 도대체 뭘 논의하려는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 그 답변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미답의 길이지만 우리는 분명한 구상을 가지고 있고, 또 남북미 정상 간 합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와 북미관계의 정상화, 남북관계의 발전, 북미 간 또는 남북미 간 경제협력 등이 될 것입니다. 준비위원회가 그 목표와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을 담대하게 준비해주기 바랍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남북정상회담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조미관계정상화, 남북관계발전, 조미경제협력, 남북미 3자 경제협력 등 여섯 가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열거한 여섯 가지 의제들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 조미관계정상화, 조미경제협력은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라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들이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에서 각각 논의될 의제이고, 남북미 3자 경제협력은 너무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조미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여섯 가지 의제들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남북관계발전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의 회담전략에서 남북정상회담 의제와 조미정상회담 의제를 분별없이 뒤섞어놓았을 뿐 아니라, 그 어느 회담에서도 논의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의제까지 억지로 끌어들인 것을 보고, 실망과 걱정이 앞선다. 그는 왜 그처럼 이상한 회담전략을 구상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조미정상회담보다 한 달 정도 앞서 열리게 될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미리 확인해보려는 속셈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한반도 비핵화, 조미관계정상화, 조미경제협력 같은 주요의제들을 어찌 남북정상회담에서 먼저 논의하겠다는 이상한 회담전략을 붙들고 있겠는가.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는 중대한 성과를 내올 생각은 하지 않고, 조미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탐색이나 해보려고 생각한다면, 그의 회담전략은 허망하게 공중분해될 것이다.  

 

 

2. 불행한 사태는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이번에 뭐 선언문이라고 보도하나?”

김양건 통전부장 - “원래는 선언문을 좀 토론했는데...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공동보도문으로 각기 표기하고 보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 “선언으로 해주십시오.”

김만복 국정원장 - “7천만 국민들이 다 기다리고 있고, 두 분 정상분을 쳐다보고 계십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6.15 선언과 대등한 선언이라는 뜻이지요?”

노무현 대통령 - “그렇지 않습니다. 후속선언이죠.”

이재정 통일부장관 - “6.15 선언에 기초해서 발전되는...”

노무현 대통령 - “선언 많이 합니다. 중소 간에도 선언했고, 한중 간에도 선언하고...”

이재정 통일부장관 - “두 분 정상께서 처음 만나 가지고 이렇게 많은 합의를 하셨는데, 그것을 선언으로 하셔서 6.15 선언의...”

노무현 대통령 - “한 걸음 앞서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무적인 회담은 아니니까요.”

김정일 국방위원장 - “선언하는데...그저 오늘 합의된 것, 그것 조항에 다 넣으시오.”

김만복 국정원장 - “예 그러겠습니다. 김양건 부장하고 협의해서 넣겠습니다.”

김양건 통전부장 - “이번에 저희들이 선언을 기본 큰 선에서 선언문 제기했더랬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 - “조금 실무적인 문제들이 들어가겠구만.”

김양건 통전부장 - “이제 제기된 문제들, 합의한 문제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 - “합의한 문제를 무게 있게 문장을 잘 만들어서 희망을 주고...”

노무현 대통령 - “안 되면 또 부속서를 만들어 가십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희망도 주고 신심도 주고...”

 

