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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민석 “친일과 김건희가 윤 정권의 본질...집권플랜 본부 곧 띄우겠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전속력으로 대세를 만들고 집권을 준비해야 한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9.11 ⓒ민중의소리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해 “최초의 친일정권”이라고 규정했다. 뉴라이트 인사 대거 등용을 일반적인 분석과 달리 의도적인 배치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현재 권력의 본질은 김건희”라며 “김건희 여사를 왜 좀 조용히 시키지 못하냐는 식의 주장은 잘못된 설정”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대란, 민생난 등 국정 난맥상이 분출되는 정국과 관련, “조선일보 김대중 전 주필도 글에서 보수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며 “최근 의료대란을 거치면서 이런 인식이 기득권 세력 상층부로 전염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경선에서 줄곧 ‘집권을 준비하는 수석이 되겠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 대해 “확고한 민주당 우위 단계로 들어섰다”고 짚은 그는 “전당대회 기간부터 ‘이제는 대세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필요한 것은 전속력으로 강력한 집권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집권플랜 본부장이 되겠다고 최고위원에 나섰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해서 추석 후에 공식적으로 띄우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연휴 전인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김 최고위원과 일문일답이다.

-의대증원은 진보진영에서 의료개혁의 부분으로 주장해온 것인데 정부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재난적 상황을 불렀다. 지난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장도 하셨는데 어떻게 보시나.
=필수의료 확대, 지방의료 부족 해결 등을 위해 지역의사제와 같은 대안과 함께 의대증원도 민주당이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개혁의 여러 요소를 누락한 채 2천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면서 과격하게 추진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저희가 신중하게 접근했고, 국민도 의대증원은 지지하는 여론이 많았다. 그런데 한계에 부딪혔다. 정부의 정교함, 섬세함이 떨어지고 코로나 변이와 맞물리면서 전혀 핸들링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응급실에 가보라”고 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범시키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세상일이 면피하려 해도 면피가 안 된다. 민주당이 전제조건을 걸지는 않았지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의료계도 거부감이 큰 장·차관을, 문책 아니라도 좋으니 경질해야 한다. 정부 협상창구를 그대로 두고 일단 오라니 뭐가 되겠나. 한 대표가 이런 걸 세게 밀지를 못한다. 채해병 특검도 본질적인 문제는 피하고, 김건희 여사 문제도 “국민의 눈높이” 한마디 하고는 끝이다. 아직 덜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9.11 ⓒ민중의소리
“윤 대통령이 뉴라이트 모른다?
모르는데 어떻게 뽑는 족족 이상한 사람들인가
친일과 김건희가 이 정권의 본질”


-정부 요직에 뉴라이트 인사가 대거 등용되고,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도 친일 논란을 부르고 있다. 윤 대통령이 뉴라이트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는 시각이 많은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나.
=뉴라이트에 대한 이해 깊지 않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본질이 뉴라이트라고 포장된 친일매국이고 그것이 권력의 뿌리다. 이 정권의 속성이 검찰도 있고 독재도 있지만, 핵심 DNA를 하나로 정리하면 친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가 해방 후 물러가면서 다양한 세력을 박아놨고, 학계와 군, 검찰, 기업 등에서 성장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사정권과 결합하고 이후 기업과 결합했다 이제 검찰권력 창출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의존성이 있고, 통상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큰데 윤석열 정권은 최초로 친일 우위 정권, 일본 중심 정권이다.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를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르는데 어떻게 뽑는 족족 이상한 사람들인가.

-정권 내내 지속되는 김건희 여사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
=김건희가 권력의 본질이다. 김건희 씨가 최근에 시찰한 거 보면 딱 나오잖나. 왜 주저앉히지 못하지, 집에 조용히 있게 하지 못하지 하는 건 착각이다. 그가 곧 권력이고 절대 퇴진하지 않는다. 대통령 부부의 관계에서 김건희의 우위, 이걸 명확하게 인식해야 이후의 상황도 예측이 가능하다. 친일과 김건희가 이 정권의 본질이다.

-정부의 한미일 동맹 추진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 근원이라고 봐야 한다. 2차대전 후 미국과 중국에 밀린 그들이 일본식 은인자중, 도광양회를 하다 굴기를 하고 있다. 역량이 약화되는 미국이 받아들이고 양국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다. 즉 동북아 상당 부분을 일본에게 위임해 온 것이 강화되는 추세인데, 윤 대통령이 딱 맞춰주고 있다. 기시다 방한에 ‘일본 총리 퇴임잔치까지 돈 들여 열어주냐’고 하지만, 일본 극우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 윤석열을 관리하는 것이다.

-명절인데 민생이 걱정이다. 정책 일관성도 없어서 감세와 건전재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경기침체에 긴축을 하고, 부동산가격을 부양하면서 가계대출을 관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덕수 총리는 국회에서 경제지표가 좋다고 큰소리를 쳤다.
=두 가지가 보이는데, 하나는 경제를 보는 이론과 현실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하다. 두 번째로는 국제경제 상황을 돌파하면서 도약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제일 아쉬운 게 역대 보수진보 정권은 모두 혁신산업 또는 신산업의 성과를 내려 했는데, 지금은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0년처럼 가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실력이 부족한 면도 있는데, 권력의 핵심과 주변이 그냥 상황을 방치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다.

-재보궐선거가 다가온다. 곡성군수의 경우 당규가 총선 전 바뀌긴 했으나 민주당 귀책사유 불공천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당규가 있을 때도 불가피한 선거에 후보를 내는 결정을 해왔다. 정당이 고상한 도덕주의만으로 살 수는 없다. 지금 그것을 논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다.

-호남 기초단체장 두 곳이 관심인데 조국혁신당은 호남에서 민주당을 대체하겠다 나섰다.
=우선 민주당이든 조국혁신당이든 재보선에 올인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치적 심판은 지난 총선으로 끝났다. 기초단체장 4개 선거로 무슨 심판을 또 하나. 그리고 지금 할 일이 너무 많다. 기존 특검도 다 못하고 있고, 친일이나 민생 문제도 그렇다. 이런 문제에 집중하면서 선거는 각 시도당이 책임지고 중앙당이 적절히 지원하는 게 맞다. 한 달 반이나 남았는데 선거에 올인할 시기인가도 의구심이 든다.

-이재명 대표는 호남 경선에서 지방소멸, 소득증대 해법으로 ‘햇빛농사 바람농사’를 제시하기도 했는데, 민주당의 호남정치 비전은 무엇인가.
=민주당은 호남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시대가 변하면서 민주당은 호남에 뿌리를 둔 전국정당이 됐다. 더 이상 호남당이라고 하기엔 불가능한 단계가 됐다. 이제 민주당이니까 찍어주세요, 민주당 말고 찍어주세요, 이런 건 모두 올드한 이야기다.
민주당은 ‘민주적 먹사니즘’ ‘호남형 먹사니즘’으로 호남의 오늘과 내일을 책임져야 한다. 이번 선거는 2년 후 지방선거의 예비선거 성격이다. 기본소득과 에너지고속도로는 민주당과 이재명의 브랜드 정책이 됐는데, 이번 선거가 열리는 영광은 에너지고속도로, 곡성은 출생기본소득을 실현하기에 맞춤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해직교사 복직 건으로 자리를 잃고 보궐선거를 하게 됐다. 가뜩이나 학생인권조례 폐지, 뉴라이트 교과서 논란 등으로 어려운데 서울교육이 위기에 처했다.
=조희연 교육감이 이렇게 낙마한 것은 굉장히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다. 공익 추구 정책행위에 너무 기계적으로 법 적용을 했다.
서울교육감 선거는 정당이 하는 게 아니지만 재보선에서 제일 큰 선거로 다들 주목하고 있다. 곽노현 전 교육감 출마에 진성준 정책위의장의 우려가 전해지고, 저한테도 묻길래 당과 지도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개인의 문제를 뛰어넘은 전체의 문제에 민주당 내부에서 느끼는 분위기가 그렇다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보수정권 재창출 불가 인식 확산
전속력으로 대세를 만들고 집권을 준비해야
집권플랜 본부 띄우겠다“


-‘집권을 준비하는 수석’을 자임하셨다. 언론의 단골 비판 소재가 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져도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시겠나.
=틀린 분석이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뒤 이미 국면은 변했다. 대통령 지지도, 정당 지지도, 차기 후보 지지도 세 가지를 종합하면, 큰 틀에서 민주당 우위 단계로 들어갔다. 조선일보 김대중 전 주필도 글에서 보수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 최근 의료대란 거치면서 기득권 세력 상층부로 전염되고 있는 인식이다.
총선 때는 이 대표한테 여론조사 좋게 나와도 끝까지 한 표만 더 해달라는 메시지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말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전당대회에서는 신중론 국면은 지났다고, 대세를 만들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되치기 당한다고 주장했다. 집권 준비를 처음 제기했을 때는 생뚱맞은 이야기는 반응도 있었는데 공감대가 많이 확산됐다. 언제 정권이 바뀌어도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준비를 1년 내에 마무리해야 된다.

-탄핵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는데 정권교체가 됐다. 다음 민주당 정부는 잘할 수 있냐는 의문을 극복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정권에 대한 평가는 재창출을 했느냐, 못 했느냐에 있다. 김대중 정권은 재창출을 했고, 나머지 두 정권은 못했다. 후보에 대한 평가는 어떤 불리함을 극복할 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라고 본다. 지난 대선은 정권에 대한 평가가 낮았고, 그런 불리함을 극복할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지 못한 후보의 전력이 결합된 결과다. 정말 잘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줄 정도의 전력을 갖춰야 된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9.11 ⓒ민중의소리
-총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며 당원권리 강화는 당내에 합의가 된 듯하다. 외부에선 여전히 강성 팬덤정치라고 하지만, 최근 국민의힘도 당원권리 강조하며 새 명칭 공모하고 있다. 당의 발전 방향을 어떻게 전망하나.
=국민의힘도 좋은 보수 정당으로 변하기를 바라지만 될지 모르겠다. 민주당은 세계 최초의 대규모 숙의민주주의 실험으로 가고 있다.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숙의민주주의는 대부분 공론화위원회 같은 소그룹이다. 민주당은 이걸 세계 최대 규모로 실험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 한다면, 기술적으로는 AI 민주주의를 들 수 있다. 처음 국회의원 할 때 전자민주주의연구회라는 걸 시작했는데 이제 AI 민주주의 시대로 가고 있다.
집권 플랜에서 제가 세 가지를 얘기한다. 첫째 당원주권, 둘째 정책협약, 셋째 예비내각. 당원 주권은 단순한 권리 확대를 뛰어넘어서 숙의민주주의로 가려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조직이론을 보면 전체의 4%가 핵심적 고관여층이라고 하더라. 비슷하다. 200만 당원 중 10만 핵심당원을 정치적으로 훈련되고 활동력도 뛰어난 당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저도 그렇고 이 대표님도 그렇고 교육연수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책협약은 통상적인 정책정당에 더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된다. 최근에 의료대란이 심각한데, 과거에 DJ 때는 노사정 대타협을 했다. 끝으로 예비내각은, 어디 보도가 났던데 무슨 내각을 꾸린다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내각과 기관장 등 각 부분을 포괄할 인재풀을, 발굴하고 영입하고 배치하는, 그리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집권플랜 본부장이 되겠다고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 추석 후에는 공식적으로 띄워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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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를 살리고 문재인은 죽인다? '동물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검찰

[박세열 칼럼] 김건희 도이치 사건, 검찰의 '마지막 숙제'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9.14. 05:01:07

'살아 있는 권력' 수사로 정권을 잡은 검찰 세력이 '죽은 권력'을 뒤적이고 있다. 흔히 검찰이 정무적 감각이 좋다고 하는데, 이 정부 들어서는 그 감각을 완전히 잃은 것 같다.

일단 시점이 최악이다. 300만 원 상당의 명품백을 받은 김건희 영부인을 온 국민이 영상으로 목격했는데도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린 직후,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뇌물죄 피의자로 적시하고, 독립 생계를 꾸린 전(前) 사위가 받은 월급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간주하고 있다며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세세한 정보들을 살라미처럼 잘라 언론에 흘리고 있다.

과문해서인지 오묘한 법의 세계를 이해하긴 어려우나, 일반 사람들의 '보통 상식(커먼센스)에 비춰봤을 때 뭔가 이상한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검찰이 갑자기 전직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어 수사하는데 여론이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한 걸 과거에 본 적이 없다. 사안의 중대성과 대중의 인식 간 괴리가 너무 벌어져 있는 건 아닐까. 여론의 비약(飛躍)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검찰 내부에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따져 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이쯤에서 한동훈 전 검사의 명언을 떠올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사회가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중요한 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성내는 식으로 나오면 안 되거든. 그렇게 되면 이게 정글의 법칙으로 가요. 힘의 크기에 따라서 내가 받을 위험성이 아주 현격하게 (작아지는 게) 공식화되면 안 되는 거거든. 일단 걸리면 속으로는 안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미안하다 하거나 잠깐 빠져야 돼."(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전 기자의 대화 녹취록 중에서 한동훈 검사장의 발언)

정무적 판단의 달인이라는 '조선 제일검'의 이 말은 자의적 검찰 수사의 장단점과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일단 걸리면 가야" 되는 사람이 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4년 묵힌 전직 대통령 수사 카드가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들이밀어졌다. "힘의 크기에 따라서" 영부인이 받을 위험성이 현격하게 "공식화되면 안되는" 것이지만, 이미 그런 상황은 공식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법치'가 아니라 "정글의 법칙"으로 간다. 더이상 범죄 수사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빨려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꼭 그렇다. 알면서도 불빛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같은 게 지금 검찰의 모습이다.

검찰은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달마)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할 뿐, 좌고우면 없이 범죄 혐의를 단죄하는 거라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검사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믿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미 우린 검찰 수사가 정치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권력자를 단죄할 때보다, 권력자가 법망을 빠져 나간다고 느낄 때 국민의 불신은 두 배가 된다. 전두환을 처벌할 때 느끼는 '정의감'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발표에 더욱 격노하는 게 여론이다.

4월 총선 이후 상황을 찬찬히 돌이켜보면 모든 게 현 상황을 위한 '빌드업'처럼 진행된 것 같다. 검찰의 속성을 잘 아는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드러난 여론과 상관없이 무리수를 둬서라도 자신과 부인의 안위를 앞에 세기 위한 조치들을 차근차근 정교하게,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눈치조차 살피지 않고 만들어 왔다.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민정수석실 부활이다. '민심을 청취하겠다'는 목적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민정수석이 내정된 후 공교롭게도 검찰 인사가 뒤따랐다. 김건희 영부인 디올백 수수 사건을 담당하던 서울중앙지검 1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담당하는 4차장이 튕겨나갔고, '윤석열 라인'이라던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날아간 자리에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 사건을 수사하던 전주지검장 이창수가 돌연 부임했다. 대통령은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총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행동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마치 과거의 윤석열 검찰총장처럼 인사 패싱으로 체면을 완전히 구겼지만 단말마조차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퇴임 날짜만 세고 있을 뿐이다. 이후 검사들은 휴대폰을 반납한 채 지휘부와 연락 두절 상태에서 대통령 경호처 건물에 갇혀 영부인을 도둑처럼 조사했다. 흡사 영부인이 검사들을 불러세워 사정을 설명하는 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무혐의'를 받은 김건희 영부인은 족쇄를 풀기라도 한양 대통령처럼 현장을 시찰하고 공무원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들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영부인의 현장 시찰 사진을 화보처럼 게시한다. 다른 한편에서 검찰은 2020년 국민의힘이 고발해 시작된 문재인의 '전 사위' 사건을 4년 묵혔다가 지금 꺼내들었다. 지금 이 정권은 그만큼 절박하다.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 라도" 하는 걸 포기할 정도로.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는 '조국 사태' 수사 때처럼 수많은 곁가지 수사들로 이어질 것이다. 특수부 검사들이 잘 하는 게 그런 것이다. 변수는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휘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는데, 지금 특수부 검사들이 윤석열 검사처럼 '난도질 수사'에 익숙한지는 잘 모르겠다.

검찰의 '정무적 감각'이란 건 단순하게 표현하면 생존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전략적 사고방식이다. 검찰이 지금까지 정무적 판단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의 핵심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도덕적 우위와 당위성이다. 둘째, 검찰만이 갖고 있는 '은밀한 정보'들이다. 대개 그들은 두 개를 적절히 섞어 이겨야 할 상대(권력)가 치명적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은밀한 정보'로 정치권을 교란시켜 필요한 것을 얻는 능력이란 게 그 '정무적 감각'이다.

이런 방식은 곧잘 성공해 온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문제는 권력과 검찰이 지금처럼 한 몸이 된 상황을 여태 겪어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곧 검찰이고, 검찰이 곧 대통령인 상황에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그림은 명료해졌다. 김건희를 살리고 문재인을 죽인다. 이제 이 강을 건너면 세상은 비참해지지만, 강을 건너지 않으면 검찰이 파멸한다. 대통령과 그 부인이 부도덕하다고? 그렇다면 전 정권이 얼마나 부도덕한지 보여줄 차례라는 것이다. 이게 지금 검찰 정권의 '정무적 감각'이고, 검찰의 실질적 목표다.

