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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폐간 저지 성명 모음]

 
 
범대위. 양심수후원회. 개인성명(해외에서도 속속 성명)
 
자주민보 편집국 
기사입력: 2014/04/05 [22:5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자주민보 폐간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는 자주민보 폐간을 시도하는 현 정부와 새누리당, 서울시를 규탄하는 성명을 단체는 물론 전국민 누구나 한줄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자주민보 폐간을 저지하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내용의 글이나 구호를 형식에 관계 없이 보내주면 자주민보에 게재한다.


이름은 본명이이나 가명, 별명 등을 사용해도 무관하며 지역은 광역 단위로 기입하면 된다.

예: 자주 평화 통일의 선봉 자주민보의 붓대를 꺽으려는 자들은 매국 배족자이다. (임꺽정
 전북) 보낼 곳(leejs3131@naver.com)
 
<양심수 후원회>자주민보폐간음모 중단하고 언론자유 보장하라
 
불법으로 대통령자리를 찬탈한 박근혜와 수구보수세력들이 사실보도와 진실보도로 일관해 온 인터넷신문 자주민보를 폐간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2013년 11월 4일 서울시 심의위원들이 자주민보를 폐간시키기 위한 행정심판청구를 결정한데 이어 2014년 4월 23일에는 인천지방법원에서 행정심판소송이 시작된다는 것을 자주민보 이정섭 대표에게 알려왔다. 
  
보수단체들의 압박을 못이긴 서울시는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자주민보가 반복적으로 북에 대해 동조하고 찬양하는 기사를 보도하고 있으며 북체제를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주민보 폐간 시도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과 언론은 모조리 없애겠다는 독재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저들이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에도 어긋나며 지난 2월 14일 남북의 고위급이 합의한 상호비방중단과 이후 이산가족상봉 등으로 풀려가는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통일시대를 개척하는 방향타가 되고 조타수’가 되겠다는 자주민보는 국제정세 및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북에 대한 심층적 정보를 제공하고 남북경제협력 관련 정보, 통일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자주민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하였으며 2000년 8.15행사 등 다수의 방북취재를 통해 행사보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북녘 사회에 대한 진실된 모습을 전하고자 노력했고 중국 항일유적지를 취재해 잘 알려지지 않은 만주지역의 항일운동도 보도했다. 더불어 매향리 사격장, 백운산 등 미군기지 피해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미군들의 범죄 현장을 낱낱이 보도했다.
  
남북정상이 합의한 통일의 이정표인 6.15선언과 10.4 평화번영선언을 이행하는데 앞장 서 온 통일애국언론인 자주민보에 대한 폐간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언론사 폐간은 만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민주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는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각계각층의 단체와 개인들과 함께 자주민보 폐간 시도 음모를 분쇄할 것이며 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고 이땅의 참된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앞당길 것이다.
  
2014년 4월 3일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성명) 자주민보에 대한 언론탄압을 중단하라

서울시는 남과 북의 2.14 합의를 기준으로 언론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남과 북은 올 해 2월 14일 고위급회담에서 상호비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최근 이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남북관계에 다시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언론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자주민보는 보수단체와 새누리당의 압박에 못이겨 서울시(시장 박원순)에서 제기한 등록취소 행정심판소송을 받고 있다. 인천지법은 4월 23일 첫 재판에 대한 공소장을 자주민보 이정섭 대표에게 발송했다. 

서울시의 소송제기 이유는 반복적으로 북에 동조, 찬양하는 기사를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북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북 체제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합뉴스를 비롯한 보수 진보 언론 할 것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통일부 역시 북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북 체제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 체제에 대한 입장 문제는 독자들이 충분이 판달 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객관적인 사실 보도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자주민보는 4월 1일 관련기사에서 ‘최근 기사 삭제 명령을 내린 근거, 재판에서 문제시 되었던 내용 등을 참고로 최대한 현행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한호석, 김상일 교수와 같은 기고가들은 자주민보 외에도 다른 진보언론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이런 기고가들의 글을 모두 문제시 하는 것은 보수단체에서 비난하고 있는 자주민보에 대한 찍어 내기식 언론탄압이 아닌가. 일부 극우보수단체들과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눈치가 보여 서울시가 자주민보에 대한 소송을 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상호 비방에 의해 남과 북 사이 긴장이 격화되고 더 나아가 전쟁위기도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남북정상이 합의한 자주평화통일의 이정표인 6.15와 10.4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 온 자주민보에 대한 행정심판소송을 취하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나서길 바란다.

또한 통일은 대박이라며 거의 매일 같이 통일론을 들먹이는 박근혜 정부는 자주통일의 기치를 높이들고 민족화해와 협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주민보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자주민보폐간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는 국내외 양심적 언론 단체와 인권단체와 굳게 손잡고 표현의자유와 언론의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매진할 것을 천명한다.

만일 박근혜 정부와 서울시가 우리의 요구를 귓등으로 들어 넘긴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 자주와 평화 민족통일을 바라는 8천만 겨레와 세계 진보적 양심의 규탄과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2014년 4월 2일

자주민보폐간범국민대책위원회

<개인 한 줄 성명>

1. 자주독립, 자주, 민주, 자주평화 자주통일의 참언론 자주민보 발전 건승!!(경기도 조영건)

2. 언론의 자유, 표현의자유 침해에 맞서 적극대응하자!!! (서울 권선생)

3. 평화통일을앞당기는 자주민보 탄압은 심각한 불법이다. 자주민보 탄압 중단하라(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 일동)

4. 자주. 평화 통일언론이 불법이면 사대, 전쟁, 분단 부추기는 것이 정당하단 말니냐? 겉으로는 통일 안으로는 반민족 반통일 행동으로 나아가는 박근혜 정부와 보수세력의 압력에 못이겨 자주민보 등록취소심판 청구한 박원순을 규탄한다!(김아영 경기도)

5. 합법적 언론 탄압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언론탄압 자행하는 박근혜 박원순은 각성하라.(강태영 인천)  

6. 내가 태어난 조국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자주민보와 같은 민족통일언론을 탄압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부끄러웠다(프란치스코 리 뉴질랜드)
 
7.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7.4공동성명과 우리민족끼리 정신인 6.15 10.4 정신에 입각한 자주통일 언론 자주민보 폐간은 민족에 대한 엄중한 범죄다. 자주민보 폐간 음모 행동을 멈춰라!(이하나 경기)

8. 시각이 다른 것이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자주민보는 또 하나의 다른 창입니다.(이홍우 인천)


9. 자주민보 폐간은 조국통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주통일 가로막는 미군은 가라(이성원 서울)


10. 자주민보 폐간은 민주주의의 포기입니다.(홍휘은 서울)


11.자주민보 지켜내지 못하면 통일의 길도 위태로워 집니다. (강선일 서울)


  

12. 우리는 무려 100년 이상을 외세의 침탈에 시달리고 있다. 

남북이 하나되어 힘을 합쳐 외세에 맞선다면 그 어떤 국가도 감히 한민족에게 대들 수 없다. 

자주민보는 이러한 위대한 일을 해왔던 것인데 이를 탄압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사랑한다 자주민보여! (아리랑)

  

13. 자주. 평화 통일언론이 불법이면 사대, 전쟁, 분단 부추기는 것이 정상적인 언론인가? 

겉으로는 통일 안으로는 반민족 반통일 행동으로 나아가는 사대 매국노들의 은신처 새누리 박근혜 일당과 그에 세뇌되어 수족노릇하는 보수세력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주민보 등록취소심판 청구한 서울시도 한심스럽구나! (손정규)

  

14.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민족 통일위하여 전진 자주민보 만세 만세 만만세(정명철)

  

15. 같은 민족간의 평화와 화해, 번영을 성원하려 오랜 기간 힘을 써온 자주민보를 폐간하려

저의가 무엇인가. 결국 민족간의 반목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안위와 영화를 노리려는 부류들의 의도적 작태가 아닌가. 자주민보를 폐간하겠다는 것은 결국 한국이란 나라도 오랜 역사의 한민족도 모두 폐국/폐족 시키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아니다. 자주민보 폐간 조치를 중단하라!

(갯가용/미국에서)

  

16. 참 자주 언론이 없는 우리나라에 자부민보는 우리에게 횃불이었습니다. 사대매국세력에게 빼앗긴 우리 자주 언론이 가야 할 바를 명확히 제시해주는 자주민보 강제폐간을 반대 합니다^^ (유병서)

  

17. 언론의 폐간은 독자의 권리다. 자주민보 폐간을 중지하라!!(조광성)

  

18. 이 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어떠한 경우에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자주민보 폐간 반대!!! 나의 iPhone에서 보냄(고광칠)

  

19, 물론 절대로 안 될 이야기다.현재의 전반적 언론은 모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마치 저들의 거짓 정보통해 우롱과 조롱 받는느낌에,매번 분노가 끓어 몸살이 날 지경 이다. 국민에게 진실을 전하는 일이 불법 매채가 되는 알 수없는 세상,,,, 진실함은 세상무엇으로도 감출수 없다는 진리를 자주민보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질 것이리라~~~~!(홍우표)

  

20. 진실보도 자주민보 사수하자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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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南 미사일발사실험 비난...北 로켓 훈련 비난할 체면 있나


<北전략군 대변인 기자 문답> 미국식 기준·행동방식 재평가 주장...무인기 北과 무관 강력 암시 주목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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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06  12: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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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군이 최근 비공개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진행한 후 10여일이 지나서야 언론에 공개한 사실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로켓발사와 같은 자위적 억제력 강화 조치를 함부로 걸고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전략군 대변인은 5일 <조선인민군신문>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조선반도에서 벌어진 우리의 로켓사격 훈련과 괴뢰들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두고 어떤 입장을 보이는 가에 따라 미국식 기준과 행동방식을 다시 평가할 수 있게 됐다"며, "남조선 괴뢰들은 이제는 입이 둘이라도 우리의 정정당당한 로켓발사와 같은 자위권 행사에 대하여 더 이상 줴쳐댈 체면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앞서 대변인은 "남조선 괴뢰들이 지난 3월 23일 충청남도 태안의 안흥사격장에서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이라는 것을 비공개리에 진행하고 그때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언론에 공개"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전략군 화력단위들의 정상적인 로켓발사훈련이 지난 2월 하순부터 3월 말까지 사이에 성과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대비시켰다.

이어서 대변인은 "그때 남조선 괴뢰들은 마치 우리가 발사한 로켓탄들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미국 상전과 함께 청을 돋구며 못되게 놀아댔"을 뿐만 아니라 "'유엔결의위반'이요, '도발'이요 하고 떠들어대면서 우리에 대한 새로운 '제재'까지 몰아오려고 제일 악질적으로 놀아댄 것이 바로 남조선 괴뢰들이었다"며 몰아부쳤다.

또 "요즘 남조선에서는 우리 군대의 정상적인 포병 해상사격훈련에 대한 괴뢰들의 초라한 군사적 대응을 놓고 비난의 목소리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여기에 설상가상이라고 난데없는 무인기 사건까지 발생하여 가뜩이나 땅바닥으로 떨어진 괴뢰들의 체면을 더 구겨박아 놓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민끝에 내놓은 것이 비공개리에 진행한 미사일 발사시험을 서둘러 공개하되 그것도 대단한 것으로, '크게 성공한 것'으로 광고하여 높아지는 비난과 야유, 조소를 눌러보자고 획책한 것"이라고 대변인은 풀이했다.

대변인은 특히 무인기와 관련해서는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를 포함한 서울 도심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얻어맞고 있는 백령도 상공까지 누비고 유유히 비행했다며 '수도권 방공망이 통채로 뚫린 셈이다', 그처럼 든든하다고 허세를 부리던 '안보태세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괴뢰당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욱 더 높아지고 있다"고 표현해 자신들이 이와 무관함을 강하게 시사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한편, <연합뉴스>는 4일 충남 태안의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에서 지난달 23일 500㎞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으며 이 미사일을 내년에 실전 배치할 계획이라고 군 관계자를 인용해 밝힌 바 있다.

희떠운 미싸일발사시험소동으로 하여 남조선괴뢰들은 더 큰 수치와 망신만 당하게 될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 기자의 질문에 대답-- (전문)


남조선괴뢰들이 지난 3월 23일 충청남도 태안의 안흥사격장에서 탄도미싸일발사시험이라는것을 비공개리에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10여일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남조선괴뢰들은 지금까지 숨기고있던 발사시험을 느닷없이 언론에 공개하여 뭇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은 4월 5일 조선인민군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지금 남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괴뢰들이 외세의 기술을 전수하여 사거리를 500km로 늘인 탄도미싸일발사시험에 성공하였다고 요란스럽게 광고하고있다.
그러면서 이 탄도미싸일들을 다음해에 실전배비하게 되면 함경북도를 제외한 공화국북반부의 전 지역을 타격권안에 넣게 될수 있다고 공개해대고있다.
이제 겨우 500km까지 날아가는 탄도미싸일발사시험이나 한번 해보고 큰일이나 친것처럼 희떱게 놀아대는 괴뢰들의 꼬락서니도 가관이고 지금까지 숨기고있던 발사시험을 오늘에 와서 공개한 속내도 빤하게 들여다보이는 희극이 아닐수 없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우리 전략군 화력단위들의 정상적인 로케트발사훈련이 지난 2월하순부터 3월말까지 사이에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그때 남조선괴뢰들은 마치 우리가 발사한 로케트탄들이 서울한복판에 떨어지기라도 한것처럼 미국상전과 함께 청을 돋구며 못되게 놀아댔다.
《유엔결의위반》이요,《도발》이요 하고 떠들어대면서 우리에 대한 새로운 《제재》까지 몰아오려고 제일 악질적으로 놀아댄것이 바로 남조선괴뢰들이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면 미국상전의 비호밑에 남조선괴뢰들이 뒤에 돌아앉아서는 도적고양이처럼 미싸일발사시험을 몰래 벌려놓았던것이다.
그러면 남조선괴뢰들이 무엇때문에 지금에 와서 발사시험소식을 그것도 《크게 성공한것처럼》 여론에 공개하고 확산시키고있는가 하는것이다.
요즘 남조선에서는 우리 군대의 정상적인 포병해상사격훈련에 대한 괴뢰들의 초라한 군사적대응을 놓고 비난의 목소리가 끝없이 쏟아져나오고있다.
일을 다 치른 다음에야 북을 치는 《뒤 북대응》,상대가 보지도 못하는 뒤골목에서 해대는 《뒤 주먹질》,앞에서 얻어맞고 《두덜거리는 식의 한심한 대응》이라고 하면서 비굴하고 무능한 오합지졸의 괴뢰군무리들에 대한 신랄한 야유와 조소는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이라고 난데없는 무인기사건까지 발생하여 가뜩이나 땅바닥으로 떨어진 괴뢰들의 체면을 더 구겨박아놓았다.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청와대와 경복궁일대를 포함한 서울도심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얻어맞고있는 백령도상공까지 누비고 유유히 비행했다며 《수도권방공망이 통채로 뚫린셈이다.》,그처럼 든든하다고 허세를 부리던 《안보태세의 허점이 적라라하게 드러났다.》고 괴뢰당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욱더 높아지고있다.
서남전선 열점수역에서 진행된 포병해상사격훈련과 무인기사건으로 불판우에 오른 개미신세가 된 괴뢰당국으로서는 사태를 수습할 방도가 절실하였던것이다.
그래서 고민끝에 내놓은것이 비공개리에 진행한 미싸일발사시험을 서둘러 공개하되 그것도 대단한것으로,《크게 성공한것》으로 광고하여 높아지는 비난과 야유,조소를 눌러보자고 획책한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그랑수를 부려도 그 처지가 달라질수 없게 되였으며 오히려 제 수치와 망신만 초래하게 되였다.
사람들은 남조선괴뢰들의 미싸일발사시험을 공개한데 대해 미국은 과연 어떻게 나오겠는지 궁금해하고있다.
조선반도에서 벌어진 우리의 로케트사격훈련과 괴뢰들의 미싸일시험발사를 두고 어떤 립장을 보이는가에 따라 미국식기준과 행동방식을 다시 평가할수 있게 되였기때문이다.
세상에 공개된바와 같이 미국식기준이란 저들에게 추종하고 맹종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불망종짓을 저지르든지 《정의》로 둔갑시키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준 아닌 기준이다.
미국식행동방식 역시 남의 나라 땅에 기여들어 평양강점을 노린 훈련을 강행하면서도 그것을 《년례적》이요,《방어적》이라고 강변하는 행동방식,자주적인 나라가 자기의 안전과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벌리는 자위권행사에 대해서도 무작정 《도발》과 《위협》으로 매도하고 압력과 《제재》를 가하다못해 군사적침공까지 서슴지 않고 단행하는 날강도적이며 파렴치한 행동방식이다.
제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남조선괴뢰들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미국의 날강도적인 이 기준과 파렴치한 행동방식에 무작정 추종하여 상전이 하라는대로 못되게 놀아대고있는것이다.
남조선괴뢰들은 이제는 입이 둘이라도 우리의 정정당당한 로케트발사와 같은 자위권행사에 대하여 더이상 줴쳐댈 체면이 없을것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애당초 전시작전권도 없이 상전의 한갖 전쟁사냥개에 불과한 남조선괴뢰들의 처사에 대하여 크게 눈여겨본적이 없다.
한것은 아무리 날쳐도 개는 역시 개에 지나지 않기때문이다.
동족대결에 환장이 되여 제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헤덤비고있는 저들의 처지가 참으로 가련하게 되여가고있다는것을 남조선괴뢰들은 똑바로 알아야 한다.
희떠운 미싸일발사시험소동으로 하여 더 큰 수치와 망신만이 차례지게 될것이다.
미국도 이제는 우리의 자위적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에 대하여 함부로 걸고들지 말아야 한다.