위에 서술된 대화내용은 2007년 10월 3일 평양에 있는 백화원초대소에서 진행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중에 오간 대화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2013년 7월 25일 이 회의록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이 대화록을 읽어보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해 공동선언이 아닌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족에게 통일희망과 통일신심을 안겨주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을 즉석에서 받아들였고, 그로써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 육로로 분단선을 넘어 평양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하는 장면이다. 당시 평양에서 진행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반대하는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종속적 한미관계가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은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사태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속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더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왜 더 중시하였을까? 그 까닭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였으므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그 방안이 재론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조국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진전된 실행방안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진전된 실행방안을 합의하지 못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회의록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께도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얘기했습니다. 자꾸 선언을 내자고 제기하길래, 7.4 공동선언 때 우리 민족이 대단히 화해에 넘쳐나서 크게 기대했는데, 이런 저런 정권의 교체와 정세변화로 해서 빈 종이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제기하는 모든 문제, 또 우리가 합의를 본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문서화해서 내면 이것이 또 빈 종이짝이 되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좋은 거 하나 내자고 자꾸 독촉을 해서 그래서 6.15 공동선언, 쌍방이 힘들게 완성을 시켜서, 난 6.15 공동선언이 아주 훌륭한 문건이라고 생각하지만, 6.15 공동선언 5년 동안의 역사시간을 보면 그저 상징화된 빈 구호가 되고, 빈 종이, 빈 선전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공동선언에 아무리 훌륭한 합의를 담아냈어도, 그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가 남측 정부에게 없으면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경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 지적이 현실로 되었음을 말해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이행하였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그 두 선언을 아예 부정해버렸던 것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합의했으나,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까닭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그 두 선언의 이행을 반대하는 백악관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발전에 기초하여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으면서 그 노력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 통일국가건설은 고사하고 남북관계도 발전될 수 없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중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모든 문제를 고찰해보면, 내 솔직한 심정인데, 우리 민족이 자주성 결여로, 지금 대국들의 장단에 맞추는...정치문제도 그렇고,,,이 자주성 문제로...”라고 말했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모처럼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측 정부가 자주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6.15 공동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위와 같이 에둘러 언급한 것이다.  

 

청와대가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은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사태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한심하게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바로 이런 사정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된다.    

 

 

3. 조국통일방안을 절반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로동신문> 2004년 6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장대비가 억수로 내리던 1994년 7월 7일 밤, 김일성 주석은 “부피 두터운 력사적인 문건”을 “자정이 넘도록” 자세히 검토하였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문건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조국통일방략이 수록되어 있었다. 김일성 주석은 그 역사적인 문건을 검토하고, “첫 페지 상단에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아홉 글자의 친필”을 남기고 뜻밖에 서거하였다. 

 

그 문건에 수록된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방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유업으로 계승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계승한 조국통일방략은 무엇이었던가? 위에 인용한 <로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것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을 촉진하는 문제, 북과 남 사이의 경제합작을 통이 크게 벌리는 문제 등”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뜻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준비하였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유업을 실현하여야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유업에 따라 개최한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다. <사진 3>

 

▲ <사진 3>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5년 8월 11일 조국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 앞에 친필비를 세웠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7월 7일 밤,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조국통일방략이 수록된 문건에 친필을 남겼는데, 그 친필을 비문에 새긴 친필비다. 친필비 뒷면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인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김일성 주석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친필을 남긴 문건에 수록된 조국통일방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유업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고 하였다. 그 회담에 배석하였던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2008년 6월 8일 서울에서 출판된, ‘피스 메이커’라는 제목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하는 대화내용이 들어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이번에는 첫째로 민족자주의지를 천명하고, 둘째로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되 일단 ‘낮은 단계의 연방제’부터 하자는 데 합의하십시다. 그리고 셋째 항에는 남북당국 간 대화를 즉각 개시하여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자는 정도로 합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 - “2체제 연방제 통일방안은 수락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남북연합제라는 것은 2체제 2정부의 협력형태를 의미하는 겁니다. 어째든 통일문제는 앞으로 더 논의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통일 이전단계에서 남과 북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 당장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합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대통령께서 말씀하시는 연합제가 바로 제가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같은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완전통일은 10년 내지 20년은 걸릴 거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완전통일까지는 앞으로 40년, 50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말은 연방제로 즉각 통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냉전시대에 하던 얘기입니다. 내가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건 남측이 주장하는 연합제처럼 군사권과 외교권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각각 보유하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자는 개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 “통일방안은 여기서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남북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 앞으로 계속 논의하기로 합의하면 될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그러면 이렇게 합의합시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뜻이 같은 것이니까, 낮은 단계 연방제로 남북이 협력해나가자고......”