한동훈 검사가 여당 대표가 되고 난 후에 급격히 여론의 지지를 잃고, 대통령실에 힘 없이 당하고 있는 상황이 그걸 잘 보여준다. 검찰은 검찰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여론의 힘을 받는다. 권력 자체가 된 검찰은 도덕적 우위와 당위성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만지작거리는 '은밀한 정보'는 오히려 여론에 부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영부인에 면죄부를 주고 전직 대통령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검찰이 어떤 행동을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게 돼 있다. 정권과 한몸이란 걸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릴 수도 없다.

'살아있는 권력'을 보위하고 '죽은 권력'을 난도질했던 일은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검찰 정권이 들어서고 '검찰=정권' 프레임이 가동되면서 '익숙한 일'은 원하는 효과를 불러오지 못하게 됐다. 지금껏 검찰이 권력을 단죄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의 정무적 감각이 좋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권력'과 거리두기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지금 검찰청 내에 몇명이나 깨닫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검찰은 몰락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동물의 왕국'은 이제 시작이다. 김건희 영부인을 봐주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하면서 친문과 친명은 '동병상련'의 정으로 결집하고 있다. '문재인 사태'는 '김건희 사태'로 더 크게 번지게 될 것이다.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도 성공적으로 만들 수는 있을 테지만, 그 이후엔 우리가 알던 검찰 제도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검찰은 새로운 시험지를 받았다. '전주'가 유죄 판결을 받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서 또다른 '전주' 김건희 영부인을 검찰이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볼 차례다. 만약 '불기소'로 귀결된다면 '공정한 척'이라도 하지 않는 검찰이 스스로 불러온 "동물의 왕국"에서 어떻게 버텨나갈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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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심야 일용직 같이 하자했는데... 3일 만에 남편 잃었습니다"

[인터뷰] 고 김명규씨 부인 "조울증 아들 돌봐야 해 새벽 일... 사과 한 번 없어"

24.09.13 18:06l최종 업데이트 24.09.13 18:06l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 10일 오후 경기도 시흥 자택에서 만났다.
▲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 10일 오후 경기도 시흥 자택에서 만났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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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아들이 아프기 때문에… 아들이 잠들고 난 뒤 새벽에 일을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남편한테 '쿠팡 다녀보니까 요즘 새벽에 투잡 뛰는 사람들 많더라, 우리도 빨리 빚 갚으려면 당신도 주말에 나랑 같이 쿠팡 가자'고 했었거든요… 그게 너무 죄책감이 들어요… 늘 아픈 아이 데리고 나가 놀아주고, 퇴근하고 와서도 집안일 도와주던 남편이었는데…"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던 우다경(52)씨는 눈 앞에서 남편을 잃었다. 그날 부부가 하던 일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쿠팡 프레시백(신선식품 배달용 보냉가방)'을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부인 우씨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쉴새 없이 밀려오는 프레시백을 손으로 접는 일을 맡았고, 남편 김씨는 그렇게 해서 쌓인 프레시백들을 한데 묶어 운반하는 일을 했다.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밤을 꼬박 새우는 심야조였다. 쉬는 시간은 새벽 3시와 오전 6시에 30분씩이었다.

부부가 일을 시작한 지 두 시간여 지났을 무렵, 프레시백을 쌓아두는 팔레트가 다 떨어져 다른 노동자가 가지러 간 사이 남편 김씨가 우씨에게 다가와 속도를 맞추기가 버겁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팔레트가 다시 채워지자 프레시백 운반을 재개한 김씨는 10분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우씨는 뒤에서 "사람이 쓰러졌어요"라는 비명 소리를 들었지만, 자칫 프레시백이 밀리지 않도록 바쁘게 손을 놀리느라 정신이 없어 미처 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두 번째 비명이 터져 나왔고, 우씨는 그제서야 '무슨 일이지?' 하고 몸을 돌렸다.

우씨가 서 있던 작업대에서 불과 3~4미터 떨어진 곳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남편이었다. 주변에 모여든 이들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20여 분 후 119 구급대가 와서 응급 조치를 했지만, 남편은 그대로 사망했다.

부부는 왜 쿠팡 새벽 일용직에 함께 나갔을까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쿠팡 일용직 신청 절차를 보여주고 있다.
▲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쿠팡 일용직 신청 절차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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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 프레시백 작업을 하던 사진.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당일 부부는 쿠팡 프레시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  쿠팡 프레시백 작업을 하던 사진.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당일 부부는 쿠팡 프레시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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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 생전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 생전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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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경기도 시흥 자택에서 만난 우씨는 남편 얘기를 꺼내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편이 죽은 날은 남편이 쿠팡 새벽 일용직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남편에게 처음 쿠팡 일용직을 제안한 건 우씨 본인이었다.

"남편은 하수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토목회사 직원으로 20년 넘게 일했어요. 안정적인 월급쟁이였지만,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아들(18) 치료비와 돌봄 비용 때문에 우리 집은 늘 허덕였어요. 특히 작년부터… 아들을 대안학교에도 보내봤지만 적응하지 못해 작년부터는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거든요. 거기다 6년 전에 사기까지 당하면서 생활고가 커졌어요."

우씨도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파출부, 식당 서빙 등의 일을 해왔지만, 아들에게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몰라 어떤 일도 오래 할 수 없었다. "'엄마, 애들이 괴롭혀' 하고 전화가 오면 제가 바로 뛰어나가야 하니까요." 우씨는 정기적으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보험, 분양, 상조 영업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 김씨는 장차 취업이 어려울 아들과 그런 아들을 상시 보살펴야 하는 아내를 위해 카페를 차려주고 싶어 했다. 6년 전, 마침 비슷한 제안을 해오는 지인이 있어 무리해서 투자를 했다. 하지만 사기였다. 수억원대 빚을 떠안게 됐고, 한 때 집에 차압까지 들어왔다. 6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빚 때문에 나가는 이자가 한 달에 수백만 원이라고 했다.

우씨는 올해 들어 경기가 나빠지면서 분양, 상조 영업이 시원치 않았다고 했다. 고민하던 우씨는 지난 6월 일거리를 찾아 알바몬에 들어갔다.

"쿠팡이 제일 눈에 띄더라고요. 아들 때문에 웬만한 시간에는 일을 할 수 없는데, 새벽에 일할 수 있는 심야조가 있다는 거예요. 아들을 재우고 나서 출근하면 되겠다, 싶었죠. 실제로 쿠팡에서 일해보니 '힘들어도 일하는 시간 때문에 나온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투잡, 쓰리잡 하는 사람들이죠."

그렇게 지난 6월부터 우씨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쿠팡에서 새벽 일용직으로 일했다. 자정부터 아침 9시까지 밤새 일하면 10만 원 남짓 벌었다. 급여는 1주일 단위 주급으로 들어왔다. 퇴근하면 잠이 쏟아졌지만 아들이 부르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두 달여 쿠팡 일용직 일을 한 우씨는 남편에게도 주말 새벽에 같이 일을 나가면 어떻겠냐고 했다.

"너무 후회돼요… 돈이 뭐라고... 남편은 8월 12일에 처음 나갔고, 8월 17일, 8월 18일 연달아 심야조로 일했어요. 남편이 '아무리 그래도 주말 중 하루는 아들과 보내야겠다'고 해서 그 다음주부터는 토요일, 일요일 중 하루만 나가기로 했었는데… 8월 18일에 남편이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제가 그랬을까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요…"

"남편 사망한 날, 두 사람 몫 했다"… 쿠팡 측 "고인 업무량, 평균 이하"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 10일 오후 경기도 시흥 자택에서 만났다.
▲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 10일 오후 경기도 시흥 자택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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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남편의 생전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아들과 함께 찍은 모습.
▲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남편의 생전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아들과 함께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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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씨는 남편이 업무 과중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남편이 사망한 8월 18일은 최저기온이 27도, 최고기온이 33도에 이를 만큼 무더웠지만 작업장에 에어컨 한 대도 없었다. 당일 프레시백 작업 물량은 40팔레트였다. 1개 팔레트에 프레시백 120개가 적재되므로 총 4800개의 프레시백을 처리해야 했던 셈이다. 그런데 그날 해당 업무를 맡은 일용직 7명 중 4명은 초보였다고 했다. 특히 4인 1조로 한 라인씩을 맡는데, 그날은 8명이 아닌 7명이 나왔기 때문에 운반을 담당한 남편이 1개 라인이 아닌 2개 라인의 운반을 모두 떠맡아야 했다고 했다.

"저도 운반 작업을 해본 적이 있는데, 한 개 라인만 해도 정말 힘들거든요. 원래 한 라인에 4명이에요. 한 사람은 세척기에 가방을 넣고, 그 다음 사람은 닦고, 그 다음 사람이 접어요.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운반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날은 7명이었으니까 4인 1조로 2개 라인이 안 되잖아요. 한쪽 라인에 운반하는 사람이 1명 부족했죠. 결국 남편이 양쪽 라인 운반을 혼자 한 거예요. 두 사람 몫을 남편 혼자 한 거죠."

쿠팡 측은 업무 과중으로 인한 사망을 부인하고 있다. 쿠팡CLS 측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고인은 아르바이트로 올해 총 3회 근무했고, 3번째 근무일에 프레시백 자동 세척 등의 작업 중 2시간 만에 의식을 잃은 것"이라며 "고인의 업무량은 평균 이하였다"고 했다. 쿠팡CLS 측은 "고인에게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이 확인된다"라며 김씨에게 건강 문제가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현재 고인에 대한 부검이 진행 중이고,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파리 목숨 대하는 것 같아요"… 쿠팡의 '로켓배송' 떠받치는 건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쿠팡 일용직 채용 광고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  지난 8월 18일 새벽 2시 10분께,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남편 고 김명규(48)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일하다 눈 앞에서 남편을 잃은 우다경(52)씨가 쿠팡 일용직 채용 광고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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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씨는 쿠팡 측이 "사람이 죽었는데 마치 파리 목숨 대하는 것 같았다"고 울먹였다.

"쿠팡은 남편이 아팠다는데, 남편은 지병이 없었어요. 만약 남편이 아팠다면 새벽에 투잡으로 쿠팡에 가자고 했겠어요? 쿠팡은 사람 죽는 걸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 같았어요.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여태껏 사과 한 번 제대로 못 받았어요. 사람같지도 않습니다. 그들한텐 그렇게 하찮은지 몰라도, 우리 가족한테는 하루 아침에 가장이 사라진 거잖아요.

아들이 이제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요. 올해 18살인데 작년부터는 저나 남편에게 욕도 하고 폭력을 쓰기도 했어요. 아이 잘못이 아니라 아이가 아파서 그런다는 걸 알지만, 너무 힘들어요. 그때마다 아이한테 맞아가면서도 끝까지 타이르고, 말렸던 게 저희 남편이었어요. 남편 없이는 이제 저 혼자 아들을 통제할 힘이 없어요. 저와 아들은 어떻게 살아요?"

남편이 사망한 지 20여 일, 우씨는 아들의 증세가 더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허공에 대고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는가 하면, 우씨를 향한 공격성도 더 심해져 20여 일 동안 112에 신고를 한 게 2번이나 된다고 했다.

"저도 남편 일 겪기 전까진 쿠팡에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죽는 줄 몰랐어요. 4년 동안 알려진 것만 13명이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쿠팡이 왜 성공했어요? 이렇게 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왜 죽고 나면 나 몰라라 해요.

'로켓 배송' 뒤에는 밤새 일하다 죽는 사람들이 있어요. 새벽에도 '빨리빨리 하세요', '힘 좀 냅시다'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요. 만약 밉보이면 나를 더 이상 안 부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말을 들어야죠. 그 압박에 길들여져서 저는 1~2초면 눈 감고도 프레시백을 접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 남편이 죽었어요.

근데도 쿠팡은 하나도 바뀌는 게 없어요. 오늘도 밤새 레일이 돌아가고 있을 거예요. 저한텐 아직도 쿠팡 인력을 구하는 문자가 와요."

그가 보여준 문자 속에는 이런 글귀들이 적혀있었다.
 
- '역대급 여름 프로모션★
심야조 : 토~월 3번 근무하면 최대 17만원!'

- '다가오는 토/일/월/화 동안
세번 근무하면 최대 17만원!'

- '★문자를 받으신 분들에게만 프로모션 적용★ 시급 환산 약 1.7만원!!
근무일자 : OO/OO(일요일) (오늘 저녁)
급여 : 112,063원(원급 82,063원 + 수당 30,000원)'

우씨와 인터뷰를 마친 늦은 시각, 김씨가 사망한 시흥 작업장으로 향했다. 우씨 말대로 산업단지 내 주변 공장들이 문을 닫고 불을 끈 것과 달리 쿠팡 작업장만은 불야성이었다. 대형 화물차가 끊이지 않고 드나들고, 컨베이어 벨트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지난 8월 18일 새벽 쿠팡 일용직이었던 고 김명규(48)씨가 일하다 사망한 경기도 시흥캠프의 10일 밤 모습. 심야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  지난 8월 18일 새벽 쿠팡 일용직이었던 고 김명규(48)씨가 일하다 사망한 경기도 시흥캠프의 10일 밤 모습. 심야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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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8일 새벽 쿠팡 일용직이었던 고 김명규(48)씨가 일하다 사망한 경기도 시흥캠프의 10일 밤 모습. 심야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  지난 8월 18일 새벽 쿠팡 일용직이었던 고 김명규(48)씨가 일하다 사망한 경기도 시흥캠프의 10일 밤 모습. 심야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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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쿠팡CLS#로켓배송#심야배송#일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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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 주가조작 ‘전주’ 유죄에 한겨레 “김 여사 기소가 마땅”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 “김건희 여사 처분 미룰 명분 사라져” 조선 “권력형 범죄 아냐”

대통령 용산 관저 이전, ‘맹탕’ 감사 논란 동아 “의혹 더 커지는 느낌”

기자명박재령 기자

  • 입력 2024.09.13 07:28

  • 수정 2024.09.13 07:33

▲김건희 여사가 지난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 용강지구대를 각각 방문해 생명 구조의 최일선에 있는 현장 근무자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전주’(돈줄) 역할을 했던 손아무개씨가 항소심에서 방조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자신의 계좌가 사용되고 실제 주식 거래에도 참여한 정황이 있는 김건희 여사의 ‘사법리스크’카 커졌다는 평가다. 경향신문은 “김 여사 처분을 계속 미루거나 봐주기로 일관한다면 권력의 시녀임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전이라 권력형 범죄가 아니”라면서도 “검찰이 4년 가까이 흐른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권순형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손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5억 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서 손씨를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가 1심 무죄가 나오자 ‘방조’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재판부는 손씨의 방조 혐의에 대해 “피고인들의 시세조종 행위를 인식하고도 이를 용이하게 방조하였음이 인정되어,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4년 가까이 흐른 사건, 검찰이 판단 내리고 책임을 져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검찰이 신속히 김 여사를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13일자 사설 <도이치모터스 ‘전주 방조’ 유죄, 김건희 여사도 법대로 해야>에서 “검찰도 항소심 결과를 보고 김 여사 처분 방향을 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며 “검찰이 김 여사 처분을 미룰 명분이 사라졌다”고 했다.

▲ 13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검찰은 김 여사 모녀가 주가조작으로 23억 원의 이득을 취했다는 의견서를 1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2차 시세조종에 관여한 업체 사무실 노트북에선 ‘김건희’라는 이름의 엑셀파일이 발견됐고, 김 여사가 자신의 주식을 허락 없이 싸게 팔았다며 작전세력 측에 항의했다는 법정 증언도 나왔다”며 “이 모두가 김 여사가 시세조종을 알았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황”이라고 했다.

한겨레도 13일 사설 <도이치 사건 ‘방조범’도 유죄, 김 여사 기소가 마땅하다>에서 “손씨의 유무죄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김 여사 처벌의 가늠자가 되기 때문”이라며 “김 여사 역시 자신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되고 실제 주식 거래에도 참여한 사실이 드러난 상태다. 사실 김 여사는 주가조작 ‘선수’의 8만주 매도 요청 뒤 직접 증권사 직원에게 전화해 8만주를 매도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단순 방조범 이상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수사·기소가 늦어지면서 일부 범죄행위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어렵게 됐으니 검찰의 직무유기 책임이 무겁다고 할 것”이라며 “최근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에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만으로도 검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마저 유야무야 넘긴다면 아예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 13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검찰의 기소 판단을 촉구하면서도 김 여사와 손씨는 사실관계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도이치모터스 사건’ 검찰이 金 여사 기소 여부 결론 낼 때>에서 “손씨는 자신과 아내 등의 계좌를 통해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들이면서 주가조작범과 문자를 주고받고 매수를 추천받은 정황이 나왔다. 반면 김 여사는 계좌 운용을 일임했고 주식 매매 전후 시점에 직접 주가조작범과 연락한 정황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은 문재인 정권 검찰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잡으려고 1년 반 넘게 수사했지만 다른 주가조작범들만 기소하고 김 여사는 기소하지 못한 것이다. 그 배경엔 이런 사실관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주가조작이 벌어졌다는 시점도 윤 대통령 부부가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 윤 대통령과 관련이 없어 권력형 범죄가 아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김 여사에게 문제가 있다면 기소했어야 하고, 아니라면 불기소하면 됐을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는 검찰 조사에서 주가조작 관여 사실을 부인했다. 이젠 검찰이 4년 가까이 흐른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했다.