<출처-조선중앙통신 20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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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부정 선거 몰랐다? 신문도 안 봤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3> 4월혁명, 두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4.05 10:39:42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 주제는 4월혁명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 "공산군 물리친 이승만의 공? 잘한 게 없다"
[한국전쟁, 두 번째 마당] "북한, 전면전은 못할 것…한국전쟁 공포 때문"
[한국전쟁, 세 번째 마당] 박정희 살린 6.25? "전쟁 덕 톡톡히 봤다"
[친일파, 첫 번째 마당] "뉴라이트·이승만, '용서받지 못할 자' 비호" 
[친일파, 두 번째 마당] 박정희 '은밀한 과거'는 어떻게 비밀이 됐나
[친일파, 세 번째 마당] "일본군 박정희, 반성은 없었다…유신은 필연"
[친일파, 네 번째 마당] "박정희 한 사람 덕에 경제 발전? 저열하다"
[친일파, 다섯 번째 마당] '반역자 미화' 뉴라이트, 힘 싣는 여당…"두렵다"
[학살, 첫 번째 마당] "수십만 죽이고 30년 넘게 침묵…참 무서운 한국"
[학살, 두 번째 마당] "군, 총·수류탄으로 주민 학살 후 시신 소각"
[학살, 세 번째 마당] 고마운 미국? "한국인들 죽이거나 학살 방조"
[학살, 네 번째 마당] "애가 부모에게 수류탄 던졌다"? 무서운 이승만
[학살, 다섯 번째 마당] 일본도로 국민 목 친 학살자가 이순신과 동급?
[학살, 여섯 번째 마당] "좌익이 영광에서 5만6000명 학살? 그건 아니다"
[학살, 일곱 번째 마당] 박정희 세력은 왜 합동 묘지를 파헤쳐야 했나
[해방·분단, 첫 번째 마당] "일본은 곧 망한다"…그들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해방·분단, 두 번째 마당] 자유는 미국이 준 선물? 그들은 점령군이었다
[해방·분단, 세 번째 마당] 한국 '최고의 혁명가'가 친일파? "극우, 참 비열하다"
[해방·분단, 네 번째 마당] 일본도 차마 못한 그 일 감행한 미국…한국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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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분단, 여섯 번째 마당] 나라 판 좌익? 김일성 '엉터리 신년사'의 비밀
[해방·분단, 일곱 번째 마당] 12번 테러와 암살도 '정의로운 바보'를 못 꺾었다
[해방·분단, 여덟 번째 마당] 북한, 남측 인사에게 '전쟁 안 하겠다'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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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분단, 열두 번째 마당] 박정희 정권은 어쩌다 일본에 퇴짜 맞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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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은 3.15 부정 선거를 몰랐다'고 주장한다.

 

서중석 : 그런 주장은 그 시기에도 있었다. 특히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부 시민까지 '그런 심한 부정 선거를 대통령이 알았다면 가만뒀겠느냐'(는 식이다). 상당히 소시민적인 발상이라고 할까. 황제는 잘못이 없는데 그 밑의 신하들이 나쁜 놈들이라는 사고하고 연결돼 있는 것 같다. 하여튼 뉴라이트 일각에서 또 그런 주장을 하지 않나 싶다. 사료나 구체적인 사실을 가지고 그 시기를 살피는 연구가 드물었기 때문에, 또 그런 연구가 있더라도 그걸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당 간부들이나 장관들, 경찰 최고위 간부들, 이자들은 장면 정권 때도 재판을 받았고 5.16 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재판을 받았다. (3.15 부정 선거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최인규, 이 사람은 나중에 처형되는데, 이 한 사람을 빼놓고 전부 '난 모른다'고 했다. '어디선가 내려온 명령대로만 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서로 책임을 미뤘다. '우리 책임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누구 하나 없더라. 그래서 '그래도 최인규가 남자다', 그런 이야기조차 그 시기에 나왔다. '저런 나쁜 놈들이 있느냐. 자기들이 다 저질러놓고도 누구 하나 그걸 인정하지 않고 발뺌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러니까 또 이 대통령이 '난 관여한 게 없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3.15 마산의거만 없었더라면 모든 게 잘됐을 텐데, 그 사건 때문에 일이 헝클어졌다'. 자유당 간부들이나 경찰 책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본다. 3.15 마산의거 후부터 이 대통령이 그저 역정을 부르르 낸다든가 신경질적인 말씀을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국무회의록이나 여러 가지 글을 보면 꽤 나온다. 그러면서도 역시 노회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너희들 잘못'이라는 식으로 장관이나 자유당 간부들 쪽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발언들도 나온다. 3.15 의거 이후 사태가 달라지니 서로 태도도 좀 차이가 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3.15 부정 선거를 몰랐다? 삼척동자도 다 알던 일이다. 선거에 임한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꼬맹이들조차 이 시기에 어른들이 하는 짓, 그 분위기를 보면 알 수가 있었다. 또 신문에 부정 선거 이야기가 매일, 그것도 조그맣게 나는 게 아니라 크게 났다.

 

프레시안 : 주요 일간지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도했나.

 

서중석 : <동아일보>에는 여러 면에 걸쳐 나올 때도 많았다. 아주 큰 사건으로 계속 뽑아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서울신문>을 제외하고 주요 일간지가 다 그랬다. 4대 일간지 중에서 <경향신문>은 폐간됐으니까 빼고 3대 일간지(<동아>, <한국>, <조선>)를 보면 '하루가 멀다' 정도가 아니(라 부정 선거 기사가 계속 나왔)다. (정부 기관지 역할을 하던 서울신문사는 4월혁명 때 불길에 휩싸였다. 이와 달리, <경향신문>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한 다음 날인 1960년 4월 27일 복간됐다. <편집자>)

 

'이 대통령은 국내 신문은 안 본다', 이런 말까지 일부에서는 하지만, 아무리 신문을 안 본다고 하더라도 그 중요한 상황에서 하루치만 신문을 봐도 '이럴 수가 있어?' 할 정도(였는데 그걸 몰랐다?). 특히 1960년 3월 3일자에,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선거 부정을 저지르려고 하는가를 민주당에서 폭로한 게 있다. 이것을 <동아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는 몇 면에 걸쳐서, 지면을 거의 이걸로 메우다시피 할 정도로 상세하게 썼다. 이렇게 부정 선거의 구체적인 내용이 자세하게, 또 그렇게 크게 났는데 그것도 몰랐다?

 

재미난 것은 당시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자유당 내각에서 대단한 관심을 보였는데, 최인규가 (민주당 주장에 대해)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는 했지만 고소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과 다른 주장을, 그것도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했다면 민주당을 고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에서 거짓말을 한 거라면) 나쁜 짓을 해도 보통 나쁜 짓을 한 게 아닌데.

 

또 1958년 12월 24일 국가보안법을 개정한 제일 큰 이유가 언론 탄압이었다. '허위 사실' 보도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게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에 따라 언론과 민주당을 다 고소해야 하는 건데, 최인규는 '사실이 아니다. 그건 명백히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고소는 안 했다. 모든 게 탄로 났다는 걸 안 거다. 실제로 3.15 부정 선거는 3월 3일자에 나온 것하고 대동소이하다. 거의 똑같이 치러진다. (이승만 정권은 1958년 12월 24일 야당 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2.4파동으로 불린다. 국가보안법 개정안의 주요 표적은 언론과 혁신계였다. 언론에 물린 대표적인 재갈은, 사실을 왜곡해 보도하면 엄벌에 처한다는 이른바 '인심 혹란죄'였다. '인심 혹란죄'는 4월혁명 후 폐지된다. <편집자>)

 

그리고 그전에 이 대통령이 조기 선거를 치르자고 하면서 신문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도 신문을 안 봤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만약 신문에 부정 선거 이야기가 그렇게 났는데 이 대통령은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면, 그 신문을 가만두면 안 되는 거였다. 허위 사실을 보도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대통령은 아무것도 몰랐다? 이승만을 얕잡아보지 말라

 

프레시안 : 이승만 대통령은 국내 언론이 아니라 외신을 중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중석 : 이 대통령은 외신을 중요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때는 부정 선거가 워낙 심했기 때문에 외신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여러 차례, 아주 구체적인 내용까지 보도했다. 그런데도 모른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도대체가 국내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사안을 모른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을?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하겠다(는 건 말이 되는 건가)? 그런 분이 계속 대통령을 하겠다며 후보로 나오고 자유당은 그분을 꼭 대통령으로 모시겠다고 한 건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또 뉴라이트 일각에서 그런 사람을 훌륭한 분이라고 한다면, 그건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이승만 대통령이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여기는 건, 이 대통령을 너무 얕잡아보는 거다. 그런 분이 아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개표 결과는 봤을 것 아닌가. 그 결과를 보면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프레시안 :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서중석 : 대통령이 단일 후보이기 때문에 88퍼센트 넘게 득표했다? 이건 그럴싸하기도 하다. 문제는 부통령이다. 이기붕 부통령 후보가 79퍼센트, 833만 표나 얻고 현직 부통령이던 민주당 후보 장면은 184만 표밖에 못 얻은 걸로 돼 있다. 아무리 천치 바보라고 하더라도 이기붕과 장면의 표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걸 누가 믿을 수 있겠나.

 

더더군다나 서울에서 이기붕이 무려 50만 표 넘게 차지하고 장면은 37만 표밖에 못 얻은 걸로 돼 있다. 그런데 1956년 선거 때는 자유당이 부정 선거를 많이 저질렀어도 장면과 이기붕의 전체 표차는 21만 표였다. 장면 401만 표, 이기붕 380만 표로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결과 발표로만 보면 그렇고, 실제로는 그보다 더 큰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그때 서울에서 어땠느냐. 장면이 45만 표, 이기붕이 9만 표를 얻은 걸로 돼 있다. (이기붕은 장면의) 5분의 1밖에 못 얻은 거다.

 

그렇게 서울에서는 이기붕이든 이승만이든 인기가 없었다. 1956년 선거 이후에 자유당과 이승만, 이기붕에 대한 원성이 더 높아졌다. 무능이 더 입증됐고. 이건 세상이 다 아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기붕이 79퍼센트를 얻었다? 이런 걸 믿는 대통령 후보, 부통령 후보가 있었다고 하면 이건 정말 우습지 않나. 한 50만 표나 30만 표 차이라고 하면 애교로 받아들일는지 모르겠는데, 이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 이승만 대통령은 개표 결과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

 

서중석 : 여기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 후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는 얘기를 한 게 나오지를 않는다. 그것만이 아니다. 보통 '틀림없이 누가 당선됐다' 하면 당선 인사를 하지 않나. 이 선거에선 3월 15일 밤늦게 이미 이승만, 이기붕 후보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식으로 발표됐다. 빠르면 그때 당선 인사 비슷한 걸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적어도 3월 16일에는 모든 게 판명된 걸로 발표된다. 그러면 '이렇게 나를 찍어준 사람이 많아서 감격했고 고맙다'든가 하는 당선 인사를 바로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양반들, 이승만 후보건 이기붕 후보건 너무 미안했던 것 같다. 내가 신문을 열심히 찾아보니까 3월 19일에야 이승만 대통령 후보의 당선 인사가 나온다. 이것도 앞부분은 3.15 마산의거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마산에서 일어난 난동에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을 앞장세워", 이건 민주당이 그랬다는 뜻 아니겠나. "두 번 다시 이러한 난동이 없게 하여야 할 것이다"라며 법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으름장을 딱 놨다. 이렇게 3.15 의거를 난동으로 딱 규정하고 나서 끄트머리에 간단한 당선 인사를 몇 마디 했다. 이럴 수 없는 것 아닌가. 늦었더라도 당선 인사를 맨 앞부분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기붕은 더 미안했던 것 같다. 3월 20일에야 당선 인사를 하는 걸 볼 수가 있다.

 

국민 저버린 문제 인사들, 감싸는 데 앞장선 대통령

 

프레시안 :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당선 인사다.

 

서중석 : 최인규 장관 경질을 보더라도, 이 대통령이 3.15 부정 선거가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난 보고 있다. 뭐냐 하면 최인규가 3월 18일에 사임서를 제출한다. 수리는 3월 23일에 됐는데, 그건 뜸을 들이는 기간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거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그렇게 국회에서 또 여론이 '이 사람을 경질해야 한다'고 거세게 비판해도 그런 것에 아주 초연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1954년 말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 쪽에서 야당 의원들 집에 불온 문서를 투입한 적이 있다. '불온 문서 투입 사건', '올가미 사건'으로 불리는 유명한 사건인데. 원용덕이 이걸 시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알기 위해) 그런 것을 하는 게 헌병 총사령관의 임무다', 이런 식으로 딱 얘기했다. 야당뿐 아니라 온 국민과 언론이 분노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면서 원용덕을 끝까지 두둔하는 걸 볼 수 있다. 사실 헌병 총사령관이라는 것도 재미난 직제다. 이승만이 임의로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하여간 법에는 없는 것이다. (이승만이 총애한 정치군인 원용덕은 '올가미 사건' 때 자신과 같은 특수 군인은 정치에 관여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편집자>)

 

또 '낙루(落淚) 장관'으로 유명한 신성모가 국방부 장관일 때 국민방위군 사건이 일어나고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이 크게 터졌다는 얘기를 전에 하지 않았나. 그때도 누구나 '신성모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아주 강하게, 그 물러나라는 소리를 비판한다. '그럴 수가 있느냐. 외신 같은 데 우리나라를 나쁘게 얘기하는 기사가 나도록 하는 게 잘하는 짓이냐', 이런 식으로 나무라면서 신성모를 상당히 오랫동안 두둔한다. 나중에 하도 문제가 심각해지고 조병옥 내무부 장관 같은 사람들이 그만두겠다고 하고 그전에 이시영 부통령이 사임하는 상황이 되니까 그때서야 경질했지만, 또 (요직인) 주일 대사로 보내지 않나.

