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메모 21.
- 02/18
-
- 메모 20.
- 01/25
-
- 분수
- 2024
-
- 우리 동네 김씨..
- 2023
-
- 선우사-백석 시
- 2023
조지콩님의 [조직..구성원....] 에 관련된 글.
조지콩 님의 글과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낀대로 주절거려 보고자 한다.
조직이란 사실 그 조직 구성원들의 생각과 느낌, 영혼, 감성 등을
총체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등가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물론 그 조직의 구성원들은 상대적 가치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해서 조직과 조직 구성원들은 등가의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겪고 옆에서 지켜본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등가관계는 대단히
형식적이다. 자본주의의 평등이 대단히 형식적인 것처럼!
그리고 그 조직의 대리자( agent)가 또 있게 마련이다.
마치 자본의 대리자가 자본가인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조직은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그 대리인은 보이지 않는 손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담지자가 된다.
이제 그 대리인은 등가형태의 자리를 늘 꿰차고 있게 된다.
반면에 그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상대적 가치형태의 자리에 있게 된다.
이 구성원 대부분들이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대리자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대리자를 통하지 않는 구성원들의 영혼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된다.
기껏해야 동원의 대상이 될 뿐이다. 즉 쪽수를 채워 그 조직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품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주 저임금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산업예비군일 뿐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영혼을 그 대리자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다고 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대리자에게 간택당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조직은 관료적이고 가부장적으로 변하게 된다.
조직의 대리자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다른 대리자들을 재생산하게 된다.
마치 자본이 자신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사회조직의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처럼...
이 대리자의 대리자들은 철저하게 가부장이 될 능력과 자질을 시험받게 되고,
그 시험에 통과할 경우 그는 그에 따르는 약간의 권력을 가지게 되며, 가부장이 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또한 이 대리자들의 대리자들은 조직의 원칙이나 규칙들에 대해서
일정 정도의 면책권을 알게 모르게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대리자의 대리자에 발탁되지 못할 경우,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이 구성원들은 능력과 자질이 떨어지는 자들로 간주된다.
이 자들은 다른 시험에 들게 된다.
그들은 그 조직의 내부의 허드렛 일을 담당할, 즉 엄마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요구받게 된다.
헌신적인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받는다.
조직에서 엄마 역할을 담당하는 구성원들은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처럼, 조직의 대리자와 그 대리자의 대리자들,
그리고 그 대리자를 꿈꾸는 구성원들의 생각으로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를 강요당함으로써
언제나 무시당한다.
이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 이외의 다른 구성원들, 또는 그 역할을 거부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은
불평분자 또는 능력 없는 자들, 비활동자들로서 평소에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된 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조직에서 철저하게 '따' 당한다.
그들은 조직의 어떤 모임에서건 주목받지 못하는 찬밥 신세일 뿐이다.
이들은 조직에서 암묵적으로 늘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 당한다.
즉 수모와 비난을 받으면서 조직을 떠날 것이냐(물론 이렇게 조직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암묵적으로 조직을 떠난 이후에 당할 불이익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아니면 이렇게 '따' 당하면서 계속 조직원으로 남을 것이냐(물론 조직비를 내서 조직의 재정을 떠받치는 중요한 자로서 또한 조직의 세를 불리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말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을 만들었는데,
얼마 안 가서 조직이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러한 조직에 남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절을 용감하게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허허롭고 자유로운 간이역으로 사는 것은 어떨까?
물론 외롭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을까... ^^ ...
내일이면 개강인데,
학교가 너무 조용하다.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아님 폭풍 전야인 것처럼...
내일서부터는 개강 폭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개강 폭풍에 대비하여
어디 새는 곳은 없는지,
담벼락 축대는 괜찮은지,
집 주위를 꼼꼼하게 둘러보면서
잘 점검을 할 일이다.
자꾸자꾸 몸이 긴장된다.
뭐든지 손에 잘 안 잡힌다.
100여명 되는 학생들 하고 어떻게 수업을 하지?
자꾸 한숨만...
그것도 공학인증 교양과목 같던데...
(공학인증 과목은 수업 분위기 정말 안 좋은데...)
몰라...
일단 맘 좀 차분히 가라앉혀 보자...
커피 한잔에,
프리셀이나 한판 해야겠다^^.
** (그런데 정치적 동원은 군사전술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
“정치적 동원은 오히려 군사전술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 모는 두 가지 정치․군사적 위험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첫째는 너무나 팽배해 있는, 그가 일컫는 바 무법천지의 영웅주의적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너무 일찍 포기하려는 (패배주의적) 의도이다.”
-->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경우처럼 정치가 전쟁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모의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 전쟁은 적의 사악한 영향력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불순성을 정화시켜 줄 수 있는 일종의 항독소이다.”(103쪽)
(104쪽)
** (게릴라전의 일반적 특성)
“게릴라전은 군사전략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제공해 준다. 게릴라 작전은 군사 기계 장비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방심할 수 없는 작전 형태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값싼 전쟁 중의 하나이다.”
(104쪽)
** (모의 게릴라전의 특징)
“모는 자신이 많은 저적들 속에서 한 가지의 중심된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 그 문제는 분산과 집중을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창과 새총으로 무장한” 지방반란군은-이 점이 중국혁명의 <특이한 양상>이었다-정규 중국공산군과 결합되어야만 했었다. 지방군은 분산되어 있음으로 해서 적을 분산시킬 수 있었고, 정규군은 분산된 적을 각개 격파할 수 있었다. (……) 그렇게 함으로써 맑스가 역사의 유형을 구성했던 것처럼, 모도 전쟁의 과정을 정(正), 반(反), 그리고 승리를 얻는 합(合)의 과정으로 구성하였다.”