대통령실 눈치 보는 감사원? 중앙 “솜방망이 지적 피하기 어려워”

감사원이 2022년 10월 참여연대의 국민감사청구로 시작한 대통령 집무실·관저 이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대통령 경호처 간부가 방탄창호 설치 공사비를 부풀려 국고에 약 15억7000만 원의 손실을 입혔다고 밝혔다. 다만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인테리어 업체가 주도한 것과 관련해 별도의 특혜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 2024년 9월12일 참여연대가 감사원 앞에서 ‘대통령실 · 대통령 과저 이전 불법 의혹 국민감사 결과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참여연대

참여연대는 “의혹 전반의 위법에는 사실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보수신문에서도 감사원이 ‘대통령실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13일 <‘용산 관저’ 업체들 위법 수두룩… 추천인은 모른다는 감사원> 사설을 내고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대통령경호처 등에 주의를 요구하는 데 그쳤다. 감사 보고서에는 ‘촉박한 일정’이나 ‘불가피한 상황’ 등 대통령실을 변호하는 듯한 표현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관저 인테리어 공사의 수의계약을 따낸 업체는 ‘21그램’으로 김건희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의 전시 후원사 가운데 한 곳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관저 이전 업무를 총괄한 김오진 전 대통령비서실 관리비서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 경호처 등을 통해 추천받았다. 해당 업체를 추천한 분들이 현 정부와 밀접한 분들”이라면서도 “누가 추천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감사보고서를 뜯어보면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커지는 느낌”이라며 “그런데도 감사원의 조사는 거기에서 멈췄다”고 했다.

▲ 13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시공 업체에 대한 감독이 지나치게 부실했던 것도 의문이 남는다. 21그램 측이 관저 인테리어 공사에서 하도급을 준 18개 업체 중 15개 업체가 무자격 업체였다. 대통령실과 행안부의 사전 승인도 받지 않고 무자격 업체를 끌어들였다”며 “종합건설업 면허가 없어 증축 공사를 할 수 없게 되자 21그램 측은 대통령실의 의뢰로 직접 종합건설사를 섭외해 왔는데, 이 건설사는 직접 시공하지 않고 대표의 친형이 운영하는 실내건축업체에 하청을 줬다. 자격 있는 업체가 직접 공사를 하고 있는지 확인은 없었다. 사실상 21그램을 위해 면허만 빌려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부분”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도 <탈법·부패 드러난 대통령실 이전, 용산의 자성 필요하다> 사설에서 “대통령실을 의식한 늦장 감사, 솜방망이 감사가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부패방지법상 국민감사는 감사 실시 결정일로부터 60일 안에 마치는 게 원칙”이라며 “그러나 2022년 12월 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은 일곱 차례나 기간을 연장한 끝에 1년8개월 만에야 결론을 내면서 ‘주의 촉구’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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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대통령실 이전은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왜 보안이 열악한 용산으로 옮기느냐’는 논란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슈”라면서 “그런 만큼 사소한 귀책도 없도록 조심했어야 했는데, 속전속결로 이전을 강행한 것이 탈법과 부패를 만들어낸 원인이 아닌지 대통령실은 성찰해야 한다. 김 여사 관련 업체 연루 의혹에 대한 보다 투명한 조사, 설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이 아닌 ‘방탄 공사비 날림’에 초점을 맞췄다. 13일 <방탄 공사비 16억 빼돌려도 대통령 안전에 이상 없나> 사설을 낸 조선일보는 “최고 방호 수준을 요구하는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방탄 공사가 날림으로 이뤄졌다면 큰 문제”라며 “대통령실 이전은 대선 공약이었지만, 정부의 충분한 검토와 여론 수렴이 생략된 채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방탄과 같은 중요한 공사에 비리가 개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이를 심각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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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반국가사상’ 탄압, 윤석열의 “반국가세력”으로 계승되다

반국가세력 100년사, 일제의 사상적 무기 꺼낸 윤석열 정권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하며 물을 마시고 있다. 2024.08.29. ⓒ뉴시스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6회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반국가세력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며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일 뒤인 지난 8월 2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 발언이 누구를 말하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간첩 활동을 한다든지, 국가기밀을 유출한다든지, 북한 정권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아주 부정한다든지,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야권이나 야당을 지칭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엔 웃음을 지으며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지난 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강선영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저서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는 책에 등장하는 ‘혁명’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이 연상됐다”고 말하며 “현재 대한민국에 이런 사상을 가진 분들이 다수당의 대표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떼려고 하는 세력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와 유사한 체제를 지향하는 반국가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대표와 야당들을 향해 ‘반국가’라는 낙인을 찍었다. 윤 대통령이 말한 ‘반국가세력’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강 의원이 나서 부연 설명한 셈이다.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비슷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번엔 ‘반대한민국 세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서울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지역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 추진은 대한민국 헌법이 대통령과 국민에게 명령한 신성한 책무”라며 “북한의 선전 선동에 동조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반대한민국’ 세력에 맞서 자유의 힘으로 나라의 미래를 지켜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30년대 일제의 국가총동원 체제와 함께

등장한 ‘반국가사상 척결’ 구호

“국민의 정신적 일치결합” 강조

윤 대통령이 애용하는 ‘반국가세력’이란 단어가 우리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으로 전 세계 경제는 휘청거렸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군부와 우익세력은 이런 경제적 혼란이 거세던 1931년 9월 만주를 침략했다. 일본엔 파시즘이 득세했고, 일본의 우익과 군부세력은 ‘국가총동원 체제’를 만들자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1933년 일본 육군이 발표한 국가총동원을 위한 농촌, 사상, 교육 관련 3대 대책에 ‘반국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1933년 10월 1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일제는 “반국가·반군사상(反國家反軍思想)의 인쇄물을 일소하고 황도정신(皇道情神)을 철저케 함”과 “국민의 정신적 일치결합”을 통해 ‘국가총동원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반국가’라는 표현은 독립운동가들을 향한 것이었다.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경성일보, 1940년 9월 4일 자)던 춘원 이광수와 같이 생각하는 이들과 철저히 구별하기 위한 단어였다. 때문에 ‘반국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과도 같은 표현이었다.

사상전선강화를 위해 반국가적 사상을 파쇄격멸하라고 강조하는 조선총독부의 입장을 보도한 동아일보 1938년 10월 7일자.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하며 국가총동원 체제를 본격화했다. 1938년엔 일본 열도와 한반도 등 식민지에서 물자를 최대한 많이 수탈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까지 만들었다. 노동력, 물자, 자금, 시설, 사업, 물가, 출판 등을 통제해 일본 군부의 뜻대로 일사불란하게 사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일제는 ‘국론통일’을 강조했다.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국가총동원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고, 일본 정부나 군부를 향해 비판하거나,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반국가’이고, 이런 노선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비국민’이라고 몰아세웠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 주둔했던 일본군 조직인 ‘조선군’ 보도국이 1938년 12월 15일 중일전쟁 1년을 맞아 조선일보에 기고한 ‘조선청장년과 시국에 대한 각오’라는 글을 보면 이런 일제의 주장을 잘 알 수 있다.

“왕왕 동포 중에 욱일승천의 세에 있는 흥륭(興隆) 일본의 세계적 세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 사상하에 배타적 주의에 취하야 풍선구와 같은 부동적 태도로서 칩거적 태도를 취하는 자 만약 일인이라도 존재할 시 이야말로 비국민으로서 단연매장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생각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국론을 분열시킨다면서 반국가 또는 비국민이라 낙인을 찍은 일제의 행동은 윤석열 대통령의 “반국가세력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으며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주장과 닮아있다.

일제강점기 친일부역 경찰과 군인

해방 이후 반공을 매개로 다시 활동

친일 세력이 과거 독립운동 세력을

‘반국가세력’이라 공격한 역사적 아이러니

아울러 ‘반국가세력’이란 표현은 일제강점기부터 ‘반공주의’와 맥을 같이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와 일본 본토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싸웠던 이들의 상당수가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1938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주도해 만든 ‘조선방공협회’는 설립 취지서에서 “반국가적 사상을 극복하여서 일본의 정신을 세계에 선양”하는 것을 자신들의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같은 해 일제에 전향한 좌익운동가 등이 주도해 만든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은 결성식에서 “우리들은 황국신민으로서 일본정신의 앙양에 노력하고 내선일체의 강화 철저를 기한다. 우리들은 사상국방전선에서 반국가적 사상을 파쇄·격멸하는 육탄전 전사가 되기를 기약한다. 우리들은 국책 수행에 철저적으로 봉사하고 애국적 총후 활동의 강화 철저를 기약한다” 등 3개 항목의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일제의 이런 반공 정책에 협력한 조선인 경찰과 군인들도 많았다.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고문한 친일 경찰과 일본군, 관동군 등으로 복무하며 무장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들을 소탕하는데 가담했던 친일 군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반민족 행위에 앞장섰지만,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 군정에 의해 ‘반공’을 매개로 군인과 경찰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일제시대 반민족 행위는 지우고, 자신들을 ‘반공투사’이자,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하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으로 포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입장에선 ‘반국가세력’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이후 권력을 잡고 과거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이들을 향해 ‘반국가세력’이라고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반정부’는 곧 ‘반국가’라고 주장한 이승만

이승만식 주장 그대로 이어받은 수구보수정권

해방 이후 반공을 활용해 신분을 세탁한 그들은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제가 자주 쓰던 반국가세력이란 표현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이승만 정권은 국가 그 자체를 반대하는 ‘반국가’라는 표현과 정부를 비판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반정부’라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을 뒤섞어 ‘반정부=반국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이승만은 1948년 11월 5일 열린 정례기자회견에서 ‘반정부와 반국가는 다르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 정부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그것(정부)과는 다른 것이다. 영불 등은 내각책임제인 만큼 얼마든지 내각을 갈아낼 수 있으나 우리 정부는 4년간은 대통령 책임하에 정무를 보게 되는 것이니 현 정부를 전복하려 하는 것이니 이러한 행동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용허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 ⓒ뉴시스

이후 군사정권부터 지금의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수구보수 성향의 정권들은 ‘반정부=반국가’라는 이승만식의 해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정권 퇴진, 대통령 탄핵 등의 내용을 담은 각종 시위와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에 ‘반국가’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고,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반국가세력 낙인찍기 위해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본떠 만든

국가보안법과 박정희의 반공법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기 위해 이승만 정부가 들고나온 건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가 체제 유지를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삼았다. 일제는 천황 통치 체제를 부정하는 운동을 단속하는 단속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1925년 5월 12일부터 1945년 10월 15일까지 시행했다. 그리고, 이 법을 기초로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 태어났다. 치안유지법 제1조 “국체변혁을 목적하여 결사를 조직한 자”와 국가보안법 제1조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라는 표현이 흡사하다는 것만 보아도 두 법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해방 뒤 정치적 격동기에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로 만든 ‘한시법’이었다. 형법이 제정되면 국가보안법은 형법으로 흡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권을 확보한 이들은 형법 제정 후에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은 더욱 확대되고 보강되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국가보안법과 별도로 반공법을 만들었다. 쿠데타 직후인 5월 19일 군사혁명위원회 장도영 의장 명의로 발표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18호(반국가행위의 규제)’를 통해 “본관은 공산주의의 강령과 활동이 국헌을 문란케 하며 국가안전에 대한 명백하고도 계속적인 위험성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 활동을 철저히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녕과 질서 및 국민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음 각항에 해당되는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그 직책에 따라 엄중처벌할 것을 포고한다”면서 “다음 각항에서 반국가단체라함은 공산당 및 이에 동조한다고 인정되는 단체를 지칭한다”고 규정했다.

1961년 7월 3일엔 ‘반국가행위의 규제’를 담은 군사혁명위 포고를 기초로 반공법을 제정했다. “반공체제를 강화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자나 이들에 대해서 협조하는 자 등을 일반법보다 무겁게 처벌하여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공산계열의 활동을 봉쇄한다”는 것이 이 법의 핵심 내용이었다. 반공법은 반국가단체에 가입 권유,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에 대한 찬양‧고무‧동조, 이적단체의 구성‧가입, 이적표현물의 제작, 반국가단체에 편의 제공과 ‘불고지’ 등 매우 포괄적인 규제 내용을 담았다. 국가보안법과 겹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국가보안법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강행했다.

반국가단체에 동조하면 처벌하고, 찬양 고무행위 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 반공법 초안을 소개한 경향신문 1961년 3월 10일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반공법의 별칭은 ‘막걸리 반공법’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걸려들 수 있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철거반원을 향해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 운운했다는 이유로, 공화당이 공산당보다 못하다며 욕을 했다는 이유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민군이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됐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반국가세력 양산하며

정적을 제거하고, 위기를 돌파하며

자신의 권력 유지한 박정희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처벌할 수 있었던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무기로 삼았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권력 유지에 방해되는 이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는 수단이 되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 민중운동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을 적용하여 가혹하게 탄압한 것이다. 반공법이 제정된 1963년부터 박정희 집권 마지막 해인 1979년까지 국가보안법으로 1651명이 검거됐고, 반공법으로 4031명이 검거됐다.

박정희 정권 집권 시기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검거 인원은 정권의 정치적 위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1969년 삼선개헌부터 1971년 제7대 대선, 1972년 유신헌법 제정까지 4년 동안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커졌고, 이를 막기 위해 구속자가 급증했다.

이런 정치적 목적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1차 인혁당 사건(1964년), 동백림사건(1967), 통혁당 사건(1968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4년), 민청학련 사건(1975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1979년), 남민전 사건(1979년)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정치조직들을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이적단체로 규정해 대량구속 했고, 사형, 무기 등 중형을 선고했다.

정적 또는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1966년 5월 민사당은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고 서민호 전 의원을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그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해 국회의원을 사퇴한 뒤 새롭게 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신교환과 기자·문화인 교류 등 남북교류를 당의 통일정책으로 채택했다. 서 전 의원은 그해 5월 27일 창당준비 확대대회에서 한일기본조약의 폐기, 주월 한국군의 철수와 함께 “내가 만약 집권한다면 북한의 김일성과 국제기구를 통하거나 해서 면담, 대결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를 꼬투리 잡아 1주일 후인 6월 3일 그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의 박정희 ⓒ자료사진

남북대화 등을 주장한 서 전 의원에게 박정희 정권은 반국가 낙인을 찍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 전 의원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인물이고, 그에게 반국가 낙인을 찍은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 관동군에서 근무한 친일 군인 출신이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김일성과 만날 수 있다는 서 전 의원의 주장이 “반국가단체의 수괴를 자신과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림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괴를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과 동등하게 취급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 결국 무죄로 판결을 바뀌었지만, 박정희의 정치적 목적은 이미 달성된 뒤였다.

통일사회당 대표였던 김철 씨도 반국가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김철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의 아버지다. 김철 씨는 1970년 통일사회당을 만들고 당대표로 선출된 뒤 중립화 평화통일안을 내세우면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1971년 “잠정적으로 남북이 다 같이 유엔에 가입해야 한다” “북한정권의 현실적인 통치형태의 존재를 인정하여 북괴라 부르는 대신 북한정권이라고 호칭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주장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했다며 구속됐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국가·이적단체 조직 사건으로

정권 위기 돌파해온 전두환 정권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반국가’ ‘공산주의자’ 낙인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광주 학살을 거쳐 정권을 잡은 전두환도 박정희의 수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두환 집권 시기인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보안법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박정희 집권 시기와 마찬가지로 정권의 위기마다 구속자가 급증했다.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1980년부터 1981년까지 국가보안법 관련 구속자가 급증했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타오르던 1986년과 1987년에 다시 급증했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운동세력을 향해 반국가단체 또는 이적단체를 구성했다는 혐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광주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은 이론화·조직화되면서 활발해졌고, 전두환 정권은 수많은 조직사건을 만들며 대응에 나섰다. 1981년 전민학련, 전민노련 등이 반국가단체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1985년엔 삼민투위, 민주화추진위원회(깃발사건) 등이 반국가단체로 처벌받았다. 1986년 9월엔 미국 유학 중 북한 공작원에 포섭된 뒤 국내에 잠입해 학생들의 반정부 폭력시위를 주도하면서 간첩 활동을 했다고 조작해 이른바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전두환 정권이 만든 수많은 조직사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바로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다. 계엄사령부는 1980년 5월 17일부터 수사를 벌여 7월 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가 37명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내란을 획책했다면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당시 계엄사령부의 수사발표를 보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괴상한 주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계엄사령부는 “국민연합을 주축으로 방대한 사조직을 형성, 주로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하여 대중선동에 의해 학원소요사태를 일으키고 이를 폭력화, 전국적인 민중봉기를 일으켜 유혈혁명 사태를 유발케 하여 현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한 뒤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 집권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선고됐다는 동아일보 1980년 9월 17일자 기사와 사형수로 복역하던 당시의 김대중 전 대통령 모습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김대중평화센터

계엄사령부는 또 “김대중은 8.15해방직후부터 좌익활동에 가담한 열성 공산주의자로서 73년 8월에는 반국가단체인재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연맹(한민통)을 발기, 수괴인 의장으로 추대돼 북괴 노선을 지지 동조하는 반국가 활동을 했고 북괴 또는 조총련으로부터 받은 불순자금을 불법으로 반입해 사용했으며 계엄기간 중 포고령을 의도적으로 위반”했으며 “10.26사태가 자신의 집권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확신, 신민당 복귀를 통한 합법적 집권투쟁과 사조직을 통한 대중선동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합법적 비합법적 투쟁의 양면전략을 추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계엄사령부의 수사발표와 함께 언론과 방송도 거들고 나섰다. 김대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기 위한 특집 보도가 이어진 것이다. “선동·권모술수로 얼룩진 「위선의 화신」 김대중을 벗긴다”(경향신문) 등 그를 좌익 공산주의자이며 북괴를 도와 반국가 활동에 나선 인물이자 각종 비위를 일삼아 온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사면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에게 씌워진 반국가 등 부정적 이미지는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지금도 수구보수세력 가운데 일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한 이런 주장을 아직도 되풀이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전두환 정권이 찍은 반국가 낙인의 위력은 대단했다.