 

이익흥 내무부 장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956년)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에 경찰이 깊이 관여한 게 드러나면서 이익흥도 의심을 사게 된다. 그때 야당이 '이익흥이 물러나야 한다'며 불신임 제안을 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이익흥을 물러나게 할 수 없다며 "수만 명 경찰이 있는 중에 그 몇 사람 부하의 잘못으로 내무 장관이 책임을 지면 장관 할 사람이 없을 것", 이렇게 얘기한다.

 

최인규도 내무부 장관 취임 며칠 후에 불신임안이 거론된다. 그렇지만 이 대통령은 최인규를 굳게 신임해서, 물러나게 하지 않는다. 그런 최인규가 3.15 의거 3일 만에 사임서를 썼다는 건 보통 빠른 게 아니다. (마산의거, 그리고 발포로 인한 8명 사망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국민을 저버리고 대통령에게만 충성한 문제 인사들을 중용한 건 권력욕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서중석 : 이 대통령은 1960년에 85세였다. 그 당시 85세는 지금 85세와 다르다. 환갑 넘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환갑잔치가 중요하던 때였다. 고희는 정말 적었다. 그런데 고희보다도 훨씬 많은 85세였다. 이 양반은 생일이 3월 26일인데, 당선됐을 때가 만 85세가 될 무렵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인다. 권력에 대한 아주 강한 집착을 보인 거다. 그것은 권력 문제에 예민했다는 걸 얘기해준다.

 

영구 집권과 절대 권력을 추구한 분이다. 그래서 이승만 하면 독재, 독재 그러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박정희하고 차이가 나는 점이 뭐냐 하면, 이승만은 선거를 통해 영구 독재 정권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헌법도 쿠데타로 바꾸는 게 아니라, 형식은 국회를 통해 바꾸는 방식이다. (1954년) 사사오입은 불법이었지만 국회를 이용해 한 것이다. 그렇게 이 양반은, 미국에서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선거라는 형식을 중요시했다. 그러니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3.15 선거를 치른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이분이 선거에 대해선 굉장히 예민했다는 거다. 역대 선거를 쭉 보면 이분이 선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걸 잘 알 수가 있다.

 

4월 11일에서 13일 사이에 제2차 마산의거 또는 마산 항쟁이 크게 일어난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13일과 15일에 연이어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85세 노인으로서는 초인적인 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 하나하나를 굉장히 신경 써서 썼다. 이분은 담화문을 비서 손에만 맡기지 않았다. 비서가 써온 것도 다 뜯어고쳤다고 하지 않나. 담화문을 읽어봐라. 이승만 특유의 문체다. 이렇게까지 4.13 담화, 4.15 담화를 하나하나 본인이 신경 써서 썼다는 건 전 과정에 대해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잘 알고 있었느냐, 이런 것을 얘기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3.15 부정 선거가 이뤄지는 과정을 보면 누가 총괄 기획한 것인가, 어떤 식으로 이 선거가 배치되고 진행됐는가, 이걸 한눈에 알 수가 있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3.15 부정 선거를 향한 진군

 

프레시안 :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서중석 : 1960년 정부통령 선거는 1958년 12월 24일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지방자치법 개정안 통과에서 막이 오른다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 이 대통령의 의사가 얼마만큼 깊이 관여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자료는 안 나온다.

 

국가보안법을 개정한 제일 큰 이유는 언론을 때려잡기 위해서다. 그래서 얼마 후, 장면 부통령과 깊이 연관돼 있다며 이 대통령이 몹시 나쁘게 봤던 <경향신문>이 정간 처분을 당하고 나중에 폐간으로 가는 걸 볼 수가 있다. 선거와 관련해 더 중요한 문제는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자체장을 임명하게 한 것이다. 그전에는 선거를 했다. 그래서 대구 같은 데에서는 야당 시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자 '공무원 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는 비판이 많이 나왔다. 그다음부터는 이 대통령 의사에 의해 아주 중요한 사항들이 결정되는 걸 볼 수가 있다.

 

프레시안 : 어떤 결정인가.

 

서중석 : 1959년 3월, 1960년 선거와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 하나는 6인 위원회란 게 국무위원 6명으로 구성된다. 국무위원 중에서 중요한 순서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 대통령이 믿을 만하다고 본 사람들 중심으로 구성된 걸로 보인다. 6인 위원회가 바로 공무원을 선거에 동원한 데, (즉) 국무위원급에서 부정 선거에 총괄적으로 관여한 데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나중에 일체 얘기하지 않아서 구체적인 걸 알기가 쉽지는 않다. (특이한 건) 교통부가 그렇게 중요한 부서가 아니었는데도, 교통부 장관이던 최인규는 들어가 있었다(는 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6인 위원회 구성 직후) 최인규가 내무부 장관이 됐다는 거다. 언론이 깜짝 놀랐다. 내무부 장관이 바뀐다는 설은 알고 있었지만, 최인규가 된다는 건 한 신문도 쓰지 않았다. 최인규가 될 걸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런 추측을 할 수 있었느냐 하면, 최인규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했지만, 이 양반이 교통부 장관 된 지가 몇 달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바로 내무부 장관에 임명하느냐, 이런 생각이 작용했던 것 같다. 모든 신문이 그다음 날 '임명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식으로 써 놨다. 최인규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 하는 건 나중에 다 입증된다. '자유당이 마지막에 써먹을 총알이다', 어떤 언론에서는 이렇게 애기했다.

 

최인규가 보통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즉각 드러났다. 취임사에서 '모든 공무원은 이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떠받들어야 한다, '이 대통령을 모시고 우리 모두 국가 중대사를 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비판적인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졌다. '위대한 이 대통령을 모실 수 있게끔 공무원들이 선거에 관여하라', 이런 뜻이라는 것이었다. 취임 일성부터 대단한 소리를 한 거다. 그래서 야당이 불신임안을 내는 걸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중요한 다른 일은 어떤 것인가.

 

서중석 : 1959년 6월에 자유당 전당 대회가 있다는 건 자유당 사람들도, 언론도 다 알고 있었다. 당헌 개정 같은 걸 중심으로 당 정책 등을 다가올 선거에 맞춰 고치기 위한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당 대회) 그날 밤과 그다음 날 새벽에 걸쳐 자유당 간부들한테 명령이 떨어졌다. '이번 전당 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을 지명하라'. 후보를 (조기에) 지명하라는 것이었다.

 

이건 1952년, 1956년에 자유당에서 정부통령 후보를 정하던 방식과도 아주 다르다. 이 명령은 한 사람밖에 내릴 수가 없다. 긴장한 자유당 간부들은,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거니까 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신문이건 자유당 간부들이건 '대체 왜 이렇게 빨리 후보를 정해야 하는 것이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 선거를 보통 5월에 치른 걸 생각하면, 이것은 얼마나 일찍 정한 것인가. 어째서 이런 지시가 내려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신문에서도 뭣 때문에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데 대해 제대로 추측을 못 하고 있더라. 다만 '참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만 돼 있다.

 

내 생각엔 이 대통령이 아무리 기력이 좋은 분이고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더라도 노인네니까 안심이 안 됐던 것 아닌가 싶다. 빨리 후보를 결정하면, 후보가 (당선)되도록 노력해야 할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나. 이렇게 두 분이 결정됐으니까 이제 자유당이건 행정부건 그전 선거와 달리 두 분이 (모두 당선)되도록 노력해야 하게 된 것이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느닷없는 조기 선거 방침과 야당 대통령 후보의 죽음

 

프레시안 : 6인 위원회, 최인규 내무부 장관 깜짝 기용, 후보 조기 지명에 이어 조기 선거 문제가 불거진다.

 

서중석 : 1959년 12월 21일, 이 대통령이 중요한 담화를 한다. 그 당시엔 이게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잘 몰랐다. 이날 이 대통령은 끝부분에 가서 '선거는 농번기를 피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까지 선거는 농번기에 치러졌으니까 앞당겨야 한다는 거다. 이른바 조기 선거를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거는 대개 5월에 치러졌다. 1948년 5.10선거, 1950년 5.30선거, 1954년 5.20선거, 1956년 5.15선거, 1958년엔 5.2선거. 다만 1952년 8.5선거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부산 정치 파동을 일으켜 발췌 개헌을 하는데, 발췌 개헌안 통과 자체가 7월 4일에 이뤄졌다. 그래서 이게 헌법상 맞느냐,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다. 대통령 임기가 언제까지냐, 여기까지 논란이 되고 그랬다. 하여튼 '적어도 8.15에는 대통령이 취임해야 한다. 8.15를 넘기면 정말 이상해진다'고 해서, 7월 4일 통과 후 7월 26일까지 입후보를 하도록 했다. 선거 운동 기간을 9일밖에 안 주고, 선거일을 8월 5일로 빨리 잡은 것이다.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싶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긴급 시기여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고 나머지 선거는 5월에 치러졌다.

 

지금은 5월 중하순부터 농번기라고 볼 수 있지만, 1960년대까지는 하지 때가 농번기였다. 5월 초엔 중요한 농사일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모내기하고는 상관없는 계절이기 때문에 아무도 농번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걸 농번기라고 한 것이다. 왜 그렇게 선거를 앞당겨서 해야 하느냐, 이것에 대해 지금까지 명확히 해답을 줄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들이 '5월은 농번기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면서 반대하고 나섰다.

 

프레시안 : 이승만 정권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조기 선거 방침을 관철한다.

 

서중석 : 왜 조기 선거를 해야 하는 것인지를 해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설왕설래하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던 차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조병옥이 중병에 걸렸다는 보도가 1960년 1월 중순 나온다. 이 양반이 정확히 언제 중병에 걸렸느냐는 건 알 수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건 얘기를 안 하는 거다. 병원에 가서 치료는 받고 했기 때문에, 알 사람은 알지 않았을까는 싶다. 국내에서 도저치 치료가 안 되자, 이 양반은 1960년 1월 29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 한국인들이 최고 병원으로 쳐준 게 월터 리드 미국 육군 병원이었는데, 거기에 입원했다. 갈 때 이런 애기를 했다. '내 등에 대고 총을 쏘는 비겁한 행위는 제발 말아줬으면 좋겠다.' 뭘 가리키는 것이겠나. 조기 선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조병옥은 "낫는 대로 지체 없이 달려오겠다"는 성명을 내고 떠났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기붕조차 조기 선거를 하더라도 '4월쯤 하지 않겠나', 이렇게 얘기한 게 신문에 꽤 크게 보도되고 그랬다. 그런데 2월 3일, 정부가 3월 15일 선거를 치른다고 공고했다. 야당, 언론 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날씨도 4월이 따뜻해서 선거하기 더 좋은데, 3월 15일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어느 신문 사설엔 이런 내용이 실렸다. '3월 15일 당선된 사람이 8월 15일까지 5개월이나 어떻게 기다릴 수 있나. 당선 후 한두 달 또는 두세 달 후에 취임하는 게 원칙인 거지, 어떻게 다섯 달이나 기다리는 식으로 한다는 말이냐'. 거기에는 '야당에서 당선되면 어떻게 되는 거냐', 이런 의미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그렇게 여론이 악화됐는데도 왜 그렇게까지 조기 선거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는데, 그해 2월 15일 조병옥이 미국에서 죽었다. 1956년에도 선거 중간에 (민주당 대선 후보) 신익희가 죽었는데 1960년 선거에서도 죽으니 참 많은 사람이 눈물을 뿌리며 조병옥을 '민주 인사'로서 아쉬워했다. (미군정 때 친일 경찰 중용, 4.3사건 당시 강경 진압 흐름 조성 등 조병옥의 해방 후 행적은 '민주 인사'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 후 이승만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적잖은 사람에게 '민주 인사'로 인식된 것 또한 사실이다. <편집자>) 그래서 개사곡이 많이 나왔다. 그때부터 유행이었다. 신익희가 죽었을 때도 개사곡이 나왔지만, 특히 조병옥이 죽고 나서 학생들이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 하는 심정으로 개사곡을 많이 부르고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걸 쭉 보면 가장 중요한 지시를 누가 내렸는가를 알 수 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서른네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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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려던 순간 해고... 마흔여섯 사내의 '눈물'

 
14.04.04 19:21l최종 업데이트 14.04.04 19:21l 엄미야(miya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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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일 승리보고대회 후 회사 앞 기념촬영
ⓒ 금속노조 경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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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 다 큰 사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면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나, 우리 조합원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나, 너무 걱정이 돼서…."

말끝이 울음 속에 묻혔고, 그는 그렇게 쭈그려 앉아 한참을 흐느꼈다. 장장 5년을 끌었던 포레시아 정리해고 노동자 19명의 싸움이 마무리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프랑스계 자동차부품업체인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는 2009년 5월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정리해고 당시 회사의 경영상태가 고용안정합의를 파기할 만큼 불안하지 않았고, 정리해고 이후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등의 정황이 정리해고를 하여야 할 만큼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해고무효 판결을 내렸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지회(아래 포레시아지회) 송기웅(46) 지회장을 지난 2일 이른 아침, 벚꽃 흐드러진 경기도청(수원시 매산로) 앞에서 만났다. 경기도청은 포레시아 해고자들이 외국인 투자기업인 포레시아에 대한 경기도의 관리 감독을 요구하며 꼬박 3년 동안 선전전을 벌인 곳이다. 단 한 번도 거른 적 없던 매주 수요일 출근 선전전 마지막 날, 송 지회장의 심경을 들어봤다.   

- 참 오랜 시간이었네요. 해고투쟁은 오늘 선전전을 끝으로 마무리 되는 건가요?
"여기 도청 앞 선전전은 오늘이 끝이네요. 3년 동안 했는데 참 오래했네요.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서 시민 여러분께 고맙고요. 여기 마치고 영등포로 가서 정리해고 철폐 선전전도 마지막으로 하려고요. 시그네틱스, 풍산, 콜트-콜텍 동지들이랑 함께 하던 선전전인데, 오늘은 시민들에게 떡을 나누어 드릴 거예요. 농성장에서 밥 해먹으라고 지원해주신 쌀이 남아서 떡을 했어요." 

- 대법원 판결 이후 제일 먼저 누구에게 이 소식을 알렸나요?
"집에 팔순 노모가 계셔요. 어머니한테 제일 먼저 전화드렸어요. '아이구, 아들이 잘했다' 그러시대요. '내가 밥을 안 먹어도 신이 난다'고 하시면서요. 집에 들어가니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고생했다', '고생했다'라고만 하셔요. 며칠 전에 어머니가 꿈을 꾸셨는데 그동안 엄마 손 한번 안 잡아줬던 아들놈이 손을 꼭 잡고 '어머니 고맙습니다' 하더래요. 좋은 꿈 같아서 3일 동안 아무한테도 말을 안 하셨대요. 꿈이 날아갈까봐."   

- 물론 고마운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특별히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저희 소송 맡아주셨던 새날법률사무소 김기덕 변호사님요. 어제 같이 식사했는데, 그동안 무슨 돈으로 살았냐고 제가 물었어요. 포레시아 이겨서 밀린 집세 낼 수 있게 됐다고, 우리더러 우수고객이래요.(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동지들이 참 고맙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투쟁하고 지원해주시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니까요."

