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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정,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시론] 선거 부정,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등록 : 2013.12.31 19:08수정 : 2013.12.31 21:37

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분쇄, 철도파업 승리 1차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여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의 조합원과 시민들이 “민영화를 막아내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첫번째 새해를 맞는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수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합니다!’를 외치면서 2013년 한 해가 저물었다. 지난 12월18일과 19일에는 재야 인사들과 종교인들,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선거부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시위에 나섰다.

 

12월28일 오후에는 보신각 앞에서 150여명의 변호사들이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시청광장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여기에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함께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시청광장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연대집회에 수만의 사람들이 운집해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난입을 성토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결의하고, 대통령의 불통을 비난했다.

 

이것은 국내만의 일은 아니다. 요즈음 한국인이라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그 어느 곳에서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을 규탄하고 쓰린 가슴으로 서로 안부를 묻는다. 외신들도 한국의 부정선거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는 전갈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그게 뭐 대수냐는 생뚱맞은 표정인데다 방송과 보수신문들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을 보노라면 부끄럽고 창피하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 국정을 맡기는 대의정치 제도의 근본을 이룬다.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지면 그 선거로 권좌에 오른 대표자가 정당성을 가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정당성을 잃은 자가 행사하는 권력은 국가권력의 외관을 지녔을지라도 벌거벗은 폭력일 뿐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역사에서 이승만·박정희와 전두환 일파를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들로 단죄하는 것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자기들의 행위를 치장해 본들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일 뿐 역사의 단죄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

 

주권자인 국민은 본래 가지고 있는 권한의 일부를 선거를 통해 대표자에게 위임하여 공직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위임은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한 위임일 뿐이다. 국민은 여전히 주권자로서의 지위에서 공직자를 감시감독할 권한이 있고, 위임의 본뜻에 따르지 않는 공직자에 대한 위임을 철회할 수 있다. 이것이 국민주권의 본뜻이며, 국민주권으로부터 연유하는 국민 저항권과 소환권의 근거를 이룬다.

 

그런데 지난 대선 직전부터 제기되었던 국가권력의 선거개입 의혹이 그동안 차츰 베일을 벗고, 국정원,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국방부, 보훈처 등 다수의 국가기관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부정행위를 전방위적으로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도 더 많은 부정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대선이 3·15 부정선거 이래 최대의 관권개입 부정선거였던 사실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이익을 받은 바도 없다’는 말로 진상규명을 피해가려 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답지 못한 치졸한 변명이다.

 

그뿐 아니라 검찰의 부정선거 수사를 방해하고 수사팀장을 축출하는 일마저 서슴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부정선거로 인한 정권의 위기를 덮으려는 수단인지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으로 진보정당을 옥죄고, 정당해산 심판 청구까지 제기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전교조의 노조 지위를 박탈하려는 시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말처럼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이익을 받은 바도 없다면 왜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을 저렇게도 두려워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공공연히 유신과 같은 권위주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인가.

 

대통령의 생각이 어떠하든 국민은 그가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그와 직접 관계가 없는지 여부를 떠나서, 그가 이익을 받은 바 없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그가 부정선거였던 지난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고 현재 국정의 최고책임자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국가의 근본 기틀을 뒤흔드는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에 대해 대통령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면 다른 어느 누가 이것을 대신 할 것인가? 만일 이러한 부정을 없다는 듯 덮고 넘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우리 국민들의 미래는, 우리가 그토록 애쓰면서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취임 당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겠다’고 선서하였으니, 여기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정선거는 헌법을 유린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국민은 당연히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에 대하여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1948년의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너무나도 많은 학살과 조작, 고문과 억압, 부정과 부패, 월권과 불의를 보아왔다. 그리고 그 모든 의롭지 못한 행태의 근본에는 국민의 의사가 아닌 부정선거로 찬탈한 권력, 총칼로 강탈한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러한 권력의 횡포에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이것은 일제 36년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후과일 뿐이다. 정부 수립 직후 출범한 반민특위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승만 정권의 친일경찰에게 무참히 유린되었고, 그 결과 36년의 참혹한 식민지배 기간 중 일본에 부역한 자들을 단 한명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4년여 뒤에 국권을 회복한 후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수만명씩 처단한 사례들을 보면, 우리의 경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이하고 황당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 이후 지금껏 그 불의한 권력은 대를 이어 계승되어 왔고, 그런 까닭에 권력이 자행한 불법과 불의 역시 제대로 청산된 일이 없다. 이것이 선거부정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선에 불복하느냐’고 호통치면서,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호도하려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믿는 구석이다. 이번 사태 역시 끝까지 버티면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은 분노하고 있지만 조만간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체념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라도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은 과거청산의 부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대선에서 저질러진 부정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임기를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철저하게 수사하여 책임이 있다면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 선거 부정행위의 공범이 기소되어 있으니 공소시효도 정지되었고, 책임이 있다면 처벌에 장애가 없다. 국민이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의 이 사태는 이명박 정권 초기에 있었던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로 촉발된 촛불시위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주권이 모욕당한 지난 대선, 선거권의 신성함이 오욕된 부정선거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의 그물은 넓어 성긴 것처럼 보여도 빠뜨림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하지 않는가. 만일 이 정권이 국민의 분노와 실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선거부정을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또한 국민의 열망을 읽지 못하고 반민주적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민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할 것이다.
최병모 변호사
권력의 즉각적인 와해를 가져오지는 않을지라도 국민의 불신과 권력의 누수로 인하여 심대한 정치적 무능에 빠져드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후일 우리의 역사는 이 시기를 나쁜 대통령의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4년 넘게 남은 임기를 생각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리고 지난 대통령선거 부정의 진상규명을 피해가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고 내외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길이다.

 

최병모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수호 비상특별위원장 최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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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민영화 투쟁은 계속된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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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1/01 15:35
  • 수정일
    2014/01/01 15:3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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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범대위, 철도노조 현장투쟁 지지...국회 철도산업발전소위 감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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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31  18: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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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저지라는 파업의 목표와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투쟁의 형태를 바꿨을 뿐"이며 "철도 민영화 저지의 끈을 절대 놓치 않겠다."

   
▲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31일 오후 KTX범대위 기자회견에 참석해 "철도 민영화 저지라는 파업의 목표와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투쟁의 형태를 바꿨을 뿐"이며 "철도 민영화 저지의 끈을 절대 놓치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31일 오후 'KTX민영화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KTX 범대위) '가 민주노총에서 가진 '철도노조 파업중단과 현장투쟁 전환에 따른 KTX범대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내 이같이 밝히고 "철도 노동자들은 이제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투쟁으로 전환한다"며 전날 발표를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국토교통부는 오랜 기간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게 된 철도 분할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입안했던 주체이면서도 노사간 교섭을 강요만 했을 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으며, 이 정책의 집행자임을 자임했던 코레일 역시 두세차례에 걸친 형식적 노사 교섭과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비난하고 철도의 정시 안전운행을 보장하라는 노조의 대화 요구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철도노조는 30일 오후 김명환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조합원들의 파업중단과 일터 복귀 명령을 하달했으며, 오늘 오전 9시부터 전국 15개 지구별 결의대회를 갖고 오전 11시까지 현업 업무에 복귀했다.

KTX 범대위는 먼저 철도민영화로 인해 발생할 요금폭등과 서비스 저하, 안전 불안을 우려하는 국민의 70%가 철도노조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동의해 주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또한 국회의 합의에 따라 설치하기로 한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통해 철도노조가 계속 요구한 '사회적 대화를 통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현장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KTX 범대위는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단계적 철도 분할 민영화 정책은 해가 바뀌면 '여객사업과 화물사업 분리', '물류 자회사 설립 추진'을 필두로 '차량 자회사', '시설 유지부문' 분리 등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강도 높게 추진 될 것"으로 예상하고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노동자들의 벗으로서, 노동자들과 뜻을 같이 하는 국민들과 함께 끝까지 함께 하고 현장투쟁에 돌입하는 철도노동자들을 지지·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여는 말씀을 통해 '이번 철도파업은 국민의 발이 되기 위해 국민과 함께 한 파업'이었으며 많은 국민들이 실제로 파업을 지지해 주었다고 말했다.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파업이 오늘(31일)로 23일째에 접어든 상황에서 파국을 막기 위한 종교, 사회계의 중재가 있었고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으나 정부는 자신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법적조치 등 강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민영화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철도노조가 내부수습을 마친 후 가장 주된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부와 코레일은 철도의 적자 해소 방안으로 분리 자회사를 통한 효율 추구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곧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며 "정부가 주장하는 경쟁과 효율은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며, 오히려 돈이 없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 KTX 범대위는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철도민영화로 인해 발생할 요금폭등과 서비스 저하, 안전 불안을 우려하는 국민의 70%가 철도노조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동의해 주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철도노조가 필수 공익근무자 7천명을 남기고 제한적 파업을 한 것은 전면 총파업을 하는 것보다 10배쯤은 어려운 일"이라며 "한국 노동운동사에 기록될 신기원을 열었다"고 지지의사를 표시했다.

또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노동자와 국민이 힘을 합쳐 철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가스, 의료, 교육 등 다른 공공부문의 민영화에도 결정적 쐐기를 박았다는 점을 가장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박석운 대표는 "철도노조는 필수 공익근무자들이 근무시간을 엄수하면서도 비번일 때 집회나 홍보전에 나서는 방식으로 '함께 투쟁하고 함께 현장에 들어가자'는 당초 목표를 100% 달성했다"고 평가하고 "박근혜 정권은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얻은 철도 민영화 저지에 한사코 맞서는 불통의 민낯을 보였다"며 제일 망한 측이라고 지목했다.

박 대표는 특히 앞으로 불법 강경진압 실패에 대한 보복과 수배자 구속, 조합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등 갖가지 탄압이 가해지겠지만 이는 정권측의 헛된 시도에 불과할 것이며, 불법관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정원시국회의 등 투쟁이 불타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교착국면에서 해결 실마리를 찾아서 다행"이라며 국민과 소통하면서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여론을 만들어 낸 것을 이번 철도노조 파업의 최대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로 국회 국토개발위원회 산하에 '철도발전소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해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열었지만 새누리당과 정부의 태도로 볼때 의제 설정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박원석 의원은 국회에 설치될 '철도발전소위'의 활동과 관련해서 정부 조차 KTX수서법인 면허발급이 '민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민영화 저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형성된 것을 법·제도로 확립할 것과 최소한 국회 철도소위 활동기간을 통해 검토되어야 할 사안들이 많이 포함된 만큼 면허권 발급 이후 정부 조치는 집행돼서는 안된다는 점, 그리고 철도노조에 대한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 사업처리등은 파업철외에 대한 합의정신에도 어긋나는 만큼 여야가 나서고 철도공사도 힘을 합쳐 최소화할 것 등 3원칙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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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지구는 안녕했나

2013년 지구는 안녕했나

 
조홍섭 2013. 12. 31
조회수 6 추천수 0
 

기후변화, 자연재해, 스모그, 오존층 파괴…

위성서 본 지구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안녕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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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홍수, 화산폭발, 산불 등 각종 자연재해에 시달리느라 지구는 2013년에도 그리 편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관측 프로그램에서 각종 인공위성과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통해 촬영한 지구의 다양한 사진으로 2013년을 돌아본다.
 
위 사진은 아폴로 8호 우주선이 1968년 12월24일 달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이다. 당시만 해도 지구의 기후변화 문제는 아직 심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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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의 얼음은 지구온난화의 지표로 최근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해 최악의 얼음층 감소를 겪은 그린란드는 지난해보다는 회복됐지만 여전히 기후변화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진은 지난해 12월30일 촬영한 것으로 올해 것은 아니지만 그린란드 남부의 전형적인 겨울 모습을 보여준다.
 

흰 눈으로 뒤덮인 내륙은 햇빛의 90%를 우주로 반사한다. 반면 바닷물은 6%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며 얼음은 반은 흡수하고 반은 반사한다. 그린란드 해안의 피요르드와 가파른 언덕은 지난 1000년 동안 눈이 얼음에 자리를 내주고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마다 3~4월이면 눈이 녹으면서 그 밑의 얼음도 녹아 얼음층의 후퇴가 급속히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쪽 해안의 소용돌이는 얼음을 띄운 북극의 찬 바닷물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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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은 중동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12월 10~13일 사이 이례적 폭설과 폭풍이 이 지역을 휩쓸었다. 구름이 모두 걷힌 15일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고지대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이 지역의 폭설은 드물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예루살렘에는 30㎝의 눈이 내려 도심이 마비됐고, 암만과 요르단에는 45㎝의 눈이 쌓였다.
 

지중해 해안의 녹색 부분은 저지대에 눈 대신 내린 폭우로 쓸려나간 흙탕물과 퇴적물이 바다로 흘러든 모습이다.
 
e3-4.jpg » 2011년(왼쪽)과 2012년 남극 상공의 오존 구멍 모습.

 

프레온 가스를 규제해 성층권 오존층 파괴를 막았다는 건 국제환경협력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남극 상공의 오존 구멍을 그림으로 표시해 해마다 그 변동상황을 알림으로써, 과학적 불확실성이 남아있음에도 염화불화탄소(프레온)를 줄이기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했다.
 

2011년 남극의 온존층 사진에서 오존 구멍 크기는 관측을 시작한 1980년대 이래 10번째로 큰 상태였고, 2012년엔 반대로 2번째로 작았다. 2011년에 갑자기 오존 구멍이 커진 이유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2012년에 오존층이 획기적으로 회복된 걸까?
 

미 항공우주국 과학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오존층은 인간이 방출한 염소의 양과 관련이 있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그랬다. 염소 배출량을 줄이면 오존 구멍도 작아졌다. 염소는 성층권에서 좀처럼 분해되지 않는다. 1990년대 말이 되면 성층권은 염소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아무리 염소 발생량을 줄여도 오존 구멍이 줄어들지는 않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그래프 참조).
 

e3-3.jpg » 오존 구멍 면적의 변천(단위: 100만㎢)

 

사실 2011년 오존 구멍이 그렇게 커진 것은 염소 배출량보다는 기상현상과 관련이 있다. 오존은 열대지방에서 생성돼 남극으로 옮겨오는데, 이해에 남극으로 부는 바람이 약해 옮겨온 오존의 양이 애초에 적었던 것이다. 이해에 남극 성층권의 염소 양은 평소보다 작았지만 워낙 오존 자체가 작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오존 구멍도 평소보다 커졌다.
 

2012년 오존 구멍이 작은 이유도 기상현상 때문이었다. 이해에도 오존 구멍은 매우 컸지만 10월 강력한 바람이 오존을 상층부로 불어 올려, 위성에서 관측하기엔 오존이 풍부해 구멍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몬트리올 의정서가 효과를 발휘해 성층권 염소 농도가 포화상태 이하로 떨어지려면 202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본다. 마침내 오존층이 정상화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2058~2090년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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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1200㎞ 거리의 방대한 지역이 심각한 스모그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위성사진이 보여준다. 지난 12월7일 촬영된 이 사진에서 두드러진 흰 부분은 구름이고 그 주변의 흰 부분은 안개를 가리키며 잿빛 부분이 스모그이다.

 

이날 미국 대사관이 측정한 베이징과 상하이의 초미세먼지(PM2.5)의 농도는 공기 1㎥당 각각 480, 355마이크로g으로 세계보건기구 기준 25를 18배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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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는 아시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아프리카 나미브사막의 거대한 모래 먼지가 나미비아 서해안에서 대서양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지난 5월5일 인공위성이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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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불의 고리’를 이루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는 세계에서 활화산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지난 1월11일 이 지역 키지멘 등 180㎞밖에 떨어지지 않은 4곳에서 화산이 동시에 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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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분출이 새로운 섬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지난 11월 말 일본 도쿄 남쪽 약 1000㎞ 지점에 있는 오가사와라 제도에서 화산분출이 새로운 섬 니이지마(새 섬이란 뜻)를 만들었다.
 

12월8일 촬영된 이 섬은 5만 6000㎡ 면적으로 20~25m 높이였는데, 애초 타도의 침식으로 저절로 사라질 것이란 예측과는 달리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본 당국은 이 섬이 몇 년은 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섬은 일본 영해 안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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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바누아투에 있는 지름 20㎞인 가우아 섬에서 화산이 분출해 수증기를 먼바다로 뿜어내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지난 5월31일 촬영한 이 화산은 이미 과거에 분출한 화산의 내부에서 다시 분화한 것으로 푸른 칼데라 호수가 옆에 보인다. 사실 이 섬 자체는 바다 밑에 감춰져 있는 높이 3000m, 폭 40㎞의 거대한 해저 화산의 꼭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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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바꾸어 놓은 모잠비크 남부 림포포 강 유역의 모습이다. 2005년 2월11일 촬영한 사진(위)에선 농경지와 시가지 사이로 얌전히 흐르던 강이 지난 1월 범람해 1월25일 촬영한 사진(아래)에선 주변을 거의 삼켜 버렸다. 이 홍수로 적어도 38명이 사망하고 15만 명의 이재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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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공우주국이 여러 위성 사진을 조합해 만든 지구의 최신 영상인 '블루 마블'의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야경. 인간 활동은 지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밤중에 본 지구에서 그 범위는 아직 미미하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미 항공우주국 지구 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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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1년, 'MB의 반격'이 있었나"

[인터뷰]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박세열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30 오후 4:15:20

 

 

이상돈 전 중앙대 법대 교수.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아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이라는 평을 듣던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지난 10년간을 복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1년 사이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한" 박 대통령을 보면서, 내놓은 그의 소회다.

이 전 교수는 2004년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개정 시도에 반대 논리를 제공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4대 개혁 입법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입장에서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전 교수의 '논리'가 주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환경법을 전공한 보수학자답게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정면 비판하며 2008년부터는 한나라당 정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인물이 됐다. 노무현 정부 여당(열린우리당)의 핵심 정책을 무산시키고, 이명박 정부 여당(한나라당)의 핵심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이 전 교수가 박근혜 당시 대표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간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이명박 대통령을 불신하는 보수층은 이 전 교수의 정치 참여를 보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차별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런 이 전 교수가 박근혜 정부 여당(새누리당)에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프레시안>과 마주앉은 그는 김병호 전 한나라당 의원의 언론재단 이사장 발탁 소식부터 꺼냈다. "김병호는 서청원과 결이 다르다. 서청원은 보수정당의 총체적 비리를 상징적으로 떠안아 개인으로 보자면 정치적 희생양의 측면이 없지 않지만, 김병호는 순전히 개인 비리로 정치를 그만뒀던 인물 아닌가"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특검으로 호남을 등졌다는 논리를 가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특검 수사하면 TK 등을 돌리게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게 맞는 논리인가"라고 허탈해 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대책 회의를 열고,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인사가 당당하게 "퇴임 대통령의 불행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언론 인터뷰에서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는 시기, 국정원의 대선 개입 활동이 있었고,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전단계 사업이라는 결과를 내놓은 감사원장은 결국 옷을 벗었다. 두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 어떤 기류가 있는 것인가. 그는 "(박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에게) 뭐가 (좋지 않은 모습이) 잡힌 것인가"라는 말도 했다.