여소야대 국회로 주춤했던 노태우 정권

문익환 목사 방북 등 빌미 공안정국 조성

“대한민국 안전 위태롭게 한 반국가활동”

1987년 6월항쟁 이후 직선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노태우는 1988년 2월 취임사를 통해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구실삼아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등한시되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강압과 밀실 안에서의 고문이 묵인되던 날들도 이젠 지나갔습니다”라고 밝혔다. 말뿐일 수 있지만, 과거 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정권이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반국가’ 낙인을 찍는 시대를 마감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1988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면서 국가보안법 개정 시도 등 세상이 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금방 허물어졌다. 1989년 통일운동의 열기가 거세지며 황석영 작가(3월20일), 문익환 목사(3월25일), 임수경 한국외대 학생(6월30일), 문규현 신부(7월25일)가 잇따라 방북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정부만 대북 접촉을 할 수 있다면서 창구단일화론 주장하고 있었고, 이런 정부의 방침을 벗어나 북한과 대화하거나, 북한을 방문하는 등의 행위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며 처벌했다. 아울러 공안정국을 조성해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을 향해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다.

당시 재판부는 문익환 목사가 북한을 방문해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고 호칭하고, 북한과 함께한 만찬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동지의 만수무강을 위해 축배하자”는 축배사를 하며 함께 잔을 들었다는 이유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정부의 승인없이 잠행입북해 북한의 연방제통일안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팀스피리트훈련 반대 등 북한 주장에 동조한 것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반국가활동”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문익환 목사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사노맹’

“무장봉기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 건설하려 했다”

검찰 박노해 백태웅에 사형 구형

민간의 통일운동을 빌미로 노태우 정권은 공안몰이에 나섰다. 1989년부터 크고 작은 조직사건을 발표했고, 1990년 여소야대 국회를 뒤엎고,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창당된 뒤엔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급증했다. 3당 합당에 항의하는 대학생 등의 시위가 거세졌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것이다.

거대 여당 민자당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유명 드라마 제목을 따 ‘한지붕 세가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계파간 갈등이 심했다. 민자당 창당 직후 벌어진 4월 재보궐선거에서 텃밭인 대구에서 겨우 과반을 넘겼고, 충북 진천·음성에선 3당 합당에 동참하지 않은 민주당 계 정당인 이른바 ‘꼬마민주당’에게 의석을 넘겨주는 등 참패했다. 이후 내부 갈등을 더욱 커져만 갔고, 이런 민자당의 위기 속에서 노태우 정권은 대규모 조직사건을 발표했다.

1990년 당시 정형근 안기부 수사국장이 사노맹 사건을 발표하고 있다. ⓒ월간 말

1990년 10월 30일 국가안전기획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했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운동단체가 반국가단체로 지목된 것은 사노맹이 처음이었다. 안기부는 사노맹이 전국의 노동현장과 대학가 등지에서 노동투쟁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해온 반국가단체라며 조직원 1백50여 명을 수배 중이며 조직체계도가 수록된 워드프로세서 및 컴퓨터디스켓을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조사결과 ‘사노맹이 전국에 1천6백여 명의 조직원으로 거대한 지하조직망을 구축했으며 조직원은 점조직형태로 가명·음어·무인포스트를 사용하고 자살용 독극물까지 개발하려 하는 등 최대규모의 사회주의 혁명지하조직’이라고 주장했고, ‘광주사태가 실패한 것은 민중이 무장력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라고 분석, 자체 폭발물개발과 무장봉기 시 무기고탈취계획까지 수립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안기부와 검찰 등은 사노맹이 북한과 어떠한 연계도 없었지만, 북한과 연계가 있는 것처럼 주장했고, 결국 주범으로 몰린 박노해와 백태웅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박노해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백태웅은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선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두 사람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출소했다.

쌀개방과 연이은 대형참사로

위기 맞은 김영삼 정권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과

“정당·언론에도 주사파 있다”는

서강대 박홍 총장 발언으로

시작된 신공안정국

1993년 2월 김영삼 정권이 출범했다. 민주자유당이 재집권한 것이지만, 오랜 군부독재를 거쳐 군인 출신이 아닌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면서 출범한 ‘문민정부’였다. 집권 초기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안기부 개혁 등 여러 변화가 있었고, 한때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국민적 지지도 높았다. 아울러 국가보안법 구속자도 줄어들면서 ‘공안 정국’은 이제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권의 위기가 닥치자 김영삼 정권의 선택도 과거 군사정권과 다르지 않았다. 1993년 말부터 쌀시장 개방 논란 때문에 농민을 비롯한 여러 국민의 불만이 커졌다. 대형 참사도 잇따르면서 김영삼 정권의 위기감을 키웠다. 3월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로 78명이 사망하고 198명이 다쳤다. 7월 26일 목포행 아시아나 여객기가 추락해 66명이 사망하고, 44명이 부상을 당했다. 10월 10일엔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영삼 정권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그러다 19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정국은 급변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정상회담 상대인 김 주석이 사망한 만큼 조문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 등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부영 민주당 의원은 7월 11일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 “북한을 협상의 상대로 본다면, 북한 권력층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의 심리적 상태를 고려해 조문단을 파견할 의사가 있는가”라고 질의하기도 했다.

서강대 박홍 총장은 주사파가 1만 5천 여명에 이르고, 정치, 언론, 교육계 등에 진출해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1994년 8월 26일자.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하지만, 야당의 김일성 조문 관련 질의를 빌미로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과 보수언론은 조문이 곧 ‘김일성주의 찬양’이라고 주장하면서 조문 논쟁은 색깔론 논쟁이 됐다. 대검 공안부는 “김일성 추도행위를 벌일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고무 및 찬양) 혐의로 엄단할 방침”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1994년 7월 18일 서강대 박홍 총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과 사로청이 있고, 그 뒤에 김정일이 있다”고 주장하며 분위기는 고조됐다. 아울러 박 총장은 “북한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유학생이 교수로 있다”, “정당·언론에도 주사파 있다”고 발언했다. 다음날 ‘중앙일보’가 ‘병균은 색출해야 한다’는 사설로 박 총장을 거들었다. 그리고 각종 언론과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주사파 색출 소동이 벌어졌다. 이후 ‘주사파’ 관련 조직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이들은 1심 재판과정에서 대부분 집행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나왔으며, 안기부 검찰 등이 발표한 수사내용은 거창했지만, 실제 기소단계에서 축소되기도 했다. 해당 사건과 무관한 이들이 조직도에 끼워 넣어진 것이 나중에 밝혀지는 등 경찰과 공안 기관이 무리한 수사를 통해 과대 포장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의 공안정국은 정권 입장에선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 공안세력의 칼날이 거세지자 진보진영 내에선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많은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까지의 통일운동이 친북성향 일변도 였다”면서 “주사파 배격”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은 정권의 공안탄압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고, 정권으로선 진보진영을 분열시켜 위기를 돌파하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2003년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이념공방

여유와 포용력’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에

“적대적 행위 옹호하면

애국적 행동은 반국가적 행위가 되는 것”

총공세 나선 한나라당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다. 전두환 정권이 내란을 획책한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지목돼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특히 반국가단체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김대중 정부에선 국가보안법 개정이 논의됐고, 노무현 정부에선 국가보안법 폐지가 검토됐다. 물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진 못했지만, 정권이 나서 정적이나 정치적으로 반대의견을 가진 이들을 ‘반국가’로 몰아세우는 일은 없어졌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10년 동안 연이어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며 남북 화해 분위기와 함께 ‘반국가’라는 낙인을 찍는 야만의 정치는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반국가’라는 낙인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과거 집권세력이었던 한나라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민주개혁세력,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과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무기로 여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3년 송두율 교수 사건이다. 그해 9월 송두율 교수는 37년 만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국가정보원은 당시 그를 노동당 서열 23위 김철수와 동일인이라며 ‘해방 이후 최고 거물급 간첩’으로 몰아세웠다. 그 과정에서 송 교수의 조선노동당 입당 사실이 밝혀졌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공세는 거셌다. 노무현 대통령이 10월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송두율 교수 처리문제에 대해 ‘여유와 포용력’을 강조하자 박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사실상 포용하자는 편향된 사고를 보이고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자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노 대통령식으로 적대적 행위를 옹호하면 애국적 행동은 반국가적 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변인은 이어 “국정 최고책임자가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을 일종의 악법이라는 식으로 인식,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도 경계인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며 노 대통령을 향해서도 이념 공세를 펼쳤다.

송두율 교수 ⓒ영화 경계도시2 스틸컷

이러한 이념 공세는 효과를 거뒀다. 송두율 교수의 귀국을 추진했던 참여정부와 진보진영 인사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송 교수는 “학술 활동을 위해 북한을 드나들려면 관례적으로 노동당 가입 절차를 치러야 했고, 이후 노동당원으로서 활동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노동당원임을 의식하지도 않았다”라고 해명했지만, 진보진영에서조차 진의를 의심했다. “현 상황을 원칙이나 진정성으로 생각하지 말고, 축구를 할 때 골문을 수비하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생각하라”라며 노동당 탈당과 독일 국적 포기를 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송 교수는 결국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당 탈퇴와 독일 국적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그리고 2004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보름 만에 한국을 떠났다. 4년 뒤인 2008년 대법원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여론재판은 이미 끝난 뒤였다.

이명박·박근혜 연이어 집권

돌아온 전가의 보도 ‘반국가세력’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속 터진

내란음모 사건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

수구보수 세력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2008년부터 연이어 이명박·박근혜를 당선시키며 권력을 다시 잡았다. 다시 잡은 권력과 함께 강력했던 그들의 무기도 다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을 동원해 이들은 집권 내내 크고 작은 조직사건과 간첩단 사건을 연이어 터트렸다. 그리고, 조직사건과 간첩단 사건은 주로 진보정당을 노렸다. 이 시기 야권은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이 선거연합을 통해 2010년 지방선거 등에서 승리하는 등 위력을 발휘했고, 조직사건과 간첩단 사건을 매개로 야권연합에 균열을 만들려는 의도였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시기 내내 이어졌던 이런 공격의 정점이자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2013년과 2014년 이어진 ‘통합진보당 해산사건’과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다.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주요 당직자 10명의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3명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다. 당시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로 정통성이 의심받는 일대 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박근혜 정권은 과거 수구보수 정권이 애용하던 무기를 다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사건을 다룬 당시 언론 보도들이다. 당시 국정원을 통해 언론이 보도한 이석기 의원의 발언과 통합진보당 당원이 기자고 있던 폭탄제조법 등은 이후 재판에서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 ⓒ방송화면 등 캡쳐

조선일보는 8월 30일 ‘지하조직 비밀회의 녹취록 국정원 입수’를 전했다. 이른바 지하조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녹취록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단독보도라며 녹취록 요약본을 실은 데 이어 전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후 언론에선 ‘사제폭탄’, ‘기간시설 파괴’ 등 자극적 언어가 넘쳤다. 이런 총공세를 통해 이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찬성하라고 야당을 압박했고, 또 종북세력의 국회 진출에 민주당도 책임이 있다는 발언이 당시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결국, 9월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찬성 258, 반대 14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은 물론 한때 같은 당에 있었던 정의당마저 동조했다. 이후 국정원은 이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집행했다. 6일 정부는 ‘위헌정당 TF’를 구성했고, 새누리당은 이 의원 제명안을 제출했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 논의하는 회합”

주장하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선고

이후 재판과정에선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통합진보당에 호전적 낙인을 찍었던 근거가 된 녹취록은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조작하는 등 수백 곳 넘게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내란음모를 실행한 조직으로 지목받은 이른바 ‘RO’는 재판과정에서 실체가 없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2015년 1월 22일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로 판결했다. 선동 즉 부추기는 언행이 유죄가 되려면, 그로 인해 유발되는 ‘구체적 행위’가 전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행위없이 ‘말’ 한마디로 중형을 선고했다.

대법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이미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이러한 진보당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직 상실과 관련해서도 위헌 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비상상황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민대표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으므로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위헌정당 해산제도의 본질로부터 인정되는 기본적 효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헌재의 주장은 정부가 지난 2013년 11월 진보당 해산 청구 이후 해온 주장을 마치 녹음기처럼 되풀이한 것으로 정부 입맛에 맞춘 판결이었다.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하지만, 여전히 건재한 국가보안법

윤석열 대통령 등장과 함께

다시 살아난 반국가세력 주장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등 공안몰이를 이어가던 박근혜 정권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박근혜 정권은 위기를 맞았고, 2016년 10월29일부터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라며 19번의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렇게 모인 함성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 대선은 새롭게 치러졌고, 그렇게 촛불들의 기대를 모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국가보안법 등 공안 악법과 국정원을 비롯한 공안기관 등을 철폐 또는 개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많았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체제는 전혀 변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된 것이라며 민주당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남았던 과거의 불씨는 결국 윤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다시 타오르게 됐다.

대학생 역사동아리연합 진보대학생넷, 청년진보당, 청년하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등 청년 대학생들이 15일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뉴라이트 인사 등용, 굴욕적 역사외교를 거부하는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08.15 ⓒ민중의소리

2022년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당선된 만큼 집권 초기엔 별다른 이념적 행보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임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위기가 닥치자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라는 일제강점기부터 강력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주요 요직에 뉴라이트 출신을 기용하면서 이념 공세를 이어갈 준비를 마쳤고, 취임 1년이 지난 2023년 8월부터 윤 대통령의 발언은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반국가세력, 반대한민국 세력 등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총공세

‘반국가세력’이라는 무기를

사용해온 권력의 말로 어떠했는가를 살펴

윤석열 대통령은교훈을 찾아야

윤 대통령은 2024년 8월 15일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 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 세력의 생존 방식”이라며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광복절 기념사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화살은 일본제국주의가 아닌 북한과 대한민국의 야권과 진보세력으로 향했다.

8월 25일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1주년 성과보고회에선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했고,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선 “이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전임 문재인 정부의 이념 성향을 공격했다. 8월 29일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전체주의의 생존 방식”이라며 야당과 진보세력을 상대로 사상전을 벌일 것을 독려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이후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 맹종 세력, 반대한민국 세력 등 비슷한 표현을 이어가며 야권과 진보진영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2023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2024년 총선에서 연이어 참패했다. 지지율은 더욱 떨어져 20% 이하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일제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국가세력’이라는 무기를 사용해온 권력의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살펴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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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가 하이브에서 따돌림? '직장내괴롭힘'법 적용할 수 있나

[분석] 아이돌 노동자성 논란과 뉴진스를 노동자로 가정할 때 따져볼 것들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4.09.13. 05:01:03 최종수정 2024.09.13. 06:15:16

케이팝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들의 '작심 폭로'로 인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뉴진스가 의료기록·연습 영상 유출에 대한 사측의 책임을 물은 데 더해 기획사 하이브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자, 뉴진스의 한 팬은 고용노동부에 '직장내괴롭힘' 혐의에 따른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뉴진스가 제기한 문제들이 실제 법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을지 법리적 쟁점을 추려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봤다.

'뉴진스 따돌림 의혹' 사건과 한 팬의 '직장내괴롭힘' 수사의뢰

'뉴진스 따돌림 의혹'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뉴진스 멤버 하니는 지난 11일 유튜브에 올린 '뉴진스가 하고 싶은 말' 영상에서 "얼마 전 하이브 건물 4층 메이크업을 받는 곳에서 다른 아이돌 멤버와 매니저를 마주친 적이 있는데 매니저님께서 제 앞에서 다 들릴 정도로 '(하니를) 무시해'라고 하셨다. 제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고 어이가 없다"며 "그런 일을 누구도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 다른 멤버들도 그런 일을 당할까 봐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폭로했다.

이어 "새로 오신 대표님한테 말씀드리긴 했는데 '저한테 증거가 없고 너무 늦었다'면서 넘어가려고 한 걸 보면, 저희를 지켜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걸 느꼈다"며 "한순간에 약간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제가 직접 당했던 일인데도 제 잘못으로 넘기려 하시니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되고 무섭다"고 말했다.

다른 멤버 민지도 "상상도 못할 말과 태도를 당했는데, (무시하라는 말을 한 매니저가) 사과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시지도 않았다"며 "앞으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날지 지켜주시는 사람도 없는데 은근히 따돌림을 받지 않을지 당연히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에 12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평소 뉴진스를 응원하는 팬으로서 어제 폭로 영상을 보고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특히 '하이브 내 뉴진스 따돌림 의혹'은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국민신문고로 근로기준법 '전속 수사권'을 가진 고용노동부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A씨의 글이 올라왔다.