2009년 정리해고... 대법원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인정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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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일 경기도청 앞, 마지막 선전전
ⓒ 금속노조 경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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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5년이지, 쉽지 않은 시간이었잖아요. 해고 기간 동안 가장 힘들거나, 혹시 포기하고 싶던 때가 있었나요?
"조합원들이 힘들어할 때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들한테 괜한 희망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회사가 '송기웅 저놈은 회사 안 다녀도 먹고살 만한 놈이다. 당신들은 이용당하는 거다'라고 이간질시키고, 사실 그때 현장 조합원들이 많이 떨어져나갔어요.

인원이 조금 남으니 특히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이 회사한테 매일같이 시달리고, 기업노조와 차별 당하고, 임금도 우리 조합원들만 5년 동안 안 오르고…. 그래도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힘내라' 다독거려주고. 제 하소연을 잘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다시 힘내고, '그래, 해보자'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금속노조 내에서도 그렇고 지역 노동계에서 송기웅 지회장은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 있어요. 주변에 적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솔직히 그런 모습이 전부는 아닐 텐데, 스스로 인간 송기웅을 평가한다면요?
"2009년 5월 정리해고 되고 나서 첫 집회를 했는데 그때 제가 그랬거든요. '끝까지 가겠다. 약속은 지키겠다'고요. 배신하고, 당하는 일들도 주변에 많고, 자기 잇속들도 먼저 차리고, 또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 당하는데 저는 그런 걸 싫어해요. 사람들과의 의리를 중시하는 것 같아요. 원래 낯을 가리는 편인데, 대신 한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가죠."

- 결혼 안 하셨죠?
"못 한 거죠.(웃음) 해고당하기 전엔 소개도 좀 들어오고, 저도 결혼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딱 해고당하고 나서 소개도 안 들어오고, 이렇게 5년이 지났네요. 어머니랑 같이 사니까 아무래도 어머니가 빨리 장가가길 바라시죠."

- 가족들은 그동안 많이 도와주셨나요? 
"가족들에 관해서 전 행복한 편이에요. 다들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거든요. 큰 누이, 작은 누이가 있는데, 재판 이긴 날 너무 좋아서 밥도 안 먹었대요. 어머니한텐 처음 해고되었을 때 딱 한 번 얘기했어요. '아들놈이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니 믿어주십시오' 하고요. 그동안 속상하고 말리고 싶으셨을 텐데, 정말 가족들이 단 한 번도 내색을 안 했어요."

- 이번 판결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리해고 건이 이렇게 승소한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2007년 처음 구조조정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희망퇴직을 했고 당시엔 잘 대응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2008년 공장 이전을 한다고 해서 회사에 즉각적으로 고용보장확약서를 요구했죠. 처음엔 회사가 '회사한테 해고도 하지 말라는 소리냐'며 못 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끈질기게 요구했어요. 그래서 공장이전 합의서에 고용보장확약 내용을 넣을 수 있었죠. 판결문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하는 주요한 근거가 그 확약서예요."

-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꼽자면?
"우선 현장에서 회사가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는데도 금속노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조합원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처음엔 기업노조와 금속노조(산별노조)가 반반이었는데, 저희가 해고된 이후 많은 분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가입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기업노조 조합원이 200명이 조금 넘고, 저희 조합원이 현장에 7명 남았어요.

그리고 해고되었던, 함께 싸웠던 조합원들이요. 그 우여곡절들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가 있겠어요. 그간 상처들이 해소가 되려나…. 아마 안 될 거예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 큰 어른들이 스스로 껴안고 극복해야 할 것들이 있죠. 각자의 몫이 있는 것 같아요."

"'고생했다' 한마디에 담긴 수백 가지 의미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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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보고 대회 후 그간 연대해온 분들과 공장 앞 농성장에서 뒤풀이. 오른쪽 첫 번째가 금속노조 경기지부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지회 송기웅 지회장.
ⓒ 금속노조 경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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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복귀는 언제 하게 되나요?
"4월 10일요."

- 현장 안에도 해고되지 않았던 조합원들이 있죠?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는 복수노조, 소수노조잖아요. 그 분들도 현장에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판결 이후 뭐라고 하시던가요?
"현장이 난리가 났었대요. 아무래도 누구보다 좋았겠죠. 남자들이라 표현이 좀 인색해요.(웃음) 지회장에게 한 번도 '우리 힘들었요'라고 말을 안 한 사람들이에요. 내색은 안 했지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바깥에 있었던 저에게 너무 큰 짐이었어요. 현장의 차별 문제만큼은 해결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하죠."   

- 복귀하셔서 할 일이 많으시겠네요. 
"기계에서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돼서, 일단 열심히 일해야죠.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탄압하지 않으면요. 조직을 해야죠. 그리고 우리 조합을 탈퇴했던 분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그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회사가 만들어 놓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분들이 더 많은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가족도 있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조합원들에게도 그랬어요. '그들이 우리를 배신했다 생각하지 말아라. 우선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요. 그것이 바깥에서보다 더 어려운 투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여전히 정리해고로 고통받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분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지금도 열심히 투쟁하고 계시는 풍산, 쌍용차, 콜트-콜텍 동지분들에게 관심이 더 가야 할 시기에 저희가 이긴 것만 너무 떠들어대는 건 아닌가 죄송한 마음입니다. 답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법과 제도가 바뀌면 좋겠지만 그것이 당장 힘들다면 서로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외롭지 않게 보듬어주고. 그 힘으로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승소 판결에 같이 정리해고 철회투쟁 하시던 분들이 '고생했어요' 한마디 해주시는데,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수백 가지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질기게 싸워서 꼭 민주노조 사수하겠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투쟁하시는 동지들에게 큰 선물 드린 거죠?(하하)"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돈된 그의 대답에, 애초에 생각했던 만큼 인간미 물씬 나는 인터뷰는 일단 실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에 포레시아의 전신인 창흥정밀에 입사해 자칭 '날라리'로 살아오다가 2004년 처음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는 사람이 10년 만에 '투사'가 된 현실은 감동적이기도, 한편으로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 사회는 얼마나 더 많은 투사를 만들어낼까. 

가뭄에 단비 같은 포레시아지회의 정리해고 무효판결이 이후 계속될 쌍용차, KEC, 풍산마이크로텍 등 해고무효 소송 판결에 순풍으로 작용되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엄미야 기자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상근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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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주한 일본대사 초치..대변인 성명 발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4/05 11:48
  • 수정일
    2014/04/05 11: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일 외교청서.교과서 검정 발표, 독도 영유권 주장등 '역사왜곡' 여전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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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04  12: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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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태영 외교부 제1 차관이 4일 오후 3시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했다. 벳쇼 대사가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일본 정부가 4일, 2014년도 『외교청서』와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자 한국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하고 대변인 규탄 성명을 내는 등 강력 항의하고 있다.

『외교청서』, 독도 영유권 주장 여전..‘위안부’ 문제 등 보강

일본 정부는 4일 오전 매년 발행하는 우리의 ‘외교백서’에 해당하는 『외교청서』를 발간,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고수하고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외교청서』는 “한일 간에는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가 존재하나,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하는 일본의 입장은 일관된다”는 지난해 기술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지난해 새로 등장했던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독도에 상륙한 사실 등은 이번에는 삭제됐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간략하게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본은 진지하게 노력해왔다”는 표현에서 “일본으로서는 이 문제를 포함하여 한일 간 재산.청구권 문제는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입장이지만,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현실적 구제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국민과 정부가 협력하여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였고, 의료.복지 지원사업, ‘위로금’의 지급 등을 실시함과 동시에 역대 총리로부터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전달하는 편지를 송부해왔다”고 자세히 기술했다.

또한 “한국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일본에 의한 추가적인 대처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며 “일본으로서는 이 문제를 정치문제, 외교문제화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일본의 입장과 지금까지의 진지한 노력에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외교청서』가 언급하지 않은데 반해 “한반도 출신의 ‘민간인 강제징용자’를 둘러싼 재판과 관련, 한일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에 의해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의거, 앞으로도 적절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초등교과서 검증, 독도 영유권 기술 늘고 관동대진진 조선인 학살은 줄어

또한 이날 오전 발표한 일본 초등학교 3-6학년 사회과 교과서 검정 결과, 4개 출판사 12종 중 8종에 독도 관련 내용이 포함됐으며, 특히 6종의 교과서가 본문에 독도 영유권을 기술하고 있다. 즉,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2종의 교과서는 본문에 독도 관련 기술은 없으나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부교재인 사회과부동의 경우 2010년 검정시 2종 모두 독도 관련 기술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2종 중 1종이 교과서와 같은 내용으로 독도 영유권을 표기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은 검정 통과본 4개 교과서 모두 누락했으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술은 4개 출판사 중 2개 출판사만 기술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 △강제병합, 식민지 지배, 독립운동, △강제동원, 황민화정책(창씨개명, 일본어사용 등) 등 우리측 관심분야 기술은 대체로 포함됐다.

외교부, 주한 일본대사 초치..대변인 규탄 성명 발표

   
▲ 조태영 제1차관(오른족)이 굳은 표정으로 벳쇼 대사를 맞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외교부는 이날 오후 3시 『외교청서』와 초등교과서 검정 결과와 관련해 조태영 제1 차관이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또한 이날 오전 『외교청서』와 관련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오늘「외교청서」발표를 통해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또다시 터무니없는 주장을 반복한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억지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일본이 제국주의 침탈 역사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초등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해서도 별도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난 1.28 중.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에 이어 오늘 지난 2010년보다 독도에 대한 도발 수위를 더욱 높인 초등학교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베 총리가 불과 3주전 국회에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공언하고서도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왜곡.은폐하는 교육을 실시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릴 뿐 아니라, 일본의 미래세대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교과서 검정제도를 빙자하여 독도에 대한 도발을 계속한다면 한일관계 개선의 길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계기 한.미.일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독도 문제와 역사 문제에 있어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오히려 강화하는 행동을 지속하고 있어 한.일 관계 개선은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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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격화되는 북미군사대결전

<분석과전망>미국은 쌍용훈련을 왜, 최대규모로 벌인 것일까?
 
한성 
기사입력: 2014/04/04 [16:37]  최종편집: ⓒ 자주민보
 
 
▲사진 출처 인터넷에서 퍼온 뒤 편집      © 한성


북이 3월 31일 낮 서해에서 해안포 발사훈련을 했다. 무려 500발을 발사했다. 그 중에 100여발이 북방한계선 이남 해상에 떨어졌다고 했다. 이를 이유로 우리군 당국은 300발의 포를 대응발사했다. 

한반도가 또 다시 긴장의 회오리 속으로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양상이다. 남과 북이 지난 2월 14일 남북고위급접촉을 성사시켰을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다. 

남북고위급접촉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은 꽤 높았다. 그럴 것이 무려 7년 만에 성사된 남북고위급접촉이었다. 합의 내용들은 그 높은 기대와 관심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우선 이산가족상봉사업을 결정했다. 이후 남북고위급접촉을 계속해가기로 했다. 그리고 ‘상호비방중단’도 결정했다. 

당시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난제 중에 하나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과 미국의 한미합동군사훈련의 관련성 문제였다. 이산가족상봉사업과 한미연합군사훈련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입장이었다. 미국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북은 달랐다. 전쟁으로 발생된 이산가족상봉사업을 어떻게 전쟁훈련을 벌이는 동안에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알려진 것에 따르면 협상과정에 우리정부는 한미합동군사 훈련을 안 할 수는 없고 다만 최대한 ‘로우 키’로 하겠다는 입장을 북에 표명했다고 했다. 미국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북이 이를 받아들였던 것일까? 이산가족상봉사업은 결국 성사되었다. 

불안하기는 했다. 이산가족상봉사업이 마지막 이틀을 키 리졸브 훈련에 걸쳐놓고 있다는 것이 특히 그랬다. 좋게 본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남과 북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반대로, 남북관계개선사업이 미국에 의해 얼마나 위태롭게 영향을 받는가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혹은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2월 14일 남북고위급합의가 그만큼 위태롭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었다. 그 위태로움은 결국, 오래지 않아 점차적으로 현실화되는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북핵이 테러에 사용될 수 있다’, ‘영변에 불이 나면 체르노빌보다 더 큰 핵 재앙이 된다’, ‘북한 병진노선은 불가능하다’. 26일 박근혜대통령이 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언급해 나선 것이 대표적으로 가장 큰 계기였다. 

북은 침묵하지 않았다. 2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나섰다. 조평통은 대변인을 통해 박대통령을 대통령이란 직함도 생략한 채 실명을 거론하며 맹비난했다. “방구석에서 횡설수설하던 아낙네의 근성”이라고 했다. “미국의 노복이고 하수인”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누구할 것 없이 남북관계개선사업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관계개선 사업의 암울한 그림자에서 보다 근본적인 것은 다른 데에 있었다. 

지금, 한미연합군사연습 독수리 훈련의 일환인 쌍용훈련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달 27일 시작되었다. 4월 6일까지 지속된다. 흔히 평양상륙훈련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3천여 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미군 9500여 명 한국군 3000여 명 등 총 1만 2500여 명의 병력이 참가하고 있다. 수직 이착륙기인 오스프리 등 투입되는 전력은 최첨단이며 규모 또한 크다. 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훈련이다. 구체적으로는 21년만이라고 했다. 팀 스피릿 이후 최대 규모인 것이다. 

미국은 왜 쌍용훈련의 수위를 최고조로 높힌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답을 금방 내왔다. 

미국에 가장 큰 현안 중에 하나가 한미일3각군사동맹 구축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귀환’ 이후 아태지배전략의 기둥으로 설정한 것이 한미일3각군사동맹인 것이다. 미국이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인 26일, 우리나라와 일본을 불러 한미일3국정상회담을 개최한 것도 한미일3각군사동맹 구축사업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언급하고 그것을 매개로 하는 한미일3각군사동맹에 대한 강조도 했다. 

미 정부 관리들이 한일관계를 발전시켜야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빈번히 강조했던 것도 마찬가지로 한미일3각군사동맹 구축 작업의 일환이다. 

“미국은 한·일 양국이 과거사는 제쳐두고(Japan and the Republic of Korea to put history behind them)(한·미·일) 3자, 양자 협력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울 것이다”

지난 2월 13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열린 한·미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일본과 주변국 간 좋은 관계는 미국 이익에도 부합하고 한·일 간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는 한일관계 악화가 미국이 한미일3각군사동맹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해로운 것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미국의 인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남북관계개선에 대한 미국의 인식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대립을 거두어내고 ‘우리민족끼리’의 행보를 보일수록 북을 적으로 내세워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한미일3각군사동맹을 구축하려는 자신의 의도가 파탄을 면치못할 것이라는 인식을 미국은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쌍용훈련을 전례 없이 사상최대의 수준으로 벌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남북관계개선을 파탄내려는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북과의 치열한 전선을 치는 것을 통해 한미일3각군사동맹 구축의 조건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박대통령의 28일 독일 드레스덴 연설이 반북적이고 반통일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던 것 역시 쌍용훈련을 사상최대규모로 벌이는 미국의 문제의식과 일치하는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일3각군사동맹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북은 피해가지 않고 있다. 정면에서 그리고 강력한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한미일3국정상회의에 대한 대응은 노동미사일 발사였다. 26일이었다.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쌍용훈련에 대해서는 3월 31일 서해안 포격훈련으로 맞섰다. 다음으로 예상되는 것은 4차 핵실험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되는 예상이다. 그러나 예상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북이 직접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북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30일 이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일본방문과 방한에 대한 대응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또 다시 북미군사대결전이 이렇듯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한미일3각군사동맹과 북의 핵 미사일 능력 제고가 정면에서 맞붙는 국면이다. 

