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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최고인민회의 개최..."단 한명의 감염자도 발생 안해"

리수용.리용호 국무위원 소환, 김형준.리선권 국무위원 보선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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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3  0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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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가 예정일보다 이틀 연기된 1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가 예정일보다 이틀 연기된 1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려 올해 과업과 국가예산을 의결하고 국무위원회 위원들을 소환, 보선하는 등 고위직 인사를 단행했다. 보도된 사진들에 나온 대의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하루 앞선 11일,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가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개최돼 코로나19에 관한 결정서와 간부인선안 등을 의결해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위한 절차가 진행됐다.

<노동신문>은 13일 <조선중앙통신> 13일자 보도를 전재하는 형식을 취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가 4월 1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되였다”고 보도했다.

회의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참석했으며, 주석단에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등단했고, 김재룡 내각 총리도 주석단에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헌법 개정을 거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에서 중요한 시정연설을 한 바 있지만 올해는 불참한 것.

신문은 북한의 공식적 권력서열을 엿볼 수 있는 주석단 명단을 밝혔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 주석단>

   
▲ [캡쳐사진 - 노동신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최룡해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동지가 주석단에 등단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이며 내각총리인 김재룡동지가 주석단에 나왔다.

리일환동지, 최휘동지, 리병철동지, 김덕훈동지, 김영철동지, 최부일동지, 리만건동지, 김수길동지, 박정천동지, 태형철동지, 오수용동지, 정경택동지, 김형준동지, 허철만동지, 리호림동지, 김정관동지, 임철웅동지, 리룡남동지, 김일철동지, 박정남동지, 리히용동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성원들이 주석단에 자리잡았다.

박태성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개회사를 했고, 6개의 의안이 결정됐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 의안>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재자원화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격교육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대군관생활조건보장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주체108(2019)년 사업정형과 주체109(2020)년 과업에 대하여

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108(2019)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과 주체109(2020)년 국가예산에 대하여

6. 조직문제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1,2,3 의정(의안)에 대해 보고했고,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재자원화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격교육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대군관생활조건보장법을 채택함에 대하여》가 전원찬성으로 채택되였다”고 전했다.

4,5,6 의정은 보고자가 명시되지 않았고, 신문은 별도의 기사로 상세히 다뤘다. 김재룡 내각총리가 보고자로 나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내용 중 내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신문은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결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사업보고와 주체108(2019)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을 승인함에 대하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109(2020)년 국가예산에 대하여》가 채택되였다”고 전했다.

“아직까지 단 한명의 감염자도 발생되지 않게 하였다”

   
▲ [캡쳐사진 - 노동신문]

신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주체108(2019)년 사업정형과 주체109(2020)년 과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에 제기한 내각사업보고” 제목의 별도 기사를 통해 지난해 “년간공업총생산액계획을 108%로 수행”했다고 보고했다.

특히 “다수확열풍, 과학농사열풍을 일으켜 불리한 기상기후조건에서도 알곡생산에서 최고수확년도수준을 돌파하였다”고 결산해 주목된다. 최고수확년도는 90년대 후반의 고난의행군 이전에 최고 수확고를 기록한 해를 뜻하는 용어로 보인다.

코로나19 방역사업과 관련해 “전국적규모에서 의학적감시와 격리사업을 강도높게 진행하여 우리 나라에서 아직까지 단 한명의 감염자도 발생되지 않게 하였으며 당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보건단위들을 현대적으로 꾸려 보건부문의 물질기술적토대를 더욱 튼튼히 하였다”고 보고해 주목된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책임자가 공식 보고했고, 600명이 넘는 대의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대규모 회의를 개최해 이를 시위한 것.

보고자는 “내각사업에서는 심중한 결함들이 나타났다”며 “나타난 결함들은 당에서 나라의 경제를 통채로 맡겨주고 국가경제발전의 전략과 방도를 뚜렷이 제시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권한과 수단을 다 부여해주었지만 경제지도일군들이 주인구실을 바로하지 못하면 당이 제시한 경제건설목표들을 성과적으로 점령할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다”고 자아비판에 나서 주목된다.

보고자는 “내각은 당중앙위원회, 국무위원회, 내각 공동결정서에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들의 건강과 생명안전보장에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경제사업을 작전하고 자력자강의 정신으로 정면돌파전을 과감히 벌리며 나라의 경제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잠재력을 총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하는것을 중심과업으로 틀어쥐고나갈것”이라고 밝혔다.

공동결정서는 전날 당 정치국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책을 논의한 결과 채택됐고, “비루스감염위험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같은 환경은 우리의 투쟁과 전진에도 일정한 장애를 조성하는 조건으로 될수 있다”며 “정치국회의에서는 조성된 대내외환경으로부터 출발하여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일부 정책적과업들을 조정변경할데 대한 대책적문제들을 연구토의하였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목표치들이 하향조정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보고자는 “내각은 경제사령부로서의 위치와 임무에 맞게 당의 경제정책관철을 위한 통일적인 작전과 지휘를 확고히 보장하고 치밀한 경제조직사업과 완강한 실천으로 당창건 75돐을 맞는 올해를 우리 조국력사에 특기할 승리의 해로 빛내이는데서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갈것”이라고 다짐했다.

국가예산수입, 지난해 105.3% 성장, 올해 104.2% 성장 예견

   
▲ [캡쳐사진 - 노동신문]

신문은 또다른 별도의 기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108(2019)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과 주체109(2020)년 국가예산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에 제기한 국가예산보고”를 통해 “지난해 국가예산수입은 101.5%로 집행되였으며 전해에 비하여 105.3%로 장성하였다”고 보도했다.

보고자는 “지난해 국가예산집행에서는 결함도 있었다”며 “경제지도일군들이 맡겨진 혁명임무를 당과 인민앞에 전적으로 책임지는 립장에서 작전과 지휘를 혁명적으로 해나가지 못한다면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실현할수 없고 경제전반이 활력있게 전진할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다”고 짚었다.

보고자는 올해 국가예산수입은 지난해에 비하여 104.2% 성장할 것으로 예견하고, “국가예산수입에서 중앙예산수입은 74.3%로서 중앙경제에 의한 수입이 압도적비중을 차지하며 도, 시, 군들에서 자체의 수입으로 지출을 보장하고 많은 자금을 중앙예산에 들여놓게 된다”고 밝혔다.

올해 국가예산지출은 지난해에 비해 106%로 늘어나며, 인민경제건설비 47.8%, 인민적시책비, 국방비 15.9%로 구성된다고 밝히고 “우리는 조선로동당의 전략적구상을 높이 받들고 올해 국가예산을 성과적으로 집행함으로써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포부와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인민적투쟁을 재정적으로 안받침해나갈것”이라고 다짐했다.

올해 인민적시책비 예산지출 비율은 밝히지 않았지만 전년도 결산보고에서는 인민경제건설비 47.7%, 인민적시책비 36.3%, 국방비 15.8%로 보고했다.

리병철, 김형준, 김정관, 리선권, 김정호 국무위원 보선

   
▲ [캡쳐사진 - 노동신문]

마지막 의안인 ‘조직문제’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제의에 의해 최부일, 노광철 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됐고, 리수용, 태종수, 리용호를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했다.

대신 리병철, 김형준, 김정관, 리선권, 김정호 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했다. 소환된 리용호 후임으로 외무상에 임명된 리선권 신임 국무위원은 전날 당 정치국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형준은 러시아대사 출신으로 리수용 국무위원을 대체한 것으로 관측되며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도 겸직하며, 김정관은 소환된 노광철에 이어 인민무력상을, 김정호는 소환된 최부일에 이어 인민보안상을 각각 맡고 있다. 

이 외에도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양승호 대의원을 내각부총리로, 김철수 대의원을 자원개발상으로, 김정남을 기계공업상으로, 리성학을 경공업상으로 임명하는 등 내각 인사도 단행했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 인사>

   
▲ 최고인민회의에서 보선된 신임 국무위원. 왼쪽부터 리병철, 김형준, 김정관, 리선권, 김정호. [캡쳐사진 - 노동신문]
   
▲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 임명된 내각 성원들. 왼쪽부터 양승호 내각부총리, 김철수 자원개발상, 김정남 기계공업상, 리성학 경공업상. [캡쳐사진 - 노동신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의 위임에 따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최룡해대의원의 제의에 의하여 최부일대의원, 노광철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하였다.

또한 리수용동지, 태종수동지, 리용호동지를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하였다.

리병철대의원, 김형준대의원, 김정관대의원, 리선권대의원, 김정호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고길선대의원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으로, 김영환대의원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내각 성원들을 새로 임명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양승호대의원을 내각부총리로, 김철수대의원을 자원개발상으로, 김정남동지를 기계공업상으로, 리성학동지를 경공업상으로 임명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부문위원회 위원장들을 소환, 보선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정호대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으로 김덕훈대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 김형준대의원을 보선하였다.

박태성 의장이 폐회사를 했고, 신문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탁월한 정면돌파사상과 전략, 실천강령을 국가활동에 철저히 구현하여 우리의 주체적힘, 내적동력을 백방으로 강화함으로써 조선로동당창건 75돐을 조국청사에 특기할 대정치축전으로 빛내이고 우리 혁명의 진군속도를 더욱 높여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추가,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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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4/13 11:55
  • 수정일
    2020/04/13 11: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390]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4/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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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김포공항에 착륙한 비밀공작항공기

2. 피어 드 실바가 선정한 장면과 백선엽

3. 전면에 나선 카터 맥루더와 월터 매카너기

4.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1. 김포공항에 착륙한 비밀공작항공기

 

1960년 5월 29일 오전 7시 30분, 김포공항 활주로에 DC-4 4발엔진 프로펠러 항공기 한 대가 조용히 착륙했다. 항공기 기체에 새겨진 씨빌 에어 트랜스포트(Civil Air Transport)라는 항공사 이름이 선명했다. 

 

김포공항에서 취재한 <경향신문> 기자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상하게도 그 비행기에는 기장 1명과 부기장 2명 이외에 다른 승무원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44인승 항공기에 왜 승무원이 한 사람도 없었을까? 이 의문은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뒤에 풀렸다. 그날 김포공항에 착륙한 DC-4 항공기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이었다. 겉모습을 보면 그 항공기를 운용하는 항공사는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민용항공사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항공사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해외비밀공작을 위해 민용항공사로 위장시킨 특수항공거점이었다. 1950년 8월 23일 씨빌 에어 트랜스포트를 매입한 미국 중앙정보국은 그 항공사를 비밀공작항공사로 만들었다.    

 

그런데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DC-4 항공기가 왜 1960년 5월 29일 김포공항에 착륙했을까? 이 의문은 항공기에 오른 탑승객이 누구였는지, 그 항공기의 종착지가 어디였는지를 알면 자연히 풀린다. 항공기에 오른 탑승객은 이승만과 프랜체스카 도나 부부밖에 없었고, 항공기의 종착지는 미국 하와이였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하와이한인협회장 최백렬이 이승만에게 도미초청장과 전세항공기를 보냈다고 보도했지만, 그런 보도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날조, 유포한 허위사실을 그대로 실은 오보였다. 이승만 자신도 자기와 처를 태우고 하와이로 날아간 그 항공기가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특수항공기인줄 몰랐다. 더욱이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휴양한 뒤에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는 당시 과도정부수반 허정의 말만 믿고 하와이로 떠났지만, 그의 하와이행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추진해온 이승만제거공작의 결정판이었다.  

 

위와 같은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면, 이승만이 자발적으로 하와이 망명을 선택했다는 기존 인식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당시 미국의 이승만제거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이승만이 하와이로 떠난 소식을 망명이라고 보도한 오보가 정설처럼 굳어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승만의 하와이행은 해외망명이 아니었고, 미국이 그를 하와이로 유인, 납치한 비밀공작을 해외망명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에 의해 하와이로 유인, 납치되는 줄도 몰랐고, 자신이 하와이한인협회장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로 잠시 휴양을 떠나는 것으로 착각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1960년 5월 29일 오전 이승만이 부축을 받으며 항공기 탑승대에 오르는 장면이다. 당시 84세인 그는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를 정도로 노쇠한늙은이였다. 이승만은 자기 처 프랜체스카 도나와 함께 DC-4 항공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떠나 하와이로 갔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기와 처를 태우고 하와이로 날아간 그항공기가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특수항공기인줄 몰랐다. 더욱이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휴양한 뒤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는 당시 과도정부수반허정의 말만 믿고 하와이로 떠났지만, 그의 하와이행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추진해온 이승만제거공작의 결정판이었다. 이승만의 하와이행은 해외망명이 아니었고, 미국이 그를 하와이로 유인, 납치한 비밀공작을 해외망명으로위장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에 의해 하와이로 유인, 납치되는 줄도 몰랐고, 자신이 하와이한인협회장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로 잠시휴양을 떠나는 것으로 착각했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이승만제거공작을 외면하고, 1960년 4월에 일어난 역사적 사변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1960년 4월에 일어난 역사적 사변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다고 알고 있지만, 그런 인식내용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하는 것은 미국이 그 역사적 사변에 교묘히 편승하여 이승만제거공작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이승만제거공작을 분석, 고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데,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승만 정권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흔히 이승만 독재정권이라고 하지만, 독재라는 일반적 개념으로는 그 정권의 성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에 일어난 제주민중항쟁과 여수순천민중항쟁을 대량학살로 짓밟은 미군정의 배후조종에 의해 수립된 친미정권이며, 1950년 국민보도련맹학살사건과 6.25전쟁민간인학살사건을 자행한 파쇼정권이다. 2010년 12월 23일 당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언론대담에서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대량학살사건을 10년 동안 조사한 자신의 소감을 말하면서 그 정권이 민간인 약 1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승만은 민간인 100만 명을 학살한 대참사의 책임을 지고 극형을 받았어야 했다. 그처럼 반민족적이며, 극악무도한 정권은 독재정권이 아니라 친미파쇼정권으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둘째, 1960년 4월에 일어난 역사적 사변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사람들은 그 역사적 사변을 4.19혁명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사회과학적 분석으로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을 재조명하면, 그 사변은 혁명이 아니라 민중항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보인다.   

 

혁명과 민중항쟁은 구분되어야 한다. 민중항쟁은 혁명과정 중에 발생하는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사변들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폭력이라는 개념을 폭행사건이나 폭력범죄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인식하지만, 원래 폭력이라는 것은 물리력의 폭발을 뜻하는 가치중립적 개념이므로, 폭력이라는 말을 폭행사건이나 폭력범죄에 결부시키는 것은 그릇된 언어폐습이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은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의 폭정 아래서 12년 동안 억눌린 민중이 정의의 폭력투쟁으로 그 정권을 무너뜨린 위대한 사변이었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을 혁명이 아니라 민중항쟁으로 인식해야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혁명은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사회체제를 변혁하는 급진적인 변화이다. 그런데 4월 민중항쟁은 자유당 정권을 민주당 정권으로 바꾼 형식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하였을 뿐이다.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하지 못했으므로, 사회체제를 변혁시킬 수 없었다. 4월 민중항쟁으로 등장한 민주당 정권은 민주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당내파쟁에만 골몰하면서 민중이 제기한 민주개혁의 요구를 외면하다가 11개월 만에 5.16군사정변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민주당 정권이 해놓은 일은 진보정치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1961년 7월 3일 반공법을 제정한 것밖에 없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이 체제변혁은커녕 실질적인 정권교체도 실현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정권교체에 그쳤다는 사실은 그 사변이 혁명이 아니라 민중항쟁의 전형이었음을 보여준다.   

 

(2) 혁명은 혁명사상에 의해 일어난다. 정권교체와 체제변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사회력사발전의 역사적 전망을 제시하는 혁명사상이 없으면, 자연발생적인 민중항쟁은 일어날 수 있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은 정권교체와 체제변혁의 실현경로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사회력사발전의 역사적 전망을 제시하는 혁명사상이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민중항쟁의 전형이었다. 

 

(3) 혁명은 조직화된 혁명세력에 의해 일어난다. 만일 조직화된 혁명세력이 없으면, 자연발생적인 민중항쟁은 일어날 수 있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은 조직화된 혁명세력이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급진적이고 폭발적인 민중항쟁의 전형이었다.  