A씨는 근로기준법상 직장내괴롭힘의 정의인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인용하며, 뉴진스 멤버들에게 일어난 일이 노동부가 직장내괴롭힘 행위의 예시로 든 '따돌림 지시' 피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쟁점 ① : 뉴진스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가

'뉴진스 따돌림 의혹'에 직장내괴롭힘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뉴진스 멤버들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인지다. 학계에서는 특히 미성년 아이돌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일본·프랑스 등에서는 연예인의 노동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정착됐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B 노무사는 12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직장내괴롭힘' 혐의 성립 요건의 대전제는 상시 근로자수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일 것"이라며 "하이브와 뉴진스 멤버들이 체결한 계약의 형식과 실질이 '근로계약'에 해당하지 않으면,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직장내괴롭힘' 혐의는 성립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기획사와 연예인이나 아이돌은 '근로계약'이 아닌 '민법상 용역계약'에 가까운 관계를 갖는다. 아이돌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직접 따진 대법원 판례는 없다"며 "그나마 'KBS 방송연기자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사건에서 대법원이 근로자성을 인정했지만, 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보다 광의의 개념"이라고 부연했다.

뉴진스 멤버들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볼 경우 하니가 들은 '무시해' 발언에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할 가능성을 떠올려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성립 가능성은 높지 않다. C 변호사는 "형법상 모욕은 보통 욕설 등을 뜻한다. '무시해'라는 말을 모욕죄로 의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쟁점 ② : 뉴진스를 근기법상 노동자로 가정하면 따져볼 것들

만약 뉴진스 멤버를 노동자로 가정하거나, 뉴진스 멤버들이 겪은 일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에게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직장내괴롭힘의 다른 법적 성립 요건을 따져볼 수 있다.

먼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가졌는지를 봐야 한다. '무시해' 발언을 한 타 그룹 매니저가 뉴진스 멤버에게 '지위의 우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관계의 우위'는 수적 측면(개인·집단 등), 인적 속성(연령, 학벌, 성별 등), 직장 내 영향력 등 모든 관계에 관한 것으로 구체적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뉴진스 멤버들에게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모두 가진 이로 볼 수 있는데, 뉴진스 멤버들의 부모들이 '방 의장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음으로는 가해자의 행위가 '업무와 관련이 있고 적정범위를 넘어선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이를 판단할 때는 행위의 강도와 지속성이 함께 고려된다. 하니가 '무시해'라는 말을 한 번 들었다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중론이다. 다만 다른 사정이 더 드러나 회사 내에서 뉴진스에 대한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따돌림이 있었다는 점이 입증되면 성립 요건이 충족될 수 있다. 참고로 뉴진스 멤버들은 '영상에서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더 있었다'고 말했다.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관련해서도 입증이 필요하다. B 노무사는 "하니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분명하나 정신적 고통으로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지는 추가 판단이 필요하다"며 "통상 정신과 진료에 따른 우울장애 등이 발생한 경우를 정신적 고통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의료기록 유출은 위법행위

전날 영상에서 민지·해린 등은 모기업 하이브 측의 의료 기록 유출 의혹도 제기했다. 이들은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얼마 전에 저희의 연습생 시절 영상과 의료기록 같은 사적 기록이 공개됐다. 그걸 처음에 보고 정말 놀랐다. 저희를 보호해야 하는 회사에서 이런 자료를 관리 못하고 유출시켰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됐다"며 "부모님과, 그리고 민(희진) 대표님과 함께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하이브는 해결해주지 않았고 또 적극적인 조치도 없었다"고 밝혔다.

C 변호사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하지만, 타인의 의료기록을 유출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의료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에 해당한다. 당자사 동의 없이 이를 유출하면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걸그룹 뉴진스가 11일 민희진 전 대표의 복귀를 바란다며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에게 요구했다. 뉴진스 멤버 5명은 이날 오후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저희가 원하는 건 민희진 대표가 대표로 있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의 어도어"라며 이같이 말했다. 사진은 뉴진스 맴버 5명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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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 주범 윤석열을 탄핵하자!”…용산에서 목요촛불 열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9/13 07:59
  • 수정일
    2024/09/13 07: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9/12 [22:10]

 

용산촛불행동, 국민주권당 서울시당,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 공동 주최한 ‘윤석열 탄핵을 위한 목요촛불’이 12일 오후 6시 30분 용산역 광장에서 열렸다.

 

© 문경환 기자

“의료대란 주범 윤석열을 탄핵하자!”라는 부제를 달고 진행된 이날 집회에는 때때로 내리는 빗속에서도 연인원 1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해 윤석열 탄핵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시민이 용산역을 오가며 촛불집회를 유심히 바라보았으며 손뼉을 치거나 함께 구호를 외치는 등 호응하는 시민도 많았다.

 

사회를 맡은 김교영 용산촛불행동 회원은 의료대란 실태를 설명하며 “윤석열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게 맞나? 어디 달나라, 안드로메다에서 살다 왔나? 정말 너무 화가 난다. 불같은 윤석열 탄핵의 민심을 오늘 제대로 보여주자”라고 하였다.

 

신동호 국민주권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약 7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일으킨 의료대란을 수습하겠다며 우리 국민 혈세를 약 2조 원 정도 썼다”라며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면 바로 의사 자격증을 부여해 주겠다고 한다. 학습과 의료 공백을 통해서 자격이 안 되는 전공의들에게 복귀만 하면 바로 자격증을 부여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나? 국민을 상대로 기만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외쳤다.

 

▲ 신동호 위원장. © 문경환 기자

용산구 청파동에 사는 박영아 용산촛불행동 회원은 “배추 한 포기에 7천 원, 무가 한 개에 4천 원, 상추 오이 애호박 할 것 없이 하나하나 너무나 비싸졌다. 시금치 한 단에 무려 1만 원이 넘는다. 100g에 4천 원 정도라는데 이 정도면 소고기 가격 아닌가?”라며 “국민은 민생 파탄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윤석열, 김건희는 국민의 혈세를 펑펑 써가면서 사우나실이랑 드레스룸까지 만들고 감사 표시라면 몇백만 원짜리 선물을 턱턱 받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라며 분개했다.

 

류우승 대진연 회원은 “우리나라의 최고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대통령부터가 부패하고 부정의하고 역사관이 삐뚤어져 있는데 어떻게 대학생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겠나? 그렇기에 우리 대학생들이 총력을 다해 윤석열을 끌어내리겠다”라고 다짐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까지 행진하였다.

 

© 문경환 기자

행진을 마치고 진행한 정리집회에서 박준의 국민주권당 상임위원장은 “우리나라가 의료 분야만큼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개혁을 빙자한 윤석열의 독선, 아집 때문에 국민들이 응급실 뺑뺑이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또 “반국가세력 운운하면서 색깔론, 안보 불안 조성, 공안탄압으로 정권을 연장해 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꿈 깨라! 윤석열은 꿈 깨라!”라고 외쳤다.

 

주최 측은 다음 주 목요일인 19일에는 남영역 1번 출구 앞에서 오후 6시부터 촛불집회를 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 사회를 맡은 김교영 용산촛불행동 회원. © 문경환 기자

 

▲ 대진연 노래동아리 파란이 노래를 불렀다. © 문경환 기자

 

▲ 유튜버 제2독립군 김한일 씨가 노래를 불렀다. © 문경환 기자

 

▲ 발언하는 박영아 회원. © 문경환 기자

 

▲ 발언하는 류우승 회원. © 문경환 기자

 

▲ 발언하는 박준의 상임위원장.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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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박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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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범죄 혐의군 그림에 3번 등장하는 김건희, 더 위험

[분석] 도이치 주가조작 항소심 방조죄 유죄, 손씨와 김 여사의 결정적 차이 3가지

24.09.13 06:59l최종 업데이트 24.09.13 07:00l 이정환(bangzza)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가담자로 검찰이 기소한 투자자 손아무개씨 방조 혐의에 대해 12일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권순형·안승훈·심승우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시세조종 행위를 인식하고도 이를 용이하게 방조했음이 인정된다"면서 손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주가조작 일당과 공동으로 시세조종에 가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손씨에 대해 방조 혐의를 예비적 공소 사실로 추가하면서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손씨 1심 판결을 근거로 김건희 여사의 무혐의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2심 선고 결과에 따라 김 여사에 대한 처분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진 상황이다. 당장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재판 결과에 대해 "손씨에게 주가조작 방조혐의가 인정된다면, 마찬가지로 이 사건의 전주였던 김건희 여사도 혐의를 피할 길이 없다"면서 "김 여사 계좌가 '작전문자'에 따라 움직이는 등 사건 연루 정황도 차고 넘친다. 검찰은 당장 김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고 기소하라"고 주장했다.

김건희 여사 계좌 거래 성격, 손씨와 명확히 구분한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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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제2단계 행위에 대한 판단을 검찰 범죄일람표를 인용하여 판결문에 유죄는 ○, 무죄는 X로 표시했다. 붉은 테두리선이 김건희 여사 계좌 거래, 검정 테두리선은 최은순씨 계좌 거래다.

ⓒ 이정환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김 여사가 손씨와 같은 전주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그동안 검찰 수사나 공판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들만 살펴봐도 손씨와 김 여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

먼저 계좌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재판부의 명확한 입장이다. 1심 재판부는 손씨의 경우 자신의 판단에 따라 계좌들을 운용했다고 판단한 반면, 김 여사 계좌 4개 중 3개에 대해 이 사건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블랙펄인베스트먼트가 직·간접적으로 운용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가 손씨 계좌 거래 8건에 대해서는 무죄로, 김 여사 계좌에서 이뤄진 거래 49건 중 48건을 유죄 판단했던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설명자료를 통해 "피고인들의 시세조종 행위에 있어서는 원심과 기본적으로 결론을 같이 한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판단은 사실상 방조 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과도 맞물려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법상 방조 행위는 "정범(자신의 의사에 따라 범죄를 실제 행한 사람)이 범행을 한다는 사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행위 여부를 따지기 위한 사실 관계에서 두 사람 사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 법원의 시각인 셈이다.

1차 주가 조작 관여 계좌주 18명 중 2차 관여자... 김 여사가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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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김건희 씨 기소하라" 지난 5일 참여연대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건희 씨 기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등의 수사 · 조사기관에 대한 사실상 가이드라인 제시, 그에 충실히 따른 검찰 수사의 문제점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기소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 이정민

정범의 범행 시점 또한 방조 행위와 관련 따져봐야 하는 지점이다. 김 여사 경우는 손씨와 달리 1차 주가 조작에도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사건 종합의견서를 통해 이 사건 범행 시작 시점을 1차 주포 계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주문이 나온 2009년 12월 23일로 특정했다. 이 사건의 정범 중 두 사람, 즉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1차 주포 이아무개씨가 범행을 하는 사정이 발생한 시기다. 공판 과정에서 이씨는 권 회장으로부터 김 여사를 소개받은 시점을 2010년 1월로 증언했다. 이 때부터 관여한 김 여사와 2차 주가 조작에 가담했던 혐의로 기소됐던 손씨 사이에는 역시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 시기 관여된 계좌주는 DJ, DH, CP, FB, FC, DG(김건희), AJ, FD, FE, FF, FG, FH, FI, FJ, FK, FL, FM, FN가 있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는 바..." (1심 판결문 중)

검찰이 제시한 1차 주가 조작 관여 계좌주 18명 중 2차 주가 조작에도 관여된 계좌주는 김 여사뿐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 관계가 이와 같은 만큼, 정범들과의 관계 역시 방조 행위 판단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한 권 회장과의 관계에서 특히 두 사람 간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 여사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랑 권오수 사장이라도 (알고) 지낸 지가 20년"이라며 "권오수 사장이랑 사업을 같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여사가 권 회장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회사 두창섬유로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장외거래(블록딜)로 대량매입했던 것이나, 도이치모터스 우회 상장 과정에서 유상증자에 참여한 사실 등은 김 여사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사실 관계들이다.

이른바 이너써클(소수 핵심 권력 점유층)로 보이는 김 여사 경우와 달리 손씨는 공판 과정에서 권 회장과 친분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건 정범 중 한 사람인 2차 주포 김 아무개씨와의 친분 정도만 구체적으로 확인됐을 뿐이다.

검찰의 혐의군 연계도... 김 여사 이름 가장 많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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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022년 12월 법원에 제출한 사건 종합의견서 13페이지에 나오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시세조종 혐의군(群) 연계도. 김건희 여사 이름이 주요 혐의군에 각각 등장한다.

ⓒ 검찰종합의견서

이처럼 방조 행위 개연성과 관련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차이를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도 있다. 검찰이 2022년 12월 제출한 사건 종합의견서 13페이지에 나오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시세조종 혐의군(群)' 연계도다.

검찰은 종합의견서를 통해 이 사건 피고인 9명을 크게 네 부류로 나눴다. 권 회장을 주모자로, 1자 주포 이씨와 2차 주포 김씨 그리고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3명을 '본건 시세 조종 행위를 주도적으로 실행한 사람'으로 제시했다. 이들과 함께 범죄를 실행한 사람이 3명이었으며, 손씨는 다른 1명과 함께 '본건 시세조종행위에 가담한 사람'이었다.

이런 검찰 판단이 요약된 것이 바로 '혐의군 연계도'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김 여사다. 그의 이름은 '권오수군', 그림에서 '수급팀(전문주가조직)'으로 서술된 '1차주포군', 그리고 '2차주포인 김○○군'에서 각각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재판부가 이 사건의 콘트롤타워로 명시했던 블랙펄인베스트가 김 여사 계좌를 직·간접적으로 운용했다고 판단했던 사실까지 감안하면 김 여사는 이 사건의 '주모자'는 물론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실행한 사람' 3명과 모두 연계된 유일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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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도이치모터스#방조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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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잘못되면 0원, '자발적 초과노동'이 설계돼 있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9/12 09:37
  • 수정일
    2024/09/12 09: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수경의 MZ 여성 그리고 빈곤] 추석에도 씨의 모니터에는 빨간 색 대기자 수가 - 콜센터의 씨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기사입력 2024.09.12. 05:02:42 최종수정 2024.09.12. 08:25:51

일 년 전 이맘때 씨를 만났다. 카페로 걸어들어오는 씨를 보는데 반소매 아래 왼쪽 팔꿈치에 꽤 큰 흉터가 있다. 20대 후반의 여성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자국이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치고 나서 시작한 택배접수 콜센터 알바가 씨의 콜센터 노동의 출발이었다. 다른 알바자리보다 시급이 높았다. 갖고 싶던 노트북을 살 돈을 금방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트북을 샀지만 콜센터 알바는 그만두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돈을 벌어야 하는데 콜센터는 항상 사람을 뽑고 있었다. 은행 콜센터는 돈을 상품으로 다룬다는 것이 무서웠다. 잘 안 맞았다. 통신사 콜센터 몇 곳을 돌아 현재 콜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대기업 통신사 자회사다.

팔꿈치 흉터에 대해서 먼저 물었다. 신경이 눌려서 수술을 했다고 답한다. 모니터 앞에서 앉아 자료를 입력할 때 팔이 닿는 그 자리다. 수술 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관리를 받았어야 하는데 병원에 못 가는 바람에 흉터가 생겼다. 의사는 '팔꿈치 터널증후군'이라고 했다. 손가락 끝까지 신경이 연결되어 있으니 수술을 해야 할 만큼 팔꿈치가 아프다는 건 손으로 입력하는 일도 어렵다는 거다. 콜을 받으면 후처리 결과를 입력해야 한다. 손이 저리고 힘이 안 들어가는데도 수술 날짜를 잡기까지 한 달을 더 출근해야 했다. 수술을 하려고 '병가'를 신청했는데도 미리 계획한 휴가가 아니니 근무를 빼 줄 수 없다고 회사 팀장이 말했다고 했다. '무급'이라고 했다. 어차피 '무급'인데 왜 치료를 방해하는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급병가'조차 당연하지 않았다.

의사는 팔꿈치 터널증후군이 '골프나 테니스 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병이라고 하더니 더 묻지 않았다. 산재 신청을 권유했으면 좋으련만 여러 가지로 먼 얘기다. 산재 같은 건 처음부터 씨의 마음에도 회사의 방침에도 고려 대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씨는 수술 당일을 포함해서 겨우 3일의 무급 병가를 썼다고 한다. 치료비는 본인 카드로 긁고 약간의 실손보험을 받았다. 일을 못한 날만큼 들어온 급여가 줄었지만 원룸 월세는 어김없이 나가고 빚도 있었고, 병원비도 나갔다. 생활비가 점점 부족해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올라타 있었다고 씨가 말했다.

팔꿈치 수술을 하고부터는 한 단계 더 깊은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였다. 팔꿈치가 나으려면 이 일을 그만해야 하는데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씨의 막막한 마음을 회사는 안다. 노동자를 묶어두는 것은 쉽다. 콜센터 일을 하면서 감정이 힘들 때, 손목이 아플 때 '아파서 쉬고 싶다' 고 말해 봤지만 '그 정도 일에 쉬고 싶으면 나가도 상관없다' 는 암묵적인 답이 돌아왔다. 말 없는 말, 그 분위기 아래서 일해 왔고, 마침내 팔꿈치 신경이 상한 것이다.

▲ 콜센터 상담원들(사진은 기사와 무관). ⓒ연합뉴스

최저임금을 기본급으로 해서 전화를 받는 콜 수에 따라 인센티브라는 이름으로 약간 올리고, 주말과 야간 당직 근무 같은 시간 외 수당을 붙여서 '더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게 콜센터의 급여책정 방식이다. 어떤 고객이 걸리느냐에 따라서 통화가 길어질 수도 있고 순조롭게 끊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콜 수로 인센티브를 주는가. 같은 환경에서 날마다 60콜을 받는 사람이 있고 100콜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100콜을 받는 사람의 스킬이 우수하니까 인센티브를 준다. 올리는 장치가 있으면 깎는 장치도 있었다. 씨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복잡한 평가방식을 고안해서 급여를 다시 깎아내리는 기술이 섬세하게 개발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팀장들은 팀원들이 콜수를 높이도록 독려하고 감시한다. 팀원 사이에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에는 다른 평가도 있다.

