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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민중의 저작물에 대한 자본의 해적질!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에서 미국은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망 후 50년’으로 되어있다. 이는 저작권과 관련된 국제협약에 부합한 것이다. 미국의 요구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국제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수준 이상으로 강화하라는 얘기다.

지난 1998년 미국은 자국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시킨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싱가포르나 호주 등과의 FTA를 통해 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하였으며, 이를 관철시켰다. 미국 재계의 입장을 담고 있는 미한재계회의와 주한미상공회의소의 <2005 정책 보고서>에서도 미국 수준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유권과 달리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제한한 것은 인류공동의 자산이라는 저작물의 성격에 기인한다. 그래서 독점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한편, 일정한 기간 이후에는 창작물을 공공 영역에 편입시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기존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을 강화시킬 뿐, 창작의 활성화와는 관계가 없다.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20년 연장이 되었다고 창작을 하지 않을 사람이 창작을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더구나 창작 의욕을 고취한다는 의미는 ‘미래에’ 생산될 저작물에 대한 것이지, ‘과거에 이미’ 생산된 저작물에 대해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생산된 기존 저작물에 대해서 보호기간을 20년 추가 연장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이익이 있을까? 또한 저작자 입장에서도, 저작권 보호기간이 20년 늘어난다고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월트디즈니와 같은 ‘소수의 문화자본’의 독점적 이윤을 계속 보장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2004년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될 운명에 있었던 ‘미키마우스’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의미에서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 조롱을 받았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은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위헌소송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며, 이에 대항하여 ‘퍼블릭 도메인 확대법안(Public Domain Enhancement Act)'이 제출되기도 하였다. 더 큰 문제는 미국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1962년부터 지난 40여년간 미국은 11차례나 보호기간을 연장해왔다. 이런 식으로라면 저작권 보호기간은 사실상 무기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 가져올 폐해는 명백하다. 만일 보호기간이 연장되지 않았다면 민중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저작물들이 다시 독점 배타적인 권리의 울타리에 갇혀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던 엘드레드는 온라인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문학 작품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이미 등록되어 있던 몇몇 작품을 삭제해야 했고, 알렉산더 밀른(A. A. Milne)의 1926년작 “곰돌이 푸우”(Winnie-the-Pooh)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의 1923년작 “세편의 단편과 열편의 시”(Three Stories and Ten Poems) 등을 공개하지 못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는 민중들이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해적질’ 에 다름 아니다.

 

사실 현재의 보호기간도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유명 저작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저작물들은 발행 후 10년~20년 정도면 더 이상 상업적인 가치가 소멸하지 않을까? (물론 이와 관련한 엄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이미 절판되어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서적이나 음반조차 저작권에 묶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소프트웨어같은 경우에는 10년만 지나도 그 유용성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저작권과 같은 보호기간을 적용하는 것은 거의 영구히 보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저작물의 이용을 불필요하게 제약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저작권 보호기간은 대폭 단축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내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이러한 결정이 우리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고려와 자율적인 토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다시 외압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미국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요구를 절대 수용해서는 안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antiropy@jinbo.net

 

* <엘드레드 대 애쉬크로프트 사건에 대한 FSF의 소견서>에서 인용
(http://www.gnu.org/philosophy/eldred-amicus.k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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