 

 

2. 피어 드 실바가 선정한 장면과 백선엽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59년, 다시 말해서 미국 중앙정보국이 이승만제거공작에 착수하기 전, 백악관이 나서서 이승만사퇴권유공작을 추진했다. <뉴시스> 2015년 4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는 1959년 여름 연방하원의원 월터 저드를 밀사로 서울에 파견하여 이승만을 만나게 했다고 한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서기관 윌리엄 왓츠의 회고담에 따르면, 경무대(청와대의 당시 명칭)를 방문한 월터 저드는 이승만에게 후임자를 정하고 사퇴할 것을 권고한 서한을 전하면서 구두로 자진사퇴를 권유했으나, 이승만은 사퇴권유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승만사퇴권유공작이 성과를 가져오지 못하자, 아이젠하워는 미국 중앙정보국에게 이승만을 제거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렸다. 대통령의 비밀지령에 따라 미국 중앙정보국은 이승만제거공작에 착수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당시는 한국지부가 아니라 서울지부로 불렸음)가 현지공작거점으로 되었다. 1959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 부국장이었던 리처드 헬름즈는 유럽에서 대소련비밀공작을 수행해온 비밀공작전문가 피어 드 실바를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급파했다. 여기서 급파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1958년에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임명된 웨일즈 넬슨이 1959년에 피어 드 실바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한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제거공작을 두 방향으로 밀고 나갔다. 

 

(1)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을 제거한 뒤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울 적임자를 선정했다. 1960년 4월 당시 한국군 연합참모본부 총장(합동참모본부 의장의 당시 명칭)이었던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9년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한 피어 드 실바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장면을 “자주 만나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과 한국 부통령의 깊은 관계는 돈독한 친분관계라는 뜻이 아니라,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한 뒤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울 적임자로 장면을 선정했다는 뜻이다. 1959년 8월 1일 미국 중앙정보국이 작성한 1급 비밀문서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노쇠하여 대통령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 이승만을 사퇴시킬 헌법조항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지난날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한 경력이 있는 자유당 강경파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장면 부통령의 대통령직 계승을 가로막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것은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정치음모를 이미 1959년 8월 이전에 꾸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나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이 붕괴위기에 빠졌을 때, 피어 드 실바는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드는 비밀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60년 4월 25일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압박을 가했다. 그런데 전화통화에서 이승만은 장면을 비롯한 천주교세력이 “폭동을 배후에서 선동했다”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에서 실권 없는 부통령으로 맴돌던 장면은 4월 민중항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1960년 4월 23일 갑자기 사퇴성명을 발표했고, 국회는 그의 사표를 4월 25일에 수리했다. 장면이 부통령직에서 전격사퇴한 것은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피어 드 실바의 비밀공작에 따른 행동이었다. 만일 장면이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의 부통령으로 남아 있다가 그 정권이 4월 민중항쟁으로 무너지면, 친미파쇼정권의 고위관리들이 모조리 사법처리를 받아야 했던 것처럼, 부통령 장면도 당연히 법정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우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래서 피어 드 실바는 4월 민중항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장면을 사퇴시킨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1960년 4월 23일 당시 부통령 장면이 사퇴성명을 발표한 직후, 취재진과 담화하는 장면이다. 장면이 부통령직에서 전격사퇴한 것은 그를 차기대통령으로 만들려는 피어 드 실바의 비밀공작에 따른 행동이었다. 피어 드 실바는1959년에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하여 이승만제거공작을 벌이고 있었다. 이승만은 주한미국대사 매카너기와 피어 드 실바에게 장면을 '폭동을 배후에서 교사, 선동한 불순분자'로 몰아가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만일 장면이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의 부통령으로 남아있으면, 그는 법정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우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래서 피어 드 실바는 4월 민중항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장면을 사퇴시킨것이다.  

 

1960년 6월 19일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방문했는데, 그가 방한하기 직전 국무부는 주한미국대사에게 보낸 비밀전문에서 장면을 아이젠하워 옆에 앉히라는 지령을 내렸다.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은 차질 없이 수행되었고, 마침내 1960년 8월 18일 장면은 내각책임제 국무총리에 피선되어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2)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한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정변을 일으키려는 비밀공작을 벌였다.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60년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피어 드 실바는 당시 한국군 최고지휘관이었던 백선엽을 “자주” 만났는데, 4월 민중항쟁 며칠 전에는 백선엽에게 “(이승만을 제거하는 군사정변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런 놀라운 권유를 받은 백선엽은 자신이 군사정변에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중에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이 한국군 최고지휘관에게 군사정변을 권유한 것은, 군사정변으로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비밀공작이 추진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미국 중앙정보국은 미국에게 순종하지 않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거나 정부수반을 암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테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1953년 8월 19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이란의 모싸덱정권을 전복시켰다. 1954년 6월 27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과떼말라의 아르벤즈정권을 전복시켰다. 1960년 9월 5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민주꽁고의 루문바정권을 전복시켰다. 1961년 5월 30일 국가수반을 암살하여 도미니까의 뜨루히요정권을 전복시켰다. (1961년 5월 16일 한국에서 일어난 군사정변의 배후조종자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정보기관이었다) 1963년 8월 23일 정부수반을 암살하여 남부윁남의 고딘디엠정권을 전복시켰다. 1964년 4월 1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브라질의 굴라정권을 전복시켰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간에 미국은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군사정변을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정부수반을 암살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1990년대 이후에는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력침공을 감행하거나 경제제재를 가중시키거나 핵전쟁도발위협을 가하는 만행을 세계 각지에서 저지르고 있다. 그처럼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미국이야말로 제국주의국가의 전형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전면에 나선 카터 맥루더와 월터 매카너기 

 

피어 드 실바는 백선엽을 앞세운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우유부단한 백선엽이 머뭇거리던 중에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이승만을 제거할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미국은 4월 민중항쟁에 깊숙이 개입했다. 미국이 민중항쟁에 편승하여 추진한 이승만제거공작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1) <연합뉴스> 2010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대사관은 1960년 4월 11일 이후 지방도시들에서 각계층 군중이 학생시위투쟁에 합류하기 시작하였다는 중대한 정보를 미국 국무부에 보고했고, 4월 15일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불안한 정치상황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 결정에 따라, 미국 국무부는 3.15부정선거 책임자들을 사퇴시키고, 선거법과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고, 국가보안법 독소조항을 폐지하고, 참의원 선거를 실시하라고 요구한 각서를 이승만에게 빨리 전달하라고 주한미국대사관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의 그런 긴급지시를 받은 주한미국대사 월터 매카너기는 1960년 4월 25일 오전 9시 10분 국방장관 김정렬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이승만을 빨리 만나 그가 선거를 다시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2)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카터 맥루더는 1960년 4월 19일 오후 5시를 기해 황급히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도시들에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조치했다. 형식적으로는 한국군 육군참모총장 송효찬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송효찬을 앞에 내세워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 맥루더는 육군참모총장 송요찬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한국군 육군 제15사단을 그날 밤 8시 서울 중량교 부근에 출동시켰다. 밤 10시 계엄군은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동대문과 종로를 거쳐 중앙청 청사 주변과 세종로에 포진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 맥루더가 계엄군에게 출동명령을 내리면서 실탄은 지급하지 말고 공포탄과 최루탄만 지급하도록 조치했고, 어떤 경우에도 실탄을 발포하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4월 민중항쟁을 유혈적으로 진압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그런 명령을 받은 계엄군은 경무대로 향하는 마지막 저지선만 지켰을 뿐,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에서는 대규모 시위투쟁이 제지를 받지 않고 계속되었다.  

 

1960년 4월 26일 서울 세종로에 구름처럼 몰려든 시위군중은 그곳에 배치된 계엄군 전차 3대를 에워쌌다.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은 마치 장난감 전차에 올라타는 것처럼 전차에 올라타고 즐거워했고, 계엄군은 시위대원들이 올라탄 전차들을 몰고 시위군중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세종로를 빙빙 돌아다니는 진기한 광경을 펼쳐보였다. 또한 계엄군은 시위를 진압하지 않고, 시위군중이 경무대 방향으로 진격하려고 할 때만 공포탄과 최루탄을 쏘며 저지했다. 미국의 흉계는 민중항쟁에 편승하여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것이었으므로, 민중항쟁을 유혈적으로 진압하지 않았고, 이승만이 사퇴할 때까지 현상유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3) 4월 민중항쟁이 폭발적으로 격화되어 경무대진격투쟁이 계속되자 공포를 느낀 이승만은 한국군 최고지휘관 백선엽을 급히 경무대로 호출했다. 그러나 피어 드 실바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백선엽은 이승만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이승만이 4월 민중항쟁 중에 급히 자기를 찾았지만, 자신은 모른 척 외면했었다고 썼다. 백선엽이 이승만의 호출을 외면한 것은 피어 드 실바가 이승만과 한국 군부를 갈라놓는 이간공작에 성공하였음을 의미한다. 피어 드 실바가 이승만과 한국 군부를 갈라놓은 것은 4월 민중항쟁의 운명을 결정지은 중대사건이었다. 만일 피어 드 실바가 이승만과 한국 군부를 갈라놓지 않았더라면, 이승만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유혈진압을 명령했을 것이다. 만일 이승만에게 충성하는 한국군 일부 부대가 그의 명령에 따라 유혈진압에 나섰더라면, 4월 민중항쟁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처럼 참혹한 대량학살로 막을 내렸을 것이며,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은 붕괴위험을 넘기고 얼마동안 연명하였을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기만적인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직후, 황급히 경무대로 들어간 주한미국대사 매카너기가 이승만과담화하는 장면이다. 맥카너기는 4월 민중항쟁이 서울에서 일어났던 1960년 4월 19일 밤, 그리고 4월 21일 오전에 각각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났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장면이 "폭동을 교사, 선동했다"고 떠들어대면서 미국의 요구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직에서는 사퇴했으나 대통령직에서는 사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 추태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미국 국무부는 1960년 4월 26일 경무대에서 진행된 제3차 이승만-매카너기 담화를 통해 이승만에게 사퇴압박을 가했다.  

 

(4) 1960년 4월 26일 계엄군이 공포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저지하고 있었지만, 시위군중의 경무대진격투쟁은 파상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이승만은 오전 10시 라디오방송을 통해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즉시 무조건 사퇴하겠다는 게 아니라, 조건부로 사퇴하겠다고 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 사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조건부 사퇴라는 기만적인 담화발표로 4월 민중항쟁의 투쟁열기를 식혀놓고, 집권을 연장해보려는 술책이었다. 

 

이승만의 기만적인 대국민 담화가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고, 계엄군 전차들이 시위대원들을 태우고 세종로를 돌아다니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을 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세종로에 나타났다. 주한미국대사 매카너기가 탄 승용차였다. 시위군중은 매카너기가 탄 승용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 차를 향해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이런 현상은 이승만제거공작에 4월 민중항쟁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미국의 흉계를 시위군중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음흉한 정체를 알지 못하고, 미국에게 맹목적인 호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흉계에 넘어가는 지름길인데, 한국 민중은 60년 전이 지난 오늘에도 친미사상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엄군은 매카너기가 탄 승용차가 시위군중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공포탄을 쏘며 길을 열어주었고, 그 승용차는 경무대로 직행했다. 맥카나기는 4월 민중항쟁이 서울에서 일어났던 1960년 4월 19일 밤,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났고, 4월 21일 오전에도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다시 만났었다. 그 두 차례의 담화에서 이승만은 장면이 “폭동을 교사, 선동”했다고 떠들어대면서 미국의 요구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부통령 장면이 전격사퇴했고, 국무위원 전원이 사퇴했는데도,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직에서는 사퇴했으나 대통령직에서 사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승만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런 추태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미국 국무부는 1960년 4월 26일 경무대에서 진행된 제3차 이승만-매카너기 회담을 통해 이승만에게 사퇴압박을 가했다.  

 

경무대에서 이승만에게 사퇴압박을 가하고 대사관으로 돌아간 매카너기는 주한미국대사관 명의로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매카너기는 긴급성명에서 “지금은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승만에게 “국민의 불만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켰다. 미국의 사퇴압박에 더 이상 맞설 수 없게 된 이승만은 1960년 4월 27일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했고, 당일 경무대를 떠나 자신의 사저인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4.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의문이 생긴다. 1948년에 이승만을 대통령에 앉혔던 미국은 왜 마음이 바뀌어 그를 혐오한 것일까? 이승만이 집권기간 중에 미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몇 차례 고집을 부리는 통에 미국이 골치를 앓기도 했지만, 그런 불화는 이승만을 제거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로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왜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일까?  

 

1959년 8월 1일에 작성되었고, 2002년 10월 21일에 기밀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 1급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보국 서울지부는 이승만의 동향에 관한 정보를 “매일같이” 수집하여 본부에 보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이승만은 1959년 5월 하순부터 집무능력이 떨어지고, 기초적인 개념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노쇠해졌다고 한다. 당시 이승만은 84세였는데, 의학용어로 설명하면, 그가 치매전조단계인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이승만이 경도인지장애에 걸렸다는 사실은 1959년 8월 15일 주한미국대사 월터 다울링이 이승만을 면담하고 나서 작성한 비밀전문에서도 드러났다. 다울링은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심신이 너무 노쇠한 이승만은 결재서류도 거의 읽지 않고, 장관들도 만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승만의 처 프란체스카와 30대 초반인 대통령 비서 박찬일이 상의하여 정책을 결정하면, 당시 부통령 이기붕은 박찬일로부터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사실상 통치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승만이 경도인지장애에 걸려 통치력을 상실한 것은 미국이 이승만을 사퇴시키려고 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심층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 심층적인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1960년 3월 25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쁘자노브가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쁘자노브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조선외무성 부상 김태희는 평양주재 사회주의나라 대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조선외무성 부상은 통보에서 주한미국군이 1959년 2월 26일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서 마타도어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MGM-1 마타도어 미사일은 미국이 1952년부터 실전배치한 것인데, 사거리가 1,000km이고, 폭발위력이 50킬로톤급인 W5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지대지순항미사일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를 초토화하고 14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핵폭발위력이 21킬로톤이었는데, 미국이 오산미공군기지에 배치한 지대지순항미사일의 핵폭발위력은 50킬로톤이었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1950년 리비아의 윌러스공군기지에 미국군이 배치한 MGM-1마타도어 지대지순항미사일의 모습이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딸리아가점령했던 리비아 북부지역을 리비아가 1953년에 독립하기 전까지 점령하고 있었다.미국은 1957년 말부터 1958년 초까지 마타도어 지대지순항미사일 대대, 어네스트존 로켓 대대, 280mm 핵포병 대대를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하였다. 이 무기들에는 각종 전술핵탄두들이 장착되었다. 그로써 한국은 미국의 북침핵전쟁기지로 전변되었다. 한국을 미국의 북침핵전쟁기지로 전변시킨 미국은 북침핵전쟁을 도발하기위해 한국군을 재편하고, 핵전쟁훈련을 감행하면서 광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쇠한이승만은 경도인지장애에 걸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승만은 북침핵전쟁도발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노쇠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미국은 자기들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할 유능한 친미인사를 한국 대통령으로내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장면을 대통령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쁘자노브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1960년 3월 25일 조선외무성 부상이 평양주재 사회주의나라 대사들에게 통보한 내용은 미국이 한국에서 북침핵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충격적인 정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외무성 부상은 통보에서 “1957년 7월과 8월 남조선주둔 미군 제7사단이 핵무기로 무장한 제5사단으로 개편되었고, 일본에서 남조선으로 이동배치된 제1기계화사단도 1957년 말 핵무기로 무장한 사단으로 개편되었으며, 1957년 말부터 1958년 초까지 어네스트 존 로켓 대대, 마타도어 지대지순항미사일 대대, 280mm 핵포병 대대가 남조선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가 언급한 MGR-1 어네스트 존 로켓은 미국이 1953년부터 실전배치한 것인데, 사거리는 25km이고, W31 전술핵탄두가 장착된다.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핵탄두를 장착한 이 로켓에는 타격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2킬로톤급 전술핵탄두, 10킬로톤급 전술핵탄두, 30킬로톤급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언급한 M65 280mm 견인핵대포는 미국이 1955년부터 실전배치한 것인데, 사거리는 30km이고, 15킬로톤급 W9 전술핵포탄을 사격할 수 있다. 