한반도가 여전히 위험한 결정적 이유이다. 전 국민적인 반전평화운동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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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새 정치'? 거짓 명분의 정치!

[주간 프레시안 뷰] 구도(構圖)가 아니라 마음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필자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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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4.04 08:46:10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6월 4일에 치러질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점차 낮아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투표율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입니다. 그간 지방선거 투표율은 1995년에 있었던 1회 지방선거 68.4%를 제외하고는 모두 40~50%대에 머물렀습니다. 1998년에는 52.7%, 2002년에는 48.9%, 2006년에는 51.6%, 2010년에는 54.5%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투표일인 6월 4일(수요일)은 임시공휴일입니다. 6월 6일(금요일)은 현충일입니다. 6월 5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황금연휴를 보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치전문가들 중 혹자는 사전선거제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2010년 지방선거 때보다도 더 떨어지지 않겠냐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투표일 전후로 연휴가 있으면,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가거나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휴일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있다고 해도 그러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고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비루한' 삶이 역설적으로 이러 저러한 비용이 든다고 해도 나들이와 여행을 삶의 필수 항목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결국 자본의 이윤증식을 위한 회로를 맴도는 것에 불과하다 해도, 휴일을 이용해 일시적이나마 '탈주'를 감행하지 않으면 삶을 연명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적은 비용이라고 해도 지불 능력을 갖추고 있는 계층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바로 이들이 선거경쟁의 향방을 결정합니다. 대체적으로 40~50대 연령층의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수도권 거주 유권자들입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무당파'로 일컬어지는 혹은 선거 때마다 업적과 미래 전망을 중심에 놓고 지지 정당을 바꾸기도 하는 이들입니다. 보수 혹은 진보로 굳어져 있는 유권자들(정당일체감이 높은 이들)을 제외하면 이들은 대한민국 유권자 중 대략 20~30% 사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옳든 그르든 혹은 맞든 틀리든 혹은 좋든 나쁘든, 매우 '합리적이고 전략적'입니다. 그래서 매우 까다로운 이들입니다. 정글 같은 삶의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실인지를 감각적으로 포착해내는 이들입니다. 한마디로 '까칠한 이들'입니다. 
 
▲ 6.4 지방선거는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 대 새누리당' '안철수 대 박근혜'의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연합뉴스

▲ 6.4 지방선거는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 대 새누리당' '안철수 대 박근혜'의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연합뉴스

이런저런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확인하는 것이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유권자 편성구조는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형색입니다. 더 많은 유권자가 보수 성향의 유권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 정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 까칠한 이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진보 정당을 포함한 야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열세에 있기 때문에 보수 정당보다 더욱더 까칠한 이들의 지지를 얻어내야만 합니다. 지난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51% 대 문재인 48%의 득표율,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60%를 넘어선 지지율의 지속은 어떤 이유에서든 까칠한 이들의 지지를 보수가 더 많이 얻어낸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지금,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중 누가 그 까칠한 이들의 마음을 더 사고 있을까요? 지지율만 두고 볼 때, 새정치연합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전격적인 통합선언 이후 반짝 올랐다가 한 달 사이 점차 떨어져 새누리당과 격차가 더 벌어진 상태입니다. 통합 선언 직후 새누리당과의 격차를 9% 안팎의 한 자리 수대로 줄였으나, 3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는 다시금 새누리당에 15% 가까이 뒤처져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를 봐도 새누리당은 42%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새정치연합은 28%밖에 안 나오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에 앞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에 비해서도 거의 20%가 낮습니다. 즉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결코 높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새정치연합에 비해서만 높을 따름입니다. 이는 잘 하고 있는 게 없는 새누리당에 비해서도 새정치연합이 너무나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하는 게 없는 무능한 여당을 앞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역전의 가능성'을 지닌 유능한 야당의 부재.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이유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역전의 드라마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어느 누가 관심을 갖겠냐는 것입니다. 결과가 뻔한 승부를 누가 관심을 갖고 쳐다보겠습니까. 특히 명분과 실리를 요리조리 살피면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까칠한 이들의 경우, 관심을 가질 턱이 없습니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일단 관심을 끌어내야 합니다. 마음을 줄지 안 줄지 판단의 기회를 먼저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야권은 그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써야 합니다. 기초단위 무공천 문제로는 안 됩니다. 왜 그 문제를 갖고 그리 난리법석인지 이해하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요. 유권자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문제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까요? 기초단위 무공천 문제로 '약속을 지키는 정치 vs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의 구도 형성이 가능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최경환 원내대표가 더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기초단위 무공천 약속을 어쩔 수 없이 폐기했다는 말과 사과가 훨씬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반면에 새정치연합은 떼쓰고 있는 것 같아 보이고요. 심지어 기초단위 무공천을 홀로 실시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수용치 않으면 우리도 폐기하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가운데, 당내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도 깔끔하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리더십도 문제지만, 좋은 리더십을 만들어내기 위한 '좋은 팔로우십(followship)'도 보여주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의 새정치연합입니다. 새정치연합을 보면 '일, 참 어렵게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새정치연합을 보고 있으면, 억지로라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압박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휘둘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 vs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만 정치는 '생물'입니다. 약속은 지키기도, 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약속을 지키고 어기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선거판을 좌우하는 까칠한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문제를 갖고 약속 운운하면서 구도를 짜려고 하니, 그것이 잘 될 턱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지금의 야당이 보일 수 있는 정치는 '저 정도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냥 저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한국의 야당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연명하기 힘든 사람들, 하루하루 연명해가기 위해선 온갖 '지혜'를 다 짜내며 고군분투해야 하는 사람들과 호흡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거짓 명분의 정치'말입니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짜놓은 구도 속에서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그릇된 가정에 매달리는 '성찰을 결여한 어리석은 정치'말입니다. 
 
유권자들, 특히 그들 중 까칠한 이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의미한 선거가 될지 아닐지, 자신의 명분과 실리를 충족시킬 선택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이들의 관심을 사야 투표율이 오르고, 투표율이 올라야 지금의 정치적 지형을 뒤바꿀 역전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힘써서 할 일은 구도의 설정이 아닙니다. 여론주도와 전파 역량마저 보유하고 있는 까칠한 이들의 관심을 끌고, 마음을 사기 위한 의제와 정책을 제시하면서 우리를 선택하면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 숨길을 열어줄 수 있는, 당장의 혹은 중장기적인 비전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합니다. 약속은 그때서야 비로소 중요해집니다. 약속 잘 지키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약속 안 지키는 남 욕하는 것 보았습니까. 그저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바라는 바를 약속하고, 이렇든 저렇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그래야 마음을 살 수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야권은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키우려 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을 사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구도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치에서 승패의 결정은 상대방이 아니라 유권자가 한다는 사실, 다시 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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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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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韓國 자살은 도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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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청와대 사진, '북풍'을 통한 국정원 살리기

 
 

 

 


북한제로 추정되는 무인기 두 대가 추락하면서 모든 보수 언론은 관련 소식을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처음 파주에서 무인기가 발견됐을 때는 국방부가 "민간업체 무인기이고, (북한) 용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북한 무인기가 아니라고 발표했던 국방부는 청와대 사진이 나왔지만, 선명하지 않고 흐릿하게 나왔다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4월 3일 백령도 추락 무인기와 관련한 발표에서는 무인기가 북한에서 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조중동 보수언론과 국방부는 연일 '오보'와 잘못된 정보를 계속 국민에게 보도하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보수언론들은 무인기에 관련한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와대 사진, 오보면 다행, 진짜일 경우 처벌받아야' 

조선일보는 4월 3일 1면에 <북 무인기, 청와대 바로 위 20여초 떠 있었다>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북한제 무인기가 찍었다는 청와대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자체적으로 모자이크 처리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라는 청와대 사진에 대해 국민TV 뉴스K는 '오보'라고 보도했습니다. 뉴스K는 조선일보가 보도한 사진과 구글어스의 사진을 비교했는데, 2013년 3월 25일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2012년 3월 사진과 더 유사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K 노종면 앵커는 “북한은 2014년에 2012년을 촬영하는 무시무시한 군사기술을 보유하고 있나 봅니다”라며 “조선일보는 이 사진을 어디서 입수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뉴스K의 주장에 대해 조선일보는 입수경위는 밝힐 수 없지만, 오히려 뉴스K가 오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자체적으로 모자이크 처리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사진이 오보라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청와대 사진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국가 안보에 굉장히 위협적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목표시설 관리지침'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보도한 청와대 사진은 촬영뿐만 아니라 배포되거나 공개되는 것 자체가 금지된 사진입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사진은 국방부 연구소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국방부가 조사결과가 중간에 새 나가는 것에 대해 연구소장을 문책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4월 3일 온라인 기사)

오보라면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으니, 조선일보가 독자에게 사과하면 됩니다. 그러나 진짜 청와대 사진이라면 사진을 유출한 사람과 입수해서 공개한 조선일보, 모두가 처벌받아야 합니다. 

조선일보가 말로는 국가보안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북한에 무인기 대신 청와대 사진을 넘겨준 꼴입니다.

' 소설을 기사처럼 보도하는 언론들' 

북한제 추정 무인기가 발견되면서 보수언론들은 특히 심하게 오보를 쏟아냅니다. 보수언론들은 소설을 기사처럼 쓰거나 잘못된 정보를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TV조선은 이봉규의 황금펀치에서 <북 '핵폭탄무인기' 몰려 온다>는 자막을 화면에 보여주며, 무인기에 폭탄이나 생화학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며 공포심을 유발했습니다. 

물론 무인기에 폭탄을 장착할 수는 있습니다. 전술 공격용 무기는 이미 한국에서도 개발하고 있는 전략무기입니다. 

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는 근거리 정밀타격용 자폭형 고속무인기 Devil Killer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데빌킬러와 이번에 발견된 무인기는 마차와 경주용 자동차처럼 그 수준 자체가 다릅니다. 
 

 

 


무인기가 시속 100킬로 미만인데 비해, 데빌킬러는 최대 시속 400킬로이며, 레이더와 영상감지기 등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무게입니다. 파주 무인기는 15kg이고, 데빌킬러는 25kg입니다. 무게와 길이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폭탄이나 각종 장비를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인기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던 이유는 소형이기 때문이고, 만약 데빌킬러와 같은 사이즈와 무게라면 대공 레이더에 잡힐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무기의 위험성을 말하려면 최소한 정확한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데, TV조선은 무조건 <북 핵폭탄 무인기 몰려온다>는 자막과 선정적인 보도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중앙일보는 4월 3일 1면에 <북한 무인기 송신장치 있었다>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북한 김정은의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사는 제목만 그럴듯한 기사입니다. 

중앙일보는 <무인기에 장착된 카메라로 대통령 숙소 등 청와대 관저를 근접 촬영한 사진이 북한에 넘어갔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송수신기는 영상을 보내는 게 아니라 조종을 위한 장비입니다. 

무엇보다 무인기에는 송수신기와 카메라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없기 때문에 영상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국방부의 공식적인 케이블이 없었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가 마치 북한에 사진이 넘어간 것처럼 제목을 올리고 김정은 사진을 배치한 이유는 '북풍 몰이'를 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북풍을 만들어야 살아남는 국정원' 

전문가들은 이번 무인기가 실험용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만큼 조잡하고 기능도 단순하고 촬영한 사진도 구글어스와 별로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무인기에 대한 오보성 기사가 쏟아질까요? 
 

 

 


국정원과 검찰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으로 큰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간첩조작이 문제가 아니라 간첩 혐의가 본질'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통해 간첩 사건은 조작이 아니었다고 국정원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살리기에 법과 중립을 지켜야 하는 법무장관까지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국정원의 간첩 사건 조작은 그 여파가 큽니다. 왜냐하면 지난 대선에서 선거부정을 자행했던 국정원 직원이나 남재준 원장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은 과거에도 자신들의 위상이나 존재감을 위해 간첩 사건을 조작해왔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대선이 끝난 직후에 발표된 부분도 이와 유사합니다. 

무인기 보도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도 국정원이 늘 해오던 <작은 사건 뻥 튀겨 북풍 유발> 수법과 비슷합니다. 

이를 통해 국정원의 잘못을 은폐하고, 간첩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국정원이 필요하다는 존재론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아이엠피터 생각으로는 앞으로 청와대에 근무하는 직원 중, 혹시나 이적단체에 가입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빌미로 '간첩'이나 '북풍'을 더 크게 유도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무인기 사태처럼 청와대가 비판받을 수 있지만, 더 큰 '북풍'이 몰아칠 것이고, 이는 국정원의 존재와 간첩사건 조작을 은폐하는데 아주 탁월하고 잘 먹혀들어가는 수법이기 때문입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모든 것을 뒤덮어, 앞으로 있을 6.4 지방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언론과 국정원,새누리당, 보수단체가 연일 '안보','보안'을 떠들지만, 진짜 정보를 유출하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입니까? 

북한이 알면 안 되는 청와대 사진을 버젓이 공개하는 조선일보, 새누리당 의원이나 블랙요원이 과거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히 보도하는 언론이 어쩌면 진짜 간첩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진짜 안보는 필요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안보는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지,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북풍'은 북한이 아닌 우리 내부에서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집단이 벌이는 만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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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전환배치 고민' 50대 조합원 사망

 

마산신호제어사업소 전기원, 3일 오후 자택서 목숨 끊어

14.04.03 22:41l최종 업데이트 14.04.04 08:2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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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철도공사의 파업 참가자에 대한 해고 및 징계, 강제순환전보 조치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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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철도) 전환배치로 고민하던 50대 전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일 전국철도노동조합 부산본부는 코레일 부산경남사업본부 마산신호제어사업소 전기원인 조아무개(50) 조합원이 이날 오후 3시45분경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철도노조는 배우자의 진술을 빌어 조 조합원이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소재 자신의 집에서 자살했다고 밝혔다. 조 조합원은 1995년 6월 입사했고, 가족으로는 부인과 남매를 두고 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조 조합원은 지난 3월 4일 마산에서 진주로 근무지 이전(사업소 내 이동)했다. 철도노조는 "최근 조 조합원과 면담 과정에서 '진주 온 지 얼마 안됐는데 삼랑진으로 가라고 하면 어떡하나'라며 너무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철도노조는 "지난 3월 22일 서울집회 때 소속 대의원이 '조아무개 조합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이라고 해서, 노조 지부 간부들이 '사업소장에게 얘기를 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무슨 일 나겠다'는 등 이미 주변에서 이런 우려가 컸었다"고 밝혔다.

이어 철도노조는 "지난 3월 24일 전기처장이 전기처 밴드에 '이번 1차 전보에서는 마산, 진주, 태화강은 제외하겠다'고 하여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7월에 있을 2차 전보 대상자로 될 거라는 불안감은 상존했다"고 덧붙였다.

철도노조는 "조아무개 조합원은 평소 우울증세가 있었으나, 이번 강제전보 대상자가 되는 등의 과정에서 심한 불안증세를 보여 이미 주변의 우려가 매우 컸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철도노조는 "지부에서 배우자를 만났고, 배우자도 고인이 삼랑진으로 갈지, 부산으로 갈지 모르겠다며 전보에 대해 심히 불안해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고인의 빈소는 동마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철도노조는 4일 오전 코레일 부산경남본부가 있는 부산역 앞에서 조 조합원의 사망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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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드레스덴 선언은 범죄적 체제통일 비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4/04 08:18
  • 수정일
    2014/04/04 08: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대통령 실명 거론 “반통일 대결행각”주장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4/03 [22:2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범죄적인 '체제통일' 시도를 본 격화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와 공중파 방송 등은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서 밝힌 대북제안을 "체제통일 시도"라고 거듭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달 네덜란드, 독일 방문에 대해 "범죄적인 반통일 대결행각"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에서 통일 구상을 밝힌 데 대해 "박근혜가 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무슨 통일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입방아질한 것은 '체제 통일'에 대한 공공연한 선언"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 독일식 '흡수통일'은 북한에 절대 통할 수 없다며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이룩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도인 연방제 통일"을 부정하고 "범죄적인 '체제통일' 시도를 본 격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동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네덜란드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 문제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의 화사를 돌렸다. 

