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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생산 접목시킨 5월11일 공장 현지지도

김정은 원수 “우리기술로 손전화기 척척”만족
 
과학과 생산 접목시킨 5월11일 공장 현지지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8/11 [08:58]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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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원수가각종 전자제품 생산기지인 5월11일 공장을 현지 방문해 “우리기술로 손전화기를 척척 만들어 내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한 사실을 조선의 언론들이 전했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김정은 원수의 현지지도 소식을 전하며 “5월11일공장의 일꾼들과 종업원들은 인민생활향상에 적극 이바지하는 각종 전자제품들을 더 많이 생산할 데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과학연구사업과 생산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룩하고

특히 우리 인민들의 사업과 생활에 필요한 새형의 《아리랑》손전화기를 연구 개발하여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김정은 원수가 조립공장을 비롯한 공장의여러 곳을 돌아보고 “최첨단설비들이 그쯘히 갖추어진 생산 공정에서 조립되는 전자제품들을 보며 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당의 의도를 높이 받들고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경영활동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였다.”고 밝혔다.
 
▲ © 이정섭 기자


로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원수는 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아리랑 손전화기를 요해 한 다음 “현대적인 손전화기 생산 공정을 새롭게 꾸려놓음으로써 손전화기를 대량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해놓은 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창조적 기풍과 애국열의를 높이 치하”하고 “특히 사용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도모하면서도 보안성이 철저히 담보된 응용프로그램을 우리 식으로 개발한데 대하여 평가”했다.

신문은 김정은 원수가 “손 접촉방식(터치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아리랑》손전화기의 화면접촉성능을 요해하시고 이 부분이 예민해야 사용자들이 이용하는데 편리하다고 하시였고 손전화기에 장착된 사진기의 화소수가 높아 인민들이 사용하기에는 그저 그만일 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고 전해 아리랑 손전화기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 5월11일 공장에서 생산 된 아리랑 손전화기(휴대폰)


또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손전화기에 새겨진 《아리랑》이라는 글을 보시고 우리 상표를 단 제품들을 많이 생산해야 우리 인민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줄 수 있다”고 말한 사실과 “손전화기를 우리의 기술로 척척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면서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하는 데서도 교양적 의의를 가진다.”고 말한 부분을 강조했다.

이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제품의 생산량을 늘이는 것과 함께 질을 개선해야 인민들이 자기 것을 사랑하고 우리 상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며 “5월 11일공장의 일꾼들과 종업원들이 과학연구사업과 생산을 밀착시키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 있게 벌려 보다 큰 성과를 이룩하리라는 크나큰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시고 공장 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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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양건 "개성공단 잘되야 DMZ도 고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8/11 13:36
  • 수정일
    2013/08/11 13: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7.27맞아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김양건 비서 2시간 접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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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11 11: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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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평양에서 김양건 당 대남담당 비서와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2시간 동안 만났다. [사진제공-평화자동차]

 

"개성공단도 따지고 보면 DMZ(비무장지대)에 있다. 개성공단이 잘 돼야 DMZ에서 공원 만드는 것도 되든지 말든지 할텐데."

지난달 7.27 '전승절'을 맞아 방북,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를 2시간 동안 접견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전한 김양건 비서의 말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9일 서울 모처에서 박상권 사장의 방북 결과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박상권 사장은 7.27을 맞아 방북, 지난달 30일 평양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앞에서 열린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돌 경축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해외동포사절단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으며, 특히, 박상권 사장과 단독으로 사진을 찍어 화제가 됐다.

지난 2일 평양에서 김양건 비서와 만난 박상권 사장은 오는 14일 개성공단 남북 7차 실무회담을 앞두고 개성공단에 대한 북측의 생각을 전하기를 꺼려했지만, 김 비서가 '개성공단 잘 되야 DMZ 평화공원을 고려 할 수 있다'고 한 발언에서 북측의 생각을 엳볼 수 있다. 당시에는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박상권 사장에 따르면, 김양건 비서는 "개성공단도 따지고 보면 DMZ에 있다. 아니 개성공단을 적극적으로 잘 해서 개성공단이 잘 돼야 DMZ에서 공원 만드는 것도 되든지 말든지 할텐데. 지금 이렇게 되는 상황에서 DMZ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 개성공단도 잘 되면 DMZ도 잘 될 거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북 웹 사이트인 <우리 민족끼리>도 논평에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처해있는 지금의 조선반도에서 비무장지대를 놓고 평화공원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라며 "꽃밭이나 조성하고 외국관광객들을 끌어들여 민족의 비극을 자랑거리인 듯 전전하는 것"이라고 비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즉, 남북관계의 상징인 개성공단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미국 의회에서 밝힌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北, 지난 1월부터 삼지연 공항, 어랑공항, 갈마공항 민영화

북한이 백두산, 칠보산, 원산 지역 등을 관광지구로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군 공항이던 삼지연 공항(백두산), 어랑공항(칠보산), 갈마공항(원산)을 민영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권 사장에 따르면, 지난 1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발의로, 군대로부터 공항을 이양받아 민영화했으며, 갈마공항의 경우, 공군은 안변군 인근으로 이전 중이다.

원산관광특구의 경우, 갈마공항을 민영화하면서 원산공항으로 개칭, 하루 4천명 이용을 가능케 하도록 재개발 중이며, 군대 소유이던 갈마호텔과 새날호텔도 민영화가 완료됐다.

이는 지난 5월 제정된 '경제개발구법'에 근거, 민영화를 통해 외국법인, 개인, 해외동포 등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마식령스키장 총계획도 중 지도. [사진제공-평화자동차]

 

원산 새날호텔에서 약 1시간 40분 정도에 위치한 마식령스키장은 '마식령속도' 구호에 따라 약 14억5천만원(북한원화), 175만여명이 공사에 참여하며, 6월말의 경우, 4개 슬로프, 스케이트장, 도로, 입구, 하천, 조림 등이 완성됐으며, 현재 10개 슬로프가 대부분 마무리됐고 숙소도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

숙소는 200명 수용 가능한 호텔, 150명 수용 가능 숙박시설로 마련됐다.

하지만 스키장의 최대 관건인 리프트의 경우, 당초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수입이 무산되자 백두산 북포태산 스키장, 베개봉 스키장, 삼지연 스키장 등에서 사용하지 않는 리프트를 이전하고 있다고 박상권 사장이 전했다.

 

   
▲ 마식령스키장 슬로프. [사진제공-평화자동차]

 

이와 함께, 북한은 원산-마식령-금강산을 잇는 관광코스를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개발 중인 원산비행장, 울림폭포, 마식령 스키장 등을 오는 2017년까지 1단계로 마무리짓고, 2단계로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석왕사, 동정호, 시중호, 삼일포,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 고산 과수농장, 세포지구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관광 일정은 '원산도착-해안광장-시내참관-국제소년단야영소참관-호두원참관' 등 당일 일정과, '원산도착-해안광장-시내참관-국제소년단야영소참관-호두원참관-마식령스키장-울림폭포-숙박-출발'은 1박2일 일정도 마련됐다.

또한 '원산도착-해안광장-시내참관-송도원-갈마해수욕장-첨삼협동농장-호두원참관-석왕사-금강산 출발'의 2박3일 일정과 '원산도착-해안광장-호두원참관-마식령스키장-울림폭포-금강산출발-외금강-해금강-내금강-외금강-원산비행장출발'의 3박4일 일정도 구성됐다.

 

   
▲원산에 위치한 새날호텔. 군인용 호텔이었으나 최근 민영화됐다. [사진제공-평화자동차]

 

 

   
▲ 원산 명사십리. [사진제공-평화자동차]

 

김정은 제1위원장과 단독 사진.. 김여정, 인사성 밝아

이번 방북기간 중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해외동포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뒤 김정은 제1위원장과 단독 사진을 찍었다.

당시 김정은 1위원장은 박상권 사장을 호출,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관계자는 박 사장에게 "대를 이어 20년 동안 215회 평양을 방문하며 사업해 온 공로를 치하하고 작년 11월 평양시 명예시민증까지 받은 것을 감안하여 특별히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박 사장의 활동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7.27을 맞아 해외동포사절단과 단체사진을 찍은 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박상권 사장을 만나고 있다. [사진제공-평화자동차]

 

그리고 서울 귀환에 앞서 박 사장은 김양건 비서와 2시간 동안 접견했으며, 그 자리에서 해외동포사절단 단체사진과 단독사진 등을 인화해 전달받았다.

이와 함께, 박상권 사장의 눈에 비친 김정은 1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은 상당히 친절한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어느 겨울 방북 당시, 김정은 1위원장의 외투를 받은 김여정은 걸어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 군 간부들의 인사에 일일이 고개숙여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박 사장은 "똑똑해 보이더라. 행동도 빠르다"며 "인사하는 사람도 행복해 하는 것 같고 인사만 잘 해도 점수 따고 밥먹기 어렵지 않다. 인사를 잘 하는 것을 봐서는 저 사람이 잘 하겠다는 느낌이 와닿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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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와 종편의 '쓰레기장'에서 '광주'를 구하는 법!

[광주, 그 기억의 내전] 김정한의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천정환 <1960년을 묻다> 공저자·성균관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09 오후 6:15:45

 

 

1. 들어가며

2013년은 33년째를 맞는 광주 항쟁사에서 특별한 한 해가 될 만하다. 정권을 연장하여 기고만장해진 기득권 세력과 '일베' 유의 우익에 촉발된 '기억의 내전', 그리고 그 기억 전쟁의 배경이 되는 '비청산'과 '반복의 상태' 덕분이다. 1980년 이래 이렇게 광주의 정신과 인간이 심하게 모독당한 적은 없었다.

얼마 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베'의 젊은이들을 '쓰레기'라 불렀다 한다. 한 사회의 시민이 다른 시민(그것도 젊은이들)을 '쓰레기'라 불렀다는 것은 비극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정원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이명박 정권 이후 우리 사회의 일각은 분명 심각하게 쓰레기장화 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역사의 상처와 기억을 잘못 다루어, 묵은 상처와 문제가 치유되기는커녕 더 크게 덧나고 곪아가는 사정이 한몫하고 있다.

정치학자 김정한 같은 연구자가 하는 학문은 근과거의 기억과 상처와 대결한다. 김정한은 1980년 이래의 민중 저항과 운동사를 연구하며 꾸준하게 성과를 상재해 온 연구자이다.

여러 군데 밑줄을 그으며 김정한의 책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소명출판 펴냄)를 읽었다. 책은 새삼 사회과학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연구는 근자에 새로운 지향점으로 부각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융합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의 방법이나 문제의식에도 잘 부합하는 듯하다. '현재'와 현실을 상대하는 이런 학문은 공공적이며 실천적이다.

이른바 보수논객이라는 분들과, 권력에 중독되어 여전히 미망에 잠겨있는 일부 경상도 사람들,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의 무장 항쟁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젊은 세대가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를 사서 정독해 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어로 된 언어정치의 하수종말처리장 같은 '일간베스트'나 종편 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로 이런 책에 1980년 광주의 학문적·객관적 진실이 있다.

2. 5.18 광주의 폭력 문제
 

▲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김정한 지음, 소명출판 펴냄). ⓒ소명출판

말이 나온 김에 먼저 5.18 광주의 폭력에 대한 김정한의 논변부터 듣고 가자. 즉,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전두환의 사병으로 전락한 군이 상상을 초월한 잔인무도한 폭력을 행사하여 시민과 학생들을 살해하고, 이에 대해 시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하고, 5월 20일 계엄군이 시위 군중들에게 집단발포하자 급기야 시민들이 무기고를 열어 자발적으로 무장하고 시민군으로 조직하여 저항한 사실. 그리고 잠시 물러갔던 계엄군이 5월 27일 다시 전남도청을 폭력으로 장악하러 왔을 때,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항쟁한 일. 이 과정에서의 폭력과 폭력의 맞부딪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수 세력과 우파, 그리고 좌파의 일부도 이 맞부딪힘을 대칭적인 폭력의 대결로 머릿속에서 상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전혀 두 힘은 비대칭적이었다. 쉽게 말해 정규군 특수부대인 계엄군의 무력에 시민군의 폭력을 대등한 것으로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 아는 통계도 거론해야 한다. 공식 집계에 의하면 5.18의 열흘 동안 죽은 광주 시민은 166명이었는데, 군인은 23명 사망했다. 군인 사망자 중에서 광주 시민들의 총격이나 공격 행위로 인한 사망자는 8명이다. 다른 사망자 중 13명은 5월 24일 공수부대와 전교사 병력이 광주시 외곽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오인 교전하여 사망한 희생자들이며, 나머지는 차량이나 오발에 의한 사망자이다. 2007년에 국방부 과거진상규명위원회가 확인한 사실이다.

여러 군데 무기고를 털어 끝까지 저항하고 북한군 특수부대까지 개입했다던 '폭도'들의 실력이나 화력은 '국군'에 비하면 형편없었던 것이다. 시민의 저항권 자체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우파는 물론, 무장봉기론 등을 통해 이 싸움의 의미를 전유하려 했던 좌파 일부의 논리와 실제의 항쟁은 달랐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도 이런 점을 지적했다는데 (윤리적으로 정반대이겠지만) 물리적으로는 거의 언제나 민중과 시민의 봉기는 국가권력과 자본이 보유한 폭력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여순이든 4.3이든, 심지어 스페인 내전이든 말이다. 민중과 시민의 힘은 다른 데서 나와서 국가와 자본의 힘을 극복한다.

그리고 김정한의 논의에서 더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새로운 것은, 시민군의 무장 저항이야말로 무정부적 폭동이나 대항폭력이 아니라 '반폭력'으로 해석가능하다는 것이다. 광주의 시민군들이 스스로 바랐던 것은, 무장 항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평화적인 사태 해결이었으며, 결국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의 조직과 무장은 역사상 그 어떤 민병대의 수준에도 못 미쳤고, '무장'이라는 말을 쓰기에 미안하게 평화적이었다. 그들은 그런 수준에서 자발적으로 총을 들었고 또 내려놓았던 것이다. 시민군은 1980년 5월 26일 저녁에 도청 안에 남은 어린 학생들을 돌려보냈고, 그들 중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총을 내려놓고 싸움의 현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었음은 물론 제대로 된 '군'도 아니었다. 그러나 평화적인 해결은커녕 폭력의 종식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들 시민군이 택한 것은, 굴종이 아니라, 죽음을 통한, 일방적인 숭고한 패배였던 것이다. 패배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숭고한 이념과 평화를 성취했다.