이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를 2000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 빗댔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대통령을 했으나, 결국 '아버지 사람'인 올드보이 딕 체니를 부통령으로 기용해 실패의 길을 걸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별명은 '부통령'이다. 이 전 교수 인터뷰는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과 임경구 정치선임기자가 함께 했다.
 

▲ 이상돈 전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대통령의 포로라도 된 것인가? 미스테리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최근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언제부터 조짐이 이상했나?

이상돈 :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디 갑자기 (누군가의) 포로가 됐나? 미스테리다. 처음에 인사가 날 때 보면,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담되는 사람을 제외하고,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창중 사태가 났다. 그 때부터 뭔가 있었다. 윤창중은 좀 심하지 않았나.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두 번, 세 번 '안된다'고 했다지 않나. 그때 지지율 50%가 무너졌다. 지금이 그 때랑 비슷한데, 이번에는 회복할 길이 잘 안보인다.

프레시안 : 인수위 때부터 불안했던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기춘 비서실장 인사 때 화룡점정을 찍었던 것 같다.

이상돈 : 김기춘 실장은 (전반적인 국정운영에서) 통제가 안되니 어쩔수 없이 내세운 것 아닌가. 또 감사원에서 4대강 사업이 대운하였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한 후에 감사원 사무총장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아마 MB 측의 반격이 있었던 것 같다. MB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가지 정보를 들여다 본 것 아닌가. 2012년 대선 당시와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의 정보를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또 2012년 총선 공천이 어떻게 됐는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프레시안 : 전 정부와 현 정부간 서로 뭔가 꺼림직한 게 있는 상황이라는 것인가?

이상돈 : 다는 아니지만 그런 것도 있지 않겠나. 이명박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잇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상돈 : 지금 새누리당 의석이 155석 밖에 없다. 재보선에서 1~3석 정도 날아간다고 치고, 정두언 의원 대법원 판결이 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과반이다. 혹은 조만간 과반을 잃을 수도 있다. YS가 1995년 가을, 다음 해 총선 있기 전에 5공 청산을 했다. 당시 YS 정권에는 정국 반전의 사건이 만들어졌었다. YS는 정치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여론의 등을 업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감사원 발표 때 (이명박 정권에 대해 청산 등) 뭔가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 걸린 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이었다.

프레시안 : 이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을 오래 지켜봤는데,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대통령 아닌가?

이상돈 :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를 안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1대 1로 만났다. 그래서 만난 사람들이 아는 박근혜가 다 다르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그렇게….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 중 하나가 예측 가능한 정치였다. 그런데 취임 후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이상돈 : 경우에 어긋나는 것은 안하고, 순리에 맞게 갈 것을 기대하지 않았나. 이를테면 박 대통령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불통 논란 등과 관련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전반적으로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예를 들면 문화재 문제는 문화재 전문가를 만나서 얘기하고, 다른 문제는 그 전문가를 1대1로 만나서 얘기할 뿐이다. 전체적으로 박 대통령이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 "왜 여기에 대해 정권이 올인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가 쉽게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했을까? 난 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보면 이 정부가 정무적 판단이 없는 것 같다. '색맹(色盲)처럼 정무맹(政務盲)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철도 경쟁 체제 도입, 이해 안된다"

프레시안 : 철도 민영화 논란 얘기를 해보자.

이상돈 : 민영화는, 민간에 매각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경쟁 체제는 이해가 안간다. 철도가 철도와 경쟁한다는 것은 내 상식에 안 맞는다. 철도가 고속도로가 들어오면서 쇠퇴했다. 철도는 국가에서 하지 않으면 운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멕시코같은 나라는 철도를 거의 다 뜯어버렸다. 경쟁 논리라 하면 철도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철도 민영화를 하려고 했는데 누가 사갈 사람이 없었던 것 아닌가. 미국 철도는 민간 화물 위주로 돼 있다. 여객은 민간이 했다가 다 부도가 나서 없어져버렸다. 미국 철도 타면 '이게 철도인가' 싶다. 워싱턴, 뉴욕, 보스톤, 샌디에고 등 몇 개 황금 노선이 있지만 그것 말고는 없다. 수서발 KTX가 들어오면 서울 강남에서 고속버스와 수송 부분을 나눠먹는 것 아닌가. 경쟁이라니, 직원을 새로 뽑으니 연봉을 재조정하는 등 비용 감축 부분은 있을수 있더라도, 이해가 안간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으로 논쟁이 공권력과 불법파업으로 바뀌어버렸다.

이상돈 : 왜 여기에 대해 정권이 올인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가 쉽게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했을까? 난 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보면 이 정부가 정무적 판단이 없는 것 같다. '색맹(色盲)처럼 정무맹(政務盲)이다. 내가 수도 민영화(물 민영화) 부분을 공부를 많이 했다. 영국이 수도 민영화를 한 것은, 너무 낙후돼 있는데 개선할 돈이 없어서 그런 부분이 있다. 그런 논리로 철도 민영화를 나중에 했는데, 그것도 대처 때는 정작 철도 민영화는 못했다. 아무도 (철도를) 안 사려고 하니까. 영국 철도는 영국에서도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민영화도 민영화 나름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 수서발KTX문제는 정부에서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굳이 별도의 회사를 만드나. 철도가 통신처럼 다수 사업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프레시안 : 공기업의 적자 구조 개선이라든지, 공기업 선진화의 한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이상돈 : 지난 4~5년간 공기업 부채가 왜 폭증했나. 원인을 제대로 봐야지 않나. 4대강 사업, 자원 개발, 용산 개발 실패 등 (정책 실패로 인한 부채다). 그러면 책임자를 먼저 문책하고 나서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하지 않는다). 4대강 사업 부채가 수공에만 8조 원이 늘었고 경인운하까지 하면 10조 원이다. 철도도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넘어올 때, 이미 5조 원 이상, 인천공항철도 인수에 2조 원 이상, 그리고 용산 개발까지 하면 10조 원 가까이 정책부채다. 이걸 코레일이 떠안았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민영화를 하는 딱 하나 방법이 있다. 댐을 파는 것이다. 안동댐 등 2~3조 원씩 해서 팔아야 한다. 국내에서 안산다. 그러면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고 (민자 도로나 지하철 9호선처럼) 수익 보전해주는, 그런 방법 밖에 없다. 아니면 지자체가 댐 지분을 사도록 해서 물을 지자체가 마음껏 쓰도록 하든지.

프레시안 : 파업을 대하는 이번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보면, 철도 문제를 넘어 노동계 전반과 척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돈 : 그런 것을 일부러 일으키려 했다고 하면 어떤 음모론이 나올텐데, 아마추어이거나 초고단수 아니겠나. 나는 아마추어로 판단한다. 원래 생각했던대로 (노동계에 대한 강공책) 간다고 하더라도, 가게 되면 여론을 타고 가야 맞다. 그래야 일이 풀린다. 영국 대처 총리 얘기를 하는데, 대처가 탄광노조를 진압한 게 집권 5년차 때였다. 첫 파업 때는 (대처가) 양보했었다. 석탄이 없어서 그랬다. 이후에 파업을 대비, 석탄을 비축해 놓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전에 포틀랜드 전쟁에서 승전했다. 그런 식으로 여론을 업은 것 아닌가. YS가 전두환, 노태우를 칠 때도 등에 여론을 업었다. 역사를 보면 그렇다. 포클랜드 전쟁에 지고 탄광 노조에 대응했다면 대처는 몰락했을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대처식 개혁은 어땠나?

이상돈 : 대처가 임기 1년차에 했던 개혁은 공무원 개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로 치면 안전행정부를 없애버렸다. 공무원 관리하는 공무원들이니까, 이렇게 할 일 없는 공무원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리고 나서 한 것이 공단을 만들었다. 정부 기능이 '정책 결정'과 '정책 수행'이라면 정책 결정하는 기능은 별로 크지 않아도 된다. (정책 수행은) 대부분 인허가, 검사, 감독 등 '루틴'한 것(일상적인 것)을 한다. 영국은 그래서 반관반민(半官半民) 공단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정부는 정책 결정 중심으로 가는 것이다. 이게 대처 초기 개혁이다. 그런 와중에 전쟁이 났는데 승리를 했다. 그리고 지지도가 확 올랐을 때 탄광노조를 진압한 것이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노조에 대한 대응을 대처에 비유하는 것은 뭘 잘 모르는 것이다. 대처는 정치가였다.

프레시안 : 지난 1년을 보면 대처하는 방식이 비슷했던 것 같다.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했을 때도, 전교조 법외 노조 통보를 했을 때도, 특정 여론만 의식한 것 같다.

이상돈 : 그런 것들을 어떻게 동시다발적으로 했는지…. 이번에는 제일 큰 것(노동계 전반)을 건드렸는데,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통합진보당 같은 경우도 원칙대로 했고, 이것도 원칙대로 했다고 생각했을수도 있겠다.

프레시안 : 그런 측면에서 보면 노조에 대한 이해가 상식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이상돈 : 노조는 나도 잘 이해를 못한다.(웃음) 다만 과거에 보면 노사문제가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현실적인 벽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대처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게 정치 아닌가.

"쓴소리 해도 전화도 안온다. 청와대 항의 전화 받아보는 게 소원"


 

▲ "김종인, 안대희가 양 쪽에 상징적 인물이었다. 두 사람을 보고 사람들이 찍었지 김기춘을 보고 찍은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국정원 댓글 사건부터 복기해보자. 전두환 추징금 환수도 마치 민주노총 진입하듯 해버리기도 했다. 대부분이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국정원 사건, 통합진보당 사건, 이석기 사건 등등 현재까지 숨가쁘게 왔다. 어떻게 보나?

이상돈 :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줬던 것은 개성공단 해결, 그리고 이석기 사건 정도였다. 전두환 추징금 환수 수사도 국민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외교 관계에서 대통령 지지라는 것은 거품이 많다. 1991년 걸프전 때, 아버지 부시 대통령 지지도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 여론이 싸늘해지면서 결국 클린턴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결국 자기를 당선시켜준 것은 국정 공약, 어젠다,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1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이른바 껍데기만 남은 게 돼 버렸다. 경제민주화도 지난 번에 (7월에) 끝내버렸지 않나. 대선 공약이라는 것은 임기 내내 가져가야 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공약을 종결시키는 정권은 처음 봤다. 20만 원 기초노령연금 문제도 사실상 종결시켰다. 나머지 임기는 뭘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 경제민주화, 복지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나름 진정성이 있는 인식을 했던 사안 아닌가?

이상돈 : 몇 년씩 얘기해왔던 것들이다. 작년 대선에 NLL같은 이슈 제외하고, 양당의 공약을 보면 차별성이 별로 없었지 않나. 그러나 대선 끝나고 나서는 너무 혼란스럽다. 6개월만에 공약을 매듭짓는 정권이 과거에 있었는지…. 못해도 가지고 가야 여론이 호응을 하는 것 아니겠나. 내가 이런 얘기하면 청와대에서 못마땅해 한다.

프레시안 : 청와대에서 전화도 오나?

이상돈 : 나한테 전화도 안온다. 항의 전화 받아보는 게 소원이다.(웃음)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대선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또 있지 않나.?

이상돈 : 내 문제도 포함되기 때문에 말을 안하는데, 지난 번에 선대본부가 두 개가 있었지 않나. 김종인, 안대희가 양 쪽에 상징적 인물이었다. 이들을 보고 사람들이 박근혜를 찍었지 김기춘을 보고 찍은 것은 아니다. 굉장히 (그 사람들에게는) 아픈 부분이다. 내가 얘기할 부분은 아니지만.

프레시안 : 인사 스타일이 왜 그럴까?

이상돈 : 누구도 모르는 것이지 않나. 공식적인 답은 '전문가'여서 뽑는다고 한다. 그런데 수석이나 장관 중에 전문가다운 전문가가 누가 있나.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연구소다. 첫째, 교통연구원이다. 그리고 건설기술연구원, 환경정책평가원이다. 대부분 SOC나 4대강 사업 등이 연관된 곳들이다. 박정희 정권때도 연구원들이 무리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연구원들이 자조적으로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쓰레기는, 버리면 좋다. 그런데 그것을 따라서 하니까 문제다. 문제 공기업을 개혁하려면 먼저 연구소를 개혁해야 한다. 공기업 부채가 왜 생기나, 정부가 보증을 서주니까 돈 받아가는 것 아닌가. 공기업 인건비 문제를 얘기하기 앞서 터무니없는 정책사업을 합리화시킨 연구원부터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부분에서 책임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지한 것도 있는데, 그 부분에 총대를 매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2000년 '아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랑 닮아간다는 지적에 대해 설명을 좀더 해달라.

이상돈 : 나는 클린턴을 별로 안 좋아했다. 하지만 부시가 솔직히 좀 부족하지 않나. 그래서 딕 체니(Dick Cheney) 부통령과 함께 해 부족한 부분이 보완되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그게 결국 독이 됐다. 2000년, 2004년 부시 당선, 재선의 1등 공신이 정치 컨설턴트 칼 로브(Karl Rove)였다. 칼 로브가 딕 체니를 들이는데 반대를 했었다. '딕 체니를 부통령을 시키면 당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반대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체니가 들어오니 체니가 자신의 멘토 럼스펠드를 데려왔다. 완전히 70년대 모습이 돼버린 것이다. 럼스펠드가 40대에 국방장관이 된 사람이다. 체니는 그래도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 1988년 당선) 때 국방장관을 했었는데, 럼스펠드는 실각된 이후 제약회사 사장 같은 엉뚱한 경력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모든 사람이 놀랐다.

결국 사고(이라크 전쟁, 전쟁 당시 럼스펠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그 명분은 거짓으로 드러났다.편집자)를 친 것 아닌가. 체니나 럼스펠드 같은 사람들은 이미 2000년 시점에 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칼 로브 얘기가 맞았던 것이다. 칼 로브는 외교 전문가가 아니고 정치 전문가다. 사회 여론을 읽고 공화당의 주인 의식과 함께 사명감이 있었던 사람이다. 럼스펠드를 해임할 때도 칼 로브가 자신의 힘으로 안되니 로라 부시에게 부탁해 해임을 시켰다. 당시 체니와 럼스펠드가 나이가 너무 많았다. 대통령보다 한 세대 이상 많았다.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사를 알아야 한다.

 

▲ "이제는 다음 선거에서 어떤 공약을 내도 스윙보터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 100% 수성은 불가능…중요한 것은 '스윙보터' 민심"

프레시안 :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이 1년동안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이상돈 : 지금 현재, 대통령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국민들은 연관돼 있다고 믿는다. 믿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의 특검 거부 때문이라고 본다. 잘못된 메시지를 준 것이다. 집권 1년에, 소수가 주장하긴 하나, 어찌됐든 '하야 슬로건'이 나오지 않나. YS때 그랬나, DJ때 그랬나? 안 그랬다. 대통령 본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주변사람 관리에 실패한 것 아닌가. 국정원 문제 해결 안하면, 정부에 대해 비판의 빌미가 생길 때마다 (야권에서) 이것을 계속 들고나올 것이다. 국회도 취약한 구조다. 여당이 지금 겨우 155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취약한 의석을 가지고 있으면 국민 편에 서야 한다. 야당과 타협도 해야 한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명박과는 다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안 찍었으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됐겠나. 대통령이 그 사람들을 지금이라도 살펴야 한다.

프레시안 : 내년 지방 선거 전망, 어떻게 보나?

이상돈 : 지난 지방선거(2010년) 때 민주당이 워낙 싹쓸이를 해놓았기 때문에, 지금 민주당이 100% 수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민주당이 어느 정도 선방하느냐, 서울시장, 경기도지사는 누가 되느냐, 이게 관건이다. 통합진보당이 만약 지방선거 전에 해산되면 후보를 못낸다. 후보를 못내면 민주당이 유리할 것 아닌가. 그러나 지방선거 전에 해산이 안 됐다? 그러면 통합진보당이 후보를 내게 되고, 그러면 민주당에 불리할 수 있다. 해산 판결이 선거를 넘겨서 나올 가능성이 제일 높은데, 그 경우 민주당에게는 '최고 악재'다. 통진당은 자신의 존재를 강화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후보를 내고 더욱 더 세를 모을 것이다. 그러면 새누리당이 득을 본다. 지난해 총선 대선에서는 두 개의 정당이 전부 좌클릭을 했다. 그러면 보수가 유리하다. 앞으로 민주당이 세를 불려서 야권 통합해서 우클릭을 하고, 새누리당에 맞서면 2016년 가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프레시안 : 외교 부문 지지는 거품이 낄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는데,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부분이 외교 성과다.

이상돈 : 일반 국민들이 외교에 대해 그렇게 깊은 생각을 안한다. 지난 번에 바이든 부통령이 와서 한 얘기가 있는데 '베팅 잘하라'는 발언이다. 적절치 못하긴 하지만, 최근 브레진스키(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존스홉킨스대 교수, Zbigniew Kazimierz Brzezinski)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은 중국 편에 설것인가, 일본 편에 설것인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중국에 '베팅'했다가 옐로카드 먹은 것 아닌가. 대외 전략에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대일 외교는 상황이 좋지 않은데, 내가 대통령에게 어드바이스를 했다면 정상회담 카드는 초기에 쓰지 말자고 했을 것이다. 어려울 때, 사안을 풀 때 써야 하는데, 지금 너무 많이 써버렸다.

프레시안 : 중요한 것은 민생인 것 같다. 거의 6개월만에 대선 공약을 완수했다고 하는데, 민생은 여전히 어렵다. 최근 철도 노조 파업이 커진 것도, '안녕하십니까' 열풍 등 젊은 층에서 쏟아져 나온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구와 맞물려 있었다. 이들은 민영화 불안이, 더 어려운 세상에 대한 불안으로 치환되는 것 같다.