'생산성이라거나, 얼마나 전화를 빨리 받았는지

녹취평가, 얼마나 친절하게 매뉴얼대로 얘기했는가

근태, 직무평가 하나하나 다 신경써서 점수를 어느 정도 이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하나라도 잘못되면 인센티브가 0원'

이 된다. 0원이 되면?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이번 달에 기본급만 받는 건가. 씨는 인센티브가 0이 되어 기본급만 받는 공포를 거듭 말했다. 씨가 한 말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씨의 기운이 닳아 0이 되는 것처럼 느낀다. 점수는 매일 나온다. 팀장이 등급과 점수를 전파한다. 팀별 순위가 팀장의 점수다. A등급, B등급, C등급... 어떤 팀장은 시간대별로 등급을 전파한다. 고객이 '매우 불만족'을 찍으면 팀 분위기가 다운된다. 팀원이 급휴(급하게 쓰는 휴가)를 써도 마이너스 점수가 생긴다. 급휴 개수가 많으면 팀장이 괴로워한다. 씨가 팔꿈치 수술을 늦게 받은 이유가 '급휴 제로' 방침 때문이었다. 팀은 6개월마다 갈린다. 팀장도 바뀌고 팀원들도 달라지고 앉는 자리도 달라진다. 팀웍이 안 좋은 이들이 있어서라고 짐작하는데 씨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옆자리 동료와 유대감이 생기는 것을 막고 긴장을 만들어 경쟁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일까.

365일 24시간 열려있는 콜센터에서 씨는 주간조를 기본으로 주말과 공휴일, 명절 등에 근무를 자원한다. 주말이나 명절은 정해진 당직 개수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자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신 주말에 일하면 평일 하루를 쉴 수 있다. 이때 쉬지 않고 1.5배로 나오는 수당을 받는다. 이렇게 월급을 끌어모은다. 평일엔 오전 9시 출근보다 한 시간을 당겨서 나오는 식으로 연장근무를 한다. 통상 매월 5개의 주말 당직 개수가 정해진다. 씨가 휴대폰을 열어 스케줄표를 보여준다. 5개, 6개의 칸이 채워져 있는 주가 많다. '이론상으로는 안 되지만 지난 주 일요일부터 이번 주 토요일까지, 주 52시간을 비껴가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기본급을 짜게(낮게) 책정한 다음 모아, 모아서 남들 받는 만큼 월급을 가져가야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자발적 초과노동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다달이 얼마를 인센티브로 모으나요?"

"240만원은 받아야 돼요. 항상 생각을 해요. 이번 달 당직을 쉬어야 할까? 다 수당으로 받을까?"

"기본급이 얼마였죠?"

"200만원이요. 실수령은 180만원"

인센티브로 모으는 금액이 얼마인가 궁금했다. 적어 보인다. 씨도 알 것이다. 자신의 노동에 비해 너무 적게 받을 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씨가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 신청서를 낸 것은 팔꿈치 수술 때문은 아니었다. '공황장애'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통화 중인 고객이 계속 욕설을 하는 일이 있었다. 30여분 욕설이 지속되었는데 팀장이 제지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욕설을 듣는 동안 통화가 밀려 다음 콜을 받아야 했다. 휴식시간을 얻지 못했다. <감정노동 보호를 위한 지침>이 회사에 있지만 회사는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욕설로 힘들었던 일이 있은 후 씨는 한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실수를 했다. 그룹장의 호출을 받았다. 거의 없는 일이다. 그룹장이 한 말은 '멘탈 관리'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

콜을 받는 중에 스트레스가 심하면 발이 빠른 동료들은 10분 이내에 건물 밖에 나가 흡연을 하고 오기도 하지만 씨는 주로 퇴근 후에 몰아서 흡연을 한다.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기 어려울 때도 있다. 휴식시간을 달라고 할 순 없으니까 점심시간에 벤치에 앉아서 1시간 내내 담배를 핀 적도 있다. 휴식시간에 흡연을 하러 가서 10분 내 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씨의 모니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씨의 휴식은 우선 사휴(사적인 휴식)인지 공휴(공적인 휴식)인지 분류되어 있다. 전체 부서별로 전화가 얼마나 밀려있는지, 팀별로 대기하는 고객이 몇 명인지, 전화를 해 왔지만 연결이 안 돼서 끊은 사람이 몇 명인지 나온다. 대기자 수, 나의 콜 수, 동료의 콜 수, 누가 자리에 없는지, 무엇을 하는지 빨간색의 숫자들이 껌뻑거린다. 내가 없는 사이 응답률이 더 낮아졌다면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어도 다시 일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에 씨와 동료들은 식당에 나가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대신(씨의 회사가 입주한 빌딩엔 고급식당들은 입점해 있는데 직원식당은 없다), 회사 휴게실에서 컵라면과 즉석밥을 먹는다. 그리고 각자의 장소에서 흡연을 한다.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나 흡연의 부작용을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회사는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처럼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에 위배 될만한 일을 드러내고 하지 않는다. 씨의 주석에 의하면 회사가 '꼬투리 잡힐 만한 걸 명문화해 두진 않는다', 대신 '룰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압력을 넣는다. 씨와 동료들의 노동강도는 점점 높아진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회사는 직원 직무교육을 온라인 자료로 대체하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직원 보수교육을 업무시간 중에 진행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에 대규모 재택근무를 해도 관리가 된다는 것을 확인해서인지 회사는 이제, 자료만 올리고는 '안 읽어서 일어나는 문제는 네 책임'이라고 한다.

상품도 수시로 바꾸고 서비스 내용도 달라진다. 일단 고객과 통화하라고 회사가 지시하면 노동자들은 콜을 받을 수 있을까. 받을 수 있다. 동료들을 생각해서 노동자들은 공부한다. 다음 전화를 받는 이가 힘들어질까 봐 걱정한다. 대면 교육이 사라진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대면 교육만큼의 효율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콜센터에서 생산이 일어나는 곳, 그러니까 서비스노동이 행해지는 곳은 씨의 전화받기 노동 외에는 없었다. 씨가 받는 수많은 평가항목 중에 의미 있는 것이 있는가. 콜을 받는 노동자의 노동에 기대 서비스를 유지하면서도 그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대기업과, 그 소비자인 나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씨는 지금 성대결절도 겪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목소리가 안 나오면 회사가 나가라고 할 것이고 그때는 무엇을 할 것인지 막막하다고 했다. 씨의 팔꿈치 흉터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아 씨를 연결해 주었으나 씨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 이 연재는 2023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만난 여성들, 노동건강연대가 활동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언제나 감탄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 할 수 있는 건 말, 쓸 수 있는 건 글,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다. 달리기는 못 해도 걷는 건 조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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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4당 '윤석열 탄핵 준비 의원연대' 결성 "탄핵 통과 위한 200명 모을 것"

  • 김준 기자
  •  
  •  승인 2024.09.11 15:41
  •  
  •  댓글 0
    • 진보당 이어 조국혁신당 당론 채택
      13인 국회의원, 탄핵 준비 연대 제안
      9·28 탄핵 민중대회도 참석 시사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가칭) 윤석열 탄핵준비 의원연대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의원연대 제안자 모임에는 야4당(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 뉴시스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가칭) 윤석열 탄핵준비 의원연대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의원연대 제안자 모임에는 야4당(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 뉴시스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원내정당 가운데 처음으로 윤석열 탄핵을 당론으로 확정한 진보당에 이어 조국혁신당도 당론 채택을 완료했다. 함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사회민주당 국회의원 13인도 연대해 ‘윤석열 탄핵 준비 의원연대’를 제안했다.

      진보당은 지난달 20일 국회 본청 앞에서 탄핵 선포대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의원모임을 결성하고 9·28 탄핵 민중대회를 추진해 윤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머뭇거리던 다른 야당에서도 동참의 뜻을 밝히기 시작했다. 탄핵추진위원회를 발족했던 조국혁신당은 진보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당론으로 정했고, 다른 야당에 소속된 국회의원 개개인들도 ‘윤석열 탄핵 준비 의원연대’ 구성에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최종 143만 4,784명에 달했다. 이후 잠잠해진 탄핵 여론에 다시금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은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이 가장 먼저 매를 맞는다는 두려움이 왜 없겠냐 만은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마음과 사람을 모을 수 있다”며 “탄핵 준비 의원 모임은 바로 그걸 하겠다는 것이고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위한 저희의 절박한 심정이 모든 의원님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의원연대에 임시 간사를 맡은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는 “이틀에 한 번꼴로 모여 오늘의 자리가 만들어졌다”며 “모임의 명칭과 성격, 취지를 확정했다”고 경과를 설명했다.

      윤 원내대표는 연대 모임의 취지를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윤석열 탄핵을 국회에서 선도하는 것 ▲국회와 광장의 윤석열 퇴진 열망을 결집해 나가는 것 ▲윤석열 탄핵 이후 사회 대개혁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준비 없이 맞이한 정권교체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진 백브리핑에서 9월 28일 탄핵 민중대회에 야당들도 참석하냐는 질문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여기 모인 의원 모두 그런 집회에 참석해왔던 인물들”이라며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중요한 원칙은 원내 의원들 중심으로 원내에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고 시민사회와 광장하고의 연대도 함께 이어갈 것”이라 전했다.

      대통령 탄핵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50명)의 동의를 받아 소추가 발의된다. 표결에서는 재적의원의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서 소추안이 통과된다.

      민형배 의원은 “탄핵안 발의에 150명의 의원이 필요하다”며 “우선은 발의요건 충족을 위해 민주당 안에서 여론을 확대하고 통과를 위한 200명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윤석열 탄핵 준비 의원연대’에는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민형배, 문정복, 박수현, 김정호, 복기왕, 김준혁, 양문석, 부승찬, 조국혁신당 황운하, 진보당 윤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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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윤 정부 의대 예산 몰아주기 여파로 일반 사립대 융자 지원 축소

의대 융자 수요 전액 반영, 일반 사립대 지급률은 40%→25% 하향…교육부도 예산 부족 우려

지난 4월 1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대기중인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2024.4.1 ⓒ뉴스1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방침을 고집하는 정부가 사립학교 융자 지원 예산을 의대에 몰아주면서 일반 사립대 몫이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사립대의 재정 여력이 위축돼, 교육 환경 개선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내년 ‘사립학교 교육환경개선 자금 융자’ 사업 예산은 2,181억원이다. 올해 690억원보다 1,491억원 늘었다.

예산은 의대에 편중됐다. 내년 정원이 증원된 사립 의대에 할당된 금액은 1,728억원으로, 전체 사업 예산의 79%를 차지한다. 의대를 제외한 일반 사립학교 예산은 452억원에 불과하다.

기존에도 융자 예산 사업 대상에 의대와 부속병원이 포함돼 있었다. 올해는 예산 690억원 중 약 200억원이 의대와 부속병원에 배정됐다. 의대 외 일반 사립학교 예산은 올해 490억원에서 내년 452억원으로 38억원 줄어든 셈이다.

문제는 감액 규모로 보이는 것보다 심각하다. 일반 사립학교가 요구한 금액을 예산에 반영하는 비율이 내년에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다. 정부는 융자 사업 예산을 편성하기 전에 사업 시행 주체인 한국사학진흥재단을 통해 대학별 수요를 조사한다. 일반 사립학교의 융자 수요는 총 1,809억원이었으나, 정부는 예산에 25%만 반영했다. 최근 5년간 학교의 융자 수요 대비 평균 지급률은 40%였다. 내년 일반 사립학교 융자 수요는 올해보다 크게 늘었으나, 지급률을 대폭 하향하면서 실제 예산에 반영된 금액은 오히려 올해 대비 감소한 것이다.

융자 사업은 지급률이 40%일 때도 높은 집행률을 유지했다. 그만큼 예산 실수요가 크다는 의미다. 올해 7월 말 기준 집행률은 82.6%로, 교육부는 예산 전액을 집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집행률은 87.3%였다. 융자를 배정받은 학교 중 한 곳이 시공업체와 공사비 협상에 이르지 못해 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 연말에 융자 배정을 포기하는 바람에 추가 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2022년에는 예산이 100% 집행됐다.

융자 사업에서 일반 사립대 몫이 쪼그라든 건 의대에 예산을 몰아준 영향이다. 정부는 의대가 요구한 융자 금액 1,728억원을 내년 예산에 전액 반영했다. 기존에는 융자 사업 예산을 편성할 때 의대와 일반 사립학교를 구분하지 않았으나, 내년 예산에는 지급률을 차등 적용했다. 교육부는 “의대 융자 지원 강화를 위해 일반 융자 지급률을 25%로 하향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의대 증원 방침을 고집하는 정부가 의대 교육 여건 개선 방안 중 하나로 내놓은 게 융자 사업이다. 늘어난 의대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사립 의대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전날 발표한 ‘의학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 방안’에서 “국립대의 교육여건 개선은 국고 예산으로 직접 지원하고, 사립대는 기금 융자 지원을 통해 교육여건 개선 수요 반영하겠다”고 했다.

2030년까지 교육부 예산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에도 사립대 융자 지원이 포함됐다. 향후에도 의대 지원에 융자 사업 예산을 대거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가운데 그와 관련된 재정 지원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자 사립대학을 지원하던 융자 사업 예산을 끌어다 쓰는 형국”이라고 짚었다.

 

 

 

사립학교 교육환경개선 자금 융자 지원 세부사업. ⓒ교육부

융자 사업은 사립학교의 교육·재정 여건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저리로 빌려줘 학교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취지다. 올해 6월 기준 융자 사업 이자율은 2.67%로, 시중은행 이자율 4.56%보다 1.89%포인트 낮다.

융자금은 산학협력을 위한 기자재·시설 확충, 노후시설 개선, 장애인 교육시설 신축 등에 쓸 수 있다. 지원 대상은 사립학교 전반을 포괄하나, 예산이 한정돼 주로 대학 위주로 예산을 배정한다.

조만간 융자 신청이 시작된다. 매년 9~10월 각 대학이 융자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대학별로 예산을 배정한다. 일반 사립대는 지급률이 낮아, 대학의 융자금 확보 난항이 예상된다. 최근 신축 공사 자금을 융자받은 한 대학 예산 담당자는 “융자 수요는 시기별, 학교별로 달라 지급률 하향이 모든 대학에 일괄적으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융자가 필요한 대학은 사업 재원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내부적으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부처 건의사항에 ‘의대 외 일반융자 예산 확대 필요’라고 기재돼 있다. 신규 융자뿐 아니라, 기존에 융자를 받던 학교가 진행하던 사업의 지원 예산도 부족하다는 경고가 담겼다. 신축 공사와 같은 대규모 사업은 융자를 여러 해에 걸쳐 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사립대(학생)에 대한 지원 형평성 제고를 위해 일반 융자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부가 융자 지원을 축소하면서 가중되는 일반 사립대 재정 부담이 학생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 연구원은 “대다수 사립대가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국은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이 적은 상황에서 저금리의 공공자금 융자 예산까지 깎으면 사립대의 재정 확보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으로서는 교육에 대한 투자를 못 하거나, 금리가 높은 시중 금융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자 부담은 결국 학생들 등록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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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해법은? “핵전쟁 준비하는 미국…분단 극복해야”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4/09/11 [18:48]

9.19남북군사합의 체결 6주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격화하는 국면에 관해 전문가들이 해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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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 참석자들. © 촛불행동

 

11일 오전 10시 30분 촛불행동, 김준형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실,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실은 ‘한반도 전쟁 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해법’을 주제로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좌장은 김진향 한반도 평화경제회의 상임의장이 맡았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국제법 학자인 이장희 서울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가 토론자로 나섰다.

 

이밖에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 고은광순 (사)평화어머니회 이사장, 강정구 동국대 명예교수 등도 참석했다.

 

김재연 상임대표는 인사말에서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어려운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돌파하고 다시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함께 정진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권오혁 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정권 위기를 전쟁 위기로 탈출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멈춰 세우지 않는다면 전쟁은 현실이 될 수 있고 계엄과 영구 집권도 불가능하지 않게 된다”라면서 “각계각층 국민은 윤석열의 폭주를 막기 위해 적극 조치해야 한다”라고 했다.

 

김진향 상임의장은 “우발적 충돌에 의한 전쟁은 없다”라면서 한반도에서 되풀이되는 전쟁 위기를 끝내려면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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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행동

 

토론자들의 발제가 이어졌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지난 7월 28일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협력각서가 체결된 것에 관해 ▲한국이 ‘신냉전’ 대결 구도의 첨병이 되어 불이익과 위험 감수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 증대 ▲한반도 전쟁 위험성의 증대 ▲대미 군사적 종속의 심화 ▲일본의 한반도 군사개입 현실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파괴 ▲경제적 손해와 사회적 분열 심화 등을 일으킨다고 7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다. 미국은 가장 전쟁을 많이 하고 좋아하는 나라”라며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화해 협력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게 복원”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해영 교수는 지난 3월 미국이 ‘핵운용 지침’을 개정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3개의 전선(북·중·러)에서 3개의 핵전쟁을 준비하라는 지시”라면서 “북한이 호명됐다는 말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북·중·러와 동시에 연속적으로 핵전쟁을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이기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미국의 처지를 평가하면서도 만약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발발하면 전면전, 국제전, 핵전쟁 순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상황을 엄중하게 바라봤다.