요컨대 전두환 일당의 반란군에 맞서 무장 대결했던, 끝까지 도청에 남아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도덕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고수했던 시민군의 폭력이야말로 '반폭력'이며, 우리가 저항의 폭력 문제를 생각하는 틀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논의에 십분 동감한다. 저자는 대항폭력론과 비폭력론의 한계를 동시에 지양하며, 이를 아렌트, 발리바르, 지젝 등의 철학자들의 논의와 광주의 실제 상황에 비추어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인다. 직접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윤상원(시민군 지도자-인용자)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피를 흘리지 않는 평화적인 수습과 해결이었다. 최후의 항전은 5·18의 평화적인 해결의 길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었다. 시민군은 계엄군의 잔혹한 폭력에 맞서는 극히 어려운 상황과 국면에서도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반폭력 정치의 계기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223쪽)

이어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며, 우리가 광주를 통해 깊이 새겨야할 논리라고 생각된다.

"5.18 광주 항쟁에서 나타난 시민군의 무장투쟁을 정치 혁명 모델과 결합해 재해석한 1980년대 사회운동은 대항폭력을 과도하게 특권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반폭력의 문제 설정은 소실되었다. 오늘날 5.18의 무장투쟁을 재성찰할 때 부각되어야 하는 것은 그 정당성에 대한 반복적인 변호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무장투쟁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항쟁 지도부와 시민군이 필사적으로 견지하려고 했던 반폭력의 정치이다." (224쪽)

대중 봉기에서의 폭력의 변증법은, 비폭력주의나 대항폭력론의 당위적인 문제의식을 넘어서며 동시에 더 나아가야 한다는 데 존재 이유가 있다. 아래로부터의 힘과 윤리로서 역사를 진보하게 하는 대중 봉기의 근원적 원리는, 불가피한 폭력으로써 반폭력/평화를 성취하거나, 비폭력으로 지배의 폭력을 이겨 넘어야 하는 것이다. 양자는 다르고도 같다. 이번 희망버스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대개 대중이나 저항자들이 쓰는 폭력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특히 그 윤리성과 근본적인 '반폭력'성을 말이다.

3.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 문제
 

▲ <오월의 사회과학>(최정운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폭력 문제부터 거론했지만 김정한이 이 책을 통해 성취한 것은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김정한은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 시민군의 주체성 등을 통해 '대중 봉기'라는 개념으로 광주 항쟁을 재정초하고, 최정운의 저 유명한 <오월의 사회과학>(오월의봄 펴냄)이나 조정환의 <공통도시>(갈무리 펴냄) 같은 새로운 광주 항쟁에 대한 해석 담론과 대결한다. 이 논점을 다 다룰 지면의 여유가 없기에,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 문제만 논의하여 서평자로서의 임무를 할까 한다.

이미 김정한의 대중 봉기 개념과 폭력 문제에 대한 책의 큰 논지에 동의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 했지만,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에 관련된 세론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제기하고 싶다. 물론 이 같은 의문은 광주 항쟁에 관한 해석과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며, 특히 그 열흘간의 문화정치는 여전히 더 분석되고 해석될 여지를 갖고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기억은 점점 굳어져가고 또 지워져가고 있지만, 그날의 시민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고, 어떤 시를 쓰고, 무슨 내용이 담긴 삐라를 만들고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더 필요하다. 또 실제로 그런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에 관해 저자는 우선, "대중 봉기에서 대중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투쟁"을 시작하며 "대항 이데올로기는 대중 봉기의 '사후 효과'로서 출현한다는"(76쪽) '연구가설' 하에 광주 시민들이 근거했던 이데올로기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가설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증명'된다. 광주 시민들이 봉기의 전 과정에서 철저히 애국가와 태극기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항쟁의 행동과 과정이 지배 이데올로기(애국주의와 반공주의)를 초과하는 것을 감당하는 데 힘겨워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오히려 계엄군이 태극기를 차량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기도 했다. 이 역설적 상황은 진실로 전두환 일당에 의해 동원된 계엄군이야말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의 역도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광주 시민들 스스로 빨갱이로 몰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심지어 '간첩'이 항쟁에 개입·침투할까 서로 의심하며 전남도청에 조사과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래서 광주 항쟁의 이념적 지향은, 대한민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로부터 출발하여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석된다. 시민들이 봉기 과정에서 추구한 것도 결국은 이상적인 자유민주주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우선 '간첩 침투'를 운운하거나 광주 시민을 '빨갱이'로 매도하고 싶어 하는 극우나 지역 차별주의자들이 새겨봐야 할 항쟁의 진실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해석이 좀 과도한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를 '자유민주주의'로 귀속시키기 어렵고, 저자의 '자유민주주의'의 개념 적용도 그리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한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기능과 용어법의 역사. 이 글에서 자유민주주의(혹은 자유주의)에 관한 이론이나 논쟁을 거론할 여유도 없고 이를 적절히 다룰 능력도 안 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에서는 대중의 지향이나 저항에 대한 시니피앙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2011년에 뉴라이트 학자들 때문에 벌어진 '자유민주주의 논쟁'에서 보수 진영은 '민주주의' 앞에 굳이 '자유'라는 용어를 붙여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이상록이 적절히 해석했다. 그것은 한국 극우·보수 세력이 한편으로 "냉전 시대에 구축되어온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탈냉전 시대의 개념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의도였다. 대한민국에서 사용돼온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의 개념 뒤에는", 분명 냉전의 오랜 그림자와 함께 "자본주의에 복무할 주체의 형상이 놓여있는 것이다."(이상록,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그 불편한 동거에 대하여', <내일을 여는 역사> 46호, 2012년 봄) 또한 문지영 등의 정치학자도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저항의 언어이기보다는 지배의 언어로 더 중요한 기능을 해왔고, 무엇보다도 그 자체가 자본주의와 짝을 이루면서 발전해왔다고 논했다.(문지영, <지배와 저항-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후마니타스 펴냄) 참조)

사실 우리는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를 규정할 자료를 충분히 갖고 있지는 않다. 시민군이나 항쟁의 주체가 한국사회의 성격이나 진로에 대해 어떤 상을 말하지 않았거니와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신군부의 군사 반란과 정권 탈취 기도에 맞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주장하고 싸웠다. 중요한 점은 항쟁의 과정에서 시민과 항쟁 주체의 의식과 행동이 한편 요동하고 성장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의식과 행위의 동학 전체를 냉전과 지배의 언어인 '자유민주주의'로 지칭하거나 귀속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서로를 혹 간첩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유신 체제의 폭압을 겪은 시민들의 레드콤플렉스 앞에서의 공포와 도피마저 '자유민주주의에의 지향'이라 해석한 것은 아무래도 과도하다.

만약 자유주의와 광주 항쟁의 이념이 통한다면, 그것은 저항적·진보적 자유주의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해석해야 할 것 같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사에서 진보적 자유주의가 보여주었던 시민적-정치적 자유에 대한 관심은 서구적·고전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민주적 공화주의적 관점에서만 정당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 관점이지 싶다. (장은주, '한국 진보적 자유주의 전통의 민주적-공화주의적 재구성', 사회와철학연구회, <사회와철학> 23호, 2012년 4월, 이상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김현주, '1960년대의 '자유'와 민주주의/근대화주의'(AKSE 2013 발표문)에서의 정리에 도움을 받은 것임을 밝혀둔다.)

따라서 굳이 하나의 개념으로 말해야 한다면 (저자가 이미 의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광주 항쟁의 이념적 지향을 '시민적 공화주의(정근식)'나 '애국적 공화주의(장은주)'라 규정하는 편이 더 적실해 보인다. 5.18뿐 아니라 대중 봉기 또는 전민 항쟁에 나섰던 한국의 대중은 대체로 공화주의라고 불릴만한 정치적 지향에 근거했던 듯하다. 또한 향후에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대중 봉기는, 애국적 공화주의나 시민적 공화주의에 근거할 가능성이 크다.

(2) 애국가와 태극기라는 봉기에서의 의례·상징의 문제. 저자가 잘 짚은 대로 대중 봉기에서의 의례·상징의 문제(노래와 영웅, 깃발 등으로 표현된다)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언제나 봉기에 나선 대중이 (처음부터) 독자적인 의례와 상징을 가질 수 없으며, 또한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섭돼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1960년 3.15 의거에서 봉기한 마산·부산의 청년학생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6.25 때의 군가인 '전우가'를 불렀다. 4.19의 대중 봉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아, 거리의 군중은 '전우가'와 함께 '해방가', '광복절 노래', 또 '6·25의 노래' 들을 불렀다.(권보드래·천정환,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 펴냄) 참조) 이승만 독재는 '반공'으로 수많은 대중을 학살하고 탄압했는데 왜 '6.25의 노래' 따위를 불렀을까? 그들이 자유민주주의자이거나 반공 전사였기 때문에 이승만 독재와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서 그런 노래를 불렀을까? 아닐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한편 봉기 군중의 문화적 비독립성과 봉기의 '필연적 우연성'을 나타낸다. 아직 그들은 자신들의 노래가 없다! 제대로 된 구호나 깃발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노래들이 봉기의 현장에서 선택되는가? 봉기라는 행위의 성격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대중의 심성을 대변하는 쉽고도 함축적인 노래들이 자생적으로 불릴 것이다. 그런 노래들은 어떤 '터져 나옴'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대중의 정의감과 연대의식을 표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 노래들은 봉기의 근본적인, 존재론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지향을 보여준다. 이 같은 양가적 상황 안에서 봉기의 정치적·윤리적 지향과 합치하지 않는 노래나 상징이 채택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봉기의 문화정치학과 직접 관련되며 앞서 언급한 애국적·시민적 공화주의 문제와도 잘 연관된다. 적어도 '노래'와 관련해서라면 좋은 예가 있다. 2008년에 봉기한 촛불 시민들이 반복해서 불렀던 노래 '헌법 제1조'는 한국의 봉기와 시민적 공화주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알다시피 그 단순하고 간명한 노랫말은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였다. 그것은 한국 공화주의를 다른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잘 압축 요약해놓은 일종의 절대명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조문 중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부분은 노래에서 생략됨)

이 노래는 2008년의 촛불시위가 이명박 정권 하의 국민-주권의 위기 (또는 주권의식의 위기감)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위가 얼마나 문화적·정치적으로 세련된 것이며 시위의 주체가 얼마나 명징한 자기의식을 지닌 대중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정상호가 잘 지적하고 있는 대로, "촛불시위에서 공화주의로의 전환점"이나 공화주의적 의식화가 비로소 마련된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공화 개념의 민주화나 공화국의 전환은 1980년 광주 항쟁과 87년 6월 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두 사건은 헌법 속에서 잠자고 있던 공화주의를 재현시킨 주체들, 즉 적극적이고 민주적인 공화국의 시민을 창출하였기 때문이다." (정상호, ''민주공화국'을 재생시킨 사회운동과 시민참여 - [특집] 대한민국 정부 수립 65주년, 민주공화국을 다시 생각한다', <내일을 여는 역사> 2013년 여름호(통권 51호), 77쪽)

따라서 광주의 시민들이 부르고 싶었던 가사도, 3.15 마산·부산의 청년 학생들이 외치고 싶은 곡도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아주 오래된, 사민주의적 지향도 꽤 강했다던 대한민국 제헌헌법에서부터 명시되어 있는 그 명제 말이다. 광주에서 불린 애국가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나 2008년의 노래 '헌법 제1조'는 다 비슷하게, 지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진정한 민중의 공화국을 꿈꾼다. 봉기의 순간들에 군중 스스로에 의해 감득되는 공화국 주권 의지가 그런 노래를 부르게 만들 것이다.

(3) 결론적으로 김정한의 전제를 약간 수정하고 싶다. '대중 봉기는 지배 이데올로기 내부에서 시작된다'보다는, 대중 봉기는 한편 분명 지배이데올로기 안에서, 그러나 처음부터 그것이 균열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며, 동시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확산·변형하며 대항 이데올로기를 획득한다고 말해야 할 듯하다. 김정한은 이번 책에서 획득의 사후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사후성보다는 대항 이데올로기 획득의 급진성·압축성·비균질성이 더 중요한 듯하다. 그래야 대중 봉기의 이데올로기가 품는 다가성과 변증법이 더 잘 설명되며, 5.18 항쟁 이전부터 이미 반정부 내지 반체제적 운동을 하고 있던 광주의 노동자와 윤상원 등의 운동은 물론, 그리고 5.18 항쟁의 후과도 더 부드럽게 설명되지 않을까 싶다.

4. 나가며
 

▲ 지난해 개봉해 광주를 둘러싼 '기억 논란'에 불을 지폈던 영화 <26년>의 포스터.

33년이 지난 지금, 광주 항쟁에 대한 기억과 해석은 이제 이전과 다른 세대의 주체와 매체에 의해 다시 상상되고 구성되고 있다. 영화 <26년>의 서사와 일베 소동이 보여주듯, 기억과 해석은 후대로 대물림되며 재구성되고 있다. 그러할 때 어떤 민주주의와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말할 것인가, 그 속에 어떻게 광주 항쟁을 기입해 넣을 것인가?

대중문화의 공간에서만 '재해석'이 시도되는 것이 아니라, 근래 광주 항쟁에 관한 학문적 성과도 꽤 여러 편 새로 발표되었다.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으나 연구자들은 '절대공동체'론 등 기존의 유력한 해석에 도전하면서 광주 항쟁의 배경과 항쟁 전후 문화정치의 변화, 시민군과 시민의 주체성 자체, 항쟁의 감성과 이데올로기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같은 흐름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와 '주체의 위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 본다. 이명박-박근혜 10년, 신자유주의 16년(1997년 외환 위기 이후만 헤아려도), 민주 정부의 실패 속에서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사실상 근저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또한 다시 말해 민주 노조운동과 진보 정치의 위기, 보수 정권 10년에 따른 주체의 해체, 또는 저항과 주체 형성의 불가능성, 법(치)과 제도가 인민주권의 원리를 서서히 압도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폭력적 국가에 대한 민의 전면적·급진적 저항이었던 광주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운동이 불가능해지고 주체가 해체돼가는 상황에서, 광주는 이제는 불가능한 전설이거나, 다시 부활시켜야 할 한국 민주주의의 근원성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앞으로도 5.18과 광주를 더 공부하자.

 
 
 

 

/천정환 <1960년을 묻다> 공저자·성균관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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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혁명가의 여정

어느 혁명가의 여정<하>
 
무자비한 권력자가 아닌 인간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했던 인간
 
김종익 | 2013-08-10 07:52: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차베스를 ‘정치 군인’ 정도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에 조금이나마 차베스를 이해하는, 그래서 인간 해방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한 혁명가의 삶을 이해했으면 합니다. 무자비한 권력자가 아닌 인간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했던 인간, 그 모습이 미래의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필자 주

 

 

 

정치에 무관심했던 학생 시절

1966년, 국립 고등학교에 입학을 허가받은 젊은 우고는 고향인 사바네타를 떠나 바리나스주州의 주도州都 바리나스로 이주한다. 당시는 베트남 전쟁이 신문의 첫 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체 게바라가 머지않아 볼리비아에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베네수엘라에서는 1958년에 민주제가 회복되었지만 게릴라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수많은 젊은이가 무장 투쟁에 참가했다. 그런데 젊은 차베스는 당시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지치지 않고 정열을 기우렸던 세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공부, 야구, 여자이다.