신문은 "박근혜는 제3차 핵안전수뇌자회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은 북핵 포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느니, '세계 평화의 큰 위협'이니 하고 우리를 터무니 없이 걸고 들면서 '심각한 우려'니, '반드시 폐기'니 하고 악청을 돋구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남북관계는 대화냐 파국이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며 "외세와 마주앉아 '단합된 대응'이니, '공조 재확인'이니 하며 우리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박근혜에게 과연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로동신문은 주민 명의로 된 글을 통해 박 대통령을 '천박하고 미련한 시골 아낙네' 등의 표현을 사용한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갔다.

한편 북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상호비방중지에 합의한 이후 한국정부와 당국자들에 대한 비난을 삼가 왔으나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자 남측 당국과 대통령에 대해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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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 ‘진짜’ 통일대박 준비해야”

 

[한완상 특별인터뷰] 노벨수상자 오바마가 김정은 손잡아야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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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03  14: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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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에서 ‘쌍룡훈련’이라는 대규모 한미합동 북한상륙훈련이 전개되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방에서 북의 포사격 훈련과 남의 대응사격이 벌어졌다. 이런 긴장 상태에서 미국은 북에 ‘위험한 도발 중단’을, 중국은 ‘유관 당사국의 냉정과 절제’를 촉구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 해결, 민생인프라 건설, 동질성 회복의 ‘평화통일 기반 구축 3대 제안’을 내놨다. 북은 ‘반민족적 체제통일’을 추구한다며 민간교류협력조차 가로막으면서 ‘지원’, ‘공동번영’, ‘동질성 회복’이냐고 비난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계절의 봄은 왔으나, 민족의 봄은 멀기만 하다.

<통일뉴스>는 1970~80년대 대학교수로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1993년 김영삼 정부의 통일부총리, 2004년~2007년 노무현 정부의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거쳐 지금도 시대의 은사로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줄기차게 헌신하고 계시는 한완상 선생님(1936년생)을 찾았다.

199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와 한반도상황,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길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3월 28일 오후 4시 압구정동 선생 댁에서 정성희 <통일뉴스> 기획위원이 진행했다. / 편집자 주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인터뷰 내내 소박하지만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무게감으로 남북문제와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이번에 감기를 2주 앓아보니까 아 이제 내 건강의 한계가 오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번 독감은 지독했어요.

분단 70년의 고통, 못 느끼는 사람들 많아 더 아프다

□ 정성희 소장 :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내년이 분단 70주년이 되잖아요? 나이가 드니 분단 70년이 빚어낸 민족의 부당한 고통이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내가 살아온 기간이 일제시대와 분단시대이잖아요? 식민지가 끝나고 광복을 체험해야 하는데, 내 평생에 한 번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8.15기념식을 할 때마다 광복이요 해방을 맞은 것처럼 다들 기뻐하지만, 나는 한 번도 기쁜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더 쓰라린 마음, 해방되지 못한 아픔을 느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하네요.

내년이면, 분단 70년입니다. 혼란 5년, 열전 3년, 냉전 62년 엄청난 아픔을 겪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해요. 왜 이렇게 된 건지, 그 이유를 생각하면 더 화가 납니다. 분단의 유지 강화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남북 다 같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냉전 원리주의자들이 남과 북의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면 불가피하게 남북관계는 어려워지니까요.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역설적으로 체제내의 권력기반은 강화됩니다. 이런 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요. 어떻게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의 고리를 끊고 부당한 민족의 고통을 인식하고 극복해 나갈 건가 고민입니다. 요즘 주로 강연으로 소일하고 있는데, 이런 주제로 얘기합니다.

젊은이들, 역사건망증을 치유하라

   
▲ 이 시대의 은사로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줄기차게 헌신하고 계시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와의 인터뷰는 3월 28일 선생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어제도 서울대에서 강연했는데 어느 여학생이 놀라운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 왜 북한과의 관계가 꼭 좋아야 합니까? 북한도 남한도 그냥 따로 살지 통일이 왜 그렇게 절박합니까?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 역사건망증에 심하게 걸렸구나. 쉬운 말로 한쪽 팔이 묶이고 한쪽 팔로만 권투시합을 해서 늘 져오다가 요즘 이기기 시작한다. 경제가 중진국, 문화 선진국, 정보 최선진국으로 올라가고 있다. 양쪽 팔을 다 사용하면 얼마나 큰 경쟁력을 가지겠는가, 문화민족으로서의 창의력을 전 세계에 떨치겠는가. 이런 거 아쉽지 않냐? 식민지 36년, 분단 70년이 억울하지도 않느냐? 라고 했어요. 그런데 젊은 학생들에게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거죠.

□ 정성희 소장 : 제가 6.15 이전인 1999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축구대회에 참여하고 6.15 이후 2000년 10월 북측이 초청한 각계 인사 43인과 함께 방북한 적이 있습니다. 첫날 저녁 만찬장에서 사회를 맡아 "이 분이 통일부장관을 좀 더 오래하셨으면, 지금의 6.15시대가 훨씬 빨리 왔을 것"이라며 방북 단장이었던 선생님을 소개한 기억이 납니다만, 김영삼 정부 들어 1993년 2월부터 12월까지 짧게 부총리 겸 통일부장관을 하신지 21년이 지났습니다. 한반도 위기상황을 헤치고 이인모 비전향장기수 북송 등으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는데, 당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개괄해주시지요. 

따뜻한 흐름과 차가운 흐름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최근 출판한 책 <한반도는 아프다>에 자세하게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다 얘기할 수는 없고요.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할 당시,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두 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흐름과 차가운 흐름이 그것인데요.

노태우 정부는 세계적 탈냉전 분위기에 적극 대응해 1988년 7.7선언 이후 교차승인을 추진하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끌어냈습니다. 특히 1992년 지금의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의 전신인 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시켰습니다. 이건 대단한 결정이었어요. 당시 그레그 주한 미 대사가 한반도 상황을 잘 이해하고 대북관계 조정에 힘을 썼습니다. 그레그 대사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도 관계가 좋았거든요.

이런 따뜻한 흐름 속에도 차가운 흐름이 살아있었어요. 1992년 가을쯤으로 기억되는데, 미국이 1993년부터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는데, 작년에 그레그 전 미국대사가 방한해 대담하면서 한번 물어봤어요.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면서 당시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국방부장관이었고 나중에 아들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막강한 네오콘 실세였던 딕 체니가 바꾸었다는 거예요.

당시 노태우 정부 인사들은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고 그냥 미국 방침에 순응한 것 같아요. 이런 차가운 흐름을 노태우 정부의 냉전세력들이 고약하게 이용하려 했습니다. 92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되는 8차 남북고위급회담 과정에 대통령의 훈령을 조작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게 되니까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

   
▲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며 민족 당사자 원칙에서 과감한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북쪽의 좋은 반응이 있었지요."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당시 나는 김영삼 대선캠프 정책팀에 있으면서 이런 차가운 흐름을 걱정하다가 당선 이후 대통령 취임사 초안 작성팀을 맡았지요. 차가운 흐름이 새 정부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못을 박기 위해 취임사에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며 민족 당사자 원칙에서 모든 남북현안을 해결하자는 과감한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북쪽의 좋은 반응이 있었지요.

1993년 3월 2일 부총리 겸 통일부장관에 임명되어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법전 식으로 대응하면 민족이 서로 상대방을 병신으로 만듭니다. 남이 북보다 GDP 14배이고 정치적 인도적 힘이 훨씬 우세합니다. 북이 남을 한대 치더라도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포용정책, 햇볕정책을 취해야 합니다. 과거 군사정권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듣기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보다 구체화해서 대북정책 변화의 강력한 신호로 노태우 정부시절부터 이미 현안이 되었던 이인모 비전향장기수 북송 얘기를 꺼낸 거예요.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건 없이 보내자고 진언했지요.

그런데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만, 93년 3월 11일 오후 이인모 씨 북송 허용을 발표한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3월 12일 오전 10시 북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에 감동했다고 확인되었는데, 그렇다면 왜 팀스피리트 한미합동훈련 재개에 반발하는 북한 군부 강경세력을 관리하지 못했을까. 나는 그 때 아들 김정일에게 군사력 통제 권한을 넘긴 김 주석이 힘이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 되었어요.

핵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

일단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초점으로 부각되니 북을 옥죄어야 한다는 냉전수구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전통적인 냉전대결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겁니다. 김영삼 대통령 주변의 냉전적 사고를 가진 핵심인사들이 저 같은 햇볕정책론자들을 많이 제약했지요. 대통령도 날로 보수화되어 갔어요. 그 연장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핵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당시 이경재 청와대 대변인에게 그 문장이 들어가면 남북관계가 공식적으로 어려워진다고 몇 차례 설득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미협상 일괄타결 추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매우 경계하는 거예요. 93년 10월 말 레이니 미 대사가 부임하여 환영식을 하는데, 친구로서 당연히 가야하는 나를 못 가게 할 정도였어요. 레이니 대사는 한국 민주화를 많이 지원하고 역대 주한 미 대사 가운데 평화 신념이 가장 강한 친한파 인사였거든요. 미국이 일괄타결을 위해 북과 협상하는 데 대통령 주변은 속이 상한 것 같아요. 그럴 일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레이니 대사를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평화 실현을 위한 좋은 정책을 펼 수 있는데 기회를 놓치더라고요.

레이니 대사는 임기 중 어느 강연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평화 실현을 위해서는 대북 군사억제력을 넘어서야 한다는 파격적인 얘기를 했어요. 역대 미 대사 중에서 가장 좋은 친구인데, 그 인적 자원과 관계를 활용할 줄 모르는 대통령에 가슴이 아팠고 대통령을 그런 방향으로 이끈 청와대 참모들에 실망했습니다.

94년 6월 미국의 영변 정밀폭격 검토로 인한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될 때도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은 전면전의 경우 며칠 사이에 약100만 이상의 인명손실, 10억 달러 이상의 전쟁비용이 든다며 전쟁은 현명한 길이 아니라고 워싱턴에 보고했습니다. 럭 대장의 이런 입장도 매주 1회 정기적으로 그와 대화를 가진 레이니 대사의 숨은 노력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1994년 전쟁위기 극복과 북미 제네바합의 파기의 교훈

   
▲ 그는 이 시대 역사적 전환을 인식해야 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도 너무 비싼 전쟁이란 걸 알게 되고 레이니 대사의 주선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 극적 타결을 봅니다. 카터 방북에 대해 클린턴도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았고 김영삼 대통령도 반대 입장을 전달했어요. 김일성-카터 담판을 계기로 분위기가 급반전되어 94년 7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또 다시 냉전의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가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도 김영삼 정부가 반대하는 가운데 레이니 대사가 그 성사를 위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북미 제네바합의가 지켜졌더라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순조롭게 진전되었을 것입니다. 흑연감속로의 경수로 대체, 원자로 가동 중단과 중유 제공,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 위협 및 핵무기 사용 중단 약속 등. 그러나 미국이 핵무기 탑재 한미연합훈련 지속 등 중유 일부 제공 이외 거의 합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합의서에 로켓 발사 금지와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 중지 같은 내용은 없었는데도 이후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자 북한도 비핵화를 더 진행하지 않고 2003년 1월 다시 NPT탈퇴를 선언하고 핵시설을 재가동시킵니다. 미국과 한국의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합작으로 제네바 합의를 뒤엎은 거지요. 심지어 2001년 등장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이 자, 이 사람, 이 놈)이라 지칭하는 등 냉전적 태도를 드러내며 햇볕정책을 강하게 부정합니다.

□ 정성희 소장 : 작년보다는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올해도 핵잠수함이 부산항에 입항하고 포항에서 '쌍용훈련'이라는 북한 상륙작전을 포함한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 말로는 방어적 정례적 성격이라지만, 북침을 가상한 대규모 한미연합 전쟁연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북도 수십 발의 방사포, 로켓에 노동미사일까지 시험 발사하여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유엔인권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북을 '악'이라며 북 핵 폐기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로 삼는 등 여전히 강경한 대북정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동북아, ‘극동’이 아니라 ‘본동’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한반도 상황은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봐야 합니다. 서구제국주의의 힘이 전 방위로 뻗어갈 때는 우리가 사는 동북아는 그야말로 극동, 동쪽 구석이었지요.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중심부가 극동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 미 핵잠수함의 60%, 항공모함 10개 중 6개가 이쪽으로 집결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도 G1 G2 G3가 모두 아시아-태평양에 있습니다. 한국, 싱가포르, 홍콩 등 문화 창의력이 분출되는 나라들도 태평양 연안에 있어요. 그래서 나는 ‘극동’이 아니라 ‘본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곳, 역사의 오리엔테이션이지요.

동아시아의 주요 모순은 G1과 G2,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고, 부차 모순이 G2와 G3, 중국과 일본의 갈등, 그리고 남과 북의 갈등입니다. 나는 주요 모순이 해결되지 않으면 부차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성숙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중국의 시진핑은 이를 원하고 있는데, 미국의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전략으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유럽이 반발하니까 최근 유럽과 아시아의 ‘재균형’으로 조정하고 있습니다만, 세계가 아시아를 축으로 돌아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인식하지 못하고 미시적으로 대응하면 큰일 납니다. 미중갈등은 또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해묵은 갈등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냉전체제가 허물어지기 전에는 미소갈등이 있었지요. 소련도 대륙세력이었죠. 그러나 소련, 러시아보다 우리와 역사적으로 더 깊은 관계에 있는 중국이 주요 모순의 당사자로 등장하여 우리에게 심각한 선택의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미갈등 조정해야 평화통일 가능하다

   
▲ 어떻게 해야 민족갈등을 해소하고 민족화해를 이룰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이 닳아 헤진 옷소매마냥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이런 환경에서 우리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미소냉전 질서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미국은 혈맹이었고 소련은 주적이었으니 선택의 고민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한중수교 23년 동안 다방면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강화된 지금, 중미갈등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굉장히 어려워진 것입니다. 대륙세력이고 G2인 중국과의 관계가 엄청나게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북경의 거리가 서울과 워싱턴의 거리와 같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경험하지 못한 일이예요.

에피소드 하나 소개할까요. 김영삼 정부 초기에 주중 대사 황병태, 주미 대사 한승주, 주러 대사 김석규 등 주요국 대사 내정자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문민정부 하에서 대사로 가시는데, 여러분이 가는 나라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던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입니다. 군사정부 때처럼 인권탄압으로 현지 정부에 설명해야 하는 곤혹스런 일은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이제 시장개척, 문화협력 등 자랑스럽게 외교를 펼쳐주세요 라고 당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황병태 주중대사 내정자가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서울-북경 거리와 서울-워싱턴 거리는 같아야 합니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된 연유인지 그 다음날 조간신문에 가십기사로 나와 황 내정자가 되게 두들겨 맞았어요. 어디 감히 혈맹인 미국을 중국에 비교하느냐는 식이었지요. 그 때 정서는 그랬어요.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중국이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요.

