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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총리 지명한 날 장준하 재심서 ‘무죄’

 

박근혜 총리 지명한 날 장준하 재심서 ‘무죄’
 
[보도비평] 재판부의 감동적 사죄문으로 법정에 박수소리 가득 차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1-24 15:41:31 | 최종:2013-01-25 01:12:19

 

 

“인권의 암흑기에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 회복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뒤늦게나마 지난날의 과오를 사법부가 공적으로 사죄하는 이번 재심 판결이 고인의 평안과 안식에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피고인의 범죄는 범죄가 되지 않아서 무죄를 선고합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자 법정은 일순간 감탄과 환영의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재판부가 이런 판결문을 밝힌 경우는 흔치 않다. 이로써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옥고를 치른 고 장준하 선생은 유죄선고를 받은 지 39년 만에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장 선생은 박정희 정권 최대의 정적이자 '재야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재야 대통령'으로 불린 장준하 선생이 3선 개헌 반대투쟁 연설을 하고 있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는 재심결정을 내린 뒤 열린 첫 공판에서 “재심 대상 판결에서 유죄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위헌·무효임이 확인됐다”며 “형사소송법 325조에 의해 장 선생에게도 무죄를 선고해야 마땅하다”며 무죄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이례적으로 장 선생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또 유족에게도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는 과거 재판부가 잘못 판결한데 대한 사법부 차원의 공식 사과인 셈이다. 별도로 선고 기일을 지정하지 않고 첫 공판 당일로 판결을 내린 것도 그런 차원으로 읽힌다.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지난날의 과오에 공적으로 사죄를 구하는 매우 엄숙한 자리에서 국민의 한 사람이자 사법부의 일원으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진다”면서 “국민주권과 헌법정신이 유린당한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장 선생에게 유죄를 선고한 뼈아픈 과거사를 바탕으로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사법부가 될 것을 다짐한다”며 “재심 청구 이후 3년이 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날 검찰도 장 선생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과거 ‘시국사건’ 재판 때 검찰이 취한 태도를 감안하면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검찰은 “장 선생의 유죄선고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가 2010년 대법원에서 위헌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됐다”며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구형했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후 장 선생의 장남 호권(64)씨는 “재심을 열어주신 재판부와 무죄를 구형해준 검찰에 대단히 고맙다”고 재판부와 검찰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또 “이로써 선친의 명예가 회복됐고, 가족들도 이제 그 멍에를 지지 않고 떳떳하게 생활하게 된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오늘의 무죄 선고는)우리 국민이 대통합의 미래로 나가는 시발점이 될 역사적인 재판이라 생각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 이준영 장준하기념사업회 상임운영위원은 판결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재판부의 진술한 사과를 두고 “만시지탄에 대한 사죄,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도 했다. 참으로 명문이었고 눈물겨운 글이었다”며 “이제 제대로 암상의혹을 규명하는 일에 매진해야겠다. 감동깊은 재판을 이끌어 준 담당 재판부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도 장 선생의 무죄판결을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당연한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무려 39년이 걸렸다”면서도 “늦게나마 사법부가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킨 것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허 부대변인은 이어 “재판부의 판결대로 장준하 선생은 격변과 혼돈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에서 조국광복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 사상계몽운동 등을 통해 나라의 근본과 민주적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일생을 헌신하셨던 우리 민족의 큰 어른이자 스승이셨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하지만 장준하 선생의 사인은 아직도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의혹에 싸여있다”면서 “고인에 대한 긴급조치 1호 위반 무죄선고를 넘어, 명확한 사인규명도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 지난해 이장 과정에서 37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두부에 타살로 추정되는 원형 함몰이 선연하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일제말기 학병으로 강제징집 됐던 장 선생은 일본군을 탈출, 중경 임시정부로 가서 광복군이 돼 항일투쟁을 벌였다. 1974년 유신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던 장 선생은 ‘유신반대’ 이유로 대법원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공소제기부터 확정 판결까지 불과 6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절차가 진행됐고, 장 선생은 병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석방돼서도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장 선생은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을 죽음을 당했는데 사망 원인을 두고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이장 과정에서 선생의 유골이 37년만에 세상에 공개됐는데 두개골에 둥근 함몰 구멍이 나타나 타살 의혹이 더욱 강하게 제기됐다. 이후 암살의혹 규명을 위해 기념사업회와 일반시민들이 참가해 ‘국민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 작업에 나서고 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 차원의 재조사는 좌절됐다.

한편, 박근혜 당선인은 이날 차기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지명자는 지난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했다. 김 총리 지명자의 발탁은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박 당선인의 정치이념을 구현할 적임자로 판단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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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박근혜 취임 선물은 또 '광우병 쇠고기'?

[분석] 美 쇠고기 시장, 더 열어줄 게 없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24 오후 6:26:21

 

미국의 박근혜 당선인 대통령 취임 선물의 윤곽이 잡혔다. 미국산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23일(현지 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쇠고기 시장 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협의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커틀러 대표보는 "쇠고기 협상이 끝난 지 5년 가까이 지났고 한국으로의 쇠고기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미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협의 조항을 쓰는 게 유용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진행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에는 협의(consultation) 조항이 붙어 있다. 이 협의 조항은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가 본 위생 조건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어떠한 문제에 관하여 상대방과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며 "협의는 요청을 받은 국가의 영토 내에서 요청일로부터 7일 이내에 개최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으나 커틀러 대표보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협의 조항 언급은 사실상 미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추가 개방 요구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듯이, 박근혜 차기 대통령의 취임 첫 방미 선물로 미국산 쇠고기 추가 개방을 수용하라는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박근혜, 방미 선물로 또 美 쇠고기 시장 개방?

이런 미국의 요구에 더 열어줄 미국산 쇠고기 시장이 없다. 이미 열어줄 만큼 충분히 열어줬기 때문이다.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멕시코와 비교해도 지금 우리나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후보 시절부터 '안전'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 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큰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시장을 대폭 개방한 결과로, 우리나라는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큰 이른바 '특정 위험 물질'을 제외한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거의 모든 부위를 수입하고 있다. 특정 위험 물질은 소의 편도, 작은창자의 끝부분(회장원외부)과 특히 30개월 이상 소의 뇌, 눈, 척수, 머리뼈, 등배 신경절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여전히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 수입 중이다. 일본은 지난해 20개월에서 30개월로 기준을 완화하기로 해, 이르면 2월 1일 적용할 예정이다. 타이완은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으나, 내장이나 분쇄육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한국보다 수입 위생 조건이 엄격하다.

미국과 국경선을 맞댄 나라이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멕시코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추가 개방 요구를 수용해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까지 수입한다면 세계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이 가장 느슨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뉴시스


지난해 4월에도 미국에서 광우병 소 발생…美 쇠고기 식탁 점령

미국은 지난해 4월 캘리포니아 주에서 네 번째 광우병 젖소가 확인되는 등 여전히 광우병 위험이 높은 국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느슨한 수입 위생 조건 탓에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쇠고기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1일 미국 육류수출협회는 "2012년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10만 톤으로 추정되며, 이는 수입 고기 시장의 38퍼센트, 전체 쇠고기 시장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 축산업계는 사료 값 인상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 가격 인상을 꾀하고 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미국이 박근혜 정부에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위한 협의를 요구한다면, 국무총리 산하에 '식품안전처'를 신설해 '불량 식품'을 '악'으로 규정한 박근혜 차기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기 박근혜 정부가 일본, 타이완, 멕시코보다 먼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같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을 결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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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생중계 기자회견서 답변회피·반말 일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1/25 07:29
  • 수정일
    2013/01/25 07: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당한 총리 지명자

[인수위 일기] 김용준, 생중계 기자회견서 답변회피·반말 일관

13.01.24 20:37l최종 업데이트 13.01.24 22:09l

 

 

[인수위 일기]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백그라운드 브리핑' 혹은 '백브리핑', 즉 정식 브리핑 뒤 기자들과 주고받는 질의·응답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항상 강조하듯,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길지만 다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 김용준 총리 지명자 '귀가 안 좋아서...'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서울 삼청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던 중 청력이 좋지 않은 김 지명자가 질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자 조윤선 대변인이 연단으로 올라와 설명을 해주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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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는 24일 기자회견에서 총리와 경제부총리의 역할 배분과 조율 방법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듯, 그의 태도는 무척 당당했습니다. 기자회견장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이 장면은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지요.

웃다 보니, 아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민은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 지명자의 이 같은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았다고 했습니다. 책임총리와 경제부총리제는 박 당선인의 핵심적인 국정철학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지 않았다니요? 박근혜 당선인의 국정철학을 생각해보지 않은 김 지명자가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헌법 86조 2항)는 국무총리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요? 국무위원 제청권을 가진 국정의 수장이 국민 앞에서 차기 정부의 조직 운용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말을 어떻게 내뱉을 수 있을까요?

그래, 좋습니다. 며칠이라는 시간은 박 당선인의 국정철학을 되새기기에는 짧은 시간이라고 해두죠. 그는 국무총리직 제안을 받고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인수위 기간 동안 인수위원장과 총리 지명자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기자들이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김 지명자의 대답은 "질문 요지가 뭐요?"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을 놓친 거겠죠? 김 위원장은 75세의 고령으로, 청력이 좋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다닙니다. 그의 건강이 다소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무총리 결격 사유는 아닐 겁니다. 어쨌든 기자들은 재차 같은 질문을 던졌고, 그는 질문을 되묻고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의 뒷목, 다들 괜찮은가요? 기자들도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무언가를 토해냈습니다. 김 지명자는 국무총리직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맡아도 되는 직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앞서 그는 "감사합니다"를 제외하고는 한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각오를 밝히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오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다시 기자회견장을 돌아왔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취재진과 김 지명자와의 소통도 어려운데, 그가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가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야당 의원들이 벼르고 있을 겁니다. 그때도 주요 현안에 대해 "깊이 생각 안 해봤다"거나 답을 피한다면, 국민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다음은 기자들과 김용준 지명자의 일문일답입니다.

"흔쾌히 수락하셨나요?" 질문에, 김용준 "질문 요지가 뭐예요?"

- 언제 총리 지명을 받으셨나요? 그리고 박 당선인이 예전에 '인수위에서 일하는 사람 정부로 안 간다'고 하셨는데 말씀이 달라지신 건가요?
"며칠 전에 통보를 받았고요. 먼저 번에 말씀드린 거는 당선인이 '인수위원회에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꼭 정부로 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인수위원회에서 일했던 사람이 전혀 정부로 안 간다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 처음 (총리직 제안) 통보를 받으셨을 때 그리고 (총리직 수락) 결정할 때까지 흔쾌히 수락을 하셨는지요? 앞으로 인수위가 한 달 가량 더 진행되어야 하는데 인수위원장과 총리 지명자로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보십니까?
"질문의 요지가 뭐예요? 요지가?"

- (총리직 제안) 통보를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을 하셨는지요, 고민 없이? 한 달 동안 두 가지 역할에 대해 어떤 각오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인수위원장의 역할과 총리 피지명자로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거냐? 그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인수위원장에 임명된 게 취소되지 않는 한 양쪽을 다 겸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당선인 선거 기간에 책임 총리제 실현을 약속했는데, 후보자가 장관 인선 등 조각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참여할 건지, 인수위에서 입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음…. 아직 국회 동의 절차가 남아있으니까 제가 국무총리가 된 걸 전제로 해서 답변하기는 어렵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거에 지금 질문에 대한 답변이 포함된 걸로…. 헌법에 따라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서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그 이상의 자세한 답변을 드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 박근혜 정부 초대총리로 지명됐는데, 당선인께서는 법치를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지명자께서 보시기에 우리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또 당선인이 본인을 지명한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국무총리로서 지명 받은 입장에서라기보다 내가 평생 법을 전공하고 법률을 다뤘으니까 지금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면에서 질서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가야된다' 그렇게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제 역할이 부여되는 범위 안에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 할 겁니다. '총리가 되고 안 되고'는 별개의 문제고."

- 경제 부총리가 경제 컨트롤타워로 신설되는데,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하실지 궁금합니다.
= 다시!

- 경제 부총리가 신설되는데요, 어떻게 역할을 배분하고 조율할건지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 인사청문회가 남았는데 인사청문회 통과를 자신하십니까?
"에? 뭐라고?"

- 인사청문회 통과를 자신하시냐고요.
"에? (주변에서 질문의 내용을 다시 전해 듣고) 청문회 통과가 자신 있냐고? 그거 뭐 내가 답변할 성질이 아닌데."

-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논란이 되고 있고 이른바 특정업무경비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장을 지내셨는데, 이동흡 소장 후보자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입장에서 조금 곤혹스럽고요. 무슨 활동비인지, 그거는 제가 내용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뭔지 알지를 못하겠어요."

- 당선인께서 지명하시면서 그 배경으로 인수위를 합리적으로 이끌어왔다는 점을 강조를 하셨는데, 그런 평가가 나온데 대해서 어떤 생각하십니까?
"인수위가 합리적으로 운영이 되어간다고 생각하느냐 그 얘깁니까? 인수위원회가 발족해서 활동하기 시작한 게 20일쯤 됐으니까, 앞으로 한 달쯤 활동을 계속 할 테니까 그동안에 한 걸 총체적으로 검토하셔서 여러분들이 판단하시고 국민들께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20일 밖에 안 되었는데."

- (기자회견 후, 인수위 기자회견장 건물 밖에서) 당선인이 총리직을 제안하면서 어떤 말을 했나요?
"그냥 도와달라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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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

 

 

 

북,“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
 
“미국과 추종세력 절대 용납 없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1/25 [06:2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합법적 권리를 가지고 평화적 목적으로 발사한 인공위성에 대해 유엔안보리 이사회가 제재 결의안을 통과 시킨 것에 반발하며 외무성과 국방위원회가 강력한 성명을 발표한 한 이후 각계각층이 미국과 추종 세력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의해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 된다.