김대중 대통령 - “북이 낮은 단계 연방제를 제의했고, 남이 남북연합제를 제의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양자 간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함께 논의해나가자는 것으로 합의합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좋습니다. 그럼 그 정도로 합의합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낮은 단계 연방제를 합의하자고 설득하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렇게 되어 결국 6.15 공동선언에는 조국통일방안을 다음과 같이 합의한 것으로 명시되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6.15 공동선언에 서명한 직후 악수하는 장면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국가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었다. 두 정상이 우리 민족 앞에 남긴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 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 이 땅에 자주통일강국을 세우는 위대한 승리의 날까지 통일국가건설의 진리를 환히 비춰줄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성을 가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공히 인정하였으므로, 6.15 공동선언에 그 내용이 들어간 것은 당연한데,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서술된 어색한 문장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방향”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며,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그처럼 뜻이 명료하지 않은 문장이 들어간 것은, 두 정상이 조국통일방안을 완전히 합의하지 못하고, 절반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관련된다. 절반만 합의하였다는 말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성을 가진다는 것만 합의하였을 뿐이고, 그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하는 진전된 통일방안을 합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만일 두 정상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방안을 완전히 합의하였더라면, “남과 북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그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을 합의하였다”라는 식으로 서술되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지 않으려고 버텼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런 김대중 대통령을 오랜 시간 설득하여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한다는 합의에로 그를 이끌었지만, 그 공통성을 인정한 기초 위에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은 6.15 공동선언에 들어갈 수 없었다.   

 

 

4. 남북정상회담을 비춰주는 통일국가건설의 진리

 

두 정상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지 못한 통일방안, 다시 말해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은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돐’을 맞이하여 열린 평양시 보고대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보고대회에 보고자로 참석한 안경호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한 통일국가건설방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우리의 낮은 단계 련방제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우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민족공동의 리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나가는 것입니다. (중략) 공동선언의 합의대로 통일방안의 공통점에 기초해 민족공동의 통일방도를 모색하고 민족자주통일실현에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언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01년 6월 17일 <한겨레>와 진행한 단독대담에서 2000년 10월에 자신이 평양시 보고대회에서 언명하였던 민족통일기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민족통일기구는 국가기구다. (중략) 민족통일기구는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기구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민족통일기구에 속하는) 국회와 행정기구 구성은 (남북) 쌍방이 우리 실정에 맞게 창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제 명료해졌다. 위에 인용한 발언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들을 얻어낼 수 있다.  

 

1)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한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한다. 

2) 민족통일기구는 북측이 정한 임시명칭인데,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통일국가기구로 정식화된다. 

3) 민족통일기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정치주체이며, 그 주체의 노력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한다.   

4) 민족통일기구는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로 구성된다. 다른 한편, 남과 북에는 각각 지방의회와 지방정부가 존재하게 된다.

5) 민족통일기구에 속한 통일국회는 통일국가의 단일국호, 단일국기, 단일헌법, 단일여권 등을 제정하고 그에 따르는 각종 법령을 제정하는 입법권을 행사한다. 다른 한편,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지방의회들은 자기 지역에 적용되는 입법권을 행사한다.

6) 민족통일기구에 속한 통일정부는 남과 북의 두 지방정부들이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통일국가의 국시 및 국익에 맞게 행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정권한 및 조절기능을 수행한다. 다른 한편,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지방정부들은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행사한다.  

