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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는 여전히 이념 갈등이 존재한다”


WCD 국제위원회, 여성평화걷기 종료 소감 밝혀
이태우 인턴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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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6  19: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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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여성평화걷기 대표단이 5월 24일 북측 판문각에서 남북해외 여성들이 공동제작한 조각보를 펼쳐 보이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5월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한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WCD)는 초기 구상 단계부터 행사 종료 시까지 숱한 화제와 논란을 낳았다. 24일 남한 입경 등을 포함한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친 WCD 국제위원회는 마냥 순탄치 만은 않았던 이번 행사를 되돌아보며 지난 4일 본지에 총 결산 및 소감을 전달했다.

위원회는 ‘여성들이 남북의 분단선을 넘다 : 소감 및 결의’란 제하의 소감문을 통해 행사 추진 배경과 과정, 성취와 한계 등을 가감 없이 술회했다.

 

우선 “남북한 주민 대부분이 DMZ를 종단할 수 없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 여성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그들을 대변해 DMZ를 건넜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8명의 노벨상 수상자, 반기문 UN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美 대통령,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달라이라마 등 세계 각계 유수의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남북해외 각종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들의 지지 사실을 밝히며 이번 행사가 확보한 국제적 정당성을 역설했다.

 

   
▲ WCD 대표단은 북한에서 수많은 환영인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사진제공 - 정연진]
이번 방북 행사에 참여한 정연진 AOK(Action for One Korea) 대표는 “대표단이 북한에 도착했을 때 수천명의 여성들이 환영 인파를 이루는 등 북한에서는 WCD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국제 사회 뿐만 아니라 북한 역시 이번 행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WCD가 내세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라는 기치보다 ‘종북단체 색출’에 관심이 쏠렸다. 위원회는 일부 언론과 단체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친북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WCD 대표단은 지난 5월 2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노벨상 수상자이자 WCD 성원인 메이리드 맥과이어가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을 방문해 “그의 혁명적 생애를 알게 되었으며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고 보도한 이후 종북 논란에 휩싸였다.

위원회는 이에 대해 “우리는 북한 수뇌와 일절 접촉한 바가 없고, 정치.경제적 체제 또한 지지한 적이 없다”며 “초지일관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음에도 이런 의혹이 가시지 않는 걸 보면, 이번 소동을 통해 우리가 목격한 이념적으로 갈라진 다양한 반응들은 남한에 여전히 내분이 존재한다는 방증임이 자명하다”고 아직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념 갈등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 평양 조국통일3대헌장탑 앞에서 평양시민들의 환호 속에 행진하고 있는 WCD 대표단. [사진제공 - 정연진]
또한 본래 계획이었던 판문점이 아닌 경의선 육로를 통해 입국한 것에 대해 “이미 경색된 남북관계가 우리의 행위로 인해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타협의 정신에 입각해 남한 당국과 DMZ의 관할권을 쥐고 있는 국제연합(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권고를 수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DMZ 남측구간의 행정권은 한국이 유엔사로부터 이양받았지만, MDL 통과에 대한 허가권은 여전히 유엔사가 보유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이뤄낸 성과로는 남북여성들과의 협업을 통해 ‘2015 세계 여성들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걷기 대회 기념’ 선언문을 발표하고 “남북해외 출신의 다양한 여성들이 만든 조각보를 함께 누볐다”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모든 집단이 힘을 모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함의를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인 점도 꼽았다.

그리고 “동영상 생중계 어플리케이션인 페리스코프(Periscope)를 운용”해 외부인들에게 “달리 공개될 방도가 없는 공간과 문화를 소개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익숙화에 기여했다”며 북한에 대한 외국인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데 공헌했다고 자평했다.

 

   
▲ 5월 24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도라산 출입사무소에 도착한 WCD 대표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마지막으로 20개국이 한국전에 참전했기 때문에 한국전은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국제분쟁으로 남았다며 “한국전에 참여한 국제 사회와 UN은 냉정의 비극으로 기록된 한국전에 방점을 찍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협정 체결과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한글 번역본(전문)>  여성들이 남북의 분단선을 넘다 : 소감 및 결의

15개국 출신의 30명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5월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3.2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 우리는 평화 협정 체결, 한국 전쟁의 종식, 평화구축 과정에서 여성들의 참여 등을 요구하며 국제적 관심을 유발했다. 남북한 주민 대부분의 DMZ 종단이 불허되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 여성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그들을 대변하여 DMZ를 건넜다. 

WCD 대표단은 저명한 여성 지도자들로 구성됐다. 자국의 평화를 위한 시민운동을 주도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 출신 메이리드 맥과이어와 라이베리아 출신의 리마 보위,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오랫동안 평화 운동에 헌신한 활동가, 인권 운동가, 종교지도자, 그리고 한국인 전문가들이 우리와 뜻을 모았다.

24일 DMZ 종단에 앞서 나흘 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현지 여성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겪은 전쟁과 분열에 대한 기억을 공유했다. WCD 운동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동원을 통한 공동체 내 갈등 해소 방안을 나누기도 했다. 남북의 여성들이 동시에 남북에서 행사를 기획했고, 이는 한국 여성들과 함께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된 평화 심포지엄과 평양, 개성, 파주를 아울러 열린 평화걷기대회에 수 천명의 한국 여성들의 참여함으로써 의의가 배가됐다.

성 과

2015 여성평화걷기대회는 끝나지 않은, 하지만 '잊혀진' 한국전쟁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여성들이 실제로 DMZ-군사적 분단선으로 62년간 지속된 정전이 야기한 직접적인 결과-를 종단함으로써 평화걷기는 언론의 국제적인 관심과 세계 유수 지도자들의 쏟아지는 후원을 받았다. 8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반기문 UN사무총장, 전 美 대통령 지미 카터,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달라이라마, 작가 앨리스 워커와 나오미 클레인,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마하트마 간디의 손자 아룬 간디, 염수경 추기경, 대체 의학자 디팩 쵸프라, 트위터 공동설립자 에반 윌리엄스, 전 美 뉴 멕시코 주지사 빌 리처드슨, 엠네스티 인터네셔널 미국 사무소 잭 렌들러 등이 우리의 활동에 지지를 표했다. 노벨여성평화운동, 세계여성기금, 여성발전협회, 마드레, 긴급행동기금, 그리고 20년 전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한 여성평화활동프로그램 등의 여권 운동을 주도하는 다양한 단체들 역시 우리와 함께했다. 몇 십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여성 정치인들 역시 정치와 이념을 넘어 우리의 평화걷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수 백명의 개인들 역시 역사적인 여정을 가능케 하기 위해 재정 보조금을 보냈다. 우리는 이들의 지도력과 협력 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국 여성 평화운동가들의 유구한 역사에 감명을 받아, 우리는 경색된 남북관계 이후 위축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운동의 불씨를 살리는데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2007년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의 북한과 교류하려는 시도는 막대한 제한을 받았고, 심지어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남한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국제 여성 평화운동가들의 결속력을 통해 전세계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도 평화 협상의 모든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천명한 UN 안보리 결의안 1325호를 대한민국 사회의 공적 담론의 장에서 논의하기 시작하는 등 국내 토론과 정치적 공간의 개편을 촉발했다고 한다.

정체된 남한관계는 재래적인 접근을 거부하는 WCD와 같이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했다. 대부분 기성 권력 구조 밖의 사람들로서, 여성 평화운동가들은 상대편과 연결고리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평화구축에 관한 전략을 제공하는 등 갈등 분석에 있어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할 수 있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알려준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군국화는 사회의 남성화를 가속화할 것이고 이는 여성을 향한 폭력성 증대와 사회 복지 및 개인 안보에 투자되는 자원의 감퇴로 돌아올 것이다.

다양한 배경과 정치색을 지닌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북-남미, 유럽 등 각지의 예술가, 학자, 인권운동가, 그리고 평화운동가들이 평화 걷기를 위해 결속했다. 우리는 남북에 각각 적을 둔 단체들과 모두 협력관계를 맺었다. 우리는 북한에서 세계인민들과의 련대성조선위원회와 협업했다. 남한에서는 경기여성네트워크, 한국여성정치연맹, 이프토피아를 비롯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YWCA 한국 지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다수의 여성단체와 함께했다. 우리는 위 단체들의 지도력과 협력 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들의 도움 없이 이번 행사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남북여성들과의 협업을 통해 '2015 세계 여성들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걷기 대회 기념' 선언문을 발표했다. 평양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말미에 눈물, 웃음, 그리고 노래로 꽃핀 가운데 우리는 남북해외 출신의 다양한 여성들이 만든 조각보를 함께 얽었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모든 집단이 힘을 모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함의를 담은 것이다. 우리는 지식의 습득과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곧 의미있는 대화로 귀결될 것이라 믿었다. 때문에 기술의 힘을 빌려 동영상 생중계 어플리케이션인 페리스코프(Periscope)를 운용, 북한 밖 외부인들에게 공감, 노출, 교육 등의 매개로 활용했다. 남/북한에 체류할 당시 모두 트위터 등 SNS를 활용해 활동을 생중계했다. 특히 북한 내부의 공식적인 행사나 평상 모습 등을 아우르는 순간들이 이와 같은 형태로 전세계로 중계된 최초의 사례였다. 북한 내부의 일상을 짧게나마 공개함으로써 우리는 외부에 달리 공개될 방도가 없는 공간과 문화를 소개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익숙화에 기여했다.

이번 걷기행사는 특히 북한, 중국, 16개국을 포함한 유엔사령부를 대신한 미국이 1953년에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래 한국 내부 갈등을 종식하기 위해 국제적인 단합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재조명했다. 국제 사회-타국 정부들 또한 70년 전 한반도의 분단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는 한반도의 평화적 화합과 통일을 지원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한 계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이 직면한 한계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DMZ를 종단하기 위해 시행한 복잡한 협의, 그리고 DMZ의 관할권을 쥐고 있는 유엔사를 통해 드러났다. 비록 정전협정을 서명한 장소인 판문점을 통해 입경하고 싶었지만, 남한 당국과 유엔사의 권고를 수렴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경색된 남북관계가 우리의 행위로 인해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타협의 정신에 입각해 모두가 동의한 경로를 채택했다.

통일을 향한 길 앞에 놓인 과제들은 북한 방문 당시 우리 대표단의 발언이 와전된 사례를 통해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발언이 보도된 이후, 우리는 주최측에 대표단 발언을 와전하고 문맥을 무시한 채 함부로 인용한 것에 항의했다. 하지만 와전된 발언들은 일부 남한 및 국제 언론에 의해 더 심각하게 왜곡됐다. 우리는 북한 수뇌와 일절 접촉한 바가 없고, 정치/경제적 체제 또한 지지한 적이 없다. 초지일관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음에도 이런 의혹이 가시지 않는걸 보면, 이번 소동을 통해 우리가 목격한 이념적으로 갈라진 다양한 반응들은 남한에 여전히 내분이 존재한다는 방증임이 자명하다.

우리의 여성걷기대회는 한반도에 평화와 화합을 이룩하기 위한 최적의 정책과 전략에 대한 토의-가끔은 과열된-를 개시했다. 바람직한 추세라고 생각하며 이런 양상을 주도하게 되어 기쁘다. 하지만 우리가 예의와 존중을 갖춰 대화에 임할 때, 상대방 또한 동일한 태도로 참여했으면 한다. 한국 전쟁의 종결, 이산가족 상봉 촉구, 여성들의 평화활동 참여 등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평화적 화합, 표현의 자유, 평화를 누릴 권리의 보호 등 기본권의 진정한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향 후 추 진

여성평화걷기대회는 '긴' 여정이 될 것이다. 2015년 DMZ 종단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장기적 운동의 일부이다. 60여년의 군사 대립에 도전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 여성운동가이자 민간인으로서 대체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남북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한국 여성들의 노력에 힘을 싣는 것이 한반도 내 평화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강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다. 국제단체로서 남북한의 여성들과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인권문제와 비핵화 등 군사주의가 남북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깊은 대화를 조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관계의 태동이기도 하다.

평화는 인권의 진정한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적대 관계와 국제분쟁은 국가가 자국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배경을 제공한다. 세계 인권선언 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서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하게 실현될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남북간의 지속적인 분쟁은 이러한 질서를 설립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자 인권 유린의 근거로 작용한다. 인권과 평화는 상호 필수불가결하다.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없으며, 인권과 평화는 양립해야 한다.

자국을 포함한 세계를 둘러보면, 전시에 근접한 국가일수록 자국민 인권의 중요성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의 초점은 민간 교류량과 여성의 지도역량을 향상하는 것으로, 이들 모두가 군국화 감소와 평화협정 체결의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간, 경제, 문화, 학술, 정부 등 모든 차원을 막론하고 더 활발한 참여를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면적인 군사 갈등의 가능성이 고조될 수 밖에 없다.

20개국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때문에 여러 방면에 걸쳐 한국전은 과거에도, 지금까지도 국제분쟁으로 남았다. 평화 협정의 부재와 남북한 및 동북아 국가들의 현재진행형 군국화는 국제적 위협으로 작용한다. 한국전에 참여한 국제 사회와 UN은 냉전의 비극으로 기록된 한국전에 방점을 찍을 책임이 있다. 따라서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2015년 6월 3일
WCD 국제위원회


<영문 (전문)> Women Crossing the Korean Divide: Reflections and Resolutions

Thirty women peace makers from 15 countries made a historic crossing of?the two-mile wide De-Militarized Zone (DMZ) from North to South Korea on May 24th?International Women’s Day for Peace and Disarmament. We called global attention to the need for a peace treaty to finally end the Korean War; to reunite families long separated by Korea’s division; and to assure women’s participation in the peace process. Because most citizens of North and South Korea are not allowed to cross the DMZ, international women crossed the DMZ on their behalf in solidarity with Korean women’s desires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Korea.

The delegation included prominent women leaders, including two Nobel Peace Laureates, Mairead Maguire of Northern Ireland and Leymah Gbowee of Liberia, who led citizen movements of women to bring peace to their countries, feminist author activist Gloria Steinem, as well as seasoned peace activists, human rights defenders, spiritual leaders, and Korea experts.

During the four-day visit to North Korea ahead of the May 24th DMZ crossing, we connected with North Korean women, learning about their experiences of war and division, and sharing how we mobilize women to end conflict in our communities. Parallel events were organized with women of both Koreas, culminating in peace symposiums, one in Pyongyang and one in Seoul, and peace walks in Pyongyang, Kaesong, and Paju ? all with thousands of Korean women.