 

미국의 북침핵전쟁 도발징후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조선외무성 부상의 통보에 따르면, 미국은 “1953년에 16개 사단이었던 남조선군을 1959년에는 31개 사단으로 증가시켰고, 화력도 증강시켰으며, 1959년에 북침전쟁연습은 64회나 진행되었으며, 남조선에서 탄약공장들과 총기수리공장들이 확장되었고, 초음속 전투기들이 배치될 공군기지들이 새로 건설되고 있고, 군항들이 재건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남조선군 1개 사단을 핵무장 사단으로 개편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남조선군 장교들은 1960년부터 1963년까지 4개년 계획에 따라 핵전쟁훈련을 받고 있으며, 1960년 5월에는 남조선군 25만명이 참가한 핵전쟁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통보내용을 보면, 미국은 1965년에 북침핵전쟁을 도발할 계획을 세우고 핵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6.25전쟁이 정전된 때로부터 불과 6년밖에 지나지 않은 1959년 당시 조선은 미국의 전술핵공격을 막아낼 방어력을 갖지 못했다. 6.25전쟁 중에 핵폭탄을 탑재한 B-29 폭격기 편대를 조선 영공에 침입시켜 히로시마의 핵참화를 재연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했던 미국이 1959년에는 각종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순항미사일, 로켓, 핵포탄으로 히로시마의 핵참화를 재연해보려는 북침핵전쟁도발에 미쳐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쇠한 이승만은 경도인지장애에 걸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승만은 북침핵전쟁도발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노쇠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1960년 당시 북침핵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던 미국은 자기들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할 유능한 친미인사를 한국 대통령으로 내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장면을 대통령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민중은 4월의 거리와 광장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건만, 이승만을 장면으로 교체하려는 미국의 음흉한 정치음모가 실행되는 비극이 일어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체는 여전히 은폐되었다. 그리고 어언 60년 세월이 흘렀다. 

 

4월 민중항쟁 기념탑에 새겨진 글귀처럼, 지난 60년 동안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를 그대로 두고서는 8천만 민족이 미국의 핵전쟁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해마다 4월이 오면 피묻은 혼의 하소연으로 들리고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를 그대로 두고서는 5천만 민중이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해마다 4월이 오면 피묻은 혼의 하소연으로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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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180석? 문재인 독재 시작될 것"

친문 패권주의, 유사 전체주의, 신형 공안국가"…위기론 쏟아낸 통합당

21대 총선을 사흘 앞둔 12일,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는 한 마디로 친문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폭주를 계속하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야당에게 이를 견제하기 위한 힘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거"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4.15 총선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정권 심판론'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견제론'을 부각시키며 '읍소' 전략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이날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4.15 총선 대국민 호소 집중 유세를 열고 "현 정권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마저 장악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는 친문 패권세력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는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박형준, 신세돈 공동선대위원장, 나경원 서울 동작을, 오세훈 서울 광진을 후보, 유승민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박형준 위원장은 "안 그래도 청와대가 독주하는 '청와대 정부'인데 의회 권력까지 독점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유사 전체주의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울산 부정선거처럼 청와대가 선거 부정을 자행했고 조국 사태로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무너졌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하게 된다면 윤석열 총장을 쫓아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이용해 자신으로 향하는 권력형 비리 수사를 막고 신형 공안국가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보수의 분열을 극복하고 중도까지 아우르는 통합을 했지만, 혁신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과거의 체질과 행태에서 못 벗어나 국민을 걱정시키는 일도 근절하지 못했다. 이 점에 대한 책임 통감하고 있다"고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그는 "혁신하고 또 혁신하겠다. 총선 직후부터 더 크고 더 근원적인 혁신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도 "과거에 우리 잘못한 게 많이 있었다. 아직까지 국민들의 마음을 다 풀어드리지 못했다"는 반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황 대표는 "얼마 전부터는 이제 정말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히려 제가 제 몸을 낮추고 자세를 낮출수록 과거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어 "지금 이 문재인 정권의 오만이 정말 극에 달했다.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얻겠다'고 하고 있다"며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이러한 무도한 정권, 우리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0일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비례대표까지 합치면 범진보 진영 180석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대목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이 정권이 만약에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 마디로 나라 망한다"며 "미래통합당 똘똘 뭉쳐서 하나 되었지만, 아직까지 이 무도한 정권을 자신 있게 무너뜨리기에 아직 부족하다.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해주셔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유승민 의원도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면 '이니(문재인 대통령)' 하고 싶은대로 하는 문재인 독재가 시작된다"며 "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면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정말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저희들 국민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 진심을 담아 반성과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하지만 선거는 심판이고 선택이다. 국민들은 코로나 때문에 지난 3년 간의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절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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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읽는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

2차대전의 광풍 속 은신처에서 2년을 보내야 했던 안네가 남긴 기록들

20.04.12 11:09l최종 업데이트 20.04.12 11:09l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코로나19 자가격리를 위반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무단이탈 등으로 자가격리 지침을 어겨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 중인 사람이 70명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고 놀랐다.

하루아침에 방 한 칸에 갇혀 외출은 고사하고 가족과도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갑갑해서, 꽃구경을 하고 싶어서 등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자가 격리를 위반하고 거리를 활개하고 다니는 이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뉴스에서 들을 때면 참 이해하기 힘들다. 급기야 전자팔찌, 손목밴드를 부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코로나 시국'에 문득 '안네'가 떠올랐다. 
         
2차 대전의 광풍 속 은밀한 은신처에서 2년을 보내야 했던 '안네'.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창 밖을 내다보는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은신처의 생활. 14살의 소녀가 키가 한 뼘이나 자라 16살의 숙녀로 성장해 간 2년의 세월 동안, 은신처에 갇혀 지내야 했던 안네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견뎠을까?

좁은 은신처에서 2년 동안 매일같이 해온 일
 
 안네 프랑크
▲  안네 프랑크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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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살던 14살의 평범한 소녀 안네. 이제 막 중학생이 돼 친구들과 어울려 거리를 활보하던 명랑한 소녀 안네에게 은신처의 생활은 정말 갑자기, 난데없이 어느 날 시작됐다. '인종 청소'를 명분으로 한 나치의 광풍이 전 유럽을 휩쓸던 1942년 7월 6일, 급작스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곳, 아버지의 잼 공장 3층 창고와 4층 다락방이 아버지가 미리 마련해 둔 가족들의 은신처였다. 안네는 이곳에서 나치에 의해 발각되는 1944년 8월 4일까지 2년 동안 숨어 지내게 된다.
      
아버지 회사의 공장장이었던 판 펜스의 가족 3명과 안네의 가족 4명, 그리고 치과의사 알베르트 뒤셀까지 합류해 8명이 함께 지내게 된 은신처. 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24시간 함께 지내야 하는 은둔 생활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창문을 여는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생활. 너무 답답하면 창문 틈에 코를 가까이 대고 바람을 마셨다는 안네. 그것도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시간들이 얼마나 암담했을까? 은신처에 숨은 지 4개월여 뒤인 1942년 11월 28일 일기에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수수께끼 놀이를 하기도 하고, 어두운 곳에서 체조를 하기도 하고, 영어와 불어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즉석에서 독서토론회를 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유쾌하고 긍정적인 소녀라고 밝힌 안네는 은신처에서도 불평하기보다 모든 상황을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자유의 시간을 기다리며 언니와 함께 매일 불어 불규칙 동사 5개씩을 매일 외우고 영어, 라틴어를 공부하기도 한다. 책 읽기에도 몰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일, 안네는 일기를 쓴다. 
 
이곳에서는 날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납니다. 하지만 나는 게으르고 지쳐 있기 때문에 도저히 모든 이야길 다 쓸 수는 없습니다.  
     
 책 본문에 실린 안네 가족이 살던 은신처 구조도.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의 창고 3, 4층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3가족, 8명이 2년을 살았다.
▲  책 본문에 실린 안네 가족이 살던 은신처 구조도.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의 창고 3, 4층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3가족, 8명이 2년을 살았다.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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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숨겨진 다락방에서 한 소녀가 아니라 세계적인 대작가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좁은 공간, 똑같은 일상, 똑같은 사람들, 그런데 안네는 매일 도저히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적고 있다.

안네는 늘 눈을 반짝반짝 뜨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말을 듣는 데 귀 기울였다. 판단 아주머니와 엄마는 왜 다투는지, 치과의사 엘베르트 뒤셀은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의 특성과 생각, 말 어느 것 하나도 흘려듣지 않고 관찰한다.

글의 힘은 남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내가 '발견'하는 데 있다. 나의 발견에 사람들이 공감할 때 나의 글은 힘을 가진다.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글감을 발견해내는 능력, 작가에게 필요한 이 능력이 은신처에서 갇혀 사는 안네에게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발견해내고야 말겠어요"
 
 문학사상사 <안네의 일기>. 총 466페이지로 기존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책보다 200페이지가 더 길다.
▲  문학사상사 <안네의 일기>. 총 466페이지로 기존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책보다 200페이지가 더 길다.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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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써 내려간 <안네의 일기>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 10위에 오르며 2700만 부가 팔렸다. 베스트셀러답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을 거치며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테지만,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를 읽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안네의 일기>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무삭제판은 기존 <안네의 일기>에 비해 200여 쪽이 더 많다. 그러니 기존 <안네의 일기>는 거의 반쪽짜리 일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안네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무삭제판 < 안네의 일기>를 읽어야 한다. 
     
반쪽짜리 <안네의 일기>가 초판으로 나온 이유는 2차 대전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빠가 안네의 일기 원본에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을 삭제하고 출판을 했기 때문이다. 안네가 적나라하게 적어놓은 동거인들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여성으로 성숙해 가는 안네가 느끼는 페터와의 떨리는 사랑에 관한 부분들을 다 삭제하고 펴낸 탓이다. 

<안네의 일기> 초판이 나온 50년 뒤 발간된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는 아무리 봐도 10대 소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깊이를 담고 있는 책이다. 때문에 한때 <안네의 일기>는 안네가 직접 쓴 게 아니라는 진위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네덜란드 국립 자료 연구소에서 모든 조사를 거쳐 안네가 직접 쓴 일기임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나는 글 쓰는 걸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엄마와 판단 아주머니, 그 외에 많은 여성들처럼 매일 집안일만 하다가 어느 사이엔가 잊힌 존재로서 한평생을 보내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꼭 무언가를 얻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이들 말고도 이 한 몸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무언가를 말이에요.

1940년대의 시대 상황 속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가졌던 안네는 훗날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은신처에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들 가족이 2년간의 은둔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 공장의 직원인 클레이먼과 베프, 퀴흘레르가 옥죄어 오는 감시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활을 은밀하게 뒤에서 도왔기 때문이다. 몰래 배급표를 사서 물자를 공급해 주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안네에게 넣어주기도 한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안네는 작가의 꿈을 키운다. 전쟁이 끝나면 네덜란드 국민들의 전쟁 수기를 모집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안네는 더 열심히 일기를 쓴다. <은신처>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쓸 계획도 세워둔다. 
 
내가 결국에는 이 일기장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키티는 언제나 참아주고 나의 주장을 끝까지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뎌 보겠다고 말이에요. 눈물을 삼키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나의 길을 발견해 내고야 말겠어요.

'코로나 시대'에 안네의 일기를 읽는다는 것
 
 안네의 일기장
▲  안네의 일기장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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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사람보다 잘 참는다'라고 믿었던 안네는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는 어려움과 고통, 전쟁에 대한 공포,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이해할 수 없는 박해 등 안네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일기장 '키티'에게 털어놓는다. 안네의 마음이 거울처럼 오롯이 비쳐 드러나 있는 <안네의 일기>. 그런 와중에도 안네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주는 선한 이웃들을 통해 다수 인간의 선함을 믿고 결국은 해방될 날이 다가올 것임을 간절히 기대한다.   
 
네덜란드 전체에서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보수를 받고 안 받고는 별개로 당국에 쫓기고 있는 기독교도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까지도 숨겨 주고 있었는가를 나중에 알게 되면 누구라도 틀림없이 놀랄 겁니다 . - 1943년 5월 2일 

마치 친구에게 고백하듯 경쾌한 어투로 일기장 친구 '키티'에게 진심을 털어놓았던 안네, 안네는 항상 일기장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그럼, 다음에 또. 안네로부터

2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그 약속은 1944년 8월 1일의 마지막 일기 이후 더 이상 지켜지지 못한다. 사흘 뒤인 8월 4일, 독일의 비밀경찰 습격을 받고 은신처에 있던 8명은 모두 잡혀간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오직 아버지만 살아남았을 뿐 엄마와 언니, 안네는 모두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만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만약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훌륭한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수많은 대표작을 쓴 뛰어난 작가를 가지게 됐을지도 모르는데... 인간의 계산과는 다른 신의 뜻이 있는지, 안네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어쩌면 안네는 죽어서나마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타성에 젖어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내 주위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이고 싶습니다. 나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저널리스트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겨우 16년을 살다 지구별을 떠났지만 그의 일기는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수십 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됐고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으니,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안네의 꿈은 이뤄진 것은 아닌지...

읽을 때마다 감동을 안겨주는 책이긴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인에게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의 미션이 주어진 코로나 시국에 읽는 <안네의 일기>는 갇혀 있는 안네의 고통을 새삼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2주가 아니라 2년을 잘 버티고 인내한 안네. 안네에게 2주의 자가격리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몸은 비록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되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강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안네를 보면서, 어떠한 혹독한 조건도 감히 인간의 정신까지는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다. 그들에게 바로 그곳, 세상과 격리된 조용한 공간에서 <안네의 일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반드시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 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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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 완전판

안네 프랑크 (지은이), 홍경호 (옮긴이), 문학사상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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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정치국회의 개최, 코로나19 결정서 채택

정치국 위원 박정천, 후보위원 리선권.김여정...최고인민회의는 연기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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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2  07: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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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노동당은 11일 평양 당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를 개최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북한 노동당은 11일 평양 당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를 개최해 코로나19 대응책과 간부인사 등을 다뤘다. 4월 10일자 소집을 공고했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는 연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신문>은 12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가 4월 11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되였다”며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정치국회의에 참가하시였다”고 보도했다.

특히 정치국회의 의정(의제) 세 번째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에 제출할 간부문제에 대하여’를 다룬 것으로 보도해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소집된 최고인민회의는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3월 20일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를 주체109(2020)년 4월 10일 평양에서 소집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신문은 정치국회의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들이 참가했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이 회의 사회를 맡았다고 전하고 의정들을 소개했다.

1. 세계적인 대류행전염병에 대처하여 우리 인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
2. 주체108(2019)년 국가예산집행정형과 주체109(2020)년 국가예산에 대하여
3.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에 제출할 간부문제에 대하여
4. 조직문제에 대하여

   
▲ [캡쳐사진 - 노동신문]
   
▲ [캡쳐사진 - 노동신문]

신문은 코로나19관련 첫 번째 의정과 관련 “지난해말에 발생한 비루스전염병이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면서 국경과 대륙을 횡단하는 전인류적인 대재앙으로 번져지고있는 현실은 비루스감염위험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같은 환경은 우리의 투쟁과 전진에도 일정한 장애를 조성하는 조건으로 될수 있다”며 “정치국회의에서는 조성된 대내외환경으로부터 출발하여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일부 정책적과업들을 조정변경할데 대한 대책적문제들을 연구토의하였다”고 전했다.

이 같은 토의 결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공동결정서’로 “세계적인 대류행전염병에 대처하여 우리 인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를 채택했다는 것.

신문은 “공동결정서에는 국가적인 비상방역사업을 계속 강화해나가며 올해 경제건설과 국방력강화사업, 인민생활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들과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 무력기관을 비롯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의 투쟁과업과 방도가 밝혀져있다”고 전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에 개최된 ‘당중앙위 제7기 제5차전원회의’(12월 당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일부 정책적 과업들을 조정변경’하겠다고 언급한 점에 비추어 보아 당초 목표치들을 하향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의정인 조직문제 토의 결과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이 정치국 위원에, 리선권 외무상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정치국 후보위원에 각각 보선됐다. 이외에도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당중앙위 검사위원회 위원, 당중앙위 검열위원회 위원들이 소환 및 보선됐다.

   
▲ 정치국회의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리선권 외무상, 김여정 노동당중앙위 제1부부장. [캡쳐사진 - 노동신문]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을 보선하였다.
박정천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리선권동지, 김여정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들을 소환 및 보선하였다.
리태일동지, 리선권동지, 전학철동지, 김철동지를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박명순동지를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김정남동지, 리성학동지, 전명식동지, 신창일동지, 장영록동지, 김순철동지를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을 소환 및 보선하였다.
박영진동지를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들을 소환 및 보선하였다.
리경철동지, 원형길동지를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포사격 현지지도에 빠짐없이 동행한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정치국 위원에 발탁됐고, 그동안 언론 보도에 등장하지 않던 리선권 외무상이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최근 청와대와 백악관을 향해 개인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김여정 노동당중앙위 제1부부장은 위원이 아닌 후보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신문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 공보’ 제목의 별도 기사를 통해 이같은 정치국 인선에 대해 보도하고 3명의 사진을 게재했다.