▲ 김정은원수는 공격명령과 함께 최종 수표(서명)을 했고 아직도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은 원수는 어떤 결단을 생각하고 있을 까? ©


북 언론 중 최고 영향력을 가진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5일 각계층 인사들과 대담을 통해 안보리 이사회가 통과시킨 북제재 결의안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더 많은 우주위성을 쏘아 올릴 것이며 500만개의 총대, 1,000만개의 총폭탄이 되어 최후의 승리를 이룰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로동신문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주적 권리 행사인 위성발사를 걸고들며 조작해낸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며 “나라의 자주권을 생명보다 귀중히 여기는 우리의 천만군민은 온갖 적대세력들을 기어이 징벌하고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폭풍쳐 나 갈 불타는 결의에 넘쳐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 대담에 응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김진범 부위원장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우리 공화국의 신성한 자주권을 난폭하게 침해하는 그 무슨 결의라는 것을 조작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치밀어 오르는 격분을 누를 길 없다”며 “우주의 평화적 이용 권리는 국제법적요구에 기초하여 매개 나라가 동등하게 가지고 있는 합법적 권리다.

▲ 조선인민군 여성 군인에게 조국통일이라고 쓰인 총을 수여하고 있는 김정은 원수 ©


이 합법적 권리에 기초하여 많은 나라들이 위성들을 쏴올렸거나 가까운 기간에 쏴올릴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우리 공화국이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킨 것도 바로 합법적 권리에 따른 것”이라고 인공위성 발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김진범 부위원장은 “미국에 고분고분하면 그 무엇이든 쏘아 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평화적우주이용 권리조차 행사 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이중기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고 미국과 안전보장 이사회를 비난했다.

그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의 장단에 춤춘다고 해서 그에 놀랄 우리가 아니”라며 “이번에 조작된 결의를 통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우리의 무장해제와 제도전복을 추구하는 미국의 반공화국적대시정책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미국의 속셈을 고발했다.

연이어 대담에 나 선 사회과학원 법률연구소 실장 리경철 박사는 “유엔헌장은 평화적 발전을 위한 주권국가의 모든 행동을 합법화하고 있으며 특히 국제우주조약을 비롯한 국제법의 그 어느 조항에도 탄도미사일기술이외의 방법으로 위성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문구는 없다.”며 “그럼에도 탄도미사일기술을 이용한 발사라는 타당성 없는 논거를 들고 국제적 정의와 조약의 정신과 요구에 배치되게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결의를 채택한 것은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부정의와 이중기준이 판을 치는 사태를 빚어내는 장본인이 바로 미국과 그에 맹종 맹동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라는 것을 다시금 실증해주고 있다.”며 미국의 전횡을 비판했다.

이박사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미국의 강권과 전횡에 눌려 대조선적대시정책실현에 도용된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사태로 미국과 추종세력들에 의하여 조작된 이번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는 천만부당하다.”고 지적 했다.

▲ 전승을 기념식해 착용했다는 흰색의 군복, 북의 군부는 어떤 생각으로 흰 군복을 착용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신문은 계속해 “더 많은 위성을 쏘아 올려야 한다”며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노동자 김경춘T의 대담을 소개했다. 김경춘씨는 “인공위성 성공은 우리에게 얼마나 크나큰 민족적 긍지를 안겨주고 승리의 신심을 백배해준 《광명성-3》호 2호기의 성과적 발사인가, 미국의 주도하에 꾸며진 적대적인 결의야말로 흰 것도 검은 것이라고 우기는 날강도의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우리의 외무성성명에 이어 또다시 발표된 국방위원회성명까지 접하고 보니 내가 다루는 현대화된 기대인 날개 가공반으로 이제 당장이라도 《광명성》계열의 위성발사에 필요한 그 무엇이라도 깎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또한 신의주법랑철기공장 김응현 지배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외무성 성명에 접한 공장 전체 노동계급은 또다시 우리의 자주적 존엄과 권리를 난폭하게 유린한 간악무도한 미국과 그 추종세력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슴끓이고 있다”며 “우리모두의 심장마다에서는 적들과는 절대로 말로써가 아니라 힘으로 맞서야 하며 존엄 높은 우주강국으로 더 높이 솟구쳐오르는 것으로 당당히 대답해야 한다는 외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기세를 올렸다.

김응현 지배인은 “우리 공장의 노동계급은 감히 우리의 자주적 존엄을 건드리는 자들을 이글거리는 소성로의 불길 속에 처박아 넣을 멸적의 기상을 안고 일터마다에서 혁신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이매체는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국가과학원 전자공학연구소 려효종 소장의 대담을 실었다. 려효종 소장은 “전체 과학자들의 이름으로 이번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단호히 배격한다”고 하면서 “과학자로서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우리 공화국의 우주과학기술과 종합적 국력을 과시한 우리의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의 성과적인 발사에 대하여서는 전 세계가 공감하고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탄도미사일기술을 이용한 발사이기 때문에 문제시된다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리치에도 맞지 않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궤변”이라고 미국을 몰아쳤다.

려효종 소장은 “주변나라들의 영토주권을 존중하고 우주의 평화적리용에 관한 보편적인 국제법의 요구에 부합되게 위성을 쏘아 올리자면 탄도미사일기술을 반드시 이용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이치”라며 “미국의 날강도적인 논리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인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라는 것은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참으로 유치한 놀음으로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온당치 못한 처사를 거듭 비난했다.

려 소장은 “과학기술에는 국경이 없다. 어느 나라는 연구해도 되는 과학이 따로 있고 어느 나라는 가질 수 없는 기술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되묻고 “최첨단과학기술은 절대로 특정한 나라의 독점물이 아니다. 미국이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제아무리 제재를 가하여도 당의 현명한 영도밑에 최첨단으로 비약하는 우리의 정신력과 두뇌를 묶어 놓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우리 과학자들은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과적으로 쏘아올린 그 정신,그 기백으로 최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더욱더 헌신분투 할 것”이라고 기세를 올렸다.

다.

이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최성룡 부위원장은 “우리의 존엄을 건드리는 도발자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서치 않고 무자비한 징벌을 가하는 것, 바로 이것이 백두의 혈통을 이어받은 우리 선군청년전위들의 기질이고 본때”라며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함부로 날뛰지 말아야 한다. 만약 원수들이 일심 단결 된 정치사상강국, 강력한 핵억제력을 갖춘 불패의 군사강국, 세계적인 우주강국으로 우뚝 솟아오른 우리 조국의 경이적인 현실을 망각하고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에 계속 매어 달린다면 우리들은 500만자루의 총대가 되고 천만개의 폭탄이 되여 단호히 짓 뭉개 버릴 것”이라고 결사전에 나설것임을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라는 소제목을싣고 체육성 김명수 국장과의 대담 내용을 보도했다. 김명수 국장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에 추종하여 결의라는 것을 조작해낸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부당 천만한 처사를 놓고 체육성의 일군들과 체육인들은 분노의 피를 끓이고 있다”며 “우리 체육인들의 가슴마다에 우리를 어째보려고 오만하게 날뛰는 미국의 책동에 철추를 내리고 그 근원을 송두리 채 없애 버리고야 말 멸적의 의지가 서리발 치고 있다.”고 피력하고 “사회주의제도와 조국이 목숨보다 귀중하기에 적대세력들의 도발이 계속된다면 우리 체육인들은 전면대결전에 용약 떨쳐나 주체조선의 명예를 걸고 본때 있게 싸워 분별을 잃은 적대세력들에게 만회 할 수 없는 수치와 참패를 안겨 줄 것”이라고 천명해 북녘 동포들의 분노와 증오, 멸적의 의지가 얼마나 큰가를 드러냈다.

한편 조선은 유엔의안보리제재결의를 미국이 주도한 고립압살책으로 규정하고 미국과 추종국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하는 등 강경 자세를 멈추지 않고 있어 추후 행동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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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택시법' 거부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명 '택시법'을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임기 말에 거부권을 행사한 '택시법'을 놓고 국회와 이명박 대통령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택시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법안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며칠 전에 블로그에 독자분이 '택시법'이 무엇인지 왜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는지 잘 모르겠으니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택시법을 반대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택시법에 관한 세부 내용까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10.3%만 주요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점은 과연 '택시법'에 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택시업계,국회 힘겨루기 등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택시법'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명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택시법 VS 정부의 택시지원법, 과연 무엇인가?'

택시법의 정확한 명칭은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입니다. 너무 길고 택시관련 법이기에 모두들 '택시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택시법의 주요 쟁점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서 그에 맞는 지원책이 지원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면 많은 예산과 지원이 동반되어야 해서 정부 입장에서는 난색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제출한 택시법에 반해 '택시지원법'을 별도로 만들어 택시업계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국회에서 제출한 택시법의 기본적인 법의 특성은 '대중교통'이고 국토부 택시지원법안은 별도의 택시 전담법입니다. 기본적으로 국회 택시법이 시행되면 대중교통으로 규정하여 유가 보조금 지원,부가가치세,취득세 감면, 영업손실 보전, 통행료 인하 및 소득공제 등으로 연간 1조9천억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조가 넘는 예산이 택시업계에 지원하게 된다면 전세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분쟁 소지가 생기므로, 정부는 택시지원법안을 별도로 만들어 택시업계를 지원하고 택시법을 대체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택시법 쟁점 중의 하나가 버스와 택시업계 간의 힘겨루기입니다. 버스업계에서는 만약 정부보조금이 택시업계에 지원된다면 당연히 버스업계 지원금이 줄어들 것이고, 대중교통이라는 명목으로 버스전용차로 이용을 주장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버스기사와 택시기사 간의 택시법에 따른 각기 다른 주장. 출처:동아일보

 


버스업계가 파업까지 강행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는 점에 비해 택시업계는 버스전용차로 이용을 요구한 적도 없고, 정부지원 또한 규모를 늘려 함께 받기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택시법을 '대중교통'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느냐에 대한 정부의 모습이 현행 택시법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택시법'

택시법이 이번에 처음 나온 법이 아닙니다. 2004년 대중교통법 개정안이 처음 발의된 이후 17대 대선이 있던 2007년 한 해에만 3건의 유사 관련 법안이 제출됐었습니다. 이처럼 9건가량의 유사법안이 나왔지만 계속 통과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선거를 앞두고 늘 터져나오는 법안이었기 때문입니다.

택시업계 종사자를 30만 명으로 추산하기 때문에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포퓰리즘 법안'으로 비난 받는 배경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전국택시노조연맹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충청매일경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택시노조연맹 간담회에 참석해 대중교통육성법상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에 포함해 지원해 달라는 건의에 대해 "자가용이 1천600만대를 넘어서면서 택시는 고급교통수단이 아닌 대중교통이라는 관점에서 법안처리를 시작하겠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택시노조 참석자가 '정치인들이 선거 전에 많은 약속을 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공약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하자 이명박 후보는 "물론 공약이 쉽게 모두 지켜지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을 모토로 삼아 공약한 것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택시업계 종사자의 표를 의식해 택시의 '대중교통 육성'을 약속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정치적 쟁점과 여론에 밀려 말 바꾸기를 계속해왔던 것입니다.

'진짜 필요한 '택시법' 무엇이 있을까?'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택시법'을 약속하고 뒤집는다고 해서 '택시 관련 법안'을 그냥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택시업계가 가진 문제점과 종사하는 기사들의 처우가 너무 열악하고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택시법이 아닌 그저 형식과 여론에 밀린 불완전한 법안을 시행하면 안 됩니다. 그래 봤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또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택시기사에게 필요한 법안의 문제점과 대안책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택시업계가 2012년 6월 20일 하루동안 '대중교통 법제화' '엘피지 가격 안정화' '택시연료 다양화' '택시요금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서울 광진구의 한 택시회사에 운행중단된 수백대의 택시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다.출처:오마이뉴스 ⓒ 권우성

 


■ 많아도 너무 많은 택시

택시기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택시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개인택시 16만대, 법인택시 9만대로 전국에 25만대의 택시가 있는 상황은 택시영업이 부진한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택시업계는 5만대 정도의 '감차'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감차하기 위해서는 그 감차비용을 정부가 보조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택시법' 대신에 내놓은 '택시지원법'을 보면 감차비용으로 내놓은 50억으로 대당 평균 5천만원을 지원해 감차한다면 전국 택시의 30%를 줄이는데 무려 764년이 걸립니다. 결국 실제로는 법의 효용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실질적인 감차비용을 통한 감차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그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는 개인택시의 속칭 '넘버값'과 법인 택시의 보상규정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채찍과 당근을 제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지원은 제대로 해주면서 법을 위반한 택시는 그 대상에서 제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택시 업계의 서비스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법인 택시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통해 문제점이 발각된 법인 택시는 규정된 택시대수를 줄이는 법적 제재를 통해 효과적인 감차를 병행해야 합니다.

■ 완전월급제를 위한 철저한 법시행

택시기사들의 처우가 힘든 이유가 월급제가 아닌 '사납금' 제도 때문입니다. 현재 의무화로 되어 있는 완전월급제는 99.9%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납금제도로 택시가 운행되니 택시기사로서는 합승이나 승차거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인택시 운전사의 근무 및 급여 내역,출처:동아일보

 


택시 기사들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6시까지 꼬박 12시간을 근무해야 기본급 100만 원을 받습니다. 매일 사납금 10-12만원을 채워넣어야 월급 230만원 정도 받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택시의 고질병인 승차거부,합승,난폭운전 등을 해야 겨우 가능합니다.

법인택시 기사들이 '택시법'이나 '택시지원법'에 소극적인 이유는 결국 그 혜택은 택시운송회사에 돌아가고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속칭 택시 사장들만 배를 불리는 것입니다.