이상돈 : 민영화는 안 한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윙보터(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들. 스윙보터들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게 된다. 편집자)다. 대통령의 참모들이 신경쓸 부분은 바로 이들이다. 칼 로브의 전략도 그랬다. '국가 백년 대계를 져버리고 스윙보터만 잡으면 되느냐'는 반론이 나올수 있는데, 그렇다면 100년 대계는 잘 보나? (여야) 양쪽의 골수 지지자들을 뺐을 때, 지난 대선에서는 스윙보터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권은 과거 이명박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아닌가. 그 신뢰가 무너진 게 독이라고 본다.

이제는 다음 선거에서 어떤 공약을 내도 스윙보터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또 스윙보터는 대통령을 찍을 때 후보 본인 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을 보고 찍는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2016년, 2017년 선거에서는 좋지 않은 일들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대통령이 됐으니 국가 백년 대계를 향해 간다'고? 만약에 그렇다면 할 말이 없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이 그래서 실패하지 않았나. 두 개 정권의 실패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10년간을 복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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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31 08:37l최종 업데이트 13.12.31 08:37l
권우성(kws21)              김동환(heaneye)

 

 

한국 경제, 안녕들 하십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과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경제 분야 전문가 3인과 함께 '근혜노믹스' 1년을 돌아봤습니다. 첫 순서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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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조 교수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는데 회복하려는 노력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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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부가 경제 민주화와 경기 활성화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문제는 누구도 정부를 안 믿고 있다는 거죠. 정부의 경제 정책은 뭐가 됐건 이렇게 '믿음이 안 간다'는 인상을 주면 의도한 효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 기업에 투자 독촉해봐야 투자가 안 나와요."

"신뢰가 무너졌다"는 표현이 와 닿았다. 그는 이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재벌개혁 전문가답게 기업 여론에도 밝았다.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기업 쪽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는 말도 했다.

24일 연구실에서 마주앉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근혜노믹스' 1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는데 회복하려는 노력이 안 보인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성적도 신통치 않지만 그보다는 학습 태도가 더 문제인 학생을 평하는 투다. 그는 "적절한 정책이 나와도 지금은 시장에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걸까. 김 교수는 올해 박근혜 정부가 범한 가장 치명적인 실수로 7월에 있었던 박 대통령의 발언을 꼽았다. 박 대통령은 6월 말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일부 통과되자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마무리됐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경제민주화 포기'로 비춰져 정부의 신뢰도를 크게 낮추고 시장 참여자들을 교란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계·기업의 부채 압력이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MB 정부 때 급격히 늘어난 부실기업을 빠른 속도로 솎아내지 않으면 경제의 활력 자체가 죽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하면서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년부터는 노사문제도 본격적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경제 민주화도 경기 활성화도 실패"

우선 근혜노믹스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부터 물었다. 김 교수는 웃으며 "솔직히 그런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느낀 근혜노믹스는 '혼돈'이었다. 김 교수는 "올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부분적으로 보면 잘 한 것과 잘 못 한 게 섞여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관된 방향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대선과 집권 초기에는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내세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민주화는 접어버리고 경기 활성화를 밀기 시작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이같은 경제정책 운용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예측가능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정책이 예측 불가능하고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경제 주체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경제민주화도 경기활성화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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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지난 7월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식으로 말했거든요. 이 말이 나온 이후로 재계에서는 모든 경제민주화 공약을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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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가 상반기에는 공약대로 경제민주화를 하는가 싶었는데 하반기에는 상당히 흐지부지 됐습니다.
"경제민주화도 중요한 목표지만 경기 활성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입니다.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부채 압력을 생각하면 극단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할 수도 있는 그런 상태거든요.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활성화 시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경제민주화를 가져가야 식으로 둘 다 해야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 경제민주화는 아예 접고 경기 활성화에 주력하는 분위기인데요.
"대통령이 지난 7월에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죠.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 6개가 통과되니까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식으로 말했거든요. 이런 식의 발언은 경제 주체들에게 의미있는 '신호'로 작용합니다. 이 말이 나온 이후로 재계에서는 모든 경제민주화 공약을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헛갈려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금 한국의 경제 흐름이 경기활성화 쪽으로 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흐름이라는 게 있거든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서 당선됐는데 그건 경제민주화라는 게 이미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를 접고 경기활성화? 그렇게 안 됩니다."

- 예를 하나 들어주신다면.
"얼마 전 삼성 그룹이 계열사 간 지분율을 조정했어요. 시장에서는 이걸 후계자 승계를 염두에 둔 계열분리로 해석했지만 사실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피하기 위한 조치의 성격이 강합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을 전체의 30% 이하로 낮추고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도 30% 이하가 되도록만 만들면 일감 몰아주기에 안 걸리거든요.

삼성 뿐만 아니라 10대 그룹 전체가 하반기에 비슷한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년 6월 일감몰아주기 과세신고에 총수 이름이 안 올라가게 하겠다는 거죠. 내년에는 정의선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로 얼마 내고 이재용이 얼마 냈다는 식의 기사가 안 실리게 하겠다는 거에요."

- 올해 6월에 나온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자체가 '신호'가 됐다는 거군요.
"시민사회에서는 그 법 나왔을 때 내용이 미비하다고 불만이 많았어요.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의 일감 몰아주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인 셈이죠. 그러면 기업은 피해갈수밖에 없어요.  사실 전 이 법이 나왔을 때 재벌 대기업들이 위헌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상속·증여세법은 세금을 한 번만 내면 되는데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매년 하도록 되어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와서 누가 위헌소송 냅니까. 이렇게 우리 사회의 합의가 어느 방향이라는 걸 분명히 제시해주면 기업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기업부채 심각...주인있는 40대 재벌기업 중 25%가 부실기업"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경기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채무부담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0.9%의 기업이 모든 기업이 내는 이익의 60%를 가져간다"는 말도 했다. 그만큼 현재 한국 경제가 기형적인 형태로 침체되어 있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지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부채는 이미 가계부채 위험도와 동일한 수준이다.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만드는 주범으로는 부실기업을 지목했다. 그는 "동양사태에서도 드러났던 것처럼 총수 일가들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회사의 부실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를 안정적으로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적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올해 드러난 한국경제의 대표적인 위험요소가 있다면.
"부채죠. 정부 부채는 아직 여유가 좀 있고 가계 부채는 어느정도 예상한 문제인데 기업 부채는 정말 심각합니다. 투자나 고용에도 악영향을 끼치고요. 사실 지금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를 빼고는 이익이 나오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MB정권 5년 동안 '비지니스 프랜들리' 기조 아래 구조조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부실 기업들이 급증했어요."

- 부실기업이 어느 정도나 되나요?
"통상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서 이자보상비율이 1이 안 되는 상태가 2~3년 지속되면 부실기업이라고 합니다. 현재 주인이 있는 재벌그룹 40개 중 절반 가까이가 연결재무재표로 계산했을 때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요. 그중 절반은 이자보상비율이 1이 안 되죠."

- 부실기업이 늘어난 이유는 뭐라고 보시나요?
"이번 동양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총수일가들이 자기 이익 때문에 부실기업이 생겨도 구조조정을 안 합니다.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구조조정을 해야하는데 오히려 다 분식회계하고 배임하고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쓰레기 기업'이 된 후에야 법정관리 신청을 하죠.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런 걸 막으려면 기업 내부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공시나 신용평가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 올해 정부가 입법 예고했던 상법개정안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는데 결국 재계 반대로 아직 법안이 제출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에 10대 그룹 총수와 오찬 회담을 가진 후에 바로 수정에 들어갔죠.(웃음) 상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이중대표소송제도 두 가지입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된 사외위원이 해당 기업을 모니터링하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중대표소송제도는 비상장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장되어 있는 모회사의 주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에요. 총수가 마음대로 그룹을 휘두를 수 없게끔 기업 내부에 아주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이지요."

- 재계에서는 왜 반대했나요.
"이게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에요. 그래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도 올해 초까지는 드러내놓고 반대를 못했어요. 경제민주화 분위기도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정도의 분위기였지요. 그런데 자꾸 정부가 경제민주화 끝났다는 신호를 주니까 상법개정안 전부를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어요."

"박근혜 정부, 양극화 해결 반드시 이뤄진다는 일관적인 신호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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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에서 소통과 신뢰 얘기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아무리 말로 해 봐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소통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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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가 사상 최장인 23일간 전면 파업을 벌였다. 파업의 주 이유는 임금인상이 아니었다. 대선 공약에서 국민 동의없이는 민영화 없다고 약속한 정부가 철도민영화를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신뢰의 문제가 경제영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내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신뢰의 회복을 꼽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경기활성화 정책은 효력도 없을 뿐더러 지속가능성도 떨어진다는 이유다. 그는 "특히 양극화 해결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반드시 이뤄진다는 일관적인 신호를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박근혜 표 경제민주화는 끝났다'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올해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또 바뀔수가 있거든요. 저는 시민사회 움직임만 보는 게 아니라 기업 쪽 사람들도 많이 만나요. 기업들이 공통으로 하는 불만이 뭐냐면 경제민주화든 경기활성화든 다 좋은데 어느 방향으로 갈지 분명하게 알려달라는 겁니다. 사업이라는 게 미래가 불투명하면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로비활동 말고는 뭘 할 수가없어요."

- 경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내년에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일은 무엇일까요?
"내년 한국경제 화두는 노사문제라고 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각종 노동 현안들이 산적해있고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경기 활성화로 들어가면 바로 충돌이 일어날 거에요."

- 애초 약속은 경제민주화였으니까요.
"그렇죠. 양극화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 줄 거라는 신뢰를 줘야 합니다. 청와대에서 소통과 신뢰 얘기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아무리 말로 해 봐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소통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죠.

진보 학자로서 제가 원하는 경제민주화를 박근혜 정부가 다 해줄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해줘야 하는 시대적인 과제가 있습니다. 야당 역시 대선 때 똑같이 경제민주화를 제시한만큼 그에 걸맞는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실현을 시켜야 합니다."

- 박근혜 정부에 당부의 한 마디를 하신다면.
"35개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정권 내에 완성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기 활성화 정책을 우선적으로 펼수도 있습니다. 경제 환경에 따라 정권의 선택은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경제민주화 기본 방향은 절대 잊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을거라는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정된 정책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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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참으로 ‘고래심줄’ 같은 사람이군요

 
 
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편집국  | 등록:2013-12-30 11:19:52 | 최종:2013-12-30 11:20: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어떤 대통령은 피살되고, 어떤 대통령은 자살하고, 어떤 대통령은 재산의 대부분을 내놓았지만 한국 엘리트집단의 대표 김기춘은 늘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남달리 근면하고 성실했지만, 역사에 대한 정직성만큼은 검프와 달랐다. 지난 8월6일 청와대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정홍원 국무총리와 함께 서 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특집 / 김기춘뎐(傳) - 기춘대원군의 흑역사
육영수 저격범 사형 ‘공로’로 35살에 중정 국장 발탁
‘초원복집’‘유서대필’ 등 위기마다 빛난 ‘뒤집기 능력’

▶ 오죽하면 ‘기춘 대원군’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왕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으면서도 최고의 권력을 휘두른 19세기 말 조선의 실세 ‘흥선 대원군’에서 따온 말이랍니다. 지난 8월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김기춘은 ‘총리 위의 비서실장’ ‘막후 실세’ ‘부통령’ ‘왕실장’으로도 불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할까요?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김기춘이라는 사람의 ‘흑역사’를 꼼꼼히 짚어보았습니다.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100장 넘게 써 온 것을 60장으로 줄였습니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티브이엔(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배경이 된 해에 가장 히트한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였다. 미국 역사의 격동기였던 1960년대와 70년대를 배경으로 아이큐 75 포레스트 검프의 삶을 그린 영화다. 극 중에서 검프는 마틴 루서 킹의 연설 등 역사의 굽이굽이에 모두 등장하면서 케네디, 존슨, 닉슨 등 역대 대통령과 만나기도 한다. 언론과 온라인에서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은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역시 포레스트 검프처럼 격동의 한국 현대사 굽이굽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남달리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른 점도 무척 많다. 포레스트 검프의 아이큐는 75에 불과하다. 머리 좋기로 빠지지 않을 안대희 전 대법관(검찰 출신)은 “나는 김기춘에 비하면 발바닥”이라며 그의 아이큐는 170대일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두 사람의 더 큰 차이는 아이큐보다도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한, 그리고 역사에 대한 정직성이라 할 것이다. 어느 리뷰에서 “혼란의 시기 속에 ‘순수’와 ‘사랑’을 잃지 않은 한 인간”이라 평한 포레스트 검프의 삶은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지만 기춘대원군의 흑역사는 나에게 두 가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바퀴벌레와 오뎅.

 

 

5·16 장학금 받고 광주의 사위가 되다

 

온갖 환경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3억2천만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지구의 터줏대감 바퀴벌레. 그 어떤 방법으로도 퇴치가 불가능하다는, 마음 고쳐먹고 동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그 바퀴벌레. 오뎅은 한국 엘리트 집단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저녁때 장사를 나와 오뎅을 끓이면 새벽에 일 마칠 때까지 통을 비우는 법이 없다. 오뎅이 많이 팔리면 꼬치 더 집어넣고, 국물 졸아들면 물 더 붓고, 싱거우면 간장과 양념 치고, 무 더 썰어넣고, 그렇게 해서 새벽까지 통을 비우지 않고 오뎅을 판다.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일제시기로, 일제시기에서 해방으로, 군사독재에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그 숱한 상황변화에도 한국 엘리트 집단의 본류는 단절된 적이 없다. 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 한국 엘리트 집단이라는 종을 대표하는 개체가 바로 ‘왕실장’ 김기춘이다.

 

1939년생인 김기춘은 2013년 8월5일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을 유행시키며 일흔다섯의 나이에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조선왕조 500년을 포함해도 최고령 도승지(조선시대 승정원의 6승지 중 수석 승지로 왕의 비서장 격)가 아닐까 한다. 김기춘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역대 최고령 도승지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역대 가장 막강한 비서실장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부도옹(不倒翁) 덩샤오핑이 있다면 한국에는 격변의 세월을 살아남아 대원군에 오른 오뚝이 김기춘이 있다.

 

김기춘의 독특한 이력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정수장학회 장학금 수혜자들의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1958년 서울법대에 입학한 김기춘은 3학년 때인 1960년 말에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김기춘이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것은 1963년과 1964년, 그가 해군 해병대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 모르지만 서울대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이것이 그가 박정희 일가와 처음 인연을 맺은 때다. 흥미롭게도 5·16장학회 설립에는 박정희의 사단장 시절 법무참모를 지낸 신직수(1927~2001)가 깊이 관여했다. 대한민국에서 관운이 제일 좋다는 소리를 들은 신직수는 법무장관, 중앙정보부장, 대통령 특보 등 자리를 옮길 때마다 김기춘을 데리고 다니며 오늘의 그를 만들어준 후견인이었다.

 

군복무를 마친 초임 검사 김기춘의 첫 발령지는 광주였다. 일설에는 그의 장인이 된 박찬일 변호사가 김기춘을 사위로 삼기 위해 김기춘의 첫 부임지가 광주가 되도록 로비를 했다고도 한다. 반면 김기춘 자신은 서울법대 동기동창의 동생으로 지금의 부인인 박화자 여사에게 반해 그와 결혼하려고 스스로 광주를 임지로 선택했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1990년 1월5일치) 김기춘이 결혼식을 올리던 1965년만 해도 아직 영호남 간에는 지금과 같은 험한 지역감정이 없었다. 김기춘은 대단한 애처가로 알려져 있다. 다들 악몽처럼 기억하는 일이지만 김기춘은 한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지역감정 조장 사례인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이었다. 그런 김기춘이 처가가 광주였고, 광주 출신의 아내를 매우 사랑한 부드러운 남자였다. 이완용이 최고의 학식과 인품과 교양을 갖춘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것처럼.

 

 

60년대
아이큐 75지만 순수와 사랑으로
뭉클한 감동 준 포레스트 검프
머리 좋은 서울법대생 김기춘은
3학년때 사법고시 합격하고
5·16장학금 받으며 권력과 인연

 

70년대
신직수 따라다니며 승승장구
유신헌법의 알맹이를 만들고
재일동포 간첩사건 고문 조작
문세광 입 열어 사형시킨 뒤
박근혜 원수 갚아준 은인으로

 

 

유신헌법 직접 만들었으니 ‘티브이 명해설’

 

김기춘은 1967년 부산지검 검사, 1969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1년 8월에 법무부 법무과 검사로 발령이 난다. 1971년 6월 신직수가 법무부 장관이 된 직후였으므로, 신직수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되었다. 서울법대 헌법학 교수로 있다가 유신헌법 제정에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뒤에 유신정우회(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정책위의장을 지낸 한태연은 2001년 12월 한국헌법학회가 연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유신헌법 제정 과정과 김기춘의 역할에 대해 상세한 증언을 한 바 있다.(“유신헌법은 박정희가 구상하고 신직수·김기춘이 안을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2001년 12월9일치) 한태연은 “측근들 얘기를 들으면 평소부터 박 대통령은 드골 헌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며 “김기춘 과장을 파리에 보내 1년 동안 드골 헌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한태연은 “나와 갈봉근 (당시 중앙대) 교수가 (법무부에) 가보니 신직수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며 “장관이 ‘골격은 손댈 수 없다’고 해 ‘자구 수정’ 정도만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기춘은 자신은 파리에 간 일이 없고 당시에 과장이 아니라 평검사였다며, 자신은 프랑스에서 ‘비상사태하에서 대통령 권한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 등에 대해 조사하여 보고하는 정도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고 한태연의 발언을 부인했다. 디테일에서는 한태연의 기억이 착오일 수 있으나, 비유해서 말한다면 한태연은 유신헌법의 포장지를 만들었고 김기춘은 그 알맹이를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김기춘은 또 유신헌법에 대해 “티브이에 나와 명해설을 하기도 해 이름이 났었다”고 한다.(<경향신문> 1981년 4월27일치) 유신헌법 제정 공포 이후 첫 검찰인사(1973년 4월초)에서 김기춘은 법무부 ‘인권옹호과’ 과장으로 승진했다. <중앙일보> 1973년 4월3일치는 김기춘과 그의 고시 2년 선배인 정해창이 “유신체제의 법령 입법과 개정의 공로와 실력이 높이 평가되어 유례없이 발탁”되었다고 보도했다. 1973년 봄의 검찰 인사에서 법무부 과장(부장검사급)으로 승진한 사람들이 주로 사법고시 8회(<경향신문> 1973년 4월2일치)였기 때문에 12회인 김기춘이 승진한 것은 참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평검사 김기춘은 과장(부장검사)으로 승진했지만, 법무부 장관 신직수는 1973년 말 중앙정보부장으로 영전했다. 이때 신직수는 김기춘을 중앙정보부로 불러들여 부장의 법률보좌관을 삼았다. 1974년 8월15일, 35살의 새파란 검사 김기춘을 40년 후 최고령 도승지로 만들어준 숙명의 사건이 일어났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분노한 재일동포 문세광이 국립극장에서 박정희를 저격했고 그 와중에 육영수가 피격 사망한 것이다.