신문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정치국회의에서 공동결정서를 채택하여 중요하고도 새로운 정책들과 과업들을 제시한데 맞게 각급 당조직들과 간부들, 당원들이 더욱 각성분발하여 당중앙의 정책적방침들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거세찬 혁명열풍을 일으켜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지도밑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는 현시기 우리 혁명앞에 나선 중요한 문제들을 제때에 정확히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과업들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전진활로를 힘차게 열어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추가,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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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친일 아닌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의 주류”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1주년 맞아 ‘기념관 기공’ 선포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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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1  11:3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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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친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의 주류였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어울쉼터에서 열린 ‘제101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및 기념관 기공식’에 참석해 “광복이 우리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우리는 2021년 완공될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 영원히 새길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 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던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아 기념관 기공을 선포한 것이다.

1919년 4월 11일 이후 국회와 군대를 보유하고 외교활동을 한 정상 국가였음에도 27년 동안 ‘길 위의 나라’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드디어 ‘희망의 집’을 갖는다는 의미도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건립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임시정부의 정신을 오늘의 역사로 우리 곁에 두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은 단지 ‘반일’에 머물지 않았다”며 “‘자주독립’과 함께 인간의 존엄을 본질로 하는 ‘자유평등’, 성별, 빈부, 지역, 계층, 이념을 아우르는 ‘화합과 통합’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는 ‘인류애’라는 위대한 정신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는 나라의 주인으로 일어난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 대한민국을 세운 수많은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길 것”이라고 알렸다. 특정 영웅만이 아닌 “교사와 학생, 종교인, 경찰과 관료, 의사와 간호사들, 이름 없는 지게꾼과 장돌뱅이, 맹인, 광부, 소작인, 머슴, 기생들도 독립운동사의 자랑스러운 주인공으로 새겨질 것”이다.

나아가 “우리 군과 경찰의 뿌리도 함께 남겨질 것”이라고 밝혔다. 신흥무관학교, 광복군, 독립운동가들이 ‘국민의 군대’의 뿌리이고,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백범의 신조가 경찰 정신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 1943년 발간된 광복군가 제1집에 수록된 '국기가' 악보. ‘청산리 대첩’ 주역인 이범석 장군이 작사했고, 광복군 참모장 한형석 장군이 작곡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 대통령은 “독립 선열들의 정신과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깊이 새기며,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끼리 연대하고 협력할 것이며. 나아가 세계와도 연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고난과 역경에 맞설 때마다 우리에게 한결같은 용기의 원천이 되어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우리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때도, 분단과 적대를 넘어 평화와 통일을 꿈꿀 때도, 포용과 상생이라는 인류의 가치를 구현해갈 때도, 언제나 가장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날 행사에는 5부 요인, 정당 대표, 국무위원과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이종찬 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회장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과 독립유공자의 후손 등 약 100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국방부 군악대 중창단이 ‘국기가’를 부르면서 시작됐다. 광복군이 국기 게양 때 불렀던 독립군가다. 광복군 국내지대사령관 오광선과 한국혁명여성동맹원 정현숙의 증손인 신세현(23) 육군 소위와 광복군 제3지대원 송윤화의 외손인 박성욱 해병대 상사가 태극기를 게양했다.

<문재인 대통령, 제101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사(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임시정부 요인 후손과 광복회원 여러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오늘의 우리를 만든 뿌리입니다.

대한민국의 법통이며 정신입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었던,

위대한 독립의 길을 생생히 기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치열했던 역사의 장면들, 뜨거웠던 사람들의 삶을

임시정부 기념관에 영원히 새겨 넣고자 함께했습니다.


2017년 12월,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고,

독립운동가들의 혼과 숨결이 서려 있는 그곳에서

“임시정부 기념관을 짓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2015년 기념관 건립을 처음 제안하고 건립을 위해 애써 오신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와 김자동 회장님,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와 이종찬 회장님께서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은 오늘

그 기념과 함께 드디어 기공식을 하게 되어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한 세기 동안 임시정부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해온

임정 요인들의 후손과 광복회원들께

국민들을 대표해 깊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국민 여러분,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에 빼앗긴 우리 민족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수립했고,

우리가 독립국 민주정치의 자유민임을 선언했습니다.

이민족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군주주권의 역사를 국민주권의 역사로 바꾸었고,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의 새 역사를 열었습니다.

 

이곳 서대문형무소에는

3·1독립운동의 ‘순결한 남녀의 피’가 배어있습니다.

3·1독립운동으로 각성한 평범한 이들이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그들의 혼이 이곳에 서려 있습니다.

3·1독립운동이 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27년간의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기어코 해방과 자유를 쟁취하여

오늘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임시정부는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걸었지만,

결코 혼자인 적이 없었습니다.

국내와 중국, 연해주의 동포는 물론

미국 하와이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주의 동포들,

멕시코의 사탕수수 농장과 쿠바 에네켄 농장의 동포들까지

피와 땀이 담긴 성금을 임시정부에 보냈습니다.

 

1935년, 일본의 감시와 공격을 피해 상해에서 탈출한 임시정부는

항주,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의 도시를 거쳐

1940년 중경에 도착했습니다.

독립의 열망을 간직한 겨레가 있었기에

장장 6천 킬로미터가 넘는 대장정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고,

1942년 독립운동 세력 내의 좌우합작으로

항일무장투쟁 역량을 집결한 광복군을 창설해,

미얀마와 인도에서 영국군과 함께 연합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치열한 독립투쟁과 줄기찬 외교적 노력으로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우리는

식민지 나라 중 유일하게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진정 위대한 것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전 속에서

민족의 역사를 변화시키고 민주적 역량을 발전시킨 것입니다.

인내와 헌신, 연대와 협력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기틀을 단단히 다진 것입니다.

 

임시정부 최고의 어른, 석오 이동녕 선생은

“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山溜穿石)라는

좌우명을 남겼습니다.

 

역경에 굴하지 않았던 숭고한 애국심의 바탕에는

평범한 이들이 보여준 용기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고,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인간의 위대함이 있었습니다.

 

장구한 세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임시정부의 선열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건립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임시정부의 정신을

오늘의 역사로 우리 곁에 두기 위해서입니다.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은 단지 ‘반일’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자주독립’과 함께 인간의 존엄을 본질로 하는 ‘자유평등’,

성별, 빈부, 지역, 계층, 이념을 아우르는 ‘화합과 통합’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는 ‘인류애’라는

위대한 정신을 유산으로 남겨주었습니다.

 

오늘 김원웅 광복회장님이 들려준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윤기섭 지사님의 외증손녀,

정고은 학생이 낭독한 ‘대한민국 헌법’ 속에서

우리는 그날의 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는

나라의 주인으로 일어난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

대한민국을 세운 수많은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길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 종교인, 경찰과 관료, 의사와 간호사들,

이름 없는 지게꾼과 장돌뱅이, 맹인, 광부, 소작인, 머슴, 기생들도

독립운동사의 자랑스러운 주인공으로 새겨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군과 경찰의 뿌리도 함께 남겨질 것입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시작해 광복군으로 결실을 본 육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한 ‘한인 비행사 양성소’에서 시작해

광복군 총사령부 ‘공군설계위원회’가 기틀을 세운 공군,

독립운동가와 가족들, 민간 상선사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해군,

우리는 임시정부 기념관에서 ‘국민의 군대’의 뿌리 역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에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이

경찰의 임무로 강조한 ‘자주독립의 정신과 애국안민의 척도’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경찰 정신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민주·인권·민생’ 경찰의 뿌리가 임시정부에서 시작되었음을

자긍심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광복이 우리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우리는 2021년 완공될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 영원히 새길 것입니다.

친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의 주류였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3·1독립운동의 유산과 임시정부의 정신이

오늘에 살아있게 하고,

우리 미래세대들이 새로운 역사의 당당한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고 알리는 일을

잠시도 멈추지 않겠습니다.

 

지난 3월 19일 국무회의에서,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효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을 비롯한

전국 독립유공자 합동묘역 12개소와

6·25 전몰군경 등이 안장된 국가유공자 합동묘역 45개소를

국가관리 묘역으로 지정하려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효창공원을 ‘독립기념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해 가고 있습니다.

2024년이면,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가의 삶과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될 것입니다.

 

국가유공자의 보훈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이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진료를 받으실 수 있도록

위탁병원을 지난해 320개에서 올해 420개로 늘리고,

2022년까지 640개로 확대하겠습니다.

 

올해 광주보훈병원 재활센터의 개원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네 개 지방보훈병원에 재활센터를 확충하면

진료와 재활, 요양을 연계한 진료체계도

더 편리하게 구축될 것입니다.

올 11월이면 강원권 요양원이 완공됩니다.

내년 전북권 요양원도 차질 없이 문을 열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독립·호국·민주’에 헌신한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에 대한 보훈과 예우는

국가의 존재가치와 품격을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정부는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이 일상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국가의 도리를 다해 나가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임시정부 요인 후손과 광복회원 여러분,

 

100년 전 선열들이

반드시 광복이 올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고난을 이겨냈듯,

오늘 우리는 연대와 협력으로 ‘코로나19’의

비상하고 엄중한 상황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성숙한 자제력과 인내심으로 일상을 양보해 주셨고,

서로 나누고 격려하며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독립 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낍니다.

 

 

‘코로나19’에 함께 맞서면서 우리는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성찰하며,

‘우리’를 위한 실천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넘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사회·경제적 위기는

더욱 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가 오든 우리는

국민의 통합된 힘으로 다시 위기를 극복할 것입니다.

독립 선열들의 정신과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깊이 새기며,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끼리 연대하고 협력할 것이며,

나아가 세계와도 연대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고난과 역경에 맞설 때마다

우리에게 한결같은 용기의 원천이 되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우리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때도,

분단과 적대를 넘어 평화와 통일을 꿈꿀 때도,

포용과 상생이라는 인류의 가치를 구현해 갈 때도,

언제나 가장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4월 11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자료제공-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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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잘못은 대구시가 사과는 문재인 정부가… 의료진 수당 늦장 지급

의료진 수당 늦장 지급, 누구의 잘못일까?
 
임병도 | 2020-04-10 09:15: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월 8일 <머니투데이>는 대구시에 파견된 의료진들이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유가 복건복지부 때문이라는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의 브리핑을 보도했습니다.

채 부시장은 “병원에서 근무 일수 등을 통보하면 4대 보험과 세금 등을 공제하고 지급된다. 당초 2주마다 지급할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보건복지부 지침이 3월에 바뀌면서 한 달 단위로 지급하도록 됐다”고 말했습니다.

<머니투데이> 보도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중앙사고수습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가 애쓰신 의료진에게 적절한 시기에 약속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며 사과를 했습니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파견된 의료인력의 지원·운영 지침을 현장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면서 “파견 의료진에 대한 예우에 불미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대구시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여 조속히 수당이 지급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팩트체크] 의료진 수당 늦장 지급, 누구의 잘못일까?

▲의료진 수당 늦장 지급에 대한 대구시 해명에 여준성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대구시 해명 이후 여준성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수본의 지침에는 ‘한 달 단위로 지급하라’는 등 지급시기를 규정한 내용이 없습니다.”라며 “대구시는 그런 지침이 있다면 공개해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실제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중앙사고수습본부’가 마련한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파견된 의료인력 지원·운영 지침안’에는 “수당 등 지급은 최소 2주 이상 근무했을 경우 지급을 원칙으로 하되, 현장 및 개인 사정에 따라 2주 미만 근무의 경우도 지급”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여 보좌관은 ‘중앙정부가 대구시에 3월 3일 선별진료소 파견인력 : 40억원, 3월 18일 생활치료센터 파견 인력, 운영비 포함 188억원, 3월 20일 의료기관 파견인력 82억원 (약 450명분, 2개월분)’등 의료인력 인건비를 이미 지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일찍 지원했는데 왜 아직도 급여가 지원되지 않았습니까?”라며 의료진 수당 늦장 지급의 원인이 대구시에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에 자원봉사를 온 의료진 총 2100여 명이며 선별 진료소와 보건소에 근무하는 900여 명만 수당을 받았고, 나머지 1200여 명은 받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영웅 홀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4월 1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 PDF

4월 1일 <중앙일보>는 ‘‘코로나 영웅’ 의료진을 이토록 홀대해도 되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오판을 거듭한 정부가 그나마 사태를 진정시킨 의료진에 큰절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들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일을 연거푸 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또한 <중앙일보>는 “정부는 임시 선별진료소(드라이브 스루 진료소)에서 봉사하는 의료진에는 위험수당을 제공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파견된 의료인력 지원·운영 지침안’에 명시된 의료진 보상 기준 ⓒ보건복지부

‘중앙수습본부’가 마련한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파견된 의료인력 지원·운영 지침안’을 보면 군의관과 공보의, 공공기관 의사는 12만원, 간호사는 7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민간 의사는 1일 45~55만원, 간호사는 30만원 수준의 수당을 받습니다.

수당 지급 조건에는 의료진이라고 명시돼 있지 선별진료소는 적게 받거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모든 민간 인력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임시선별진료소 파견 의료인의 보상기준에도 ‘주휴 및 위험수당 등 각종 수당 포함’이 명시돼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의사들이 보호복이 없어 수술 가운을 착용했다”라고 보도했지만, ‘중앙수습본부’는 방역용 보호복 부족을 이유로 수술 가운을 입었던 사례는 현재까지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중앙일보>는 “의료기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엄포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손해배상 및 구상권 청구는 명백한 위법 사실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대부분의 요양병원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손해를 본 의료기관에 1,020억원을 개산급으로 지급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치는 손실 보상금이 확정되기 전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사전에 어림셈으로 계산해 신속히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2월 21일 한국기자협회는 ‘코로나19 보도 준칙’에서 “코로나19 관련 허위 조작 정보의 재인용 보도와 인권 침해, 사회적 혐오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보도를 자제할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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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첫날 자중지란... 막말에 무너지는 통합당

차명진 '제명' 대신 '탈당 권유'에 수도권 동요... "이런 식인데 어찌 숨은 보수표 바라나"

20.04.10 19:31l최종 업데이트 20.04.10 19:31l

 

 

'세월호 막말' 윤리위 소명 마친 차명진 후보 '세월호 막말'로 논란이 되고 있는 미래통합당 경기 부천병 차명진 후보가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세월호 막말" 윤리위 소명 마친 차명진 후보 "세월호 막말"로 논란이 되고 있는 미래통합당 경기 부천병 차명진 후보가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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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첫날, 미래통합당의 대오가 흔들리고 있다. 차명진 후보의 '막말'을 옹호하는 강경보수와 비판하는 중도보수가 갈렸기 때문.

차명진 후보(경기 부천병)는 지난 6일 녹화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성관계를 뜻하는 은어) 사건이라고 아시나?"라며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또 다시 '세월호 막말' 논란을 일으켰다. (관련 기사: 차명진 '세월호 망언' 또 터졌다... 통합당 "제명")

그러자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대노하며 차 후보의 '제명'을 공언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관련 기사: 차명진 막말에 고개 숙인 김종인 "통합당에 한 번만 기회를") 정당 소속 지역구 후보가 제명될 경우,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후보 자격도 상실된다. 황교안 대표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직접 사과했다. (관련 기사: 황교안, 차명진 '또' 막말에 직접 사과 "매우 부적절하고 그릇된 인식")

그러나 정작 차명진 후보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10일 오전, 차 후보는 통합당 윤리위원회에 출석한 뒤 기자들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그치지 않는 차명진 막말 "세월호 우상화 막으려 ○○○ 사건 폭로") 차 후보의 소명을 들은 당 윤리위원회 역시 '제명'이 아니라 '탈당 권유' 징계를 내렸다. (관련 기사: 통합당, 차명진에 '제명' 대신 '탈당권유'... 태극기가 김종인보다 쎘나)

엇갈리는 내부 메시지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역 부근에서 동작구갑 장진영 후보 지원유세를 하기 위해 유세차량에 올라 안경을 바로 쓰고 있다.
▲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역 부근에서 동작구갑 장진영 후보 지원유세를 하기 위해 유세차량에 올라 안경을 바로 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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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참 어렵게 됐다."

 

수도권에 출마한 한 통합당 후보 캠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선거인데, 더 어렵게 됐다"고 한탄했다. 해당 관계자는 "보수에게 중요한 가치가 '품격' 아니겠느냐"면서 "저렇게 일반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당에서 놔두면, 어떻게 유권자에게 통합당을 찍어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차 후보의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두고 당에서는 잡음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당장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윤리위 결정이 한심하다"라며 "그 사람(차명진 후보)을 통합당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역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해주실 것이라 믿는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반면 같은 날 황교안 대표는 서울 종로 유세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리위는 윤리위대로 독자적인 권한이 있어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라며 "좀 더 숙의하고 관계 등을 살펴 상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여러 의견이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같이 협의해보도록 하겠다"라며 사실상 차 후보가 선거를 뛸 수 있는 시간을 준 셈이다.