기본급이나 월급을 현실화시키고 법인택시 회사가 아닌 진짜 택시기사를 위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법안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택시법'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서비스 개선을 위한 택시업계의 노력이 우선

우리가 흔히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말을 합니다. 택시업계에서는 지원책이 나오면 택시 서비스가 좋아질 것이라고 하고, 국민은 택시 서비스부터 먼저 개선해라는 요구를 합니다. 서로 다른 입장이니 어느 한 편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택시 서비스 개선에 대한 자구책 노력이 택시업계에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왜냐하면 '대중교통'으로 인정받고 지원받기 위해서는 공익성을 내포해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 여론 때문에 '택시법'이 좌초되거나 입장 번복이 반복되는 일을 국민이 막아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승차 거부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밤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승차 거부를 당했던 국민은 결코 택시의 대중교통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택시업계는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수송률이 몇 퍼센트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10퍼센트라도 택시 이용 승객이 그 서비스에 만족한다면 택시기사들의 편에 서겠지만 계속 이렇게 불만족인 서비스와 불법[각주:1]이 자행된다면 국민은 택시는 택시이고, 대중교통은 따로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게 될 것입니다.
 

 

▲동아일보의 택시법 관련 이명박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론조사, 출처:동아일보.

 


이명박 대통령의 '택시법' 거부권 행사를 놓고 잘했다 못 했다는 판단하기 앞서 왜 자꾸 '택시법' 등의 법안만 문제가 되지, 실제 택시기사들의 처우개선이나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정작 서비스를 받는 국민을 믿지 않고 정치인들의 권력만 믿고 그들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선거 전과 후과 다릅니다. '쉽게 공약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하면서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해놓고 이제 와서 '임기말 지지율 회복'이나 '특별사면 시기'[각주:2]에 맞추어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택시기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택시 서비스 개선과 노력을 통해 국민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노력만 한다면 택시기사들이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하지 않겠다고 해도, 국민이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고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사실을.[각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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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권으로 얼룩진 한국 선거

관권으로 얼룩진 한국 선거
(우리사회연구소 / 이동훈 상임연구원 / 2013-01-23)


선거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정부를 구성하고 특정한 공식적 결정을 내리는 수단 중의 하나이다.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선거법에서 상당히 엄중하게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270조에 따르면 선거에 관한 소송은 다른 소송에 우선하여 신속히 재판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당선무효형의 기준도 일반 범죄가 금고형 이상인 것과 달리 선거법 관련 사안일 경우 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당선무효가 된다. 그만큼 선거의 공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012년 18대 대선 선거운동기간 가장 큰 이슈는 12월 11일 터진 국정원 여직원의 여론조작 관권선거 의혹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초기 40시간 동안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지 않음으로써 증거인멸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심지어 12월 16일에는 로그파일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비호하는 등 관권선거 은폐 의혹까지 일고 있다. 1월에 들어서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40개의 아이디를 사용했다는 것이 확인되고, 여론조작을 시도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림 1. 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와 노트북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정도는 예상한 것 아니냐며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일부 국민들이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 선거제도가 들어온 이후 치러진 대부분의 공직선거가 관권선거 논란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령 선거과정에서 작은 부정이 일어났다하더라도 크게 문제시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여론은 한국의 선거 지형을 기울어진 경기장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선거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작은 부정이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고 끝까지 밝혀내어 주모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선거는 정권의 요구에 의해 왜곡되어 버리고, 민의를 대변한다는 선거의 기본 취지에 어긋나게 되어 결국 국민주권이 제약되고 만다.

관권선거의 원인은 민심이반

관권선거는 여당이 정부의 권한(관료조직, 경찰, 검찰, 정보기관)에 의존해 선거를 치른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관권의 의미가 확대되어 정부에서 활용하는 인원이나 집단까지 관권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정식 공무원은 아니지만 정부로부터 일정한 수당을 받고 일하는 이장, 통·반장이나 관변단체가 동원될 때도 관권선거라 할 수 있다.

관권선거는 민심이 이반된 상황에서 집권세력이 정권을 연장하려고 할 때 시도된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관권선거 논란이 계속되었는데, 그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이 임기동안 심각한 민심이반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첫해인 2008년 6월 16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지지율이 7.4%까지 떨어지는 등 집권초기부터 심각한 민심이반을 겪었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했던 미국 쇠고기 수입개방, 4대강 사업, 인천공항 민영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의 사업은 곳곳에서 반발을 불러왔다. 남북관계 파탄, 공안탄압, 민간인 불법사찰, 측근비리, 서민경제 파탄 등으로 민심은 이명박 정권에게 등을 돌렸다. 이명박 정권 임기 중간에 치러졌던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인천, 경남, 강원, 충청지역 광역단체장에 민주당이 당선되는 등 야권이 우세한 결과가 있었고, 2011년 10.26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야권단일후보 박원순이 승리하였다. 2012년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정권연장에 먹구름이 끼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국정치에서는 민심이반의 위기 때마다 관권선거가 이루어졌고 이 현상은 처음부터 대대로 이어져왔다.

이승만 정권이 헌정역사 초유의 3.15 부정선거를 감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민심이반이었다. 1956년 5월 15일 3대 정·부통령 선거 당시 자유당에서는 이승만-이기붕, 민주당에서는 신익희-장면, 진보당 추진위에서는 조봉암-박기출이 출마하였는데,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대통령으로는 이승만의 낙승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선거결과 이승만은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하였으나, 조봉암과 신익희 추모표 합계가 약 45%가 나오며 상당한 득표력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부통령으로는 민주당의 장면이 자유당의 이기붕을 누르고 당선되는 등 자유당은 사실상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이 투표 결과를 두고 항간에는 조봉암 선생이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경제위기를 불러오고 부정부패를 일삼던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위기를 느낀 자유당과 이승만은 1960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3.15 부정선거를 기획, 실행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한 술 더 떴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 김대중 후보와 맞붙은 대선에서 당시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700억 원의 거액을 선거자금으로 사용하고 언론조작, 심지어 김대중 후보의 표를 무효화 시키는 등의 개표부정까지 시행했음에도 53%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러자 장기집권을 노리던 박정희 정권은 아예 선거를 포기하고 유신헌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간접선거 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도 1/3을 뽑도록 하여 여당인 공화당이 개헌선인 2/3 이상을 항상 차지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로써 한국의 공직선거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고 말았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관권선거를 자행한 행태는 1992년 대선에도 반복되었다. 1992년 대선에는 민자당의 김영삼, 민주당의 김대중, 국민당의 정주영이 출마하고 무소속으로 박찬종이 나왔는데, 김영삼은 군부독재 세력과 야합했다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는 영남과 강원도에서 만만치 않은 지지세를 보여주며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텃밭을 위협했다. 이러한 때 1992년 12월 11일, ‘초원복집’ 사건이 일어났다. ‘초원복집’ 사건은 법무부 장관과 부산지역 각 기관 단체장이 음식점에 비밀리에 모여서 민자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김대중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선거를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민자당의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나온 관권선거 정황이라 할 수 있다.

 

그림 2. 1992년 초원복집 사건 당시 경향신문 기사

정부기관이 동원된 관권선거 백태

관권선거에는 정부기관이 동원된다. 2012년 대선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번 대선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정부기관이 부적절하게 개입한 정황이 도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먼저 선관위의 편파적인 선거관리가 논란이 되었다. 18대 대선 기간 선관위가 마련한 3회에 걸친 TV토론에서는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방식인 후보자간 자유토론이 제한되고 내용적으로는 새누리당에게 불리할 수 있는 주제인 언론과 환경부분이 제외되는 등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토론이 진행되었다. 심지어 선관위는 시민단체에서 진행한 이명박 정부 비판과 역사바로알기 운동에 대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규제를 하기도 하였다.

선관위뿐만 아니라 정부 각 부처들의 행태도 논란이 되었다. 선거직전인 12월 16일, 경찰은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해 조사도 미처 다 하지 않은 상태로 유례없이 밤 11시에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하였다. 12월 17일에는 새누리당이 문제제기를 해서 이슈가 되고 있던 2007년 10.4 정상회담 당시 북방한계선(NLL) 발언이 담긴 자료를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하였다. 정상간 대화록은 1급 비밀로 분류되어 있고 국가기록원 기록은 15년에서 30년간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특히 후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열람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관련 자료를 제출한 것은 새누리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위였다. 같은 날 국토해양부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4대강 비판 발언에 “4대강 보와 녹조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반박하며 선거개입 논란을 낳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겨레신문 12월 17일자 사설에는 ‘국정원·경찰·국토부까지 ‘관권선거’ 작정했나‘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정부기관들이 일제히 나서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등 사실상 선거에 개입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정부기관의 개입사례는 지난 과거시기의 부정선거에서 단골메뉴처럼 등장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1960년 3.15 부정선거에서 정부 부처를 총동원한 관권선거를 보여주었다. 선거가 시작되기 1년 전인 1959년 3월, 국방, 내무, 재무, 법무, 농림, 체신부 장관으로 구성된 6인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 6인위원회에서 부정선거가 기획, 준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취임사에서부터 '이(승만) 대통령이 없으면 이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 대통령을 위하는 일은 거룩한 일'이라며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독려했다. 또한 공무원에게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기자들에게 ”공무원도 근무시간 이외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설사 위법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처벌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며 관권선거를 독려했다. 또한 전국 경찰인사를 단행하여 일선 경찰서장을 연고지 중심으로 재배치하였고, 읍면동단위로 공무원 친목회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지시하였다. 최인규 장관과 이강학 치안국장은 국무회의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각 지방 도경찰국 사찰과장 및 경찰서장, 군수, 시장, 구청장을 지역별로 10명 내지 20명씩 내무부로 불러 부정선거 준비를 독려했다고 한다.

3.15 부정선거의 결과 1956년 선거에서 낙선했던 자유당의 이기붕 부통령 후보가 79.2%의 기록적 득표로 부통령직을 획득하였다. 부정개표로 인해 개표 중간 이기붕의 표가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최인규·이강학 등은 경비전화로 이승만은 80%로, 이기붕은 70~75% 선으로 조정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하였다.

공무원을 총동원한 관권선거는 박정희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2년 4월 11일자 노컷뉴스에 따르면 1967년 6.8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 때, 박정희 정권은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장관, 차관이 특정후보 지지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선거법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선거에 정부 관료들이 직접 나서 여당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공무원과 공화당에 의한 공개투표도 여전했다. 여수와 벌교에서는 유권자들이 단체로 공화당 운동원이나 공무원들에게 여당 후보를 찍은 투표용지를 보인 다음 투표함에 넣도록 공개투표를 하다 발각되기도 하였다.

1971년 4.27 대선에서는 중앙정보부를 이용하여 여론조작을 실시했다는 의혹도 있다. 선거 막판 경상도 지역에는 '전라도 사람들이여 단결하라'는 선전물이 뿌려졌다. 김대중 후보 벽보 밑에 '호남 후보에 몰표를 주자'는 격문도 붙여졌다.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전단지도 나돌았다. 이런 행위들이 경상도 지역의 지역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중앙정보부의 공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지금도 인터넷 공간에서 자행되고 있다.

4.27 선거 결과 박정희는 2위인 김대중 후보와 약 94만 표의 차이로 가까스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70~80%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은 것이었다. 물론 중앙정보부의 여론조작을 제외하고도 많은 부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1967년 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공화당이 경상도 지역에서 50~60%의 지지를 받았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1971년 대선 당시 경상도 박정희 후보에 대한 70~80%의 지지는 중정의 지역감정 여론조작에 힘입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관권선거의 방식은 합법을 가장한 편법선거

관권선거는 합법의 외피를 썼지만 실제로는 법망을 교묘히 피한 편법선거이다. 다음 사례처럼 합법적인 방법인 거소투표제도를 악용하여 대리투표를 시도하는 모습이 그 예이다.

2013년 1월 13일 울산시 울주군 선관위는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대신 거소투표 신청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울주군 지역의 이장 4명을 최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들 4명의 이장은 18대 대선 부재자투표 신청기간인 지난해 11월21~25일 주민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임의로 거소투표 신청서를 작성해 선관위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2012년 4.11 총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은 2012년 10월 5일 국정감사에서 4·11 총선 당시 서울 지역의 한 장애인거주 시설에서 무더기 대리투표가 진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진선미의원은 서울 지역 새누리당 지역구 내 한 시설에서, 시설장이 일괄적으로 유권자 전원에 대한 거소투표를 신청했는데, 이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찍으라는 강요가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림 3. ▲ 진선미 의원은 지난 10월 5일 서울 소재 Y장애인 거주시설의 무더기 대리투표 의혹을 제기하고 관련 동영상을 공개했다. (자료사진) ⓒ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 공식 블로그

이런 합법을 가장한 편법 행위 역시 한국사회의 과거 부정선거에서 전매특허처럼 등장하던 모습이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전두환 정권 당시 1987년 당시 강원도 모 지역 경찰서장 이 모 씨의 증언을 공개했는데, 이 모 씨는 과거사위 조사에서 "정부 여당으로부터 강원도지사를 통해 정보 형사 활동비를 받은 기억이 있다. 이 돈을 정보과장에게 줘 활동비로 사용하게 했다"며 정부의 지원금으로 선거 관련 첩보를 입수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합법적인 치안정보활동을 편법으로 선거에 이용하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합법을 가장한 편법선거와 관련하여 2004년 공무원노조 김정수 부위원장은 한겨레에 보낸 ‘공무원 정치 중립을 지키는 길’이라는 기고문에서 전두환 정권 이후 있었던 관권선거에 대한 실상을 밝혔다. 기고문에 따르면 전두환, 노태우 시기 공직사회 전체가 선거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내무부에서 내려온 특별교부금이 일선 읍·면·동장에게까지 하달되어 관권선거자금, 소위 실탄으로 사용되고, 행정기관은 선거 때마다 비밀계획을 작성하고 읍·면·동장은 선거관리지역총책이 됐다고 한다. 선거전에는 읍·면·동장에 대한 인사이동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선거후에는 여당후보의 당락에 따라 영전, 좌천인사가 뒤따랐다고 한다. 문민정부와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된 이후에는 관권선거는 합법으로 위장해, 보다 더 치밀한 계획아래 진행됐다고 한다.