7) 민족통일기구는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낮은 단계 연방제를 높은 단계 연방제로 발전시킨다. 이 발전과정은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지방의회들과 두 지방정부들이 행사하는 입법권,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민족통일기구에 이양하는 과정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05년 8월 14일 서울에 있는 상암경기장에서 50,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막을 올린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 개막식' 장면이다. 8.15민족대축전에는 남측 대표단, 북측 대표단, 해외측 대표단이 모두 참가하였다. 개막식에서는 북측 대표단 단장 김기남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남측 정부를 대표하여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각각 연설하였다. 그날 나 자신도 해외측 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참석하여 민족의 통일의지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개막싱장에 "해도 하나, 달도 하나, 민족도 하나, 조국도 하나"라고 큰 글씨로 쓴 통일구호가 나붙어 있었던 것이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장장 70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빛나는 승리를 쟁취할 것이며, 우리 민족이 그토록 열망하는 자주통일강국을 세계가 보란듯이 건설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70년이 넘도록 남북으로 갈라져 불신과 대결 속에 살아왔고,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가 남북에 각각 고착된 분단현실에서 입법권,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급진적으로 통합하려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은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통일국가건설의 진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을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통합시킬 정치주체를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런 정치주체를 세우지 않으면,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은 100년이 지나도 통합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민족의 통일염원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국가건설에서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과업은 남과 북이 각각 자기 지역에서 수행하는 국가권능을 통합시킬 정치주체를 언제,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북연합제라는 방안은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을 통합시킬 정치주체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남북연합제는 남과 북이 두 개로 분리된 독립국가로 공존하면서 상호협력하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을 하나로 통합시킬 정치주체가 없으면,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을 아무리 지속해도 두 개로 분리된 독립국가를 통합시키지 못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심중한 문제는, 남북연합제가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독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토가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한반도 전역을 포괄한다고 명시한 남측 헌법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두 개의 독립국가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반도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두 개의 독립국가의 공존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남북연합제는 위헌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독립국가들이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예상한다는 점에서 남북연합제는 허황된 몽상이다. 남북연합제는 그것에 내포된 위헌독소와 허황성 때문에 통일방안으로 될 수 없으며, 남측 국민들의 통일인식에 혼란을 주는 위험성을 지녔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3월 5일 평양에 있는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 진달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파견한 방북특사단을 접견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세계가 보란 듯이 북남관계를 활력 있게 전진시키고 온 겨레가 바라는 조국통일의 새 력사를 써나가자는 것이 우리의 일관하고 원칙적인 립장이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라고 거듭 천명"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강렬한 통일의지를 안고 한 달 뒤에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것이다. 민족의 마음과 세계의 이목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집중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위헌적이고 허황한 남북연합제가 통일방안으로 될 수 없으므로,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도는 낮은 단계 연방제밖에 없다. 낮은 단계 연방제를 실현하려면, 두 정상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자고 합의해야 한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통일방안에 관해 논의하지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 공통성에 기초하여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는 문제를 논의하지 못하였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을 그 중대한 문제를 논의할 과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그 과업을 계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설득하여 어떤 합의에 도달할 것인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지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지만, 2018년 3월 6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남조선대통령의 특사대표단 성원들을 접견하시였다’에 해답의 실마리가 들어있다. 그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5일 방북특사단을 접견하면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세계가 보란 듯이 북남관계를 활력 있게 전진시키고 온 겨레가 바라는 조국통일의 새 력사를 써나가자는 것이 우리의 일관하고 원칙적인 립장이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라고 거듭 천명”하였다고 한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를 전진시키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중대합의를 이끌어낼 것으로 예견된다. 만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의견차이로 중대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또 다시 열릴 것이다. 두 정상이 통일국가건설의 길을 함께 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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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등에 업힌 2살 아기까지... 총부리들은 악마였다

[아산 민간인유해발굴 현장] 발굴팀 안경호 사무국장이 쓴 유해발굴 체험기

18.03.26 08:00l최종 업데이트 18.03.26 08:20l

 

 1955년 1월  15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아산 배방면 민간인학살사건
▲  1955년 1월 15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아산 배방면 민간인학살사건
ⓒ 경향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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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에 출장 갔다 돌아온 김 검사에 의하면, 경찰서 지서주임이 괴뢰정부(인민군)에 부역했다는 구실 밑에 부역자 아닌 양민 120여 명을 학살했다. 또 부역자 또한 개인적으로 사살하여 전후 3개월(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에 걸쳐 250명을 학살한 것이 판명되었다. 이 밖에도 정부보유미 450가마를 횡령하였다. 두 살 난 영아에서 노인까지 맹목적으로 학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남 아산 배방면에서 한국 전쟁 시기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경향신문>(1955년 1월 15일 자)의 기사입니다. 죄 없는 민간인을 두 살 난 영아에서 노인까지 맹목적으로 학살한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학살을 자행한 당시 경찰관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유해발굴을 통해 당시 이승만 정부와 경찰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살해한 증거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도, 경찰도, 살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우익단체도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은 지난 달 22일 시작한 배방읍 중리3리 뒷산 폐금광에 대한 유해발굴 작업을 27일만인 지난 25일 마무리했습니다. 발굴된 유해는 약 150구에 이릅니다. 조사단은 감식과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되는 상반기 중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조사단의 발굴팀 일원으로 유해발굴 작업에 참여한 안경호 4.9 평화재단 사무국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유해 발굴 전 과정에 대한 소회와 관련 사진을 골라 싣습니다. 