통합당 내 주요 스피커의 메시지가 엇갈린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일각에서는 당의 이번 결정을 강성 보수 지지자들의 비례 투표를 의식한 결과로 해석한다. 우리공화당, 친박신당, 기독자유통일당, 한국경제당 등 군소 우파 정당이 난립하는 가운데, 자칫 차명진 후보에 대한 중징계가 강경보수의 표심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장 기독자유통일당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황교안 대표와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비판하며 '제명 철회'를 요구했다. 기독자유통일당에서 활동 중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차명진 후보의 발언을 옹호했다. 통합당 탈당 후 한국경제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은재 의원도 해당 이슈에 숟가락을 얹었다. 심지어 통합당 내 일부 당직자도 공개적으로 차 후보의 제명 결정에 반발하는 의견을 SNS 등을 통해 표출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 다른 수도권 후보 캠프의 관계자는 "결국 '아스팔트 우파'에게 중앙당이 굴복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온다"면서 "유권자들을 뵐 면목이 없다, 비례 투표 몇 표 얻겠다고 수도권 지역구 후보를 버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대로는 (여당 우세인) 여론조사 결과 그대로 투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식으로 당에서 메시지가 나가는데 어떻게 숨은 보수표가 투표장에 나오겠나"라고 하소연했다.

"통합당에 투표할 동력 떨어트리는 행위"
  
 종로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로구민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종로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로구민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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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연구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윤리위의 이번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장 소장은 이어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투표를 주저하게 될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조차도, 통합당에 투표할 동력을 떨어트리는 행위"라고 짚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 역시 "일련의 막말 사태가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득표에 오히려 1~2%p가량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며 "'더불어민주당 우세'라는 대세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당사자인 차명진 후보는 "윤리위원회의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린다"라며 "통합당 후보로 선거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차 후보는 "제가 선거에서 이기면 당도 저를 못 쫓아낼 것"이라며 "자유우파 국민, 부천소사 유권자께서 차명진을 살려 주시라"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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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총선 앞둔 새벽 6411버스, 해고가 무서워 소독제 비비는 사람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4/11 11:44
  • 수정일
    2020/04/11 11: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잘 살게 해달란 게 아니라 잘못된 걸 고쳐 살자는 건데…"

고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언급해 알려진 '노동버스'. 6411번 버스는 구로동에서 출발해 대림, 영등포를 거쳐 강남 개포동까지 간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밥 지어 먹고 출근해야 하는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에게 발이 되어주는 버스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중 일부.)

 

노회찬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언론이 이 버스를 조명하며 '투명인간들을 위한 정치'를 말했다. 4.15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10일, 구로 거리공원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첫 차에 그들과 함께 올랐다. 닷새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 정치가 이 투명인간들의 이름을 불러줄까? 

 

 

새벽 세시 사십분, 길가에 벚꽃은 피었지만 아직 코끝이 시렸다. 차 하나 없는 텅 빈 거리 위로 달이 밝게 떠있다. 10분쯤 지나니 마스크를 쓴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정류장으로 모였다. 갓길에 세워진 6411번 버스에 시동이 걸리고 불이 켜졌다. 발 디딜 틈이 없다던 6411번 첫차는 생각만큼 붐비지 않았다. 새벽 만원버스를 줄이기 위한 서울시의 정책으로 지난해부터 한 대 증차돼 두 대가 된 덕이다. 

 

새벽 네 시 정각, 6411번 버스는 정류장에 모인 아주머니들을 태우고 어김없이 출발했다. 두 대가 같이 출발했지만 앞서 출발한 차량에 많은 아주머니들이 올라탔다. 960원. 이른 시각이라 조조할인이 된 버스요금이 찍혔다.

 

증차된 덕에 출발 때는 출발 때는 붐비지 않았지만, 두어 정류장 뒤인 신도림역, 구로시장, 대림역을 거치는 10분 새 자리가 동났다. 버스에 올라탄 아주머니들은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보다 덜 춥네"라며 인사를 나눴다. 매일 보는 얼굴들이라고 했다. 대부분 60대~70대인 이들은 몇 년 동안, 때로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청소를 하러 가는, 같은 처지의 이웃들이다. 미처 가지 못한 장례식 조의금을 이 자리에서 건네기도 했고, 고향에서 부쳐온 김을 나누기도 했다. 

 

마지막 빈좌석이 채워지자 뒤늦게 탄 아주머니들은 가방에서 한 사람 앉을 만한 크기로 잘려진 돗자리를 꺼내 바닥에 깔고 앉기 시작했다. 가방을 메고 서있는 기자에게 아주머니들은 여분의 돗자리를 내주며 앉아가라고 권했다. 자리를 사양하자 가방이라도 내려놓으라며 한사코 소매를 챈다. 덕분에 짐을 맡겨놓고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편히 들을 수 있었다.

 

 

▲2019년 7월 6411번 버스를 타기위해 아주머니들이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10일 새벽 네시에 출발하는 6411번 첫 차에 올라탔다. ⓒ프레시안(박정연)
▲ 10일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6411번을 가득 메운 승객들 ⓒ프레시안(조성은)

 

"조국, 국민을 '핫바지' 만들었다... 희망이 없는 우리나라가 됐다"


 

 

닷새 앞으로 다가온 총선. 아주머니들은 모두 투표장에 가겠다고 했다. 투표일이 공휴일이라 일하는 강남의 빌딩도 쉰다고 한다. 아주머니들은 "투표는 주권",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의미부여 했다. 대부분 누구를 찍을지 마음의 결정도 내렸다고 했다. 

 

투표 참여 의사가 분명했지만 선거를 거쳐도 정치가 좀 나아질 거란 기대는 희박했다. 이번 총선과 정치 현실을 물으니 모두 혀를 내두르며 한숨을 쉬었다. 인터뷰를 거부당하기도 일쑤였다. 하지만 껌을 건네며 한마디를 청하는 손녀뻘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들은 한결같이 "남을 헐뜯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극단의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엿보였다.


 

▲10일 6411번 버스에 탄 아주머니들이 앉아있던 돗자리 방석 ⓒ프레시안(박정연)

 

"국민의 대표라고 뽑아놨는데 국민에게 본이 되지는 못할망정, 국민이 배울 게 없다. 아무리 괜찮은 정치인이어도 남을 헐뜯는 말을 하면 격이 떨어져 보인다." 이경애(가명) 71세 여성. 

 

"정치는 국민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들 당리당략에 빠져서 국민이 보는 데도 싸워댄다. " 정무열 (가명) 59세 남성.

 

"지금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정치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처음에는 뽑아주면 잘하겠다고 해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자기들끼리 세력다툼이나 한다. 집으로 여론조사 전화와도 이젠 받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 " 김명자(가명) 68세 여성.


 

 

새벽차 타는 노동에 지쳐도, 세상이 투명인간 취급을 해도 돌아가는 물정 모르는 아주머니들은 없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가족들이 사는 모습은 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듯 했다. "희망이 사라졌다"고 했다. 자식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부모 지위를 동원한 특권층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이 컸다.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부모라는 자책에 자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따라왔다.


 

 

"조국이라는 이름 두 글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옛날부터 줄이 길어야만 뭘 한다고 하던데, 자식들한테도 없는 사람들은 죄인이 됐다. 만약에 우리 서민들이 그렇게 했으면 벌써 사달이 났을 거다. " 임자혜(가명) 72세 여성.

 

"조국 사태 때 일부러 자세히 안 봤다. 높은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어려서 학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부모가 많이 못 배워서 자식도 많이 못 가르친다고." 송주애(가명) 63세 여성.

 

"그 분은 교수고, 서울대 나오고, 머리도 좋다. 머리 좋은 놈들은 지들끼리 다 해쳐 먹고 국민은 '핫바지' 만들었다. 그 사람을 믿었는데 이젠 믿을 사람이 없다. 희망이 없는 우리나라가 됐다." 김명자(가명) 68세 여성. 

 

"장관이나 되는 사람이 나랏돈을 받으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가족이 진 빚도 꼼수써서 갚았다고 하지 않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걸 모른다. 일해서 갚을 줄만 알지.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나 같은 사람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박영자(가명) 67세 여성.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냈던 이들이 실망감을 더 크게 느낀 듯 했다. 일부 아주머니들은 말끝마다 "믿었는데", "다를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 
 
"코로나 걱정되지만 잘리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부터 파고든다. 혹시 모를 코로나19 감염도 걱정이지만, 생계가 달린 일자리가 끊어질지 모른다는 현실이 더 무섭다. 일부 직장은 재택근무를 하고, 학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지만 이들은 노동을 멈출 수가 없다. 아주머니들이 기댄 창가 너머에 적힌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 문구가 무색했다. 

 

아주머니들은 코로나19 이후 일이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세심한 청소와 소독·살균 등을 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져 일자리가 없어질까 하는 불안감에 더 성실히 일을 나간다고 했다. 전염병보다 무서운 건 해고다. 어떤 아주머니는 일회용 장갑을 하고 버스를 탔고, 그 장갑 위에 소독젤을 연신 바르기도 했다.


 

 

▲10일 코로나 19로 인해 일회용 장갑을 끼로 6411번 버스에 탄 아주머니 ⓒ프레시안(박정연)

"나도 코로나가 걱정되지만, 일을 안 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빚도 있고, 아픈 할아버지도 있다. 경제가 어려워져서 내가 잘리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한다. " 주미령(가명) 72세 여성. 

 

"우리는 재택이 안 된다.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일 하는 건물에 누구 한 명이라도 출근을 하면 가서 청소를 해야 한다. 재택하는 곳은 열 곳 중 한 군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큰 회사가 많지 않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다. 더 세심하게 청소하고 소독도 해야 하니까. " 김명자(가명) 68세 여성. 

 

"이번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려서 임금이 올라가 좋은 점도 있다. 그렇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다보니까 일자리가 줄어들 것 같다. 우리 건물에서 사람을 

▲10일 코로나 19로 인해 일회용 장갑을 끼로 6411번 버스에 탄 아주머니 ⓒ프레시안(박정연)

줄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내가 아는 언니가 여의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큰 건물인데 사람을 줄여서 한 사람 당 두 개 층을 담당하고 있다. 한 사람이 한 층을 하기도 힘든데, 나도 그렇게 될까봐 너무 걱정스럽다. " 고순애(가명) 66세 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투표장에 가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여전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정치에 필요한지 물었다.


 

 

"협력하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성실한 사람 바보 만들지 않는 정치를 해달라." 박영자(가명) 67세 여성. 

 

"잘 살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들을 고쳐가면서 살아가보자는 거다. 밑에 보좌관이나 머리 좋은 사람을 두고 괜찮은 의견이 나오면 조사해서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을 바란다. 하지만 지금은 썩어빠진 기둥을 가지고 지붕을 새로 하네 마네 하는 꼴이다. 잘못된 것부터 고쳐나가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김명자(가명) 68세 여성. 

 

"진정성을 가진 정치 일꾼이 필요하다.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 가식적인 사람은 안 된다." 윤호식(가명) 78세 남성.

 

"살림 잘하는 사람으로 투표할 생각이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국민 귀한 줄 아는 사람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박귀복(가명) 78세 여성. 

 

"소신있는 사람이 당선되면 좋겠다. 당이랑 생각이 다르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상대 당도 칭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정무열(가명) 59세 남성. 

 

"내가 딸이 셋인데, 어린 애들 성폭행한 사람들한테 강력한 대처를 하는 사람을 뽑을 생각이다. 딸 셋 모두 결혼을 시켰지만 손녀들 생각나서 무서워 죽겠다." 이경애(가명) 75세 여성. 

 

"나같은 저소득자, 없는 사람들한테 혜택을 줬으면 좋겠다. 있으나 없으나 세금은 다 내지 않나." 임자혜(가명) 여성 72세.

 

 

버스는 어느새 구반포역 정류장에 다다랐다. 기자의 가방을 들어주었던 아주머니도 거기서 내렸다. "여기 기자들이 몇 찾아왔는데 바뀐 건 없었어. 그래도 열심히 해"라며 가방을 건네고는 일터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아주머니들도 구반포역을 시작으로 고속터미널, 논현사거리, 선릉역에서 하차해 투명인간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바닥까지 가득 찼던 만원버스가 한티역 정류장을 지나자 버스에 남은 승객은 기자 혼자였다.

 

 

▲2019년 7월 6411번 버스에서 내리는 노동자들 ⓒ프레시안(최형락)
▲새벽을 달리는 6411번 버스 ⓒ프레시안(최형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1012341272846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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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달아오르는 반미래통합당, 검찰개혁 열기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0/04/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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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역대 최고인 12.14%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코로나로 힘든 국면이지만 총선에 대한 열기는 상당히 뜨겁다.

 

선거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후보들의 유세 현수막과 피켓도 더욱 호소력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김은진 민중당(서울 강북구갑) 국회의원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유세 현수막에 "찍지 말자 미래통합당!", "일본 편드는 정양석, 찍지 맙시다"로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단 한 표도 주지 말 것을 호소했다.

 

김은희 민중당 (서울 용산구) 국회의원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범죄자 박근혜 부정선거 당선 책임 있는 권영세 퇴출!"이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게시했다.

 

한편 검찰의 선거 개입 시도가 보도되면서 검찰청 앞에도 현수막이 걸렸다.

 

"비리의혹 공작의혹, 윤석열은 사퇴하라", "윤석열은 경찰-언론이 공모한 공작수사 시도 해명하라!" "느그 장모 모하시노?" 등 윤석열의 공작 수사에 대한 경고와 가족비리의혹 해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게시되었다.

 

김은진 후보는 "당선 가능한 진보개혁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어 미래통합당을 반드시 떨어뜨리자"고 호소하면서 마지막까지 검찰의 선거 개입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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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정치인 낙선!” 지목받은 후보는?

  • 기자명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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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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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규탄 시민행동, “친일정치인 심판” 온라인 낙선운동 돌입

4.15총선을 앞두고 ‘친일파 없는 국회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베규탄 시민행동이 ‘친일정치인’을 선정하고 집중 낙선운동을 선포했다.

▲ 아베규탄 시민행동이 9일, ‘친일정치인’ 명단을 발표하고 온라인 낙선운동을 선포했다. [사진 : 시민행동]
▲ 아베규탄 시민행동이 9일, ‘친일정치인’ 명단을 발표하고 온라인 낙선운동을 선포했다. [사진 : 시민행동]

아베규탄 시민행동(시민행동)은 지난해 7월 아베정부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촛불을 개최한 700여 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친일청산 의지를 모아, ‘친일정치인 불매운동’, ‘친일청산 4대입법 요구’ 시민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시민행동은 지난달 17일 “총선 후보들의 친일청산 의지, 국민들이 검증하겠다”고 선언한 후 4.15총선에 나서는 전국 지역구 출마 후보자 684명(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 정의당, 민중당)에게 ‘친일청산 4대 입법’과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를 시작했다.

공개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친일극우망언과 행동, 피해자 모욕 처벌행위를 강화할 수 있는 취지의 입법 활동을 요구합니다. 동의하십니까?

2)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활동 재개를 위한 입법 활동(기존 법 개정 등)을 요구합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3) ‘친일반민족행위자 훈장 서훈 취소’를 위한 입법을 요구합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4)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이장’을 위한 입법을 요구합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5)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행” “판결대로 배상할 것”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일본 가해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시민행동은 9일 오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질의 결과를 발표했다. 

공개질의에 대한 응답결과, “전체 후보자 237명 중 9명만 응답한 미래통합당이 친일청산에 대한 무관심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시민행동은 밝혔다.

반면, 공개질의에 대한 응답률이 가장 높은 정당은 민중당이 61.67%(60명 중 37명 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정의당은 39.47%(76명 중 30명 응답)로 2위, 더불어민주당은 25.30%(253명 중 64명 응답)로 3위를 차지했다.

시민행동은 또, 친일정치인 집중 낙선운동 명단을 공개했다.
▲나경원(서울 동작을) ▲황교안(서울 종로) ▲심재철(경기 안양동안을) ▲김진태(강원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갑) ▲하태경(부산 해운대갑) ▲차명진(경기 부천병) ▲전희경(인천 동구미추홀갑)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을) 등이 이름을 올렸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전 미래통합당 윤상현 후보를 제외하면 모두 미래통합당 소속 후보들이다.