그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울진에서 치러진 2006년 5.31지방선거이다. 울진 타임스에 따르면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울진선관위는 교통오지지역의 유권자들에게 제한적으로 교통편의 제공 대책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실제로는 원거리에 거주하지 않는 유권자들도 선관위에서 준비한 차량으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울진 선관위는 투표자 편의를 위해 울진군의 10개 읍면 전 지역에 걸쳐 관광버스가 운행된다는 공식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이장들은 5.31일 지방선거당일 마을방송 등을 통해 버스의 도착을 사전에 알려주는 등 특정세력들에게만 선관위의 관광버스동원 행정에 대한 정보가 유출된 의혹이 있었다. 선관위와 지방 공무원들이 결탁하여 관광버스를 동원한 관권선거가 이루어진 것이다.

관권선거의 고리를 끊어내야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선출직, 특히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력은 매우 강력하다. 그런 만큼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과정은 공정해야한다. 그러나 한국의 공직선거는 끊임없이 관권선거에 휘둘려왔다. 공무원과 경찰이 총동원되기도 하고 정보기관이 개입하여 여론 조작을 하는가 하면, 합법을 가장한 편법선거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현상을 놔둔다면 앞으로도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선거결과는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관권선거 정황이 적다고 해서 부정의혹이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의혹이 나왔던 이번 18대 대선에서의 관권선거 의혹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선거부정의 의혹에 대해 정확하게 밝혀 민의를 왜곡시키는 관권선거의 고리를 확실하게 끊어야 한다.


출처 : http://www.urisociety.kr/sub.php?board=A1&id=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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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작은예수들

촛불 든 작은예수들

 
조현 2013. 01. 24
조회수 111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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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용산참사 뒤 목요일마다
투쟁현장 찾아 159번 촛불예배
벼랑 끝 철거민·해고자 등 위로
촛불교회 “벼랑 내몰린 사람들
현장 목소리가 성서의 메시지”

추웠다. 용산 재개발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 남일당 일대는 벌판으로 남아 있었다. 4년 전 건물들이 철거된 뒤 분초를 다투듯 성급히 추진되던 재개발은 이뤄지지 않은 채였다.

 

그 한편 주차장으로 쓰이는 남일당 앞터에 17일 저녁 7시 100여명이 모였다. 매주 목요일이면 이곳을 찾아와 예배를 하는 ‘촛불교회’ 동참자들이었다.

 

재개발을 이유로 철거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숨지고, 검거된 27명의 철거민에 대한 기소와 투옥이 이어진 그 현장은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렸다.

 

“살려고 살아보려고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친 곳이 벼랑 끝이었습니다. 가공할 방법으로 자행된 공권력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로 짓밟고, 관계는 금이 가고 공동체는 파괴된 괴물 같은 바벨탑, 너도나도 그 위에 서고자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막아내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야외 간이의자에 앉은 이들이 입을 모아 중보기도를 낭송했다.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어둠을 살랐다. 그들은 손에 손에 촛불 하나씩을 쥐고 있었다. 멀리 바벨탑처럼 솟구친 용산시티파크를 돌아 바람이 휘몰아쳤다. 4년 전 공권력 앞에서 떨던 용산의 철거민들과 죽음을 택한 23명의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들, 지금도 고공에서 황소바람을 뼛속으로 받아들이는 평택 쌍용자동차, 울산 현대자동차, 유성기업 노동자들처럼 촛불이 떨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대중은 물론 제자들까지 떠나버린 예수의 무덤을 마지막까지 지킨 세 여자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인 양, 몇몇 여성들의 눈망울이 유난히 컸다. 사회를 본 서울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와 용산참사 유족 대표로 눈물을 토해낸 전재숙 집사, 설교를 한 한백교회 양미강 목사도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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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사는 “예수가 처형당하자 분노는 절망을 낳고 절망은 포기로 이어져 하나둘 십자가 현장을 떠난 뒤 여인들만 남아 무덤을 막은 커다란 돌을 치워야 했지만, 경비병은 말할 것도 없고 군중과 제자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도 그랬다. 그러나 무관심과 절망, 포기만 있었다면 빈 무덤의 부활 사건은 없었다. 희망이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꽃핀 게 예수의 부활이다”라고 설교했다.

 

촛불교회는 용산참사가 발생한 그달부터 매주 목요일 절망의 현장들을 찾아갔다. 재능교육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현장, 제주 강정마을과 4대강 공사 현장 등이었다. 예배 뒤엔 헌금을 모아 현장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이번 남일당 예배가 159번째다.

 

이 촛불예배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긴급조치 구속자 석방을 위해 이해동·문동환 목사 등이 주축이 돼 매주 목요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모여 열었던 목요기도회의 정신을 이은 것이다.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던 목요기도회를 잇기 위해 모인 ‘예수살기’ 회원 60여명이 켜기 시작한 촛불은 꺼지지 않고 4년을 달려왔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몰리면서 고립무원의 절망 속에 있던 철거민과 해고자와 유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서울 동교동에서 철거당한 두리반 철거민은 촛불교인들의 성원과 공동투쟁에 힘입어 건설사로부터 보상을 받아 홍대 앞에 새로 칼국수집을 내기도 했다.

 

촛불교회 총무로 예배를 준비하는 데서 나아가 철거반이 들이닥칠 때면 예수살기 회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던 최헌국 목사는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성서의 메시지가 아닌가. 살아 있는 현장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과연 목회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책임과 사명을 새롭게 깨닫게 되고, 예전 건물 안에서 목회할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족이나 철거민들만큼이나 위로받고 변화한 것은 바로 ‘고난에 동참하는 이들’ 자신이었다. 함께하는교회 담임으로 촛불교회 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방인성 목사는 “현장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관심했음을 자성하고, 깨어 있는 영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아픔을 위로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면서 정작 영적인 힘을 얻은 것은 나였다”고 고백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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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총재 구국봉사단, 땅 4만3000평 소유했었다

[단독] 1978년 경기도로부터 수의계약으로 불하받아 1979~1980년에 매각

13.01.23 19:43l최종 업데이트 13.01.23 21:17l

 

 

 

▲ 토지대장 지난 1978년 10월 구국여성봉사단이 경기도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은 안양시 일대 42필지 부동산 중 일부의 토지대장.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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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과거에 총재로 있었던 사단법인 구국여성봉사단(고문 고 최태민 목사)이 지난 1978년 경기도로부터 수의계약으로 토지 14만3028㎡(약 4만3천 평)를 불하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관련 토지대장들을 찾아 확인한 결과다.

이렇게 구국봉사단이 불하받은 토지는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과 박달동 일대 42필지로 옛 경기도 종축장 부지다. 한 감정평가 법인이 지가변동률을 고려해서 평가한 결과, 이 땅의 당시 가치는 약 40억 원, 광명 KTX 역세권에 포함된 현재 가치로는 1500억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 이 토지의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옛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이른바 '최태민 관련 자료'에 등장하는 기업인이 연루된 증거가 포착돼 그동안 의혹으로만 떠돌던 최태민 목사 일가의 부정축재 혐의를 밝히는 데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국여성봉사단이 이 땅들을 매각한 뒤 그 매각자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의혹이 집중되고 있다. 최태민 목사의 딸과 사위들이 서울 강남과 강원도 평창 등지에 수백억 원 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고(관련기사 : 최태민 목사 딸 부부 소유 평창 땅 더 있다), 연 매출이 1000억 원대가 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관련기사 : 박근혜 올케는 '폐업', 최태민 사위는 '매각'... 왜?) 더욱 눈길을 끈다.

박 당선인은 1976년 4월 최태민 목사가 만든 구국여성봉사단에 명예총재로 참가하면서 최 목사와 중요한 활동들을 펼쳐 나갔다. 임의단체였던 구국여성봉사단은 1977년 3월 사단법인으로 전환했고, 이듬해 2월 박 당선인은 총재로 취임했다. 1979년 5월 구국여성봉사단은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정렴·김계원씨와 박승규 전 민정수석비서관 등은 과거 최태민 목사의 비위사실을 증언한 바 있지만, 그동안 박근혜 당선인은 이를 모두 부인해왔다.

구국여성봉사단 소유 땅 매입자 주소지는 '청와대'

<오마이뉴스>가 단독으로 입수한 토지대장에 따르면 안양시 석수동·박달동 일대 토지 42필지 14만3028㎡의 소유권은 지난 1978년 10월 21일 경기도에서 구국여성봉사단으로 이전됐다. 관할 등기소에서 폐쇄등기부 증명서를 떼어 확인해보니 이들 토지는 1977년 2월 21일 구국여성봉사단이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 초 경기도에 이들 토지 매각방법과 매각가격을 알려 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경기도청 회계과는 "일반공개경쟁 2회 유찰에 따른 수의계약"이었으며 "매각금액은 밝힐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구국여성봉사단이 경기도로부터 적지 않은 땅을 특혜나 다름없는 수의계약으로 넘겨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 당선인이 이 단체의 총재로 있었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앙정보부가 1970년대 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최태민 관련 자료'에는 경기도 종축장 부지에 대한 언급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77. 2. 21 金OO에게 경기도로부터 안양종축장(토지 70,788평, 건물 36동)을 奉仕團(봉사단)명의로 수의계약, 매수하여 준다는 댓가로 동 토지 7,000평과 동 지상건물 36동을 받기로 約束(약속).

구국여성봉사단과 그 후신인 새마음봉사단은 이들 부동산을 1979~1980년 사이 모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거래가 포착된다. 1979년 9월 19일 부로 '아세아 농산주식회사'로 소유권이 이전된 2필지와 같은 날 '아세아 농산주식회사 外(외) 1인'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2필지다. 이들 4필지의 토지대장에는 소유주의 주소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로 기록돼 있는데, 이 주소는 청와대의 주소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 아세아농산의 주소는 청와대? 토지대장에 따르면 1979년 9월 19일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 받은 아세아 농산주식회사의 주소지는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로 청와대의 주소와 일치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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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폐쇄등기부 증명서에는 아세아농산주식회사의 소재지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555-7번지로 나와 있다. 소유권을 넘긴 구국여성봉사단이나 새마음봉사단 모두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775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오기(誤記)라고 보기도 어렵다.

어떤 이유로 이들 4필지의 소유주 주소가 청와대의 주소와 일치할 수 있는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세아 농산주식회사 사장 이아무개씨는 '최태민 관련 자료'에 등장하는 ㈜아시아중석 회장과 동일 인물이다.

'최태민 관련 자료'는 최태민 목사와 경북 울진에서 중석광산을 경영하던 이아무개 회장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78. 1 초순 부실 금융실업인 조치대상자 李OO이 경영하는 (주)아시아중석에 은행융자 알선 및 해외여행 제한조치 해제주선을 조건으로 동사 회장직 취임을 내락하고 78.12.18 朴槿惠비서관 金OO으로 하여금 재무부 등 관계관에게 請託(청탁), 李OO의 서독 헬텔사와의 중석가공 합작회사 설립추진을 위해 동인의 출국을 주선.

최 목사가 이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하는 것을 조건으로 박 당선인의 비서관을 통해 재무부 관계관에게 청탁, 이 회장의 출국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증언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아, 박정희>를 통해 최태민 목사가 만든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기업들의 현안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탁을 박 당선인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관련기사 : "영애 박근혜, 기부금 낸 기업 민원해결 요청").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큰따님 근혜씨가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최모(최태민)라는 목사가 '구국선교단'을 조직해서 가세하였다. 하루는 큰따님으로부터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어느 '건설회사'와 '섬유공업회사'의 현안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아버지 박 대통령을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 선양운동을 시작한 큰따님이 구국선교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되어 즉각 박 대통령에 보고했다." (김정렴 회고록 <아, 박정희>)

김 전 실장의 회고록은 최 목사가 '대통령의 큰 영애' 박 당선인을 내세워 각종 부정부패를 저질렀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1991년 1월 1일 치 시사월간지 <인사이더 월드>는 "최태민은 변호사법 위반사건으로 총 1억여 원을 갈취했으며 14만 평의 땅을 빼앗았다, 경기도 안양 근처·부산 근교·서울 노량진 쪽에 있는 토지 15만 평은 그의 수중에 넣었다"며 "그러나 수사기관이 그러한 소리를 듣고 철저히 조사했으나 너무도 교묘히 처리해 놓아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새마음봉사단 땅 매입한 신씨는 새마을운동 충남도지부장 출신

42필지 중 26필지(그 중 2필지는 아세아농산주식회사와 공유)를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사들였던 신아무개씨의 이력도 눈길을 끈다. 충남 보령의 광산업자였던 신씨는 자신이 산 땅을 1980년 6월 대부분 매각했다. 이후 도시가스·부동산·종합 건설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그는 전성기에 10여 개의 기업을 거느렸으며 1989년에는 고액소득세 납부자 28위에 이름을 올렸다.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두 차례 지냈던 신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충남도지부장과 자유총연맹 충남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 민정당 충남도당 후원회장, 민자당 대천·보령지구당 의원장을 거쳐 1991년 지방선거에는 민자당 공천으로 도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금융업에 진출했던 신씨는 1994년 일반예금자들이 예금한 돈을 법정한도를 150배나 초과해 같은 계열기업에 대출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경영권을 빼앗겼던 그는 1997년 재기를 노렸지만, IMF 사태의 여파로 파산했다.

1998년 6월 한 경제신문에 실렸던 당좌거래 중지자 명단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신씨의 이름은 언론보도에서 사라졌다. <오마이뉴스>는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토지를 사들인 경위를 듣기 위해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이미 10여 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신씨가 새마음봉사단으로부터 사들였다가 8개월 만에 판 안양시 석수동 땅은 두고두고 분란거리가 됐다. 토지대장에 따르면 1979년 9월 11일 이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했던 신씨는 이듬해 6월 22일 소유권을 넘겼다. 그런데 신씨로부터 이 땅을 산 사람은 무려 1628명이나 된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77년 구국여성봉사단 소유 땅에 청계천 공구·자동차 부품상가 이전 계획

지난 1977년 당시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은 인구 분산과 환경 정화를 위해 청계천 인근 공구 및 자동차 부품상가들을 교외로 이전시킨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전 대상이 된 업종을 중심으로 한국기계공구상연합회 등 4개 단체는 상가이전합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구국여성봉사단 소유의 안양시 석수동 토지를 이전 대상지로 매입했다.
 