[발굴 첫날/ 2월 22일]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발굴 첫날,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  발굴 첫날,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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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눈 쌓인 설화산이 피로 얼룩졌다.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아기, 힘없는 부녀자와 노인 일가족이 몰살을 당했다. 시신을 수습할 식솔도, 제사를 지내줄 가족도, 모두 같은 날 죽었다. 해가 뜨면 이분들께 깨끗한 술을 올리고 밝은 곳으로 모실 것이다. 

이제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무고한 죽음이기에 임종이 더 필요했을 그분들. 그 신원을 찾아 기억하자.

한 삽 땅을 열고자 하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흙바람 부는 이곳은 그래도 살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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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째/ 2월 23일] "호미 한 자루만 놀려도 나올 수 있었는데…."

음봉면, 배방면, 온양읍에서 끌려온 사람들.

방앗간에 갇힌 채 며칠을 굶고 산발이 되어, 짚단 한 지게 고쳐 매고 총부리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밟는다. 이윽고 사람 키 높이 폐광에 다다라 산골짝을 울리는 요란한 총소리.

아기 업은 애미, 지게꾼 애비,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솔가지 부러지듯 무릎들이 꺾인다.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 지고 온 짚단에 묻히고 신음마저 화염에 가려진다. 동무들과 뛰놀던 뒷산, 올려다 보는 것도 두렵다. 머리 커서 가 본 뒷산 발걸음을 떼일 수 없다. 호미 한 자루만 놀려도 나올 수 있었는데….

[3일째/ 2월 24일] 나야 알 수 없지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총부리들이 장전하고 차마 고개를 숙이라 할 때, 입 근육이 달라붙고 침도 마른 때
피부와 혈관 근육도 육탈 과정을 거치며 더 과묵해진 걸까.

마사토와 진흙에 겨우 엉켜, 머리와 다리 구분 없이 함부로 구겨질 줄

나야 알 수 없지
나야 알 수 없지

 

 발굴 5일 째. 7살 아이가 나왔다. 고사리손에 쥐고 있던 구슬과 함께.
▲  발굴 5일 째. 7살 아이가 나왔다. 고사리손에 쥐고 있던 구슬과 함께.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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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2월 26일] 구슬과 탄피

7살 아이가 나왔다. 고사리손에 쥐고 있던 구슬과 함께.
아이의 또 다른 손엔 탄피가 쥐어졌다.

[6일째 / 2월 27일] 총부리들은 악마였다

2살 아이가 엄마 등에 업힌 채 67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7살 아이가 파란 구슬을 손에 쥔 채 고개를 들었다.

20대 새댁은 머리에 탄두가 날아와 은비녀가 떨어지고 30대 가장의 머리는 나무뿌리와 흙이 채워져 있다. 어금니가 닳고, 닳은 노인의 주변에는 탄피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삼족을 멸했다. 씨를 말렸다.

시신을 수습할 가족들 모두 몰살시키고 죽지 않은 시신에 불을 질렀다. 뼈마디에 불탄 섬유가 지문처럼 달라붙어 있다.

아이들의 유해가 나올 때마다 발굴이 중단된다. 감정 수습도 하기 전에 아이들의 아우성이 골짜기를 메운다. 총부리들은 진정 악마였다.

 

 발굴 11일 째. 아기와 엄마를 짚단으로 태워 죽인 그 들.
▲  발굴 11일 째. 아기와 엄마를 짚단으로 태워 죽인 그 들.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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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째/ 3월 6일] 두 살 아기 

어지럽게 널려 있는 뼈들 사이로 아이 장난감, 푸른 구슬, 은비녀.

2살 아기가 마치 엄마 등에 업힌 듯 여성의 유해와 함께 드러났다. 엄마 등에서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아기.

아기의 체온과 함께 식어갔을 엄마. 총으로 근접사 시켜도 숨통이 남아 있던 아기와 엄마를 짚단으로 태워 죽인 그들. 과연 그들의 몸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가.

