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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과 정호승. 그리고 <Dolchstosslegende>. 그리고 나치.

정호승 :

“봄 비가 내린다. 연사흘 줄곧 내리는 이 비는 통곡의 봄비다. 적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 채 서해에 수장된 천안함 장병 46명이 흘리는 통한의 눈물이다. […] 적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도 물증을 찾아야만 항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는 우울하다. 햇볕정책의 결과가 바로 이것인가. 그 동안 남한이 북한에 보낸 ‘화해의 햇빛’은 지금 ‘기습공격의 그늘’이 되어 우리 아들들을 수장시키고 말았다.” (정호승, donga.com 특별기고. 강조 ou_topia)

 

나치하 제국자료청:

“[독일제국 군대가] 저항의 최후수단을 다 동원하지 못하고 1918년 11월 11일 적이 일방적으로 강요한 휴전협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전선에서 사기가 떨어진 전투력이 아니었다. 전투에 나선 군대의 등에 단도를 찍는 국내의 혁명이었다.” (나치하 제국자료청이 1942/1943년 발간한 “1914-1918년 세계대전”의 마지막 부분)

 

아돌프 히틀러:

우리는 외부로 향한 새로운 투쟁을 전개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휴전을 강요한] 11월 범죄자들이 등뒤에 있는 한, 독일 시그프리드의 등에 다시 창이 꽂힌다는 사실을. (아돌프 히틀러, 1923.1.27 „민족의 파수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데 가장 크게 쓰여진 도구는 다. 는 전투에서 패하지 않은 독일군이 비겁하게 뒤에서 등에 단도를 찍는 기습공격을 당하여 패하게 되었다는 힌덴부르크가 1918년 11월 18일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의 조사위원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퍼뜨린 거짓말이다. 사실은 독일제국 육군 총사령관이었던 힌덴부르크와 그의 참모실장 루덴도르프가 1918년 8월 14일 빌헬름 2세에게 연합군의 우세를 인정하고 패전을 피할 수 없다고 휴전을 권한 것이었다. 이것은 의도적인 거짓말이었고 책임을 정치로 돌리려는 술책이었다. 힌덴부르크가 패전의 원인으로 드는 것은 구체적으로 1917년 제국의회의 평화결의와 1918년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즉, 민주주의자들과 노동운동이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적의 영토에 깊숙이 들어가 있고 전투에서 패하지 않은 군의 등을 치고 계획적으로 군의 사기를 떨어드렸다는 것이다. 이 거짓말은 극우와 나치가 악용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지하고 대변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입에 거품을 무는 증오에 찬 선동에 사용되었다. (참고, 독일역사박물관 웹사이트 www.dhm.de/lemo/html/weimar/innenpolitik/dolchstoss). 

 

 

정호승의 특별기고가 목적하는 바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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