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AI 붐 대응 위해 일본 메모리 공장 투자 저울질"
지난 8월 31일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한 기사의 제목입니다. SK그룹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센다이에서 열린 한일상공회의소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일본 내 메모리 팹 설립을 위해 여러 지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입니다.
SK하이닉스의 일본 내 메모리 팹 설립 관련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월 21일 일본 <닛케이 신문>은 SK하이닉스가 일본에 메모리 팹 건설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고, 8월 21일에도 <한겨레>가 SK하이닉스가 일본에 메모리 팹을 건설한다고 단독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SK하이닉스는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SK하이닉스 측은 최 회장이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한 적 없다고 밝혔습니다).
최 회장이 일본 팹 건설을 구상하는 배경에는 '한일 경제 공동체'라는 오랜 지론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의 압도적인 제조 경쟁력과 일본의 강력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인프라를 결합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산업 블록을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SK하이닉스가 주요 주주로 있는 일본 낸드플래시 기업 키오시아와의 시너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 역시 키오시아 공장과 인접해 있습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일본 메모리 팹 건설은 기업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득보다 실이 큰 패착이 될 우려가 큽니다. 과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해외 진출 궤적과 메모리 산업의 본질을 짚어보면 그 이유는 명확해집니다.
일본 팹 건설은 원가경쟁력을 훼손하는 일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최우선 생존 조건은 원가경쟁력입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의 등장으로 시장이 다변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규격화된 제품을 얼마나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느냐가 승부를 가릅니다. 2006년 SK하이닉스가 중국 우시에, 2012년 삼성전자가 시안에 팹을 건설한 것도 핵심 기술 유출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막대한 인프라·세제 혜택을 취해 원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함이었습니다.
반면 고비용 구조를 가진 국가는 메모리 생산 기지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공장이 당초 메모리 라인으로 가동되다 높은 운영비의 한계에 부딪혀 파운드리(다품종소량생산)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현재 막대한 예산을 들여 텍사스 테일러에 짓고 있는 신규 팹 역시 파운드리 전용입니다.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이 미국에는 보조금을 받아 가며 신규 팹을 지으면서도, 싱가포르에 별도의 메모리 팹을 동시에 짓는 것 역시 원가 경쟁력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HBM을 필두로 한 AI 반도체 붐과 공급자 우위의 시장 환경은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례없이 높은 이익률 덕분에, 원가 구조가 비싸고 운영비가 많이 드는 일본에 팹을 지어도 당장은 그 부담이 체감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사이클이 뚜렷하고 잔혹합니다. 슈퍼 사이클이 끝나고 치열한 단가 경쟁이 재개되는 다운턴이 도래하면, 일본 팹의 고비용 구조는 기업의 수익성을 심각하게 갉아먹는 거대한 짐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반도체 팹 더해지면 일본 반도체의 부활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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