Successes 
The 2015 Women’s Peace Walk succeeded in bringing global attention to the unended, “forgotten” Korean War. By physically crossing the DMZ?the militarized division that was created as a direct result of the 62 year-old ceasefire?the Peace Walk generated major global media attention and an outpouring of support from world leaders, including eight Nobel Peace Laureates, U.N. Secretary General Ban Ki-Moon, U.S. President Jimmy Carter, Archbishop Desmond Tutu, the Dalai Lama, authors Alice Walker and Naomi Klein, actor Robert Redford, Arun Gandhi, Cardinal Andrew Yeom Soo Jung, physician Deepak Chopra, co-founder of Twitter Evan Williams, U.S. Governor Bill Richardson, and Jack Rendler of Amnesty International USA. Leading women’s rights organizations supported us, including Nobel Women’s Initiative, Global Fund for Women, AWID, MADRE, Urgent Action Fund, and Women Peacemaker Program, which started?International Women’s Day for Peace and Disarmament twenty years ago. Dozens of South Korean women Parliamentarians across political lines issued a public statement endorsing our walk. And hundreds of individuals provided financial support to make our historic journey possible. We are so incredibly grateful for this community’s leadership and partnership.

Inspired by the long history of Korean women peacemakers, we helped revive Korea’s peace and reunification movements, which have been deflated since the souring of inter-Korean relations. Since 2007, their efforts to engage with North Koreans have been greatly hampered, and even criminalized. According to our South Korean partners, the solidarity of international women peacemakers helped renew debate and open political space in South Korea, including putting into public discourse the legal mandate of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325, which ensures the female half of the world be involved at all levels of every peace process.

The deadlocked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calls for game changer initiatives like Women Cross DMZ that go beyond conventional paths. As a group of people generally outside structures of power, women peacemakers offer a critical perspective in the analysis of conflict, providing strategies toward peacebuilding that focus on creating ties across opposing sides. As Korean feminists have taught us, the militarization of Korea leads to greater masculinization of society, which increases violence against women and strips resources away from social welfare and human security.

In preparing for the Peace Walk, a diverse group of international women from a variety of backgrounds and political views came together, including artists, scholars, human rights defenders, and peace activists from the Asia Pacific, Africa, North America, Latin America, and Europe. We partnered with organizations in both North and South Korea. In North Korea, we established working relationships with the?Korean Committee for Solidarity with World Peoples?and the?Democratic Women’s Union of Korea. In South Korea, we partnered with local women’s groups such as?Gyeonggi Women’s Network,?Korea Women’s Political Solidarity, and?Iftopia, as well as several leading national women’s organizations, including?Women Making Peace,?YWCA of Korea,?Korean Women’s Association United, and?Korean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We are enormously grateful for their leadership and partnership, without which the Women’s Peace Walk could not have happened.

Through a collaborative process with both North and South Korean women, we issued the Declaration of the 2015 International Women’s Walk for Peace & Reunification of Korea. At the end of our symposium in Pyongyang, through laughter, tears and song, we also stitched together a jogakbo, a traditional Korean quilt, with parts made by North and South Korean, diaspora, and international women, signifying the role that each group must play to help reunify the Korean peninsula.

We believe that knowledge and connection lead to meaningful dialogue. To that end, we leveraged technology as a medium for empathy, exposure, and education by using a video streaming application called Periscope. We broadcast live footage via social media such as Twitter from both North and South Korea. This was the first time in history that moments both formal and casual were shared live with the world in such a manner from North Korea. By providing intimate glimpses from the inside, we transported the world into an otherwise inaccessible place and culture, helping to transform the unknown into the familiar.

Our walk brought renewed attention to the importance of world solidarity in ending the Korean conflict, particularly since the 1953 Armistice Agreement was signed by North Korea, China, and the United States on behalf of the UN Command that included sixteen countries. It helped highlight the responsibility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whose governments were complicit in the division of Korea seventy years ago? to support Korea’s peaceful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Challenges 
The challenges of overcoming Korea’s division became apparent in the complex negotiations over our DMZ crossing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as well as with the UN Command, which has formal jurisdiction over the DMZ. Although we hoped to cross at Panmunjom, the “Truce Village” where the armistice was signed, we decided after South Korea and the UN Command denied our crossing there that we would take the route agreed by all parties in the spirit of compromise lest our actions further strain the already tense North-South relationship.

The challenges of overcoming division were further illuminated by the misrepresentation of our delegation’s comments made in North Korea. We registered complaints to our hosts, insisting that our comments not be misrepresented and used out of context. Instead, these misquotes were further distorted by some South Korean and international news outlets. We did not meet with any heads of state or endorse any political or economic system, maintaining a neutral stance throughout, and yet, it was apparent that divisions within South Korea itself manifested in some of the ideologically divided reception and reactions that we witnessed.

Our Women’s Peace Walk has initiated discussion, at times heated, on the best policies and strategies for advancing peace and reconciliation in Korea.?This is healthy and we are glad to generate such debate, but as we engage in respectful dialogue, we expect the same of those who oppose our position. Our efforts to end the Korean War and press for family reunification and the participation of women in peacemaking are a true expression of our fundamental human rights to peaceful assembly, to freedom of expression, and to defend the right to peace.

Road Ahead 
The Women’s Peace Walk will be a “long” walk. The 2015 DMZ crossing is not the end, but the continuation of a long-term movement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of Korea. We bring an alternative civilian voice from an international feminist perspective to challenge over 60 years of military standoff. It is the first step in highlighting the significance and urgency of peace in Korea to strengthen our support of Korean women to help bridge the two sides. This is our first meeting with women of North and South Korea as an organized international body, and the beginning of relationships that we hope will foster deeper conversations about the impact of militarism on the North and South, including issues of human rights and nuclear disarmament.

Peace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the full realization of human rights. States of hostility and international conflict are the basis on which states have long violated the rights of their citizens. Article 28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states that all have a right to an international order that permits the fulfillment of all rights enumerated in the Declaration. The continued state of war between the two Koreas is a major obstacle to such an order and a rationale for the violation of human rights. Human rights and peace are integral one to the other. Neither is more important than the other; they proceed together.

As we look around the world, including our own? ?countries, we also see that the closer a country is to a war footing the less it respects human rights values. Our focus is to increase civilian exchanges and women’s leadership, highlighting the obligation of all parties involved to decrease militarization and move towards a peace treaty. We therefore urge increased engagement at every level -- civilian, economic, cultural, academic, governmental. The alternative is heightened risk of full military conflict, which is not an option.

Twenty countries fought in the Korean War, and thus, in many ways, it was ? and continues to be?- a global conflict. The absence of a peace treaty and the ongoing militariz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and other countries in northeast Asia are global threat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e UN which took part in the Korean War have a responsibility to close this tragic chapter in Cold War history. Thus, we will continue our efforts until a peace settlement is achieved in Korea for peace in northeast Asia and our world.

June 3, 2015
WCD Committee
 
(번역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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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남정신이 있는 한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

 
  • [사회] 〈강희남정신이 있는 한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 〈강희남범민련의장정신계승 및 이명박근혜정권퇴진투쟁 결의대회〉
  • <강희남범민련의장정신계승 및 이명박근혜정권퇴진투쟁 결의대회>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초대의장인 고강희남의장의 6주기를 맞아 <강희남범민련의장정신계승 및 이명박근혜정권퇴진투쟁 결의대회>가 6일 오후5시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통일애국인사, 민주인사, 종교인, 노동자, 여성, 청년학생 등 각계각층 100여명이 참가했다.

     

    강희남의장은 지난 2009년 6월6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첫 발언자로 나선 범민련남측본부 이천재고문은 <강희남목사를 재조명하자는 글이 1000개는 나오거나 국회 또는 국무회의에서 100년에 나올까말까한 탁월한 지도자에게 어떤 예우를 해야 할 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강목사와 오랫동안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밀도는 10년 100년 사귄 사람보다 더 깊다.>면서 <그분은 통일을 위해, 혁명을 위해 총탄이든 무엇에든 목숨을 언제든지 바칠 수 있다는 확신이 넘쳐있던 분이며, 북의 김일성주석이 서거하고나서 조문간다며 판문점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간 분으로 몸소 실천하고 행동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지도자였고, 사상가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했다.

     

    그러면서 <강목사가 박정희를 그렇게 미워했듯 전두환을 그렇게 미워하고 이명박을 끌어내라는 유언을 남기며 자결할만큼 독재를 증오했는데, 오늘 이 더러운 독재가 어떤 독재인가?>라고 묻고 <참으로 박근혜는 도척(刀尺)같은 대통령이다. 선거부정으로 아우성을 치고, 세월호사건에서는 대통령이 직무중 7분도 아닌 7시간동안이나 자리를 비웠다. 직무유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해서 <도척같은 정치인들을 내쫓는게 강희남정신이다. 내쫓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으로 강희남정신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준) 송무호공동대표는 <100kg만 있어도 300만명이 죽을 수 있다는 탄저균을 들여온 미군에 대해 통탄을 금할수 없는데 그보다 더 통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미군이 탄저균을 마음대로 들여와 실험을 하는데도 정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라며 <박근혜는 탄저균에 대해 말한마디 없었다. 이게 주권을 가진 나라인가. 특히 전시작전권을 무기한 연기했는데 주권을 무기한 포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정권>은 △오바마대통령의 통렬한 사죄 △미군기지내 합동연구소 즉각 폐기 △주남미군사령관과 주남미대사 문책 △군사물자반입에 관한 소파협정 개정 등을 미국에 강력히 항의하며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통선평화교회 이적목사의 <식민의 노래9-점령군>이 낭송됐고 공주대노래패 <타는목마름으로>의 노래공연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흰돌 강희남의장 6주기추모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에는 강희남의장이 한생을 조국통일투쟁과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투쟁에 바친 장면들이 기록된 소중한 사진들이 편집돼 있다.

     

    영상은 먼저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강희남의장의 남기는 말과 더불어 오늘 강희남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곧 이명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위한 투쟁임을 말해주고 있다.

     

    여앙에는 또 강희남의장이 전두환 호헌조치를 규탄한 1987년 40일간의 옥중단식투쟁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1991년 범민련남측본부 결성부도, 그리고 1995년 범민련남측본부 출범과 초대의장을 맡은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상에는 <북에 조문간다. 길비켜라>며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위한 방북조문투쟁, 경찰소환을 단호히 거부한 1999년 명동성당농성투쟁, 2003년 이라크파병저지를 위한 천리도보행진, 2005년 맥아더동상철거와 양키추방을 위한 69일간 노숙농성투쟁 등 주요한 역사의 고비마다 큰 걸음을 걸어온 강희남의장의 투쟁과 더불어 우리민족 고대사를 집대성한 역작 <새번역 환단고기>와 <우리민족 정리된 상고사> 발간, 2008년 제1회 파리 코리아국제포럼에서 역사적 발표 등 말년을 조선상고사연구에 매진한 나날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특히 1994년 7월 김일성주석 서거당시 강희남의장의 방북조문투쟁과 2011년 12월 김정일국방위원장 서거당시 코리아연대 박창균상임대표와 공동대표단의 방북조문투쟁기자회견, 그리고 황혜로공동대표의 방북조문투쟁 성사가 인상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영상에는 끝으로 강희남정신을 계승해 이명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한 코리아연대의 실천투쟁이 다양하게 편집돼 있다.

     

    유족인 강희남의장의 아들 강익현씨가 발언에 나섰다.

     

    전주 그린피아추모관에서 6주기추모제를 진행하고 서울로 올라온 강익현씨는 추모제를 서울과 전주 양쪽에서 하게 된 사연을 전하면서 <강희남목사님께서 마지막유언으로 <살기는 여기 살았지만 죽어서는 북에 묻히는 것이 좋겠다. 내가 죽거든 북으로 보내주고, 이명박정권 때문에 만일 못간다고 하면 화장해 범민련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가 북으로 보내다오.>라고 하셨다. 때가 되면 유골을 북으로 보내드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추모제를 양쪽에서 번거롭게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손자들 이름에 모두 <혁>자가 들어가는데 이 나라를 가만히 보니 민주화운동 갖고는 안되겠더라, 혁명을 해야 바뀌겠다 해서 이름에 <혁>자를 다 넣으셨다.>며 <강목사님은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생각을 잘 안하신다. 마지막 자결하실 때 그분은 살때 살고 죽을때 죽어야지 마음을 먹으면 그냥 그렇게 하시는 분>이라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코리아연대 지영철전공동대표와 김정희전공동대표가 함께 발언자로 나섰다.

     

    두 전공동대표들은 지난 1월8일 기독교회관에서 민주주의수호공안탄압저지시국농성에 돌입한 이래 150일째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김정희전공동대표는 <오늘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치신 강희남의장님께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고 절절히 호소하시면서 순절한 날>이라며 <강의장님과의 인연은 12년전 결혼할 때 주례를 부탁드렸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강희남정신을 생각하면 투쟁과 실천 속에 그 답이 있다.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꿀 주체가 없다는 말씀, 이시대는 제2의 6월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말씀을 새기면서 민중이 주체가 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지영철전공동대표는 <강의장님은 민족을 가장 사랑하셨고, 양키를 가장 증오하셨다. 그리고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를 실천하셨고, 민중을 가장 사랑하고 독재를 가장 증오했기 때문에 억압을 반대하고 민주를 실천하셨다. 또 미대사관앞에서 농성을 하려다 못하게 되자 자신의 집 방문에 <양키대사관>이라고 써붙이고 수십일넘게 단식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강의장님과 함께 여기서 투쟁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영광이다. 살인마 이명박이 살인마 박근혜로. 이명박근혜를 끝장내는 투쟁이 바로 강희남정신을 계승하는 투쟁>이라며 <명박산성앞에서 투쟁했던 것처럼, 지난 4~5월 안국동, 광화문, 경복궁에서 이명박근혜를 끝쟁내고 투쟁했던 것처럼 투쟁하자. 강희남정신이 있는한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고 힘차게 투쟁할 것>이라고 결연한 투쟁의지를 밝혔다.

     

    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미대사관앞에서 출발해 세월호광장을 거쳐 정부서울청사까지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강희남정신 계승하여 이명박근혜정권 퇴진시키자!>, <강희남정신계승하여 양키를 몰아내자!>, <제2의 6월항쟁으로 이명박근혜정권 퇴진시키자!>, <탄저균 무단반입 싸드배치 양키는 이땅을 떠나고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종미반북 사대매국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불법정치자금 민주파괴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용산학살 세월호학살 이명박근혜학살정권 퇴진하라!>, <민주파괴 공안정치 박근혜독재정권 퇴진하라!>, <6.15부정하고 탄저균방임하는 이명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진이 끝난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주관으로 <미군탄저균밀반입 및 6.15불허 규탄 시국기도회>가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열렸다.

     

    150일째 민주주의수호공안탄압저지시국농성을 이끌고 있는 민통선평화교회 이적목사가 시국기도회를 인도했으며시국기도를 목정평전상임의장 정태효목사가, 시국설교를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상임고문 문대골목사가 진행했다.