 

▲ 광명 KTX 역세권 토지 1978년 구국여성봉사단이 경기도로부터 수의계약으로 불하 받았던 석수동 일대 옛 경기도 종축장 부지. 사진 중앙 멀리 보이는 건물이 KTX 광명역사.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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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9년 9월 11일 20평 정도를 한 계좌로 만들어 상인들에게 분양했지만, 상가개발사업은 분양 후 한 달 만에 10·26이 터지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사업은 이듬해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전면 백지화됐다.

상인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재개를 요구했으나 1992년부터는 제2경인고속도로 건설 등 공공사업 집행으로 2만5000여 평 정도의 부지가 수용 당했다. 이후 지주들은 석수토지개발조합을 설립해 나머지 토지를 대상으로 주택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2003년 광명역세권 택지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2만3000여 평이 추가로 수용돼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2005년 12월 26일 치 <한국경제>에 따르면 계좌당 935만 원이 보상가로 책정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보상대상자 1700여 명 중 연락이 닿아 보상액을 받은 사람은 당시까지 300여 명 정도에 불과했다.

과거 새마음봉사단이 소유했던 토지 중 석수동 570-2, 575번지 일원 58,936㎡(1만7828평)은 현재 석수스마트타운 부지로 수용돼 올해 안에 17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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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3일 이후로 달라지는 북미대결전의 양상

 

 

 

북핵문제, 세계비핵화문제로 되나?
 
<북미대결전>2013년 1월 23일 이후로 달라지는 북미대결전의 양상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1/23 [17:5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최근 미국 정보당국은 북이 북 전역에 북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08을 배치 이동하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 한성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지난해 12월 12일 ‘광명성 3호-2기’를 발사한 북에 대해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자 북이 23일 이를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서 북미대결전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안보리는 22일, 북에 대한 기존 결의 1718/1874호를 확대.강화한 결의 208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87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5항과 15항 그리고 19항 등이다. 위성 발사를 주관한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등 단체 6곳과 백창호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위성통제센터소장 등 4명을 제재목록에 추가시키고 있는 것이 5항이다. 이로써 북 단체 17곳에 대해 자산동결조치가, 개인 9명에 대해 여행금지 및 자산동결조치가 취해지게 됐다.

15항은 6자회담 재개 그리고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을 완전하고 신속히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도록 촉구한다는 항목이다.

북의 추가 발사 또는 핵실험이 있을 경우 중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것이 19항이다.

당초 예상보다 강한 제재 내용으로 평가받을 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북의 반발은 아예, 예상치 못한 수위였다. 신속하기까지했다. 안보리 결의 채택 2시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외무성 성명이 나온 것이다.

외무성 성명은 결의안의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평화적 위성 발사를 계속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반도비핵화의 종말을 천명하기까지 했다. 이어 제재 압박에 물리적 대응조치로 대처하겠다고 선언해 3차핵실험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외무성 성명은 북이 이후 위성발사 그리고 심지어는 핵실험 등 국제사회와 대립을 치고 있는 핵심사안에 대해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대강을 윤곽으로나마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외무성 성명에 의하면 북은 이후 위성발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가 어떤 제재를 가하든 이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을 외무성 성명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은 위성 발사를 문제 삼는 유엔제재에 대해 자국의 경제발전과 국방력강화를 저해하기 위한 미국의 포악한 적대적 조치라고 규정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는 평화적 위성발사를 안보리가 비법화하는 것과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국제법을 적극적으로 충돌시켜내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안보리의 부당함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이후 위성발사를 계속해나갈 것을 강조하기 위한 논리인 것으로 보인다.

북이 위성발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삼스러울 수 없는 이유이다. 지난해 4월 위성발사 실패 이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으며 광명성3호-2기가 성공하고 난 뒤에도 그와 관련된 내용의 기사들은 쉬지 않고 내놓았던 것이다.

외무성 성명에 의하면 북은 이후 핵억제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날로 로골화되는 미국의 제재압박책동에 대처하여 핵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인 군사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는 임의의 물리적 대응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북의 3차핵실험이 이제 단순히 추정의 수준에서 머물러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피해갈 수 없는 현실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껏 그 어떤 정세분석가들이나 군사전문가들치고 북의 3차핵실험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사람은 없다.


북의 3차핵실험이 만약 있게 된다면 그 이후 북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북미대결전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 지와 관련해서 외무성 성명은 적지 않은 것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외무성 성명은 내용을 보게 되면 그것은 단순히 유엔 제재결의에 맞서는 항의 혹은 반발로서의 성격에서 애초 벗어나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보리 제재 결의를 계기로 삼아 북이 공세적으로 한반도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천명하고 나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북 외무성 성명에서 가장 크게 주목되는 것은 북이 한반도비핵화문제에 대해 종말을 선포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외무성 성명은 한반도비핵화문제에 대한 북의 입장을 천명하기 전에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에 대한 입장부터 먼저 정리해들어가는 수순을 밟았다. 6자회담은 북핵을 둘러싼 북미대결전의 외피였다. 그리고 6자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아왔던 것이 2005년 9.19공동성명이었다. 그런데 북이 마침내 외무성을 통해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의 사멸을 선언한 것이다. 그것도 공식선언이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이다. 이는 북이 1월 2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한 한반도비핵화문제에 대한 종말을 선포한 것에 대한 완결성을 더 담아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가증되는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말미암아 자주권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비핵화는 종말을 고하였다”

이 선포로 인해 북핵문제라는 이름으로 북과 미국이 20여년 간 정치외교적으로 치열하게 쟁투를 벌여왔던 북미대결전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던 한반도비핵화문제는 마침내 북미대결전에서 전혀 다른 위상을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다른 위상에 대한 단초의 일단을 외무성 성명은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최종결론을 내리었다고 언급한 것이 그것이다. 이는 북의 비핵화문제를 세계비핵화와 연동시켜내겠다는 것을 북이 공식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단연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북핵문제를 핵군축문제로 전환시킬 것을 공식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북핵문제는 이제 바야흐로 한반도비핵화문제에서 세계비핵화문제로 그 위상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위상변화, 이것 역시 북미대결전의 치열한 범주이다. 그 치열함을 우리는 2013년 연초에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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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조작의 마술인가? 역전 불가능과 철저한 닮은꼴 !!!

개표조작의 마술인가? 역전 불가능과 철저한 닮은꼴 !!! [184]

그루터기추억(chf****)

주소복사 조회 4759 13.01.23 06:25

지난 번에 선관위에서, 이번 선거의 개표에 대한. 지역별 1분당 누적 득표수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자료를 가지고서, 자료의 불일치성에 대한 글들을 올렸었습니다.

 

 

 

자료가 불일치 하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나 쌍방 모두가, 자료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는 소리입니다.

 

또, 자료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자료가 실제 데이타가 아니라 조작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연스러운 자료일수록, 일반 자연현상에서 나타나는 무질서와 혼돈, 즉 카오스의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반면에, 인위적인 자료일수록 어떤 규칙적인 특징이나 뚜렸한 일관성을 지니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즉, 작위적이고 조작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선관위에서 공개한 1분당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인위적인 < 조작의 냄새 >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이런 조작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올린 자료는, 전국 자료를 다 검토해 본 것은 아니지만, 모두 동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검토하지 않은 지역들은, 관심이 있으신 네티즌 분들께서는, 직접 검토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네티즌들께서 제가 분석하지 않은 다른 지역의 그래프에서

 

두 후보 사에에 누적득표수가 역전되는 현상을 발견신다면, 꼭 댓글로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러가지 일들로 너무나 바쁜데다가, 시간도 없어서, 전국의 모든 자료를 다 검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역시나 도 지역들의 그래프 모습을 보고서, 다른 지역도 동일할 것이라고 유추한 것입니다.

 

 

 

< 먼저 >, 전국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개표 초중반이후로는 거의 역전 현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근혜가 우세한 지역에서는, 계속 박근혜만 우세할 뿐, 문재인이 역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또한, 문재인이 우세한 지역에서도, 계속 문재인만 우세할 뿐, 박근혜가 역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영호남 지역에서만 그런 것이아니라, 수도권과 경기 강원 충북등 ...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와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남지역에서 박근혜가 시종일관 우세하고, 호남지역에서 문재인이 시종일관 우세한 것은

 

그나마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지역에서도, 두 후보간에 역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일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역전이 발생할 수 없게끔 득표 수치를 손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개표 초반에는, 수치상으로 약간의 역전을 보이는, 극히 일부 지역도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두 후보간에 역전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 두번째 >, 조작의 냄새는 두 후보 사이의 누적득표수 그래프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SBS에서 발표된, 두 후보의 로지스틱곡선이 닮은 것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이곳 아고라에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각 지역에서는 서로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이를 합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두 그래프가 닮은 꼴을 보이는 것이라고 반박했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에서 공개한 1분당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런 반박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sbs의 로지스틱 곡선의 닮은 점 ... 즉, 전국적인 누적득표수 그래프가, 두 후보사이에 닮은 꼴로 나타난 것은

 

각 지역 시군 단위에서부터, 닮은 꼴이 되도록 세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기초 지역에서부터 닮은 꼴 득표수가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이들을 합산한 광역시와 각 도 단위에서도, 두 후보사이의 그래프는, 철저하게 닮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각 광역자치단체의 득표수를 합산한, 전국의 누적득표수는 완전히 닮은 꼴로 나타나는 것이고

 

나중에는 아예 평행을 그리면서, 누적득표수 그래프가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와 같은 사실들에 대해서, 선관위에서 공개한 1분당 지역별 누적득표수 자료를 이용하여

 

각 시군단위와 광역시 및 도 단위의 그래프를 만들어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각 시군의 그래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붉은색은 문재인 후보의 그래프이고, 파란색은 박근혜 후보의 그래프 입니다. )

 

 

 

(1) 닮은 꼴로 진행되고 있는 그래프들 입니다.

 

 

 

 

 

 

 

 

 

 

 

 

 

 

 

 

 

 

 

 

 

 

 

 

 

 

 

 

 

 

 

 

 

 

 

 

 

 

 

 

 

 

 

 

 

 

 

 

 

 

 

 

 

 

 

 

 

 

 

 

 

 

 

 

 

 

 

 

 

 

 

 

 

 

 

 

 

 

 

 

 

 

지금까지 각 시,군 단위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의 누적득표수가 닮은 꼴로 진행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위의 그래프들을 가운데는, 두 그래프 사이가 벌어져서, 안 닮은 것처럼 보이는 그래프들이 더러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서, 이들은 별로 안닮지 않았냐고, 그리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 그래프들도 역시, 실제로는 모두가 다 닮은 꼴 입니다.

 

제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 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2 ) 전혀 닮지 않게 보이는 그래프들 사이의 닮은 꼴

 

 

 

영호남 지역의 경우에는, 어느 한 후보가 자신이 유리한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 때문에

 

두 후보의 그래프를 함께 그려보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보고, 아~ 이 지역에서는 두 후보의 득표모습이 전혀 닮지 않았네 ... 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역에서도, 득표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저조한 후보의 그래프를, 별도로 따로 그려보면

 

정말 놀랍게도, 두 후보의 그래프 모습이 아주 닮은 꼴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할 뿐입니다.

 

 

 

즉, 영남지역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그래프를 별도로 그리고

 

또, 호남지역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그래프를 별도로 그려서, 두 후보의 그래프를 모두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두 후보의 그래프를 살펴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측에 그려진 그래프는, 좌측 그래프에서 득표수가 매우 낮은 후보의 그래프를, 단독으로 그려 본 것입니다.

 

 

 

( 그래프의 색깔로 인해서 혼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이상으로 두 후보가, 상대적으로 우열이 분명한 지역에서, 득표한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후보의 그래프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수치상으로는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득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실제 현실이 이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 3 ) 완전히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역의 그래프들

 

 

 

이제 세번째로는, 아예 대놓고 두 후보의 그래프를 거의 일치하게끔 만들어 놓은 지역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 지역은, 진짜 박빙의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한 것 같습니다.

 

 

 

이들 지역의 그래프에서, 두 후보의 사이의 차이가 매우 미미함을, 아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이들 지역의 그래프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펴보신 것처럼, 이들 지역에서 두 후보의 그래프는, 거의 일치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시 군 단위에서부터 두 후보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이도록

 

득표수를 미리 조작해 놓았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시 군 단위에서부터, 두 부보사이에 서로 다른 패턴을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자료를 취합한 광역시와 도 단위에서도, 두 후보의 누적득표수 그래프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 두 후보의 득표수가 전체 득표수의 99%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누적득표수 그래프도, 두 후보 각각의 누적득표수 그래프와, 동일한 패턴을 보이게 됩니다.

 

 

 

시군 단위에서부터 수치조작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광역시와 도 단위에서도 역시

 

당연히 조작된 수치들의 합계로 만들어진 그래프가, 아주 일률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각 광역시와 도 단위의 자료를 가지고서, 각 도와 광역시에 대하여

 

광역지역 전체 득표수 그래프와, 박근혜, 문재인 후보 각각의 득표수 그래프를, 모두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모든 광역지역의 그래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각 광역지역별로 너무나도 동일한 패턴으로 그래프가 그려지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패턴은, 박근혜나 문재인 어느 한 후보의 수치만 알면

 

나머지 다른 후보의 수치는 자동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구조입니다. 왜냐하면 그 패턴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각 시 군에서부터, 두 후보의 득표수는, 아주 닮은꼴로 조작되어진 수치였고

 

 

 

이들 수치를 취합한 광역지역의 득표수 역시

 

두 후보의 그래프와 득표수 전체 그래프를, 이처럼 꼭 닮은 꼴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광역지역의 득표수들을 모두 다 취합한 것이, 전국의 누적득표수가 되는 것이므로

 

전국 그래프 역시, 당연히 닮은 꼴로, 또 아주 평행한 모습으로,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면서, 그토록 이상하고 신기하게 생각했었던

 

SBS에서 발표한, 두 후보의 로지스틱 곡선인 것입니다.