 

김동엽 교수는 “분단과 냉전이라는 구조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전쟁 위기와 미래 세대의 고통이 결코 해결될 수 없다”라면서 정부, 시민사회단체, 국민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현재 한반도 군사 위기를 일으킨 시작점은 북한의 오물 풍선이 아니라 한·미·일 군사협력, 유엔사 강화를 밀어붙이며 군사 위기를 끌어올린 미국에 있다면서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책임지고 있지 않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고통은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장희 상임대표는 “평화와 남북 문제는 항상 국제, 남북한 쌍방향, 국내라는 3가지 차원에서 봐야 한다”라면서 이 가운데 “국내 차원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남북은 4.27판문점공동선언, 9.19평양공동선언과 부속 9.19남북군사합의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중요한 내용을 합의했지만, 윤석열 정권이 9.19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면서 무력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시민사회가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을 뛰어넘는 평화특별법” 제정을 주도해 “한반도에 어떠한 외국 군대의 진입도 국회 비준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강정구 동국대 명예교수는 “만약에 미국이 패권 위기를 맞지 않았더라면 지금 현재의 한·미·일 군사동맹,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이토록 엄숙하게 등장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반문하며 “세계정세의 흐름과 직결되는 구도 속에 한반도가 최전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에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때문에 좌절됐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저는 앞으로 한 2035년 이후는 세계 질서 구도가 바뀐다고 본다. 미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토론회 전체 영상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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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의 도 넘은 '대통령 행세'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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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를 방문해 근무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선출되거나 임명되지 않은 청와대 안의 유일한 존재. 법으로 정해진 권한과 책임도 없으면서 많은 공식 비공식적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한 존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자신의 자서전에 쓴 '영부인'이란 존재에 관한 글이다. 말 그대로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은 존재지만 공식, 비공식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자리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 기관을 종횡무진 혼자 다니며 마치 대통령 같은 행보를 하고 다닌다.

'당부' '조치' '개선', 영부인의 언어인가

어제(10일) 김 여사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 용강지구대를 연이어 방문했다.

소외된 계층이나 힘든 일을 하는 공무원들을 찾아 격려하는 일은 역대 모든 대통령의 부인들이 해왔고 또 해야 할 일로도 여겨져 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언행. 이날 적어도 대통령실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사진과 브리핑 자료만 보면 대통령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CCTV 관제실에 가서는 관제센터가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라며, "항상 주의를 기울여 선제적으로 대응해 줄 것"을 '당부'하는가 하면, 순찰인력과 함께 마포대교를 가보고는 "자살 예방을 위해 난간을 높이는 등 '조치'를 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며 "한강대교의 사례처럼 구조물 설치 등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당부', '조치', '개선'이 과연 영부인의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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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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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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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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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의 '대통령 행세'는 말 뿐만이 아니다.

대원들 앞에서 손짓을 하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지시하는 듯한 모습에서 영부인이 아닌 대통령의 모습을 본 것은 기자뿐일까.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자신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 국민권익위, 검찰, 수사심의위의 '무혐의' 판정을 받자, 김 여사가 족쇄를 벗고 대외행보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여사는 과연 족쇄를 완전히 벗었다고 볼 수 있을까? 명품백 수수를 고발한 최재영 목사가 신청한 또 하나의 수사심의위가 여전히 남아 있고, 오늘(11일) 국회 법사위에서는 명품백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김 여사와 관련한 무려 8개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특검법안이 다시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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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를 찾아 근무자들을 격려한 뒤 한강경찰대 모자를 선물 받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국가기관들, '김여사 무혐의'에 동원

대통령 남편의 거부권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운지 모르지만, 이걸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민주당 대변인은 "'자살 예방' 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김건희 여사님, 권익위 국장의 억울한 죽음부터 해결하시라"고 질타했다. 자신이 연루된 명품백 사건의 종결처리에 괴로워하던 권익위 국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세간에는 명품백 사건 처리를 두고 모든 국가기관이 김 여사의 혐의를 씻어주는 '무료세탁소'가 됐다고 아우성이다. 당당하게 나와 특검을 받을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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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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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정당한가

[기고] 이시우 사진가

서독정부는 1954년 5월 부산에 적십자병원을 설립해 1959년 3월까지 운영하였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서독정부의 인도주의적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독일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외교에서 부당하게 다루는 정책에 대해서는 단연코 반대한다. 독일 적십자병원은 정전협정 이후에 활동했기 때문에 2018년까지도 6·25전쟁 시기 의료지원 5개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2024년 8월 2일, 독일은 “유엔사”에 가입했다.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정당한 것인지 의심된다.

 

첫째, 1953년 4월 7일 아데나워 서독 수상이 야전병원 파견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에게 제안(주1)했을 당시 독일은 완전한 외교주권이 부재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결정이 서독의 정당한 주권행사범위에 있었던 것인지 의심된다.

연합국은 1945년 독일점령 후 ‘독일전체에 관련된 사안(matters affecting Germany as a whole)’에 대해서는 연합군관리위원회(Control Council)(주2)가 관할하도록 하였으며, 개별점령지구에서는 점령국최고사령관들이 독자적인 군사정부(military government)를 구성하여 점령정책을 수행케 하였다. 이를 군총독(Militärgouverneure)이라고 불렀다. 1949년 서독 분단정부출범과 동시에 적용된 점령조례(Besatzungsstatut)에는 외교‧안보문제 등을 점령국 고등판무관(Hohe Kommissare)들이 통제‧관할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주3)

예를 들면 점령국은 아데나워의 독일안보에 대한 발언이 점령조례 16조 위반이라고 못 박있다.(주4) 이처럼 독일안보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개진은 연합국들의 점령조례에 의해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1949년 12월까지도 점령조례 24조에 의해서 확인된다.(주5)

1950년 5월 런던외상회담에서 향후 독일주둔 점령군대들은 단순히 독일의 비무장화 정책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서부독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하며, 점령조례를 점진적으로 철폐함으로써 완전한 주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며, 서유럽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서독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을 새로운 임무로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주6) 5월 16일에는 점령국고등판무관들이 독일정부에 국내안전과 질서를 위한 문제에 한해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주7) 그러나 여전히 외교‧군사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 달 뒤 한국전쟁의 발발은 아데나워가 자신의 안보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선전도구가 되었다. 그는 재무장으로 가는 첫 단계인 연방경찰 창설을 위해 한국전쟁의 충격을 이용했다. 아데나워는 한국전쟁 이전에는 서독의 안전보장보다는 완전한 주권의 회복, 즉 통일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전쟁발발이후에는 소련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안전보장에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하였다.(주8)

아데나워는 1950년 8월 25일 고등판무관들의 요청으로 내각회의를 소집했다.(주9) 그는 내각 위원들에게 연방경찰 창설 의제를 바탕으로 한 서독의 재무장 계획을 알렸고, 처칠이 제안한 서독 군대의 파병을 포함한 유럽군대 창설가능성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하여 내무장관 구스타브 하이네만(Gustav Heinemann)은 오랜 토론에도 불구하고 이 회의에서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주10)

그는 아데나워의 결정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첫째는 그가 건의서의 내용을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연방 총리가 내각 구성원들과 상의하지 않고 이 중대한 외교문제에 대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내각의 다른 구성원들과 상의 없이 점령국에 건의서를 넘긴 아데나워 총리의 정치적 독단에 반대해 공개적으로 사임을 선언했다.(주11)

아데나워가 서독의 재무장과 독일군의 유럽군대 기여에 반대한 하이네만의 사임을 받아들이면, 자칫 내각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데나워 총리는 가능한 내무장관 하이네만의 사임을 수리하지 않고 보류하길 원했다.(주12) 그러나 하이네만은 끝까지 자신의 사임을 고집했고, 10월 10일 끝내 그의 사임은 수리되었다.(주13)

전쟁 중인 한국에의 의료지원은 분명 외교‧안보문제였고 점령조례가 약화되고는 있었으나 1955년 독일조약 발효로 폐지될 때까지는 엄연히 유지되었다. 이는 아데나워 정부의 야전병원제안에 대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수락문서가 본(Bonn)에 있는 미국 고등판무관실로부터 온 것에서도 확인된다. 서독은 당시까지 점령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1953년 한국전쟁 의료지원은 서독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독일은 2차대전 전범국으로 유엔헌장 제107조가 명시한 유엔의 적국이었다.(주14) 유엔헌장 제53조는 이들 적국의 침략정책 재발에 대한 조치에 대해서는 안보리허가조차 받을 필요가 없도록 하고 있었다.(주15) 서독의 재무장화는 국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주변국들에게 침략정책의 재발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프랑스의 반대가 거셌다.

그럼에도 이 제안이 성사된 것은 서독재무장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데나워 내각이 한국전쟁의 의료지원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한 것은 미국의 요청 때문이었다.(주16) 한국전쟁 이전까지 독일의 군사적 참여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해왔던 미고등판무관 맥클로이도 전쟁발발 이후 개인적으로는 서독의 재무장이 서유럽 안보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맥클로이 고등판무관의 전보는 당시까지도 독일의 재무장이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판단하였던 국무성의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주17)

그리하여 한국전쟁 이전부터 독일 재무장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던 합참과 국방성의 계획안을 국무성이 합의해 주기에 이른 것이다. 아데나워는 서독의 선 재무장, 후 완전한 주권회복을 염두에 두었지만 사민당 당수 슈마허는 반대로 우선 완전한 주권회복, 즉 통일을 요구하였으며 그 후에나 대등한 관계속에서 서독의 군사적 참여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슈마허에게 있어서 독일의 재무장은 최후의 수단이었다.(주18)

한국과 직접적인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존재할리 없었고, 독일내‧외부의 거센 반대와 점령조례의 제약을 뚫고, 서독정부의 야전병원이 제안되고 결정된 배경에는 점령국인 미국의 입장변화와 역할이 있었다.

 

둘째, “유엔사령부”가 서독의 제안을 수용한 것은 정전이후인 1953년 9월 23일이었다. 이에 따라 서독과 미국정부는 1954년 2월 12일 ‘한국에서의 유엔작전에 관한 독일적십자병원 지원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유엔작전이 아닌 정전 후 자선활동을 하면서 한국정부와는 어떤 협정도 체결하지 않았던 것이 의심된다.

1950년 6월 27일 유엔의 군사조치결정은 없었다. 이는 1994년 유엔법률국의 입장표명으로 정리되었다. 설령 안보리의 군사조치가 있었다고 가정해도 그 효력은 정전협정과 함께 종료된 것으로 봄이 국제법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안보리의 군사력 사용권한은 안보리에 의하여 명시적으로 그리고 만장일치로 지속적 효력을 갖는다는 결의를 하지 않는 한 정전협정의 체결로 종료된다.’(주19)

그런데 “유엔사”는 서독의 제안을 정전 이후에 수용함으로서 정전을 무시하는 양태를 보였다. 안보리 결의를 왜곡하여 결성된 “유엔사”는 어떤 국제법적 제약도 받지 않는 것처럼 자신들의 권한을 남용했다.

정전 이후 병원을 개설할 무렵 전상군인들은 충분히 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야전병원 기능은 불필요했고 독일은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자선활동으로 임무를 바꾸라는 “유엔사”의 지시에 동의해야 했다. 독일적십자병원은 야전병원으로서가 아니라, 1954년 4월 15일 한국민사원조사령부로부터 구호기관(relief organization)으로 승인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 유엔대표부에서도 독일병원의 임무가 유엔작전이 아닌 민간인 치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였다.(주20)

독일적십자병원은 작전이 아닌 자선‧봉사활동을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한국민에겐 소중한 지원이었다. 그런데 왜 무리하게 자신들의 활동을 “유엔사” 활동으로 해석하고 “유엔사” 가입의 논리로 삼는지 의심된다.

독일과 미국 정부는 1954년 2월 12일 ‘한국에서 독일적십자병원에 의한 지원협정’(주21)을 체결했다. 구 부산여고(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1가 1-1)에 독일적십자병원이 개원되었다. 서독은 한국지원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면서도 한국정부와 어떤 협정도 체결하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는 서독이 한국에서 어떤 법적 지위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했다. 한국정부가 “유엔사”에 절대복종할 때만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병원으로 쓰던 부산여고 반환문제가 발생하자 한국정부와 아무런 협정도 맺지 않았던 독일정부는 속수무책이 되었다. 일부 여론으로부터 한국정부가 독일과의 협력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주22) 그러나 미군의 통제를 받는 야전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한국이 소극적이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1958년 5월 28일 바이츠(Heinrich Weitz) 서독적십자 총재는 서독병원의 구호사업을 중지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 이유는 한국정부가 자발적인 봉사에 대해 감사를 표하지 않았고 병원에 아무런 원조도 하지 않았으며 의사와 간호사들이 가장 원시적인 환경 속에 일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사회부 의정국장은 우리나라와 아무런 협정도 체결하지 않았고 병원 측에서 아무런 원조 요청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독일의 인도적 지원에는 감사하지만 법적인 문제는 분리해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정부의 대응은 정당했다.

대학 병원 출신 로젠바움(Franz J. Rosenbaum)을 비롯한 일부 의사들은 후베르 원장의 독선적 운용과 외과 과장의 전문성 부족에 따른 환자사망 의혹, 구타 등을 폭로했다. 한 연구자는 파견된 의사와 간호사 가운데 나치주의에 동조해 인종주의적 행태를 보인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주23) 이재승에 의하면 소련점령지구에서는 철저한 나치청산을 추진한 후에 사회주의국가 수립으로 이어진 반면, 서부 독일은 냉전의 강화과정에서 자유세력의 보루로 자리잡음으로써 청산작업은 ‘재나치화’라 부를 정도로 방향을 상실하였다.

이러한 기조 위에서 서독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세력 간의 타협이 이루어지고 나치범죄자에 대한 인적 청산작업은 매우 미미한 정도에 그쳤다.(주24) 또한 독일적십자사 본부와 노동재판소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병원의 폐쇄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일적십자사 본부와 주한공사가 병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주25) 이상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결국 서독병원은 폐원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때 독일정부는 의료단지원협정을 미국과 체결했기 때문에 폐원 전에 미국의 의중을 확인했다. 미 국무부도 동의했다.

독일적십자병원의 5년간의 활동에 대해 당시 공식통보를 받았던 외무부는 한국외교 30년을 발간하면서도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주26) 국방부가 1976년 9월 의료지원국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부산 태종대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에도 독일은 제외되었다. 1967년 3월 4일 하인리히 리뷔케 독일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방문에 대한 답방을 할 때 부산을 방문했지만, 부산시에서는 서독병원 터를 방문하도록 주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병원활동을 강조하지도 않았다.(주27) 현재 독일적십자병원터에는 국가가 아닌 개인들이 세운 기념비가 서 있을 뿐이다.

[자료사진1] 독일적십자병원 기념비는 당시 산부인과 의사였던 최하진과 환자였던 이한식이 세웠다.(주28)

서독의 의료단지원이 한국을 위한 것인지, 미국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서독 자신을 위한 것인지 의심될 만한 정황 속에 특별한 반성 없이 독일은 다시 “유엔사” 가입을 결정했다. 독일의 결정의 정당성이 의심된다.

 

셋째, 미‧독 협정에 따르면 한국민사원조사령부(KCAC)가 독일적십자병원에 대한 작전통제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한국민사원조사령부는 유엔과 무관한 조직이었으며, 독일적십자병원은 전쟁에 관련한 어떠한 작전통제도 받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왜 “유엔사”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이제 와서 “유엔사”에 가입하는지 의심된다.

서독은 아마 미국을 개별국가로서가 아니라 유엔을 대표하는 국가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는 후베르 병원장의 인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후베르 원장은 병원임무 수행을 위해 “유엔사령부” 예하로 들어감으로써 실질적인 면에서 미 육군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 중요했다고 여겼다. 미군은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면 항시 기꺼이 지원했고, 때로는 분에 넘칠 만큼 제공하였다고 기억했다. 독일 직원들을 위해 현지에서 구입할 수 없는 일용품은 미군이 제공하여 독일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주29)

후베르 원장의 회고는 그가 접한 대상이 유엔이 아닌 미국이었음을 정확히 지시하고 있다. 독일적십자병원을 통제한 한국민사원조사령부(KCAC: the Korea Civil Assistance Command)는 유엔과 무관한 미8군 조직에서 시작되었다. 유엔의 명칭을 남용하고 유엔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이 속한 “유엔사”가 유엔조직으로 착각된 것이다.

그러나 1994년 6월 유엔사무국법률과는 ‘유엔법률백서’의 ‘주한유엔사의 상태’란 글에서 “유엔사”란 명칭이 유엔과 무관한 “잘못된 이름”(misnomer)임을 명확히 했다.(주30) 또한 미‧독 협정문에는 서독의 참여가 유엔작전(UN operation)과 관련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유엔의 조치가 아닌 각국의 조치일 뿐임을 유엔사무국법률과는 다시 명확히 했다.(주31) 한마디로 한국전쟁에서의 유엔작전은 없었다. 독일정부는 미국만을 믿고 부당한 협정을, 부당한 주체와 체결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부당한 행동을 한 셈이었다.