     

    정태효목사는 <박<정부>가 6.15공동선언을 어기고 있는 이 현실에서 오늘 남과북이 통일된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밀반출된 탄저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권이 회개케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이날 <시대의 증언>에 나선 김정희전공동대표는 <박근혜가 6.15민족공동행사를 불허했는데 박<정권> 발악의 하나다. 코리아연대를 집중탄압하고 공안총리를 임명하려는 반민주공안탄압이야말로 박<정권>의 어리석은 짓>이라며 코리아연대의 강희남의장6주기추모사 <강희남정신을 계승하여 이명박근혜를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를 낭독했다.

     

    <대북정책전환, 조건없는 민족공동행사 보장촉구> 농성3일째를 맞은 한국청년연대 정종성공동대표는 <코리아연대동지들과 선생님들과 우리도 끝까지 투쟁하겠다. 선생님들께서 개척해오신 통일운동의 길, 그 뜻 이어받아 열심히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문대골목사는 로마서12장1-2절을 읽은 뒤 시국설교를 통해 <공존이라는 역사의 오메가포인트에서 볼 때 한국현대사에서 용서할 수 없는 두사람은 박근혜와 박정희>라면서 <그 이유는 민중이 자유롭게 선택한 민주정권을 총으로 정복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과정을 보면 군대까지 출동했다. 국가정보원, 검찰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문대골목사는 <여기 민족의 통일을 세계의 하나됨을 눈물겹게 추구하는 당신의 사랑하는 귀한 권속들을 위해 스스로 역사의 주체이기를 희구하는 모든 민중들의 머리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라고 축도했다.

     

    거리기도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7시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진상규명 촉구 문화제>에 참가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배포된 <촛불101혁신호>를 받아본 시민들은 <박근혜퇴진 상식 아니냐>, <이게 최고다. 내용적으로 신문도 잘만든다.>, <여러분들이 촛불이다. 꺼져가는 불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며 직접 신문을 가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나눠 주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촛불101혁신호>에는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 <이명박근혜정권> 끝장내자!> 제목의 코리아연대성명, <박근혜<정권>의 파멸을 촉진시킨 6.15민족공동행사무산사태> 제목의 21세기민족일보사설, 강희남의장 6주기추모사 <강희남정신을 계승하여 이명박근혜를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한때 경찰이 이유없이 촛불신문을 나눠주던 코리아연대회원을 막아나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시민들이 나서서 <왜 인터넷에도 다 나오는 내용들인데 왜 못하게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자 도망치듯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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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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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항야족 탄압에 대한 아웅산 수치의 침묵을 참을 수 없는 이유

로항야족 탄압에 대한 아웅산 수치의 침묵을 참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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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이 여성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리고 민주주의와 인권, 민족과의 호합을 위해 분투하는 세상 모든 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1991년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발표했다.

또 수치가 “압제에 맞서는 싸움의 중요한 심볼”이라고도 했다.

24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의 무슬림 로힝야족들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의 평가에 반대할지도 모른다. 수치를 ‘세상에서 유명하고 용감한 양심수’라고 불렀던 고든 브라운과도 의견을 달리할 것이다. 미얀마의 사람들은 “아웅산 수치가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도덕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고 했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말할 것도 없다.

UN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핍박받는 소수집단’인 로힝야족은 최근 몇 년 간 자신들의 곤경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몇 주 전 로힝야족 수천 명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아직도 이 세 나라의 바다에 수천 명의 로힝야족이 허술한 배를 타고 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과 깨끗한 물은 점점 바닥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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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배고프다. 너무 말랐다.’

“어부 무치타르 알리는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절박한 굶주리는 로힝야 사람들이 초과 승선한 배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5월 20일 AFP의 보도다.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고 나와 내 친구들은 울었어요. 그들이 너무 배고파 보이고 너무 말라서요.”

그러나 이런 로힝야족 ‘보트 피플’은 훨씬 더 큰 문제의 증상에 불과하다. 암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아시아 태평양 연구자인 케이트 슈츠는 이렇게 말한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수천 명의 목숨이 지금으로선 가장 급한 문제이지만, 이 위기의 근원도 해결되어야 합니다. 로힝야족 수천 명이 미얀마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살아남지 못할 지도 모르는 보트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미얀마에서 처한 상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들이 처한 압제적 상황은 130만 명의 로힝야족 무슬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부터 이동, 취업, 교육 및 의료 서비스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에 걸치며, 로힝야족이 사는 라킨 주는 로힝야족이 가정당 두 명까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차별법도 도입했다.

수십만 명이 자기 집에서 쫓겨났고, 광란에 빠진 군중들이 그들의 도시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2014년에 정부는 심지어 ‘로힝야’라는 단어 사용까지 금지하며, 미얀마에서 수세대에 걸쳐 살아온 소수 무슬림인 로힝야들이 인구 조사에서 ‘벵골인’으로 분류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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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할 수 없는 침묵

그렇다면 여기서 수치의 자리는 어디인가? 일단, 그녀의 침묵은 용납할 수 없다. 승려 아신 위라투(일명 ‘버마 빈 라덴’) 같은 사람들의 부추김으로 벌어지는 로힝야에 대한 불교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은 물론, 정부가 나서서 그녀의 나라 국민들을 탄압하는 것을 규탄하기는커녕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집단 학살에 있어, 침묵은 공모다. 아웅산 수치도 마찬가지다.’ 런던 대학 법학 교수이자 국가범죄 계획 디렉터인 페니 그린이 ‘인디펜던트’ 사설에 최근 쓴 글이다. ‘막대한 도덕적 정치적 자본을 지닌’ 미얀마의 야당 지도자 수치는 ‘버마의 정치적 사회적 담론의 특징인 용납할 수 없는 인종차별과 이슬람 공포증’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그린은 썼다.

수치는 도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최근 몇 년 동안 미얀마의 대다수인 불교도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2016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려면 그들의 표가 필요히다. 만약 군부가 그녀를 대통령 자리에 앉게 내버려 둘지, 후보로 출마는 하게 해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소수인 무슬림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축소하려 하고, 박해자와 박해 피해자가 평등한 것처럼 말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수치는 2013년에 BBC와 인터뷰하면서 추잡하게도 이 폭력이 ‘양측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하며, 인터뷰어 미샬 후세인에게 ‘무슬림들이 타겟이 되었지만 불교도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악취가 풍기는 수용소에 갇혀 ‘굶주림, 절망, 질병에 서서히 굴복하는’ 사람들은 불교도들이 아니다. 국제인권감시기구가 ‘인종청소’라고 부르는 일을 당한 것도, UN의 미얀마 인권 상황 특별 조사 위원이 ‘인류에 대한 범죄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 일을 당한 것도 불교도들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도망치려고 비좁은 배에 올라타는 것도, 그러는 와중에 망치와 칼로 공격을 받는 것도 불교도들이 아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집단 학살에 직면한 사람들은 불교도들이 아니다.

rohingya

‘집단 학살’의 위험

과장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좋으련만.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시몬-쇼드트 집단 학살 방지 센터 조사원들이 내린 결론을 들어보라.

그들은 5월 초에 발표한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집단 학살의 여러 전제 조건이 이미 존재한다는 깊은 우려를 안고 버마를 떠났다.”

로힝야 억류 수용소를 방문하고 폭력적인 공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조사원들은 ‘버마 정부가 이들 지역 사회 전체를 억압하는 법과 정책을 즉각 수정하지 않는다며 로힝야족에게 집단 학살은 심각한 위험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배와 시체들, 보고서와 폭로에도 불구하고 수 치는 아직도 말이 없다. 로힝야족들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구하려고 달리고 있는데, 수치는 그들을 돕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이 없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는 좀 더 많은 걸 기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닐지도 모른다. ‘헨리 키신저’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게다가, 노벨상 위원회는 평화상을 일찌감치 수여한 좀 괴상한 전력이 있어 왔다.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 대통령,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1994년에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걸 기억하는가? 중동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자의 어린이들에게 물어보라. 2009년의 버락 오바마는 기억하는가? 파키스탄에서 드론에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라.

라빈, 아라파트, 오바마…… 결국 그들은 물론 모두 정치인들이다. 수치는 다른 존재, 그 이상의 존재라고 우린 생각해왔다. 도덕의 아이콘, 인권 챔피언, 현대판 간디.

aung san suu kyi

슬픈 진실

오피니언 리더이자 한때 정치 죄수였던 그녀가 2013년에 CNN에 자신은 ‘이제껏 늘 정치인이었’고, 자신의 야망은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왜 우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

슬픈 진실은 이제 우리가 장밋빛 색안경을 벗고 ‘그 분’을 바라볼 때가 이미 한참 지났다는 것이다. 수 치의 본모습을 보아야 한다. 한때 양심수였던 것은 맞지만, 이제는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원칙보다 득표를 더 중요시하는 정치인인 것이다. 죄없는 로힝야족의 생명보다는 정당 정치의 발전이 그녀에겐 더 중요하다.

수치는 1991년에 가택 연금 상태에서 수상한 노벨상을 21년 뒤인 2012년 6월에 감옥에서 마침내 받아들이며 거창하게 선언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난민, 홈리스, 희망 잃은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구석구석이 모두 보호구역이고 사람들은 자유와 평화롭게 살 능력을 갖는 세상입니다.”

세상 따윈 잊어라. 그녀는 고국에서부터, 라킨의 로힝야족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러지 않겠다면, 혹은 그럴 수 없다면, 20년 넘게 기다렸다가 받았던 상을 반납하는 걸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알 자지라에 먼저 게재되었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Aung San Suu Kyi's Silence on the Rohingya Is Inexcusabl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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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 작전’으로 숨진 특전사 대원들의 억울함

 
‘봉황새 작전’으로 숨진 특전사 대원들의 억울함
 
 
 
임병도 | 2015-06-06 10:37: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82년 2월 5일, 특전사 대원 47명과 공군 6명 등 53명의 군인이 사망했습니다. 53명의 군인이 사망하고도 3일이 지난 뒤에야 언론은 ‘대침투작전 훈련 중 악천후로 인한 추락 사고’라고 보도했습니다.
 
‘5일 오후 3시경 제주도에서 작전 중이던 군용기 1대가 추락, 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53명의 군장병이 모두 숨졌다고 국방부가 6일 저녁 발표했다. 이 군용기는 대침투작전훈련이었으며 사고원인은 악천후로 인한 추락으로 일단 보고 있다. 군당국은 6일 오후 4시경 한라산 정상북방근처에서 기체잔해를 발견, 탑승장병들은 모두 순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공군 C123수송기 추락사고로 순진 육군장병 47명과 공군소속 승무원 6명 등 53명의 사망자명단은 군 사정에 의해 발표하지 않고 유가족에게만 통보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특전사 대원들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까지 가서 ‘대침투작전 훈련’을 하다가 사망한 것입니다. 왜 특전사 대원들은 꼭 제주까지 가야만 했을까요? 
 

“전두환을 경호하기 위한 ‘봉황새 작전’이 대침투작전훈련으로”
 
1982년 2월 6일 전두환은 제주국제공항 확장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전두환의 경호를 위해 특전사 요원 450명을 제주도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청와대의 명령에 따라 특전사 대원을 태운 세 대의 C123 수송기가 제주로 향했고, 이 중 한 대가 한라산에 추락했습니다.

▲박희도 특전사령관은 1982년 2월 6일 오전 8시 45분 김두청 707대대장에게 훈련 명칭 변경 메시지를 보내, ‘봉황새 작전’을 대간첩 침투작전’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 오마이뉴스

박희도 특전사령관은 사고 다음날 ‘동계특별훈련’으로 훈련 명칭을 변경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두환의 경호를 위한 ‘봉황새 작’이 ‘대침투 작전’으로 바뀐 것입니다.1

전두환은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박희도 준장이 이끄는 제1공수특전여단과 3공수,5공수특전여단을 동원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에도 공수부대를 투입해 유혈진압을 합니다. 
 
특전사라는 막강한 군 전력을 자신의 사병처럼 사용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 특전사가 전두환을 지키려다가 고귀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시신과 함께 지내야만 했던 유족들’

100일 위령제를 위해 특전사 대원과 공군 53명이 숨진 한라산 사고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100일이 지났는데도 사고 현장에는 사고 잔해가 그대로 있었고, 53명 시신을 모두 수습했다는 군의 발표와 다르게 시신 더미가 무려 3포대나 나왔기 때문입니다.

▲1982년 5월 15일, C-123 공군수송기 추락 사고 현장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어지러이 널린 비행기 잔해 속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족들은 사고 현장에서 찾은 시신더미 세 포대를 들고 서울로 향하려고 했지만, 군인들의 방해로 제주의 호텔에 감금됐습니다. 1주일 동안 시신이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버텼던 유족들에게 남은 것은 남편과 자식들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분노뿐이었습니다.2
 
사고 현장을 갔다 온 유족들이 유해 등을 끝까지 찾아 정리해달라고 요구하자, 부대는 1982년 7월 3일까지 제주 현장에 내려가 최종정리 작업을 하고, 유해 발견 시 화장해 국립묘지에 봉안된 유해와 합동으로 충혼비에 안장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군 당국은 1년이 넘도록 사고 현장에 시신과 잔해를 방치했고, 여전히 대통령 경호 때문이 아닌 ‘동계훈련’ 도중에 사망했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입 다물라,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고 원인’

봉황새 작전으로 순직한 특전사 대원과 공군 유족들은 아직도 왜 사고가 났는지 모릅니다. 그저 기상악화라고만 하지만 구체적인 사고원인은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82년 2월 5일 발생한 공군 수송기 C123기 사고기에 탑승했던 장병들의 생전 훈련 장면과 국립묘지에 안장된 고 김인현 중사의 어머니 모습. ⓒ 오마이뉴스

사고 현장 수습이나 시신 발굴 등에 참여했던 관계자와 유족들은 철저히 전두환 정권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군인들이 전두환의 경호를 위한 작전에 동원됐다가 사망했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서재철 전 제주신문 사진 기자가 촬영했던 사고 현장의 필름은 군부로 넘겨졌고, 함께 취재했던 경향신문 기자들도 사건에 대해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서재철 기자가 숨겨놓은 1롤의 필름은 전두환 정권이 물러난 1989년에서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3
 
1989년 유족들은 서울지검에 전두환 전 대통령, 이희근 공군 참모총장, 주영복 국방장관, 박희도 특전사령관을 살인혐의 등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1992년 서울지검은 혐의가 없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4

전두환은 봉황새 작전으로 숨진 ‘C123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보고를 받은 직후 “이번 사건은 조종사의 착각으로 빚어진 사고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군 복무 도중 숨진 군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보상이 아닌, 정확한 진실 규명과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유가족들은 늘 절망감에 몸서리 칩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갔던 동작동 국립묘지는 현충일이면 엄청난 사람이 찾아오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찾아오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를 기억하는 유족들의 나이가 많아져 하나둘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땅의 군인으로 살다가 숨진 이들에 대한 진실 규명과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충일인 오늘만이라도 그들의 억울한 삶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1. 박희도 사령관, 작전명 바꾸라 명령 25년째 비문에도 ‘대침투 작전’으로. 오마이뉴스 2007년 3월 21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8928 
2. 제주 봉황새작전의 비밀을 찾아서. 오마이뉴스 기획기사. 2007년 3월http://www.ohmynews.com/ 
3. “특전사 희생 추락 비행기 사진 군부가 빼앗아” 제주의 소리. 2012년 2월 8일
http://m.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10562 
4. 한라산에 갇힌 53명 특전사 영혼 “진실 밝혀야” 제주의소리. 2012년 2월 10일
http://m.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10699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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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평택·화성... 거리에 말붙일 사람도 없다

 

[메르스 현장] 평택, 초중고 휴업률 94%... 지역경제 휘청

15.06.06 21:53l최종 업데이트 15.06.06 21:5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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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9일 폐쇄한 평택성모병원, 인적이 거의 없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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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중동 호흡기증후군) 확산에 대한 경기도민들 불안감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다. 특히 메르스 진원지로 알려진 평택과 첫 사망자 발생지역인 화성 시민들 불안감은 심각했다. 이 불안감이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5일과 6일,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이고, 이 불안감이 지역경제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평택·화성·안산·안양을 찾았다. 아직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안양과 안산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화성·평택 시민들 못지 않았다. 