국립 고등학교에서는 차베스는 특히 물리, 수학, 화학 등 이과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었으며, 자신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보충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정치단체가 우고를 가입시키려고 심하게 경쟁하였고, 형인 아단은 극좌단체의 활동가가 되었지만, 우고는 야구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왼손 투수로 가공할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 신문은 우고의 스포츠 재능을 상찬하는 것과 함께 개인적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점도 보도했다. 그는 이 국립 고등학교 시절에 개성을 확립했다.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졌고, 웅변이며, 유머에 재능이 있어, 어떤 장소에서든 긴장을 하지 않았던 그는 <타고난 리더>라고 불릴 만한 학생이 되었다. 성적도 반에서 1등이며, 스포츠도 잘하는 두드러진 학생이었다.

우고는 프로 야구 선수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카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자, 군사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다. 1971년에 시험에 합격하여 수도인 카라카스로 가게 되었다. 멀리 떨어진 지방의 주에서 온 촌놈인 그의 눈으로 보면, 카라카스는 미래 도시 같아서 현기증이 나는 도시였다.

군사 아카데미에서의 정치 세례

군사적인 사례는 바로 우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야구는 잊고 군사에 관한 공부에 열중했다. 당시는 마침 군사에 관한 공부 시스템이 변경되었던 시기였다. 군사 아카데미로의 진학 허가 대상이 고등학교 졸업에서 대학 졸업으로 바뀌고, 교수진도 일신되었다. 당국은 부대를 지휘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고 “성적이 뛰어나지 않다”고 판단된 장교, 또는 “보다 진보적”이라고 판단된 장교를 교원으로 선발하여 미래의 장교를 양성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1958년, 독재자 마르크스 페레스 히메네스가 타도된 이후, 주요한 정당인 민주행동당(AD)과 기독교사회당(COPEI)은 「푼토피호 협약베네수엘라 북서부 팔콘 주 북부에 있는 도시.」이라는 합의를 기초로 제휴를 도모하여, 교대로 권력을 공유했다. 부패는 나라를 괴사시키고 있었다. 1962년에는 푸에르토 카바죠와 칼파노에서 극좌조직과 제휴한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다른 군인들은 산악 지대에서 다양한 게릴라 활동에 참가했다. 억압은 무시무시했다. 즉결 처형, 고문, 그리고 <실종>. 미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들의 존재는 단순히 석유 채굴 현장만이 아닌 군참모본부 안에도 우굴 거렸다. CIA는 많은 첩보 요원을 파견하여 반란자의 추적을 도왔다.

차베스는 군사 아카데미에서 받은 이론적 수업을 문자 그대로 무조건 받아들였다.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인 에세키에르 사모라 연구의 전문가였던 페레스 알카이스 장군은 차베스에게 「볼리바르주의란 우엇인가」를 가르쳤다. 차베스는 볼리바르의 저작 전체를 읽고 암송했다. 그것에 의해 지도상의 각 전쟁터에서 볼리바르가 채용했던 전략의 상세한 내용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볼리바르 百科全書的 교사였던 시몬 로드리게스도 모두 읽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바의 <세 개의 근원>, 즉 로드리게스, 볼리바르, 사모라의 테제를 곧이어 발전시키게 된다.

이 세 명의 베네수엘라 사람이 저자인 정치적 교과서 속에서 차베스는 독립과 주권이라는 테제를 끌어냈다. 바로 사회 정의에 관한 테제, 포섭에 관한 테제, 평등의 테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에 관한 테제이다. 이것들은 나중에 차베스의 정치적 ․ 사회적 프로젝트의 주요한 지주가 된다.

차베스는 두뇌가 뛰어나고, 특히 이과계에 강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발군의 기억력으로 입학 후 바로 최우수 학생의 한 사람으로 사관후보생의 리더가 되었다. 마르크스, 레닌, 안토니오 그람시, 프란츠 파농, 체 게바라 등을 몰래 읽고 있었다.

<민 - 군 연합>에 의한 공화제의 재건으로

군사 아카데미의 외부 세계에서 차베스는 다종다양한 극좌 정치 서클을 빈번하게 오가며, 베네수엘라 공산당(PCV), 카우사R, 혁명좌익운동(MIR), 사회주의운동당(MAS) 등 정당의 리더들과 은밀하게 만나고 있었다. 거기에서도 또 각 정당은 차베스를 자신들의 정당에 입당하라고 유혹했다. 군부를 꾀어낸다고 하는 침투 공작은 베네수엘라 좌익이 가진 전통적인 야심이다.

베네수엘라 군에 의한 반란에 관하여 공부를 마친 후, 차베스는 언제나 변함없는 빈곤을 근절하기 위해 권력을 탈취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우익 군사 독재라는 <고릴라주의>로의 일탈을 피하는 유일한 수단은 군과 좌익 정당과 동맹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점도 확신했다. 이 사고 방식이 바로 차베스의 행동을 함께 한 이념이 되었다. 바로 <민 - 군 연합>이다.

차베스는 라틴아메리카의 좌익 혁명적 군사 정권의 경험에 경도되었다. 특히 과테말라의 하코보 알벤스, 볼리비아의 후안 호세 토레스, 파나마의 오마르 토리호스, 페루의 후안 베라스코(알바라이드)와 같은 사람들의 경험을 배웠다.

예를 들면 1974년 연수 여행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를 방문했을 때, 알바라이드와 면회하고, 아주 깊은 인상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5후인 1999년, 차베스는 권력을 탈취하여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헌법」을 편찬하게 되었을 때, 알바라이드의 「푸른색의 작은 책자」와 동일한 형식으로 하도록 지시했다.

정치 문화를 배워서 익힐 수 없는 군사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4년 후인 1975년 21세 때 차베스는 아카데미를 졸업한다. 그는 머릿속에 단 한 가지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졸업했다. 바로 부패한 체제를 타도하여 공화제를 재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25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달리 말하면, 군대 내부에서 조용한 음모를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번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1989년에 일어났던 신자유주의의 쇼크 치료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중 반란(카라카소), 1994년 군대에 의한 반란의 실패, 2년간의 옥중 생활, 1994년에 피델 카스트로와의 만남.

1994년 이후, 선거에 의한 차베스의 승리는 확실한 것이 되었고, 1998년에 그는 대통령에 입후보했다. 차베스는 빅토르 위고를 인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고란 「때가 왔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Ignacio Ramonet
1943. 5월생. 스페인 가리시아 주 레돈티라 출신. 프랑스 저널리스트로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전 편집 총책임자. 시민단체 「ATTAC Association for the Taxation of Financial Transaction for the Aid of Citizens. 토빈세 실현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단체」 창설자.

어느 혁명가의 여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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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소녀'는 왜 5년만에 달라졌나

[나는 분노한다 20] 야당의 무능함에 실망...과거회귀 불안감도 공존

13.08.10 11:57l최종 업데이트 13.08.10 11: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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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청소년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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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쇠고기, MB 너나 드세요."

5년 전 고3 때, 내가 촛불집회에서 들었던 플래카드 내용이다. 당시 광우병 미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전국적으로 촛불 시위가 일어났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점심시간에 관련 플래카드를 만들었고,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면 야자(야간 자율학습) 수업은 빼먹고 부산 서면 시위 현장으로 나가기를 반복하며 그 해 여름을 보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5년 전의 기억

처음에는 친구들과 가면을 만들고 촛불집회에 나가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차츰 집회에 참여하며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어른들은 고등학생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줬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공부 안 하고 시위하러 다니는 나 때문에 부모님은 걱정을 하셨지만, 한편으론 소신껏 행동한다고 기특해 하셨다.

물론 기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소 가면을 들고 교문 밖을 나가던 중에 학교 주임 선생님께 걸리면 교무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호된 질책을 받아야만 했다. 교육청에서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고교생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했다. 야자 빼먹는 것도 죄였지만,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건 더한 죄였다.

"야, 꼴통. 닌 커서 뭐가 될라꼬 그라노. 으잉?"
"신문기자 할 건데요."
"니 그라다가 좋은 대학 못 가면 기자고 뭐고 없데이."

그로부터 5년 뒤, 선생님 말씀대로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건가 좋은 대학에 못 갔다. 현재 백수다. 촛불과는 멀어졌지만 취업 준비와 가깝게 지내는 중이다. 지금도 기자가 꿈이라 시사 이슈는 항상 가까이 두고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의 하루는 '국정원'으로 시작해서, '국정원'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구독하고 있는 <한겨레>를 펼치면 1면부터 국정원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1면 톱이 아니더라도 대개 국정원 관련 기사가 꼭 있다. 필사할만한 칼럼을 찾아보면 또 국정원 이야기다. 7월 한 달 동안 필사한 칼럼 절반이 국정원에 대한 글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잠 자기 전에 듣는 시사 팟캐스트가 남아 있다(내가 주로 듣는 건 <오마이뉴스> 팝캐스트 '김종배의 이슈 털어주는 남자'다). 여기에도 국정원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루종일 국정원을 잡고 사는데도 아직 촛불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책상에만 앉아 있을 뿐이다. 집회가 있을 때면 놀러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했던 내가 변한 것일까? 동네 아줌마들한테도 촛불을 건네며 시위 동참을 권하던 내가 말이다. 고등학교 선생님 말씀대로 이제야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우리는 더 화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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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광장 가득 메운 촛불시민 7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진상규명 촛불문화제'에 수많은 참가자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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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대선부터 이야기가 나온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책을 반복하는 민주당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피로감은 더 쌓인다. 대선 패배 뒤에도 민주당은 그대로였다. 야성을 잃은 무능한 야당에 불과했다. 그 사이 새누리당은 NLL과 대선 불복을 무기로 삼아 역공에 나섰고, 오히려 새누리당의 공격이 사건을 속속들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먹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60%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이를 잘 보여준다.

조중동 등 보수신문은 물론이고, 공중파 방송사들조차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보다는 '물타기' 보도를 하거나 촛불집회에 수만명이 모여도 뉴스로 다루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에 분노했던 나도 점점 지치고 화가 났던 것 같다. 민주당의 무능함은 곧 나의 무능함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상황에서 촛불을 든다 해도 뭐가 바뀔 게 있을까 싶었다.

"아저씨. 요새도 손님들 정치 얘기 많이 해요?"
"많이 하죠."
"국정원 말 많던데. 어때요?"
"그게 우리랑 상관이 있나."

나는 택시기사 아저씨랑 대화 나누는 걸 즐긴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세상 이야기에 밝다. (새누리당 지지가 강한 부산인 점을 감안해도)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슈화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사는 일에도 바쁜데 국정원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둘까. 언론의 보도가 2008년과 상당한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때보다 뜨겁지 않다.

사람들의 관심이 꺼져가고 있는 동안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작업으로 의심 받는 글들은 지워지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유신헌법 초안을 만들었고 1992년 민자당 김영삼 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 기관장이 모인 '초원복집' 사건의 장본인인 김기춘 전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지난 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3만여 명의 시민이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에 참가해 촛불을 들었다. 깨어있는 시민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30-40년 전으로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일은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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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0만 촛불집회'의 함성에 눈물이 납니다.


 

 

 


8월10일 오늘,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혜 의혹규명을 위한 10만 국민촛불대회가 서울광장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장외투쟁을 하는 민주당은 이날 오후 5시30분 서울광장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촉구 2차 국민보고 대회를 대대적으로 진행한 뒤 이어서 국민촛불대회에 대거 동참할 예정입니다.

민주당과 시민들이 오늘 서울광장에 모인다고 하자, 새누리당은 갑자기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국민과 민주당을 분열하는 발언을 앞다퉈 내놓았습니다.

황우여 대표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우선 더 이상 ‘장외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의원이 의회 밖 거리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일은 조심해야 하겠다. (중략)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면 입법을 해서라도 마련되어야겠다."고 말하면서 장외투쟁 금지법까지 만들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칩니다.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국정원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대선 불복에 동참하는 것으로서 삼류국가에나 볼 수 있는 거리집회에 안타까움 금할 수 없다"면서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촛불집회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난날에 했던 장외투쟁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히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장외투쟁을 삼류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허접한 짓으로 추락시켰으니..

새누리당의 촛불집회 비판의 근거는 굉장히 뻔뻔하거나 기억이 좋지 않거나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촛불집회를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 국정원 대선개입, 이제 모든 국민이 눈치챘다'

처음에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국민은 그저 민주당의 정치적 폭로 수준으로 생각했습니다. 철저한 언론의 통제와 왜곡 속에 국민은 별거 아닌 사건으로 생각했지만, 이제 점점 국정원 사건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겨레가 6월 22일에 조사한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 여론>을 보면 응답자의 58.3%가 '국가기관이 불법선거에 관여한 국기문란'이라고 했으며, 78.4%가 국회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대선 전후에 가졌던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 국기문란의 엄청난 범죄라는 인식을 국민이 하게 됐고,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방해에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지지하는 결과까지 나오게 됐습니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숱하게 국정원 사건은 그저 국정원 직원들의 개인적인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댓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계속 터져 나오는 증거로 국민들이 더는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 부정선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사건의 국정조사를 방해했던 가장 큰 이유는 국정원 사건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국민이 알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사흘 앞두고 박근혜 후보에게 뒤처지던 문재인 후보는 그녀와의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16일 대선 후보 마지막 TV토론이 있고 난 후 벌어진 경찰의 댓글 흔적 없었다는 수사 보고 발표는 단숨에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을 추락시킵니다.

세상 어느 선거 전문가를 데려다가 놓아도, 그날 경찰의 수사발표가 18대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변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날 경찰의 수사발표가 허위였으며, 새누리당과 연계한 조직적인 사전 계획이었다면 이것은 명백한 부정선거가 됩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아니라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

새누리당은 부정선거였다는 진실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국정조사를 방해했습니다. 점점 국민이 그런 사실을 눈치채고 촛불을 듭니다.

이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로 자신이 대선 기간에 그토록 주장했던 국정원 사건 왜곡에 대한 사과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공채 요원이였던 김아영은 공수훈련,특공무술,해양훈련,지리산 종주훈련 등의 비밀요원으로의 훈련을 마친 정예 요원이었습니다. 그런 여성이 무서워 밖에 못 나왔다는 말은 고도의 범죄 은폐 기술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히 그녀를 보호했으며, 그녀의 범죄사실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수를 한다면 선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러나는 범죄의 증거로 자백한다면 범죄자에게는 무거운 형량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히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인지했고, (만약 그 사건의 진실을 몰랐다면 당당히 사과하고 관련자를 처벌했어야 한다) 대선에 이용했으며, 범죄를 철저히 은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범죄를 꽁꽁 숨기고 진실을 알기 원하는 국민을 막기 위한 작업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국정원 사건의 본질은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훼손한 중대 범죄입니다. 이제는 범죄자의 자백이 아닌 처벌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국민은 그 범죄를 파헤치기 위해 오늘 10만 촛불집회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전국 10만 촛불집회의 함성을 기다리며

이제 몇 시간 후면 서울광장을 비롯해 인천,성남,수원,홍천,청주,아산,서산,공주,대선,울진,진주,대구,광주,부산,제주 등 전국에서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수만 개의 촛불이 켜질 것입니다.