시민행동은 낙선명단 기준에 대해 ▲한국사회 친일청산 해결요구에 대해 입법활동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친일청산 4대입법에 대한 입장” ▲강제동원 대법원 배상판결 취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가에 대해 검증하는 “강제동원 대법원 배상판결에 대한 입장” ▲인물들의 주요 발언 및 행적을 토대로 “역사왜곡, 일본군‘위안부’ 및 강제동원 부정, 친일망언 검증” 등 3가지 기준으로 검증했다면서 “낙선운동 명단에 들어간 후보들은 재차 공개질의에도 무응답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시민행동이 벌이는 ‘친일청산 4대 입법’과 친일정치인 심판’을 요구하는 ‘친일정치인 불매운동’ 선언엔 전국에서 1만여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 중이다.

☞ 친일청산 공개질의 응답결과 자세히 보기 : https://nojapan415.com/report
☞ 친일정치인 낙선운동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nojapan415.com/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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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국가”

강진욱  | 등록:2020-04-10 10:37:58 | 최종:2020-04-10 10:41: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미 국방부는 4월 8일(현지시간) ‘핵 억지’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은 점점 더 정교한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하고 있고, 이는 미 본토와 우리 동맹에 대한 위협이다”라며 “북한과 이란 같은 ‘불량 정권들’(rogue regimes)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추구하면서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409090500009?input=1195m ☜

이에 대해 미국이 북한을 불량정권이라고 부르는 이유와 그 부당성을 지적한다 – 필자 주

“불량국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북한을 가리켜 ‘불량국가’(rogue state)라고 부르며 도발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월 6일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이 주최한 ‘국방전략’(NDS) 관련 행사 기조연설에 이어 15일 독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다. 지난해 12월 미 외교협회(CFR) 연설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다. 지난해 8월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두 번 그 말을 썼다, 최선희 당시 북한 외무성 제1부상에게서 엄중 경고를 들었다.
 
저들은 “미국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고 그 다음은 이란이나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들”(에스퍼 SAIS 회의 연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란이나 북한은 왜 ‘불량’할까? 에스퍼는 지난해 말 CFR 연설에서 “그들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지금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며 “그것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 핵무기와 ICBM을 가진 나라는 모두 ‘불량’할까? 아니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가리켜 ‘최대 위협’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불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란이나 북한이, 특히 북한이 미국에 ‘불량’한 이유는 핵무기와 ICBM을 갖고 러시아 및 중국과 같은 ‘핵강국’ 반열에 올라 감히 미국과 맞서려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면 핵강국이 되려는 나라들이 ‘불량’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도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이들은 ‘불량’하지 않다. 미국이 이들을 적대시하지 않고 이들 역시 미국에 맞서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이 ‘불량’한 이유는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이다.
 
미국이 ‘불량국가’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은 클린턴 행정부 초년인 1993년 말 “‘불량국가’들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방위정책을 수립”할 때였다. 그 ‘새 방위정책’의 표적이 바로 북한이었다. 레스 애스핀 당시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새로운 정책이 유독 북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북한이 그 대상의 하나”라고 말했었다.
 
1991년 말 미국이 IAEA(국제원자력기구) 규정에도 없는 북한 핵시설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북한이 ‘남북한 상호 사찰’로 응수하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NPT(핵무기비확산조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렇게 시작된 북미 간 핵공방이 험악한 지경으로 치달을 때 나온 말이 바로 ‘불량국가’였다.
 
미국이 북한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이 있다. ‘테러지원국’.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이라고 지목한 것은 1985년 7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 쿠바, 리비아, 니카라과 등 5개국을 가리켜 ‘세계테러국가연합’이라고 부르면서부터다.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불량국가’는 ‘테러지원국’과 동의어다. 미 국무부는 지금도 매년 테러지원국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들을 ‘불량국가’라고 규정한다. 2019년에는 북한과 이란, 수단, 시리아 등 4국이었다. 그 전에는 이라크와 리비아, 쿠바 등 3개국이 더 있었다. 1994년부터 이들을 가리켜 ‘일곱 자매’(seven sisters)라고 불렀다. 이중 리비아와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으로 정권이 무너진 뒤에야, 쿠바는 오바마 정부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그 명단에서 빠질 수 있었다.
 
북한도 그 명단에서 빠진 적이 있다. 2008년 북한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을 때다. 부시 행정부 말년의 일. 그러다 트럼프 행정부 초년인 2017년 다시 북한을 그 명단에 올렸다. 그리고 지금 그 불량한 언사를 남용하고 있다. 북핵 담판이 자기네 뜻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고약한 습성이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949&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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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긴급사태' 선언, 감염폭발 막을 수 없는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4/10 10:40
  • 수정일
    2020/04/10 10: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신규 확진자 절반이 감염경로 모르는데...'외출 자제' 권고뿐?

<워싱턴포스트>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미적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규정한 데어 이어, 이번에는 <뉴욕타임스(NYT)>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최악의 총리'로 규정하고 나설 태세다.

 

아베 총리가 수도 도쿄를 중심으로 '감염 폭발' 단계에 이르러서야 긴급조치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직후 <뉴욕타임스>는 '일본이 코로나바이러스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너무 늦은 것 아닌가?(Japan Declared a Coronavirus Emergency. Is It Too Late?)'라는 기사(☞원문보기)를 통해 "일본은 이미 엉망진창"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전했다.

 

 

"긴급사태 선언 너무 늦었다" 응답 70%

 

<뉴욕타임스>의 판단은 9일 <마이니치> 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로도 뒷받침됐다. 이 신문과 사회조사센터가 전날 공동으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70%가 긴급사태 선언 발령 시기에 대해서 "너무 늦었다"고 응답했다. "타당하다"는 22%에 불과했다.

 

긴급사태 선언 대상 지역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도 58%에 달했다. 코로나19 확산이 긴급사태를 선언해야 할 정도로 우려되는 곳이 한두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5월 6일에 예정대로 긴급사태 선언 해제가 가능한지에 대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7%에 달했다.

 

 

실제로 일본내 코로나19 확진자는 지난달 24일 도쿄올림픽 연기를 결정한 이후 그동안 숫자 줄이기에 급급하며 사실상 방역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듯 진단건수를 늘리면서 급증하기 시작했다. 긴급조치가 발표된 시각에 일본의 누적 코로나19 확진자는 1주일만에 두 배로 증가하면서 5000명(크루즈선 712명 포함)을 돌파했다. 9일 오후 2시 기준으로 다시 크루즈선 감염자 빼고도 일본 내 확진자는 5000명을 돌파했다.

 

 

지자체별로는 도쿄도(東京都)가 1338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오사카부(大阪府) 524명, 가나가와(神奈川)현 360명, 지바(千葉)현 324명, 아이치(愛知)현 280명 등의 순이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나온 확진자 712명을 더하면 5710명이다. 사망자는 국내 감염자 중 105명, 크루즈선 승선자 중 11명 등 모두 116명으로 늘었다.

 

일본 정부의 '긴급 사태' 선언 지역 7곳에 포함되지 않았던 아이치(愛知)현은 독자적으로 10일 '긴급 사태'를 발령해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처럼 5월6일까지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도쿄와 가나가와, 사이타마(埼玉), 지바, 오사카(大阪), 효고(兵庫), 후쿠오카(福岡) 등 7개 도부현(都府県)에 긴급 사태를 선언했다.

 

 

아베 총리의 긴급사태 선언의 효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평가는 전문가들일수록 혹독하다. 때가 늦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확산 억제에 대한 강제력이 긴급조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하다는 것이다.

 

영국킹스칼리지런던 인구보건연구소 소장 시부야 겐지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응은 사실상 방치하는 수준이었으며, 드러난 감염자는 빙산의 일각"이라면서 "환자가 급증하면서 도쿄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일본의 긴급사태 선언으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당부하는 것아고, 대중교통 운행중단도 없다. 중국의 우한처럼 봉쇄조치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자체장들은 주민들에게 재택근무를 하고, 외출을 삼가해달라고 호소할 수 있을 뿐이다.

 

 

'도쿄 붕괴' 위기에 맞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는 재택근무를 독려하고 저녁 외출 자제를 당부했지만 일본 국토교통성 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 비율은 8명 중 1명꼴로 나타났다. 재택 시스템이 잘 돼 있지 않아서 직장인 대부분이 여전히 출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일본 정부의 감염병 전문가 패널이기도 한 니시우라 히로시 홋카이도대학 교수는 이미 지난 3일 <니혼게이자이> 신문 인터뷰에서 “도쿄 확진자 수가 폭발적 급증기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니시우라 교수는 “사람들에게 외출을 자제하라고 권고하는 것 이상의 강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처럼 강력한 봉쇄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유럽처럼 봉쇄조치를 하려면 일본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난 3월 코로나19를 긴급사태 선언이 가능한 전염병으로 추가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외출금지나 영업중단 등의 명령을 내릴 권한을 아베 총리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정부가 외출자제나 영업중단을 요청했는데 응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할 수단도 없다.

 

 

감염폭발 대비 중환자용 병상 태부족, 재앙급 사망률 경고

 

최근 도쿄를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는 확진자들이 급증해 신규 확진자의 절반에 이를 정도라는 점도 '막을 수 없는 감염폭발'이 우려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감염폭발이 일단 일어나면 일본의 환자 수용능력은 곧바로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본 중환자치료의학회에 따르면 일본은 인구 10만명당 중환자용 병상이 5개뿐이다. 독일은 확진자(9일 기준 11만3296명) 규모에 비해 사망률이 2% 이내인 이유가 바로 일본보다 6배나 많은 10만 명당 30개의 중환자용 병상 등 촘촘한 의료시스템 덕분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이탈리아는 인구 10만 명당 12개의 병상으로 일본보다 2배나 많은데도, 확진자(9일 기준 13만9422명) 대비 사망률이 12%가 넘을 정도다. 이탈리아 이상으로 고령자가 많은 일본에서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감염폭발이 일어날 경우 사망자가 재앙급으로 속출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0917000396598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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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허무하게 떠난 지인... 미국이 정말 원망스럽다

[코로나19 현지 리포트] 2분에 1명씩 사망하는데도... 만약 한국이었다면

 등록 2020.04.10 07:11 수정 2020.04.10 07:11
 

▲ 코로나19 사망자 집단 매장 준비되는 뉴욕 하트섬 미국 뉴욕 시 브롱크스 인근 해역에 있는 하트 섬에서 7일(현지시간) 굴착기가 구덩이를 파면서 흙더미를 덤프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뉴욕 시는 이곳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들의 임시 매장지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이틀 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오늘 오후 12:20 우리 오빠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동안 기도해 줘서 고맙고 좋은 데 가시라고 계속 기도 부탁드립니다. 

숨이 턱 막혔다.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도 같은 내용이다. 돌아가셨단다. 정오 뉴스를 보며 한숨 쉬던 그 시각에. 사과 하나 씻어 한 입 가득 베어 물던 그 시간에 말이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 

가까이에서 벌어진 비극 

그는 내가 사는 동네의 시의원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 전화하면 늘 시원한 대답을 주셨다. 항상 바쁘고 활기찼다. 길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엔 사람이 북적였고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어버이날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날엔 동네잔치를 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동네 노인들은 음식과 음악을 제공받았고 집에 갈 땐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갔다. 어느 날 내 음악 취향이 60~70대 그들 취향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침 일찍 가 음식을 서빙하고 의자를 정리하는 일은 좀 귀찮지만 보람찬 봉사였다. 모두 그의 덕이었다. 

그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은 일주일 전 지역 신문에서 알았다. 사모님께 조심스레 안부 문자를 보냈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몇 시간 후 걸려온 전화기 너머엔 평상시 밝았던 하이톤과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병원에 있는 사람이 고생이지."

그녀도 집에서 자가 격리 중이었다. 남편을 입원시키고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왔단다. 남편은 병원에서, 자신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중이었다. 

일주일 전 회의에 갔는데 한 사람이 기침을 많이 하더란다. 이제야 마스크를 좀 찾아 쓰지, 당시엔 아무도 쓰지 않던 때였다. 찜찜했지만 회의를 마치고 평상시처럼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기침하던 그 사람이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한 걸 알고 자신도 병원에 갔다. 몸 상태가 의심스러웠을 때였다. 병원에선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며 돌려보냈다. 아내는 며칠 사이 상태가 부쩍 나빠진 남편을 차에 태우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걸어서 검진을 받으러 왔던 때와는 현저히 다른 상태가 되어 바로 입원을 한 것이다. 

"지금 산소호흡기 쓰고 누워 있어요." 

조심스레 상태를 묻는 내게 그녀가 힘없이 대답한다. 갑자기 늘어난 환자로 산소호흡기가 부족하단 얘기를 듣던 때였다. 뉴욕주에 필요한 건 3만 개인데, 4천 개만 보내겠다는 정부에게 뉴욕 시장이 "직접 2만 6천 명의 죽을 사람을 정하라"고 했던 그 산소호흡기다. 그런 귀한 기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에 난 다행이다 싶었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얼른 회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내가 잘 몰랐다. 산소호흡기는 자가 호흡이 힘든 이의 호흡을 도와주는 기구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곧 털고 나오시겠다 생각했다. 너무 무지했다. 

60대 중반이면 아직 한참인 나이 아닌가.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에 나이보다 더 젊어 보였다. 다른 주에서 의사로 일하는 아들이 매일 전화로 챙긴다니 병원에서 더 신경 써주겠다 믿었다. 언제나 활력 넘쳤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병원에 누워있는 일상은 하루도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곧 뚜벅뚜벅 걸어 나오시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다 빗나갔다. 어떻게, 저렇게 건강하던 분을 쉽게 데려갈 수 있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진 서류처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분인데, 어떻게 허무하게 이럴 수 있지? 나도 며칠간 우울증에 빠졌다. 

뉴욕의 수많은 죽음들 
 

▲ 지게차로 옮겨지는 뉴욕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한 병원에서 비닐로 싸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이 지게차에 실려 임시영안실로 사용되는 냉동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 연합뉴스/EPA


현지 시각 8일 뉴욕의 하루 사망자는 779명.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3월 1일 이후 일일 최다 숫자다. 이날 정오 기준 뉴욕주 사망자는 총 6268명, 그 옆 뉴저지는 1540명. 9.11 테러 사망자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본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그 숫자가 두 배가 됐다. 그래서 오늘 뉴욕주 전체엔 애도하는 의미로 조기가 게양됐다. 

특히 사망자 중엔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은 걸로 집계됐는데, 열악한 직종에 근무하는 인종의 구성과 비례하는 죽음의 그래프다. 

뉴욕 시의 경우 뉴욕 주 총 사망자의 2/3에 해당하는 4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하지만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이 엄청난 숫자에는 집에서 사망한 이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공공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의 감염이 심각하다. CNN에 의하면, 뉴욕 경찰의 20%가 코로나 증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미 12명이 숨졌다. 뉴욕의 지하철, 버스, 기차를 운영하는 MTA 직원 중 150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 중 41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어제까지 도둑을 잡고 지하철을 운전하던 이들이다. 

음식을 나르던 냉동 탑차가 시신을 나르고 있다. 장례식장은 포화상태가 됐고 화장터와 묘지는 이미 수 주간 예약이 꽉 찬 상태다. 더 큰 비극은 코로나 환자는 임종 순간조차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높은 감염 가능성 때문에 가족과의 만남이 금지되어 있다. 여유가 있는 곳은 페이스타임으로 작별인사를 하게 한다지만 2분에 한 명씩 죽는 이 시점에 그런 배려는 사치가 된 지 오래다.

장례식장에선 제한된 가족들이 멀리서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뿐이다. 혹자는 사망 연락을 받고 며칠 뒤 상자에 담긴 뼛가루만 받기도 한다. 제대로 된 작별도 위로도 조의도 없다. 사망자가 많지 않고 그마저도 지병이 있던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는 비극이다. 하지만 30~40대 등 비교적 젊은 층 사망자가 많은 이곳 뉴욕과 유럽 지역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남은 이들의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모든 이에게 의료보험을" 외치던 샌더스의 퇴장

미국의 사망자수가 1만4700여 명이 된 날,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는 투표가 진행됐다. 공화당, 민주당 경선과 대법관 등을 뽑는 선거다. 감염 우려로 많은 주들이 투표를 연기했지만 공화당 성향이 강한 이곳에선 투표를 강행했다. 참가자가 적은 게 보수표 결집에 유리하다는 분석에서였다. 투표를 독려한 트럼프, 바이든과는 달리 버니 샌더스는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목숨 건 투표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이날 민주당 대선후보 버니 샌더스는 대선 경선을 포기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패배 이후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갖지 못하던 그가 더 이상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탓이다. 

"Medicare for All(모든 이에게 의료보험을)."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 구호는 버니 샌더스의 캐치 프레이드다. 세계 최악의 의료보험을 가진 상태에서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pandemic)을 맞고 있는 나라에서 무엇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아야 할 주제였지만, 그는 초라한 경선 포기자가 되고 말았다. 일찌감치 경선 포기를 선언한 앤드류 양이 주장했던 기본소득은 트럼프 정부가 나눠주는 경기부양금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두 개를 연결 지어 얘기하지 않는다. 나라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책에 대해서 너무나 무심하고 싸늘하다.
 

