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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을 판매하려면 품목별로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의약품이 안전한지, 약효가 유효한지를 검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이러한 의약품의 검사와 허가 제도를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아래 식약청)이 이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미국은 FTA를 통해 식약청이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할 때 다른 자의 특허권을 침해했는지를 조사하여 특허권 침해인 경우에는 의약품의 판매허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칠레, 싱가포르, 중남미, 모로코, 호주, 바레인 등과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예외없이 이런 규정을 두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한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해 주지 않는 것이니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제네릭 제약사(원 의약품과 효능이 동등한 복제 의약품을 만드는 제약사)의 경쟁을 제한하여 의약품의 독점을 강화하려는 수단의 하나이다. 또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식약청을 통해 특허권을 행사하여 결과적으로 특허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특허와 관련된 어떠한 조약에도 특허청과 식약청이 업무를 연계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오히려 국제조약이나 특허법은 특허권을 개인의 권리로 정하고 있으므로, 어느 의약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는지는 특허권자 스스로 조사하여 권리 행사를 해야 한다.
식약청이 의약품 허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할 수 없는 이유는 식약청의 고유 업무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하다. 식약청의 고유 업무는 제약사가 만들어 판매하려는 의약품이 안전한지 약효가 제대로 나오는지를 조사하는 것이고, 특허 침해 여부는 식약청의 고유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따라서 식약청은 그러한 업무를 할 능력이 없으며 특허 침해를 판단할 업무 능력을 갖출 필요도 없다. 어느 의약품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는 특허청은 물론 법원조차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더 큰 문제는 특허권의 유효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즉, 특허청에 의해 등록된 특허권 중 상당수가 나중에 무효로 판정나며, 특허권자가 제기한 침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등록된 특허권 중 약 30% 정도가 사실은 잘못 등록된 것이다. 또한 특허권자가 권리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특허권자가 패소한 사건이 훨씬 더 많다. 이와 같이 등록특허의 유효성과 특허권자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은 미국이 더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1989년부터 1996년까지 18년 동안 239건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다룬 299건의 특허 중 무려 46%가 무효로 되었다. 또한 의약품 특허의 침해소송 사건 중 무려 73%의 사건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하였다. 이러한 통계를 볼 때 특허가 등록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 식약청이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해 주지 않는 것은 잘못 등록된 특허권으로 인한 비용을 제네릭 제약사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다. 그 결과 제네릭 제약사의 시장진입을 막아서 환자들이 값싼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제한한다.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특허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미국에서는 특허권자가 제공하는 정보에 기초하여 식약청이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하는데, 특허권자는 허위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의약품과 관련도 없는 정보를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국적 제약사들은 새로운 기술이 추가되지도 않은 것을 특허출원하여 동일한 의약품에 여러 개의 특허권을 등록받고 의약품의 시장독점을 강화해 오고 있는데, 의약품 허가와 특허 연계 제도는 이러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행태를 조장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약품 특허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특허권의 침해 염려가 있는 의약품이 판매 허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특허 심사를 제대로 하여 부실 권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부실 권리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이야말로 잘못된 권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특허품질을 높이는 데에 노력해야 한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 huri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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