 

김기춘은 이 사건 수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춘 자신이 <시비에스>(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증언한바, 문세광은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나 “8월16일 오후 5~6시경까지도 묵비하고 일체 질문에 답을 안 했다”고 한다. 김기춘은 문세광의 말문을 열도록 하라는 신직수의 지시로 수사팀에 합류했다. 김기춘은 “피의자들을 신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질문”이고, “보통 첫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면 계속 답변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기에 고심 끝에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드골 프랑스 대통령 암살을 다룬 <자칼의 날>이라는 소설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때까지 일체의 답변을 거부하던 문세광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선생도 읽었냐고 말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김기춘은 문세광이 일체의 신문에 8월16일 오후 5~6시경까지도 묵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조간신문 8월16일치를 보면 문세광이 이미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진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육영수가 실제로 문세광의 총에서 발사된 총탄에 희생된 것인지는 지금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당시 수사당국은 첫째 ‘육영수 여사의 살해범은 문세광’이고, 둘째 ‘그의 배후에는 조총련이 있다’고 단정지었다.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문세광을 범인으로 특정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게 만든 김기춘 등 수사진은 바로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준 고마운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현재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김기춘에 대한 박근혜의 신뢰와 고마운 마음을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세광 사건 수사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 김기춘은 그 공으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승진했다. 김기춘은 서른다섯살 나이에 중앙정보부에서 가장 막강한 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유신체제 유지의 대들보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대공수사국장 시절 김기춘의 대표작이 1975년 11월22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적발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요 피해자들은 재일동포였고 사건 관련자들은 부산대·서울대·한신대에 유학중이거나 이들과 친하게 지낸 재학생들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1975년은 인혁당 관련자 사형 집행, 남베트남 정권 붕괴, 장준하 암살 등 참으로 살벌한 때였다. 부산대로 유학 온 김오자라는 젊은 재일동포 여학생은 한국 사회를 엄습한 그 깊은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혼자 유인물을 쓰고 만들고 뿌렸다. 거기서 단서가 잡혔다. 그때만 해도 유인물에 한자를 쓸 때였는데 노동을 한자로 쓰면서 일본식으로 동에 사람인변을 붙여 으로 쓴 것이다. 중앙정보부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재일동포 유학생들이 무더기로 붙잡혀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한국에 와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은 200~300명에 불과했는데 이 사건 하나만으로 전체의 10%가량이 한꺼번에 간첩으로 몰렸다. 김오자 등은 수사과정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김오자의 옆방에서 수사받은 재일동포 유학생 김동휘에 따르면 ‘인간의 비명 소리가 아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박정희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한겨레21> 제885호, 2011년 11월14일치)

 

 

허화평한테 궁지 몰리자 박철언한테 매달려

 

수사책임자 김기춘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이 사건의 또다른 특징으로 관련자 중에 여학생이 많다는 점을 꼽으며 “지하철이나 버스정거장 등지에서 중견장교에게 추파를 던져 접근, 소속부대의 임무 등 군사기밀을 빼내려 했다”고 주장했다.(<중앙일보> 1975년 11월22일치) 5공 시절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에 공안검찰이 운동권 여학생들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삼는다고 비난한 바 있는데 김기춘은 그 10년을 앞서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몇 명 되지 않았던 부산대 운동권은 쑥대밭이 되어 1979년 10월 부마항쟁으로 폭발할 때까지 만 4년간 데모가 한 건도 없었다.

 

6공의 황태자라 불렸던 검찰 후배 박철언은 5공화국 시절 김기춘이 궁지에 몰렸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실이 있는데, 이를 자기 회고록(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1>)에 자세히 털어놓아 김기춘을 거북하게 만들었다. 김기춘이 죽다 살아난 이 사건을 살펴보려면 먼저 1977년으로 돌아가보아야 한다.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뒤 <동아일보> 논설주간 황호택은 과거 김기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했다.(인터넷 동아일보 2013년 8월15일치, ‘황호택 칼럼-오뚝이 김기춘 실장의 마지막 공직’) 그에 따르면 “1977년 10월 전방 사단에서 대대장 유운학 중령이 무전병을 데리고 월북하는 사건”이 터졌는데, 당시 보안사는 유운학 중령이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박정희에게 허위로 보고했다. 박정희는 보안사의 보고를 믿지 않고 합참과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에게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사실 유운학은 사단 보안대에 약점이 잡혀 고민하다 스스로 월북해버린 것이었다. “일선의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들 사이에서는 보안사 등쌀에 못살겠다는 원성이 자자했다”는 김기춘의 보고를 받은 박정희는 크게 화를 내며 보안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안을 김 국장에게 성안하도록 지시했다. 박정희는 김기춘이 올린 개혁안에 따라 “보안사 정보처를 없애고 보안사 요원들을 정부 부처 및 기관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사살되는 10·26사건이 터지자 위세당당하던 중앙정보부는 졸지에 역적기관이 되었고, 간부들은 김재규와의 공모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황호택은 중정을 접수한 보안사 요원들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김기춘이었다고 증언했다. 김기춘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었다면 꼼짝없이 서빙고로 끌려가 초주검이 되도록 당하고 옷을 벗어야 했을 것이다. 김기춘이 김재규 밑에서도 2년가량 대공수사국장을 지내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직수와 박철언 덕이었다.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이 신직수에서 김재규로 교체될 때 김기춘은 계속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었는데, 신직수는 1979년 1월 청와대 법률담당 특별보좌관으로 기용되자 김기춘을 데려다가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삼았다. 김기춘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와 접촉할 기회도 자주 있었을 것이다. 유신시대 최고로 잘나가던 김기춘은 박정희 사후 친정인 검찰로 복귀했다.

 

전두환이 유신헌법 대신 5공화국 헌법을 만들고 정식으로 5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문제가 불거졌다. 전두환 정권은 법원에서는 법관 재임명으로 37명을 탈락시켰고, 검찰에서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검사 200명에게 검찰쇄신을 위해 인사권자가 소신 있게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분 아래 일괄 사표를 제출하도록 하여 이 중 26명의 사표를 수리”했다.(<매일경제> 1981년 4월25일치) 전두환의 보안사령관 시절 비서실장으로 세도가 당당했던 허화평(육사 17기)이 보안사와 악연이 있는 김기춘의 옷을 벗기려 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궁지에 몰린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던 대학후배 박철언에게 매달렸고, 박철언은 김기춘에게 허화평에게 전달해줄 테니 편지를 써달라고 말했다. 김기춘은 얼마 후 “일종의 충성맹세”인 “구구절절 장문의 편지”를 써 왔고, 박철언은 이 편지를 허화평에게 전달하며 적극적인 구명에 나섰다. 그 덕에 김기춘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고 검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다. 박철언 덕분에 검사장에 승진하기는 했으나 보직은 검사장급에서 한직으로 취급받는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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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 공업용 쇠기름 사건도 그의 작품

 

전화위복, 새옹지마란 말이 있다. 오뚝이 김기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유신 시절 동기들이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앞서가던 김기춘은 5공 때는 찬밥을 먹었다. 세월이 바뀌어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뒤 여소야대 상황에서 5공 청산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을 때, 5공 시절 찬밥을 먹은 김기춘은 1988년 12월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무대의 중앙에 복귀했다. 김기춘이 지휘하는 검찰은 1989년 ‘5공 비리’ 수사를 진행하면서 전 안기부장 장세동 등 49명의 5공 인사를 구속했다. 한 가지 흥미있는 것은 처음에 김기춘의 옷을 벗기려다가 충성편지를 받고 김기춘을 살려준 허화평은 당시 그가 소장으로 있던 준국책연구기관 현대사회연구소 노동조합이 허화평의 구속을 요구하며 시위(<한겨레> 1988년 12월3일치)를 벌였는데도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기춘이 검찰총장으로 있던 시절은 바로 민주화 이후 수구세력의 반격이 시작되어 공안정국-보수대연합-범죄와의 전쟁이 이어진 시기였다. 이때 김기춘은 ‘미스터 법질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선봉장’을 자임하면서 좌경용공세력과 폭력세력을 척결하겠다는 강경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6·29선언 이후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좌경세력이 사회 곳곳에서 머리를 드는 데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김기춘이 검찰총장으로 있을 당시 또하나의 야심작은 검찰이 삼양식품 등이 라면 제조 공정에서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했다는 혐의로 회사 대표 등 여러 명을 기소한 사건이었다. 수년간에 걸친 공방 끝에 그들은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첫 임기제 검찰총장 김기춘은 1990년 12월5일 2년 임기를 마치고 총장에서 물러났지만, 곧 일선에 다시 등장했다.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전경들에게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노태우 살인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격렬하게 일어났고, 그 와중에 학생들의 분신이 연이어 발생했다. 5월8일에는 재야단체의 연합조직인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에서 분신자살하자 정부와 수구세력은 학생들의 분신에 조직적 배후세력의 개입이 있다는 희한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검찰은 김기설의 유서를 전민련 동료인 강기훈이 대필했다면서 강기훈을 구속했다. 5월초에 숨진 박승희의 장례가 광주에서 무려 20만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거행되고, 서울에서는 또다른 여학생 김귀정이 경찰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숨지자, 노태우 정권은 다음날인 5월26일 김기춘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민주화 이후 중앙정보부-안기부는 체제 유지의 전면에서 한발 물러서야 했다. 유서대필 사건은 이 공백상태에서 발생한 위기를 검찰이 온몸을 던져 막은 것이다. 유서대필이란 지금이나 그때나 말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검찰도 수구세력도 그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런 황당한 주장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밀고 나가야 할 만큼 노태우 정권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검찰이 주도한 유서대필 사건은 군과 정보기관이 퇴조한 가운데 검찰이 체제유지의 주력부대임을 과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을 한동안 ‘검찰공화국’으로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김기춘은 선발투수는 아니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구원등판하여 노태우 정권을 지켜내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한 검사들 대부분이 박근혜 후보의 대선캠프 주변에 몰려 있었다. 김기춘은 원로그룹인 7인회의 일원이었고,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강신욱은 검찰 몫의 대법관을 지낸 뒤 2007년 박근혜 캠프의 법률지원 특보단장을 지냈다. 수사검사였던 남기춘은 박근혜 캠프의 열린검증소위원장, 수사검사였던 윤석만은 박근혜 후보의 외곽조직인 대전희망포럼 공동대표였다. 또 수사검사였던 곽상도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민정수석이 되었다가 채동욱 검찰총장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밀려난 바 있다. 김기춘은 이들 모두의 우두머리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 8월8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80·90년대
5공 땐 찬밥 먹으며 버텼지만
5공청산 때 검찰총장으로 부활
노태우 중대위기서 구원등판
‘초원복집’사건에도 굴하지 않고
고향 거제서 3연속 국회의원 당선

 

2000년대
헌법재판소를 아주 잘 이용해
노무현 탄핵안 접수시키더니
이젠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박근혜 비서실장 임명 직후엔
“윗분의 뜻을 받들어” 명대사

 

 

‘탁월한 법률가’ 김기춘의 완벽한 탈출

 

복어를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 치밀하고 깔끔하기로 소문난 김기춘도 복어집에 갔다가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도록 망신한 일이 있다. 아니, 사실 망신이 아니라 정의가 제대로 섰다면 흉악범죄로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의 수괴였던 것이다. 그 망측한 모의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세상에 까발려졌다. 14대 대통령선거를 이틀 앞둔 1992년 12월16일, 전 법무장관 김기춘이 부산에서 부산시장·검사장·경찰청장·안기부지부장·교육감·기무부대장·상공회의소장 등 기관장을 모아놓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지원할 것을 모의했는데 이를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아들 정몽준 의원 쪽에서 도청하여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한 것이다.

 

각 언론이 정몽준 의원 쪽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풀어 상세히 보도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등 거기서 김기춘이 한 발언은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날 김기춘은 “중립내각이 나왔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해서 답답해 죽겠다”면서도 치밀한 성격과는 달리 막 달렸다. 그 자리에 모인 공직자들은 아직 장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인데 김기춘은 그들에게 “안 해봐서 그런 거야.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지”라고 자랑하면서 “부산·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니 하면 영도다리에서 칵 빠져 죽자”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워낙 자기가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하면서 무리수를 많이 두었던 것을 염려한 탓인지 김기춘은 “잘못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가야 할 판인데 여당 해야지 그럼 어떡합니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라는 노골적인 주문을 하면서 “훗날 보면 보람 있는 시민이라고 다들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자신했다. 녹음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속마음이 고향에 가 한잔한 김에 거침없이 나온 것이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지만, 뒤집기의 달인은 따로 있었다.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던 현장에서 적발되자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은 일을 가녀린 여직원을 무지막지한 자들이 감금한 인권유린 사건으로 뒤집은 신공은 이미 20년 전 초원복집 사건 때도 발휘되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파렴치한 부정선거 모의가 아니라 불법적 반인륜적 도청사건이 된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김기춘은 감옥에 가야 했고 초원복집 사건으로 그는 더이상 공직을 맡을 수 없어야 마땅하다. ‘부정선거 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검찰은 초원복집에 모인 기관장들을 “공식 석상이 아닌 사적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혐의 처분하고 모임을 주재한 김기춘만 불구속 기소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김기춘은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1993년 3월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을 규정한 구(舊) 대통령선거법 제36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김정훈 기자의 기명칼럼(1993년 3월20일치)을 통해 장관 재직 당시 “유난히 선거관련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했던 김기춘이 “막상 이 법률이 자신에게 올가미로 다가오자 이의를 제기”했다며, 이 위헌심판 제청이 “법의 이름을 빌려 면죄부”를 구하려는 “탁월한 법률가 김기춘의 완벽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1994년 여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김기춘에 대한 재판은 공소 취소로 없던 일로 끝났다. 법비(法匪)란 말이 있다. 온갖 비적이 들끓던 만주에서 가장 무서운 비적은 법으로 무장한 법비였다. 김기춘이야말로 법비 중의 법비였다.

 

법비 김기춘은 1996년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고향 거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서 연거푸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다. 국회의원 시절 그가 가장 플래시 세례를 받은 것은 2004년 3월12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에 탄핵안을 접수시킨 때였다. 당시 김기춘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의 검사 격이었는데 법사위 여당 간사는 16대 국회에 제출된 친일진상규명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법사위에서 단기필마로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합천 출신의 김용균이었다.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것이 제명 사유가 된다는 지금이나 유신시대와 비교한다면, 대통령을 실제로 자르려고 했던 2004년의 탄핵은 절차민주주의가 극한으로 만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누려 탄핵안을 가결시키고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키러 간 자들은 친일과 유신과 5공과 지역감정의 화신들이었다. 김기춘과 김용균이 탄핵안을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키는 사진은 온 나라를 뒤흔든 탄핵사태의 본질이 ‘과거 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였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박근혜 ‘쉰 386 세대’의 맨 앞줄에 서다

 

김기춘은 이렇게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아직 60대였던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령자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이유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공천 탈락을 당했다”면서도 당의 결정에 승복하여 무소속 출마를 포기하고 “존경받는 원로의 한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김기춘은 한국 정치의 최전선에 서 있다. 김기춘만이 아니다. 김기춘은 어딘가에서 “연산군 밑에는 채홍사들이 들끓고 세종대왕 옆에는 집현전 학자들이 모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박근혜의 주변에는 누가 모여 있을까. 오죽하면 노무현 시대의 386세대 대신 1930년대에 태어나 나이 80을 바라보며 60년대에 공직에 입문한 ‘신 386세대’ 또는 ‘쉰 386세대’라 불리는 흑역사를 자랑하는 올드보이들만 꾸역꾸역 나오고 있을까.

 

김기춘이 비서실장에 임명된 직후 공식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는 말을 하여 젊은 기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사실 유신 전야인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당시에 남쪽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북쪽의 부총리 김영주(김일성의 친동생)가 서명하면서 직함을 쓰지 않고 서명만 하면서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고 한 적이 있다. 남북이 20여년간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호나 직함을 쓰는 것이 거북했던 점을 나름 운치있게 비켜간 것이다. 반면 21세기 김기춘의 발언은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말이라기보다는 봉건시대 도승지나 할 법한 얘기였다. 6월항쟁의 산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를 잘 이용해 살아난 유신본당에 지역감정의 화신 김기춘은 이제 왕실장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다시 헌법재판소로 가져갔다.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김기춘은 후배 검사들에게 “학생시절의 순수성 정의감이 끝까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동아일보> 1990년 12월5일치) 남다른 흑역사를 간직한 김기춘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학생시절의 순수성과 정의감은 안녕들 하십니까?

 

한홍구/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80.html?_fr=m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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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사회적 기구와 유사한 초안’ 받고 협상 급진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2/31 09:26
  • 수정일
    2013/12/31 09: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 2013.12.30 19:59수정 : 2013.12.31 08:06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이 30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철도노조 파업 철회 결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3.12.30 연합뉴스

[철도파업 철회] 여-야-노조 타협안 어떻게 이뤄졌나

민주당사에 피신했던 노조간부
29일 저녁 박기춘 의원한테 초안 받고
노조위원장과 통화하며 절충 거쳐

김무성 의원은 청와대 동의 받아
자정께 3자 만나 합의문 서명

파국으로 치닫던 철도 파업 사태를 해결하는 물꼬는 정치권이 텄다. 청와대와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지만, 여야 정치인이 장기투쟁 채비를 하던 노조와 막후 협상에 나서 마침내 타협안을 끌어냈다.

 

지난 27일 철도노조 최은철 사무처장 겸 대변인 등 간부 2명이 경찰을 피해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 피신하면서 역설적으로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나서는 단초가 마련됐다. 민주당이 먼저 움직였다. 박기춘 민주당 의원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한길 대표가 28일 나를 불러 당사에 들어온 노조간부의 신변 보호뿐 아니라 철도 파업 사태를 적극적으로 풀어달라고 주문했다”며 “그래서 29일 최 사무처장을 만나 여러 조건들을 협의했다.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요구하지 않기로 서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민주노총 사무실에 머물고 있는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과도 파업을 풀기 위한 방안을 전화로 협의했다.