평택, 8일 기준 유·초·중·고 휴업률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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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이 없는 평택성모병원 앞 , 차들만 무심히 지나다니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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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 오래가면 영업을 접어야 할지도…. 매출이 50~70% 정도 떨어졌다."

메르스 진원지로 알려진 평택성모병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아무개(남, 40대)씨 말이다. 박씨는 이어 "원래 사람들 왕래가 드문 곳이었지만 (메르스 사태 이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평택성모병원을 방문한 것은 6일 오전 10시 30분께다.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자동차만 무심한 듯 도로를 지나쳤는데, 운전자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알려진 대로 병원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평택성모병원과 약 4km 떨어진 평택역 주변도 인적이 뜸했다. 번화가로 알려진 곳이다.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박씨는 "예전 같았으면 주말이라 꽤 북적거렸을 거리"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일 현재 33명이 이 병원에서 감염됐으며 이곳에서 감염돼 사망한 사람은 4일 사망한 76세 남성을 포함해 현재까지 3명이다. 이 병원은 지난 29일 폐쇄됐다. 보건복지부는 확진자 30명과 사망자 2명이 나온 뒤인 지난 5일에야 이 병원 이름을 공개하며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이 지역 시민들 불안감이 높다는 것은 휴업한 학교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는 8일(월) 휴업하기로 한 학교는 전체 154개 유·초·중·고 중 145개 학교로 휴업률이 94.1%에 이른다.  

화성 동탄, 대형 쇼핑센터 매장 썰렁 주차장은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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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동탄 Y초등학교, 텅 빈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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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동탄 H병원 부근 텅빈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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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로 인한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H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5일 오후다. 병원 문은 열려 있었지만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병원이 폐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 인근은 대형 쇼핑센터까지 있어 꽤 번화해 보이는 거리였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 붙일 사람 찾기도 힘이 들 정도였다. 병원 앞 대형쇼핑센터 매장은 썰렁했고 주차장은 한가했다. 손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매장 직원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이후 손님이 50% 이상 줄었다고 한다.  

병원 인근 Y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휴업 중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지난 3일부터 휴업에 돌입했다. 원하는 학생은 학교에 와도 되지만 불안함 때문인지 학교에 오는 아이가 아무도 없다고 한다. 화성·오산 휴업률도 73.1%로 무척 높은 편이다. 8일, 전체 253개 학교 중 185개 학교가 휴업에 들어간다. 

"불안하다, 3일째 밖에 나가지 않고 있다. 잠깐 나갈 때도 마스크를 꼭 쓴다. 아파트 놀이터에도 사람이 없다." 

화성 동탄 주민 이아무개(여, 40대 주부)씨가 5일 오후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말을 붙일 사람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지인 소개를 받아 동탄 주민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메르스 확진 공포 때문에 한의원 환자 수도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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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업을 한 안산 A 초등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의 큰 줄넘기 놀이. 학교에 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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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업 연장공고, 화성 동탄 Y초등학교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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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과 안양은 아직 확진 자가 나타나지 않은 비교적 평온한 지역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화성·평택 못지않았다.

5일 오전, 이날부터 휴업을 하는 안산 A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운동장과 교실은 텅 비어 있었지만, 학교 뒤편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어우러진 긴 줄넘기 놀이가 한창이었다. 휴업은 하고 있지만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학교에 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한 '돌봄 교실'은 운영하고 있었다.  

'메르스 확진자도 없는데 왜 휴업을 한 것일까?' 학교 관계자는 "학부모들 불안감이 너무 커서"라고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어 "집단공포가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안산은 6개 초등학교가 8일부터 휴업을 하기로 했다. 휴업률은 3.5%로 낮은 편이다. 

안양은 경기 중·남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학교 휴업을 결정하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5일 오후 안양 만안구에 있는 D 한의원에 들러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조아무개 한의사는 "환자 수가 30% 정도 줄었다"며 그 이유를 '사람 모이는 곳을 피하려하기 때문'이라 추측했다. 이어 "(불안감 때문인지) 환자들이 메르스에 대해서 많이 묻는다"라고 말했다.

전체 메르스 확진자는 6일 기준 50명이다. 경기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50명 중 약 32명이 경기도에 있다. 이 때문에 경기도민이 느끼는 불안감이 다른 시·도에 비해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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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호수, 욕조물 빠지듯 사라지는 미스터리 풀려

 
조홍섭 2015. 06. 05
조회수 6329 추천수 0
 

5천만톤 호수가 2시간에 완전 배수…스며든 물이 쐐기 작용, 호수바닥 당겨 파열

여름바다 수백개 호수 하룻밤 새 사라져, 녹은 빙상이 해수면 상승 불러 주목

 

gr1_LAURA STEVENS,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jpg» 그린란드에 여름이 오면 수천개의 파란 호수가 빙상 위에 생겨난다. 이 호수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사진=LAURA STEVENS,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해마다 북극 그린란드에 여름이 오면 두터운 빙상 표면 곳곳이 녹아 낮은 곳에 호수가 생겨난다. 이렇게 생긴 수천개의 빙하 위 호수 가운데 13%는 말 그대로 하룻밤 새 사라진다.
 
그린란드 서부 해안 가까운 1000m 깊이의 빙상 위에 형성된 노스 레이크에서 그런 현상이 2006년 7월 발견돼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얼음 위에 깊이 10m에 이르는 파란 물이 폭 3㎞의 호수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호수에 담겨 있던 5000만t 가까운 용량의 물이 2시간도 걸리지 않아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흐르는 물보다 빠르게 호숫물이 얼음 밑바닥의 틈으로 빠져나갔다.

 

MIT-Greenland-Melt-3.jpg» 그린란드 노스 레이크에서 물이 모두 빠져나간 모습. 사진=MIT
 
과학자들은 호수 바닥 얼음층에 수압에 의한 틈이 생겨 마치 깨진 욕조에서 물이 빠지는 것처럼 호숫물이 사라진 것임을 곧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호수 바닥에 그런 틈이 생기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진은 노스 레이크 주변 16곳에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GPS)을 설치해 정밀 관측했다. 연구자들은 2011년부터 3년에 걸쳐 호수가 사라지기 직전과 배수 과정, 배수 직후의 관측결과로부터 미스터리를 풀 해답을 발견해 과학저널 <네이처> 4일치에 발표했다.

 

Laura A. Stevens_MIT-Greenland-Melt-1.jpg»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와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진이 노스 레이크 주변에 지피에스 측정소를 설치하고 위치 변화를 재고 있다. 사진=Laura A. Stevens_MIT
 
연구결과를 보면, 배수 현상은 빙상 표면과 기반암 사이를 수직으로 잇는 기다란 터널 같은 통로를 통해 호숫물이 흘러들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물이 이 통로로 흘러 들어가면서 빙상 바닥과 기반암 사이 공간이 부풀어 오른다. 
 
그 결과 호수 바닥은 밑에서 수직 방향으로 솟아오르는 힘을 받아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효과가 나타난다. 어느 순간 호수 바닥이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바닥의 얼음층이 파열되는 것이다.

 

pic.jpg» 호숫물이 배출되는 과정. a. 빙상 위에 호수 형성 b. 수직 통로로 물이 빙상과 기반암 경계에 유입돼 팽창 c.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호수 바닥의 얼음층이 파열됨. 하늘색 파열면이 배수구 구실을 한다. 그림=스티븐슨 외 <네이처>
 
측정 결과 그 순간 빙상은 파열의 충격으로 수평으로 45㎝를 이동했다. 이 정도의 에너지는 규모 5.5의 강한 지진에서 분출되는 수준이다. 긴 선 형태로 파열된 틈을 통해 물이 빠르게 새어나간다.

 

pic2.jpg» 2011년과 2013년 호수 바닥이 파열되기 각각 하루와 이틀전 모습. 호수 바닥이 산봉우리처럼 위로 향해 부풀어 오른 것을 보여준다. 그림=스티븐슨 외 <네이처>

 

pic3.jpg» 2011년과 2013년 배수사태 전과 후의 노스 레이크의 위성 사진(a, b). c에서 파란 선은 호수 바닥이 휜 모습. 그림=스티븐슨 외 <네이처> 
 
이번 연구결과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논문 제1 저자인 로라 스티븐스 엠아이티 박사과정생은 “빙하 위 호수들이 어떻게 왜 배수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린란드의 빙상이 기후변화 시대에 얼마나 해수면 상승을 일으킬지를 예측하는데 필수적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갑작스런 호수의 배수현상이 현재로는 그린란드 해안가에서만 관찰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내륙에서는 여름에 호수가 생겨 호숫물이 개울을 통해 크레바스로 흘러들다가 겨울이면 다시 얼어붙는다.
 
그린란드의 빙상이 모두 녹으면 지구의 해수면을 6m 높이는 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그린란드의 해빙 추세는 해마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어 얼음층의 동태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aura A. Stevens et. al., Greenland supraglacial lake drainages triggered by hydrologically induced basal slip, Nature  522, 73~76 (04 June 2015) doi:10.1038/nature1448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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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메르스 대책 과잉 대응 아니다

 
 
 
사우디 보건차관 “모든 의심자를 통제해야 한다”는 조언 참작해야…
 
임두만 | 2015-06-06 08:02: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는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가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9월 처음으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보고된 사우디는 이달 1일 현재까지 1,016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4∼5월 두 달간 350명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이후 비상 대책을 가동해 가까스로 대유행을 막았다.

사우디의 메르스 통제업무 주무책임자는 압둘아지즈 압둘라 빈사이드 보건차관이다 그가 4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를 했으며 연합은 이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환자는 물론 의심 단계에 있는 사람들부터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절대 확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모든 의심자를 통제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메르스가 다른 사람에게 주로 전염되는 시기는 확진 뒤가 아니라 열과 기침 같은 의심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부터 감염이 확인되는 시기”… 이게 매우 중요하다. 의심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 이때가 주로 타인에게 전염되는 시기라는 거다.

그래서 그는 “이 때문에 의심 단계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정부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메르스의)원천봉쇄를 위해선 의료기관과 환자 자신이 경각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증상을 발견하면 즉시 메르스를 통제하는 담당 기관에 보고하는 인식을 갖추도록 정부가 일깨우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모든 의료기관과 지역사회가 의심자의 신원을 정확히 알아내고 동선을 추적해 격리까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관심을 둬야 메르스를 통제할 수 있다”면서 ‘정부는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권면했다.

따라서 이 인터뷰를 보면 지금 복지부의 병원공개 거부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환자 스스로의 경각심을 가질 기회를 봉쇄한 때문이다.

기침을 하거나 열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증상을 메르스에 의심을 두고 있다면 어떻든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사람 곁에 있었다는 거다. 복지부가 공기감염 가능성을 극구 부인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바이러스 보균자와 가까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 그곳은 그리고 병원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런데 병원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 발표를 반박하는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tv뉴스화면. 신문고뉴스 박훈규 기자.

문제는 이거다. 열이 나고 기침과 가래 증상이 있을 경우 특히 기저증후군 질병 소유자라면, 즉 평소 기관지나 폐질환을 앓던 사람, 해소끼가 있는 노인, 감기를 달고 사는 어린이 등이 메르스를 의심할 확률이 그만큼 낮다. 메르스가 돌기 전에도 자주 열이 나고 기침을 하고 가래 증상을 겪었던 자신에게 그 같은 증상이 왔을 때 메르스를 의심하기보다 평소 습관대로 약을 먹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병을 키울 수 가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다니는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었더라도 사전에 이를 알지 못했으므로 메르스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재 서울시와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는 서울삼성병원 의사는 자신이 메르스에 감염되었을 수 있겠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부터 다중접촉은 하지 않았고, 병원에서 퇴근한 뒤 스스로 신고하고 격리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에 서울시가 주장하는 것은 100% 거짓말이라고 반발한다.

그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31일 전까지는 제가 메르스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 ‘14번’ 환자와 접촉했던 것을 알지 못했다. 메르스 환자가 응급실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환자 곁에 있는 폐색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약 40분 간 머물렀다”고 말했다.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였음에도 자기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음을 몰랐다는 말이다.

또 “31일 이전에는 제가 평소 고통을 받던 알레르기성 비염과 다르다고 생각할 만한 증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29일도 정상적으로 병원 근무를 했다.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처음 떠올린 건) 31일 아침이다.” (프레시안 6월 5일) “29일에는 평소의 알레르기 질환 때문에 약간의 기침이 있었을 뿐이고 30일에는 기침도 없는 건강한 상태였다.”(연합뉴스 6월 5일)

때문에 그는 “분통이 터진다”고 반박하면서 심지어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에 대해 “박원순 시장님은 원래부터 계략 잘 세우고 사람 괴롭히는 거, 주특기인 사람 아닙니까.”라고 비웃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이 인터뷰 한마디에 그의 인간성이 드러나고 그가 지금까지 자신을 변호하면서 한 말에 전혀 신빙성을 부여할 수 없다.

자기가 불리하다고 특정인, 특히 전혀 교류도 없는 공직자를 “계략 잘 세우고 사람 괴롭히는 거, 주특기인 사람”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말 아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서울시의 주장, 그리고 위에 언급한 사우디 보건부 차관의 말을 종합하면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답은 나온다.

△27일 ‘14번’ 환자가 내원한 응급실에 약 40분 정도 머물렀다. △29일 기침이 있었다. △30일 병원 대강당 심포지엄 참석했다. △같은 날 재건축 조합 총회에 참석했다. 이 4가지 사안은 서울시와 의사의 주장이 같다. 그런데 31일 증상이 악화되어 스스로 메르스를 의심하고 검사를 외뢰한 뒤 확진판정을 받았다.