처음 국정원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켜졌던 촛불은 불과 수십 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수만의 촛불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외면'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오로지 진실을 찾기 위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실을 위한 간곡한 외침은 언론, 청와대,새누리당의 방해공작에 밀려 '대선불복'이라는 엉뚱한 단어로 팽개쳐졌습니다.

범죄자를 발견하고, 그 범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어떻게 '불복'이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까?. 처벌해야 할 대상은 범죄자이지, 그 범죄자를 발견하고 소리치는 시민이 아닙니다.

범죄 때문에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가 짓밟혀졌다는 외침은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국민은 끝까지 목이 터져라 외쳤고, 수백 개의 시민단체와 교수,지식인,언론인들은 물론이고 제1야당인 민주당도 함께 촛불을 들기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요구해야 하는 것은 '범죄자는 처벌', '민주주의의 파괴는 민주주의 회복'입니다.

수만의 촛불을 든 우리는 지금 미래를 바꾸려는 출발선에 있습니다. 가는 길이 비록 험하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가려고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꽃을 소중히 간직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이고,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밑거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함성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해줍니다. 국민의 함성을 무시하고 막았던 자들을 결코 역사가 용서치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든 촛불은 단순한 촛불이 아닙니다. 불의 앞에 나라를 지키고자 당당히 섰던 진정한 애국자들의 뜨거운 열정이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주는 횃불입니다.

지금 이 자리가 고통스럽습니다.덥고 힘들면서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너무 견고하고 철옹성이기 때문입니다.

옆 사람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시기 바랍니다. 혼자서는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촛불을 든 옆 사람과 함께 소리친다면, 작은 목소리는 함성으로 바뀌고 대한민국의 모든 불의와 범죄를 날려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함성을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나고 우리 아이들이 촛불을 든 여러분을 이렇게 말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주의 이념보다 더 뜨겁게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우리의 자유와 행복, 민주주의를 지켜주려고 용감하게 촛불을 든 아빠,엄마가 자랑스럽습니다.'

-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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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림승마장 상암 축구장 91배 시설은?

김정은원수 미림승마장 방문 "근로자 청소년 이용" 강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8/10 [05:1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지난 2012년 11월 김정은 원수는 조선인민군 534 기마부대를 찾아 근로자와 청소년들이 이용 할 수 있는 승마장으로 꾸릴 것을 제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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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원수가 개건 건설되고 있는 미림승마구락부 건설장을 현지 요해하면서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의 이용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원수가 미림승마구락부 건설장을 돌아보았다며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군인 건설자들의 힘찬 투쟁에 의하여 승마구락부건설에서는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이 “연건축면적이 4만 4,200여㎡에 달하는 실내승마훈련장, 승마학교, 봉사건물, 마사를 비롯한 건축물골조공사가 끝나고 지붕 씌우기에 들어갔으며 62만 7,000여㎡의 넓은 부지면적에 꾸려지는 잔디주로, 토사주로, 산보도로, 인공못, 인공산 등 종합적이고 현대적인 승마봉사기지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혀 규모와 시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신문은 김정은 원수가 “미림승마구락부를 일떠세우면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이 여기에 와서 승마운동을 하면서 노동과 국방에 이바지할 수 있는 건전한 정신과 튼튼한 체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김정은 원수가 “미림승마구락부건설은 어버이장군님의 영도업적을 빛내고 우리 인민들이 보다 문명한 생활을 누리게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승마구락부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잘 꾸리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을 제시했다.”며 “미림승마구락부에 깃든 어버이장군님의 영도업적을 길이 전하는 사적물 보존실을 잘 꾸리고 실내승마 훈련장, 승마학교, 봉사 건물 등 건축물들을 먼 훗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게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김정은 원수는 건설 과정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말 타기에 편리하게 잔디 및 토사주로를 잘 닦으며 실내승마훈련장에 톱밥 같은 것을 두툼하게 깔아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야외에 원형승마훈련장을 더 건설하고 토사주로에서 말을 탈 때 먼지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승마주로 곳곳에 사람들이 말에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시설물들도 설치해주어야 한다. 승마운동을 하고나서 피로를 풀 수 있게 현대적인 기능회복시설을 꾸려주어야 한다.”고 시설정형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어 “미림승마구락부운영에 필요한 좋은 말들을 보내주겠다”고면서 “말 관리를 잘하고 말 마리수를 늘이자면 이곳에 수의병원과 종축연구소를 건설하여야 한다. 미림승마구락부를 공원화, 식물원화하자는 것이 당의 의도이니 만큼 주로를 따라 생 울타리를 규모 있게 조성하고 건물주변과 인공산에 여러 가지 품종의 장미와 수종이 좋은 나무들을 심어야 한다.”주변 관리 조성에 대해 발언했다.

아울러 “미림승마구락부건설을 다그치는 것과 함께 승마구락부운영을 잘하기 위한 대책도 예견성 있게 세워야 한다”며 “그러자면 승마구락부운영단위를 바로 정하고 승마협회를 조직하며 관리운영에 필요한 운수기재들과 잔디깎는기계, 물차 등을 갖추어주기 위한 사업을 짜고 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중앙통신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미림승마구락부는 우리 당이 인민들에게 안겨주는 선물이라고 하시면서 군인 건설자들과 해당 부문의 일군들이 당 창건 68돐(10월 10일)까지 승마구락부를 훌륭히 일떠세우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시였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림승마 구락부는 조선인민군 534 기마부대의 훈련 장소였으나 김정은 원수의 발기로 노동자들과 청소년들이 이용 할 수 있는 승마장으로 개건 되고 있다.
 
▲ 대단위 시설로 건설되고 있는 문수물놀이장. ©

▲ 문수놀이장은 종합적이 휴양지로 4철 이용 할 수있다고 조선의 언론들이 전했다. ©

조선중앙통신은 같은 날 김정은 원수가 새로 건설 되고 있는 문수물놀이장(워터파크)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야외 및 실내 물놀이장, 각종 체육시설들로 이루어지게 되는 문수물놀이장은 사철 우리 인민들과 청소년학생들이 즐겨 찾게 될 특색 있으면서도 규모가 대단히 큰 세계적수준의 종합적인 물놀이장이라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엘도라도식으로 꾸려지고 있는 실내물놀이장의 수영장과 어린이수조, 덕수수조를 비롯한 각종 물놀이수조, 한증탕, 샤워실, 식당,편의 봉사시설들을 하나하나 보시면서 건설자들이 기술지도서의 요구대로 시공규정을 잘 지키고 있는데 대하여 치하하시였다.”면서 “실내물놀이장의 2층에 오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파도수조,초음파수조,물결파도식미끄럼대수조,관성렬차식물미끄럼대수조 등 최신식물놀이수조들이 꾸려지는 야외물놀이장을 부감하시면서 건설이 완공되여 현대적인 물놀이유희설비들까지 갖추어지게 되면 정말 멋있을 것이라고, 희한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전했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원수가 “실내물 놀이장 건물 만장에는 배구장과 배드민톤장, 농구장이 설치되고 야외물놀이장주변에 롤러스케이트장, 모래터 배구장 등 체육유희시설들이 건설되는 문수물놀이장은 다기능적인 체육봉사시설”이라고 말했다고 밝혀 문수놀이장이 종합적인 물놀이장임을 시사했다.

김정은 원수는 “앞으로 문수물놀이장을 찾는 인민들과 청소년학생들로 하여 이곳은 사람천지가 될 것”이라며 “지열보장대책을 세움으로써 전력소비량을 극력 줄일 수 있도록 물놀이장 건설을 하고 있다”치하했다.

함편 문수놀이장 건설도 미림승마구락부와 같은 시기인 10월 10일 당창건 김념일까지 건설할 것을 당부했다고 언론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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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과 함께 떠난 청전 스님의 우여곡절 라닥 의료봉사길

신부님과 함께 떠난 청전 스님의 우여곡절 라닥 의료봉사길

 
청전 스님 2013. 08. 09
조회수 29추천수 0
 

 

 

<신부님과 동행한 라닥 의료 봉사의 길 ①>

 

필자에게 여름이 오면 연례적인 길을 해마다 꼭 걷는 곳이 있다. 히말라야 오지 중의 오지인 인도 북부 라닥 지방에 들어가는 일이다. 문명의 혜택이 없는 곰빠(절)와 계곡 마을을 위한 의료 봉사의 길이다. 단순한 진료가 아닌 별의 별 약품부터 돋보기안경, 보청기, 학용품이나 옷가지까지 문명의 이기물인 생필품을 나른다. 이 세세한 물품은 근 일 년 동안 준비하는 소중한 것들이기도 하다. 아는 지인으로부터나 멀고먼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많은 약품을 공수 받는다. 안면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서도 연락이 되어 갖가지를 받는다.

 

라닥 지방은 고지대라서 여름 입구에서야 긴긴 겨울 속에서 잠이 깬 높은 고개가 하나씩 하나씩 열린다.

함께 길을 갈 대원은 이미 한해 전에 이미 결정이 난다. 올 해는 세분이 지원하여 각자 개인적으로 출발 며칠 전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교수 한명과 재가 불자 한명, 그리고 멀리 빠리에서 유학중인 한 스님이다. 항상 인원 제한을 하는데 인도산 찌프차에 정원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많은 짐 때문이다. 며칠간 심사숙고 끝에 지역별로 나눈 짐이 대형 큰 가방으로 일곱 개나 된다. 거기에 최소한의 개인 짐이며 약간의 취사도구와 먹 꺼리가 딸린다. 탑승 인원은 운전수 포함 다섯이니 늘 비좁기만 하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한 달이 넘는 험한 고난도 봉사 활동기간이라서 집 떠난 뒤 마음가짐도 예사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 출발 전전날 이른 아침에 뜬금없는 전화벨 소리다. 뜻밖의 방문객으로 지금 막 델리에서 밤 버스로 올라와 다람쌀라에 도착 했단다. 좀 어설프고 꾀죄죄하게 도착한 두 분은 카톨릭 수사 신부님이다. 지금 네팔에서 에베레스트며 마나슬루까지 트레킹 마치고 올라오신다는 두 신부님, 안식년을 맞아 이리 오게 되었단다. 좀 나이 들어 보이는 신부님은 첫 말씀이 이색적이다. “저는 밥돌이 신부여요.”라는 말씀, 알고 보니 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 매일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하신단다. 일이 바빠 30년 만에 첨 얻은 안식년이란다. 사실 다른 한 신부님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신부님으로 얼마 전 휴심정란에 글을 쓰게 된 장본인으로써 바로 이 신부님께 양고기 조리법을 전수한 신부님이기도 하다. 두 분 다 수도원장을 엮임 한 것으로 안다.

 

 

<<라닥의 첫번째 관문 조지라 패쓰(Zoji La Pass):3650m>> --- 이 고개 넘다가 흔히 조질수가 있음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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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못된 습관 중 하나가 함께 할 사람 만나면 으레 따짐성 질문하나가 바로 병역 사항이다. 이유는 이것을 빌미로 기선제압을 위한 질문인 것이다. 만일 방위나 병역면제 또는 장교 전역이라면 끝까지 그걸 꼬투리로 말끝마다에 되받아 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의료봉사 길에서도 교수님과 스님은 장교 전역자이니 필자가 정한 함정에 늘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함께 들어오신 노신부님을 첨 뵙기도 하지만 한 달이 넘는 험한 노정에서 안내 및 총괄 책임자인 필자로서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일 일도 많아 예전처럼 신부님은 군에 다녀오셨는지를 물었다. 근 칠십 줄 연배에 당연히 군에는 안 갔을 거라는 짐작에서다. 그런데 뜻밖의 말씀이란 게 강원도 최전방 보병 7사단 3연대에서 3년 동안 기관총 사수로 근무했다니!!! 아니 그러면 내 직속 최 고참병이 아닌가. 필자도 7사단에서 3년간 막말로 뺑이치다가 전역했기 때문이다. 바로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충성! 썬배님! 이번 길에 최선을 다해 정성껏 모시지라, 지도 같은 사단이었걸랑요.” 속으로는 “아이고 인제 나 죽었네.”를 뇌이며.............

 

 

<<고개를 넘자마자 만난 양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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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 의료봉사 길의 장도에 함께 하기로 결정을 했다. 문제는 그 좁은 찌프차에 이 많은 인원이며 짐을 어찌 탑재할 것인가이다. 짐칸을 따로 긴급으로 방법을 만들어야했으니, 바로 인도식인 차량 위에 철제 구조물을 만들기로 했다. 이 차에 첨 붙여보는 구조물이다. 그래도 인원과 짐이 많아 우선 두 신부님이 사흘거리인 카길(Kagil)까지는 먼저 가서 기다리는 각개 약진을 하기로 했다. 그 지점에서는 라닥 수도인 레(Leh)와 쟌스카(Zanskar)로 길이 나뉜다. 약 보따리 네 개는 따로 빼내어 아는 가게에 맡겨두고, 그 빈 자리에 두 신부님이 탑승할 비좁은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쟌스카 일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에 그 짐을 다시 실으면 되는 것이다. 카길 중심 마당에 자리한 제법 큰 호텔을 접선장소로, 어느 날과 시간까지도 정확히 오후 몇 시로 정해뒀고, 두 신부님은 오자마자 다시 길을 떠나도록 했다. 무슨 전시 작전이라도 된 듯 그런 기분으로 헤어졌다. 그리고는 만에 하나 인도 땅에서 변수가 생겨 일이 그르칠 수도 있음을 가만하여 사건이 발생하면 전화하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떠난 다음날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라니, 잠무(Jammu)발 스리나가르(Srinagar)행 밤 버스가 가다가 되돌아왔다며 어찌 할 건가를 묻는데 출발부터 한심하다. 저녁 내내 뜬 눈으로 버스 안에 갇혀있었다니. 우기 철답게 길에 큰 산사태가 나서 모든 운행 차량이 원위치 했다는 보고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카길의 약속한 장소에서 날짜와 시간에 만나야 됨을 명령하다시피 했다. 이미 곳곳의 곰빠와 마을 주민들에 우리 도착 일정이며 세세한 의료 진료계획을 전달했기에 하루만 늦어도 일은 낭패를 당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서너 시간 후에 연락이 오는데 소형차로만 산사태를 통과할 길이 열렸다며 택시 한 대로 인도인과 동행하는 방법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는 전갈이다. 휴우! 우선 다행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나이가 있는 두 신부님의 철야 뜬눈의 하룻밤이 걱정이 된다. 전화를 받고서 같은 길을 달려야하는 우리 차도 긴장 속에서 일단 떠나고 봐야 했다. 그리고 문제는 서로 간에 연락이 두절되는 게 인도방식의 전화 연결 씨스템인데 그 주에서는 그곳만의 전화기 심카드를 써야 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 영감들이 거리에 주저앉아 담소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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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그날 그 시간 그 지점에 가야한다는 압박감이 사흘 길 내내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첫 관문이라 할 조지라 패쓰(3650m)를 무사히 넘었는데 빠리의 스님은 완전 겁을 먹는다. 허긴 포장이 되어있나 길가에 난간이 있나 그저 산사태 안 만나고 넘기만 해도 감지덕지한 인도판 히말라야 천 길 낭떠러지 고갯길인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길을 수없이 넘어야함을 모르는 유럽판 선진국 길과는 너무나 차이나는 소름끼치는 길이기도 하겠지.