한편 1954년 3월초 독일 정부는 미 국무부에 독일 적십자병원의 존재에 대해 “유엔사령부”를 대표하는 미국정부가 유엔사무총장을 통해 북한과 중국공산 당국에 통보하기를 원했다. 이에 따라 함마슐드 유엔사무총장은 3월 19일 북한 박헌영 외상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외상에 통보했으나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5월 27일 재차 확인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주32) 이는 독일이 국제법상 교전단체로서 인정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한국민사원조사령부(KCAC)의 복잡한 변천사는 그 시작과 끝을 보면 실체가 분명해진다. 1950년 11월 4일 미제8군 산하에 “유엔사령부보건복지파견대”(UNPHWD: UN Public Health and Welfare Detachment)가 설치되고 12월 10일 이 조직은 유엔민사원조사령부(UNCACK: U.N. Civil Assistance Command)로 개편된다.(주33)

“유엔사령부보건복지파견대”는 “유엔사령부” 산하가 아닌 미제8군 산하의 8201부대로 창설된 것이었다. 애초 “유엔사”와 무관한 조직으로 출발하였으나 미국의 임의조치에 따라 후에 “유엔사”에 편입되었을 뿐이다. 물론 UNCACK에 대한 유엔의 결정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정전 후 미국원조기구의 위상을 유엔과 구분하기 위해 UNCACK을 KCAC으로 개편할 필요성이 발생했다. UNCACK을 KCAC으로 개편할 때 명칭에서 ‘UN’을 탈락시켰는데, 이는 KCAC이 유엔원조와 구분되는 미국원조기구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 조치였다.(주34)

[자료사진2]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활동사진(주35)

[자료사진3]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약도이다.(주36) 사령부는 통인동에, 서울팀은 소공동에, 관사는 동대문 근처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당시 통인동의 사진을 분석해보면 서양식건물은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과 박노수미술관뿐이었던 것으로 봐서 벽수산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곳은 UNCURK 본부로도 알려져 있다. 소공동의 서울팀 사무소는 현 한화빌딩 자리로 확인된다. 관사는 과거 미군극동공병대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1952년 1월 초 서독이 혈액제공과 의료지원단(Medical Unit) 파견을 제안할 것이라는 정보가 처음 미국무부에 입수된 때로부터 미 육군부와의 사이에 수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주37)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유엔민사원조사령부(UNCACK)에 전달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주38)

상황이 이럼에도 독일적십자병원 관계자들이 유엔을 대표한 “유엔사”의 작전통제 하에 있었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과 다른 착각일 뿐이었다.

 

넷째 서독은 197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결의에 찬성했다. 그런데 미국이 해체약속을 어기며 유엔정신을 유린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왜 “유엔사” 재활성화에 들러리를 서고 있는지 의심된다.

1973년 9월 18일에야 동서독은 유엔의 적국에서 유엔회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75년,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 해체를 약속한 유엔총회결의에 찬성표를 던졌다.(주39) 독일 국방부장관은 2024년 8월 2일 독일의 “유엔사” 가입 기념식에서 “우리는 ‘힘의 법칙’이 아닌 ‘규칙의 힘’을 믿는다”고 밝혔다. 힘의 법칙을 일극패권주의의 논리로, 규칙을 힘을 유엔헌장과 국제법의 논리로 생각한다면, 독일의 “유엔사” 가입결정은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탄핵하는 행위로 보인다. 70년 전에야 “유엔사”의 실체를 몰라서 그런 행동을 했다 해도 이제 모든 것이 명백해진 상황에서 유엔헌장을 우롱하며 유엔정신을 기만해온 대표적 기구, “유엔사”에 들러리를 서는 것이 일류국가인 독일의 위상에 맞는 것인지 나는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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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독일의 야전병원 파견 의사는 1953년 3월 말부터 추진되었다. 독일 아데나워 수상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 회담의제(Agenda for Adenauer Visit)로 처음 등장했다. “Memo by the Director of the Bureau of German Affairs(Riddleberger) to the Secretary of State: Agenda for Adenauer Visit” March 29, 1953, 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 1952~54 v07 p1/d172(2024.9.1.검색)

2) 베를린선언(1945.6.5)과 동시에 연합국관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45년 7월 30일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회합하였다. 관리위원회는 4개국 연합군사령관으로 구성되고 독일전체에 관련된 사안에 대하여 만장일치로 입장을 정할 수 있었다. 1948년 독일분단이 가시화됨과 더불어 관리위원회는 운명을 다했다.

3) 최형식,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아데나워의 안보정책-독일의 재무장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36(2), (1997.2), p.128

4) 김건우, 「한국전쟁으로 인한 서독 아데나워 내각의 변화와 의료지원」, 복현사림Vol.39, (경북사학회 2021), p.37

5) Klaus von Schubert, Sicherheitspolitik der BRD, (Bonn, 1977), p.261; 최형식,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아데나워의 안보정책-독일의 재무장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36(2), (1997.2), p.129

6) AdG 1950, P.2379 G

7) Hans Buchheim, "Adenauers Sicherheitspolitik 1950-1951" in Militärgeschichtliches Forschungsamt(MGFA) (ed), Aspekte der deutschen Widerbewaffnung, (Boppard a. RH., 1975), p.124; 최형식,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아데나워의 안보정책-독일의 재무장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36(2), (1997.2), p.140 재인용

8) Konrad Adenauer, Erinnerungen Bd.1(1945-1950), (Stuttgart, 1965), p.367; 최형식,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아데나워의 안보정책-독일의 재무장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36(2), (1997.2), p.145 재인용

9) Gerhard Wettig, Entmilitarisierung und Wiederbewaffnung in Deutschland 1943-1955. Internationale Auseinandersetzungen um die Rolle der Deutschen in Europa, (Müchen: Oldenbourg, 1967), p.334

10) Diether Koch, Heinemann und die Deutschlandfrage, (Müchen: Kaiser, 1972), p.168

11) Thomas Flemming, Gustav W. Heinemann. Ein deutscher Citoyen; Biographie (Essen: Klartext, 2014), p.220f.

12) Konrad Adenauer, Erinnerungen 1945-1953, 4th ed.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p.373f ; 강혁, 「한국전쟁의 발발과 독일 개신교회(EKD)의 재무장 논쟁」, 韓國敎會史學會誌Vol.60, (한국교회사학회 2021), pp.8-9

13) 하이네만은 내각에서 나온 후 1952년 기민당(CDU)에서도 탈당하여 새로운 전독일국민당(GVP: Gesamtdeutsche Volkspartei)을 창당하여 재무장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다. 하이네만은 그 후 1957년에 사민당에 입당해 대연정의 법무부장관(1966~1969)을 역임한 후, 사민당과 자유당의 지원으로 연방대통령(1969~1974)이 되었다.

14) 유엔헌장 제107조: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헌장 서명국의 적이었던 국가에 관한 조치로서, 그러한 조치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정부가 그 전쟁의 결과로서 취하였거나 허가한 것을 무효로 하거나 배제하지 아니한다.

15) 유엔헌장 제53조:

1. 안전보장이사회는 그 권위하에 취하여지는 강제조치를 위하여 적절한 경우에는 그러한 지역적 약정 또는 지역적 기관을 이용한다. 다만, 안전보장이사회의 허가없이는 어떠한 강제조치도 지역적 약정 또는 지역적 기관에 의하여 취하여져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이 조 제 2항에 규정된 어떠한 적국에 대한 조치이든지 제 107조에 따라 규정된 것 또는 적국에 의한 침략 정책의 재현에 대비한 지역적 약정에 규정된 것은, 관계정부의 요청에 따라 기구가 그 적국에 의한 새로운 침략을 방지할 책임을 질 때까지는 예외로 한다.

2. 이 조 제1항에서 사용된 적국이라는 용어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이 헌장 서명국의 적국이었던 어떠한 국가에도 적용된다.

16) 김건우, 「한국전쟁으로 인한 서독 아데나워 내각의 변화와 의료지원」, 복현사림Vol.39, (경북사학회 2021), p.42

17) Dean Acheson, Present at the Creation, (New York, 1969), pp.436-437

18) 최형식,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아데나워의 안보정책-독일의 재무장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36(2), (1997.2), pp.147-151

19) Jules Lobel, Michael Ratner, “Bypassing the Security Council: Ambiguous Authorizations to Use Force, Cease-Fires and the Iraq Inspection Regime”, AJIL vol.93, (1999), p.144.

20) 「부산서독적십자병원 관계」1956~1959, 국가기록원, p.14. “Department to HICOG, Bonn”Sep. 29, 1953, Box 2~9/ RG 59 Records of Pertaining to UN Korean Relief Organizations, 1950-1960; 조성훈, 「6·25전쟁시 독일 의료지원단 파견과 성과」, 항도부산,Vol.36, (2018), p.147

21) 영문제목은 다음과 같다. ‘Agreement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Government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Concerning Participation of a German Red Cross Hospital in Connection with the United Nations Operation’

22) 「인방의 원조를 받아들일 태세도 갖출 줄 모르는 정부」, 경향신문(1958.6.1.)

23) Young-Sun Hong, Cold War Germany, Third World, Global Humanitarian Regime, p.84).

24) 이재승, 「연합국의 독일점령과 사법정책에 관한 연구」, 민주법학제27호, (2005), pp.297-298

25) 「드러난 인술의 난맥지대」, 한국일보(1959.2.1); 「물의 속에 문닫는 서독병원」, 경향신문(1959.2.21.)

26) 외무부, 한국외교 30년 1948~1978, (1979), pp.50-51.

27) 「뤼브케 대통령 역사적 來釜」, 국제신보(1967.3.4.); 「1967년 부산 방문한 서독 뤼브케 대통령 환영」, 서울신문(2013.3.8.); 조성훈, 「6·25전쟁시 독일 의료지원단 파견과 성과」, 항도부산,Vol.36, (2018), p.159

28) https://www.unpm.or.kr/un2022/ (2024.9.2.검색)

29) 후버, 우원형 역, 「재부 주한서독적십자병원 5년기」, Komitee 100 Jahre Deutsh-Koreanische Beziehungen, 100 Jahre deutsch- koreanische Beziehungen Bilianz Einer Freundschaft(독일과 한국 100년 관계: 우정의 성과), (1984), p.57 ; 조성훈, 「6·25전쟁시 독일 의료지원단 파견과 성과」, 항도부산,Vol.36, (2018), p.149

30) UN Office of Legal Affairs, UN Juridical Yearbook, (1994), Chapter VI, pp.501-502

31) UN Office of Legal Affairs, UN Juridical Yearbook, (1994), Chapter VI, pp.501-502

32) “Red Cross Hospital of the Fed. Rep. of Germany in Korea”March 4, 1954, 국편 전자사료관 ; “USUN, New York to Department of State”June 3, 1954, 국편 전자사료관.

33) UNPHWD는 1950년 9월 30일경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갔고, 유엔군의 북한 점령에 따라 역할이 확대되었다. 또한 1950년 10월 9일자 행정명령에 따라 북한지역에서의 점령업무를 미 제8군과 군단, 사단이 담당하게 되며 UNPHWD의 활동은 종료되었다. 김학재, 「한국전쟁과 ‘인도주의적 구원’의 신화」, 서중석 외, 전장과 사람들, (선인, 2010), pp.51-52

34) 홍수현, 「1953~1955년 한국민사원조사령부(KCAC)의 조직과 활동」, (서울대석사논문, 2022), p.19

35) http://www.koreanwar-educator.org/memoirs/bradley_roger/index.htm(2024.6.21검색)

36) http://www.koreanwar-educator.org/memoirs/bradley_roger/index.htm(2024.6.21검색)

37) “DA to CINCFE, Tokyo” Jan. 12, 1952, Bx 4516/ RG 319 Army-AG,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38) 조성훈, 「6·25전쟁시 독일 의료지원단 파견과 성과」, 항도부산,Vol.36, (2018), p.139

39) A/10327 1975.11.3., pp.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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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의 학교 밖 세상] 10월 재보궐 선거, 서울시 교육감을 뽑는 기준

박정훈 교사, 『교육개혁은 없다』 저자

지난 8월 29일 대법원 확정 판결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직을 상실하고, 10월 16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을 세웠던 민주진보 진영은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9월 20일까지 단일 후보를 세우기로 했고,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도 9월 23일까지 단일 후보를 세우겠다고 합니다.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전남 곡성 군수, 전남 영광 군수로 예정됐던 선거에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갑자기 추가되면서 10월 재보궐 선거가 전국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는 5월에 대법원 확정판결로 강서구청장 직에서 물러난 김태우 씨가 8월에 사면·복권을 받고 출마하여 큰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물론 강서구 주민들이 표로 심판도 했지요.

그래서 재보궐 선거에 귀책사유가 있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자는 주장이 확산되어 왔습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올해 1월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국민의힘 귀책사유로 재보궐 선거 시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그런 이유로 작년 전주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재보궐 선거에서도 그런 기준을 적용하는 게 옳을까요? 조희연 교육감은 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 5명을 특별채용한 것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교육감 직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의 입장은 옳지 못한 것일까요?

해직 교사 부당 특채 혐의로 직을 상실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9일 서울시교육청을 나서며 직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배웅을 받고 있다 ⓒ뉴스1

조희연 교육감이 사법부의 심판대에 올라간 것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기소했기 때문입니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의 비리, 특히 검찰과 사법부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입니다. 그런데 2021년 공수처가 신설된 후 수사에 착수한 첫 번째 사건은 조희연 교육감이 2018년 시행한 해직교사 특별채용이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해직교사 5명을 복직시켰다는 죄로 본인이 ‘해직’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왜 전교조 교사들을 복직시켰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시계를 2008년으로 돌려야 합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하고 2008년 4월 총선에서 압승한 이명박 정권은 4월 15일 ‘학교 자율화 조치’를 발표합니다. 말이 좋아 ‘자율화’지 일제고사, 0교시 수업, 야간자율학습이 ‘학교 자율’이란 미명 아래 부활되었습니다. 이에 2008년 5월 2일 광화문에서 최초로 촛불 집회가 열립니다. 참석자 2만여 명 중 80%가 중고등학생이었죠. 그들이 외친 구호는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였습니다. 여기서 출발한 게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광우병 촛불 집회였습니다.

촛불이 꺼져가던 8월에 최초의 주민직선 교육감 선거가 서울에서 치러집니다. 선거는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가 맞붙어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공정택 후보가 내건 구호는 “우리 아이들을 전교조에 맡길 수 없다”였습니다. 공정택 후보는 서울 25개 구 중에 22개 구에서 패배했으나 강남 3구에서 몰표를 받아 1.7%p 차이로 승리하여 서울시 교육감이 되었습니다.

당선이 유력한 공정택 후보가 ‘반전교조’를 전면에 내건 선거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주경복 후보 당선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전교조 저격수’를 자처하는 조전혁 의원(한나라당)이 전교조가 주경복 후보의 선거 비용을 모았다며 서울지검에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은 전교조 통장을 샅샅이 뒤져 3명을 구속하고 수십 명을 재판에 회부하여 7명이 해직되고 13명의 간부가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반면 공정택 후보에게 직접 돈을 건넨 학교장들은 벌금 80만 원을 선고해 교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해직되었던 교사 중 공무담당권이 회복된 5명의 교사가 2018년 특별채용 되었습니다. 이게 조희연 교육감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교육감직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입니다.

교육감 선거에 모금했다고 7명 해직, 13명 중징계

보수 후보에 돈을 건넨 학교장들은 솜방망이 처벌

OECD 중 교사 참정권 부정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

지난 7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사퇴하고 해리스가 후보로 지명되자 조합원이 300만 명으로 미국 최대 교원노조인 NEA(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와 조합원 180만 명으로 두 번째로 큰 교원노조인 AFT(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는 모두 해리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2008년 오바마가 출마했을 때 NEA는 오바마에게 5천만 달러(한화 600여억 원)를 정치자금으로 제공하여 오바마 당선의 일등 공신이 되기도 했죠. 이게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OECD 국가 중 교사의 정치활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하물며 교육감을 뽑는 선거에서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후원금조차 모으지 못하게 막는 나라, 다른 나라에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참석자들이 정치기본권 쟁취를 위한 교사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2022.05.25 ⓒ민중의소리

이번 서울시 교육감 재보궐 선거는 정치 검찰과 사법부의 합작품입니다. 검찰은 조희연 교육감이 해직교사를 특별채용한 것이 위법하다고 기소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모두 특별채용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1994년 검사 생활을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은 2002년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에 변호사로 취업했다가 1년 만에 다시 검찰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특별채용입니다. 한동훈 당대표도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검찰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행정관으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1년 다시 검찰에 복귀합니다. 어떻게? 특별채용입니다. 이렇게 2006~2021년에 검사를 그만두고 나갔다가 다시 검찰에 특별채용된 검사가 43명입니다.

대통령이건 서울시 교육감이건 특별채용은 임용권자의 권한입니다. 검사는 되는데 교사는 안 되는 나라, 이거 공정과 상식 맞습니까?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 교육정책도 중요하고 후보의 면면도 따져봐야 할 겁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왜 재보궐 선거를 하게 되었는가?’입니다. 조희연 교육감이 잘못했고 교육감직 상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뜻을 잇겠다는 후보를 반대하여 투표하고, 조희연 교육감이 잘못한 게 없다고 판단한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뜻을 잇겠다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옳습니다. 이게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을 뽑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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