그는 평소 알레르기 질환이 있었다. 29일 기침을 했지만 원래 있었던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으로 생각했다. 응급실에 메르스 환자가 있었던 거 몰랐으므로 메르스로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확진 판정 이전인 29~31일 행동에 대해 “과학적으로 무증상 잠복기 상태에서 전파력이 없다는 건 확인된 사실”이라고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사우디 보건차관은 “메르스가 다른 사람에게 주로 전염되는 시기는 확진 뒤가 아니라 열과 기침 같은 의심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으로 알려진 ‘14번’ 환자는 이 의사만 감염시킨 것이 아니라 추가로 2명을 더 감염시킨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복지부는 당시 병원 내 소재했던 600명을 추적조사 하고 있다. 이 의사 말고도 수원에서 확진 자로 발표된 42번 환자와 앞서 발표된 41번 환자 모두 14번 환자와 같은 시간 응급실에 잠깐 머문 것만으로도 감염됐을 정도다.

이에 대해 프레시안은 5일 서울시내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견해를 기사로 실었다. 자신을 강변하는 의사와 다르게 전염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인터뷰 기사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이 의사는 확진자 A씨의 알레르기 비염 증상과 메르스 초기 증상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그가 “이분은 애초 알레르기 비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31일 이전의 기침, 또 당연히 따랐을 콧물 등을 알레르기 비염 증상으로 생각했겠죠.”라고 오인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서 “31일에 가래가 끓고 열이 나오고 나서야 메르스 증상을 의심했고요.”라고 의심의 근거를 지적했다. 그리고는 “그런데 이 둘을 구분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31일 이전의 증상이 본인이 얘기하는 단순 알레르기 비염이었는지 아니면 메르스 증상의 초기 증상이었는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만약 메르스 환자를 접촉하기 전부터 이미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있었다면 알레르기 비염일 가능성이 크지만, 만에 하나 14번 환자 접촉 후에 비염 증상처럼 기침과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면 메르스 초기 증상일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썼다.

또 “31일 이전에도 전염을 시킬 수 있어요. 특히 감염 환자가 기침을 하면서 뱉어지는 가래에는 바이러스 농도가 높아서 주위 사람을 감염시키는 전파력도 커지죠. 즉, A씨가 인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31일 이전 즉 29일부터는 타인에게 전염을 시킬 수 있는 상태였을 수 있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29일부터 전염력이 있는 상태였다면, 의사 A씨와 밀접하게 접촉했던 의료진 또는 의사 A씨가 담당하거나 회진을 돌았던 환자에게서 감염자가 발생할 겁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나타난다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A씨는 30일(토요일) 오전에 심포지엄에 참석했죠. (본인은 사람이 없는 구석에 앉아 있다 금방 나왔다고는 하지만) 이 심포지엄에 참석한 각 병원의 혈관 외과 의사를 통해서 여러 병원에서 의료진이나 환자들을 통해서 (4차)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서울시의 메르스 대책은 과잉이 아니라고 본다. 특히 사우디의 보건차관이 “절대 확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모든 의심자를 통제해야 한다”면서 “지난해 4∼5월 제다에서 이런 기초 작업이 되지 않아 환자가 급속히 증가했다”고 반성한 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역병이 돌고 있는 비상시국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정치인이나 행정가의 행동을 정치적으로 보는 심리, 지금 우리에겐 그게 적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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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행사 무산 위기와 통일부앞 철야농성

고래싸움에 꼭 새우등 터져야 하나? 6.15공동행사 무산 위기와 통일부앞 철야농성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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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5  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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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농성장으로 변한 통일부 앞마당

   
▲ 광복70돌 준비위원회가 4일 통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15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만나야 통일이다. 조건 없이 민족공동행사 보장하라!”
“정부는 굴욕외교 청산하고 남북관계 개선하라!”
“정부는 대북정책 전환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라!”
“6.15행사 보장으로 관계개선 물꼬 터라!”

광복 70년, 6.15공동선언 발표 15년을 맞아 민간단체들이 총집결해 6.15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 위기에 처하자 4일 오전 통일부 앞으로 몰려와 이 같은 구호를 외치며 장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기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더해 시민사회와 종교계 등이 포괄된 ‘광복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광복70돌 준비위)가 통일부가 있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4일까지 장기농성에 돌입한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주민접촉이나 북한 방문 등 인적교류에 관한 허가권을 쥐고 있는 통일부가 민간단체에게는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나중에 방북 불허 조치 등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70돌 준비위가 정부를 향해 직접 항의농성을 벌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지난 1일 6.15공동행사의 분산개최를 제의해왔고, 이제 6.15기념일은 열흘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6.15북측위원회는 1일자 서신에서 “6.15서울공동행사를 달가와 하지 않고 파탄시키려는 남측 당국의 근본립장에서 변화가 없는 한 설사 행사준비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한다 해도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은 명백하며 오히려 6.15공동행사가 성사되지 못한 것이 북남민간단체들 사이의 의견 대립 때문인 것처럼 불순한 언질만 주게 될 것”이라고 분산개최 제의 배경을 밝혔다.

4일 농성돌입 기자회견장에서 이창복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에게 ‘북측에서 분산개최를 제의해 왔는데, 왜 우리 정부를 향해 요구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분산개최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만든 것도, 그들(북측) 자체만의 판단이 아니라 서로(남북 당국)가 불신하는 가운데서 그러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광복70돌 준비위는 각 지역과 부문별로 돌아가며 14일까지 통일부 앞 농성장을 지킬 예정이며, 매일 오후 7시에는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 6.15공동행사 성사를 관철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창복 상임대표는 “14일까지 민족공동행사가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또,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도 기대해본다”면서 “시종일관 민족공동행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선양회의에 전달된 남측 당국의 ‘희망사항’
 

   
▲ 6.15남측위원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은 지난 1월 30일 정기총회를 개최, 올해 6.15, 8.15 민족공동행사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결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는 6.15 15주년, 광복 70주년 등 이른바 ‘꺽어지는 해’ 정주년으로 정부도 광복 70주년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올해 6.15, 8.15 기념행사는 남북해외가 함께하는 민족공동행사로 치러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6.15남측위는 지난 3월 중국에서 6.15북측위 등과 사전협의를 거쳐 4월 1일 광복 70돌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6.15공동행사를 서울에서 치르겠다고 기세 좋게 발표했다. 발족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6월 15일 서울에서 만나요’라는 카드섹션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이어 4월 9일 ‘광복70돌 서울 준비위원회’가 결성돼 ‘평화통일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를 개최하고 1만 명의 서울시민 통일응원단(준비위원)을 모집하겠다고 밝히는 등 ‘서울 6.15공동행사’ 추진은 거칠 것 없어 보였다.

그러나 5월 5일부터 중국 선양(심양)에서 진행된 남북해외 대표자회의는 예정된 회의 일정을 하루 연기해 7일까지 협의를 가졌지만 결국 6.15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는 합의하지 못한 채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막을 내렸다.

남측 당국은 회의 첫날인 5일 ‘6.15 평양, 8.15 서울’ 개최안을 강력히 희망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왔고, 북측은 이같은 남측 당국의 의도에 ‘의구심’을 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조국해방 70돌 민족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회’(이하 북측 준비위)를 꾸려 회의에 참석한 북측은 ‘6.15 서울, 8.15 평양’ 개최안을 당연한 전제로 알고 회의에 나왔던 것.

남측 준비위는 ‘6.15 서울’을 기본으로 8.15공동행사는 서울이나, 서울-평양 동시개최안 등을 제시했지만 북측을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 준비위는 5월 8일 선양회의 결과를 전하는 기자회견에서 6.15공동행사는 “사실상 서울에서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북측과 개성에서 실무접촉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측 준비위는 8일 동시에 발표하기로 한 공동보도문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고, 이후 남측 준비위가 19,20일 개성실무접촉을 제안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북측 준비위의 부정적 기류를 감지한 남측 준비위는 21일 상임대표회의를 통해 ‘6.15 서울, 8.15 평양’ 개최와 함께 8.15 서울행사에 북측 인사들을 초청한다는 최종 입장을 정해 북측에 다시 전달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남측 광복70돌 준비위 내부에서도 지도부의 협상 과정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선양회의에서 ‘6.15서울, 8.15평양’을 합의했더라면 이런 혼란이나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이창복 상임대표는 “내용적으로는 합의를 했다. 다만, 외부 표현하는데, 다시 말하면 보도문 작성하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큰 틀에서 ’많은 합의를 했다’고 표현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북측 준비위는 이달 1일 서신을 통해 “남측당국은 심양실무접촉에 끼여들어 의도적으로 장애를 조성하고 지금 이 시각까지도 이번 공동행사가 ‘민족동질성회복과 실질적 협력의 통로 개설을 위한 순수한 사회문화차원에서 추진되여야한다’느니 뭐니 하고 있으며 특히 북,남,해외 3자 사이에 이미 합의한 6.15민족공동행사를 서울에서 한다는 것에 대한 립장을 아직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이러한 점을 심중히 고려하여 6.15공동선언발표 15돐 기념 민족공동행사를 불가피하게 각기 지역별로 분산개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상 최종 통보를 보내왔다.
 

   
▲ 5월 5~7일 중국 선양에서 남북해외 준비위 대표자회의가 열렸지만 6.15, 8.15 민족공동행사 개최 장소를 확정하지 못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공동행사 추진 일지>

구분

내용

주최 및 장소

2015.1.30

6.15, 8.15 민족공동행사 반드시 성사

6.15남측위 10주년 결의문, 서울

2015.3.4

6.15, 8.15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을 성대히 개최

6.15민족공동위 10돌 공동성명

2015.4.1

광복70돌 준비위 발족
6.15공동행사 서울 개최 발표

광복70둘 준비위, 서울

2015.5.5~7

6.15, 8.15 민족공동행사 협의 
(남측 정부, ‘6.15평양 8.15서울’ 제시)

남북해외 준비위 대표자회의, 중국 선양

2015.5.8

공동보도문 발표
- 6.15~8.15공동운동기간 설정
- 6.15, 8.15 개최장소 명기 안 됨

남측 광복70돌 준비위 기자회견
- 6.15공동행사 서울 개최 ‘사실상 합의’

남측 준비위, 서울
북측 준비위, 발표 안 함

2015.5.19~20

개성서 실무접촉 제의, 무산

남측 준비위 제안
북측 준비위 무반응

2015.5.21

‘6.15서울, 8.15평양’ + 8.15서울행사에 북측 참여 요청안 확정

남측 준비위 상임대표회의, 서울

2015.6.1

6.15공동행사 분산개최 제의

6.15북측위, 6.15남측위와 해외측위에 서신

2015.6.4

통일부 앞 농성 돌입

남측준비위 기자회견, 통일부 앞

(정리 - 통일뉴스)

남북관계 현주소, OSJD와 미사일 발사

   
▲ 한국의 OSJD 회원국 가입 투표를 하루 앞둔 3일, 태안반도 안흥사격장에서 사거리 500km 이상인 탄도미사일 현무-2B가 시험발사 됐다. [사진제공 - 국방과학연구소]

이번 6.15,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 문제를 둘러싼 엎치락뒤치락은 민간통일운동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북 당국간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남북 민간교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이다.

물론 남측 당국을 대표하는 통일부도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부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민간과 ‘6.15 평양, 8.15 서울’ 안을 협의한 바 있다”며 “왜 6.15서울 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또한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온 상황에서 보수단체들에 의한 불상사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이냐”고 ‘6.15 서울’안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WCD(Women Cross DMZ) 행사를 위해 세계적 여성평화활동가들이 지난 5월 24일 DMZ를 넘어 방남하는 과정에서도 보수단체와 언론은 쌍심지를 켰고, 그나마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사고를 예방했다.

남측 정부가 민간 공동행사의 개최 장소 문제 등에 너무 간섭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 당국자는 “언제부터 민간이 정부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느냐”며 “정부는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일부 임병철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우리 단체의 접촉 제의를 지속 회피하면서 순수한 사회문화교류 차원의 공동행사 개최를 거부하고, 이러한 행사 무산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광복70돌 준비위가 통일부 앞 농성에 들어간 4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또다른 어두운 소식이 전해져왔다. 유라시아 철도운송을 총괄하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의 제43차 장관회의에서 한국은 정회원 가입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반대와 중국의 기권으로 무산된 것.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이 허공에 뜬 셈이다.

그나마 남북간 협력사업으로 첫 손가락에 꼽혔던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의 토대랄 수 있는 OSJD 가입이 실패로 돌아가자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군은 OSJD 가입 표결 전날인 3일,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500km 이상의 국산 탄도미사일 현무-2B를 충남 태안 안흥시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시험 발사했다. OSJD에서 북한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6.15공동행사 열릴 수 있을까?

   
▲ 광복70돌 준비위원회는 4월 1일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6.15민족공동행사의 서울 개최 추진을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70돌 준비위는 통일부 앞 농성을 통해 6.15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막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성사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승환 광복70돌 준비위 대변인은 “우리가 요구하는 핵심사항이 ‘전제조건 없는 공동행사 보장 입장을 정부가 구체적으로 표시하라’는 것”이라며 “정부로부터 아직 구체적인 반응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통일부가 ‘전제조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순수한 사회문화교류 차원의 공동행사’란 사실상 6.15공동행사를 정치행사로 규정하고 기념행사를 열지 말라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나 문화예술 축제 방식 만 허용하겠다는 것.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늘 민간공동행사의 걸림돌이 돼 왔던 ‘선별 배제’ 문제다. 정부가 범민련남측본부 성원 등 일부 진보적 인사들에 대해 북한주민접촉신청을 불허함으로써 사실상 6.15공동행사에 참여할 수 없도록 배제시키는 것. 실제로 지난 5월초 선양 대표자회의 당시에도 선별 배제가 이루어졌다.

정부의 '전제조건'에 맞서 광복70돌 준비위는 공동행사 성사를 위해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해외측 준비위도 성사를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6.15공동행사가 분산개최 될 경우 공동성명 등을 통해 남북해외는 6.15 15주년을 맞는 공동의 입장을 서울과 평양, 해외에서 함께 발표하는 것으로 정치적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 광복70돌 준비위원회는 통일부 앞에서 오는 14일까지 철야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70돌 준비위가 4일 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각계의 민간교류, 민족공동행사를 조건없이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지난 7년여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인해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높아진 군사적 긴장과 동북아 질서 주도권의 상실이라는 현실밖에 없다”고 지적한 대목은 귀기울일 가치가 있다.

사실 통일운동이 좋은 정세에서 정부의 협조를 받으며 남북교류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불과했다. 고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시구처럼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의 현실은 여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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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인가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6/06 [11: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메르스 현장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이 박원순 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하자 부랴부랴 메르스 전담 치료기관인 국립의료원을 방문하여 국민의 빈축을 사고 있다.     © 자주시보, 청와대 제공

 

메르스가 전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는데 정작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관련해서 국무회의에서 만전을 기하라는 말 몇 마디 뿐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더니 박원순 서울시장이 긴급기자회견을 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국립의료원을 방문하여 메르스 현장에 코빼기는 비쳤다.