 

노조의 뜻을 확인한 박 의원은 원내수석부대표 시절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췄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에게 연락했다. 김 의원은 마침 박 의원과 같은 국토위 소속이었다. 지역구가 있는 부산에 머물고 있던 김 의원은 협상으로 문제를 풀자는 데 즉각 동의했다. 그는 급히 상경해 국회에서 박 의원과 만나 합의문을 조율하는 한편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청와대 쪽과 협상안을 수용하도록 설득했다. 김 의원은 30일 기자들을 만나 “박 의원과는 오랜 신뢰관계가 있었기에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며 “청와대 쪽에는 철도 파업을 방치해서는 새해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여야 중진의원이 적극 나서자, 협상은 빠르게 진전됐다. 최 사무처장은 이와 관련해 “29일 저녁 7시께 박기춘 의원이 합의서 초안을 들고 왔다. 그 내용을 갖고 중간에서 (민주노총에 머물던) 김명환 위원장과 계속 통화하며 절충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최 사무처장은 “초안 자체가 철도노조가 갖고 있던 (사회적 대화기구 마련 등) 생각과 비슷해서 합의안이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과 김 의원이 합의안을 들고 29일 밤늦게 김명환 위원장이 머물고 있던 민주노총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사실상 합의가 끝난 상태였다. 김 위원장은 국회 국토위에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노조는 파업을 중단한다는 전화 절충 합의문 내용을 서면으로 확인한 뒤 곧바로 서명했다.

 

이 합의안은 30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았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도 이날 오후 파업 철회를 선언했다. 김종철 이정국 기자 phillkim@hani.co.kr

 

30일 여야 정치권의 합의로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기로 한 가운데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기화유스호스텔에서 묵고 있던 철도노조원 중 일부가 숙소를 떠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8일 밤 수배자를 검거한다며 철도노조원 70여명이 묵고 있던 이 유스호스텔에 진입을 시도해 논란을 빚었다. 춘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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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왜 새해벽두부터 전쟁을 우려하나

한호석의 개벽예감 <94> 격동과 긴장의 대격변기에 저무는 2013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12/30 [11:37]  최종편집: ⓒ 자주민보
 
 
 
▲ 2013년 12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진행된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안보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지적하였다. 대통령의 그런 정세인식은 그 자신과 군수뇌부의 최전방부대 연속방문 및 전투준비태세 독려로 이어졌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총파업투쟁과 반정부투쟁의 결합, 그 엄청난 폭발력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 표현에는 모두 담을 수 없는 한반도의 2013년. 격동과 긴장 속에 숨 가쁘게 지나온 한 해가 역사 속으로 저물어가고 있다.

이 글은 저무는 2013년을 격동과 긴장이라는 두 개의 개념어로 되짚어보면서 2014년 정세를 전망한다.

한반도의 2013년을 왜 격동의 한 해였다고 말하는가? 군부와 정부기관이 불법선거를 자행한 것이 폭로되어 각계각층 국민들이 “2012년 대선 원천무효”와 “박근혜 사퇴”를 외치는 투쟁이 차츰 열기와 강도를 더해가는 가운데 지나온 한 해였기에 격동의 한 해였다. 2013년 12월 28일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군중 10만 명의 성난 함성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정부투쟁이 1960년 4.19 민주항쟁을 재연할 기세로 2014년을 뒤흔들게 될 것임을 예고하였다. 원래 12월 28일에 10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는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분쇄, 철도파업 승리 민주노총 1차 총파업 결의대회’였는데, 그 결의대회는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는 반정부투쟁집회로 전화되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집회에서 대회사를 통해 “탄압은 생생했고 타협은 금지됐다. 우리는 독재를 보았다. 박근혜는 실수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전면투쟁을 선언한다. 언론은 오늘 12월 28일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시작됐다고 기록할 것”이라고 외쳤다.

여기서 ‘민영화’라는 언어조작행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공영화라는 말에 대비되는 민영화라는 말은 국민이 운영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공영철도를 국민에게 팔아서 국민이 운영하게 만드는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국민이 이용하는 철도를 재벌에게 팔아넘겨 재벌의 사적(私的) 이윤추구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사영화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이 조작해놓은 민영화라는 기만적 용어를 내버리고 사영화라는 말을 써야 한다.

문제의 초점은 지금 박근혜 정권이 마구 밀어붙이는 철도 사영화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빚 3조원을 국민세금으로 탕감해주었고, 각종 보조금 명목으로 4조5,000억 원을 한국철도공사에 쏟아 부었는데도, 한국철도공사의 적자규모는 17조 원을 넘어섰고, 매일 이자만 13억 원씩 갚아야 하는 파산의 벼랑 끝에 몰린 것이다.

왜 그러한 파산위기에 빠지게 되었을까? 역대 정권들의 연속적인 실정으로 고속철도 건설에 들어간 부채 4조5,000억 원이 한국철도공사에 떠넘겨졌고, 인천공항철도의 적자 1조2,000억 원도 한국철도공사에 떠넘겨져 한국철도공사의 총체적 부실경영을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오싹 소름이 끼치는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철도공사만 파산상태에 빠진 게 아니라, 686개에 이르는 공기업들이 무려 565조8,000억 원의 부채에 짓눌려 이자도 갚지 못하는 바람에 빚이 빚을 낳아 부채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은 공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은 3만 명 노동자를 고용한 한국철도공사를 강도 높게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기업개혁’은 IMF 사태 이후 언제나 그러했듯이 부실경영과 재정파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여 그들을 집단해고로 내몰고, 부실기업을 재벌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기는 ‘잔인한 종결처분’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철도 사영화는 공기업을 재벌에게 팔아넘기는 전반적 사영화의 첫 공정이다. 세계적 범위에서 일어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재정파산위기로 세계 각국 정부들이 서둘러 강행한 이른바 ‘신자유주의정책’의 핵심조치가 바로 그러한 전반적 사영화인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은 앞으로 많은 공기업을 재벌에게 팔아넘길 것이고, 그러지 않아도 중산층의 몰락으로 양극화된 재벌과 국민 사이의 빈부격차는 더욱 극도로 벌어져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재앙을 몰고 올 것으로 예견된다.

만일 박근혜 정권이 공기업을 재벌에게 팔아넘기지 않으면 공기업 연쇄파산이라는 대파국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이고, 공기업 연쇄파산이 일어나는 경우 박근혜 정권은 1주일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권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공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공기업 유지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물리적으로 짓누르며 무조건 공기업의 전반적 사영화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영화의 비극적 내막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내부모순이 격화된 나머지 박근혜 정권과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전화되었음을 말해준다. 그 전화방향을 되돌릴 만한 해결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이 생사존망의 위기에 빠져있다고 판단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박근혜 정권의 몸부림은 공기업 사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파업투쟁에 돌입한 노동계급과의 전면대결을 촉발하게 되는데, 2013년 12월 22일 박근혜 정권이 투입한 경찰력이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겠다고 하면서 문을 부수고 민주노총 본부에 난입한 폭력사태는 박근혜 정권이 스스로 퇴로마저 차단해버린 최악의 자충수였다.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에는 노동계급이 아직 조직되지 못해서, 의식화된 대학생들이 반정부투쟁에 앞장에 섰지만, 2013년 오늘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대학생들이 강의실을 뛰쳐나와 항쟁의 거리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결속된 노동자들이 총파업투쟁을 벌이며 항쟁의 거리를 메우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강의실을 뛰쳐나와 반정부투쟁을 벌일 때는 대학교문만 닫으면 되지만, 노동조합으로 결속된 노동자들이 총파업투쟁과 반정부투쟁을 결합할 때는 사회 전체가 움직임을 멈추게 된다. 노동조합의 총파업투쟁과 각계각층 국민들의 반정부투쟁의 결합은 반정부투쟁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것을 잘 아는 박근혜 정권은 2013년 12월 28일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군중 10만 명이 경찰저지선을 뚫고 광화문 네거리로 진출하여 도로를 점거하였으나, 이전과 달리 폭력진압을 자제하였다. 폭력진압은 시위군중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자극하여 대규모 항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위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폭력진압자제전술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전술일 뿐이지 해결책은 결코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시위군중에 대한 폭력진압을 자제하는 대신, 철도노조 간부들을 마구 체포하여 처벌하는 대량검거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2013년 12월 28일 10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분쇄, 철도파업 승리 민주노총 1차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매주 토요일마다 각계각층 국민들과 함께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는 민주노총의 결의와 2014년 1월 9일에 2차 총파업을 예정되었음을 밝히면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되는 2월 25일에는 ‘국민총파업’을 벌여 “투쟁의 함성으로 서울을 뒤덮자. 두려워하지 말자. 결국 퇴진하는 것은 박근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민주노총이 총파업투쟁과 결합한 전국민적 반정부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민주노총의 ‘최후통첩’을 듣고 질겁한 박근혜 정권은 민주노조 간부들에 대한 대량검거선풍을 일으켰다. 박근혜 정권은 반정부투쟁이 질적 변화를 일으켜 대규모 민주항쟁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저지해 보려고 민주노조 간부들을 검거하려는 술수와 폭력을 동원하지만, 그런 수술과 폭력은 성난 노동계급을 더 자극하여 그들을 반정부투쟁으로 떠밀어주고 정권의 퇴로마저 차단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민주노조 탄압으로 더욱 증폭된 노동계급의 분노는 “박근혜 사퇴”를 외치는 시위군중을 10만 명이 아니라 수십만 명으로 증가시킬 것이며, 결국 성난 시위군중의 ‘청와대진격투쟁’을 촉발시키게 될 것이다. 2008년 6월 ‘광우병촛불집회’에 참가한 시위군중이 ‘이명박 퇴진’과 ‘청와대진격’을 구호로 외치기까지 근 한 달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첫 집회에서부터 ‘박근혜 사퇴’ 구호가 터져 나온 것을 보면, 두 번째 집회에서 ‘청와대진격’ 구호가 터져 나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2013년 격동의 한 해는 ‘박근혜 사퇴’를 외치는 반정부투쟁 속에서 저물어가고, 반정부투쟁의 폭발력은 2014년 1월 9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2차 총파업투쟁을 계기로 급속히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초강력한 폭발에너지가 시시각각 증강되는 중이다.

   
군수뇌부의 전투준비태세 점검과 대통령의 최전방부대 방문 

한반도의 2013년을 왜 긴장의 한 해였다고 말하는가? 2012년 12월 12일 북의 인공위성 발사를 ‘범죄행위’로 몰아간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대북제재조치를 의결하였는데, 그러한 불법적인 압박에 격노한 북이 2013년 2월 12일 지하핵실험으로 강력하게 대응하자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또 다시 사주하여 대북제재조치를 재의결하였다. 이처럼 미국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북적대행위는 한반도의 군사대치상황을 미증유의 전쟁위험으로 전변시키고 말았으니, 2013년 3월부터 4월까지 두 달 동안 북미관계는 각종 핵타격수단들까지 동원된 초긴장 대결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6.25전쟁을 종전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유지해온 정전 60주년의 2013년은 각종 핵타격수단들이 북과 미국의 대치전선에 모습을 드러낼 만큼 심각한 위험을 노정한 한 해였다.

2013년 3월부터 4월까지 두 달 동안 지속된 초긴장 대결상태는 일시적으로 조성되었다가 흐지부지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긴장 대결상태가 해소되지 않았다면, 지금 세밑에 이른 한반도 군사상황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아래의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12월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북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향후 북한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불투명하고 도발과 같은 돌발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군과 경찰은 다양한 유형의 도발 등에 대비해, 특히 서해5도를 비롯한 북한과 인접한 지역의 감시 등 안보태세를 강화하고 치안유지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모든 공직자들도 당분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여러 상황에 대비해 소홀함 없도록 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잇달아 주재하면서는 “현재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안보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보고, 정부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외교안보부서를 중심으로 북한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굳건한 경비태세를 한층 강화하며 공직자들도 근무기강 확립에 만전을 기하라”고 하면서 “한미연합 방위태세를 강화하는 등 한미동맹 차원의 협력체제를 긴밀히 유지하고 아울러 관련국 및 국제사회와도 정보공유와 대북공조 노력을 지속해 나가 달라”고 지시하였다

2013년 12월 17일 오전 김관진 국방장관은 주요지휘관 화상회의를 열고 “북한은 내년 1월 하순부터 3월 초순 사이에 도발한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북한 도발 시 도발세력은 물론 지원세력까지 가차 없이 응징하라”고 지시하였다.

2013년 12월 23일 커티스 스카파로티(Curtis M. Scaparrotti)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최윤희 한국군 합참의장, 권혁순 3군사령관을 비롯한 한국군 고위지휘관 20명과 주한미국군 지휘관 10명을 대동하고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국군 최전방부대 관측소를 찾아가 1시간 30분 동안 작전계획에 따른 전술토의를 진행하면서, 지금 자기들은 한미연합군의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최전방부대들을 방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2013년 1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김관진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강원도 인제군 제12사단 신병교육대대를 찾아가 훈련병 140명의 각개전투훈련을 군복차림으로 참관하였고, 같은 날 오후에는 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최전방부대인 제12사단 을지대대 전망대와 일반전초(GOP)를 찾아가 “알다시피 한반도 정세와 안보상황이 매우 위중하다. 북한 내부상황이 심상치 않고 이에 따라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만약 (북이) 도발을 해 온다면 단호하고 가차 없이 대응해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2013년 12월 24일 이영주 해병대사령관은 백령도에 주둔하는 해병 6여단의 관측소(OP)와 방공진지를 찾아가 “서북도서는 전면전과 국지도발이 따로 없다. 오늘 당장 적이 도발한다면 지휘-지원세력까지 무자비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지시하는 것을 시발로 하여 해병대 전부대의 동계작전 대비태세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보면, 2013년 12월에 이르러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수뇌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고위관리들도 ‘북의 대남무력침공’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그에 대비해 최전방부대들을 찾아가 전투태세를 독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전쟁전야에나 볼 수 있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 가운데 단연 ‘압권’은 국정원장이 베푼 국정원 간부들의 ‘송년결의모임’이었다. 2013년 12월 21일 남재준 국정원장은 자신의 공관에서 국정원 간부 송년회를 열어놓고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통일돼 있을 것이다.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 한 점도 거리낌 없이 다 죽자”고 하면서 ‘비장한 결의’를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국정원장과 그의 부하들이 송년회에서 술김에 객기를 부린, 만화 같은 장면이 아니다. <동아일보> 2013년 12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 임무는 조국의 새벽을 준비하는 것이며, 이는 곧 다가올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라는 이른바 ‘새벽론’을 국정원 간부들에게 평소에도 자주 강조해 왔다고 하는데, 그는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이 2015년에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장과 그 부하들의 그러한 ‘확신’은 술에 취해 객기를 부리며 횡설수설하는 게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어떤 정보판단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국정원장의 말은, 어떤 엄청난 급변사태가 한반도에서 2014년에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상을 전제한 발언이다. 그들이 예상한 급변사태는 그들이 “거리낌 없이 다 죽자”고 결의할 만큼 심각한 사태, 곧 전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정원장과 그 부하들은 2014년에 전쟁이 일어나고, 그 전쟁에서 북이 패하여 2015년에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보를 독점한 국정원이 2014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견하고 ‘비장한 결의’를 하였으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수뇌부,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이 최전방부대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전투태세를 독려하는 것이다.

2014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국정원의 예견은 엉뚱한 오판인가 아니면 올바른 정보판단인가? <뉴스1> 2013년 12월 20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국방부 고위인사는 “북한군의 동계훈련 패턴(양상이라는 뜻-옮긴이)은 작은 부대부터 시작해 차츰 규모를 키우면서 훈련의 강도를 높인다. 현재는 훈련 초반시기이고 훈련활동은 늘고 있지만, 특이한 군사동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 북에서는 특별한 군사동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2014년에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견하였고,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수뇌부, 박근혜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은 매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작 2013년 3월부터 4월까지 각종 핵타격수단들이 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실로 긴박한 전쟁재발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는 최전방부대들을 찾아다니며 전투태세를 독려하지 않았던 그들은 긴박한 전쟁재발분위기가 조성되지도 않은 오늘에 와서 왜 이례적으로 최전방부대들을 찾아다니며 전투태세를 독려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대북공작과 대북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장이 입단속을 할 수밖에 없는 충격적 사연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체포된 직파간첩과 장성택 사건   

<조선일보> 2013년 12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장성택 사건과 관련된 대북정보에 대해 “최근 전 직원을 상대로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취재기자들과 접촉하는 국정원 대변인실 관계자들은 장성택 사건과 관련된 대북정보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하고, “북한 관련 정보는 이를 다루는 소수의 담당자만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 대부분은 전혀 내용을 모른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정원장이 국정원 전체 직원들에게 입단속을 지시한 것이야말로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배경에 어떤 충격적 사연이 깔려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국정원이 입단속을 하고 있는 충격적 사연은 장성택 사건과 직결된 것이다. 장성택 사건과 관련하여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성 유언비어가 한 동안 남측 언론에 난무하였는데, 남재준 국정원장의 ‘정리발언’이 그런 악성 유언비어를 한 방에 잠재워버렸다. 2013년 12월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장성택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언론에 나돌던 ‘권력투쟁설’을 부인하고 ‘이권개입설’을 새로 꺼냈던 것이다. 그가 꺼내놓은 ‘이권개입설’이라는 것은, 장성택이 당행정부 산하 ‘54부’라는 기관을 틀어쥐고 중국에 석탄을 수출하는 대외수출사업이권을 독점하다가 다른 기관들과 갈등을 빚게 되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이권개입을 자제하라고 장성택에게 지시하였는데 장성택이 지시를 거부하자, 명령불복종으로 그가 처형당했다는 참으로 허무맹랑한 가설이다.

장성택 사건이 일어나자 ‘대북소식통’들이 때를 만난 듯이 날조, 유포한 각종 악성 유언비어들이 숱하게 많은데, 국정원장의 그런 가설에 ‘대북소식통’들이 하나 더 추가한 또 다른 가설은, 2013년 9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54부’ 산하 외화벌이사업소에서 장성택 일당과 인민군 4군단 병력이 이권다툼으로 총격전을 벌여 사상사가 생겼다는 ‘총격전설’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정원이 장성택 사건의 원인을 ‘권력투쟁설’이나 ‘이권개입설’로 설명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장성택 사건은 ‘권력투쟁’이나 ‘이권개입’ 같은 것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음을 국정원이 자인해버린 꼴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장성택 사건에 얽어놓은 충격적 사연은 무엇일까?