▲ 기자회견 하는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1일(현지시간) 버몬트 주 벌링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혹자는 그것을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부른다.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싸워온 버니 샌더스의 꿈이 21세기 한가운데서도 '사회주의 정책'으로 폄하되는 이유다. AI 시대에 그 기류에 올라타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자는 앤드류 양은 말 잘하는 아시아인일 뿐이다. 자신만을 위한 정부를 가져본 적 없는 미국인들의 초라한 상상력은 가장 대중적인 선거라는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팬데믹은 버니 샌더스에게 무엇보다 훌륭한 선거 이슈였다. 하지만 올해 78세의 사회주의자 버니는 끝내 자신의 꿈을 대중들에게 설명해내지 못했다. 아니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를 뜨겁게 지지했던 10대, 20대 샌더스 지지자들의 열기는 현실 정치라는 벽 앞에 흔적도 없다. 민주당 경선은 전염병에 사라졌고, 1등 주자 조 바이든의 목소리는 자신의 집 지하실 인터뷰에서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매일 좌충우돌하는 브리핑에도 트럼프의 인기는 높아만 가고, 가난한 이들의 삶은 실직에 돌림병에 피폐해져 가는 중이다. 진정 미국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전염병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건이 임기 4년을 더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절망은 깊어진다. 

제대로 된 의식 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이들처럼, 지금 미국 사회는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과 풍요로움이 허상이라는 걸 목격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의료보험은 단순히 죽음과 삶을 갈라놓는 무자비한 칼날이었음을 보고 있다. 미국의 자정 작용과 건강함을 믿었던 이들은 이 시국에도 자신의 주머니 채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판과 거대 기업의 야합에 허탈해 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아메리카 드림조차 전염병 앞에 한 줌의 연기가 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노후를 위해 풍요로운 삶을 위해 미국을 택했던 이들이 과연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회의하는 중이다.

그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나의 지인은 지역사회에 헌신하다 눈을 감은 이를 위해서 경찰 군악대를 불러 연주하게 했다. 차량통제를 하며 지역 주민들이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숨진 자신의 장례식엔 아무도 초대하지 못한다. 그와 40년 가까이 살았던 아내도,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손주조차.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그가 앞으로 했을 무수히 많은 일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 것도, 아이들과 누릴 행복한 시간과, 평생 해로한 아내와 늙어갈 소소한 나날들 모두가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이 전염병을 겪었다면 저렇게 억울하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한다. 주변 사람 모두 안전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더 빨리 진단하고 결과를 받아서 음압병실을 비롯해 좀 더 높은 차원의 서비스를 받았으면 말이다. 그는 살 기회가 여러 번 있지 않았을까? 그럼 그의 극복기는 또 다른 희망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 내 사망자 1만4739명(8일 기준)의 숫자를 보며 반성하게 된다. 우리 상상력의 부족이 그들의 눈을 감게 한 건 아닐까 하고. 제대로 된 정치와 멋지게 발현되는 시스템의 그 상상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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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적 합의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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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9  01: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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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 /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특별기고>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4)
정수일  |  tongil@tongilnews.com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을 게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정 소장은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문명교류학자가 왜 민족주의와 통일담론을?’ 하고 의아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학문의 저변에는 시종일관 민족 문제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는 일찍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명교류학 연구를 하게 된 동력이 ‘민족주의’임을 밝히면서, “일생을 통틀어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문명교류학과 민족주의”라며 “분단은 가장 큰 비극이며 이제 남북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통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민족주의에 근거해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필생의 업인 문명교류학의 고지(高地)를 넘은 그가 만년에 이르러 또 하나의 필생의 업인 통일 문제에 천착해 이제 내놓는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은, 다가올 한반도 통일시대에 대비해 솟구칠 통일방안 수립에 있어 어떤 시사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 특별기고는 아래와 같이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Ⅰ. 통일담론과 민족주의 (여는글 포함) / 3월 30일 (월)
Ⅱ. 민족주의는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 / 4월 2일 (목)
Ⅲ.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 / 4월 6일 (월)
Ⅳ. 민족주의적 합의통일 (닫는글 포함) / 4월 9일 (목)

 

Ⅳ. 민족주의적 합의통일

분단국의 통일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당위이며 분단민족의 절박한 시대적 요청이다. 그것은 통일이야말로 분단의 고통과 부담에서 벗어나 인간의 기본권과 사회적 정의가 보장되는 새로운 민족공동체 속에서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냉전시대에 분단의 고통을 강요당해왔던 베트남과 독일, 예멘 등 몇몇 나라들은 냉전시대의 종언을 계기로 분연히 일어나 분단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통일의 숙원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한이 걸렸으며,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특히 통일을 달성한 후 그 성과를 다지면서 체제의 완전한 통합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여 좌왕우왕하거나 어렵사리 이루어놓은 통일 성과를 의심하는 회의론까지 나타났다. 급기야 통일 과정이나 형식에 관한 성찰과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현대사의 마지막 분단지역인 한반도의 경우, 지난 70여년간 그 어느 분단국보다도 심한 우여곡절 속에 통일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어 왔으며, 통일담론에도 부심하여 왔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상응한 각종 통일정책과 통일방안도 제시하였다. 아울러 베트남이나 독일, 예멘 같은 선행 통일국들이 겪어야 했던 통일행적에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귀중한 경험과 교훈도 찾아보게 되었다.

1. 통일론의 진화

20세기 냉전시대에 분단국들은 대체로 통일이 어느 순간 ‘열전(熱戰)’의 기운을 타고 갑작스레 도래할 것이라는 단견(短見)하에 분단을 대결과 갈등의 화신으로 간주하고, 상대방을 압승하는 전쟁이나 흡수통일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만을 필히 걸쳐야 할 통일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이 ‘짧은’ 과정이 끝나면 통일과업은 완수될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나 낙관과는 달리 소기의 ‘통일과정’이 끝나도 분단에서 비롯된 전래의 고통이 일시에 치유되지 않는데다가 분단 주체들이 처했던 체제의 다름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속출하였다. 이러한 고통과 사회문제는 오로지 통일 후 국가체제를 하나로 통합할 때만이 해결 가능한 것이다. 요컨대, 통일의 후속과정으로서의 체제통합과정이 필수불가결의 절박한 과제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통일과정은 분단으로부터 통일까지 이어지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두 체제를 합치는 과정, 즉 통합과정까지의 단계적이며 점진적인 과정을 통틀어 통일과정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으며, 분단 극복국들의 현실이 그 필요성과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게 통일론(학)이 이른바 ‘민족통일론’으로부터 ‘체제통합론’으로 진화하면서 ‘통합’이나 ‘체제통합론’이란 새로운 개념이 창출되었으며, 점진적 통일과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현대의 국제정치에서 통합(統合)이란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서유럽에서 출현하였다. 1945년 대전이 끝나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양 진영 간에 체제와 이념의 차이에 따라 냉전이 격화되면서 서유럽국가들은 군사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하고, 경제적으로는 1952년 석탄과 강철이라는 제한된 분야에서 공동체(ECSC)를 결성한데 이어 정치, 경제, 사회 분야로 점차 폭을 넓히면서 통합을 지속해 왔다. 이렇듯 애초 유럽에서의 통합은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 간에 전후 경제부흥이라는 공동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이루어진 다국가 간의 결합이다. 이것은 한 민족이 두 체제 또는 두 국가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결합하는 통일과는 개념상 다르다.

비록 이러한 다른 점이 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일을 달성했다고 자부하던 분단국 독일과 예멘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이한 두 체제 간의 갈등으로 인해 예상 밖의 많은 사회문제가 돌출해 완전 통일의 발목을 잡게 되자 통합에 의한 체제의 단일화 문제가 급선무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갈라진 두 체제를 하나로 결합하는 통합이론을 통일론에 대입하기 시작하였으며, 체험을 통해 이질화된 두 체제를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통일국가가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은 통일론의 진화과정에서 통합과 통일의 차이점이 점차 명확하게 드러났다. 대체로 통합은 국가를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지만 통일은 민족을 단위로 하여 달성된다. 통합은 어떤 공동이익의 추구를 목표로 하지만, 통일은 민족적 일체감이란 당위성을 기조로 한다. 통합은 그 주체들이 정치 경제 군사의 여러 가지 형태들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진행과정을 중시하는 ‘과정적 움직임의 총합(總合)’이지만, 통일은 결과적으로 어떤 상태가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특정한 목표 지향의 완료 상황’이므로 합의통일을 제외한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의 경우 주체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급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다.

이와 같이 통일론의 진화과정에서 통일의 점진론과 더불어 통일과 통합의 관계문제가 해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의 형식문제도 새삼스레 논의되었다. 그간 분단국들이 도입한 통일 형식(부류)을 통관하면, 대체로 무력(전쟁)통일과 흡수통일, 합의통일의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베트남의 통일은 남부(자본주의)에 대한 북부(사회주의)의 무력(전쟁)통일에 의한 흡수통일 형식을 취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독일과 예멘의 통일 형식에 관해서는 왈가왈부 논의가 분분하다. 독일 통일의 경우, 서독(자본주의)이 국제환경의 변화와 체제의 구조적 결함에 의해 붕괴된 동독(사회주의)에 대한 평화적 흡수통일이란 것이 중론이지만, 통일의 결속만은 양 독일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이른바 ‘흡수-합의 혼합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멘 통일의 경우는 더욱 복잡한데, 1차 통일(1990)은 북부(자본주의)와 남부(사회주의)의 평화적 합의통일(일명 ‘준 합의의 비례대표 유형’)이나, 2차 통일(1994)은 통일체제에 내재하던 문제가 내적으로 비화되자 결국 북부에 의한 무력통일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 분류와는 별도로 일각에서는 통일을 주도한 주체를 기준으로 한 유형화를 제의하기도 한다. 독일은 동독 국민들이 자국 체제를 부정하고 총선을 통해 서독에 편입된 아래로부터의 통일이라면, 예멘의 합의통일은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된 위로부터의 통일이라는 것이다.

2. 한반도의 민족주의적 합의통일

선행한 분단국들이 체험한 분단과정이나 채택한 통일형식은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통일을 지향해 매진하고 있는 분단 한반도에게는 귀감으로서의 값진 경험과 교훈을 넘겨주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길을 걸어온 70여년의 한반도 분단사는 특이하게도 3년간의 참담한 무력통일의 상잔(相殘)과 30~40년간의 적의(敵意)에 찬 흡수통일의 악몽, 20여년간의 비교적 유연한 합의통일의 시도를 마냥 한 폭의 역사적 파노라마처럼 복기(復碁)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희생과 갈등, 고통을 함께 겪고 난 남북한 통일 주체들은 한결같이 전쟁이나 흡수가 아닌, 합의 통일만이 민족의 살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의 공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합의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주원인은 통일과정과 통일국가의 체제에 대한 남북한의 상이한 견해나 불신 때문이다. 남한이 화해 협력과 국가연합, 완전통일의 점진적 3단계론을 주장하는데 반해 북한은 다른 거추장스러운 절차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1국가 내에 2체제를 존속시키면서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통일의 완성이라고 주장한다. 보다시피, 통일과정에서 남북한은 제도적 통합이론인 ‘연합(union)’과 ‘연방(federation)’이라는 서로 다른 체제통합의 기본개념을 놓고 엇갈린 주장을 펴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합의통일을 이루는 데서의 근본적인 걸림돌이다.

이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남북한은 갑론을박을 거듭하던 끝에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는 국제법 사전에도 없는 ‘어정쩡한’ 타협안(2000년 6.15공동선언)에 접근을 보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방도에 있어서는 여전히 서로가 견해의 다름을 노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걸림돌의 본질과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제거방도를 찾아내는 것은 합의통일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다.

국가연합은 둘 이상의 주권국가들이 국가의 자격을 보유한 채 국제법상의 평등을 기조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조약에 따라 결합하고, 조약에 규정된 범위 내에서 결성된 공동기관이 국가와 같은 기능을 행사하는 국가들 간의 결합형태다. 법적으로 해석하면, 국가연합은 복수의 국가가 개별적인 국제적 인격(international personality)을 유지하면서 특정 권한을 보유하는 연합(공동)기구의 관할 하에 새로운 법적 실체(juridical entity)를 구성하는 국가의 결합형태다. 역사상 대표적인 사례로는 프로방스연합(1579~1789), 북미국가연합(1781~1787), 스위스연합(1815~1848), 게르만연합(1815~1866), 북부독일연합(1867~1871), 유럽연합, 독립국가연합 등이 있다.

남한은 3단계 통일론에서 둘째 단계인 국가연합 단계를 거쳐 완전통일을 달성할 것을 주장하지만, 북한은 일관하게 연합단계를 뛰어넘은 연방국가로 체제통합을 이루려고 한다. 북한은 일찍이 1960년대 초에 연합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남북연방제 방안을 제시한 후 보완하여 1980년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비교적 완벽한 연방제안의 내용을 선보였다. 그 내용은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20여개의 연방제 국가가 실행하고 있는 내용과 대동소이한 공통개념을 갖고 있다.

연방국가는 국가연합과는 다르게 그 결합이 긴밀하여 구성정부들은 국제법상 국가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며 연방국가 만이 국가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보유한다. 연방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정부들은 각자의 지역과 주민들에 대하여 보유하고 있던 주권을 포기하고 구성정부 전체를 아우르는 영토와 주민에 대해서 주권을 행사하는 연방 중앙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연방국가가 성립된다. 연방정부와 구성정부들 간에는 양자 간 결합 계약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성문의 연방헌법이 존재한다, 이 성문헌법이 명시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연방정부와 구성정부들이 어떻게 권력을 배분하여 공유하는가 하는 것이다. 연방국가는 그 자체가 국제법상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을 갖는 주권국가로서 국제법 주체이며 구성정부들은 내부적으로는 국가적 성격을 띠지만 대외적으로는 국가로서의 법인격을 갖지는 못한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인도, 말레시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멕시코, 브라질, 나이지리라, 카메룬 등 20여개의 연방국가가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연합과 연방의 두 개념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1781년부터 연방헌법을 채택한 1789년까지 국가연합의 형태로 존재하였고, 스위스는 1848년 연방헌법을 채택하기까지 1815년부터 국가연합으로 존재하였으며, 독일은 1815년부터 비스마르크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국가연합의 형태를 택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볼 때, 분단된 나라들의 재결합 형태가 연합에서 연방으로의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두 형태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었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조건이 성숙되면 자연히 연방제란 한 접점으로 모여진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요컨대, 통합과정에서 연합과 연방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한 간에 이러한 차이점을 두고 수십 년간 입씨름을 벌이는 것은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 상식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1960년대부터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국가안은 정세의 변화에 따라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 구체적 과정을 보면, 남북한의 자유 총선거를 통해 조직된 최고민족위원회가 주로 남북한의 경제 문화 발전을 조정하는 ‘남북조선의 연방제’(1960. 8.15. 느슨한 연합) → 제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로 조직된 대민족회에서 탄생한 연방정부가 국가주권에 해당한 군사권(국방의 단일화)과 외교권(대외활동의 유일적 전개)을 행사하는 단일 국호에 의한 1국가 체제의 ‘고려연방제’(1973.6.23.) → 상이한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남북 동수의 대표로 연방국가의 통일정부인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그 안에 ‘연방상설위워회’를 조직해 남북의 지역정부들을 지도하며 정치·외교·군사 등 연방국가의 전반적 사업을 관장하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1980.10.10.) → 남북 간의 자유내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며 통일대화를 전개하는 등 연방제 통일을 급진적 방향에서 ‘점차적으로 완성’하여야 한다는 선언 발표(1991.1.1.) →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연합과 연방 간의 계승성을 확인한 ‘남북공동선언‘(2000.6.15.) 등으로, 비록 진폭은 제한적이지만 분명 변화해 왔다.