 

그런데 거기서 주로 한 말이 박원순 시장을 겨냥,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지방자치단체는 가만히 있으라는 사실상의 독설이었다. 뉴스와이 등 언론들은 오늘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 등을 출연시켜 박원순 시장이 메르스를 이용하여 대선주자로서 자신을 부각시키려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장시간 늘어놓았다.

 

 

▲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는 6일 뉴스와이 메르스 관련 대담에 출연하여 시종일관 박원순 시장에 열을 올렸다. 도대체 이 판국에 정치시비를 할 상황도 아니지만 정치인 중에 메르스로 누가 비판을 받아야 할지는 자명한데 이 장성호 교수는 적반하장 정부는 적극 두둔하고 박원순 시장만 주구장창 지적하였다.     © 자주시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지금 메르스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는 이 나라 산천초목도 부들부들 떨면서 다 알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긴급기자회견에 대한 국민 지지가 낮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내놓았을 리도 없고 앵무새 언론들이 저 난리법석을 피울 리도 없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메르스 사태 관련 긴급 정보 공개와 대국민 안심 및 메르스 확산 방지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따져 도움이 되었다면 정부에서는 적극 고무해주고 정부도 그렇게 나서야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무조건 정치적으로 튀어보려고 한다는 비판만 늘어놓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그리고 앵무새 언론을 보니 정말 이게 나라 꼴인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벌써 메르스로 우리 국민 4명이나 죽었다. 감염자의 10%가 사망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40%에 육박한 사망률을 보여주었던 질병이다. 이게 보통일인가. 단 1%의 사망률을 가진 점염병에 대해서도 비상사건화하고 준전시상황으로 놓고 총력방어를 해야할 판에 대통령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번번히 저질 자결미달 총리 선정으로 결국 낙마, 총리공백사태를 야기했으며 그 대행을 해야할 부총리는 영국 방문중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총 지휘를 하고 있는데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다. 도대체 1번 메르스 환자가 메르스 의심증상을 보이고 확진판정을 받은 후에 그 병동을 소독한다면서 병동을 함께 썼던 환자들을 그 아래층 일반환자들과 섞어버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평택 성모병원에서는 메르스환자 발생부터 보건복지와 상의해서 일을 처리했다고 말하고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도 많다며 사태가 좀 진정되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보건복지부에서 메르스를 확산시킨 주범인 것이다.

 

▲ 평택성모병원도 보건당국이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고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6일 한국경제의 보도를 캡쳐한 것    © 자주시보

 

사스도, 신종플루도 잘 대응해낸 우리 보건관계자들이 박근혜 정부들어 왜 이렇게 우와좌왕 엉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보가 공개되어야 의심환자와 접촉했던 국민들이 자가격리 등 확산방지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데 정부에서 정보를 꼭꼭 숨기고만 있으니 불안감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고 학교와 학원마저 끊고 있다. 결국 경제가 마비상태다.

 

어쨌든 이번 메르스 사태로 성완종 파문은 거의 마무리 수습단계로 접어들었고 황교안 총리 인준안은 새누리당 의도대로 일사천리로 처리되어가 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정치적 이득을 놓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들은 청와대에 신속하게 값비싼 열감지기까지 설치, 메르스에 걸릴 염려는 없게 해 놓았으니 뭐가 걱정이겠는가. 어차피 대통령 두 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정선거로 당선되어 곱지 않게 보는 국민들도 많은 조건에서 어찌 어찌 임기나 잘 마치면 그만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지 않을 수 없는 청와대의 작태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세월호 여파로 경제가 무너져가고 있었는데 메르스까지 겹쳐서 앞으로 우리 경제가 무슨 파국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놈의 정치적 집권야욕에만 피눈이 되어 싸다니지 말고 이제는 정말 국민과 경제 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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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대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 <이명박근혜정권> 끝장내자!> 성명 발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6/06 14:25
  • 수정일
    2015/06/06 14:2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사회] 코리아연대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 〈이명박근혜정권〉 끝장내자!〉 성명 발표
  •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이하 코리아연대)가 범민련의장이였던 흰돌 강희남의장의 서거 6주기를 맞아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 <이명박근혜정권> 끝장내자!>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한생을 투쟁하였던 강희남범민련의장은 유언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고 절절히 호소하며 2009년 오늘 순절하였다.>며 <<이명박근혜정권>은 역대정권들의 불법과 부정, 부패와 비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악행을 저지른 잔학무도한 <범죄정권>이다.>고 규정했다.
     
    이어 이명박근혜정권의 부정선거, 용산학살, 세월호학살, 종미사대, BBK, 성완종게이트, 진보정당해산, 4대강, 부채, 5.24조치와 같은 이명박근혜정권의 불법·학살·매국·부패·독재·파탄 등의 본질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명박근혜정권>을 끝장내자!>, <이명박을 구속하고 박근혜를 몰아내자!>는 것이 바로 오늘의 민심이다.>라며 <강희남의장이 남긴 유언대로, 오늘의 이명박인 박근혜, 이명박근혜를 끝장내기 위하여, 모두다 한사람처럼 떨쳐나서 힘차게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 <이명박근혜정권끝장내자!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이다그것을 의미하는 <이명박근혜정권>이라는 말은 서로 물어뜯고 싸웠던 새누리당의 대선경선과정에서 자기들이 고유명사로 만든 것이다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한생을 투쟁하였던 강희남범민련의장은 유언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고 절절히 호소하며 2009년 오늘 순절하였다그 <이명박근혜정권>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가를 되돌아보라대표적으로 이명박정권때부터 시작된 쌍용차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은 박근혜<정권>에도 이어지고 있다수천명의 노동자들이 공권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대책없이 공장에서 쫓겨나면서 지금까지 무려 28명이 숨졌다또한 용산은 세월호로 잔악한 학살만행이 계속되고 있는데 어찌 살인마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이명박근혜정권>은 역대정권들의 불법과 부정부패와 비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악행을 저지른 잔학무도한 <범죄정권>이다.

     

    첫째, <이명박근혜정권>은 불법<정권>이다관권·금권부정선거를 통한 박근혜의 불법당선은 이명박의 지휘와 방조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이는 이명박의 실질적인 오른팔인 원세훈전국가정보원장이 국가정보원을 동원한 부정선거로 구속된 사실만 보더라도 명백하다온갖 부정부패비리를 저지른 이명박이 퇴임 후 처벌과 구속을 면하기 위해 박근혜와 밀실거래를 하였다는 각종의혹이 제기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한마디로 박근혜와 이명박은 불법부정선거로 완전히 엮인 한몸이다.

     

    둘째, <이명박근혜정권>은 학살<정권>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박한 외침을 외면한 채 무자비한 공권력의 군화발로 짓밟은 <용산학살>, <사라진 7시간>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300여명의 어린학생들을 무참히 수장시킨 세월호학살로 이어졌다. <정권>에 의한 학살이라는 점에서 용산이자 세월호고 세월호이자 용산이다어디 이뿐인가. <이명박근혜정권>하에서 수많은 노동 열사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또한 송파세모녀자살사태가 보여주듯이 수많은 서민들이 목숨을 끊고 있다.

     

    셋째, <이명박근혜정권>은 매국<정권>이다일본에서 태어난 <츠키야마 나키히로이명박에게 친미·친일의식이 뼛속까지 배어있다면 박근혜는 <다까키 마사오박정희의 피가 흐르는 철저한 종미사대매국노이다이는 외세에 빌붙어 매년마다 북침전쟁책동을 벌이고 수조원의 혈세를 들여 고철덩어리 싸드(THAAD)의 배치를 강행하는 것만 봐도 명백하다.

     

    넷째, <이명박근혜정권>은 부패<정권>이다집권초기부터 <747>이라는 사기공약을 내걸고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천문학적 사기를 친 이명박과 경제민주화라는 거짓공약을 내걸고 국민을 기만한 박근혜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BBK주가조작부터 해서 저축은행비리내곡동사저비리자원외교·방위산업비리의혹 등 이명박의 비리행각은 그 끝이 없다이런 부패왕초도 낯을 붉힐 선거부정사건인 <성완종게이트>의 몸통이 바로 박근혜가 아닌가.

     

    다섯째, <이명박근혜정권>은 독재<정권>이다이명박은 진보당으로부터 정당의 심장이라는 당원명부를 비열한 압수수색만행으로 탈취하였다면 박근혜는 한발 더 나아가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해 합법적인 진보정당을 파쇼적으로 강제해산시키는 반민주폭거를 자행하였다언론을 장악·통제하고 민간인사찰을 밥먹듯이 한 이명박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안통치를 부활시킨 박근혜사이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섯째, <이명박근혜정권>은 파탄<정권>이다경제를 파탄내고 민생을 파탄내며 남북관계를 파탄낸 것이 바로 <이명박근혜>이다이명박의 부자감세와 4대강정책은 박근혜의 서민증세와 사영화정책으로 이어져 경제·민생을 완전히 파탄내버렸다이명박의 <747>이 박근혜의 <줄푸세>로 이어지면서 <이명박근혜정권> 7년동안 결국 정부·기업·가계의 총부채는 4500조를 넘어섰다한편 이명박때의 5.24조치는 박근혜때까지 기승을 부리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며 남북(북남)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명박근혜정권>을 끝장내자!>, <이명박을 구속하고 박근혜를 몰아내자!>는 것이 바로 오늘의 민심이다. <명박산성>을 넘었듯이 <근혜차벽>을 넘어 청와대로 진격하자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강희남의장이 남긴 유언대로오늘의 이명박인 박근혜이명박근혜를 끝장내기 위하여모두다 한사람처럼 떨쳐나서 힘차게 나아가자!

     

    2015년 6월 6일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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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전력 정예화와 예비군 훈련의 변화

 
문형철 2015. 06. 05
조회수 56 추천수 0
 

 우수인력획득에 고심하는 것은 현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출산 등으로 병력자원이 감소되는 미래에 중요성이 부각되는 예비역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즉응성이 요구되는 동원예비군의 경우 우수자원이 가장 우선적으로 충원되어야 한다. 본지 5월호에서는 예비전력 정예화 정책토론회를 실었다. 지난 정책토론회 때 언급된 정예화 된 우수예비군이 어느 정도로 절실하고, 바뀐 예비군 훈련이 얼마나 실효적인지를 체감하기 위해 안양시 박달동의 예비군 교장을 방문했다. 예비군의 입장에서 예비군, 현역 간부, 동대장, 현역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제도와 방침 보류제도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예비군 8년차의 무거운 발걸음

 

 일반적으로 예비군은 1~8년차까지가 전시에 동원되는 동원지정자와 동원미지정자로 나뉜다. 동원예비군은 병의 경우 통상 1~4년차까지 동원훈련장에서 매년 2박3일의 동원훈련을 부가 받고 5년차부터 향방훈련을 받는다. 훈련은 6년차 훈련으로 종료되는데 장교출신은 6년차까지 동원훈련을 받으며 그 뒤엔  예비군 훈련이 부가되지 않은 동원지정예비군이 된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이유 없이 몸이 무거워진다는 예비군들의 속설이 있다. 오랜만의 군복과 전투화를 착용하자 몸이 무거웠다. 7시에 집을 나서 8시 즈음 도착한 안양시 박달동의 예비군 교장에는 50여명의 예비군이 위병소에서 훈련입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역 간부들은 교통정체가 예상되는 곳에서 미리 교통통제와 차량유도를 하고 있었고 현역병들은 주차장과 위병소에서 예비군들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훈련입소를 위해 위병소를 향했다. 하지만, 큰 낭패를 보고 말았다. 
 그동안 늘어난 체중 탓인지 전투복 바지연결고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전투복 바지가 하염없이 흘러내려버린 것이다. 양손으로 바지자락을 부여잡고 낑낑거리고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a2.JPG

 전산화된 입소 확인절차

 

맞춤서비스 예비군훈련복 대여

 

 훈련입소 통제를 하고 있던 훈련부대 작전장교가 다가왔다. “예비군, 무슨 일이 있나요? 불편해 보이시는데 도와 드릴까요?”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친절하게 피복대여소로 안내했다.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와 허리둘레 38인치, 가슴둘레 115의 거구이기에 맞을 군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피복대여소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전투복이 신형전투복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과거 동원장교로 예비군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에도 전투화, 전투복 등을 대여해주는 피복대여소를 운영하기는 했지만, 다양한 사이즈와 신형전투복을 구비해 놓지는 않았다. 8년이란 시간 속에 예비군에 대한 군의 배려가 상당히 높아졌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투복을 갈아입고 교육반 편성을 마친 시간은 입소마감시간인 9시를 살짝 넘긴 9시10분이었다. 올초 언론에서는 “예비군 훈련입소 마감시간 9시를 넘기면 지각자에 대한 보충교육 대신 처음부터 귀가조치 시킨다. 훈련불참으로 인한 벌금도 강화되었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훈련통제를 하는 중대장에게 9시를 넘겨서 입소하는 예비군은 전원 훈련입소가 불가능 한지를 물었다. “입소시간은 엄격히 준수합니다. 성과에 도달하지 못한 예비군들을 과제별로 재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입소지연에 대한 보충교육을 실시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담당하는 지역의 예비군은 관악구와 동작구 소속의 예비군들인데, 교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교통정체로 입소가 늦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예상정체구간에서 간부가 정체현상을 사전에 통제하고 있습니다.”
 일부언론의 보도처럼 고압적인 입소통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과거 동원장교 시절 시행했던 번거로운 장비 및 총기 지급과정과 지휘관 정신교육과 분열 등은 새롭게 바뀐 예비군 훈련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전자서명으로 본인확인을 마치면 반별로 10명 단위 조를 편성해서, 해당 조에 소속된 예비군 중 한 명이 분대장이 되어 스스로 훈련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일방적인 통제 요소는 상당히 사라진 모습이었다.

 

 달라진 우리 예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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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훈련에 임하는 예비군들의 모습

 

 올해부터 예비군훈련은 대대별, 혹은 연대별 통제훈련으로 바뀌면서 교장이동과 실습평가에 예비군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습을 하는 자율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기자가 속한 4반 51조는 6명으로 구성되었다. 1번 교번을 부여받은 예비군이 분대장이 되었고 A4용지로 출력된 훈련장 요도와 실습평가서를 들고 어느 교장에서부터 훈련을 받을지를 조원들에게 묻고 의견을 반영해 교장으로 이동하였다. 분대장예비군은 발을 다친 상태에서도 조원들을 잘 이끌어 나갔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분대장예비군은 “오른발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대장으로서 조원들을 이끌지 못하면 모두가 늦게 훈련퇴소를 해야 한다. 비록 예비군이지만 직책에 대한 책임감은 모두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까지 받았던 통제형 훈련과 달리 같은 조에 편성된 모두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불편을 주게 된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다”라며 새롭게 바뀐 훈련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했다.
 실제로 예비군 훈련 간 혼자 떨어져 낙오를 한다든지, 흡연장소가 아닌 곳에서 멋대로 담배를 피는 예비군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교장에 도착해서도 교관통제에 불응하고 ‘좀 쉬었다 하자’, ‘담배 좀 피자’라는 이야기를 좀 채 들을 수 없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장군기는 현역에 비해 느슨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불한당 같은 느낌의 예비군의 종래의 이미지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들 조별, 개인별 실습평가를 제대로 받고 빨리 귀가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르막길에서도 지체 없이 이동을 하였고, 지도와 나침반만을 가지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 경기처럼 모두들 바삐 발을 옮기고 있었다. 예비군 대부분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는데, 30대 후반인지라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모습이었다.