 

 

 

이제 위의 광역시와 도지역의 득표수들을 모두 합산한, 두 후보의 전국 그래프를 그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SBS에서 발표된 것과 동일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그래프 입니다.

 

 

 

 

 

 

 

 

 

 

이상으로 왜, 이런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냄새가 나는, 누적 득표수 그래프가 공개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시 군 단위에서부터, 득표수에 대한 조작 즉, 개표조작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 군 단위의 득표수 조작은, 먼저 로지스틱함수를 이용하여, 전국의 득표수를 추정해 놓은 다음에

 

이를 각 광역 지역별로 배분하고, 또 광역지역에서 시군단위로 배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역지역으로 배분할 때는, 지난 번 글에서 올렸던 것처럼

 

경북지역이 최종 마무리를 감당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경북지역은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득표수가 치솟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전국의 추정된 득표수를 각 지역으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지역오차를

 

경북지역에 마지막 순간에 다 몰아 넣었기 때문에, 그런 모양의 그래프가 발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곳에 올려 놓은 그래프들을 보면서도, 이런 모든 시, 군과, 광역시 및 도와, 전국지역 그래프가

 

그래도 여전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런 분들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아니~ 그래프들이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지??

 

하고, 반문을 해 보아야만 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관위는 아마도 처음에는 이런 이상한 자료를, 전혀 공개하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료를 처음부터 공개하지 않은 것이거나

 

 

 

아니면 나중에 최종 득표수 자료만을 가지고, 이 자료를 추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공개된 이 자료는, 여러가지로 신뢰하기 힘든 매우 이상한 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선관위는, 이 자료를 공개하더라도, 설마 국민들이 눈치를 챌까?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공개된 자료라는 아주 분명한 fact에 대해 분석한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모든 모습들이, 이미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선관위에서는, 이런 역전이 전혀 없고, 모두가 닮은 꼴인 모습들까지도

 

다른 모든 선거에서도 다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주장할는지 또 지켜보겠습니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모든 의혹들을, 단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면적인 수개표를 통해서, 개표한 모든 표들을, 일일이 다 점검하고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전면적인 수개표 방법에 의해서 확인한 모든 표들이

 

선관위에서 공개한 모든 자료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제가 그동안 아고라에 올렸던 모든 글들을 자진 삭제하고, 앞으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모든 네티즌들과 또 저의 글을 읽었던 모든 국민들에게

 

분명한 사과문을 이곳 아고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진실은 항상 하나이며, 언제나 같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거짓의 승리는 잠깐이며,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오직 진실 뿐입니다.

 

 

 

이런 진실들이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하루속히 목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곳 아고라 이슈청원 란에 올려놓은 청원 건이 있습니다.

 

아직 이 청원에 서명하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번거러우시더라도 한 번 찾아가셔서, 서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향후, 모든 선거의 100% 전면 수개표를 위한, 국회입법 청원건 >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3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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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바로잡아야 할 때는 바로 지금

[경남도민일보] 바로잡아야 할 때는 바로 지금
(경남도민일보 / 주중식농사꾼 / 2013-01-23)


 

2012년 12월 19일 화요일, 개표가 시작되고 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한국방송 텔레비전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 유력이라는 화면을 띄우더니 한 시간쯤 뒤에는 당선 확실이라는 화면을 띄운다. 표 계산이 틀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2012년 12월 20일 목요일, 인터넷 신문에서 소식을 찾아 읽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라온 이웃들 마음을 읽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옮겨놓는다.

'얘네들은 초반부터 심리전으로 밀어붙이더니 결국 확정도 아닌데 대세로 만들어버리는 조직력을 보여주는구나. 부정선거의 역사가 이번에만 비껴갔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부정을 찾아낼 수도 알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5년 후에도 똑같겠다.'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지난밤에는 끙끙 앓았다. 눈 치우느라 힘 좀 썼더니 이제야 가벼운 몸살이 왔다. 그날 함께 눈 치운 분들 가운데는 침 맞으러 다니는 분도 있다는 말이 들린다.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보내온 쪽글도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목을 보고 열어보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는데, 어느 쪽글 하나를 열었더니 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던 분이 이번 선거는 부정선거라고 하면서 그 증거 몇 가지를 들어 이야기하는 동영상이 나왔다. 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연결하여 이웃에게 알렸다.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다음 카페 '선거소송인단 모임' 회원으로 들었다. 거기서 알리는 말을 읽어보고, 전자개표 관련 부정 사례를 다룬 유튜브 동영상을 여럿 찾아보았다.

선거소송인단 참가 신청서를 만들어서 보냈다. 소송에 드는 돈도 조금 보내기로 하였다.

2013년 1월 4일 금요일, 선거소송인단이 오후 2시에 대법원으로 가서 이번 대통령 선거가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은 부정 선거였다며 '제18대 대통령 선거 무효 소송'을 냈다. 이 과정을 인터넷 텔레비전으로 중계방송하는 것을 보면서 한마음으로 응원하였다. 몹시 추운 날씨에도 100여 명이 모인 것 같고, 그 가운데는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달려와 눈물을 글썽이는 아주머니도 있다. 수염이 허연 노인 한 분도 일찍부터 나와서 그 자리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모습이 비쳤다. 보기 좋았다.

앞장서시는 한영수, 김필원 두 분을 하느님께서 잘 보살펴주시기를 빈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민족문제연구소에 신청한 디브이디 <백년 전쟁>을 받았다. 근대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박정희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인터넷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어서 본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한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책 <숲속의 생활(월든)> <시민 불복종>을 읽은 지 아마 35년은 된 것 같다. 소로가 쓴 다른 책을 있는 대로 다 찾아내어 주문하였다. 절판인 것은 헌책 가운데서 찾아내기도 했다. 그래도 두어 권은 찾지 못하였다. 영문 <월든>도 한 권 주문했다.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인터넷 검색창에서 '개표 부정'을 찾아 뉴스 최신순으로 보니, 셀 수 없이 많이 올라와 있다. 중앙선관위가 국회에서 투표지분류기 한 대를 돌려 개표를 다시 해 보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부정 선거를 묻을 수 있는 일인가? '독일에선 개표가 어떻게 이루어질까?'(http://blog.daum.net/meinstern/219)를 찾아보니, 하나하나 손으로 세어도 바르고 빠르게 개표하는 방법이 있다.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내별'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einstern/219

 

 

 

 

 

 

 

 

 

 

 

 

한쪽에서는 다 지나간 일이니, 이제 부정선거 시비 가리는 일은 그만 접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다. 의혹은 밝혀야 하고, 잘못은 찾아내어 고쳐야 한다. 선거는 앞으로 또 다가올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드러났을 때 고칠 것은 즉시 고쳐서 바로잡아야지, 그때 가서 하려면 또 못하고 만다. 투표한 그 자리에서 손으로 개표하도록 바로잡아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출처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2913

주중식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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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 등 78명 죽었는데 "억울하면 소송해!"

[현장]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피눈물 "박근혜가 나서라"

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22 오후 4:43:11

 

"2011년 1월에 집사람과 뱃속 아이를 모두 잃었다. 남은 아들도 간질성 폐렴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2011년 여름에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서야 2010년 겨울부터 사용한 가습기 살균기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정부는 어떠한 결과도 대책도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안성우 씨)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들이 입을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 대책을 마련하고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 기업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관련 기사 : 사람 잡는 폐 질환, 당신의 가습기를 의심하라!, 사람 공격한 가습기…당신 폐가 위험하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시민모임은 22일 오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78명의 사망자, 147명의 폐질 환자(2012년 10월 8일 기준, 환경보건시민센터 집계)가 발생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망 관련 피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이들은 "갓난아기 등 세 살 미만의 영·유아 36명을 포함한 78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나오고 폐 질환자가 발생해 보건복지부의 질병관리본부가 나서 상황을 파악하고 역학 조사를 했다"며 "그러나 정작 책임 부서인 지식경제부와 환경부는 나 몰라라 뒷짐 지고 물러서서 구경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러 부처가 관계된 일이어서 총리실이 테스크포스(TF)팀을 꾸려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담당 부처가 모인 적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며 "피해 대책 마련 및 유사 사건 발생 예방 등의 조치를 당연히 취할 것으로 기대했던 피해자는 물론 많은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사건은 환경부, 보건복지부, 지식경제부가 각각의 책임을 분담해야 하지만 부처 간 책임을 미루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이들은 "독성 물질을 관리하는 게 환경부 소관이고, 이런 물질의 판매를 허용한 것은 지식경제부다. 또 질병 발생에 따른 정부 차원의 해결책 마련은 보건복지부의 몫 아니냐"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해당 제품을 판매한 기업의 사과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기업은 제품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버티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판 기업 중 한 곳은 적반하장격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 조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법적 소송을 위해 대형 로펌 '김&장'을 앞세운 상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들은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환경안정청을 설치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각종 화학 물질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면 안전이 담보되어야 한다"며 "환경피해보상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해 화학 물질로 인한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보상하는 사후 관리 대책이 보완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발언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박근혜 당선인과의 만남을 요구했다. 이들은 "차기 대통령으로서 박근혜 당선인이 어처구니없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희생된 사망자들의 유족과 환자들을 만나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냐"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은 지난 2011년부터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이며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연구를 보면 국민의 18.2퍼센트(874만 명)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드러나 실제 피해 규모는 짐작하기 어렵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활동 중인 임흥규 씨는 "질병관리본부에 접수된 사례까지 포함하면 현재 피해 사례는 347건이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피해 소송을 개별적으로 진행하라는 식이고 사측은 소송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앞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위원회 활동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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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얻은 귀한 딸, 인질로 잡혀갈 줄이야

[사극이 못다 한 역사 이야기 1편] 제국의 마지막 옹주, 덕혜

13.01.22 20:18l최종 업데이트 13.01.22 21:35l

 

 

▲ 일본에 끌려갈 당시인 열네 살 때의 덕혜옹주. 사진 출처: <덕혜옹주 그의 애환과 복식>.
ⓒ 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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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 안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있다. 그곳에서 열리는 '덕혜옹주 특별전'이 오는 27일 끝난다. 지난달 11일 시작된 이 특별전에서는 옹주의 탯줄을 담은 태항아리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옷과 신발,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에 있었던 유물들이 일본 측의 협조로 한국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이 망한 지 2년 뒤인 1912년에 덕수궁에서 고종과 양귀인(귀인 양씨)의 딸로 태어났다. 당시 고종은 예순한 살이었다. '환갑에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를 빼닮는다'는 속설처럼 덕혜는 아버지와 흡사한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 둥근 얼굴, 시원한 이마, 쌍꺼풀, 오뚝한 코 등등.

기쁨을 감추지 못한 고종은 덕혜의 출생을 기념하는 행사를 여러 차례 성대하게 열었다. 후궁의 딸을 이렇게까지 환대한 전례는 없었다. 그만큼 덕혜를 끔찍이 위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문에서도 덕혜의 동정을 흥미롭게 보도하곤 했다. 덕혜는 일종의 '국민옹주'였다.

환갑에 얻은 귀한 딸, 유모도 앉은 자리서 젖 물리게 해

고종이 덕혜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는 유모를 대한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루는 고종이 덕혜의 방에 불쑥 들어왔다. 덕혜에게 젖을 먹이던 유모 변복동이 깜짝 놀라 일어나려 하자, 고종은 "아이가 깨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라면서 "그대로 있거라"라고 말했다. 유모가 그냥 앉은 채로 자신을 맞이하도록 한 것이다.

고종은 덕혜의 교육에도 신경을 썼다. 덕수궁 즉조당에 덕혜를 위한 유치원을 만들어줄 정도였다. 이 유치원에는 덕혜를 포함해서 귀족 집안의 아이들이 입학했다. 어린 덕혜는 덕수궁 안에서 부모만 바라보며 마냥 즐겁게 살았다. 궁 밖에는 망국의 분위기가 만연했지만, 덕혜는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의 장래 희망은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 덕혜를 위한 유치원이 있었던 장소인 덕수궁 즉조당.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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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가 다섯 살 때인 1916년에 이복오빠인 영친왕 이은이 일본 왕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훗날 이방자로 개명)와 약혼했다. 일본과 이완용이 이 약혼을 추진한 것은 왕족을 일본인의 곁에 둠으로써 조선 왕실의 혈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이은과 이방자는 4년 뒤에 결혼했다.

이은의 약혼으로 충격을 받은 고종은 덕혜도 동일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래서 그는 시종인 김황진의 조카에게 덕혜를 시집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계획이 탄로 나서 김황진의 덕수궁 출입은 금지되고 덕혜의 결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이때 품은 고종의 우려는 그가 죽은 뒤에 현실이 되고 만다.

고종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덕혜의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고종은 1919년에 여덟 살짜리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발생한 3·1운동 시기에 덕혜는 아버지를 잃었던 것이다. 그 뒤 덕혜는 어머니와 함께 덕수궁을 나와 창덕궁 관물헌에 살다가 열네 살 때인 1925년에 어머니와도 헤어져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에 인질로 끌려간 덕혜옹주... "얼굴에는 애수와 절망감이 깃들어"

명목상으로는 일본 유학을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인질로 끌려간 것이다. 일본은 왕족을 떼어놓음으로써 그들이 조선 백성들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아버지와 사별한 덕혜는 이로써 어머니와 생이별하게 됐다. 도쿄에 도착한 덕혜의 막막한 모습이 올케인 이방자의 저서 <지나온 세월>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방자는 서울에서 덕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굉장히 성장했지만, 얼굴에는 애수와 절망감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나를 매료시켰던 발랄하고 영롱했던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작년 11월 3일 서울문화재단의 주최로 덕수궁 함녕전 앞에서 열린 덕혜옹주 연극.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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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는 일본 귀족 소녀들의 학교인 여자학습원에 다녔다. 하지만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세라복을 입은 그는 항상 우울하고 쓸쓸한 표정이었다. 반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그냥 "하이, 하이"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하루는 소마 유키카란 친구가 덕혜에게 시비를 걸어 보았다. 소마가 지은 <마음에 놓은 다리>란 책에 따르면, 소마는 "내가 너의 입장이라면 독립운동을 할 텐데, 너는 왜 안 하니?"라고 물어봤다. 상처를 받을 만한 말인데도 덕혜는 말이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상처를 받았겠지만, 대꾸할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덕혜는 멍한 표정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덕혜는 사실상의 인질이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허가 없이는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다. 그는 열다섯 살 때인 1926년에 오빠인 순종 황제가 위독해지자, 일본의 허가를 받아 한국에 와서 오빠를 간호했다.