변화로 말하면 남한의 통일방안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첫 공식 방안은 전두환 정부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1982.1.22.)으로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남북총선거를 거쳐 ‘통일민주공화국’을 완성한다는 ‘선평화 후통일’ 안이며, 이어 노태우 정부가 제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9.11.)에서 통일과정은 남북 간의 교류 협력을 활성화하고 정상회담에서 민족공동체 헌장을 채택해 ‘남북연합’(연합 첫 제기)을 실현하며, 연합 후 조건이 조성되어 채택된 통일헌법에 의해 결성된 단일국가로 통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7.4공동성명에서 통일의 3대 원칙으로 제시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 중 ‘민족대단결’을 ‘민주’로 대체한 점이다. 뒤를 이은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의 통일방안을 진일보 구체화하여 제시한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1994)에서 통일과정은 기존의 통일 3대 원칙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철학을 바탕으로 화해 협력과 남북연합, 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통일의 3단계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흡수통일론의 잔영(殘影, 기본철학은 자유민주주의)으로서 애당초 남북 간의 합의가 불가하다는 여론을 야기시켰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1970년대부터 통일담론에 적극 동참해 ‘3단계 통일방안’을 비롯한 일련의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는데, 그가 주장한 통일의 대원칙은 자주와 평화, 민주이고, 통일과정은 3단계, 즉 1단계는 ‘남북공화국연합단계’(남북연합)로 주임무는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의 3대 행동강령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 실현을 위한 6대 과제는 ① 남북 간에 화해와 협력을 통한 신뢰 구축, ②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하고 군사적 균형으로 평화공존 실현, ③ 민족경제공동체의 건설, ④ 민족적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한 교류와 협력의 강화, ⑤ 통일에 대비한 남북 법규의 정비, ⑥ 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의 조성 등으로 연합기간은 약 10년간이다, 2단계에는 연방제단계로 1연방국가, 1체제, 2지역자치정부를 구성하고, 통일헌법에 따라 통일대통령을 선출하며, 연방의회를 구성하는 것인데, 이는 ‘충격완화’와 ‘특화관리’를 위한 필수적인 과도단계다. 3단계는 중앙집권적 단일 정부가 통치하는 완전 단일화 통일의 단계로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체제통합이 종국적으로 실현된 단계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통일3단계론’은 화해 협력(첫 단계)으로부터 시작해 국가연합단계(제2단계)를 거쳐 완전통일(3단계)에 이르는 3단계론으로 알고 있는데, 김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직접 서명한 ‘6.15남북공동선언’에서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김 대통령의 ‘통일3단계론’에 관해서는 그 단계분법과 단계별 내용의 이해에서 혼동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이와 같이 남한의 통일과정론, 특히 연합과 연방의 체제결합론에서 비록 큰 틀에서의 이변은 없으나, 구체적 면에서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음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남북의 체제결합론에서는 왜 이러한 변화가 공히 일어났을까? 그것은 서로가 대치 속에서도 상생적(相生的)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 상생적 접점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1) 체제의 결합. 복수의 국가나 민족이 통일과정에서 공통된 목표와 이익을 위해 다 같이 기존의 국가체제를 포기하고 새로운 연합이나 연방 형태의 체제로 결합한다.

2) 구성원들의 공유성. 연합이나 연방 같은 국가체제는 법적 지위나 권한행사 등에서는 상이하지만, 구성원(정부와 개인)들의 역사문화적 전통이나, 지리적 환경과 접경성(接界性), 지정학적 공익성(公益性), 경제적 여건, 그리고 언어나 관습 등에서 공유성(공통성)이나 상관성을 구비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유성이나 상관성에 바탕해 체제결합의 형태나 범위를 선택하는 것이 상례다.

3) 연계성. 일반적으로 체제결합 과정에서의 연합과 연방 간의 관계를 하위개념(연합)과 상위개념(연방)으로 분간하면서도 계승이라는 개념에서는 그 밀접한 연계성을 인정한다. 역사에서 보면, 연합제 국가가 연방제 국가로 계승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오늘날의 독립국가연합이 그 대표적 일례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해체된 소비에트연방(구소련)의 일부 후계국들로 독립국가연합이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간에는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명시한 것은 연합과 연방 간의 연계성을 시사한다.

4) 합의통일에 대한 공감. 남북한의 통일 주체들은 지난 70년 분단사에서 얻은 절실한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은 전쟁이나 흡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북한 간의 합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체제결합문제에서의 오해나 불화를 해소할 수 있는 불가결의 전제인 것이다.

5) 민족주의철학에 대한 신념. 남북한의 권력자들이나 민중들은 전래의 정치중심적 기능주의 통일관에서 탈피해 민족공동체의 복원과 부흥이란 민족주의 본연의 통일철학을 신념으로 굳혀가기 시작하면서 합의통일, 평화통일의 길 모색에 함께 나서고 있다. 작금 남북한 간에 발표한 일련의 공동선언이나 성명, 합의문들은 이러한 시류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나마도 통일담론, 특히 체제결합에서의 이러한 상생적(相生的) 접점이 생성되고 있기에 우리는 통일의 전망에 대해 낙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낙관은 뒷일이고, 당면하게는 합의통일의 성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 첫 걸음으로 합의통일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체제결합문제에서의 상극적(相剋的) 쟁점들을 냉철하게 성찰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남북한 쌍방이 각기 주장하는 연합과 연방의 대치점(對峙點)을 찾아내어 상극적 쟁점을 상생적 접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대치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1) 체제결합의 근거에서 국가연합은 구성국가들 간에 체결된 국제법인 조약이지만, 연방국가는 국제법인 연방국가의 헌법이다.

2) 국제법의 주체에서 국가연합은 그 자체가 아닌 구성국들만이 국제법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구성국들은 제3국과 별개의 국가 단위로 외교관계를 설정하고 국제기구에 가입하며 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정부들을 거느리고 있는 연방국가는 그 자체가 국제법상의 주체이고, 구성정부들은 주체가 될 수 없다.

3) 권력행사에서 국가연합은 구성국들에 대해서만 권력을 행사할 뿐이며, 국민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법을 제정할 권한을 갖지 못함으로써 주로 지역의 법질서나 복지, 후생, 보건, 교육 등 제한된 관할 사항에 대해서만 권한을 행사한다. 이에 반해 연방국가는 구성정부들의 국민을 직접 통치하는 중앙권력기관이기 때문에 외교나 국방, 국적에 관한 사항은 물론 경제사항, 특히 관세나 통화에 관한 권한도 행사한다.

4) 국적에서 연합국가의 국민은 구성국가의 국적만을 소유하지만, 연방국가에서의 구성정부들의 국민은 연방 공통의 국적을 가지며, 연방국가는 그들에 대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한다.

5) 대외적 통치권 행사에서 연합국가는 구성국가들이 대외적 통치권을 행사하지만, 연방국가에서는 전쟁 선언이나 강화(講和), 외교사절의 파견, 조약 체결 등 대외적 통치권은 연방국가가 보유하며, 구성정부들은 그러한 통치권은 갖지 못한다.

6) 통치기구 구성에서 연합국가는 구성국들 대표들로 합의체인 공동기구를 구성하는데, 이 공동기구의 모든 의사(議事)는 구성국들의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그러나 연방국가의 경우 중앙통치기구는 연방국가의 헌법 규정에 따라 구성한다.

7) 군사력의 보유에서 연합국가는 그 구성국가들이 자체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고, 구성국들 간의 무력충돌은 전쟁으로 간주하며, 한 구성국이 구성국이 아닌 제3국과의 개전이 불가피할 때는 필요한 병력을 제공한다. 연방국가는 연방정부만이 자체 병력을 보유하고 구성정부들은 보유할 수 없다.

3. 통일의 편익(便益)

연합과 연방이라는 정치적 체제문제 말고도 통일주체들의 의식구조에서 배회되고 있는 통일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이나 부정론은 합의통일의 또 다른 잠재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로 당면한 남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를 이유로 통일 미래에 대해 의심하거나 절망하며, 심지어 반대하는 현상이 일부 서민들이나 심지어 지식인들 속에서까지 일정한 파급력을 가지고 움트고 있는 것이 남한의 현실이다. 이것은 통일 미래에 대한 바른 인식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사료된다. 이 내재적 걸림돌은 오로지 미래지향적인 통일의 편익(便益)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의 공유에 의해서만 제거 가능할 것이다. 이 미래지향적인 인식은 다름 아닌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로서의 민족주의 속성인 발전지향성에서 발원(發源)되고 도모되는 것이다. 통일의 편익이란 “분단이 종식되고 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인구가 증가하고 ‘규모의 경제’라는 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되고 수출경쟁력이 생기는 데서 오는 이득” 즉 통일됨으로써 얻어지는 가시적인 실리(實利)를 뜻한다.

1990년대 중반 남한에서는 ‘가난한’ 북한과 통일이 되면 한국인들의 삶의 질이 크게 나빠질 것이라는 이른바 ‘통일 비용론’이 대두되면서 ‘통일공포증’이 일기 시작하였다. 여기서의 ‘통일 비용’이란 통일된 뒤에 들어가는 투자비용을 말한다. 통일의 미래, 특히 통일의 편익에 관한 확실한 논의나 교육이 결여되다보니 이 ‘공포증’이 일파만파로 퍼진 결과 합일통일에 역행하는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사실 이 논의는 일본이 악의적으로 지핀 화마(火魔)였다. 1992년 말 ‘일본장기신용은행’이 주제넘게도 남북한 통일비용을 예측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액수는 통일 초 10년 동안 매해 한국 GDP(국내 총생산)의 15%쯤을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국가예산의 절반 정도가 되는 엄청난 액수다. 연구서 말미에 “한국 혼자의 힘만으로는 감당 못할 테니, 결국 일본이 도와줘야 할 것이다”라는 음흉한 흑심(黑心)을 드러냈다. 이 수치는 독일이 화폐통합과 부동산 처리에서 통일비용을 낭비한 실책(失策)을 분별없이 표본으로 삼은 데서 비롯된 부풀어진 통일비용, 즉 ‘통일비용 과다론’이다. 이 끔직한 ‘과대론’에 한국 민심이 흉흉하기 시작하였고, 정부도 덩달아 당황하였다.

이에 겁을 먹은 한국의 통일 관련 기관에서는 여론에 밀려 경쟁적으로 통일비용 산출에 나섰다. 1993~2011년 사이에 개인이나 기관 28곳에 의뢰해 통일비용을 산출했는데, 그 수치는 천차만별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중 국회로부터 학술용역을 수주 받은 신창민 교수(중앙대학교 경영학과)가 제출한 장문의「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이란 연구보고서(2007)가 비교적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 보고서는 “통일비용은 통일되는 날부터 10년 동안 매년 GDP의 6% 내지 6.9%가 소요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GDP가 약 1조 달러이므로 그 6% 내지 6.9%는 약 600억 내지 690억 달러로 환산된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국방비는 많이 삭감될 것이며, 통일준비기금 같은 부대비용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이러한 사정은 남북한이 마찬가지가 된다. 그러므로 남한을 기준으로 할 때, 통일비용에서 연간 국방비 약 25조원(GDP의 2,5%, 국가예산의 8~9%)을 포함한 분단비용을 뺀 순통일비용은 연간 약 20조원(200억 달러, GDP의 2%)이 소요되는 셈이다.

신 교수는 이러한 계산에 기초해 통일이 되면 통일비용보다 훨씬 큰 규모의 통일편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단하면서, 여기에다가 통일이 되면 년 평균 11.25%의 높은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고도 예측하였다. 이렇게 보면 속된 말로 ‘통일은 크게 남는 장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단순한 경제적 편익이라면, ‘하나된 민족’, ‘하나된 나라’라는 긍지와 안정, 행복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편익’을 더한다면 숫자로는 계산이 불가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통일에 대한 우리의 참된 민족주의가 예고하는 발전지향성적인 성찰이며 기대인 것이다.

이상은 통일을 경제적 실리에서 따져본 경제적 편익이라면, 이러한 경제적 편익에 못지 않는 또 하나의 편익, 즉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정신적 실리에서 얻어지는 정신적 편익도 아울러 있음으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무리 오늘을 자랑하고 내일을 미화해도 ‘저희들끼리 싸우는 못된 사람’이란 남들의 비하나 조롱 앞에서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밖에 없다. 남들처럼 통일되어 그 편익을 누리게 될 때만이 그러한 수치스러운 비하나 조롱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닫는글

반만년 민족사에서 오늘날 70여년을 이어오는 분단사는 우리 민족에게 미증유의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는 중차대한 사회적 의제로서 의례 심오하고 포괄적인 학문적 조명과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 남북한을 막론하고 이 민족사적 의제를 다루는데서 사회학적 접근방법에만 집착하고, 민족의 역사문화와 전통에 바탕한 인문학적 접근방법은 거의나 소외되고 있다. 분단과 통일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한민족일진대, 민족을 배제한 민족공동체의 복원이나 재통일은 결코 성사 불가능하며, 민족론(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한 이론)을 무시한 통일담론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다행히 근간에 와서 이러한 문제점을 감지한 일부 연구자들은 뒤늦게나마 통일담론을 민족론과 접목시켜 개진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그들 대부분은 서구의 진부한 민족론, 특히 민족주의론에 훈육된 나머지 참 민족주의에 대한 무지와 오해, 왜곡 속에 통일담론과 민족론의 이론실천적 접목에 대해서는 불신하거나 회의적이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민족주의는 ‘야누스의 얼굴’로, ‘패러독스로 가득’한 ‘비인간적인 허위의식’으로 매도됨으로써 통일담론에는 민족론이 발붙일 입지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작금 유행되고 있는 통일담론은 일관된 향도적 지침이며 방향타인 철학이 결여된 한낱 방담(放談)의 수준에 그치기가 일쑤다. 세계적 희유의 분단사를 다루는 담론에 철학이 없다는 것은 학문의 후진성을 말하기에 앞서 자못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필자는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이란 제하에 나름대로 통일담론의 접근방법으로 사회학적 접근방법과 인문학적 접근방법을, 통일담론의 체제와 틀로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의 유가적 배합을 동시에 제시하면서, 이 모든 방법과 체제의 공통분모가 되는 것은 민족주의라는 지론을 개진하였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의 3대 근본속성인 연대의식과 민족수호 의지 및 발전지향성을 통일담론의 3대 철학적 기조로 자리매김해 본다.

이 대목에서 특기할 것은 통일담론의 3대 철학적 기조는 필자의 협애한 두뇌에서 억지로 짜낸 개념이 아니라, 그 동안 남북 간에 진행된 숱한 통일담론 결과로 맺어진 일련의 협약서 가운데서 남북 정상 간에 합의되어 발표한 6건의 주요한 공동성명이나 선언 및 합의서 내용에서 그 고갱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내용에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라든가 논리적 입론(立論)이란 명시(明示)는 없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바로 그 ‘철학적 기조’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이것은 이러한 ‘철학적 기조’가 많든 적든, 영성적(零星的)이든,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일찍부터 남북 간 통일담론에서 논급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다만, 민족주의와 그 속성에 생소한 ‘연구자’들이 그것을 미처 제대로 포착해 이론화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이것이야말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의 통일담론은 이러한 철학적 기조를 거울로 삼아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통일담론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담론이 어떤 패러다임에 의해 운영되는가가 담론 자체뿐만 아니라, 통일의 진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민족 2체제’라는 한반도 분단사의 특수성으로 인해 통일담론은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의 2중 패러다임에 의해 운영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국가중심패러다임을 국가 대 국가의 ‘흡수론’으로 오해하고 민족중심패러다임과의 인위적인 대립과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통일담론을 방해하고 평화적 통일의 실현을 무산시키는 폐단을 더 이상 범하지 말며, 이 2중 패러다임을 유기적으로 잘 배합해 통일담론의 운영에 효용(效用)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 간에는 많은 통일담론이 오갔으며 여러 가지 통일 정책과 방안들이 제시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한반도는 세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상쇄될 수 없는 수치스러운 민족사다. 원인은 단 하나, 합의통일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냉전시대에 분단으로 운명을 같이했던 몇몇 나라들은 전쟁이 아니면 일방적 흡수의 형식으로라도 나름의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한 민족상잔까지 겪어낸 한반도는 더 이상 전쟁이나 흡수의 형식으로는 바람직한 통일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남북한 통일주체들의 한결같은 의지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지와 요청에 부응되는 통일의 형식은 진지한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을 통한 합의에 의한 통일, 즉 합의통일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합의통일을 가로막는 걸림돌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당면하여 극복해야 할 걸림돌로는 정치적 체제통합에서의 연합과 연방 문제와 더불어 의식구조에서의 통일 미래에 대한 회의론이다. 그리하여 졸고에서 체제통합문제로서의 연합과 연방에 관한 개념과 원리 및 상호관계의 해명을 시도하였으며, 회의론 불식(拂拭)으로서의 통일편익론을 피력하였다.

통일의 궁극적 목적은 정치적 체제통합을 기제로 한 민족공동체의 복원과 부흥이다. 따라서 이 모든 문제의 해명과 제시에는 민족의 연대의식과 민족수호의지 및 발전지향성의 속성을 기조로 한 민족주의 철학이 온축되어 있음을 새삼스러이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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