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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우리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
강아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저희는 약사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보통 저희 회원들은 약국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약국에서 약 7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약국에서 일을 하다보면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잊혀지지 않는 환자분이 있어요. 그분은 간암에 걸리신 아주머님이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정도 약을 받으러 약국에 오셨는데, 이분이 드셔야 하는 약에는 비싼 간 보호제가 있었습니다. 하루 세 번 드셔야 하는 약이었는데, 제대로 이 약을 다 드시려면 한 달 약값이 70만원 정도였어요. 그분은 오실 때마다 눈에 보이게 복수가 차오르셨어요. 간에 좋다는 그 간 보호제를 너무 드시고 싶어하셨는데, 돈이 없으셔서 돈 되는 만큼만 사가셔서 아끼고 아껴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매달 몇 백 만원씩 들어가는 백혈병이나 에이즈 치료제들도 있지요. 하지만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70만원이나 200만원이나 1,000만원이나 똑같이 끔찍한 금액입니다. 약을 앞에 두고도 지갑을 만지작거리시다가 결국 체념하시던 그 분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약국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수많은 약들을 취급합니다. 조제를 전문으로 하는 약국들은 보통 1,000가지 이상의 약들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약들이 다 종류가 다른 약들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존슨앤존슨이라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성분으로 ‘타이레놀’을 출시했습니다. 이 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보통 카피약이라고 알고 계시는 제네릭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존슨앤존슨이 더 이상 시장 내에서 독점적인 판매권을 갖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타이레놀과 똑같은 약을 경동제약, 동광제약 등에서 만들어 냅니다. 당연히 이런 제네릭 약품들은 오리지널 약보다는 가격이 저렴하지요. 따라서 특허가 만료되면 오리지널 약을 생산해 내던 회사의 이윤은 줄어들게 됩니다.
약 종류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특허를 1년정도 연장하면 제약회사는 수천억원의 이윤이 추가로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기를 쓰고 특허를 연장하려 하는 거지요. 하루, 한달, 일년 정도 특허 연장에 동의를 해주는 것이 실은 별일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 하루, 그 한달, 그 일년 동안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배를 불리워 주는 만큼 수많은 환자들은 그 약값 때문에 고통 받으며 죽어갑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특허를 보장해주어야만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는 협박을 합니다. 그러나 2002년도에 미국 FDA 가 승인했던 신약 87개중 70개는 이전에 있었던 약품을 부분적으로 바꾼 'me too drug'이었습니다. 그 나머지 17개중 과거에 있던 약보다 임상적으로 효과가 나아진 약은 단지 7개에 불과했구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진정 ‘혁신적’이고 필수적인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를 않아요. 오로지 돈이 되는 약품들의 ‘특허연장’을 위해서 엄청난 액수의 돈을 들이붓고 있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결핵약이나 말라리야 약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필요한 그런 약품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발하지 않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에서 의약품 분야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부는 처음에는 빅딜설을 부정하더니 점점 속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의약품 특허기간도 연장해주기로 했다지요. 의약품 특허기간이 1년이 늘어나면 저희는 약 1조 1,600억원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 돈은 암환자들의 본인 부담금과 전국 초·중·고생 입원 본인 부담금을 모두 면제해 주고도 2,600억이라는 돈이 남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의약품 경제성 평가와 약가 협상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독립적 이의신청 기구’도 두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미 정부가 발표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내의 약가 협상 과정 중에도 제약회사가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협상 결과를 놓고 다시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것은 약가협상력을 약화시켜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시키겠다는 탐욕일 뿐이지요. 이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횡포에 정부는 같이 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제 이모님과 길을 같이 걷는데 현수막이 붙어 있었어요.
‘한미 FTA 체결시 약값 폭등, 의료비 폭등’.
제 이모님이 물으셨습니다.
‘FTA가 되면 정말 그렇게 될까?’.
아마 과장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정부가 그렇게도 닮고 싶어하는 미국을 보면 저희의 미래가 보이지요. 우리나라처럼 공적의료보험 체제를 갖고 있지 않은 미국에서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약 50%가 의료비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지금 FTA를 막아내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가고 약도 못 먹는 그런 서러운 현실이 당장 우리 눈앞에도 닥칠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니까, 나와는 상관없다고 그렇게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굳이 내가 아프지 않더라도 저희가 사랑하는 사람들, 저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먹어야만 하는 약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서야만 하는 그런 처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모두 나서서 이 FTA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모두 함께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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