[12일째/ 3월 7어린 뼈 여럿 수습하다

불에 그을리고 습기에 녹아나고 지층에 눌린 어린 뼈를 여럿 수습했다.
화염 속에 살아남은 사람은 말이 없다.

[13일째/ 3월 8일] 쌍가락지
 

 군가 끼워줬을 한 여인의 손가락 은반지
▲  군가 끼워줬을 한 여인의 손가락 은반지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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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끼워줬을 한 여인의 왼손 약손가락 은반지. 
그이와의 언약은 어디로 갔을까

 

 발굴 14일 째. 머리맡에 놓인 약병 두 개
▲  발굴 14일 째. 머리맡에 놓인 약병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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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 18일 째. 엄마의 왼발 신발에 담긴 발뼈와 아이의 고무신(오른 쪽)
▲  발굴 18일 째. 엄마의 왼발 신발에 담긴 발뼈와 아이의 고무신(오른 쪽)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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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째/ 3월 9일] 두 개의 약병

지표면 아래로 지층을 이룬 유해 더미. B1 구역 309-9로 명명된 이 분의 머리맡에 두 개의 약병이 놓여있다.

어떤 지병이 있었을까. 끝내 그는 죽임이라는 불치의 병을 안고 임종도 잊고 말았다. 돌아온 약병처럼 그의 삶도 소환해 보고 싶다.

[18일째/ 3월 14일] 엄마의 왼발-아이의 오른 발

거친 시절 이들 모자는 어디를 가고 있을까
엄마의 왼발, 아이의 오른발. 엄마의 왼쪽 신발에 고스란히 남겨진 발뼈

그 곁을 떠나지 않은 아이의 오른쪽 신발. 단 하루만의 삶이 주어진다면. 
어느 봄날 못다 걸은 황톳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흙바람 속 아련한 모자의 뒷모습 보았을 텐데.
 

 발굴 19일 째. 60촉 백열전구
▲  발굴 19일 째. 60촉 백열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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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러운 봄
▲  서러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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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째 /3월 15일] 백열전구 

봄비. 이중천막. 60촉 백열전구
필라멘트마저 태워 버려 어린 영혼 불러내리

[22일째/ 3월 18일] 두 명의 뼈가 한 몸처럼

설화산 기슭 웅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에서 두 명분의 아래턱뼈가 한 몸처럼 붙어서 발굴됐다. 치아 감식결과 8살 전후 아이 두 명의 하악골(아랫턱뼈)

그 날 한 마을 동무가 아비 어미들과 함께 끌려와 나란히 죽음을 맞았을지, 한 집안 형제가 죽음의 공포를 나누며 함께 숨을 거두었을지 알 길이 없다. 죽음의 방식에는 전형이 없다지만 8살 아이들에게 향했을 그 총부리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3일째 / 3월 21일] 서러운 봄

그해 겨울 빼앗긴 목숨, 서러운 봄이 대신 왔다.

[24일째/ 3월 22일] 총소리

굳센 뼈들과 사용하지 않은 M1 총알이 클립 채 땅에 박혀있다. 서둘러 학살하며 미처 챙기지 못한 걸까. 학살을 거부하며 고의로 버린 걸까.

오늘도 발굴장 옆 사격장에서 종일 총소리가 들린다. 우리에게 향했을 그 총성. 언제 멈춰지려나

 

 발굴 24일 째. 사용용하지 않은 M1 총알의 8발 클립이 통째로 발굴됐다.
▲  발굴 24일 째. 사용용하지 않은 M1 총알의 8발 클립이 통째로 발굴됐다.
ⓒ 안경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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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째/3월 23일] 고통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어린아이 갈비뼈.

불에 타고, 돌에 눌려, 머리 다리 구분이 없다.

아이의 죽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27일째/3월 25일] 마무리
 

 25일 오후, 유해발급이 마무리됐다.
▲  25일 오후, 유해발급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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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7일 간의 유해발굴작업을 마무리했다.

감식과 보고서 작성, 보고대회 일정이 남았다.
(발굴팀은 약 150구에 이를 것으로 잠정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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