 

 

<<이런 멋진 계곡을 통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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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카길의 시장터, 맡겨둘 짐을 안면 있는 가게에 내리면서 일행 중 한 사람을 약속한 호텔에 나가 보라하니 그 약속된 호텔에 한국인이 머물지 않았다며 그냥 돌아온다. 시간이 좀 일러서 일거라며 다시 가 보라 했다. 분명 그 시간대에 나타나실 거라 믿었는바 비록 그 예정된 호텔에 묵지 않았다 해도 근처 값이 싼 다른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예정된 호텔은 제법 큰 호텔이기에 장기간 여행자로써는 선뜩 맘이 내키지 않을 그런 비싼 호텔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조금 후에 함께 나타나는 밝은 모습의 세 사람, 예상대로 방값이 너무 비싸 다른 여관에 묵다가 시간에 맞춰 나왔다는 것이다. 상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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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사들 북 서방언론 선전과 완전 달라

외국인사들 북 서방언론 선전과 완전 달라
 
러시아 프랑스 인사 언론 인터뷰 통해 북실상 소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8/09 [08:5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의 최근 살림집 까지 조명을 켜 놓은 야경은 긴장했던 전력난이 풀렸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
조선은 프랑스와 러시아 인사들이 북은 서방 언론들의 선전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밝힌 소식을 전했다.

조선 관영 언론인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와 프랑스의 인사들이 “조선인민의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 경축행사에 참가했던 내용의 조선방문소감을 피력하였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연방 공산당대표단 단장인 당중앙위원회 비서이며 북부 오쎄찌야공화국위원회 제1비서인 카즈베크 따이싸예브는 7월 29일 기자회견에서 “조선은 아름다운 나라이며 서방언론들의 선전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다. 조선은 급속히 발전하는 자체의 경제를 가지고 있다.”며 “주체사상탑의 전망대에 올라 아름다운 평양의 모습을 보며 조선에 대한 명백한 표상을 가질 수 있었다. 브르조아 선전 수단들이 비방 중상 해 온 영웅적조선인민의 전취물과 성과들은 결코 숨기거나 왜곡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신문은 “프랑스의 France 24TV방송 기자 나딸리 뚜레는 지난 1일 본방송과의 좌담회에서 ”조선은 전승절(정전협정일)을 성대히 경축하였다. 경축행사들은 김정은 영도자에 대한 군민의 무한한 충실성과 단결력을 과시하였다“면서 ”이르는 곳마다 푸른 잔디가 펼쳐진 평양의 모습은 참으로 새로 왔다. 지난해에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하고 올해에 제3차 지하 핵 시험을 진행한데 기초하여 조선은 미국과 동등한 지위에서 대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고 게재했다.

한편 조선을 방문한 해외동포들과 남측인사들은 최근 전변되고 있다고 전해 평양을 비롯한 북전역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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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십 명 죽는 KT, 이대로 가면 더 많이 죽는다"

[인터뷰] KT 사기 의혹 폭로 후 해고된 이해관 새노조 위원장

김덕련 기자,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09 오전 7:30:34

 

 

KT의 국제전화 사기 논란이 불거진 지 2년이다. 2011년 KT 새노조 이해관 위원장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들은, KT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 투표 시스템을 제공하며 '무늬만 국제전화'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는 뉴세븐원더스(N7W)라는 한 해외 민간 단체가 주도한 이 이벤트에 제주도를 선정시키고자 온 나라가 법석을 피우던 때였다. 청와대까지 직접 나서 제주도 선정에 열을 올렸던 만큼, 의혹이 제기된 후 파장은 적지 않았다.

논란 끝에 지난 1월 방송통신위원회는 KT가 국제전화 관련 규정인 전기통신번호관리세칙 및 전기통신사업법 제48조 3항을 위반했다며 과태료 350만 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국제전화 사기 의혹을 처음 폭로한 이해관 위원장은 정작 일자리를 잃고 7개월 넘게 해고자 신세다.

해고에 앞서 KT는 이 위원장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도 3시간 11분이 걸리는 경기도 가평으로 전보 조치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 신고에 대한 보복 조치로, KT가 공익신고자보호법 15조 불이익 금지 조치를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해석했다. 동시에 출퇴근이 용이한 근거리 근무지로 이 위원장을 다시 전보 조치하라고 KT에 요구했다.

KT는 권익위 결정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5월 법원은 "방통위가 내세운 전기통신사업법은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서 규정하는 법률 180개에 속하지 않으므로 해당 신고는 공익 신고가 아니다"란 KT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 침해 행위 대상 법률로 농산물품질관리법, 식품위생법 등 180개만 한정하고 있다.

이해관 위원장은 1일 <프레시안>과 만나 "이해할 수 없는 법 논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공익 제보자 보호 대상자로) 안 해주고 싶었던 거다. 안 해줄 수 있는 논리를 찾으려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나온 법 논리가 '180개 법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공익 제보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에선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한 공익 제보라면, 비록 이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제보자를 보호해준다"며 "그런데 한국에선 제보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문제가 180개 법안에 속하지 않으면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사회의 기본적인 상식에 반하는 판단을 법원이 내렸다"고 비판했다.
 

▲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 이 위원장은 재작년 뉴세븐원더스(N7W)재단이 주도한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에서 KT가 국제전화 사기를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이 위원장은 집에서 편도 3시간 11분 거리로 전보 조치됐고 급기야 지난해 12월 28일 해고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인생 병드는 내부 고발자들

공익 제보 이후 혹독한 대가를 치른 이 위원장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법원에서 해고 등의 조치를 정당한 것으로 판정했다고 했다.

그 배경에 대해 이 위원장은 "바보가 아닌 이상, KT와 마찬가지로 (제보 대상자들이) '이 사람이 공익 신고를 했다'는 이유를 대놓고 얘기하며 해고하지는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건수를 트집 잡아 보복 조치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해관 위원장의 경우, 무단 결근 및 무단 조퇴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28일 해고됐다. 지병인 허리 디스크 치료를 위해 진단서까지 제출했으나 회사는 제때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무단 결근 처리를 했다. 또 한국투명성기구의 투명사회상 등을 수상하기 위해 결근을 사전에 고지했지만, 해당 수상은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므로 허락할 수 없다 해서 무단 결근 처리가 됐다.

이 위원장은 "한국의 내부 고발자(혹은 공익 제보자)들은 폭로 이후 조직 안에서 직접적인 '왕따'를 당하는 일이 많다"며 "예컨대 출장비를 업무와 무관하게 쓰는 관행을 폭로하면, '너만 깨끗하냐'는 시선과 함께 극단적 '왕따'에 시달리다 아주 사소한 잘못 하나로 해고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익 제보자들이 꾸는 꿈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며 "뱀한테 통째로 잡혀 먹히는 꿈,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계속해서 깊이 빠지는 꿈 이야기 등을 듣는데 섬뜩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특강에서 대학생이 '앞으로 우리에게 그런 일이 있으면 내부 제보를 하라고 권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난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그 직장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며 "그렇지만 인생이 병드는 경험을 한 다른 내부 고발자들은 '그렇게 하라고 도저히 얘기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한다"고 말했다. "이게 2013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라는 진단이다.

"세계 1위에 목마른 대한민국이 자초한 대국민 사기"

세계 7대 경관에 제주도가 선정되게 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제주가 선정될 때까지 약 1억 통이 넘는 국제전화 투표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른 행정 전화비는 211억 원 이상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와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계7대자연경관범국민추진위에서 중요 직책을 맡으면서까지 투표 독려에 나섰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외에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다수의 정치인이 추진위에 들어갔고, 박지성, 최경주, 추성훈 등 스포츠 스타들과 김태희, 채림 등 연예인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투표를 독려했다. 제주도는 동사무소마다 전화 건수를 의무 할당해 공무원들을 투표에 동원했다는 의혹도 샀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된 7대 경관 투표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누군가는 나서 유감 표명을 하고 응당한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이 위원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석채 KT 회장 또한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KT에 대한 제재라는 것이, 방통위의 과태료 350만 원이 전부였다"며 "시민단체가 이석채 회장을 사기죄로 고발한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무혐의 처분 사유는 KT가 부당 이득을 취한 게 없다는 것이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의도와 부당 이익금, 이 두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KT는 국민을 속일 의도가 없었고 이익금도 다 제주도에 반환해 부당 이익금도 없다는 판단이었다. (검찰이) KT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준 것이다."

이 위원장은 세계 7대 경관 선정을 위한 각계의 몸부림과 이 안에서 발생한 KT의 국제전화 사기 논란을 "세계적 타이틀에 목마른 대한민국이 자초한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평한다.

그는 "뉴세븐원더스도 스스로 인정했듯, 이 전화 투표 이벤트는 '오락'을 가미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며 "초등학교에서 인기투표를 하듯, 한번 재미나게 놀아보자는 것인데 한국은 전 국민을 동원하며 죽기 살기로 덤볐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자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이 빨리 잊히기만 다들 바라고 있다"고 비판했다.
 

 

'죽음의 기업' KT…"올해만 22명 사망, 이 중 8명 자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KT. 국제전화 사기 논란 외에도 KT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대표적인 게 '죽음의 기업'이란 표현으로 갈음되기도 하는 노동자 연쇄 죽음 문제다.

KT에서는 사람들이 죽는다.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확인된 것만 총 245명이 사망했다. 전·현직 직원, 본사 및 계열사 직원을 포함해 집계한 결과다. 뇌출혈, 심장마비 등 돌연사가 70명, 백혈병을 포함한 각종 암에 따른 사망이 102명, 자살한 사람이 18명이다. 이에 더해 올해 들어서만 사망자 22명(이 중 8명은 자살)이 추가로 발생했다.

이에 대해 KT는 '죽음의 기업'이란 표현이 회사 명예를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노동계가 KT 내부 사망률을 악의적으로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KT는 관련 문제를 제기한 KT노동인권센터를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죽음의 기업'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건당 2000만 원을 배상하란 요구도 소송 내용에 포함돼 있다. (☞ 관련 기사 보기 : KT, '죽음의 기업' 표현 쓰지 말라며 3억 손배소 )

그러나 이해관 위원장 등은 '죽음의 기업'이란 표현을 그만 쓸 생각이 없다. 이 위원장은 "처음 이 표현을 누군가 썼을 때만 해도 '조금 지나친 거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다"며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KT에서는 사람이 죽는다"라고 말했다.

KT가 '죽음의 기업'이 된 근본적 배경을 이 위원장은 2002년 진행된 민영화와 그 이후 살인적인 강도로 이어진 인력 구조조정이라고 본다. 특히 2006년 이후 부진 인력(C-Player) 퇴출 프로그램(CP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되며 KT 노동자들은 벼랑 끝까지 내몰려 있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1990년대,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가 확산했다. 그러면서 민영화 바람이 대표적 노동 집약 산업이었던 통신 사업에도 불어닥쳤다. KT 노조가 민주화됐던 1994년 당시 직원이 6만5000명이었는데 지금은 3만 명 정도 남아 있다.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제외하고도 엄청난 인원이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거다.

경기가 좋을 때는 '더럽다 더러워' 하면서 순순히 나갔다. 그런데 경기가 안 좋으니 나가는 족족 망했다. 1990년대 후반 회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탄탄한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 요즘 논란이 되는 갑을 관계에서 을인 사람들이다. 결국 2000년대 중반부터는 사람들이 나가지 않고 버텼다. 회사가 이런 사람들을 기어코 쫓아내고자 만든 정교한 프로그램이 CP 프로그램이다."

 

▲ KT의 '살생부'로 불리는 '부진 인력(C-PlayerㆍCP)' 프로그램이 담긴 문건. 비고란에는 '단순 추종자'나 `농성 적극 가담'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CP 프로그램, 나도 처음엔 안 믿었다"

CP 프로그램. 회사에서 창출하는 가치가 받아가는 급여보다 큰 사람을 A급 직원(AP·A-Player), 두 개가 동등한 사람을 BP, 창출하는 가치보다 급여가 더 큰 사람을 CP로 분류해 관리하는 인력 관리 방식이다. 경영학에서는 교육을 통해 CP를 AP 또는 BP로 만들어 기업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KT는 CP 프로그램을 회사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내쫓는 도구로, 또 구조조정을 야금야금 진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쉽게 말해, 회사가 직원 살생부를 만들었단 것이다. KT가 2005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한 내부 문건은 무려 1002명의 퇴출 대상자 목록을 담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처음에 사람들이 찾아와 CP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했을 땐 나도 안 믿었다"며 "사람들이 과장하는 거겠거니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악명 높은 CP 프로그램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 관련 기사 보기 : 콜센터 여직원은 왜 울릉도 전봇대를 타야 했나?, KT 전직 관리자의 고백 "노동자 성향 분석해 회사에 보고", KT, 또 '살생부' 직원 대상 보복 인사?)

"예컨대 전화교환원이었던 한 50대 여성 노동자는 어느 날 갑자기 울릉도로 전보됐다. 전신주에 올라가라는 요구에 '못 하겠다'고 하자 전화국 국기게양대에 매달리는 연습을 시켰다. 당뇨 환자를 인근에 병원이 없는 지역으로 발령했다.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처음에 사람들은 '조금 버티면 원래 일하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겠지'란 생각으로 버텼다. 죽을 생각부터 했겠나.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2006년 CP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되고, 2008~2009년이 되자 사망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2002년 민영화 이후 누적돼 온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거다."


이 위원장은 "슬프게도 한동안은 KT에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것 같다"고 말한다.

"CP로 뺑뺑이를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는 호소를 계속한다. 정신질환 치료를 받는 사람도 여러 명이다. 그런데 회사는 요지부동이다. 이렇게 계속 문제를 외면한다면 사망자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건 실제 상황이다."
 

▲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민영화 이후 KT, "높은 통신 요금으로 돈 벌어 해외 투기 자본에…"

KT의 전신은 한국전기통신공사다. 2001년 이름을 KT로 바꾸고, 2002년에 민영화됐다. 이해관 위원장은 민영화에 따라 KT가 수익 위주의 경영을 펼치며 지금 KT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거나 가속화했다고 분석한다. 높은 통신요금 또한 민영화 대가라고 그는 설명한다.