 

  예비군 훈련 과정을 묻고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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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성과 평가를 받는 예비군들

 

  전술훈련1, 사격, 정신교육 등의 훈련과목 3개를 일찌감치 끝낸 우리 조에게도 12시30분부터 1시30분까지 한 시간 정도의 달콤한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피우는예비군들로부터 예비군 훈련에 대한 예비군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학동(신림9동)에 거주하는 예비역 육군 병장 A씨는 “예비군 훈련이 바뀔려면 진작 이렇게 바뀌었어야 했어요. 번거로운 요소도 없어지고 스스로 하다 보니 훈련 제대로 못해서 늦게 가면 나만 손해란 거죠.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의식 할 수밖에 없고 이탈하는 예비군은 다른 예비군들에게 지탄을 받으니 다들 성실하게 훈련에 임할 수밖에 없어요” 라고 전했다.
  삼성동(신림6동)에 거주하는 예비역 공군 병장 B 씨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동네 형님들이 이야기 하는 예비군 훈련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국민의식이 성장했듯이 예비군들의 의식도 성장한 것 같습니다. 군도 물론 예비군에 대해 큰 배려는 못해주지만, 자신들이 가능한 범위에서 많은 배려를 하는 것 같습니다. 피복대여나, 기존처럼 의미 없이 쓰고 메고 다니던 방탄헬멧과 총들도 필요한 곳에 놓아두고 사용 후 반납하고 이동하니 교육에 더 집중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자영업자에겐 하루를 쉬면 그날 벌이가 없어지는데 실질적 보상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은 아쉽습니다.”
 두 예비군 모두 바뀐 예비군제도에 긍정적이었고 군의 작은 배려와 변화의 노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방침보류제도에 대해 물어봤다.
  처음에는 방침보류와 법규보류가 무엇인지 잘 몰라 원활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지만, 사회공익 직종 종사자 중 임무의 특성을 고려해 동원지정 없이 향방 기본훈련 8시간이 부여되는 예비군과 국회의원, 국외 6개월 이상 체류자, 경찰, 교도관 등 법령으로 동원지정이 보류된 예비군에 대한 보충설명을 했다.
  A씨는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전 예비군 6년차라 대학복학 후 2년을 방침보류로 동원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에 동원자원으로 분류되어 동원훈련을 받았는데, 막상 동원훈련을 받아보니 대학생을 동원에서 면제 해준다는 것이 상당히 특혜라고 느꼈습니다. 졸업을 해도 취업이 바로 되질 않아서 2년간 취업준비를 했는데 대학시절 못지않게 공부를 해야 했죠. 2박3일간의 동원훈련은 향방기본훈련에 비하면 훈련강도도 높고 단절감도 있어서 힘들었어요. 취업을 하고나서도 동원훈련을 받았는데 사회초년생으로 훈련을 간다고 하면 직장선배들이 놀러간다고 핀잔을 주더군요. 다녀와서 쌓여있는 업무를 보니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 교사 같은 인텔리들만 빠진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B씨 또한 군을 갓 졸업한 대학생들이 동원지정에서 면제되는 데 불만을 털어놓았다. “전 예비군 5년차 인 동원지정 예비군입니다. 4년차 때까지는 저도 동원훈련을 입소했습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1·2년차 때까지는 동원훈련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교관이나 선배예비군들이 농담 삼아 “현역물이 안 빠졌군.”이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하지만 저같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학생을 비롯한 방침 보류자가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학습권 보장’, ‘취업을 위한 학점획득’이라고 하지만 학력에 따른 차별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동원훈련 가보면, 정작 전시에 해당부대원으로 전선에 투입되어야 하는데 별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여요. 동원자원이 더 우수한 자원들이 필요할 텐데도 말이죠.” 
A와 B 외에도 여러 예비군들이 이야기 중에 끼어들었다. 또 다른 예비군은 “대학 졸업 후에 대학원 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동원훈련이 뭔지도 모르더라, 나같이 가방 줄 짧으면 동원지정에 훈련도 다 받아야 하는데 억울하다. 우리 동내에서 대학 안 간 사람은 거의 드물다. 대다수가 대학생인데 동원에서 다 빠져나가면 나 같은 사람만 억울한 거 아닌가”라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여러 예비군의 대화 속에서 현재의 방침보류자에 대한 동원미지정과 짧은 훈련시간 부여는 우수예비군을 확보해야만 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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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을 마치고 퇴소절차를 밟는 예비군들의 표정이 밝다 

 

 

 예비군 훈련 부대의 군인들과 예비군 동대장의 이야기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무렵 대부분의 예비군들이 교육성과를 달성하고 조기퇴소를 하기 시작했다. 일부 조와 개별 예비군은 불합격한 과제를 각 교장에서 재평가를 받고 있었다.  예비군훈련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과 야전 실무자들의 의견이 궁금해 훈련통제를 담당했던 대대장님의 배려로 교육상황실에서 각 계층별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훈련부대 장병과 동대장과의 질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새롭게 바뀐 예비군 훈련으로 훈련부대의 병사로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병장 엄태환:자율적 훈련으로 1반(소대규모 이상)을 인솔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인솔소요 조교가 줄어들었다. 인솔조교와 교관이 사라져 여유 인원이 각 과제별 교장에서 훈련준비에 매진할 수있게 되었다. 또한 훈련의 흐름도 원활해 졌다.

  -훈련을 할때 대처하기 힘든 예비군들이 존재하는가?
  =일병 강준영: 일반적인 향방기본훈련에 참가하는 예비군들은 비교적 훈련에 잘 따르고 의식도 높다. 하지만, 이월보충 훈련의 경우 예비군훈련을 미루다가 고발조치 직전까지 몰린 일부의 예비군을 대할 때는 대면하기 싫은 느낌도 든다. 예비군들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대학직장예비군(방침보류자)들이 일반예비군들과 비교해 우수한 점이 있는가?
  =중대장 대위 조인규: 분명 차이는 있다. 예비군들의 생활환경과 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대학직장예비군들이 대학생이라는 신분이라 인지력과 규범성이 띄어나다. 특히 우리가 담당하는 지역은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학들이 많아 더욱 그런 것 같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전기전술에 대한 숙지도 높고, 훈련에 임하는 자세도 다르다. 실제로 사격과 같이 안전상 통제가 따르는 훈련의 경우 훈련진행이 상당히 빨리 이뤄진다.
  =중앙동 동대장 정택종:중대장의 말처럼 대학이라는 제도권 내에서 움직이는 대학생 예비군들의 인지력이 띄어나다. 학생이라는 삶의 환경에서 순수함도 엿보인다. 실제로 제식통제나 복장착용도 뛰어나고 설명에 대한 집중도도 뛰어나다. 이와 달리 강준영 일병의 말처럼 이월보충 예비군의 일부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지역 예비군들의 통제에는 다소 애로점들이 있다.

  -병의 입장에서 대학생을 비롯한 방침보류자에 대한 방침철회를 어떻게 생각하나?
  =상병 남영식:제대를 하면 대학으로 복학을 하게 된다. 취업을 위해 부단한 학점관리를 해야 하는데, 동원지정자로 2박3일간의 동원입영 훈련은 부담이 된다. 학사일정을 따라가기 힘들 것이다.
  =병장 엄태환; 상병 남영식과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을 하더라도 취업준비 기간을 고려한다면, 대학생이 방침보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사일정 등을 고려한 정책이 수반된다면 대학생을 비롯한 방침보류는 철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병 강준영:두 선임들과 달리 나는 대학을 다니지 않고 입대를 했다. 대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하지만, 소수의 대학 미진학 예비군들도 제대 후 취업준비를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대학생들과 교수, 교사들의 방침보류제도는 형평성에 어긋난다.
현역장병과 예비군 동대장의 의견은 예비군 자원별로 차이가 존재하며, 특히 군을 갓 졸업한 방침보류대상인 대학생들은 예비군으로서 뛰어난 자원이며, 그들이 즉응성을 요하는 동원대상자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섣불리 방침보류를 철회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어 놓았다. 예비군훈련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향토사단들이 예비군훈련과 부대훈련이 병행되고 있고 예비군훈련 물자정비를 상비사단 대비 턱 없이 부족한 병력(상비사단의 중대병력 100여명, 향토사단 10여명)으로 물자 및 부대 정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의 방침보류철회로 훈련 및 정비소요가 늘어나는 점들이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 현역을 대체할 대안으로 떠오르는 예비군의 정예화를 위해서는 방침보류 철회는 불가피하다는 것에는 인식이 같았다.

 

글/사진 문형철 기자  captin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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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북정책 실패 했다 자인

미국, 대북정책 실패 했다 자인
 
“핵협상. 제재효과 어렵다” 새로운 방식 강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6/05 [10:22]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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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직 고위 관리들이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며 새로운 대북 접근방식을 주문했다. 
  
미국의소리방송은 5일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전직 관리들이 현 상태에서는 조선을 핵 협상으로 끌어내기도 어렵고, 대북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기도 어렵다고 말한 사실을 보도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에서 3일(현지시각) ‘북한(조선)의 도전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미국과 한국의 전직 고위 관리들이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에 참여한 토론자들은 현재 상태로는 북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조선이 원하는 핵 협상 조건은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핵 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북한(조선)의 이른바 ‘병진 노선’이 허술한 대북 제재로 인해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고 수석은 지적했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이란은 제재가 효과를 발휘했지만 조선은 그렇지 않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1994년 자신이 대북 핵 협상을 맡았을 때나 지금이나 조선의 의중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며, 이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 작업이 필요하다며 조-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갈루치 전 국무부 차관보는 “조선의 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될 뿐이며 확산 위험까지 안고 있는 만큼 조선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미국이 조선과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대북 협상은 미국, 한국, 조선 각국의 국내정치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를 관철하는 데는 대단한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조선이 핵무기 소형화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안보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겠지만 미국이 이를 계기로 대북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하며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우려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현재로서는 조선이 협상에 나설 정치적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더 광범위한 형태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는 “핵 협상에 국한하지 말고 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하는 방안과 함께 6자회담 당사국들이 조선 문제에 관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 포괄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즈워즈 전 특별대표는 “대북 협상 의제를 비핵화에 국한한다면 조선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패한 국가’로서 조선이 동북아시아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난해한 말을 던졌으나 이는 조선이 동북아에서 차지하는 정치 경제적 영향이 크다는 말로 이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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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메르스 확진 의사 A씨, 입을 열다

[단독] "1500명에게 메르스? 난 무개념 아니다!"
 
강양구 기자2015.06.05 02:07:22
 
"박원순 시장이 틀렸다!"

4일 밤 박원순 시장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의사 A(38)씨가 시민 1500여 명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사 A씨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의 기자 회견 내용에 대해 문제 삼았다. 자신은 보건복지부나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격리 조치를 당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31일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부터는 '엄격한' 자가 격리로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켰다는 것.

<프레시안>은 박원순 시장의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서울대학교병원의 국가 지정 격리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A씨와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A씨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약 30분에 걸쳐서 자신의 행적을 비롯한 여러 질문에 답했다. 전화기 너머로 간간이 기침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의 주장은 단호했다. "박원순 시장에게 분명히 책임을 묻겠습니다!"

<프레시안>은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 기자 회견의 사실관계를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A씨와의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이 인터뷰는 메르스가 실제로 병원에서 환자나 의료진에게 2차, 3차 감염을 일으켰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본보기로도 읽을 수 있다.

"박원순 시장 기자 회견은 거짓말"

프레시안 : 방금 박원순 시장이 A씨가 시민 1000여 명 이상과 접촉한 사실을 밝히고 그 위험성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사실입니까?

의사 A : 거짓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서울시에서 발표한 저의 행적이 누구 입에서 나왔겠습니까? 모두 다 제가 질병관리본부와 세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면서 말했던 것입니다. 코끼리를 직접 본 제 말이 맞겠습니까? 아니면 코끼리를 전해 듣고 묘사하는 서울시 말이 맞겠습니까? 사실 31일(일요일) 전까지는 제가 메르스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프레시안 : 27일에 '14번' 환자와 응급실에서 접촉한 적은 있잖아요?

의사 A : 그 건부터 정리하죠. 우선 '14번' 환자는 제가 진료한 환자가 아닙니다. 그날 혈관의 일부가 막히는 색전증으로 수술이 급하게 필요한 환자가 응급실에 있었어요. 그 환자의 초음파를 보기 위해서 응급실에 약 40분 정도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 때 '14번' 환자가 누군지, 또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프레시안 : 그럼, 메르스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사실을 인지한 건 언제인가요?

의사 A :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내가 메르스와 엮이리라고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다만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단을 받아서, 응급실을 잠시 소독하느라고 폐쇄한다는 얘기를 듣고서 '와, 정말 무섭다!' 하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프레시안> 확인 결과 삼성서울병원이 응급실 소독 등을 한 날짜는 29일이다.)

"31일 이전에는 증상 나타나지 않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서울시는 경미한 증상이 29일부터 나타나 30일 증상이 심화되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의사 A : 100% 틀린 얘기입니다. 질병관리본부와 인터뷰를 할 때도 분명히 말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했습니다. 특히 과로하면 기침이 심해져요. 31일 이전에는 제가 평소 고통을 받던 알레르기성 비염과 다르다고 생각할 만한 증상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29일도 정상적으로 병원 근무를 했어요.

프레시안 : 그럼, 30일(토요일)의 행적도 한 번 설명을 해 주시죠. 이날 오전에는 병원 대강당의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양재동에서 30분간 1565명이 참석한 재건축 조합 총회에 참석했다면서요?

의사 A : 30일에 오전에 심포지엄에 참석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 없는 구석에 앉아 있다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 날 따라 공부를 하기가 싫더군요. (웃음) 저녁에 재건축 조합 총회에 참석한 것도 맞습니다. 이동은 다 자가용으로 했고요. 모두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었어요. 당연하죠. 그 때만 하더라도 메르스 감염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프레시안 : 그럼,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처음으로 떠올린 건 언제입니까?

