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중대범죄수사청 본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주도한 검찰개혁 상징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오는 2일로 출범 한달을 맞이하지만 ‘1호 수사’라고 할 만한 대형 사건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다. 중수청이 과거 검찰(현 공소청)의 수사력을 대체할 기관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선 권력형 부패범죄와 대규모 금융범죄 등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출범 한 달째 사건을 고르며 뒤적이는 모습에 ‘사건 쇼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수청 반부패수사국은 지난달 16일 한동훈 무소속 의원의 딸 ‘허위 스펙’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을 배당받아 2주 넘게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14일 경찰과 중수청에 이 사건을 동시 고발했다.
경찰이 지난달 나흘 연속 고소·고발인을 불러 조사하면서 수사 속도를 올렸지만 중수청은 조사를 하지도 않으면서 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지 않았다. 고발장에 적시된 혐의 중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은 중수청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지만 뇌물은 수사 대상이다. 향후 중수청이 한 의원 수사를 개시한다면 경찰과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중수청은 지난달 ‘소방 재정 빨대’ 발언으로 고발된 추미애 경기지사 사건은 경찰에 넘겼다. 주된 혐의인 명예훼손이 중수청 수사 범위가 아니라는 이유다. 추 지사가 고발된 혐의 중에 직권남용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범위에 해당한다. 향후 경찰이 추 지사의 직권남용 혐의를 인지할 경우 공수처에 인지 통보해야 하고,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면 사건을 넘겨야 한다. 이때 사건 전체를 이첩할지, 사건에서 직권남용 부분만 분리해 이첩할지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새 형사사법 제도는 수사기관을 경찰, 중수청과 공수처로 분리하면서 각자의 수사 범위도 혐의(죄목)별로 분리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혐의가 아니라 여러 혐의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 어느 수사기관이 사건을 맡아야 하는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수사기관들이 서로 탐나는 사건은 가져가려 하고, 곤란한 사건은 떠넘기는 ‘사건 핑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인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1일 “경찰이 사건을 상품처럼 진열하면 중수청이 마음에 드는 사건을 골라 가져가는 식의 구조라서 사건 핑퐁은 예견됐던 것”이라며 “나중에는 경찰이 ‘중수청에 접수하라’며 고발장을 받아주지 않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정 형사소송법이 수사기관 간의 관할 다툼을 조정할 ‘수사권관할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지만 시행일이 내년 2월5일이다. 앞으로 수개월간 조정 기구 공백이 불가피한 것이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식을 위임한 대통령령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지난달 14일 김지용 중수청장 인사청문회에서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이 ‘(수사 관할이) 명확한 정리가 안 되면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입해야 하느냐’고 묻자 김 청장은 “개입하지 않도록 저희들이 철저히 협의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정부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개별 사건은 주된 혐의가 각각 달라 수사 주체의 세부적 기준을 만들어두고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수사권관할조정위원회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현재 정황상 밝혀진 범죄 사실과 예상되는 법 적용 범위를 가감 없이 공유하고 중수청은 중대범죄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주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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