애당초 KT 민영화가 처음 논의됐을 때는, 공적 제어가 가능한 수준으로 민영화를 진행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통신 산업이 기간 산업인 점을 고려해 정부가 최소 33퍼센트의 지분을 갖는 방안,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 방안도 논의됐다.

그러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졌다. 이 위원장은 "외환 위기가 터지자 돌연 KT 민영화가 외환 조달 창구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결국 뉴욕 증시에 직상장해서 벌어들인 외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했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KT는 국민 기업인데 정부가 나서서 왜 통신 요금을 규제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KT에 정부 지분은 0퍼센트다. 의결 가능 지분만 따졌을 때, 해외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 민영화를 하며, KT는 기간 통신 사업자이므로 해외 지분을 49퍼센트에 제한하도록 했지만, 의결권 있는 주식만 따지면 무의미한 조치였다. 민영화 과정에서 사겠다는 사람들 요구를 다 들어준 결과다.

민영화가 완료된 후, 주주들에게 고배당을 했다. 이석채 회장이 KT에 온 2009년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당연히 투자가 줄고 연구 개발비도 줄었다. 대신 광고비는 늘었다. KT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통신 시장은 이렇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던 세월을 끝냈다. 뺏고 뺏기는 살벌한 경쟁 무대에 선 셈이다. 과거와 달리 인건비, 땅값은 높아졌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장비 가격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저렴해졌다. 무선 가입자는 5000만 명을 넘어 통신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KT가 민영화 이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은 우려했던 그대로다. 특히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과거 전화국이었던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구리로 만든 폐케이블을 땅속에서 뽑아내 매각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5000억 원씩 3년째 이렇게 내다 팔고 있다.

다른 한 축에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노조 탄압이 본격화했다. 과거 전화교환원이었거나 기술자였던 사람들이 쓸모없게 되자 내다 버리기에 급급했다. 재교육을 할 생각 없이 무작정 영업 사원으로 전환해 실적을 강요했다. 포화 상태에 달한 통신 시장에서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자기 돈을 쏟아붓는 사람들도 많다.

통신 요금은 세계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고액이다. 소비자들이 다 쓰지도 못하는 데이터를 고액 요금제에 끼워넣고 고객 이익인 것처럼 포장해 판다. 한마디로 국민들로부터 비싼 통신 요금을 거둬들이고,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회사 자산을 매각해 벌어들인 그 많은 돈을 해외 투기 자본에 퍼주는 것이다. 이게 우리가 만든 KT다."

 

▲ 이석채 KT 회장. ⓒ연합뉴스


"이석채 회장 한 번 만나고 싶다"

이해관 위원장은 "이석채 회장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 고액의 통신 요금에 소비자들이 얼마큼 허덕이고 있는지 등을 들으면 적어도 밖에 나가서 '혁신 전도사'라고 외치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그는 말한다.

이 위원장은 "이론적으로 경영 감시의 주체인 주주들은 배당금이 전부인 해외 주주들인 만큼 이들 손에만 모든 문제를 맡겨놓을 수 없다"며 "KT 경영의 이해관계 당사자인 소비자와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난 모든 문제가 이석채 회장 한 명 때문에 생긴 거라고 말한 적 없다. KT 문제는 좁게 보면 한 기업이, 크게 보면 한국 사회가 민영화와 신자유주의 체제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며 생긴 결과다. KT 노동자들 역시 대기업 노동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적응을 우선 목표로 한 면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경영 환경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란 게 드러나고 있다. 소비자와 노동자 등 주체가 나서 경제 민주화와 직장 민주화를 외치지 않으면 KT에서는 비극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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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예술로 진실을 알리다

제4회 우리시대 리얼리즘 '일본군'위안부'와 조선의 소녀들' 개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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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8 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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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제4회 우리시대 리얼리즘전이 8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신문로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열린다. 사진은 고창수, 김영옥 등 9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만든 '꿈엔들 잊힐리야' 작품.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해방 60년이 넘도록 미제로 남겨진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예술을 통해 진실을 알리는 전시회가 열렸다.

'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등 주최로 제4회 우리시대 리얼리즘전 '일본군'위안부'와 조선의 소녀들' 전시회가 서울 신문로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8일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소속 127명 미술인들이 참여,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구성, 오는 18일까지 열린다.

전시회는 1섹션 '말하다', 2섹션 '부둥켜 안다', 3섹션 '내딛다', 4섹션 '이야기해 주세요'로 구성, 미술 작품과 함께, 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관련 사료를 전시했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고 강덕경, 고 김학순 할머니들의 그림 사본도 전시됐다.

 

   
▲ 탁영호 작가의 '꽃반지' 작품을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전시회 개막식에서 이구영 '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회장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미술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할머니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며 "할머니들의 살아온 궤적, 고통받은 이후,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현재도 고통받는 여성인권에 대해 다뤄보고자 했다"고 전시회 취지를 밝혔다.

이구영 회장은 "미술은 어찌보면 힘이 약하다. 하지만 잔상은 크다"며 "그 잔상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대 속에서 시작했다. 더 많은 힘을 보탠다면 고통을 끝내고 한국사회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작품들은 많은 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할머니들의 삶에 대한 고통을 고발한 것이라고 본다"며 "할머니들이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이제 우리들이 할머니들에게 힘이 되도록 하자"며 "새로운 정의의 역사, 희망의 새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씨앗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평화가 우리의 몸짓 속에서 꽃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제2전시실에는 과거사 단체들의 사료가 전시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도 "이번 전시회가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는 김학순 할머니의 애절한 당부에 미흡하나마 공명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오늘 실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역사정의를 다시 생각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중기 4.9통일평화재단 이사는 "한 장의 그림이 만 장의 글보다 더 큰 역할을 할 때가 있다"며 "이번 전시회가 첫 횃불이 되고 고함이 되서 영혼의 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전시회 개막식에는 박진화 '민족미술인협회' 회장, 박중기 '4.9통일평화재단' 이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남윤인순, 유승희 민주당 국회의원 등 2백여명이 참석했으며, 극단 고래의 연극 '빨간시'가 공연됐다.

 

   
▲ 개막식에는 각계 인사들과 시민 등 2백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고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하나됨'.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안세홍 작가의 사진 '겹겹-중국에 남겨진 일본군'위안부' 배상엽'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의 사료 전시물.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 씨의 콩고와 아프가니스탄 여성 사진도 전시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이구영 작가의 '바라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최병수 작가의 '호모파베를'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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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살인' 협박에도... "국정원 이 빵구똥구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8/09 10:10
  • 수정일
    2013/08/09 10: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 유쾌한 집회 진행 중

13.08.08 17:08l최종 업데이트 13.08.08 17:4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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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튜브 영상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으로 이슈가 된 김수근(왼쪽), 박현탁씨(오른쪽). 이들은 2일부터 서울시 서초구 국정원 앞에서 집회를 진행 중이다. 집회는 1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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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꾸똥꾸야! (국정원) 너네 해체할 거야, 죽었어!"

서울시 서초구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앞. 네이버 지도도 위치를 안 알려주는 이곳에서 "국정원 해체"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격렬한 시위도, 장엄한 기자회견도 아니다. 꽃무니 칠부바지와 짙은 선글라스를 몸에 걸치고 우아하게 돈가스를 써는 이들에게 국정원 앞은 올 여름 '피서지'이다. 우거진 나무와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 눈만 감으면 영락없는 숲 속 계곡이다.

국정원으로의 피서를 감행한 주인공은 서울민권연대 소속의 김수근(31), 박현탁(24), 김효준(32)씨. 최근 유튜브 영상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영상보기)'으로 이슈가 된 이들은 2일부터 국정원 앞에 자리를 펴고 '유쾌한 집회'를 진행 중이다.

8일 이들을 만나기 위해 국정원 앞을 찾았다. 김수근·박현탁씨가 기자를 맞았다. 김씨는 "국정원 국정조사 와중에 휴가나 가는 새누리당을 보고, '그래, 너네 그렇게 피서 떠나면 나는 국정원으로 피서 간다'는 생각으로 이번 집회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집회는 1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즐거움 주면서 할 말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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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감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박현탁(왼쪽), 김수근(오른쪽)씨.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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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긴 하지만 이들의 하루는 분주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퍼포먼스 연구에 쏟는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일반적인 집회나 농성의 방식으론 눈길을 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 국정원 앞에 나올 때부터 이들은 '재미'를 추구했다.

"촛불을 드는 게 용기를 내야 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퍼포먼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할 말 다 하는 모습 보여주면 촛불집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데 도움이 되겠죠."

실제로 물총을 든 채 국정원을 감시하고, 줄넘기 10만 개를 목표로 빗속에서 '폭풍 줄넘기'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누리꾼들은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 영상을 이곳저곳 퍼 나르고 있다. 덕분에 6일 처음 올라온 영상은 8일 오후 2시 현재 조회수 3만5000건 이상을 기록 중이다. 영상 속에서 국정원을 향해 "빵꾸똥꾸"를 외치는 김수근씨의 모습에 많은 네티즌들은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박현탁씨는 이번 '국정원 정국'에서 만들어진 가수 '류앤탁'의 멤버로도 유명하다.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풍문으로 들었소>를 개사한 <국정원 풍문으로 들었소>는 시청 앞 광장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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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국정원 앞 집회 현장에서 박현탁(왼쪽), 김수근(오른쪽)씨가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풍문으로 들었소'를 개사한 '국정원 풍문으로 들었소'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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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주도 하에 국정원 앞에선 매일 오후 6시 30분 '작은 공연'이 열린다. <국정원 풍문으로 들었소>에 맞춰 낮 동안 연습한 춤과 노래를 이때 선보인다. 이후 오후 7시 30분엔 매일 자발적으로 찾는 시민들과 함께 '작은 촛불 집회'를 연다. 전날인 7일엔 시민 4명이 참여해 한 명도 안 빠지고 국정원을 향해 할 말을 다 쏟아냈다.

박씨는 "이곳이 대중적인 공간이 아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활동을 알리는 게 1차 목표였다"며 "촛불시위가 언론에 의해 통제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무모한 도전'이 국민적 힘을 모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11일 국정원 앞에서의 촛불문화제를 계획하고 있다.

국정원 CCTV 밑 '피서'... "사람 따라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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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 주변엔 '감시자들'이 따른다. 8일 집회 현장 주변의 경찰의 모습.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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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집회의 목적은 '국정원 해체'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이다. 때문에 현재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국정조사에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씨는 "지금까지의 조사와 정황을 보면 국정원, 경찰, 새누리당이 한통속이란 건데 직접적 연관이 있는 새누리당이 조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범죄자 집단이 스스로 조사를 하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핵심 인물인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모두 증인 채택을 하지 못한 게 새누리당이 직접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며 "국정조사도 좋지만 당장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차려놓은 피서지 위엔 위엔 국정원 CCTV가 있다. "움직일 때마다 CCTV가 따라온다"고 한다. 경찰의 감시도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 감시'의 퍼포먼스 중 하나로, 작동이 안 되는 비디오카메라를 국정원 쪽으로 향해놨더니 이를 경찰이 제지한 적도 있다.

"가까이 헌인릉이 있어 뭐가 있나 궁금해 산책을 나갔는데 귀에 무전기를 꽂은 사람들이 거기까지 따라붙더라. 땀 뻘뻘 흘리며 헌인릉을 구경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웃음)."

부산 식당에서 온 "가족 토막내겠다" 협박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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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집회신고를 낸 김수근씨에게 31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온 협박 문자메시지. 발신된 곳으로 전화해보니 부산의 한 샤브샤브 식당이었다.
ⓒ 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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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해 보이기만 한 이들이지만 이번 집회를 시작하며 섬뜩한 일을 겪기도 했다. 김씨가 지난달 30일 국정원 앞에 집회신고를 한 뒤, 다음 날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협박 문자를 받은 것. 31일 '051-524-XXXX'로부터 온 문자메시지에는 "당신 가족을 모두 토막낼 겁니다"라는 끔직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오후 3시 11분, 12분 총 두 건의 문자가 왔다.

"문자 온 곳에다가 전화를 해보니 부산의 샤브샤브 식당이더라고요(웃음).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처음 생길 때부터 국민을 감시하는 게 그들의 주 업무였죠. 그러면서 입으로는 국가 안보를 들먹이고…. 문자 보세요. 지금까지도 국민 감시하고 있잖아요."

살해 협박에도 김씨는 '국정원 앞 피서'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섬뜩했는데 국정원이 그 동안 인터넷 상에서 단 댓글을 생각해보니 '국정원 범죄집단이 아직도 이렇게 활동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더 열 받아서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와 박씨 모두 정작 집에다가는 이번 피서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김씨는 "농사 지으며 열심히 사는 부모님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언론에 나가면 부모님이 알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걱정에 박씨가 답했다.

"(부모님이) 인터넷을 거의 안 하셔요. 텔레비전 뉴스만 보시거든요. 다행히(?) 지상파랑 종편에선 전혀 취재를 안 오더라고요(웃음)."
 
[후속영상] 국정원으로 피서 간 겁 없는 '오성과 한음'
 
{C}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오성과 한음'
ⓒ 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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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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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알지 못하는 7.27 핵무력시위

[한호석의 개벽예감](73) 전설 속의 핵배낭이 나타난 사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8/08 [02:28] 최종편집: ⓒ 자주민보
 
 

북의 7.27 대행진, 어떻게 볼 것인가?