2013년 11월 7일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대변인은 충격적인 사건을 언론에 공개하였는데, 그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국가안전보위부는 “평양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대상”을 최근에 체포하였는데, “초보적으로 조사한 데 의하면 대상은 근 6년 간 우리와 린접한 제3국(중국을 뜻함-옮긴이)에서 종교의 탈을 쓰고 반공화국정탐모략책동을 감행하다 못해 직접 우리 경내에서 불순분자들을 규합하여 우리 사회와 제도의 안정을 파괴할 목적으로 수도 평양에까지 침입하였다”는 것이다. 2013년 10월 하순 평양에서 있었던 대북간첩 체포사건을 상기하는 까닭은, 그 사건에서 매우 특이한 점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첫째, 대북간첩이 평양에 잠입하였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된 것은 6.25전쟁 이후 전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사건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은 간첩이 침투하여 공작활동을 벌이기가 거의 불가능한 ‘방첩국’이다. 그래서 국정원은 북을 합법적으로 드나드는 중국 조선족을 매수하여 대북간첩으로 이용한다. <아시아경제> 2013년 12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블랙요원’ 또는 ‘그림자요원’이라고 부르는 대북간첩을 북에 침투시키는 비밀공작을 벌이고 있는데, 그런 대북간첩은 “한국 국적이 아닌 중국 국적을 가진 현지인으로 국가정보원의 해외정보수집 또는 현지의 활동을 일부 대신하고 있는 요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매우 특이하게도 2013년 10월 하순 평양에서 체포된 대북간첩은 중국 조선족 출신 매수간첩이 아니라 국정원 소속 직파간첩이었다.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대변인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그 직파간첩은 북중 국경지대의 중국 지역에서 근 6년 동안이나 대북비밀공작을 벌였다고 하니 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직파간첩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가 국경경비망을 뚫고 밀입북한 뒤에 열차편을 이용할 수 있는 도시로 이동하여 열차를 타고 평양역에 도착하여 평양 시내를 돌아다닐 때까지 북측 주민으로부터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은 것은, 그가 북측 주민들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의 완벽한 위장행동을 하는 고도의 잠입훈련을 받은 간첩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국경지대에 일시적으로 밀입북했다가 곧장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경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평양에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잠입한 것은, 그가 국정원으로부터 매우 중대한 임무를 받고 평양에 직파된 대북간첩이었음을 말해준다.

둘째, 직파간첩이 평양에서 체류하면서 “불순분자들을 규합”하려고 하다가 체포되었다는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대변인 발언을 들어보면, 그의 공작임무는 북의 고위층 인사를 포섭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경제> 2013년 12월 21일 보도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정원 당국자는 “북한 고위층 인사를 포섭해 신뢰할 만한 스파이, 정보원을 길러내야 고급정보 입수가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위에 인용한 국정원 당국자의 말처럼 북의 고위층 인사를 포섭하여 고정간첩으로 길러내려면, 평양에 잠입한 직파간첩이 북의 고위층 인사들 가운데 어떤 대상을 선발하여 그를 은밀히 접촉하고 포섭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평양에 있는 호텔에 장기투숙해야 한다. 하지만 직파간첩이 자기 신분을 북측 주민으로 위장하였더라도 평양에 있는 호텔에 장기투숙하며 비밀공작을 벌이는 것은 현지 사정 상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평양에 잠입한 직파간첩은 북의 고위층 인사를 포섭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포섭된 공작대상과 접선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평양에 잠입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미 포섭된 공작대상과 연계된 연락선이 있었을 텐데, 왜 평양에 들어가 접선하는 위험한 잠입공작을 감행한 것일까? 직파간첩의 위험한 잠입공작은, 이미 포섭된 공작대상과 연계된 기존 연락선이 갑자기 단절되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직파간첩을 평양에 잠입시킨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정황을 파악하면, 직파간첩이 위험을 무릅쓰고 평양에 잠입하여 만나려던 접선대상은 이미 국정원에 포섭된 공작대상인데, 2013년 10월 하순 이전 어느 시점에 갑자기 연락이 끊겨 더 이상 연락하지 못하게 되자 무리하게 잠입공작을 강행한 것이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국정원에 포섭되어 활동한 공작대상은 누구이며, 그 공작대상과 연계된 기존 연락선은 왜 2013년 10월 하순 이전 어느 시점에 갑자기 끊어진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는 위에서 언급한 ‘총격전설’에서 발견된다. 장성택 일당과 인민군 4군단 병력이 이권다툼으로 총격전을 벌였다는 소문은 누가 들어봐도 허위사실이지만, 장성택 일당이 2013년 9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북의 국가안전보위부에게 적발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장성택 일당 가운데 이미 국정원에 포섭되어 활동해온 공작대상이 2013년 9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경제사범으로 북측 사법당국에 적발되었고, 그로써 그 공작대상과의 연락이 갑자기 끊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그 공작대상이 장성택의 심복들이 중국에 있는 국정원 비밀조직과의 연락에 이용하였던 연락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 사법당국은 그의 정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사범으로 적발하였는데, 대외무역 위법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가안전에 관한 추가 혐의를 포착하고 국가안전보위부로 이송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측 언론에서 거론된 장성택의 심복은 리룡하와 장수길이다. 장성택이 부장으로 있었던 당행정부에서 리룡하는 제1부부장이었고, 장수길은 부부장이었다. 미국의 관영방송인 <자유아시아방송> 2013년 12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리룡하와 장수길은 “해외에서 자금을 빼돌리고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고 한다. 그들이 자금을 빼돌리고 부당이득을 챙긴 ‘해외’는 중국이다. 고위간부들이었던 리룡하와 장수길이 직접 중국을 드나들면서 자금을 빼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자기들 밑에 있는 과장급 간부에게 중국내왕과 자금횡령을 지시하였을 것이다. 그 지시를 받은 과장급 간부는 중국을 드나들면서 자금을 빼돌리고, 자기의 직속상관들인 리룡하와 장수길에게 거액을 상납해온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3년 12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장성택 사건으로 처형된 범범자들 가운데 과장급 간부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공작활동을 벌이는 국정원 비밀조직은 중국을 드나들면서 자금을 빼돌리고 부당이득을 챙긴 과장급 간부를 중국 현지에서 매수, 포섭하였고, 그를 통해 리룡하, 장수길과 비밀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 리룡하와 장수길과 접선하여 장성택을 포섭하려는 비밀공작을 추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명백하게도, 국정원이 추진한 대북비밀공작의 목표는 장성택 포섭이었고, 최종목표는 장성택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북의 정권을 찬탈하려는 것이었다. 장성택 포섭과 정권찬탈, 바로 이것이 북의 ‘정권교체(regime change)’와 ‘급변사태(contingency)’를 노린 충격적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주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전직 국정원 고위간부의 제보를 인용한 <조선일보> 2013년 12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장성택을 “잘 알고 교류했던” 남측의 재벌기업 임원과 또 다른 기업가를 통해 1996년 말 장성택과 간접접촉을 하였다고 한다. 이 보도기사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당시 국정원이 장성택과 간접접촉을 시도하게 된 까닭은 “장성택이 그나마 북한에서 언젠가는 개혁과 개방을 선도할 온건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성택을 포섭하여 그로 하여금 정권을 찬탈하게 만들고, 북의 ‘개혁과 개방’을 추진할 정권을 세우고, 그 정권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북을 핵포기와 국가체제해체로 유도하려는 것이 국정원이 추진해온 장성택 포섭공작의 최종목표였던 것이다.

2013년 12월 13일 남측 보도전문 텔레비전방송 <YTN> 대담에 출연한 탈북자 출신 강명도 교수는 “장성택과 연계해서 북한 체제변화를 도모하려고 했다. 몇 달 전부터 장성택과 선을 연결해 우리 쪽으로 끌어오려고 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면서 “장성택이 실권을 잡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남북관계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연계까지 했었다”고 밝혔는데, 그는 “최근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비밀리에 중국과 동남아 국가를 방문해 북한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의 ‘정권교체’와 ‘급변사태’는 국정원이 단독 추진하는 대북비밀공작이 아니다. ‘정권교체’와 ‘급변사태’라는 비밀공작개념 자체가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작해놓은 것이다. 장성택 포섭→정권교체→핵포기→국가체제해체로 이어질 엄청난 대북비밀공작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기획, 주도하고 국정원이 현지 실무작업을 맡은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주한미국대사관 건물에 입주한 ‘한국지부’를 통해 국정원과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정권교체’와 ‘급변사태’를 노린 대북비밀공작을 추진해오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14년 1월 하순부터 3월 초순 사이

오늘 한반도 상황을 바라보면, 남과 북에서 각각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위에서 자세히 논한 것처럼, 남측의 각계각층 국민들 속에서는 불법당선이 드러났는데도 공기업 사영화와 종북몰이 폭압정치를 감행하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북측 지도부에서는 장성택 일당을 포섭하여 국가전복비밀공작을 감행한 미국과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남측에서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할 시점이 이미 정해졌다는 사실이다. 민주노총이 발표한 대로, 2014년 1월 9일 2차 총파업에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고, 2월 25일 ‘국민총파업’에서 대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그와 더불어 주목하는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사이트 <WMD> 2013년 4월 7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요즈음 미국 군사전문가들은 북이 “가장 위험한 실행방침(most dangerous course of action)”을 실시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MDCOA’로 약칭한다. 미국 군사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북의 ‘가장 위험한 실행방침(MDCOA)’은 북이 준비를 완료하였다고 말한 ‘조국통일대전’인 것이다.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이 2012년 9월에 개정한 ‘전시사업세칙’에는 ‘전시선포시기’가 새로운 항목으로 들어갔는데, 그것은 “첫째, 미제와 남조선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거나 공화국 북반부에 무력침공을 했을 때, 둘째, 남조선 애국력량의 지원요구가 있거나 국내외에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마련될 경우, 셋째, 미제와 남조선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적 도발행위가 확대될 때”로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북의 그간 일관된 평화통일 방침과 다른 측면이 있어 좀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동아일보에서 보도한 북의 바뀐 규정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2월 사이에 총파업투쟁과 반정부투쟁이 결합된 국민적 분노의 대폭발이 일어나 박근혜 정권의 통치력이 완전 마비되는 경우 북은 미국 군사전문가들이 ‘가장 위험한 실행방침’이라고 우려하는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2013년 12월 17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주요지휘관들에게 2014년 1월 하순부터 3월 초순 사이에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나, 2013년 12월 21일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 간부 송년회에서 2014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2013년 12월 24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526대련합부대 지휘부를 찾아가 부대 지휘관들에게 “세계적인 군사초대국의 지위에” 오른 북의 인민군대에게 “전쟁은 언제 한다고 광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자기 부대의 싸움준비완성에 최대의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지시하시였다”는 북측 언론보도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 한반도 상황을 바라보면, 격동과 긴장 속에 저무는 2013년이 보이고, 더 큰 격동과 긴장 속에 다가오는 2014년이 보인다. 7천만 겨레는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숨가쁘게 전개되는 격동과 긴장의 대격변기에 들어선 것이다.


추리의 정확성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정부의 핵심 안보관련 기관장도 대통령도 한반도가 전쟁 초긴장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이 절실한 상황이며 특히 남북관계를 대결국면에서 대화와 교류협력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이 절실한 상황이다. 새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혁신만이 이 위기를 극복케 할 것이다.
답은 결국 6.15와 10.4선언 전면 이행 외에 없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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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음모에 순리로 맞선 공직자

[올해의 인물]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축소·은폐 폭로한 권은희 수사과장

13.12.30 11:34l최종 업데이트 13.12.30 11:34l
강민수(cominsoo)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수들이 2013년 한 해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꼽은 말입니다.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62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204명(32.7%)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신문 측은 박근혜 정부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정책과 인사를 반복하는 것을 우려한다는 뜻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권은희, 여걸·21세기형 유관순·헌법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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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인 조사 받은 권은희 수사과장 지난해 대선 당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 실무책임자였던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5월 '국정원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10시간 넘게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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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행역시를 언급한 것은 <오마이뉴스>의 '올해의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올해의 인물'로 권은희(40)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선정했습니다. 지난 11일부터 선정 위원들이 꼽은 결과입니다. (관련기사 :'2013년 올해의 인물' 선정위원으로 모십니다)

기사의 댓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SNS의 투표를 종합했습니다. 지난해 대선 전후부터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해온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박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다 정부와 여당, 보수단체에 '종북 신부'로 낙인된 박창신 원로신부, 윗선의 수사 방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징계를 당한 윤석열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장 등도 뒤를 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은 권 과장을 '여걸', '21세기형 유관순 열사', '헌법 수호의 일인자' 등 다양하게 평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두운 음모에 한줄기 빛으로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줬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분', '부당한 상부 지시에 당당하게 맞서 진실을 밝힌'이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그야말로 순리를 거스르려는 움직임에 맞섰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권 과장은 이미, '리영희재단'의 제1회 리영희 상, 참여연대의 '의인상', 경제정의실천연합의 '경제정의실천시민상'을 수상했습니다.

2013년은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많이 일어난 한 해였습니다. 국정원을 비롯해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많은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또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정국을 혼란시켰죠. 정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통합진보당을 탄압하는 등 국민행복, 소통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왔습니다. 이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누리꾼들의 마음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용기를 가진' 권은희 과장에게 모아진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도 말문이 막히다

권은희 과장은 2004년, 33기로 사법연수원 수료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2005년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습니다. 사법고시 출신의 첫 여성 경정으로, 당시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원칙은 지키되 여성으로서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온화하고 부드러운 조직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과거의 역사적인 경험으로 국민들이 경찰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국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절하고 헌신적인 경찰상을 정립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후 7년 만에 다시 언론의 관심이 그에게 쏟아졌습니다. 지난해 12월 11일,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권 과장은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대선 개입 댓글을 달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그 뒤 두 달 가까이 수사를 지휘하다 석연찮은 이유로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전보됐습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다음 날 그는 "경찰 윗선의 개입으로 수사가 축소됐다"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했습니다. 이 폭로 이후, 지난 8월 국회 국정조사 특위를 비롯해 현재 진행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증인석에서 그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당 의원들의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8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때였습니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질문했습니다.

김태흠: "공무원이라 밖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당선되길 바랐죠?"
권은희: "수사를 진행하기에 여념 없어서 투표도 못했습니다."
김태흠: "마음속에 (지지했던 후보가)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도 이 나라 대통령이 문재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권은희: "의원님이 하고 있는 질문은 헌법에서 금지하는 '십자가 밟기'와 같은 질문입니다."

'십자가 밟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기독교 신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기독교 신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십자가를 밟고 가도록 강요한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헌법에 보장되는 양심의 자유를 건드리는 것을 질책하는 이 발언에, 김 의원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권은희 과장 수상소감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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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댓글사건' 경찰 윗선 개입 폭로한 권은희 수사과장 '국정원 댓글사건'을 축소하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 지난 4월, 서울 송파경찰서로 출근한 뒤 업무를 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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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신 발언으로 권 과장은 청문회 스타가 됐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빵과 응원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힘내라"는 응원 메시지가 담긴 화분이 배달됐습니다. 자연히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사태의 본질이 흐려질까 염려했고,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올해의 인물' 선정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그는 같은 이유로 난색을 표했습니다. 대신 수상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공직자로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순리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됩니다. 다음은 권은희 과장의 수상 소감입니다.

"저는 마땅히 수사과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독자와 누리꾼이 선정하는 '2013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많은 이들의 바람처럼 진실을 소중하게 지키는 모습으로 늘 함께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는 순리대로 움직이는,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2000~2012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

2000년 문정현 신부(매향리 공대위 활동 등)
2001년 화덕헌(누리꾼. 이문열 도서 반환운동)
        박경석(장애인이동권연대 상임공동대표)
        덕성여대 총학생회 및 교수협의회
2002년 행동하는 누리꾼
2003년 문규현 신부(새만금 및 부안핵폐기장 투쟁)
2004년 국보법 폐지 여의도 천막농성단 1000명
2005년 노충국 부자
2006년 평택 대추리 사람들
2007년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전 <시사저널> 기자들)
2008년 촛불소녀
2009년 용산참사 유가족
2010년 천안함 북풍 이겨낸 6·2 지방선거 유권자들
2011년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
2012년 왕복 40시간 대선 투표 인도 벵갈루루 거주 재외교포 김효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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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로 돌아보는 2013년, 상반기 편

검색어로 돌아보는 2013년, 상반기 편나로호, 핵실험, 해킹, 안철수, 윤창중, 에드워드 스노든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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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2.30  02: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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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보내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검색을 해온 검색어 전문가 김민하 기자가 2013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검색어를 정리해본다.

1월 ‘나로호’

나로호는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해 제작된 우주발사체이다. 로켓 1단은 러시아, 2단은 국내 개발진의 기술로 만들었다. 2009년부터 총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발사에 성공하였다. 2009년 1차 발사 때에는 인공위성 덮개인 페어링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2단 로켓이 늦게 분리되는 등 상대적으로 무거워진 무게 때문에 궤도에 진입을 하지 못하였다. 2010년 2차 발사 때는 폭발사고가 났다. 2012년 말 3차 발사 시도를 했지만 역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고 발사를 강행해 2013년 1월 결국 성공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로호 발사를 강행한 이유가 있다. 2013년 1월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나로호를 발사하지 않으면 차기 정권에서 발사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할 경우 임기 초부터 악재의 부담을 지게 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후문이다. 임기 초반에 나로호 발사에 실패하면 모양이 나질 않는다. 부담을 차기 정권으로 떠넘기지 않겠다는 선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 우주로 발사되는 나로호. (연합뉴스)

나로호에는 나로과학위성이 실려 있다. 우리가 만든 부품들이 우주에서 잘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음식도 직접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듯이, 우주 부품도 우주에서 실험을 해봐야 한다. 나로호 발사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지만 정부는 나로과학위성을 활용해 발사 비용보다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나로호 이름의 기원. 전남 고흥에 나로도라는 섬이 있는데 내나로도 외나로도로 나눠진다. 외나로도에 나로우주센터가 있는데 거기서 우주개발연구를 많이 한다. 그래서 나로호다. 좀 썰렁한 이유다.

2월 ‘핵실험’

2013년 2월 12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진도 5.0의 지진이 감지됐다. 지진파를 분석해본 결과 인공지진이라는 결론이 났고, 그 외 정보를 검토한 결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것으로 밝혀져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다.