하지만 오빠는 곧 죽고 말았다. 이때 일본은 덕혜의 장례식 참석을 불허했다. 분노한 한국인들이 덕혜를 중심으로 뭉칠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덕혜는 장례식도 못 보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순종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인들이 6·10만세운동을 일으킬 당시, 덕혜는 쓰라린 마음을 누르며 일본 집에서 슬픔을 달래야 했던 것이다.

열여덟 살 때인 1929년에 덕혜는 어머니 양귀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다. 그런데 일본은 덕혜가 상복을 입지 못하도록 했다. 덕혜는 조선 왕족으로 인정했지만 양귀인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덕혜는 상복도 입지 못한 채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문상객의 자격으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스무 살 된 덕혜에게 일본은 또 다른 불행을 강요했다. 네 살 연상의 대마도 도주인 종무지(소 다케유키)와의 정략결혼을 명령한 것이다. 조선 왕족을 조선인들로부터 확실히 떼어놓을 목적이었던 것이다.

1931년에 거행된 이 결혼으로 덕혜는 이덕혜에서 종덕혜가 되었다. 부인이 남편의 성씨를 따르도록 한 일본 법률 때문이었다. 그 뒤 덕혜의 성씨는 한 번 더 바뀐다. 이 점은 뒤에서 설명한다.

정략 결혼한 덕혜옹주, 우울증과 불면증의 시작

결혼을 전후한 시점부터 덕혜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구체적인 병명은 조발성 치매증 즉 정신분열증이었고, 덕혜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종·순종·양귀인의 잇따른 죽음이 상처가 됐겠지만, 단지 그런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례식은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위한 의식이다. 장례식을 통해 산 자는 슬픔을 치유한다. 그런데 덕혜는 일본의 방해 때문에 슬픔을 제대로 치유할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는 나이가 너무 어렸고, 오빠의 장례식 때는 참석조차 못했고, 어머니의 장례식 때는 상복을 입지 못했다. 마음에 한이 쌓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정신분열증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덕혜옹주와 종무지의 결혼을 축하하는 기념비. 대마도 이즈하라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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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의 결혼은 행복할 리가 없었다. 정략결혼 자체도 불행한데, 거기다가 정신분열증까지 겹쳤으니 말이다. 종무지가 지은 시에는 "내 아내는 말하지 않는 아내"란 대목이 나온다. 집안에 멍 하니 앉아 있는 덕혜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덕혜는 스물한 살 때인 1932년에 딸 정혜를 낳았다.

덕혜의 결혼생활은 처음 15년간은 그럭저럭 유지됐다. 이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두 부부에게 돈이 많았기 때문에, 가사 도우미들이 덕혜를 보살폈다. 그래서 남편은 성가실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덕혜가 서른네 살 때인 1945년에 일제가 패망하자, 미군정은 덕혜 부부를 포함한 귀족들의 신분을 박탈하고 재산헌납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이 부부는 평민으로 전락하고 재산도 대부분 헌납했다.

이 때문에 도우미를 쓸 수 없게 되자, 종무지는 덕혜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버렸다. 덕혜를 간호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서 아예 방치해버린 것이다. 덕혜는 자신이 정신병원에 갇힌 줄도 모르고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이때 덕혜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덕혜는 마흔 살 때인 1951년에 일본 국적을 상실했다. 무국적 상태가 된 것이다. 덕혜를 보호해줄 법적 장치가 사라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불행이 닥쳤다. 1955년 이전의 어느 시점에서 종무지가 아무것도 모르는 덕혜를 상대로 이혼절차를 진행한 것이다. 물론 오빠 부부와의 협의는 거쳤다. 이혼 뒤에 종무지는 새장가를 들었다.

이혼과 함께 덕혜는 종덕혜에서 양덕혜가 되었다. 원래는 이덕혜로 돌아가야 했지만, 친정인 이씨 집안에서 이혼녀라는 이유로 거부했기 때문인지 덕혜는 이씨 성을 못 쓰고 어머니 성을 쓰게 되었다. 물론 덕혜 본인은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이 당한 비극의 상징 덕혜옹주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덕혜가 마흔다섯 때인 1956년에 딸 정혜가 스물다섯의 나이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눈 덮인 설산에 올랐던 것이다. 산에 오른 뒤 하늘에 오르는 것이 이 등산의 목적이었다. 정혜는 그렇게 세상과 이별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덕혜는 정신병원에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 창덕궁 낙선재 구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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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덕혜의 불행이 가중되고 있을 때, 대통령 이승만은 조선 왕실이 자신의 위상을 침해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영친왕과 덕혜의 귀국을 불허했다. 결국 덕혜는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뒤인 1962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덕혜는 승용차를 타고 덕수궁 앞을 지나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자기 집이었던 덕수궁 정문을 지나는데도 덕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귀국했던 것이다.

덕혜는 서울대병원에서 요양했다. 한동안은 건강이 호전되는 듯했다. "정혜야! 정혜야!" 하고 중얼거릴 때도 있었다. 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얘가 어디 갔나?'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또 그는 "아리랑~ 아리랑" 하며 혼자서 흥얼거리기도 했다.

덕혜의 기억에 존재하는 것은 정혜와 아리랑, 그리고 10대까지의의 추억뿐이었을 것이다. 부모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만 선명할 뿐, 그 외의 것들은 거의 다 흐릿하거나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나온 덕혜는 창덕궁 낙선재 구역의 수강재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에 눈을 감았다. 향년 78세였다. 한편, 전 남편 종무지는 새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자녀를 낳고, 문학 활동을 즐기며 마음 편하게 살다가 덕혜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멀쩡했던 덕혜를 정신질환자로 만들어서 돌려보낸 일제의 만행. 그 만행의 피해자는 비단 덕혜옹주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 모두가 그런 만행의 피해자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옹주로 태어나 망국의 한을 고스란히 안고 살다 간 덕혜옹주는 우리 민족이 당한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27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덕혜옹주 특별전에 가본다면, 덕혜옹주를 포함해서 우리 민족 전체가 겪은 근대사의 비극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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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청문회와 ‘한 방’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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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1/23 04:42
  • 수정일
    2013/01/23 04:4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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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청문회와 ‘한 방’
 
[정운현 칼럼] 새누리 “‘결정적 한 방’ 없다”... 대체 얼마나 큰 흠결 나와야?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1-22 20:15:52 | 최종:2013-01-22 22:20:2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동흡 후보자
“‘결정적 한 방’이 없다”

 

이동흡 헌재 소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새누리당 사람들의 얘기다. 말하자면 이 후보자를 낙마시킬 비장의 무기, 즉 결정적인 흠결이 없다는 얘기인 셈이다. 현직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을 집권여당이 감싸는 건 더러 있어온 일이라고 쳐도 이건 도저히 말이 안된다. 대체 얼마나 큰 흠결이 있어야 ‘한 방’이라고 할 것인가?

청문위원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언론에서 ‘결정적 한 방’을 말씀하시는데 꼭 감옥 가야 될 일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잖나. 감옥갈 일이 없으면 아무나 소장해도 되는 건가”라고 반문한 바 있다. 오죽하면 헌법기관의 수장 자격을 범죄자와 빗댈 상황이 됐겠는가.

‘인사청문회’ 제도는 제16대 국회 때인 지난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 제정을 계기로 마련됐다. 이는 대통령이 행정부 고위 공직자 임명 시 국회의 검증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인사 청문회의 대상인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은 반드시 국회의 임명 동의를 거쳐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장상 전 이대 총장이 지명됐을 때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장 후보자는 아들의 미국 국적 취득 문제, 부동산 투기 및 위장전입 등이 문제가 됐다. 뒤이어 장대환(매일경제 회장) 총리 후보자 역시 위장전입 및 부동산 의혹 등으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청문회법, 16대 국회 제정...대통령 견제 취지

참여정부 시절엔 정치적인 이유로 임명동의가 무산된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된 윤성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렇다 할 흠결도 없었음에도 보수진영의 반대로 임명이 무산됐다. 국민대 교수 출신의 김병준 부총리 후보는 논문표절 의혹 등으로 임명된 지 13일만에 사퇴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가히 극치를 이뤘다. 여성부장관 후보 이춘호 씨는 부동산 투기의혹, 통일부장관 후보 남주홍 씨는 자녀 이중국적 문제, 환경부장관 후보 박은경 씨는 부동산 투기의혹 등으로 인사청문 요청이 철회됐다. 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는 스폰서 의혹 등으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 역시 스폰서 의혹과 박연차 게이트 뇌물수수 의혹으로 낙마했다.

이밖에 신재민 문화부장관 후보, 이재훈 지경부장관 후보도 투기의혹 등으로 청문회 후 사퇴했다. 지난해 7월엔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위장전입과 세금 탈루, 아들의 병역 편의 등이 문제가 돼 결국 자진사퇴했다. 이들은 기본이 소위 ‘2관왕’ ‘3관왕’이었는데, 청문회를 마치고도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동흡 후보는 어떨까? 21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그간 이 후보자를 두고 제기된 문제점은 개인 비위 17건, 의혹 14건 등 무려 31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분야의 신기록을 수립한 셈이다. 위장전입, 증여세 탈루, 공금 횡령 의혹 등을 비롯해 자녀들까지도 거론됐다. 그야말로 총체적·입체적 비리-의혹투성이인 셈이다.

어제 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던 ‘특정업무경비’의 사적 유용을 두고 헌재 사무관은 청문회에서 ‘위법’이라고 증언했다. 이 후보자의 헌법재판관 재임 당시 2년간 경리 담당을 맡은 김혜영 헌법재판소 법원사무관은 22일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계좌에 입금한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지 않느냐”는 민주당 박범계 의원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강기정 인사청문 위원장이 “특정업무 경비 30만원 이상은 현금으로 지급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 후보자에게 매달 400~500만원씩 주고 영수증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법 위반이 아니냐”고 추궁하자 김 사무관은 “위반인 것을 알면서 했다”며 이 후보자 요구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했다.

헌재 사무관, "특정업무경비 개인계좌 입금, 잘못됐다"

‘반드시 낙마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는 야당 의원들은 21일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에 대해 파상 공세를 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근거자료를 통한 해명보다는 ‘남탓’ ‘관례’를 들며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평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을 지적하면서 ‘생계형 권력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법원노조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9%가 이 후보자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이 법원의 부정적 여론을 지적하자 “저는 주위 분들하고 잘 지내지만 ‘바른 것은 바르다’고 말하는 원칙주의자였다. 일부 반대하는 분들은 저와 직접 관계를 맺은 분들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오히려 법원 직원들 탓을 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도 있다. 최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당분간 헌재소장 자리가 공백이 불가피한 데 헌재의 한 관계자는 “‘그 사람’은 안 된다는 분위기가 워낙 강해 취임하면 헌재소장 공백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심지어 헌재 사상 초유의 ‘소장 취임 반대 연판장’ 사태로 번질 공산도 있다고 한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결정적 한 방’이 없다며 이 후보자를 감싸고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인격살인” “도살장” 운운하며 야당을 비난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야당의 정치공세로 치부하며 ‘이동흡 감싸기’에 나선 이 원내대표야말로 목불인견이다. 두 사람은 경북고 선후배 사이로 이 원내대표가 ‘후배 봐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은혜 민주당 부대변인은 22일 논평을 통해 “청문회가 진행될수록 이동흡 후보자의 잘못된 가족사랑은 존경받아야 할 헌재소장의 지위를 조롱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밝히고는 “가족 사랑밖에 모르는 이동흡 후보자가 갈 곳은 가정뿐”이라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말이 ‘잘못된 가족사랑’이지 이보다 더한 모욕도 없지 싶다.

비록 청문회를 통과해 헌재 소장이 된다한들 이 후보자가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과도한 권력욕을 부린 나머지 그는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명예마저도 통째로 잃어버렸다고 본다. 이 판국에 그나마 남은 한 가닥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건 이제라도 물러나는 길일 것이다. 그에게 이런 얘기를 들을 귀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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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지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흉터

미군 기지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흉터

 
김동규 2013. 01. 21
조회수 89추천수 0
 

미군이 유발한 환경오염 피해에 시달리는 필리핀
 

 

영화 <괴물>은 미군이 무단으로 버린 독성 화학물질로 인해 돌연변이 괴물이 된 물고기가 주인공이다. 봉준호 감독은 2006년 7월 영화개봉 당시 한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배경에 대해 “2000년에 벌어진 맥팔랜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맥팔랜드 사건은 2000년 7월 13일 환경보호단체 녹색연합이 “2000년 2월 9일 미군이 용산 미군부대 영안실에서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데 쓰는 포름알데히드 수용액 20상자를 한강으로 방류했다”고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영안실의 부책임자였던 미국인 맥팔랜드는 한국인 군무원에게 막말까지 하며 방류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 군무원이 세 달 뒤 상부에 방류 사실을 보고했을 때 미군 측은 “물에 희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포름알데히드는 성인 남자가 7그램 정도만 섭취해도 목숨이 위태로운 독극물이다. 이를 동맹국 수도의 강물에 대량으로 방류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미군의 환경의식으로 인해 한반도 곳곳은 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주한미군기지에서 발생한 환경오염사고는 총 47건이고 그중 29건은 기름유출이다. 미군이 사용하는 지하유류탱크가 낡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용산과 군산 기지는 2회 이상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오염이 발생해도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미군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주둔군지위협정(SOFA)에도 오염원인 제공자에 대한 명확한 책임 규정이 없다. 같은 기지에서 사고가 재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군기지가 위치한 지역 곳곳은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고 주민들의 저항도 끊이질 않는다. 지난 9월 평택시가 수행한 환경오염 조사에 따르면 평택 미군기지 이전지역에서 반출된 토양에 기준치를 초과한 카드뮴과 니켈이 검출됐다고 한다. 2011년에는 한 퇴역 미군의 증언으로 미군기지 내 고엽제 매립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은 부평 미군기지 맹독성 폐기물 처리 진상조사 인천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중금속과 다이옥신이 검출된 기지 주변 지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정화를 촉구하고 있다. 최근 강원도 원주시는 2008년 3월 발생한 캠프 롱 기름유출 사건에 대한 복원비용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하기도 했다.