북에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 60돐’로 경축한 2013년 7월 27일, 예상했던 대로 사상 최대의 행진이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되었다. 북에서는 그 행진의 공식명칭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 경축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라 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7.27 대행진이라 부른다. 7.27 대행진은 열병식, 분열행진, 군중행진 순으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7.27 대행진 진행과정을 담은 북의 기록영화를 정밀분석하면, 그 행진의 전 과정을 관철하며 표현된 총적 주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7.27 대행진의 총적 주제는 두 가지로 표현되었는데, 북의 서술방식을 빌리면, 반제혁명전쟁의 전승업적을 칭송하는 것과 핵무력에 의해 극대화된 혁명무력을 시위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총적 주제에 담긴 본질은, 다시 북의 서술방식을 빌리면, 20세기 중반에 이룩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21세기 초반에 ‘위대한 조국통일대전의 승리’로 이어가겠다는 정치군사적 의지라고 해석된다. 이러한 나의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객관적 사실은, 7.27 대행진이 진행된 김일성광장 양쪽 건물벽에 각각 내걸린 초대형 현수막에 적혀 있는 중심구호가 ‘최후승리’와 ‘조국통일’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북의 그런 시각과는 정반대쪽의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남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전협정 체결을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로 보는 북의 역사인식을 납득할 수 없고, 그 ‘전승’의 연장선 위에 투영되는 ‘조국통일대전의 승리’라는 북의 미래전망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정전상태에서 빚어진 그처럼 상반된 역사인식과 상충적인 미래전망은 현 시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대결과 격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다시 말해서,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그 전쟁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미래에 대한 전망이 무력대치쌍방의 대결과 격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정세는 언제 또 다시 교전이 재개될지 알 수 없는 긴장된 정전정세,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한반도정세의 본질은 정전정세다. 무려 60년 동안 교전재개위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위태로운 정전정세를 생각할 때, 왜 군사문제를 정세인식의 중심부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군사문제를 중심부에 두고 정전정세를 인식할 때, 중요한 것은 북의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정전정세인식에서 북의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중요한 까닭은, 6.25전쟁 중에 격돌과 혈전을 거듭한 교전쌍방 사이에서 정전정세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교전과 정전의 일방인 미국은 6.25전쟁을 ‘잊어버린 전쟁’으로 외면해왔고, 앞으로 일어날 북의 ‘조국통일대전’을 ‘생각하기도 싫은 전쟁’으로 전면 부정하고 있는데 반해, 교전과 정전의 다른 일방인 북은, 다시 북의 서술방식을 빌리면, 60년 전의 ‘조국해방전쟁’을 “미국놈들이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 전쟁으로 인식하고, 앞으로 일어날 ‘조국통일대전’을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전쟁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정전상태를 종식시키는 방도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정전의 국제법적 당사자들끼리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제1방도가 있고, 그와 완전히 다른 제2방도는 정전상태에서 치열하게 맞서온 무력대치쌍방이 교전을 재개하여 어느 한 쪽의 교전상대가 패전, 항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 정전정세는 평화협정 체결이냐 아니면 패전에 따른 항복이냐 하는 갈림길에 다가선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제3방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전 60년의 긴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일방인 미국이 사실상 효력을 상실한 그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려 하기는커녕 평화협정이라는 말조차 아예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60년 동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고위관리들 가운데서 한반도 평화협정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은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무조건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반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평화협정 체결을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대한 당면과업으로 여기는 북의 일관된 시각에서 보면, 60년 묵은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방도는 교전을 재개하여 교전상대를 무력으로 항복시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요즈음 북은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전쟁”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이다.

설명이 없어도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조국통일대전”에 대해 언급하는 북의 전쟁담론에는 교전상대를 아주 짧은 시간에 격멸한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지면제약으로 이 글에서 논할 수 없지만 이전에 내가 인민군의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와 관련하여 쓴 몇몇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재 인민군의 정신적 준비, 작전적 준비, 무장력 준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북의 그런 전쟁담론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에서 말하는 ‘최후결전 시나리오’에서 읽을 수 있는 기습타격전, 고속돌파전, 양익포위전, 조기섬멸전이라는 개념들은 이미 60여 년 전 6.25전쟁 중에 전개된 것일 뿐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조국통일대전”에서 더 완성된 형태로 전개될 4대 전쟁개념이며, 북은 바로 그 4대 전쟁개념에 따라 60년 정전정세 속에서 자기의 전쟁수행력을 구축해왔으며, 그렇게 구축된 전쟁수행력은 핵무력 건설이라는 조선로동당의 정치군사노선에 의해 극대화되었으며, 그 당이 건설한 핵무력을 내외에 시위한 계기가 이번에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7.27 대행진인 것이며, 그 행진을 통해 특히 핵무력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가 실현되었음을 물리적으로 과시한 것이다.

은회색 옷을 입고 새 모습으로 등장한 화성-13

7.27 대행진에 참가한 인민군 로케트(미사일)종대는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지대공미사일)들과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지대지미사일)들을 앞세우고 행진하였다.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이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 4대의 전투기로 각각 편성된 3개의 항공군 비행편대가 저공비행으로 광장상공을 지나가고,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 동평양 쪽에서 나타난 5대의 전투기로 편성된 항공군 비행편대가 오색연기를 내뿜으며 광장상공에서 축하비행을 전개할 때, 분위기는 절정에 올랐다. 이처럼 7.27 대행진의 분위기가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등장하면서 절정에 오른 까닭은, 핵타격미사일들인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이미 완성단계에 이른 북의 핵무력을 시위하였기 때문이다.

기록영화 장면을 살펴보면, 7.27 대행진에 참가한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은 ‘번개-1’, ‘번개-3’, ‘번개-4’, ‘번개-5’다. 이 4종의 지상대공중상로케트들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 때도 똑같이 등장하였다.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의 뒤를 이어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등장하였는데, 번개계열의 로케트들은 인민군 반항공군의 무기체계이고, 화성계열의 로케트들은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무기체계다.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는 4종이다. 4축8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5가 행진대오 맨 앞에 나섰고, 5축10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7과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10이 그 뒤를 이었다.

로케트종대의 맨 끝이며 동시에 인민군 분열행진의 맨 끝에 등장한 것은 8축16륜 자행발사대 6대에 각각 탑재된 6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이다. <사진1>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번에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13의 거대한 동체들은 모두 은회색으로 도색되었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는 위장무늬로 도색된 화성-13 6기가 등장하였는데, 이번 7.27 대행진에는 화성계열의 다른 미사일들과 똑같이 은회색으로 도색된 화성-13 6기가 등장하였다. 8축16륜 자행발사대는 2012년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 때나 이번 7.27 대행진 때나 똑같이 위장무늬로 도색된 것이었는데, 거기에 탑재된 화성-13의 도색만 달라진 것이다. 화성-13 동체 도색이 그처럼 달라진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 <사진1> 2013년 7.27 대행진에 등장한 화성-13의 거대한 동체는 화성계열의 다른 미사일들과 똑같이 은회색으로 도색되었는데, 그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과 그 발사체계를 다종화하였음을 시위한 것이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위장무늬 화성-13은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road-mobile ICBM)이고, 은회색 화성-13은 수직갱발사대에 배치된 대륙간탄도미사일(silo-based ICBM)과 열차발사대에 탑재된 철도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rail-mobile ICBM)이다. 북이 위장무늬 화성-13과 은회색 화성-13을 지난해와 올해 세상에 각각 공개한 것은,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 철도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모두 실전배치하였음을 시위한 것이다. 수직갱배치 화성-13과 철도이동식 화성-13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록영화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성-13을 탑재한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 도색에서 차이가 엿보인다. <사진2>에서 보이는 것처럼,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 참가한 화성-13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는 색상이 매우 선명한데, 이번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13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는 <사진1>에서 보이는 것처럼 색상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 이런 도색 차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 도색이 서로 다른 것은, 북이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자체로 생산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사진2>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 등장한 화성-13을 탑재한 8축16륜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 도색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번 7.27 대행진에 참가한 8축16륜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 도색은 그리 선명하지 않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예를 들어, 화성-10을 탑재한 6축12륜 자행발사대는 러시아군의 6축12륜 자행발사대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처럼 외형이 비슷하다고 해서, 북이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북은 러시아군의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보고 그와 비슷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외형이 흡사한 것이지, 러시아에서 그것을 수입한 것은 아니다.

그처럼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자체로 만드는 기술을 이미 오래 전에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위성발사체 로켓엔진까지 자체로 만드는 북이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만드는 기술을 아직 개발하지 못해서 중국산 8축16륜 목재수송차량을 수입하여 거기에 화성-13을 탑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북의 기계공업수준을 깎아내리려는 억지로 들린다.

화성-13 탄두부의 모양은 왜 달라졌을까?

7.27 대행진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화성-13의 탄두부 모양이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 참가한 화성-13의 탄두부는 <사진2>에서 보이는 것처럼 매우 뾰족하게 생겼는데, 이번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13의 탄두부는 <사진3>에서 보이는 것처럼 좀 뭉툭하게 생겼다.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13의 탄두부는 다탄두미사일인 화성-10의 탄두부 모양에 상당히 근접하였다. 이런 탄두부의 변모는, 위장무늬 화성-13이 단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은회색 화성-13이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위장무늬 화성-13의 탄두부에는 대형 핵탄두 1기가 들어있고, 은회색 화성-13 탄두부에는 소형화되어 한 다발로 묶인 핵탄두 3기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 탄두부 외형이 서로 다른 2종의 화성-13을 세상에 공개한 것은, 전략핵탄두의 다종화를 실현하였음을 시위한 것이다.
 
▲ <사진3> 7.27 대행진에 등장한 화성-13의 탄두부는 뾰족하게 생기지 않았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전시에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다탄두미사일을 쏘는 까닭은, 여러 개 핵탄두들 속에 가짜 핵탄두를 섞어놓아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교란, 돌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단탄두미사일을 쏘아 맞추는 요격실험에서 번번이 실패하여 쩔쩔매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화성계열의 다탄두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화성-13의 탄두부만 주목할 게 아니라 그 동체에 쓰인 고유번호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 참가한 위장무늬 화성-13의 고유번호들은 ㅈ901010418, ㅈ904830215, ㅈ904830216, ㅈ904830218이었고, 나머지 2기의 고유번호는 기록영화 화면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번 7.27 대행진에 참가한 은회색 화성-13의 고유번호들은 ㅈ904910331, ㅈ904910113, ㅈ907102727이고, 나머지 3기의 고유번호는 기록영화 화면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에 전시된 화성-13의 고유번호는 ㅈ100021618이다.

위에 열거한 화성-13의 고유번호를 살펴보면, 901, 904, 907, 100으로 각각 시작하는 4종의 고유번호로 계열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화성-13의 고유번호가 901부터 시작하여 100까지 모두 10종의 고유번호로 계열화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0종의 고유번호에 따라 전략로케트군에 실전배치된 화성-13이 모두 몇 기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 40기에서 최대 80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단탄두미사일이 몇 기이고 다탄두미사일이 몇 기인지 알 수 없지만, 단탄두를 장착한 위장무늬 화성-13은 북이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생산한 수량만큼 될 것이고, 다탄두를 장착한 은회색 화성-13은 나머지 수량만큼 될 것이다.

2013년 4월 1일 북의 최고인민회의가 발포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중되는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위험의 엄중성에 대비하여 핵억제력과 핵보복타격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운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지금 북은 화성-13을 질적으로, 양적으로 강화하는 중이다.

전설 속의 핵배낭이 현실 속에 나타난 놀라운 사연

7.27 대행진 중에 각종 대구경견인포로 무장한 로농적위군 기계화종대가 등장한 다음에 인민군 기계화종대가 등장하였는데, 위장무늬 군복을 입고 병력수송차량에 25명씩 탑승한 특전병들이 인민군 기계화종대의 맨 앞장에 섰다. 그런데 그 특전병들 중에서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핵배낭을 가슴에 안고 병력수송차량에 탑승한 특전병들이다. 이제껏 전설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세상에 알려진 핵배낭이 <사진4>에서 보이는 것처럼 김일성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장면을 바라본 사람들의 놀라움은 컸다.
 
▲ <사진4> 이제껏 전설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핵배낭이 7.27 대행진 중에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북의 핵배낭에 관해 논하려면, 전설 속에 존재하는 핵배낭에 얽힌 냉전시대의 기억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핵배낭(backpack nuke)으로 알려진 전술핵무기를 만든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밖에 없다. 나중에 이스라엘도 핵배낭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런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다.

냉전시기가 막을 내리고 있었던 1988년부터 소련군사정보국(GRU)의 비밀요원으로 미국에서 활동해오던, 스타니슬라브 루네브(Stanislav Lunev)라는 가명을 사용한 소련군 현역 대령이 소련 해체 직후인 1992년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가 미국에 망명하여 미국정보당국에 넘겨준 정보에 따르면, RA-115라 부르는 극소형핵무기가 소련군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련군의 극소형핵무기를 묘사하면서 지름이 13cm이고, 길이가 62cm이고, 무게가 45kg이고, 일반폭약(TNT) 190t의 폭발력을 지닌 포신형 핵탄(gun-type nuclear bomb)이라고 하였다. 이 정도의 부피와 무게를 가진 핵무기는 핵배낭보다 더 작은 핵가방(suitcase nuke)이다.

당시 루네브가 말한 소련의 핵가방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미국정보당국은 망명자가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해 과장한 이야기로 여겼는데, 1997년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의 연구 및 개발에 관한 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러시아군 안보책임자 알렉산더 레베드(Alexander Lebed)의 증언에 의해서 소련의 핵가방 이야기가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는 재평가가 제기되었다. 청문회에서 레베드는 자기가 통제하고 있었던 소련군 핵무기고에서 극소형핵무기 100여 기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하였다. 그의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소련이 해체되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소련군이 핵가방 100여 개를 잃어버린 특대형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2007년 3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부피와 무게가 그처럼 작고 가벼운 극소형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논증하였다. 그리하여 루네브와 레베드가 말한 소련의 핵가방은 냉전시대의 전설 속에 파묻혀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희미해졌다.

그런데 지난 냉전시기에 미국이 핵가방보다 더 크고 무거운 핵배낭을 만든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미국이 만든 핵배낭의 공식명칭은 MK-54 특수원자파괴탄(Special Atomic Demolition Munition/SADM)이다. 미국군사전문가들의 자료에 따르면, 이 핵배낭은 데이비 크로킷(Davy Crocket)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지름이 20cm, 길이가 58cm의 특수합금 원통에 무기급 핵분열물질이 들어 있고, 그 무게는 32kg이며, 폭발력은 1킬로톤이며, 폭발하는 경우 반경 800m 안의 모든 물체를 날려버린다. 거기에 더하여 고성능 고폭장약, 기폭장치, 중성자 방출장치, 건전지 등 다른 내장물들의 무게까지 합하면, 미국의 핵배낭은 총무게가 74kg으로 늘어나고 부피도 등산배낭만큼 커진다. <사진5>에서 보이는 것처럼, 미국이 만든 핵배낭은 원통형으로 생긴 대형배낭이다.
 
▲ <사진5> 이것은 냉전시기 미국이 만든 핵배낭은 원통형으로 생긴 대형배낭이다. 폭발력은 1킬로톤이며, 무게는 74kg이다. 이 핵배낭은 이미 24년 전에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의 핵무기로 되었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소련을 상대로 핵군비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던 냉전시기에 미국군 지휘부는 핵배낭을 공수특전대에 배치하였는데, 1989년까지 단계적으로 해체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국의 핵배낭은 이미 24년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의 핵무기로 되었다. 이처럼 전설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세상에 알려진 핵배낭이 7.27 대행진 중에 사상 처음으로 세상에 자기 모습을 드러냈으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2013년 7월 28일 국방부 출입기자단 앞에서 남측 국방부 대변인은 “핵배낭은 굉장히 크기가 작은데 그것을 소형화하는 것은 굉장히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 정도 핵배낭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인민군 핵배낭의 출현에 놀라 횡설수설한 것이다. 그의 발언을 횡설수설이라고 보는 까닭은, 그가 “(핵배낭은) 더티밤(dirty bomb)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을 터뜨리면 방사능누출이 많아서 한 지역이 완전히 오염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핵배낭과 방사능오염탄(dirty bomb)을 혼동하였기 때문이다. 핵배낭은 고도의 핵기술을 보유한 핵강국이 만드는 첨단전술핵무기의 일종이고, 방사능오염탄은 테러범들이 고준위방사성물질을 국제암시장에서 밀거래하여 만드는 조악한 테러무기의 일종이므로, 양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큰 것이다.