북한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고립돼왔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고립이 심화됐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이 2006년 핵실험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후 핵 보유 국가가 되면 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으로 반복된 핵실험을 하고 있다.

   
▲ 3차 지하 핵실험 성공에 좋아하고 있는 북한 군인들. (연합뉴스)

이러한 방침은 김정일 시대를 지나 김정은 시대로 왔어도 변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일부 개혁개방 정책을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이는 지난 3월 김정은 정권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함으로써 재차 확인된 바 있다.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는 경제가 어려웠으나 이제 김정은 시대에는 경제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선전을 하면서도 핵무기만큼은 포기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핵무기는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너무나 무시무시한 위력의 무기이다. 강한 폭발력도 문제지만 방사능 피폭으로 몇 세대에 걸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그야말로 악마의 무기이다. 북한이 이런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핵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 전쟁이 나면 할 게 거의 없는 공익근무요원 출신으로서 간곡히 말하는데, 제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3월 ‘해킹’

역시 북한과 관련돼있는 검색어, ‘해킹’이다. 2013년 3월 20일 주요 방송사와 일부 금융권의 컴퓨터가 해킹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악성코드에 의해 하드디스크 등이 손상돼 컴퓨터가 부팅되지 않는 상황이 속출했다. 혼란 끝에 정부가 조사에 나섰고 결국 이 모든 것이 북한의 정찰총국이 저지른 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방송국과 은행은 전산망을 활용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방송국의 경우 큐시트를 손으로 작성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은행의 경우 계좌이체 등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급한데 이체가 안 되면 정말 속이 타들어간다.

   
▲ 해킹으로 마비된 YTN 전경. 컴퓨터 화면에 오류메시지 등이 보인다. (연합뉴스)

일부에서는 무슨 일만 일어나면 북한 탓이라고 한다며 비꼬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2009년 7월과 2011년 3월의 디도스 공격, 같은 해 4월의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등을 모두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한 바 있다. 당시 정부가 북한 소행이라는 결정적 근거를 갖고 있지만 이를 공개하면 앞으로 북한의 사이버테러를 막는 게 어려워지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혀 일부 의문의 여지를 남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 측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므로 함부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해킹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모두가 투철한 보안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너무 최첨단 전산망에 의존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한 번 쯤은 해볼 만 하다. 보안을 위한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피해 줄일 수 있어야 하겠다. 특히 웹 서비스 제공자가 개인정보를 너무 쉽게 요구하고 무분별하게 저장하는 것은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차츰차츰 바꿔나갔으면 한다.

4월 ‘안철수’

2013년 4월 24일 치러진 서울 노원구 병 지역구 재보궐선거에서 60.46%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안철수 의원이 당선됐다. 이로써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야권 단일 후보직을 양보한 이후 본격적인 정치활동 재개에 나서는데 성공하게 됐다.

당시 노원 병 재보궐선거에 새누리당에서는 허준영 후보가 출마했고 지금은 정의당이 된 진보정의당에서는 김지선 후보가 출마해 각각 32.78%, 5.73%를 득표했다. 특히 김지선 후보는 원래 노원구 병 지역구 의원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이어서 기대를 모았지만 상대적으로 저조한 득표를 했다. 허준영 후보의 경우 경찰청장과 코레일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17대 총선에도 출마했는데, 노회찬 당시 후보에게 패배한 바 있다.

   
▲ 4월 재보선에서 당선된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부인인 김미경 교수. (연합뉴스)

노회찬 당시 의원의 의원직 상실 이유도 화제가 됐었다. 노회찬 전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는 바람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2005년에 과거 안기부의 이른 바 삼성X파일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으로부터 불법적인 자금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까웠다.

당시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의원이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의 지지까지 얻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와 안철수 의원이 여야 지지층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안철수 의원은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위원회’를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인데 어떤 인재를 얼마나 영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다.

5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까지 가서 성추행 사건을 저질러 전격 경질된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시 미국 순방에 큰 오점을 남긴 일이 됐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귀국 과정에 대해 본인과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진실공방을 벌이는 코미디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결국 이남기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사퇴를 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이와 같은 활약상은 12월 19일 중국의 신화통신이 세계 8대 굴욕사건의 하나로 꼽기도 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 사건 당시 신상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이 사건은 청와대 인사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기도 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임명 당시에도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야당은 “어처구니없는 인선”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언론인으로 재직하던 당시 칼럼과 퇴직 후 블로그를 통해 남긴 글들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편향적이었다는 이유다. 대통령인수위 수석대변인을 맡았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인사명단을 밀봉된 봉투에 넣어 기자들 앞에서 개봉해 깜깜이 인사라는 비난을 초래하기도 했다. 공동대변인을 맡았던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나 이남기 당시 홍보수석과의 갈등설이 보도되는 등 청와대 조직 내에서도 이런 저런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복되는 인사실패는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소위 수첩 인사 스타일 덕분이라는 말이 많다. 대통령이 직접 눈여겨 본 사람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체계적인 인사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국무총리, 정권 출범 이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12명의 고위직 공무원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했는데 대개 의외의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들이 많다. 이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올드보이로 불리는 안정적 성격의 인사들이 전면에 나선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6월 ‘에드워드 스노든’

2013년 6월 6일에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와 NSA에서 일했던 컴퓨터 기술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의 통화 감찰 기록과 무작위 정보 수집 프로그램인 PRISM 등의 기밀사항을 영국의 가디언지를 통해 폭로했다. 미국이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대중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러한 폭로에 대해 스노든을 배신자로 지목했고 스노든은 13개국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러시아가 미국의 국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스노든의 망명을 허용했다.

   
▲ 전 세계적 차원에서 올해의 인물이 된 에드워드 스노든. (연합뉴스)

스노든의 폭로 내용 중에는 미국이 우방국들에 대한 도청을 감행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유럽의 프랑스, 독일, 스페인,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 등이 도청 대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도청도 실시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반기문 총장 측은 올해 유엔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이를 풍자한 동영상을 공개해 우회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청 대상국이면서 동시에 NSA에 중국에 대한 도감청에 협력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최첨단 시스템을 동원한 도·감청은 애초에는 정보를 수집해서 9.11 테러와 같은 비극을 사전에 막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9.11테러 이후 미국 정보기관의 덩치가 계속해서 커진 것도 이 때문인데,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면 당연히 국제관계에서 타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이점이 이후 더욱 부각된 것이다. 서구 사회의 경우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냉혹한 국제질서 앞에서는 이조차도 쉽게 무시되는 현실을 보여줬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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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보내며 : 위기의 징후들

2013 박근혜의 세 가지 주문, "후퇴, 위축, 공격!"

[서리풀 논평] 2013년을 보내며 : 위기의 징후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30 오전 7:24:20

 

 

 

 

 

 

 

 

 

 

 

 

 

내일(31일)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고, 모래는 다시 새해다.

이번 논평의 주제는 모두들 예상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 되돌아보기다. 너무 뻔하다 할 수도 있지만 하는 수 없다. 일부러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여느 언론의 회고처럼 갖가지를 망라하는 것은 곤란하다. 요즘 들어 대놓고 민낯을 드러낸 사납고 어지러운 권력이 한 해의 기억을 모두 지배하기 때문에 그러기도 어렵다.

한 해 동안 주로 건강과 보건의료를 시비해 온 만큼, 같은 맥락에서 2013년을 정리한다.

1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먼저 지적해야 하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후퇴라기보다는 노골적인 공격이라 해야 맞다.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틀이었던 '1987년 체제'의 안정성을 의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사례를 다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몇 가지만으로도 위기의 증거들은 가득하다.

아무래도 제일 앞자리는 권력 기관과 군의 선거 개입과 처리 과정. 쉴 새 없는 터지는 불안정의 다른 징후들 때문에 기억과 망각을 되풀이 했지만, 심판은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이 중대한 민주주의의 후퇴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짐짓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여기는 집권 세력의 퇴영적 역사 인식이 아찔하다.

'종북' 몰이로 대표되는 외부의 적 만들기라는 광풍.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온실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되살아난 역사의 유물이라 할 만하다. 제법 체화되었다 싶었던 정치적, 시민적 권리조차 정말 가볍게(!)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삼권 분립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허울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민주주의 제도의 존재 가치 한 가지를 다시 확인하자. 서로 다른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의 긴장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비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그것을 정치 사회 체계로 통합해 내는 것이 핵심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제 '깊은' 민주주의가 (그 허약한) 뿌리까지 뽑힐 참이다. 교직원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그렇고,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파업에 대응하는 불퇴전의 '군사 작전'이 또한 그렇다.

민주주의의 문화와 일상적 실천이 크게 약화된 것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현실 정치에서 가장 두드러지지만 관료 체계와 행정에서의 퇴행도 못지않다. 이른바 주류 언론이 한껏 힘을 보태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약해 빠진 기반은 더욱 위태롭다.

 

ⓒ연합뉴스



2

복지 국가로 가는 길이 어렵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거듭 깨우친 한 해였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통령 선거 공약이 쪼그라들고 버려진 과정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공약으로 치면, 올해 초만 하더라도 그래도 노력하는 시늉은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단지 1년 만에 공약을 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복지 국가는 어느새 시대착오라도 된 듯 어색하다.

겉으로는 재원의 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증세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확인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나 경제가 복지를 압도하는 힘의 불균형에 어떤 의미 있는 영향도 주지 못했다고 해야 솔직하다.

재원이라는 기술과 실무를 넘어 복지 확대(더 정확하게는 복지 '정상화'라고 흉내 내야 한다)의 '추진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국가 약속을 '수동 혁명'에 빗댄 논의도 있었지만, 수동으로는 한 걸음도 쉽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느리고 작은 '개혁'은 안 할 수 없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 개혁조차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미는 힘이 미약하니 말과 흉내로 그친다. 반(反)복지의 언어와 이데올로기조차 이기기 힘들다.

형식과 수사에서조차 복지가 후퇴한 것은 앞서 말한 퇴행하는 또는 부실한 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임시방편의 말을 강제할 실제적인 힘이 없는 것이 곧 지금의 곤궁한 민주주의를 설명한다.

3

시장과 자본의 공세는 더욱 강화되었다. 얼마 사이에 KTX 민영화와 의료 영리화가 불거졌지만, 진주의료원 폐원 사태는 일찌감치 이런 경향을 예고했다. 이와 함께 수많은 규제 완화와 자유무역협정(FTA) 몰이는 시장에 대한 굳은 '신앙'을 상징한다.

그뿐 아니다. 꼭 1년 전쯤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경제 민주화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손톱만큼의 믿음도 갖기 어려웠지만, 아예 최소한의 체면치레도 포기한 듯하다.

물론, 사정이 이리 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복지 국가 담론과 마찬가지 사정이 작용한다. 시장과 자본의 전횡을 막을 힘(그리고 그 토대)이 허술하고 약한 것이 이유다. 아무리 말이 좋아도 '물리적' 토대가 없으면 공허하다.

그래서 다시 부실한 민주주의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 계층의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극도로 치우친 권력 지형이 핵심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진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했다.

4

앞서 말한 세 가지 추세의 원인을 자칫 어떤 한 사람 탓으로 돌리기 쉽다. 물론,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권력의 독점과 (모든 영역과 범위에 걸친)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체제를 '의인화'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국 사회의 지난 1년을 모두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좀 더 구조적 요인을 보태야 한다. 바로 한국 자본주의가 봉착한 위기와 자본(그리고 그 이익을 대변-대표하는 국가)의 거친 대응.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징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소득은 정체되고 가계 빚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실질적인 실업과 빈곤의 수준은 공식 통계를 훌쩍 넘는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더욱 악화되는 모든 종류의 양극화.

사정이 좋아진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수출과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지만 한 쪽에만 치우친다. 대기업의 '나 홀로' 성장은 연관 산업의 부가 가치와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은 지 오래다. 게다가 뚜렷한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운 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더하고 있다.

이런 위기에 대한 초조함이 박근혜 정부 1년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대응의 대부분은 당연히 자본 쪽으로 균형추가 가울어져 있다.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다른 힘을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 일방통행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을 설명하는 추세-민주주의의 후퇴, 복지의 위축, 시장주의의 공세 강화-는 구조적이고 경향적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집권 세력(개인으로나 집단으로나)의 특성을 같이 고려해도 설명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 해를 이렇게 뒤돌아 보다 보니 분위기가 조금 어둡다. '회고'가 새해의 전망으로 이어지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람이란 사회적 맥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거나 종속되는 일면적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위기란 또 다른 기회임에야. 잊지 말자.

한 해 동안 '서리풀 논평'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어떤 처지와 경우라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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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판 <종북용어사전>, 당신도 종북입니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30 09:48
  • 수정일
    2013/12/30 09:4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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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을 싸잡아 종북으로 모는 새누리당의 이 같은 낙인찍기는 '이석기 사건'이 불거진 후 계속돼왔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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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 씹던 껌이 됐다. 북한을 추종하는 행위나 그 세력을 뜻하는 무시무시한 말, '종북'을  박근혜 정부는 숱하게 써먹었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종교계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등 정부 여당에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꺼내 문 '종북'이란 단어는 1년 동안 지독하게도 소비됐다. 종국에는 단물이 모두 빠져나간 후다. 

이제 면역력이 생긴 야당은 쏟아지는 '종북' 지적에 '종박(박근혜 대통령을 따르는)'이나 신경쓰라고 일갈한다. 누리꾼들은 "대한민국 용어 1.평화주의자=종북좌빨 2.반친일파=종북좌빨 3.반불평등FTA=종북좌빨 4.정치비판=종북좌빨 5.반여당=종북좌빨 6.구럼비보호=종북좌빨...세상천지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트위터, RageP***)라고 한탄한다. 

"'종북'이 북을 따라 사는 걸 말한다면, 북처럼 언론 탄압하고 민간인 사찰하는 새누리당 정권이 꼴'종북'"(트위터, actorm***)이라며 정부 여당을 향해 역공을 펴기도 한다. 가수 백자는 "종각 가서 '종'을 보고 서점에 가서 '북'을 보고 콘서트에 참가하라"며 '종북 예술제'를 열기도 했다. 

'내 편 아니면 종북'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반복되자 '종북'이라는 말이 갖던 어마어마한 힘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풍자 대상으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1년 내내 씹은 껌, 종북은 이제 딱딱하게 굳어 다시 입에 물기도 힘들 지경이 돼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종북'을 1년 동안 어떻게 소비했기에 이 단계에 이르렀을까.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의한 '종북'을 정리해봤다. 즉, 박근혜 정부판 <종북용어사전>이다. 정부로부터 '종북'으로 몰리기 싫다면, 아래 '사전적 의미'들을 유념해 두시라.

①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 정당화 됐다"

지난 11월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와 관련 "당의 설립 목적과 활동에 위헌성이 있고 당 전체가 '종북 정당화' 돼 존치할 경우 우리나라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당원은 당원에 가입했다는 그 자체로 '종북'이 되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에 앞선 지난 3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책임이 미국과 우리 정부에 있다는 통진당의 주장에 대해 "북한 감싸기로 종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통진당은 어느 나라 정당인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북한으로 가라"고 주장했다. 

② "민주당은 종북 숙주"

일찌감치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못박은 새누리당의 다음 먹잇감은 민주당이었다. 정부 여당은 '종북 숙주론'을 설파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6일 "민주당이 이석기 사건과 관련 제명에도 반대하고 통진당 해산 청구도 반대했다, 사실상 싸고 도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종북 숙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통합진보당 국회 진출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원죄론'이다. 

지난 9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주의 훼손세력과 무분별하게 연대해서 자유민주주의에 기생해온 종북세력의 숙주노력을 하지는 않았는지 정치권은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홍문총 사무총장은 "민주당의 죄가 이석기 의원의 죄보다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공개된 후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2007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면서 민주당이 종북 좌파세력의 원천적인 근원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정상회담 회의록이 대선 전에 불법으로 유출 됐다는 논란이 불거진 때로, '불법 유출'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종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③ "신 야권연대? 종북 숙주"

국정원 개혁을 위해 야권이 한 데 뭉치자 조급해진 새누리당은 '종북 숙주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지난 11월 심재철 최고위원은 "민주당·정의당·안철수 의원·시민단체·재야인사와 함께 내일 연석회의를 출범시킨다고 한다, '묻지마 연대'의 백낙청 서울대 교수·함세웅 신부·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면면을 보면 '구 야권조합'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작년 총선 때 이른바 원탁회의를 구성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를 촉구했던 사람들이고, 민주당은 이 같은 요구에 따라 이른바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워 이석기 같은 종북세력이 국회로 침투하는데 숙주 노릇을 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종북숙주론'은 참으로 광범위하게도 쓰였다. 

④ "이석기 체포 동의안에 기권·무효·반대표 던지면 '종북 의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9월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체포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나온 '기권·무효·반대'표를 모두 종북표로 규정했다. 그는 "반대는 완전 대놓고 종북, 기권도 사실상 종북, 무효는 은근슬쩍 종북"이라며 "대한민국 국회에 종북 의원이 최소 31명"이라고 밝혔다. 

반대표를 던진 일부 의원들은 이 의원에 대한 혐의가, 민주당이 폐지를 주장해온 국가보안법 위반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임에도 김 의원은 일방적으로 '종북'이라 몰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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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영수 88회 탄신제' 도중 울려퍼진 "종북척결" 박근혜 대통령 어머니인 육영수씨의 생일인 29일 오전 동상이 세워져 있는 충북 옥천읍사무소 광장에서 육영수여사 생가보존회, 육영수여사탄신 숭모제례보존회가 주최한 '고 육영수 여사 88회 숭모제'에서 박해모(박력있는 해병대 모임) 봉사단과 대한민국서포터즈봉사단 회원들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를 '종북력'으로 규정하고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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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소속? 당신은 종북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정부는, 천주교 신부들이 나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입을 열었다. '종북 사제단'이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서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해 새누리당은 "종북구현 사제단이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1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일부 사제들이 22일 시국미사를 통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나아가 박대통령의 퇴진도 요구했다"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 사제들은 이제 사제복 뒤에 숨지 말고 자신의 종북성향을 분명히 국민들 앞에 드러내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더 나아가 "북한 세습정권·통합진보당·RO·정의구현사제단, 이들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있다"며 "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한-미 FTA 반대·국보법 폐지·제주 해군기지 반대·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광우병 반미 선동·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실 부정·북한의 연평도 포격 정당화·박근혜 대통령 사퇴 요구까지, 이들은 똑같은 주장·행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신앙 뒤에 숨어 친북·반미 이념을 가지고, 또 종교 제대 뒤에 숨어 반정부·반체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종북의 길을 맹종하는 신앙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목소리 높였다. 