 

해외주둔 미군기지에는 미국 본토의 엄격한 환경오염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미군들은 독성 폐기물 등을 적절한 처리과정 없이 버리는 경향이 있다. 1901년부터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필리핀은 미군의 오랜 주둔으로 인해 발생한 광범위한 환경오염으로 미군기지가 철수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각종 오염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1월 29일 오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만난 코라존 파브로스 전쟁중단동맹 필리핀 공동의장은 미군기지가 철수한 자리에 남은 흉터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차분히 설명해줬다. 코라존 씨가 알려준 필리핀의 현실은 미군기지가 국토 곳곳에 자리 잡은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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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한강에 독성물질을 무단 방류한
맥팔랜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괴물>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 철수하다
 
고된 일정으로 피곤할 텐데 이른 아침부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인터뷰에 앞서 코라존 씨 소개를 부탁드린다.
 
내 이름은 코라존 파브로스(Corazon Fabros)이고 필리핀에서 왔다. 현재 전쟁중단동맹 필리핀(Stop the War Coalition Philippines)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핵 없는 필리핀의 공동의장도 겸하는 등 여러 비정부기구에 관여하고 있다. 내가 속한 단체들은 군사기지문제, 핵문제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전쟁중단동맹은 필리핀의 미군기지와 사법 이슈들에 많은 관심이 있는데 팔레스타인, 오키나와, 괌, 강정 등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세계 여러 지역의 평화 문제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필리핀 문제가 아니라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성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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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존 파브로스(Corazon Fabros)

핵 없는 필리핀 연대(Nuclear Free Philippines Coalition) 전 사무총장으로 필리핀에 핵발전소 건설을 막는 성공적인 캠페인을 이끌었으며 필리핀 미군 기지 폐쇄를 요구하는 캠페인 주도.
 
-전쟁중단동맹 필리핀 공동의장
-아시아유럽민중포럼 평화안보 실무그룹 아시아 담당
-시민평화감시단 공동의장
-핵 없는 필리핀 공동의장

 


필리핀에 미군기지가 들어서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필리핀과 미군기지의 역사에 대해 알려 달라.
 
먼저 2012년은 미국이 필리핀에서 모든 군사기지를 철수하겠다고 밝힌 지 20년이 되는 해라는 걸 밝힌다. 1947년에 체결한 미-필리핀 군사기지협정이 만료된 해인 1991년 9월 16일 필리핀 상원은 새로운 협정 체결을 거부했는데 일년 뒤인 1992년 모든 미군이 철수하며 군사기지도 폐쇄됐다. 1901년부터 필리핀에 있던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주둔 미 해군기지와 공군기지가 폐쇄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1898년 6월 12일 독립하기 전까지 350여 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조상들은 독립을 위해 오랜 시간 힘겹게 싸워왔는데 미국이 필리핀 땅을 밟은 후에야 스페인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우리는 다시 미국의 식민지가 됐다. 미국은 필리핀은 물론 괌, 푸에르토리코, 하와이 등도 침략했다. 미국은 스페인이 만든 군사기지를 다시 자신들의 기지로 고쳐 썼고 규모는 더 확장됐으며, 필리핀은 곧 미국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 요충지가 됐다. 그때부터 많은 군사기지들이 필리핀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큰 기지는 수빅만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다. 이외에도 여러 기지들이 있는데 작은 주둔지 규모의 기지를 뺀 주요 기지는 총 7개였다. 거의 한 세기 동안 필리핀에 주둔하던 미군기지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군의 군사활동 중심지였으며 각 기지마다 고유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7개 기지마다 고유 기능이 있다는 말인가?
 
앞서 말한 수빅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부터 설명하겠다. 클라크 공군기지는 총면적이 4,440헥타르로 싱가포르와 맞먹는 넓이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로도 이름을 떨쳤다. 이 기지는 미 공군이 사용하는 250만 갤런에 달하는 석유, 윤활유 등을 저장하고 있었다. 또한 200,000㎡에 달하는 거대한 무기고를 보유하고 있는 기지이기도 했다. 수빅 해군기지는 1884년 스페인이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1904년 미국이 이곳을 빼앗았다. 수빅 해군기지의 가동률이 최고조일 당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보급창이었으며 매달 백만 배럴에 달하는 연료를 취급했다.
 
또한 아시아 지역에 배치된 모든 미국 함정을 수리할 수 있는 주요 선박 수리시설로도 활용됐다. 베트남전, 한국전쟁, 이라크전 등에 참가했던 배들이 모두 이곳에서 기항하며 수리나 보급을 지원 받았다. 수빅에도 300여 개의 무기고가 있다. 다른 기지들도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존헤이 공군기지의 경우 통신, 훈련뿐만 아니라 휴식과 오락에 특화된 곳이다. 캠프 월레스 공군기지는 훈련과 통신을, 산 미구엘 해군 통신기지국은 이름처럼 통신에 특화된 기지였다. 그밖에 미 해군 라디오 방송국, 오도넬 전송국 등이 있다.
 
존헤이 공군기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 휴식과 오락 기능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말 그대로 놀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존헤이는 고급 주거 시설과 잘 다듬어진 골프 코스를 가지고 있는데, 북쪽 산악지역에 위치해 풍광도 좋다. 조용한 지역이라 지친 군인들이 쉬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보면 된다. 이밖에도 클럽, 바, 카지노 시설이 들어서 있어 놀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병사들도 가끔 오긴 하지만 주로 간부들을 위해 마련된 시설이다. 존헤이 기지 주변 거리는 군인들이 놀기 위한 시설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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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0일 필리핀 예인선을 따라 수빅만으로 들어오고 있는 미해군 에식스 상륙함
© US NAVY, Petty Officer 2ND CLASS MARK R. ALVAREZ
 
공해병 앓는 정착민들
 
조금 방향이 다른 질문일 수도 있지만, 존헤이 기지 주변에 성적 쾌락을 위한 시설들도 있었나? 한국도 예전에는 기지 주변에 ‘기지촌’이 형성돼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종사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가가 개입해 많은 여성을 성매매 종사자로 전락시켰다.
 
물론이다. 모든 군사기지 주변에는 자동으로 그러한 시설이 따라온다. 왜냐하면 군인들이 그런 시설이 주는 쾌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즐거움을 통해 그들은 전쟁터에 나갈 힘도 얻고 스트레스도 해소한다. 혈기왕성한 남성 군인들은 대부분 여성과의 하룻밤 관계를 원하는데 이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다. 누드쇼를 보며 여성의 나체를 탐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 때문에 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성적으로 학대당했다. 죄를 저지른 미군이 법정에 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필리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면 미군은 합의금을 주거나 해당 군인을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켜버렸다. 한국으로 오키나와로 혹은 본국으로 간 그들을 필리핀 법정에 세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명백한 유죄라도 말이다.
 
필리핀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2세를 낳는 경우도 있다. 한국도 예전에 이런 문제들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태어난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필리핀을 떠나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이들은 필리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생김새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차별에 시달리기도 한다. 다른 필리핀인과 달리 피부가 하얗거나 검다. 그래서 이들은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입으며 자란다.
 
한국도 예전에는 그런 문제가 많았다. 물론 성폭행과 같은 범죄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필리핀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한 기지 주변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들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앓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군 기지가 있던 지역은 심하게 오염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기 전까지는 그들이 우리 땅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텐데 미군 기지는 출입이 강력히 통제된다. 심지어 필리핀 정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 미군 기지였다. 이 때문에 사전에 어떤 조사활동을 벌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철수한 후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빅 해군기지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기지 안팎에 흐르는 강의 지류와 강 주변에 거주하는 마을사람들에게서 희귀질병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클라크 공군기지 통신센터에 정착한 사람들은 식수의 맛이 이상하고 기름이 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시작하자 필리핀 비핵동맹 산하 미군기지정화위원회가 해당 지역의 보건 관련 사건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각종 질병의 발병률이 상당히 높은 것이 명확해졌고 독극물 전문가, 전염병 전문가를 포함한 전문가 단체가 환경과 주민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수빅 해군기지 주변 강의 지류는 사람들이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유독성 폐기물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려졌다. 클라크 공군기지 주변의 정착민들을 위해서는 203개의 우물 펌프가 설치됐다. 그러나 정착민들은 그곳이 미군이 차량을 운용했던 수송부 근처라는 사실을 몰랐다. 차량을 세척하기 위해서는 강한 독성을 지닌 화학약품을 사용하는데 미군은 약품을 그냥 땅에 버린 뒤 철수할 때는 시멘트로 덮어 은폐했다. 그 결과 미군기지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각종 암과 피부병에 시달렸다.
 
구체적인 오염 피해 사례들을 알고 싶다.
 
세계보건기구는 1993년 미군기지내에 수질오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기지 매립지에 유독성 폐기물을 포함한 다량의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으며 산업 폐수, 오염된 하수 등이 정화 작업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수빅만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서는 필리핀 국내 기준을 초과한 중금속, 살충제, 납, 수은, 비소, 석면 등이 발견됐다. 이후 필리핀 보건부는 1995년 클라크 지역 내 우물에서 가져온 물 표본에서 다량의 기름성분을 발견했다.
 
또한 캐나다 전염병학자인 로잘리 베르텔이 1998년 밝혀낸 바에 따르면 클라크 지역 13개 공동체에서 굉장히 높은 비율로 신장 질환이 발견됐다고 한다. 1992년 필리핀 탐사보도센터는 수빅에 주둔하던 미 해군이 아무런 제재 없이 산업용 유독성 화학물질을 계속 버렸다고 주장하는 한 예비역 해군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당시 이 예비역은 배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미국이 독성 물질과 폐기물을 반복적으로 버리고 씻어냈는지 자세히 회상했다.
 
미군기지정화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다량의 수은이 수빅만 침전물에서 발견된 것을 밝혔다. 벤젠, 톨루엔, 크실렌 등 가솔린에서 발견된 오염 물질은 큰 문제였다. 벤젠은 백혈병, 재생 불량성 빈혈, 염색체 이상, 골수 퇴화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톨루엔은 신장과 간을 손상시키고 태아를 죽인다. 크실렌은 신경계에 장애를 일으키는데 피해자들은 성인이 돼도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자기 몸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
 
그린피스 독성감시단은 마발랏캇 지역에 있는 변압기가 폴리염화비페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폴리염화비페닐은 1987년부터 OECD 국가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독성 물질인데 미군은 이를 변압기에 이용해왔다. 폴리염화비페닐에 노출되면 적은 양이든 많은 양이든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태아의 체중을 줄이고 조산을 유발하며 지적 능력까지 영향을 끼친다.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피부병에 걸리고 각종 암도 유발한다.
 
평화 위해 지속적 연대 필요
 
미국 정부가 그러한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 보상한 적이 있나?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에게는 주민들에게 보상을 제공할 책임이 없다. 왜냐하면 군사기지협정을 통해 법적 책임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지를 떠나기 전 정화활동을 성실히 펼쳤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오염지역을 시멘트로 덮는 식으로 눈속임만 하고 떠난 경우가 많았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연방법에는 ‘슈퍼펀드법’이라는 환경법이 존재하는데 이 법에 따른다면 미군은 오염된 필리핀의 땅을 정화하고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은 미국 영토 안에서만 적용되는 법이고 버려진 미군기지는 미국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소용없었다.
 
12년 전 클라크와 수빅에 거주하던 수백 명의 주민들이 미국과 필리핀 정부를 상대로 동시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군기지정화위원회는 유독성 폐기물 피해자들과 관련해 272개의 사건을 기록했다. 피해자들이 기지 지역 정화를 요구하고 질병과 죽음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필리핀과 미국 정부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늘날 피해자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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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문제다. 미국에 대한 필리핀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은 효순이미선이 사건 이후 격렬한 반미 바람이 불었다. 필리핀도 마찬가지인가?
 
한국과는 다르다. 필리핀인들은 친미성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구해줬기 때문에 보호자이자 동반자 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환경오염과 각종 범죄가 벌어져도 감정이 크게 나빠지지는 않는다. 또한 기지는 철수했지만 소규모 임시 주둔지에 미군들이 많이 머물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임시주둔지라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 여러 부대가 돌아가면서 머무는 경우가 많은 데도 말이다.
 
평화 운동가들의 국제연대에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들었다. 코라존 씨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한국 정부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그들의 시민이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내가 본 강정마을 사람들과 평화 활동가들은 매우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힘으로 짓누르고 많은 사람들을 체포해간다.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강정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여러 아시아 국가의 평화 운동가들이 강정을 지원하고 지켜보고 있다. 강정마을은 더 이상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제주해군기지가 완성되면 그곳은 한국 해군만을 위한 기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명백하다. 나는 강정마을의 투쟁에 지지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평화운동가로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위해 한 마디만 부탁드린다.
 
2012년 1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 전략 가이드는 21세기 미국의 개입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미 국방부의 가장 큰 함대와 군사력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배치될 것이다. 또한 중국을 둘러싸고 중국의 주요 방어 거점으로 군사력을 재배치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계획을 막기 위해 일본, 필리핀, 미국 사람들이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국제 연대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의 지속적인 연대와 헌신적인 노력이 우리가 가슴 깊이 원하는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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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디펜스21+ 기자
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모 대도시에서 20년을 보냈다.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이메일 : ppankku@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sem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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