핵배낭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목적은 강력한 파괴력에 있는 것이지 방사능오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군사전문가들의 자료에 따르면, 핵배낭이 폭발하였을 때 방출되는 방사능은 폭발 직후부터 4시간 동안 약 90%가 남아 있지만, 2일이 지나면 약 1%로 크게 감소되고, 12일이 지나면 방사능측정기로 추적해야 오염여부를 판별할 수 있을 만큼 극소량으로 감소된다고 한다.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원전사고로 발생하는 방사능오염이 핵탄폭발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오염보다 100만 배 이상 더 심하기 때문에, 대형원전사고의 방사능오염이 발생한 나라에서는 모든 생물체들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방사능오염의 위험성을 따져보면, 핵탄보다 원전이 비할 바 없이 더 위험한데도 일본은 인민군의 미사일타격권 안에 수많은 원전을 건설해놓았으니,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기록영화 장면을 살펴보면, 위장무늬 군복을 입은 인민군 특전병들이 가슴에 안고 있는 핵배낭의 크기는 대략 가로 30cm, 세로 45cm, 두께 20cm인 것으로 보인다. 그처럼 북이 만든 핵배낭은 미국이 만든 핵배낭보다 크기와 부피가 더 작아서 전설 속의 핵가방에 더 가까운 형태로 보인다. 북의 핵무력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7.27 대행진에 등장한 핵배낭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썰렁한 반응을 보였지만, 북의 핵배낭에 관한 진실을 알려면 아래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9년에 방북한, 파키스탄의 핵개발 총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가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 떨어진 지하핵시설을 방문하여 운반대 위에 놓인 3기의 핵탄두를 관찰하였을 때 그 핵탄두의 지름이 약 60cm라고 회고한 바 있는데, 이번 7.27 대행진에 등장한 핵배낭은 그 핵탄두보다 크기와 부피가 훨씬 더 작은 것이다. 14년 전 칸 박사가 북에서 관찰한 핵탄두를 소형핵탄이라고 한다면, 이번 7.27 대행진에 등장한 핵배낭은 극소형핵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이 2006년 10월 9일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에서 리히터 규모로 진도 3.6∼4.2에 이르는 인공지진파가 측정되었고, 당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일반폭약 0.5∼0.9킬로톤 규모의 폭발력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한 바 있는데, 이것은 북이 정밀한 핵폭발장치를 내장한, 1킬로톤 이하의 폭발력을 지닌 극소형핵탄을 만들었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7.27 대행진에 등장한 북의 핵배낭은 <사진6>에서 보이는 미국의 핵배낭처럼 매우 정밀하게 설계된 것이다.
 
▲ <사진6> 이것은 미국이 만든 핵배낭에 들어가는 정밀한 핵폭발장치들이다. 사진의 왼쪽으로부터 살펴보면, 원통형 특수합금상자, 극소형핵탄, 암
암호해독장치, 기폭장치 등이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2013년 5월 21일 <로동신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위력한 전쟁억제력”이라고 지적하고,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전시에 핵배낭을 멘 인민군 특전병들은 어디로 달려가는가?

핵배낭을 가슴에 안고 7.27 대행진에 참가한 인민군 특전병 225명은 평안남도 덕천군에 야전지휘소가 있는, 인민군 최정예 특전부대인 제11군단에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핵배낭특전병대오가 제11군단 소속의 다른 특전병대오와 함께 7.27 대행진에 참가하였기 때문이다. 7.27 대행진에 참가한 특전병대오는 저격보총을 든 저격병 225명, 강하복장을 하고 전투배낭을 가슴에 안은 항공륙전병 225명, 핵배낭을 가슴에 안은 핵배낭특전병 225명이다.

<사진7>에서 보이는 것처럼, 7.27 대행진 중에 무인타격기종대가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 3대로 편성된 수송기 편대가 저공비행으로 광장상공을 지나갔는데, 그 거대한 수송기들은 50t의 병력과 군사장비를 싣고 시속 900km의 속도로 4,300km를 날아가는 중거리 전략수송기 일류신(Il)-76이다. 인민군 항공륙전병은 전시에 바로 그 전략수송기를 타고 적진 후방에 낙하할 것이다.
 
▲ <사진7> 7.27 대행진 중에 무인타격기종대가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 거대한 중거리 전략수송기 일류신-76 3대가 광장상공을 지나갔다. 전시에 그 전략수송기에는 인민군 제11군단 예하 항공륙전려단 소속 특전병들이 타게 된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그런데 핵배낭특전병과 항공륙전병이 7.27 대행진에 참가한 것을 보면, 핵배낭특전병이 항공륙전병과 별도로 편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11군단 예하 10여 개 여단들 가운데는 벼락이라는 별칭을 지닌 저격려단, 우뢰라는 별칭을 지닌 항공륙전려단, 번개라는 별칭을 지닌 경보병려단 등이 있는데, 이번에 7.27 대행진에 참가한 특전부대를 보면 핵배낭려단도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핵배낭려단과 항공륙전려단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전시에 핵배낭려단이 전략수송기를 타고 공중낙하로 적진 후방에 침투하는 부대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핵배낭려단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개전되기 직전에 ‘밀로’라 부르는 남진갱도를 통해 적진 후방에 침투하는 사전침투부대인 것이다. 핵배낭려단은 그처럼 사전에 침투하여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 인근에 핵배낭을 매설한 뒤 현장을 빠져나가 대기하다가 개전시각에 맞춰 원격조종장치로 핵배낭을 폭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핵배낭이 폭발 뒤에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에는 지름이 약 1.5km에 이르는 거대한 분화구만 남아 있을 것이다.

1996년 9월 19일에 발매된 <시사저널> 제360호 실린, 인민군 항공륙전려단을 제대한 탈북자의 말에 따르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민군 특전병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명령만 내리신다면 폭탄을 안고 적진에 투하하겠다는 맹세문에 서명하고, 매일 같이 암송해 정신무장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전시에 그들이 가슴에 안고 적진으로 나아갈 폭탄은 일반폭약으로 만든 폭탄이 아니라 극소형핵탄으로 만든 핵배낭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데일리 NK> 2011년 11월 25일부 기사에 따르면, 여단급 핵배낭부대가 평안북도 동창군에 주둔한다고 하며, <동아일보> 2001년 3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제11군단 예하 1개 여단의 병력은 6,000∼8,000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민군 핵배낭려단의 병력은 최소 6,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최소 6,000명에 이르는 핵배낭려단 특전병들 가운데, 전시에 핵배낭을 메고 적진 깊숙이 사전침투할 병력이 몇 명인지 알 수 없지만, 각지에 널려 있는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은 바로 그 핵배낭려단 때문에 가장 심각한 궤멸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 주한미국군기지와 한국군기지를 거대한 분화구로 만들어버릴 핵배낭을 7.27 대행진 중에 공개한 것은, 평화협정 체결을 끝내 거부하면서 대북전쟁연습을 강행해온 미국에 대한 격렬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즈음 북에서 나온 각종 반미선전화들 가운데는 미국의 지배계급이 아연실색할 대미적개심을 표출한 선전화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구호가 적혀 있다. “미국, 너는 없어져야 한다!”(2013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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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 송전탑

약자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 송전탑

 
이정배 목사 2013.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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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반대 펼침막-.jpg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펼침막 사진 강재훈 기자

 

 

기독교 탈핵 연대의 이름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값싼 은총과 용서를 남발하는 한국 교회를 부끄럽게 했다면 오늘의 송전탑은 약자와 함께하는 생명의 하느님 앞에 기독교인을 불러 세운 곳이다. 2012년 74살 이치우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불붙기 시작한 밀양 송전탑 사태는 발전과 개발의 명분하에 박정희 정권 시절 만들어진 전원개발 촉진법이 그 근거다.

 

사실 밀양사태는 산과 들, 논과 밭을 가로질러 세워진 송전탑이 수많은 이 땅의 약자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누군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했다. 그렇기에 송전탑 건설의 중단은 우리 욕망의 멈춰짐과 맥을 같이한다. 밖을 향한 투쟁만큼 우리 안의 욕망에 대한 저항도 함께 불러낸다.

 

1978년부터 지금까지 225회나 오작동되었으며 온갖 비리로 얽힌 고리발전소와 밀양의 송전탑은 본래부터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져 있었다. 며칠 전 <코리아 타임스>는 그린피스 보고서에 근거해 고리원전에서 후쿠시마원전 같은 사고가 터질 경우 그곳보다 훨씬 취약한 구조를 지닌 한국의 치명적 폐해를 경고했다. 고리를 기점으로 반경 30㎞ 이내에 거주하는 350만명이 방사능에 전폭 오염될 것이고 이들 중 오직 5% 안팎 사람에게만 약물치료가 가능한 것이 현 실정이고 수준이란다. 인터넷엔 체르노빌 10배에 달하는 후쿠시마 사건 이후 영토의 상당수가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의 실상이 전해진다. 무리하게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려는 야욕과 우경화도 이런 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밀양 올가미-.jpg

한국전력이 중단된 지 8개월 만에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한 20일 오전 경남 밀양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주민들이 공사차량이 들어오면 목을 매겠다며 만든 올가미가 마을 진입로에 걸려 있다. 밀양/김정효 기자

 

 

 

성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기되 오직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한 그루만은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 일찍이 <순수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란 책을 썼던 칸트 역시도 성서 첫머리에 ‘~하지 말라’는 절대 한계에 대한 신적 명령에 주목했다. 지금껏 인류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능사로 알았다. 하지만 성서는 자연의 한계 안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축복이라고 가르친다.

 

자연의 한계 안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며 살았던 뭇생명에 반해 오직 인간만이 한계를 벗고자 했고 스스로 별종이 되었다. 기독교인들 중에 핵 마피아가 상당수란 것은 기독인들이 너무도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방증한다. 창조신앙을 고백하면서도 핵 마피아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성서는 절대적 한계 안에서의 삶을 가르쳐 지키게 할 것을 지금도 요구한다. 매 주일 예배 시 고백하는 사도신경 첫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바벨탑을 쌓고 멸망한 인류를 대신해 노아가 하느님의 새 파트너가 되었을 때 신은 역시 한계 안에서 살 것을 명시했다. 사람들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말 것과 동물을 피 채로 먹지 말라는 것이 바로 절대적 한계의 실상이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신념주의자가 되기보다는 좋은 세상을 위해 한계 안의 삶을 택하는 존재인 것임을 명심할 일이다.

 

 밀양의 어르신들은 이제 송전탑이 다른 마을로 옮겨진다 해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송전탑은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든 사건이 되었고 에너지 중독에 빠진 우리들에게도 새로운 세계관을 깨우쳐주었다. 이제 밀양은 경상도의 작은 지명이 아니라 대대적 가치충돌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지을 거룩한 땅임을 확인해주는 땅이다.

 

이정배 감신대 교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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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의 긴급 호소] 내성천에서 본 'MB 대운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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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08 오후 1:15:09

 

 

휴가철을 맞아 내성천변은 온통 축제 분위기이다. 내성천 상류 봉화에서는 은어 축제가, 지천인 서천에서는 수박 축제가 합수부 삼강에서는 막걸리 축제가 한창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내성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 마을 영주시 만수면 수도리의 무섬 마을의 풍경은 괴기하기만 하다. 지난해 여름 이맘때까지만 해도, 무섬 마을 수도교 다리 밑은 아침 일찍 서둘러야 겨우 텐트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올 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에 나온 아이들 영상은 대부분 지난 여름 수도교 다리 주변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지율스님

 

ⓒ지율스님


그러나 올해는 다리 밑에 텐트는커녕 사람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다리 아래 내려가 보니 교각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한 노란색 경계 띠가 둘러 있고 띠 안에는 손 글씨로 A4 용지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지율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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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고기를 잡기 위해 교각 밑에 들어갔다가 철근에 발이 찔려 빼지 못해 구급대가 철근이 박힌 째로 철근을 끊어서 긴급 후송한 사례가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경고문 말미의 글은 지금 무섬 강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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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장소가 이태 만에 일어난 강의 변화라고 믿기 어렵다. ⓒ지율스님


강바닥이 낮아지는 현상은 단지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풍경을 훼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급격한 강의 침식은 주변 지역을 사막화하여 영주 댐 하류는 농수는 물론, 식수조차 끊어져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물을 공수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속한 강의 변화를 놓고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는 "퇴사량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낙천적인 결론 끝에 "문제점이 발생하면 적극적인 방안을 검토 할 것"이라는 한 줄 단서만 달아 놓았다. 그러나 현재 강의 변화에 대하여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실시하는 적극적인 방안은 내성천 구간에 5개의 보를 쌓는 일 외에는 없어 보인다.

이 5개의 보가 들어서는 곳은 영주 댐 하류 미림에서 무섬 마을까지 6킬로미터 거리에 3개, 1박 2일로 유명해진 회룡 마을 하류에 2개이다. 그러나 유사 조절지가 내성천의 모래톱을 보호하고 수심을 유지시켜 준다고 낙관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지역 주민 간에도 보를 쌓는 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섬 다리 아래 보가 생기면 더 이상 외나무다리 위에 서서 모래가 흐르는 물빛 고운 사행천을 볼 수 없을 것이며 회룡포의 백사장을 지금처럼 맨발로 걷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삼강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300킬로미터의 거리를 50미터의 고도로 완만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달리 삼강에서 영주 댐까지 56.6킬로미터 거리를 70미터의 고도차로 흐르는 내성천은 유속이 빠르고 여울과 소가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상류에서는 모래 길을 막는 영주 댐 공사가 진행 중이고 하류에서는 강이 깊어지면서 빨라지고 있는 유속의 변화가 강의 침식을 가중시키고 있다.

만일 지금과 같은 선택을 계속 한다면 미림과 무섬 마을에서 일어난 변화는 내성천 전 구간으로 확산 되어 수 십 개의 보를 더 만들어야 할 것이며, 마침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강 내성천은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것이다.
 

▲ 수도리 무섬강변 2011년. ⓒ지율스님


영주 댐은 2014년 12월 완공 예정으로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4대강 현장이다. 박근혜 정부는 4대강을 재평가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강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남아있다면 그 1순위로, 진행 중인 영주 댐의 폐해에 대하여 조사하고, 내성천 보호를 위한 좋은 답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다.

변해가는 강을 바라보며 하루하루가 가버리는 일이 일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초미지급의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강에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얼마 남지 않은 선택의 시간들이 다 가버리기 전에 강을 보듬으려는 정부의 정책에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보태어 져서 강이 편안해지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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