이제 서울-북경이 서울-워싱턴보다 가깝다

박근혜 정부가 중미갈등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는 자명합니다. 감상적 통일지상주의자나 진보적 이상주의자의 발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얘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냉전적 한미일 삼각동맹 부활 움직임에 대해 ‘노’라고 해야 합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삼각동맹에 가담하면 안 됩니다.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동반자관계, 신 대국관계로 발전 승화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책을 권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당히 주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해주길 바라면서 이번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광복 70년, 이전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만, 지금은 주체적 외교역량을 보여줄 때입니다. 미국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전략에 따라 냉전 삼각동맹을 부활하려 하고 있어요. 공화당은 민주당정부가 대신 대중 봉쇄를 취하니까 기분 좋은 거지요. 한국 안에도 냉전수구세력이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한미일 냉전 삼각동맹 부활 움직임에 일본 극우화라는 변수가 등장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그냥 따라 갔는데, 지금은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일본의 지위를 높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승인하고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게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강력한 국민 정서라는 자원을 활용해 한미일 삼각동맹 부활을 조절, 관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행적으로 볼 때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 군국화를 막는 동시에 냉전 삼각동맹을 넘어서는 새로운 외교정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냉전 삼각동맹 넘어서는 새 외교 선택해야

   
▲ 신뢰를 얘기한 측에서 먼저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크림반도 사태로 미국의 아-태 중심 전략의 조정은 없을까요? 박근혜 정부가 러시아 크리미아 합병을 규탄했는데, 한국의 현명한 대 러시아 입장은 무엇입니까?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러시아의 크리미아 자치공화국 병합으로 미국의 전략에 미묘한 변화가 보입니다. 오바마가 나토 회원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재정위기로 국방비를 늘릴 수 없으니. 서쪽은 안심하고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으로 동쪽을 걱정했는데, 이거 안 되겠구나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또 다른 지역으로 확산을 막기 위해 서쪽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중심축이 2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좀 더 여유를 갖게 될지 모르겠고 러시아를 봉쇄하는 미국이 아니라 같이 봉쇄당하는 러시아를 은근히 편들 것입니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규탄은 미국의 주문에 따른 것이지만, 통일대박이나 유라시아 구상의 실현을 바란다면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마다 미국의 강권에 순응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신중해야 합니다.

워싱턴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팀이 우리 외교부에 없는 것 같아요. 창의적으로 논리를 세워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외교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북 영변에서 사고 나면 체르노빌 몇 배의 재앙이 온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헤이그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아픈 곳을 찌르고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안 되는 말이지요.

신뢰 얘기한 측이 먼저 상대가 신뢰할 수 있는 조치 취해야

□ 정성희 소장 : 한미합동훈련 기간인데도 이산가족 상봉을 마쳤지만, 남의 정례화 회담 제안에 북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반응입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에 북 핵 폐기 국제공조 입장을 취하고 기독교탈북자연합회 등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니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상호 비방 중단 합의 위반이라고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으로부터 신뢰를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뢰를 얘기한 측에서 먼저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친구끼리도 그렇고 상거래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물며 민족문제인데. 상대방에게 먼저 신뢰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신뢰프로세스’이니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 시점에서 북이 남의 ‘신뢰프로세스’를 왜 불신하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북한이 굉장히 중시하는 그간의 남북합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남북정상간 합의, 즉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내용을 각론화, 프로그램화하여 진행하자고 회담을 제안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이런 제안이 없었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가 10.4선언의 절반을 무효화했어요.

둘째, 국제사회에서 핵문제를 갖고 북한을 옥죄는 국제공조에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 모습도 북을 옥죄는 것이었죠.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합의도 안 지키면서 국제적 고립에 앞장선다고 보지 않겠어요? 신뢰가 생기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햄릿의 고뇌라도 보여야지요, 돈키호테의 확신이 아니라.

‘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 성공의 조건

   
▲ 그는 중간중간 자료를 펼쳐 정확성을 기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더구나 기독교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북이 매우 싫어하는 문구나 표현의 대북 비방 전단을 살포하니 신뢰가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 우리 국가는 대의, 즉 평화 화해 통일을 위해 어느 정도 관리할 능력이 있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어요. 대선에 댓글로 개입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왜 손 놓고 있는 겁니까? 최근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대표의 비료 지원 추진에도 당국이 가로막는 태도를 보였어요. 그래 가지고 북 당국이 신뢰하겠어요?

제가 적십자 총재로 있을 때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5차례, 화상 상봉 4차례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대북 비료 지원을 요청할 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생존권적 기본권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에 강력히 제기해 성사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민화협이 앞장서 비료 지원하면 정부는 얼마나 좋습니까. 부담을 덜면서 신뢰를 높일 수 있고. 그런데 잘한다고 칭찬은 못할망정 방해해서 되겠어요?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됩니다.

1998년 4월 북경 남북비료회담을 성공시키지 못한 김대중 정부의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햇볕정책을 추진할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갖고 북측 대표가 ‘비료가 그리워 왔다’고까지 말한 비료회담이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면서 결렬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 초기의 DJP연합으로 냉전수구세력의 반발을 의식해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죠. 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김대중 정부 2년 동안 남북관계를 하나도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6.15선언은 2년 이후의 일이었고 그 귀한 2년을 헛되이 보낸 것입니다. 이런 사례에서 박근혜 정부는 배워야 합니다.

북 핵 포기하면 대규모 지원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술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과 다름이 없어요. 물론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는 해야 합니다. 내가 적십자총재 시절 준공했던 12층 건물의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가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도 미래연합 대표 자격으로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 7개 사항을 합의한 바도 있습니다.

일본 신 군국주의 막아내고 MD 편입 거부해야

□ 정성희 소장 : 재정위기를 겪는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승인하는 등 일본의 지위를 높여 동북아 패권을 강화하려 하면서 한국을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으로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4월 23일경 방한하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약(TPP) 가입과 한일군사정보협정을 강권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한국의 바람직한 대미 대중 대일 외교노선은 무엇일까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한일관계를 복원, 삼각동맹을 완성하기 위해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라는 오바마의 권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데 앞장서고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이배 신조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제식민지 36년의 고통을 겪은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중국이 어떻게 보겠어요?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우리의 외교력을 동원해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도록 집중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의 합법화가 만만치 않습니다. 만일 아베가 계속 추진한다면 일본의 뜻있는 정치인, 시민사회, 언론계 등과 협력해 막아내야 합니다.

환태평양 동반자협정(TPP) 가입은 우리에게 이익도 있고 손실도 있는데 아마도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커겠지요. 그러나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는 우리에게 전적으로 손실만 있고 백해무익합니다. 더구나 전시작전통제권을 재연기하는 대가로 MD체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재정이 어려운 미국은 한국의 전작권 재 연기 요구를 방위비 절감의 호기로 삼겠지요. 그러나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한국의 이런 애걸복걸을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의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력만이 아니라 전략적 유연성, 즉 미국이 분쟁지역에 신속히 개입하는 기동군의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주한미군을 빼서 더 급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이니까요.

미국 짝사랑 이제 그만, 전작권 돌려받자

   
▲ "이제 우리는 자주외교를 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역사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국가 이익을 위해 한반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05년 7월 태프트-가쓰라 밀약 때도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조선에 대한 권익을 일방적으로 교환했어요. 1945년 8월 일본군 무장해제를 이유로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단시켜 전범국가인 일본이 겪어야 할 고통을 우리 민족에게 모두 전가했습니다. 그 때도 미국은 잔인할 정도로 우리를 무시했어요. 1950년 1월 애치슨 선언을 통해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남한을 제외시켰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유발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했어요. 그 때도 미국은 우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 우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모르고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짝사랑하는 거예요. 이제 넘어설 때가 되었어요. 미국의 새로운 세계군사전략을 이해하고 우리의 방위비 분담을 줄이는 방향에서 마땅히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아야 하며 MD체제 편입을 거부해야 합니다. 도대체 군사적 자주권이 없이 어떻게 자주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겠어요? 원천적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 정성희 소장 : 노무현 정부는 균형외교를 표방했습니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어떤 외교, 어떤 경로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까?

자주평화통일은 대박, 흡수통일은 쪽박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는 조금 빨랐어요. 독자적 힘을 갖추지 못해 균형자 역할이 어려웠고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조정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가 2개입니다.

첫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막는 것입니다. 일본 군국주의 저지는 일본의 장기적 발전과 일본 국민에게도 이익이 되고 미국에게도 이익이 됩니다. 둘째,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강화하여 중미갈등, 즉 동아시아의 주요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외교노선을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전시작전통제권을 재연기해 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정부 안에 많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박론’이 자존심 있는 민족으로서의 자주외교를 보여주는 방향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면 북한도 우리의 외교를 높이 평가하고 신뢰할 겁니다. 이제 우리는 자주외교를 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가 있는 통일정책이라야 합니다.

지금 대박론은 평화가 없어요. 평화가 있는 통일로 들어서면 인구 7천만 이상의 엄청난 창의력을 가진 민족국가로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당장 G5로 도약합니다. 이건 분명 대박이죠. 이를 위해서는 대박론이 과정 없는 결과만 강조해서도 안 되고, 또 대박을 나눠야 할 북한을 존중하고 함께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향후 대박론을 구체화한 정책을 수립할 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슈미트와 메르켈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라

   
▲ 인터뷰 후 노학자는 편한 자세를 잡았다. 흡사 세상을 관조(觀照)하는 모습이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흡수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입니다. 지난 3월 26일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통일대박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주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했어요. 1993년 내가 통일부총리 할 때 한국을 방문한 독일 슈미트 전 총리가 우리를 본받지 마세요. 우리를 본받으면 큰 일 납니다. 지금 남한이 잘 살지만, 우리가 통일할 때 서독만큼 잘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통일할 때 동독은 공산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살았는데, 지금 북한은 가장 못 사는 나라 아닙니까, 라며 흡수통일의 엄청난 후유증을 설명했어요.

또 흡수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북에 급변사태가 일어나 정치와 행정의 공백이 생겨도 남한 이북5도위원회가 올라가 접수하는 상황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북한 내부는 말 할 것도 없고 중국과 러시아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해방 직후처럼 신탁통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아요. 또 북 급변사태 시 대규모 난민이 동해로 서해로, 만주 연해주 남한으로 오면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겨우 2만 명 이상의 탈북자 관리도 못하면서 수백만 난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가령 동해를 통해 50만 명이 일본으로 간다고 할 때, 지난 70년간 재일동포들에게 시민권도 주지 않는 일본이 어떤 대접을 할 것 같습니까?

흡수통일은 대재앙입니다. 대박을 나누어야 하는 상대를 존중하면서 평화가 있는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도 민주진보인사들까지 포괄하여 국민의견을 광범하게 수렴하고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수립,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자문기관으로 전락시키면 통일대박이 실패할 것입니다.

□ 정성희 소장 : 북한체제의 안정성이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책기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바마가 김정은 손잡고 빅딜해야
북핵 동결 및 이전 금지,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장성택사건 이후 북한에 위기가 올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종교사회학적으로 볼 때, 북한체제는 일종의 신정(神政)체제입니다. 외부 또는 내부의 위협이 생기면 더 결속하고 강화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장성택사건은 파벌간의 싸움이 아니라 책벌인 것 같고요. 처벌한 쪽이 더 강해져 김정은 체제는 더 단단해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김정은의 비전이 뭐냐.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벤치마킹하려는 것 같아요. 생김새도 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요. 할아버지가 생전에 인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수준으로 경제를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지요. 할아버지는 사상강국, 아버지는 군사강국이니 경제강국은 자기 몫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외관계를 안정시켜 경제발전으로 가야하는데, 핵문제가 불거져 막히는 것이죠. 핵을 가져야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렛대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니고 미국만이 갖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만이 핵을 통한 군사적 억제력을 갖지 않도록 북한을 설득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미국이 진정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정은을 악마화하지만 말고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합니다. 오바마가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긍지를 갖고 독수리가 참새의 손을 못 잡아줄 이유가 없습니다. 김정은의 손을 잡고 ‘경제강국을 만들려는 당신의 뜻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핵무기를 동결하고 핵물질을 더 이상 만들지 말며, 특히 핵연료든 핵무기든 이전 확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 세 가지만 이행하면 당신이 요구하는 거 다 들어주겠다. 국교정상화 하겠다, 경제 금융 지원하겠다. 평화협정 체결하겠다.’고 해야 하는 겁니다.

국교정상화 했는데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뭡니까? 이미 2007년 10.4정상선언 4항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관련 당사국, 남북미 3자 또는 남북중미 4자 간 협의를 계속 하자고 합의했어요. 이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왜 못합니까? 우리정부가 미국을 강력히 설득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전체의 복지와 경제의 지름길

□ 정성희 소장 : 마지막으로 우리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지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20세기 초반부터 오늘까지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강대국에 의해 부당하게 시달리고 고통을 받았습니까?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지만, 한 번도 광복된 적도 없고 해방된 적도 없습니다. 이 아픔을 극복하고 진짜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통일대박론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국민들이 이 점을 깊이 인식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은 북경, 모스크바와 화해했습니다. 그런데 왜 서울은 평양하고는 화해하지 못합니까? 내년이 분단70년입니다. 뭔가 이뤄져야 합니다. 진짜 대박이 와서 한반도 평화를 온 민족이 누리고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기를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남북관계가 후퇴하면 민주주의도 복지도 인권도 후퇴하게 됩니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전체의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지름길입니다. 우리국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함께 노력하시리라 믿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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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한 4.3 사과, 미국은 왜 안 하나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24> 4.3 학살은 미국과 한국이 함께 저지른 범죄

강응천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4.03 04:59:53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16> 부활하는 일제 망령…해법은 동학농민군 계승

<17> 박근혜·남재준, '푸에블로호 교훈' 잊었나

<18> 일본인들이여, 러일전쟁의 진실을 기억하라

<19> 166년 전 문서, 현대 한국의 비밀을 말하다

<20> 이것은 3.1운동이 갈구한 나라가 아니다

<21> 여성의 날,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생각한다

<22> FTA 경제 영토 3위? 기황후가 기가 막혀

<23> 추신수 둘러싼 '가증스런 피라미드'에 대한 단상

정현종 시인은 <제주도에게>라는 시에서 제주도더러 국가 없는 데로, 국가 아닌 데로 아주 멀리 떠내려가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그의 노래처럼 국가로부터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고 떠내려가는 제주도를 대한민국 정부가 붙잡고 나섰다. 제주도 4.3사건 희생자에 대한 추념을 결심하고 이날을 국가의 공식 기념일로 지정한 것이다. 그것도 보수 우익으로 꼽히는 박근혜 정부에서 최종 결정이 이루어졌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끔찍한 비극을 겪은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다행한 일이다. 여러 부문에서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난을 받아 온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4.3 공약을 지킨 것은 환영할 일이다.

 

4.3사건의 진상 규명과 역사적 화해를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그 최초의 결실은 2000년 1월 12일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 것이다. 그해 8월 28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신고도 이뤄졌다. 지금까지 희생자 1만4032명, 유족 3만1253명이 심사 의결되고, 추가 신고에 대한 의결도 곧 이뤄질 거라고 한다. 제주도에는 12만 평의 4.3평화공원이 건립되어 매년 20만여 명이 방문하는 평화와 인권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국가원수로서 4.3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한 이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는 2003년 10월 31일 진상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2006년에는 제주도 현지의 위령제에 직접 참석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과거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천명했다.