⑥ 남재준 국정원장이 잘못하고 있다고? 당신은 종북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남재준 원장은 정보를 아는 사람"이라며 "종북·친북 세력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남재준 원장에 반대 뜻을 표하는 이들은 종북 내지는 친북 세력이 되고 마는 격이다. 

⑦ '광명납작체' 글씨를 이용? 당신은 종북 

심 최고위원은 지난 1월 "12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선 수개표 요구 집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만들었다는 북한의 광명납작체 현수막이 등장해 충격"이라며 "이 폰트는 일반 네티즌들이 흔하게 사용하거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정단체나 세력이 대량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대선결과를 부정하고 나라의 근간을 흔들려는 종북세력이 재검표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글씨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수개표를 요구하는 이들은 졸지에 '종북세력'이 됐다. 

⑧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당신은 종북 

박상주 새누리당 부대변인은 지난 8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언제까지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이라 운운하며 징징거리는 정치를 할 셈이냐"며 "민주당의 그러한 노숙투쟁이 결국은 국가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는가, 왜 그리 친노와 종북 좌파의 강경 노선에 끌려 다니는가?"라고 일갈했다. 

지난 대선의 부정함을 외치며, 노숙투쟁이라고 불사한 것을 두고 '종북 좌파'의 강경 노선에 끌려 다닌 결과라 본 것이다. 

⑨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당신은 종북 

새누리당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에 '종북 세력'이 가세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 10월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 된 와중에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종북세력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이 가세해서 공사현장의 갈등이 격해지고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세력은 제주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등의 문제에 때만 되면 나타나서 개입해 왔고,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갈등조장에 앞장서 왔다"고 말했다.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인 시민단체 등에 대해 '종북세력'이라는 올가미를 씌운 것이다. 

⑩ 햇빛정책 주장? 당신은 친북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야권의 지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은 '햇볕정책은 친북'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유 위원장이 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친북 정책이 뭐가 있냐'는 질문에 "햇볕정책이 친북 정책 아니냐"고 답했다. 

이에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햇볕정책이 친북정책이면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이에 발맞춰 보조했던 클린턴의 미국, 고이즈미의 일본, 장쩌민의 중국과 국제사회가 모두 친북활동을 했다는 해괴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클린턴과 고이즈미와 장쩌민이 친북인사들인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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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 '희망준비금'하면, 만원으로 한달 살아야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장수 새누리당 박금혜캠프 국방안보추진단장은 '병사들의 봉급을 2배로 인상하고, 전역병사에 대한 <희망준비금>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병사들의 봉급 2배 인상과 희망준비금은 기존 현행 21개월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겠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선공약과 함께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불과 1년 전에 '대선공약집'에 나왔던 군 복무기간 단축과 사병봉급 2배 인상은 없었던 일로 되었고, 제대병사를 위한 <희망준비금>제도 또한 기존과 완전 다르게 변했습니다. 

' 희망준비금이 아닌 사병봉급 적금' 

원래 희망준비금은 사병봉급 2배 인상과 별도로 전역군인에게 주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별도의 희망준비금 대신에 사병들의 봉급 중 5만~10만원을 매달 적립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약속했던 '희망준비금'은 대학등록금 수준의 '퇴직금'이었습니다. 2013년 국방부가 제시한 '희망준비금'은 그냥 사병봉급을 이용한 적금에 불과합니다. 

퇴직금과 적금은 엄연히 다릅니다. 퇴직금은 일한 대가에 대한 정당한 지원금이고, 적금은 말 그대로 내 돈입니다. 내 돈을 강제로 적금에 들게 하는 것은 복지가 아닌 단순한 보여주기 행정에 불과합니다.

' 희망준비금하면 한 달 1만 원으로 살아야' 

박근혜혜 정권이 하려는 '희망준비금'의 재원은 사병봉급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 병장 봉급은 12만9천6백원이고, 이병은 9만7천8백원입니다. 
 

 

 


2012년 10만 8천원이었던 병장 봉급은 2013년 12만9천원으로 올랐고, 2014년에는 14만9천 원으로 인상될 예정입니다.이병봉급도 현재 9만7천8백원에서 11만 2천5백원으로 인상됩니다. 

국방부는 이렇게 인상된 봉급을 희망준비금으로 적립하여 시중 은행 이율보다 더 높은 이자율과 이자소득세 면제 혜택을 주겠다고 합니다. 
 

 

▲상병부터 현재 잔여 복무기간 동안 200만원의 희망준비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에서 돈을 받지 않으면 아예 할 수도 없다.

 


목표금액 2백만원짜리 적금을 군복무기간 21개월 동안 만들려면 매달 최소 9만1천원씩을 적립해야 합니다. 이병 봉급이 내년에 11만 2천 5백원으로 인상된다고 해도, 9만1천 원을 제하면 2만1천5백원만 남습니다. 

군대에서 2만원만 있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군대는 다릅니다. 
 

 

▲MB정권 기준이며, 현재 개인일용품 개인 구매를 위해 월 2천원 가량 지급되고 있다고 함.대신 군대 PX 가격도 인상되었음.

 


MB정권 들어서 세숫비누,세탁비누,치약,칫솔 등 개인 일용품을 현물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개인 일용품 현금화 품목은 10개 미만이지만, 앞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군대에서 공짜로(?) 보급되던 개인 일용품을 돈을 주고 사야 한다면 그나마 남은 2만 원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실제로 군대보급품이었던 생활용품을 PX에서 구매하려면 1,380원이 아니라 월 4,815원이 듭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금액이고, 만약 사병이 개인 일용품을 더 많이 사용한다면 (치약은 군대에서 한 달에 1개가 아닌 3~4개씩 사용, 청소용으로 ) 1만 원은 됩니다.


결국, 이병들은 희망준비금 2백만 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달 동안 만 원으로 살아야 하고, 이 돈으로는 민간 PX로 바뀐 군대 매점에서는 냉동만두 하나 사 먹기도 힘들어집니다. 
 

 


군대 PX가 GS리테일 등 민간업자에게 넘어가면서 시중가격 2,100원짜기 닭강정이 육군 2,300원, 해군 3,360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병들은 매달 평균 5만 원 이상 집으로부터 송금을 받아야 겨우 살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강조했던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희망준비금'때문에 군대에 아들을 보낸 엄마들은 매달 5만 원이상 보내던 송금액을 이제 10만 원 이상까지도 보내줘야 합니다. 

<군대의 특성상 희망준비금 제도가 시작되면 각부대에서는 희망준비금 적립금을 늘리기 위해 모든 사병들에게 강제로 희망준비금이란 명목으로 급여의 90%이상을 뺏어갈 것이다.>

말장난과 거짓말, 그리고 선거용 공약의 꼼수 때문에 내년부터 집에서 돈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군인들은 PX에 가서 맛스타 하나, 초쿄파이 하나 사 먹지 못할 것입니다. 돈과 빽이 없어 군대에 보낸 것도 서러운데 이제 군대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나온다는 생각을 하니,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더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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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을 여는 하나의 화두, 사회혁신

2014년을 여는 하나의 화두, 사회혁신<칼럼>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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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30  00: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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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부르주아지는 100년도 채 안 되는 그들의 지배기간에 지나간 모든 세대가 창조한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을 창조했다. 자연력의 정복, 기계, 공업과 농업에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경작을 위한 전 대륙의 개간, 하천의 운하화, 마치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모든 인구 - 이전의 어느 세기가 이와 같은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음을 예감이라도 했겠는가?"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공산당 선언’(1848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자본주의 문제점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종말을 예언했던 공산당 선언이 자본주의의 엄청난 혁신능력을 극찬하기도 했다는 것은 확실히 역설적이다. 전대미문의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과 혁신능력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붕괴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역설이다. 이처럼 혁신은 자본주의 자체를 상징했고 자본주의와 가장 잘 어울렸던 개념이다. 현대에서도 ‘기술혁신’이나 ‘경영혁신’처럼 실제로 기업에서 거의 독점해서 사용해온 개념이기도 하다.

사회개혁이 아닌 사회혁신?

이런 이유 때문에 기존 진보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에서 혁신은 대체로 자본의 언어로 받아들여졌고, ‘변혁’이나 ‘개혁’만이 진보적 개념으로 활용되었던 것 같다. 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다.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는 변혁이나 개혁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지만, 대체로 사회운동 조직 안의 변화를 의미할 때에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직혁신이나 사업혁신이라는 용법이 진보운동에서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기업 중심의 시민사회운동에서 자주 언급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회혁신이라는 개념과 아이디어를 선도하고 있는 것은 영국의 영 파운데이션, 미국의 아쇼카 재단이나 스콜 재단 등 대체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거나 관련 분야의 일을 세계적 범위에서 활발하게 추진하는 단체들이기도 하다. 더욱이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경제, 사회적 자본, 지역 공동체 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과 어울리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주요 아젠다로 부상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012년, “사회혁신이야말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사회혁신이 단순히 로컬 아젠다가 아니라 국가적 비전이 될 수도 있음을 제안했고 그 이후에도 자주 사회혁신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간간히 사용되어 왔던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우리사회의 거시적 구조를 바꾸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나아가서 앞으로는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이 사회 개혁이나 사회변혁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인가?

생활현장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회혁신

정권을 장악하여 권력 구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국지적인 제도적 변화조차 불가능하거나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일반적인 사회변혁운동의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일상의 다양한 사회운동 경험들은 단지 구조개혁을 위한 주체역량을 키우는 과정으로 간주되었고, 종국적으로 이들 역량이 집중되어 중앙권력이 교체되어야 사소한 사회변화도 실제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선거혁명을 통해 정권교체를 하고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구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개혁 청사진을 제시한 개혁 정당이 국민적 동의를 기반으로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때 비로소 청사진에 따라 개혁을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사회가 갈수록 복잡 다양해지면서 중앙권력의 교체란 단지 사회변화의 필요조건의 하나일 뿐이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졌다. 또한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복잡한 현실사회의 변화를 이끌 계획안을 모두 만들고 그것을 실행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그런 청사진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갈 시민들도 갈수록 적어질 수밖에 없다.

대신에 직장과 주민공동체 등 생활단위로부터 시민들의 작은 모임들이 복합적으로 중층적 구조를 형성하고, 자기 공간에서 새로운 삶의 실험을 경험하는 가운데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나가는 다양한 모습들이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들은 “플랭카드”와 “피켓”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에 머물지 않는다. 동시에 지역과 생활현장에서 실제 ‘일을 만들고’, 문제를 ‘풀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실행한다.

마을에서의 공동체운동, 협동조합운동, 서민금융운동, 지역 참여예산활동 등이 그런 사례들일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을 사회혁신운동이라고 부른다. 『Small Change』의 저자 마이클 에드워드는 사회혁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회혁신은 사회적 환경적인 문제에 대한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을 찾는 과정으로, 이런 거대한 우산 아래 다양한 운동을 모두 포괄한다. 하지만 모든 사회혁신이 기업과 시장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뉴딜 정책이나 시민권, 여성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사회운동처럼, 정부와 시민사회에서 유래한 혁신도 많다.”

사회혁신이라는 ‘큰 우산’ 아래 지방선거를

사실 사회혁신이 상당한 잠재력을 가질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혁신학교의 경험이 그것이다. 혁신학교는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핵심문제에 대해서, (대학)입시의 반경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초등학교)의 한 학교단위(미시적 차원)에서부터 ‘공교육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교육감 직선제와 연결되면서 실제로도 거시적 혁신전략으로 전환되었다.

경기교육청 차원에서 혁신학교 지정을 시작한지 단 3년 여 만에 전국의 6천 여 개 학교 가운데에서 7% 이상인 450여개 학교가 혁신학교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 지금의 협동조합 확산속도보다 훨씬 빠른 발전이다. 작은 초등학교의 소박한 혁신적 실험이 ‘경기교육청의 참여’와 같은 어떤 주체나 제도, 기회가 접목되면 어떤 정도의 위력을 나타내면서 사회구조변화에 충격을 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회혁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내년 6월에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치러진다. 기존 정치권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심판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성도 없이 너무 획일적으로 중앙권력 비판만 반복 하거나, 혹은 뻔한 지역개발 공약들에 매달리는 방식이 되면 안 될 것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던 많은 사람들의 실험이 있다. 이것을 사회혁신이라는 ‘큰 우산’ 아래 모아보고 확대시켜 보면서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사회변화를 모색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두면, ‘혁신’은 여전히 사회전체에서뿐 아니라, 진보 안에서 절실하다는 점이다. 최근 수년 동안 우리 사회의 진보적 운동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왔다면, 그 주요한 원인의 하나는 ‘혁신’의 부족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불평등은 갈수록 악화되었으므로 객관적 모순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라는 탓을 할 수는 없다. 보수 세력의 억압정도가 예상 범위를 넘어서 충격적이기 때문에 진보가 와해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진보 자체의 혁신 결핍에서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보와는 거리가 멀었던 전형적인 보수 경제학자인 조시 슘페터는 일찍이 경제학에 ‘혁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조직상의 발전은 부단히 옛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부단히 내부에서 경제구조를 혁명하는 산업상의 돌연변이-생물학적 용어를 사용해도 좋다면-의 동일한 과정을 예시한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과정(creative destruction)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본질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그에 의하면 창조적 파괴, 돌연변이, 혁신은 기상천외한 발명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 즉 생산 요소와 자원들의 기존 결합방식에서부터 나온다. 다만 기존 결합방식을 그냥 수용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결합방식을 부정하고 파괴하여 새로운 결합방식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혁신이 이뤄진다는 것이 슘페터의 혁신 방법론이다. 비록 보수적인 경제학자이지만 혁신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혁신이 하늘에서 떨어진 기상천외한 것이 아니라는 단서 말이다.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전 <통일뉴스> 기자 
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연구센터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저서 : 『리셋 코리아』(공저, 2012),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공저, 2009)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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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이기는 권력 없다는 걸 보여주자”

“국민 이기는 권력 없다는 걸 보여주자”

등록 : 2013.12.28 19:42수정 : 2013.12.29 14:20

철도노조 파업 20일째인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a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분쇄 철도 파업 승리 1차 총파업 결의대회%!^a에 한파를 무릅쓰고 참가한 노동자와 시민,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광장 칼바람 속에서 “멈춰라 민영화” 10만 함성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 대회’…1월9일, 16일 총파업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3도까지 내려가는 한파에 칼바람이 몰아쳤다. ‘멈춰라 민영화’, ‘힘내라 민주주의’라고 적힌 팻말을 든 손을 감싼 장갑 속으로 스며드는 냉기를 이기려 시민들은 다른 손에 핫팩을 쥐었다. 칼바람 속에서도 서릿발같은 목소리는 우렁찼다. “철도 파업 사수하고, 국민철도 지켜내자”, “민영화를 막아내자”고 외치는 구호가 광장을 메웠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대회가 한파 속에서 열렸다. 민주노총은 철도파업 20일째인 28일 오후 3시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영화 저지·노동탄압 분쇄 철도 파업 승리 1차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지난 22일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 진입해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 작전을 벌인 정부를 규탄하고, 철도 민영화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한파 속에서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을 비롯해 시민, ‘안녕들 하십니까’ 행사에 참석했던 학생 등 10만명(주최측 추산·경찰추산 2만3000명)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이날 집회에서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시도하려다 막히자 공권력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총파업 투쟁을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 규탄 대회를 이어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철도노조 파업 20일째인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a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분쇄 철도 파업 승리 1차 총파업 결의대회%!^a에 한파를 무릅쓰고 참가한 노동자와 시민,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22일 민주주의를 짓밟는 권력의 모습을 봤다”며 “국민들이 파업기금을 모아주고 청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이번 파업은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가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싸우고 있다. 경제를 키우지 않고 탐욕을 키운다”며 “민주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1월9일과 16일에도 총파업을 이어가자. 2월25일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에는 투쟁의 함성으로 국민을 이기는 권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선언한 한국노총 문진국 위원장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정부에서도 노동운동의 심장부에 공권력을 투입한 전례가 없다”며 “현 정권은 스스로 노동탄압, 반 노동자 정권임을 증명하고, 우리 노동운동을 후진국 수준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영상으로 파업에 참가한 이들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한국 철도를 지키고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합법 투쟁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무엇이 그리 급하고 두려운지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면허를 발급했다”며 “우리의 요구는 안전과 정시운행이 생명인 철도를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지키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는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의 아들 등 철도노조 조합원의 가족들도 참석했다. 박 수석부위원장의 아들 박광민군은 “파업을 하게 만든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며 “책임을 왜 국민과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냐”고 되물었다.

 

시민들도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이들은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입을 모았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정귀현(54)씨는 “정부의 노동자 탄압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자영을 하고 있지만 같은 서민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생각을 그만 두길 바란다”고 했다. 회사원 김지민(37)씨도 “집회에는 처음 나왔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길 바란다”며 “국민과 더 소통해야 정부가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후 2시에는 탑골공원과 보신각, 영풍문고 앞에서 사전집회가 열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500여명(경찰추산 약 300명)은 탑골공원에서 사전집회 성격의 전국교사결의대회를 갖고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과 전교조 법외 노조 통보 철회 등을 요구한 뒤 서울광장으로 합류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보신각 앞에서 ‘변호사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행사를 가진 뒤 민주노총 파업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더 이상 법정에만 앉아 변론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시민들과 눈을 맞추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과 맞서기 위해 연대의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국 민변 변호사는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정부가 훼손하는 것에 침묵할 수 없다”며 “우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오후 5시반께 해산했다. 경찰은 174개 중대 1만3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은 집회에 앞서 “차로를 점거한 미신고 행진, 불법 가두시위, 집회 전후 주변 도로 점거 및 경찰관 폭행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경찰 장비를 사용해 엄정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도노조 파업 20일째인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나가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1차 경찰 차벽을 뚫고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n%!^r%!^n
공식행사가 끝난 뒤 청계광장에서는 촛불집회도 이어졌다. 하지만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광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점거하고 남대문과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면서, 차벽을 세워 도로를 가로막은 경찰과 대치했다. 또 민주노총 사무실에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들어가려다 건물 인근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등 서울광장 인근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불법시위를 벌인 이들에 대해 선별적으로 검거에 나서기도 했다.

 

박승헌 방준호 이재욱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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