의사 A : 31일(일요일) 아침입니다.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27일 응급실에서 진료했던 그 색전증 환자가 메르스 확진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격리 대상이 되어 있더군요. 그 때 '앗' 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메르스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죠. 그래서 그날 회진할 때도 마스크를 착용했어요. 이건 동료 의사들이 증언해줄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취재 결과 31일 의사 A와 같이 회진을 돈 전공의(레지던트)들이 있었다.)

프레시안 : 그럼, 본격적으로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언제입니까?

의사 A : 그날 아침부터 가래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예정된 심포지엄도 신청만 해놓고서 가지 않았어요. 서울시는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고 발표했죠? 아닙니다. 안 갔어요. 그리고 곧바로 자가용으로 집으로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쯤 자고 났는데,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열도 나는 거예요.

프레시안 :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의사 A : 삼성서울병원의 질병관리실에 전화했죠(오후 2시). 담당자한테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언급했더니 '그럴 리 없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증상을 설명했습니다. 1시간쯤 후에 다시 담당자가 전화를 해서 보건소에 즉각 연락하라고 권고하더군요(오후 3시).

프레시안 : 그래서 보건소에 갔습니까?

의사 A : 아니죠. 강남보건소에 연락해서 우여곡절 끝에 담당자와 통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직접 검사를 하러 집으로 방문을 했더군요. 집에서 '엄격한' 자가 격리를 했죠. 그러다 오후 8시쯤 병원에서 확인 전화가 왔어요. 집에서 자가 격리 중이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격리 병동을 내줄 테니 오라고 하더군요. 자가용으로 혼자서 격리 병동에 가서 입원했죠.

장담하건대, 31일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는 집사람 외에는 밀접 접촉한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의사예요. 감염병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도는 압니다.

"서울시, 부정확한 정보로 시민 혼란 부추겨"

프레시안 : 그래서 검사 결과는 언제 나왔습니까?

의사 A : 최종 판정은 2일(화요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서울대병원의 국가 지정 격리 병동으로 이동했고요. (☞관련 기사 : 삼성서울병원 의사 메르스 확진, 정부 '은폐' 의혹)

프레시안 : 사모님도 검사를 받았죠?

의사 A : 다행히 완벽히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29일부터 증상이 있었다면, 과연 집사람에게 감염을 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프레시안 :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의사 A : 화가 납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한순간에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개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의사로서 양심을 걸고 박원순 시장이나 서울시가 주장한 그런 개념 없는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의사 A : 박원순 시장 같은 시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이 또 서울시가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박 시장이나 서울시는 정작 부정확한 정보로 시민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엉뚱한 희생양이 되었고요.

기자 회견 전에 저한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전화 한 통 건 적이 없습니다. 물론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죠. 박원순 시장, 이번에는 틀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습니다.

프레시안 :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몸도 불편하신데 인터뷰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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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낼 돈 없어? 그럼 몸으로 때워야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6/05 11:00
  • 수정일
    2015/06/05 11:0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회로 간 장발장’ 은행이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들, 국회에 모이다.
 
임두만 | 2015-06-05 09:03: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3.199…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벌금 낼 돈이 없어서 스스로 노역장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의 1년 통계입니다.

‘장발장 은행’은 이들을 위해 설립된 은행입니다. 지난 2월 25일 문을 연 이 은행은 출범이후 현재까지 개인과 기관 단체로부터 3억 1,207만 원을 모금하여 8차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145명에게 벌금 2억 6,671만 원을 대출했습니다.

이 은행 설립을 기획하고 실천한 소설가 서해성씨는 장발장 은행 디렉터입니다. 그런 그는 “결과적으로 이 은행은 없어져야 할 은행”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국회가 장발장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인권연대는 6월 4일 국회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주요 인사들을 초청, ‘장발장은행’ 출범 100일을 맞아 기념식을 갖고 벌금제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추기경 및 국회의원 30여 명이 참석한 장발장 은행 설립 100일 기념 공청회 © 임두만

‘국회로 간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성황이었습니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다수가 참석하여 성황이 아니라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특별히 일일은행장 자격으로 참석한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국회의 공개 공청회 등에 참석한 적이 없다는 가톨릭 추기경이 입법 사안과 관련해 국회를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한 염 추기경은 개회사에서 “(장발장 은행을 찾는) 이들의 사연 어느 하나하나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절망에 빠져있다는 게 공통점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의 입법 공청회에 이례적으로 참석, 법안제정을 촉구한 염수정 추기경 © 임두만

특히 염 추기경은 “개인적인 안락 추구와 무관심의 일반화가 가난한 이에 대한 책임까지 미약하게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담화문을 인용,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선 그들이 다시 한 번 정의로운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 이날 행사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염 추기경 외에도 정치권에선 정의화 국회의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새누리당 소속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 등 여야 국회의원 3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축사에 나선 정 의장은 “병원장을 할 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 그런 모토로 병원을 운영했다”면서 “정치란 결국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정 의장은 “그러나 사리사욕 당리당략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면모가 있다”고 자성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장발장’을 만드는 일을 국회가 해야 한다”며 “저도 재력이 좀 있으니 가담을 하겠다”고 후원 의사를 밝혀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이날 벌금형제도게혁 입법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 임두만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가서 강제노역을 받는 분들이 해마다 4만명이 넘는다는 통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돈 없는 분에게 몇십만, 몇백만 원은 생계비를 빼앗는 가혹한 형벌이다. 우리 사회의 장발장들을 외면하면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표는 특히 “돈이 없어 가난한 피고인은 더 가벼운 형인 벌금형보다 실제로는 더 무거운 형이자 실형인 집행유예를 더 선호한다”면서 ‘변호사로서 이런 현실을 대할 때 가난한 사람에게 가혹한 벌금형을 꼭 개혁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개혁법안 동참을 약속했습니다.

또 장발장 은행설립 시부터 참여했다는 이종걸 원내대표도 “하나의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그러나 이제 법으로 장발장들을 보호해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남았다”면서 벌금제도의 개혁에 대한 입법의 시급함을 말했습니다. 즉 '한국판 장발장'을 막기 위해 현행 벌금제도를 대폭 개편하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행사 주최의 일원이자 장발장은행 운영위원인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도 ‘한국판 장발장’을 막기 위해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도입하고, 벌금의 납입기한을 연장하거나 분할 납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벌금형 제도 개선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새정치연합 김기준 의원이 주관 발의한 벌금제 개혁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입니다. 이 법안은 피고인의 재산상황 등을 살핀 뒤 하루에 부과하는 벌금액을 결정하는 방식의 일수벌금제도 등을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것입니다.

경미한 죄를 저질러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벌금을 내지 못하는 소년소녀가장,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미성년자 등에게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장발장 은행, 지난 2월 25일 출범한 이 시민단체는 책임자를 은행장으로 명명하고, 1대 은행장은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사회운동가 홍세화씨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날 행사는 이 시민단체인 ‘장발장 은행’이 주최하고, 인권연대와 홍종학 의원 등 국회의원 30여 명이 공동으로 주관했습니다. 이 행사를 기점으로 국회에서 벌금형 개혁법안이 제정되어 ‘한국형 장발장’이 없어질 것인지, 그리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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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매우 절박한 심정...이 자리에 섰다"

서울시민 충격, 심야 분노 폭발
박원순 "매우 절박한 심정...이 자리에 섰다"

메르스 확진 의사, 서울시 시민 1500명 모인 행사 참석

15.06.04 23:26l최종 업데이트 15.06.05 01:3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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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오후 시청 브리핑룸에서 메르스 관련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 시장은 "메르스 확진 환자인 서울의 한 의사가 격리 통보에도 불구하고 15000명 규모의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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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5일 오전 12시 25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 소재 의사가 시민 1500여명이 모인 대형 행사에 참석했던 것으로 파악돼 충격을 주고 있다. 

4일 밤 서울시에 따르면, 이 의사는 메르스 의심환자로 판정받기 전 병원 심포지엄에 참석하는가 하면 1500여 명이 참석한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사는 14번 환자와 접촉한 이후 지난달 29일부터 경미한 증상이 시작되었고 30일 증상이 심화돼 자택으로 귀가했으며 이달 1일 35번째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만약 의사가 자가 격리가 필요한 의심환자 단계에서 1500여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행사에 참석했다면 해당 병원과 의사가 심각한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긴급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모르는 사실을 서울시 담당공무원이 알아냈다며 '이제부터 내가 진두지휘하겠다'고 밝혀 '무능한 정부'와 비교되는 모습을 보였다.

박원순 "지금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10시 40분 시청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소재에서 확인된 메르스 환자 관련한 사안이 워낙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해 금일 저녁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며 "지금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지난 6월 1일 서울시 소재 35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35번 환자는 14번 환자와 접촉한 의사로서 5월 29일부터 경미한 증상이 시작되었고 5월 30일 증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35번 환자는 5월 30일 1565명이 참석한 개포동 재건축 조합행사에 참석했고 이에 동 행사에 참여한 대규모 인원이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며 "35번 환자는 이틀 동안 여러 곳에서 동선이 확인됐고 그것은 그만큼 전파 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어 "(이같은 사실은) 메르스 관련 서울시 담당공무원이 6월 3일 늦은 오후에 개최된 보건복지부 주관 대책회의 참석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인지하게 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엄중한 상황에 대히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는 이런 엄중한 상황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으며, 6월 4일 오전부터 보건복지부 담당 국장에게 유선으로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어려워서 소관과장 및 사무관 등에게 위험사실 공개 및 조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35번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고 이후 동선은 물론 1565명의 재건축 조합 행사 참석자들 명단도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고 정부의 무능을 비난했다. 

박 시장은 이어 '보건복지부에서는 1565명의 재건축조합 행사 참석자들에게 수동감시를 하겠다는 의견을 저희들에게 보내왔"지만 "서울시는 수동감시 수준의 미온적인 조치로는 시민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참석자 명단을 해당 조합원으로부터 입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명단을 즉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도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또 "서울시는 이제 서울시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인식에 이르렀다"며 "오늘 저녁부터 자체적으로 해당 사실을 시민 본인에게 개별통보하고 확산 방지를 위해서 스스로 자택에 머물러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35번 환자의 5월 30일 이후의 이동 동선을 지도화하여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공개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또 1565명 위험군 전원에 대해서 잠복기 동안 외부 출입이 강제적으로 제한되는 자택격리 실시를 검토하고 있으며 서울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정보를 실시간 대로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제가 직접 대책본부장으로 진두지휘해 나가겠다"며 "메르스의 급속한 확산을 막고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일에 모두 함께 힘을 모아나가자"고 말했다. 

누리꾼 "나랏일 하실 일을 시장님이 대신 하시네" 환호 

현재 각 포털 댓글에는 충격과 분노를 드러내는 댓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정도면 국민을 버린 거다!!! 탄핵하자!!! (yang****),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참...싫다. (joja****), 비상계엄이라도 선포해서 2주간 외출을 금지하지 않는 이상 메르스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네요. 정말 살고 싶어요. 허무하네요 순간(tlat****) 등이 그 예다.

박원순 시장의 회견 내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나타나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fightclub는 "나랏일 하실 일을 시장님이 대신 하시네", 디바소울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통령 같다"고 적었다.

네이버 아이디 at2t****도 "질병관리본부에 비해 서울시는 믿을 만하다. 복지부의 거짓말 축소 은폐 진절머리난다.. 박원순이 임시로 대통령 대행해라"며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꼬집었다. 

다음은 박원순 시장의 회견 내용 전문. 

우선 이렇게 밤 늦은 시간에 기자 여러분들 불러내서 송구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서울시 소재에서 확인된 메르스 환자 관련한 사안이 워낙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해서 서울시는 금일 저녁 긴급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6월 1일 서울시 소재 35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35번 환자의 경우에는 메르스 지역사회 확산과 직결되어 있는 서울시는 4차 감염의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길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35번 환자는 14번 환자와 접촉한 의사로서 5월 29일부터 경미한 증상이 시작되었고 5월 30일 증상이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5번 환자는 5월 30일 1565명이 참석한 개포동 재건축 조합행사에 참석했고 이에 동 행사에 참여한 대규모 인원이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이따가 좀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이 35번 환자는 이틀 동안 여러 곳에서 동선이 확인됐고 그것은 그만큼 전파 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5번 환자는 5월 30일이 되어서야 시설격리 조치되었고 6월 1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메르스 관련 서울시 담당공무원이 6월 3일 늦은 오후에 개최된 보건복지부 주관 대책회의 참석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인지하게 된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서울시는 이런 엄중한 상황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습니다.

서울시는 1565명의 아마도 실제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바로 메르스 위험에 노출된 시민들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해당사실을 알리고 추가적인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서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본부 등에 사실 공표 및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오늘 하루 요청을 했습니다. 

6월 4일 오전부터 보건복지부 담당 국장에게 유선으로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어려워서 소관과장 및 사무관 등에게 위험사실 공개 및 조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35번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고 이후 동선은 물론 1565명의 재건축 조합 행사 참석자들 명단도 확보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에서는 1565명의 재건축조합 행사 참석자들에게 수동감시를 하겠다는 의견을 저희들에게 보내왔습니다. 

서울시는 수동감시 수준의 미온적인 조치로는 시민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참석자 명단을 해당 조합원으로부터 입수하였습니다. 

서울시는 메르스 위험에 노출된 재건축조합 명단을 입수하였고 즉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도 제출을 했습니다. 

해당 자료에 대한 적극적인 공개와 대책을 다시 한 번 요구했습니다. 

이후 금일 저녁 대책회의를 거치면서 서울시는 이제 서울시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인식에 이르렀습니다. 

자체적으로 해당 사실을 시민 본인에게 개별통보하고 확산 방지를 위해서 스스로 자택에 머물러 줄 것을 요청할 것입니다. 

이 작업은 바로 오늘 저녁에 시작이 됐습니다. 

또한 본인도 인지 못 한 상황에서 메르스 위험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일반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35번 환자의 5월 30일 이후의 이동 동선을 지도화하여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공개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자발적인 자택격리 역시 메르스 학산 방지를 위해 충분한 조치가 아닌 바 서울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1565명 위험군 전원에 대해서 잠복기 동안 외부 출입이 강제적으로 제한되는 자택격리 실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정보를 실시간 대로 공유하겠습니다. 

서울시는 이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시민의 삶을 보호하는 길에 서울시가 직접 나설 것입니다. 

서울시의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메르스 확산 방지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길에 집중해 나갈 것이 것입니다. 

서울시 자체적으로 더 강력한 대책을 세워 나갈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제가 직접 대책본부장으로 진두지휘해 나가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함께 힘을 모아 주십시오. 우리는 위기 상황일수록 서로 함께 힘을 모아온 저력이 있습니다. 

메르스가 아무리 우리의 삶을 위협할지라도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은다면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메르스의 급속한 확산을 막고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일에 모두 함께 힘을 모아나갑시다. 

서울시도 최선을 다할 것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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