 

이처럼 4.3사건의 상처를 씻으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은 이명박 정부 5년간 주춤하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재개되었다. 아직도 수만 명의 희생자를 '빨갱이'로 보는 비인간적인 보수 우익이 득시글거리는 나라에서 결단을 내린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문을 하고 싶다. 4.3사건은 분명 대한민국의 국가적 폭력이었지만 그에 앞서 미국의 범죄였다. 대한민국이 사과와 화해의 깃발을 든 이상 미국에 대해서도 반드시 응분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시작도, 평화적 해결의 좌절도 미국과 떼놓을 수 없는 4.3

 

4.3사건의 발단은 미군정 치하이던 1947년 3월 1일 일어난 경찰의 발포 사건이었다. 관덕정 마당에서 벌어지던 3.1운동 기념집회 때 한 어린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의 발굽에 치였다. 그러자 분노한 군중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발포해 여섯 명의 주민이 죽었다. 이를 계기로 남로당 제주도당은 반경찰 활동을 시작했고, 그달 10일 벌어진 총파업에는 경찰관 66명을 포함한 제주도 내 직장의 95퍼센트 이상이 참여했다.

 

미군정은 진상 조사에 나서 주민들의 불만과 남로당의 선동에 모두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남로당을 분쇄하는 데만 힘을 쏟아 제주도 군정 수뇌부를 외지인으로 바꾸고 경찰과 서북청년단 단원을 동원해 무력 진압에 나섰다. 그들은 약 1년간 파업 주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펼쳐 나갔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은 350여 명의 무장대를 조직해 제주도내 지서 열두 곳과 우익 단체를 공격하고, 무자비한 탄압의 중지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의 중단을 요구했다.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태가 커지자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과 군정장관 딘 소장은 국방경비대(국군의 모체로 미군정 때 창설됨)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경찰과 주민 사이에 벌어진 일에 군대가 개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장대 측과 협상을 시도했다. 그달 28일 김익렬은 무장대 지휘자인 김달삼과 만나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합의했다. 4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이뤄진 합의는 세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72시간 내에 전투를 완전히 중지하되 산발적으로 충돌이 있으면 연락 미달로 간주하고, 5일 이후의 전투는 배신행위로 본다.

둘째, 무장해제는 점진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

셋째, 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들의 신병을 보장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김익렬과 김달삼은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 동기생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평화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중요한 합의를 이뤄낸 직후 오라리라는 곳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김익렬은 현장 조사를 벌여 이 사건이 우익 청년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무시했다. 그 대신 지상과 공중에서 방화 현장을 촬영해 만든 기록영화 <제주도의 메이데이(May Day on Cheju-do)>를 통해 이 사건을 무장대의 짓으로 몰고 갔다.

 

오라리 방화 사건 이틀 후인 5월 3일 미군정은 경비대에 총공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김익렬은 진압에 반대했다. 5월 5일 제주중학교 미 군정청 회의실에서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경무부장 조병옥은 김익렬이 김달삼과 동기생이고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폭로해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끝까지 진압에 반대한 김익렬은 이튿날 해임된 뒤 여수 주둔 제14연대장으로 전출되었다.

 

 

▲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지슬> 공식 페이스북

▲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지슬> 공식 페이스북

 

 

이처럼 4.3의 평화적 해결은 미군정의 시나리오에 따라 좌절되었다. 미군정이 강경 진압을 서두른 것은 5.10총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는 한반도의 38선 이남에 자신의 세력권을 구축한다는 '거창한' 전략만 있을 뿐 '하찮은' 제주도민의 인권과 생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5.10총선거에서 제주도의 선거구 세 곳 가운데 두 곳이 투표자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다. 다음달 23일에 재선거를 실시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제주도 문제 역시 미군정에서 대한민국으로 이관되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그해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제9연대장 송요찬은 해안에서 5킬로미터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이민족도 아닌 동족의 민간인에 대한 잔인한 소탕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증유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고. 중산간 마을의 95퍼센트 이상이 불에 타 없어지고 최소한 3만 명에서 8만 명까지 추산되는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재판 절차도 없이 주민들을 집단 사살하는가 하면,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해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였다. 이른바 '대살(代殺)'이다. 여자는 옷을 벗겨 나무에 매달아 놓고 창으로 찔러 죽이고 어린아이는 개구리처럼 패대기쳐 죽였다.

 

1949년 6월 김달삼의 후임자인 이덕구가 사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했다. 군경도 하산하는 자는 살려주겠다는 포고를 내렸다. 그러나 이 포고를 믿고 내려와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 중에도 이듬해 6.25전쟁이 일어나자 예비검속을 당해 처형당한 이가 적지 않았다. 결국 제주 4.3사건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의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1947년 3.1절 발포 사건 기준).

 

4.3 학살은 미국과 한국이 함께 저지른 역사적인 범죄

 

이처럼 4.3 학살은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가 함께 저지른 역사적인 범죄였다. 미국은 그 시작과 확산에 모두 깊숙이 개입해 있었다. 1948년 11월에 시작된 국군의 소탕 작전 때에도 작전권을 쥐고 있던 것은 미 군사고문단이었다. 4.3사건은 단순히 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저지른 잘못일 뿐 아니라 미국의 냉혹한 세계 전략 속에서 수만 명의 한국인이 희생당한 국제적 범죄였다. (관련 기사 : 고마운 미국? "한국인들 죽이거나 학살 방조")

 

대한민국은 사과했다. 탄생 과정의 원죄를 씻고 국가다운 국가로 나아가는 작은 걸음을 내디뎠다. 심지어 미국 언론이 '독재자의 딸(the strongman's daughter)'이라고 비아냥거리던 대통령도 그 걸음을 이어 디뎠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미국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4월 3일은 대한민국의 국가기념일에 그치지 않고 미국이 자유의 이름으로 제3세계에서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들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진정한 자유의 벗으로 거듭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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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불명후 현역복귀한 90살 선비

조현 2014. 04. 02
조회수 1089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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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

 

 

올해 아흔 한살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이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에 빠지는 고비를 넘기고 29년째 지켜온 ‘민족 종교의 수장’으로 복귀했다.

 

 한 회장은 지난해 11월말 서울 망우동에서 승차를 거부한 택시에서 다시 내리다가 오른쪽 대퇴부 골절의 중상을 입었다. 그의 가방이 문에 끼인 줄 모른 채 택시가 출발해버벼 한참을 끌려간 아찔한 사고였다. 지병인 당뇨 수치가 높아 즉각 수술을 받지 못한 그는 다리를 절단할 뻔 했으나 며칠 뒤 수치가 안정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이틀 만에 깨어난 그는 2주간 중환자실을 거쳐 3개월가량 입원 치료를 해야 했다.

 

 지난달 27일 그는 언제나처럼 검은 갓에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특유의 차림에 논리정연한 말투와 유머로 늘 좌중을 압도하는 그는  “이번엔 꼼짝 없이 다시 세상 구경 못하는 줄 알았다”면서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지난 2012년 10월에도 7대 종단 지도자들이 함께 떠난 중국 유교의 성지순례 때 숙소 목욕탕에서 넘어져 골반이 금가는 부상을 입고도 곧 회복하는 노익장을 과시했었다.

 

 그는 1950년대부터 서울에 올라와 ‘우리 시대 마지막 선비’로 꼽혔던 성균관대 설립자 심산 김창숙(1979~62) 선생을 모시며 현대사의 숱한 인물들을 만났다. 조병옥, 장택상 같은 당대 정치인들로부터 요정에서 술도 많이 얻어 마셨다는 그는 숱한 일화를 간직한 야사의 증인인 셈이다.

 

최근 그는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 정치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옛날 같으면 당신들은 깜냥이 비서 밖에 안 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고 한다. 담대하고 통이 큰 대통합의 정치가 아쉽다는 뜻이었다. 어떤 반응이 돌아왔냐고 물으니 “나이 구십이 넘은사람한테 뭐라 하겠어요? 그냥 섭섭하대요.”란다. 한 회장은 정치권뿐 아니라 종교계에도 큰 어른이 없는 점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민족종교인 ‘갱정유도회’ 도정이기도 한 그는 종교 지도자로서, 천주교의 노기남 대주교·김수환 추기경, 불교의 효봉·청담·경봉 스님, 개신교의 강신명·한경직 목사 등 수많은 인물들과 교분을 쌓아왔다. 그는 그 가운데 "행동이 무거웠던 효봉 스님과 강신명 목사가 가장 인상에 남는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한경직 목사가 정치적 인물이었다면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는 진심으로 존경할만한 어른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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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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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

 

 

 그는 요즘엔 ‘심산과 같은 결기 있는 큰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자신이 목격한 일화도 몇 가지 소개했다.  

 “삼성이 아주 오래 전부터 600년 전통을 가진 성균관대를 탐냈는데, 하루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갑 사장이 심산을 찾아와서는 봉투를 하나 건넸다. 심산은 비서인 윤종(윤봉길 의사의 아들)에게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 보라’ 하더니 ‘5억원 수표가 들어있다’고 하자 침을 뱉어 던지며, ‘이러면 내가 성균관대를 어서 가져가라고 내놓을 줄 알았느냐’고 호통을 쳤다.” “심산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다 끌려가서도 전혀 타협하지 않아 고문 후유증으로 앉은뱅이가 되는 바람에 우리가 업고 다녀야 했다.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밀약을 통해 우리 전통을 말살하고 기독교 국가를 만들려 하고, 독재를 한다며 늘 호되게 비판했다.”

 

 젊은 시절 통일교 문선명 교주에게 주역을 가르치기도 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관련해 “주역의 괘로는 한반도 통일이 가까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냉전이 끝나고도 남북한만 갈라져 있는데, 여전히 강대국의 이해에 우리의 미래를 맡겨버리면 끝내 그들의 먹잇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으로서, 오는 5~6일 전북 남원시 사랑의광장에서 ‘제13회 전국서당문화 한마당대회’를 통해 강경(옛 경전 읽기)·한시·서예 등의 실력을 겨루는 전통의 향연을 연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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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제주4·3 가혹하게 탄압하라” 대한민국박물관엔 누락

[현장] 말로만 추념일…첫 ‘선거무효’ 결과·초대대통령 첫 계엄령 문서도 없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외눈박이 역사의식”
 
입력 : 2014-04-02  09:48:47   노출 : 2014.04.03  11:35:12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3일로 66주기를 맞는 제주 4·3 사건이 추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자긍심과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설립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는 이 사건에 대한 유물은커녕 사건의 개요나 설명이 단 한 줄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4·3사건은 이미 11년 전 제주4·3사건 진상규명을 통해 숨겨진 국가기록을 발굴하는 등 참혹했던 학살기록 뿐 아니라 당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탄압’ 지시까지 드러났으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는 ‘없는 역사’가 돼 있는 것이다. 

4·3 직전 미군·경찰 “제주도민 70~90% 좌익”

반대로 이런 기록은 제주 4·3평화기념관에만 상세히 보존, 전시되고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에 위치한 4·3평화기념관에는 해방 직후 조성된 지역공동체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서북청년단 등 외지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증거와 기록을 담고 있다. 지난 2003년 특별법에 따라 활동한 제주 4·3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는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규모가 2만5000~3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만 해도 1만4000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정부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가 86.1%를,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가 13.9%로 크게 대비된다. 또한 여성(21.3%·2985명)과 10세 이하 어린이(5.8%·814명), 61세 이상 노인(6.1%·860명) 등 약자가 무려 33%가 넘는 등 ‘살육’의 대상이 무차별적이었음을 드러냈다.

특히 미군과 육지(본토) 사람들이 제주도를 빨갱이 소굴로 규정하면서 마녀사냥을 부추긴 육성도 기념관은 보존하고 있다. 
 

   
서울 세종로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사진=조현호 기자
 


1일 기념관과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4·3 사건의 도화선이 됐던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 시위대 발포사건 이후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었던 민관합동 총파업(3월 10일)이 벌어지자 미군은 조사단을 제주에 파견했다. 3월 1일 시위과정에서 발생한 경찰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희생자 대부분이 시위를 구경하던 시위꾼이었다. 이를 두고 미군은 열흘 뒤 ‘파업’의 원인에 대해 G2보고서에서 “경찰 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며 “제주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라고 분석했다. 

당시 최경진 경무부 차장은 기자들에게 “제주도 주민 90%가 좌익색체”라고 발언했다고 한성일보가 1947년 3월 13일자에서 전했다. 

‘제주도만 유일하게 선거무효’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엔 누락

4·3평화기념관에 따르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를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된 4·3사건에서 무장대와 가담자들의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는 이승만과 미군이 추진하던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반대’였다. 통일된 조국, 통일된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실제로 이 사건과 주민들의 참여로 1948년 5월 10일 남한 내에서만 실시된 총선거에 제주도 선거구 2곳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듬해 5월 10일 재선거에서 제주도는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엔 이 같은 내용은 물론 4·3사건 자체에 대해 전혀 거론하거나 설명해놓지 않았다. 역사박물관에는 단독선거 자체를 미화하고 반대자를 좌파로 모는 데만 급급했다. 박물관은 단독선거에 대해 “5·10 총선거는 21세 이상의 모든 남녀에게 최초로 선거권이 부여된 직접·평등·비밀·자유 원칙의 민주선거였다”며 “남북한의 좌익은 5·10 총선거를 저지하려 했으며, 중도파는 남북 협상 후 총선거에 불참했다”고 기록했다. 대한민국 박물관은 “그러나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5·10 총선거를 투표율 95.5%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고 주장했다. 4·3사건과 제주도 선거무효를 빼놓고 ‘성공적인 선거’라고 미화한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소개한 5.10 남한 단독선거에 대한 평가. 사진=조현호 기자
 


이승만 “가혹하게 탄압하라” 제주도만 계엄령, 모두 누락

이밖에도 4·3 사건 진행과정에서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4개월은 무차별적으로 학살이 이뤄진 시기로, 이는 이승만 당시 초대 대통령의 지시와 무관치 않았다.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 이후 첫 계엄령을 제주도를 대상으로 공포했다. 그해 11월 17일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제주도지구 계엄령 선포에 관한 건’을 대통령령 제31호로 의결했다. 이승만은 회의록에서 “제주도의 반란을 급속히 진정하기 위해 동지구를 합위지경(계엄지역)으로 정하고 본령 공포일로부터 계엄을 시행할 것을 선포한다”고 썼다. 

또한 이승만은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1949년 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라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말한 이 대통령의 발언록이 보존돼 있다. 이승만은 모슬포경찰서와 성산포경찰서를 신설하라는 대통령령도 공포(49년 1월 18일)했으며, 서북청년회 단원을 경찰과 군대에 편입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기념관엔 전시돼 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는 이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첫 계엄령 선포 자료도, 전국적인 소요사태에 대한 지시발언 등 주요 행적을 전혀 전시하지 않았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1949년 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가혹한 탄압이 요청된다'고 지시한 회의록. 사진=(제주 4.3평화기념관) 조현호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전시된 토벌대의 양민 집단학살 뒤 암매장하는 사진들. 사진=조현호 기자
 


“말로만 추념일 역사의식은 외눈박이로 퇴보”

이 같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전시행태’를 두고 제주지역에서는 외눈박이 역사의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희영 제주 4·3연구소 사무국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정부수립 과정에서 자행한 학살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역사에서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겠다는 기득권세력의 외눈박이 현대사인식 태도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 국장은 “국가가 4·3을 추념일로 지정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더 성숙한 사회로 가려면 기득권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좌우이념을 내려놓고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해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황보명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시하는 과정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에 4.3 사건 유물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시가 안된 것 같다”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작업을 올해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황 과장은 “관련자료를 전시할 필요가 있다면 전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92년 제주4.3연구소 등에 의해 발굴된 제주 다랑쉬굴 내 시신 유해. 사진=(제주4.3평화기념관) 조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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