(105~106쪽)
** (모의 삼 단계 전략론)
“모에게 있어서 미래의 패턴은 과거의 패턴과 마찬가지로 가혹할 정도의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지구전은 승리하기까지 세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세 단계 중에서 첫째는 적인 전략적인 공세를 취하는 단계인 바, 모는 그가 일컫는 <전략적 수세>에 처하게 된다고 본다. 두 번째 단계는 일정의 교착상태로서 공산주의자들은 그 속에서 주도권을 잡을 준비를 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전략적인 공세로 전환하며, 적을 전략적인 수세로 몰아넣고 궁극에 가서는 전쟁을 종식시키게 된다.”
“첫 번째 단계와 관련해서 모는 몇 가지 가정을 내리고 있다. 첫째는 적에게 있어 생산수단의 상실이 곧 전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적인 속전을 전개할 것이며, 가능한 총력으로 공격하리라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모는 접전을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로 후퇴를 예상하기도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상호의존적인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두 번째 단계로 전이된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적군 가운데서는 물론, 많은 사상자와 전쟁비용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악화일로에 있는 적의 후방에서도 전쟁이 쉽게 끝날 것도 같지는 않다는 생각과 헛수고라는 일종이 무력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징조를 통해서 공산주의자들의 사기는 높아지기 시작한다. 전쟁이 평형상태에 도달할 때, 제2단계 즉 전략적 교착상태가 이루어진다.”
“점증하는 정규 공산군의 기동성 있는 전투에 의해 지원을 받은 게릴라전의 확대는-패배주의나 악조건, 그리고 협력자들의 파괴활동에도 불구하고-제2단계를 거쳐 제3단계로 이전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단계가 절정에 달할 때 게릴라전은 보조수단이 되고, 정규전 형태의 전투가 다시금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 모의 삼 단계 전략론은 헤겔의 절대정신에 의해 닫혀 있는 변증법의 형태와 아주 비슷하다. 지방의 모든 게릴라들은 결국 최종적으로 공산당의 구현체의 공산당 정규군대로 지양된다. 다시 말하자면 공산당 정규군대의 통제와 지휘를 일방적으로 받으면서 정규군대의 보조적 수단으로 머물게 된다. 헤겔이 절대정신(보편으로서의 세계사 또는 세계민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내전(전쟁)이 필수적인 것, 즉 필요악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 과정에서 통제와 억압, 더 나아서 전쟁은 필수적인 것이 된다. 그리하여 모든 의사소통 내에서의 갈등과 진통은 결국 전쟁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치는 전쟁에 종속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전략론은 『자본』의 가치형태의 전개 과정과 닮아 있다. 단순한 가치형태→전개된(전체적) 가치형태→화폐형태로 나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① 단순한 가치형태 ≒ 모의 삼 단계 전략 중 첫 번째 단계
<적의 정규군대 = 공산당 정규군대>
처음 적의 정규군대를 맞았을 때 공산당의 정규군대는 전적으로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시간을 끌면서 되도록 직접적인 접전을 회피하고자 한다. 이때 적의 정규군대는 자신과 대적할 만한 등가형태로서의 상대로 공산당 정규군대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하여 지방의 여러 무수한 게릴라들을 자신의 상대로 맞이하게 된다.
② 전개된(전체적) 가치형태 ≒ 모의 삼 단계 전략 중 두 번째 단계
적의 정규군대 =
이때 무수한 지방 게릴라들을 자신의 상대로 하는 적의 정규군대는 분산되면서, 그리고 자신의 공격력이 쇠약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적만을 상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때 공산당은 적의 정규군대의 공격력이 최대로 약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③ 화폐형태
적의 정규군대 = = 중국 공산당(정규군대)
적의 공격력이 거의 무력화될 즈음에 게릴라들을 대신하여 게릴라들의 대표체로서 공산당의 정규군대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 공산당은 이제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보편자, 동일자로서의 등가형태의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만일 어떤 게릴라들이 또는 다른 누군가가 이 등가형태의 자리를 원하게 되면 가차 없이 내전의 형식을 빌어 이들을 숙청하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산당의 독재가 형성되며 노동자 계급을 동원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때 당은 <이성의 화신>으로서 물신(物神)으로서의 화폐와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공산당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가 된다. 보수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화합, 조화, 대동단결이라는 수식어 쓰기를 좋아하며 남발한다. 이는 비단 중국 공산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소련 공산당에게도 해당된다(우리나라에서는 민노당의 주사파들이 여기에 딱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5장. 모택동의 전략․전술론에 대한 현대적 평가.
(111쪽)
** (모의 전쟁관)
“모는 자신의 전쟁이 최후의 정당한 전쟁 다시 말하면 전쟁들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이며, 그 전쟁 이후에는 어떠한 전쟁도 찾아 볼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새로운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가 온통 공산주의화되기 전까지는 “영원한 평화와 영원한 빛의 새로운 시기”를 위한 이 전쟁이 끝날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너무나 헤겔적인!!
(112~113쪽)
** (모의 전략이론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가정)
“모의 이론도 어느 이론과 마찬가지로 일련의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구성은 이론의 기초만큼 튼튼하지 못하다.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모의 전제는 인내심을 모나 모처럼 생각하는 사람만이 독점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독점성은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승리하게 된다는 모의 교리 속에 설정된 융통성에 의해 편리하게 보호 받는다.”
“동남아시아에서 모의 이론이 복음처럼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이 인내심을 독점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 두 번째 전제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자들은 빨리 승리를 거두려 할 것이며, 따라서 장기전을 바라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에서의 교착 상태가 미국 본토의 여론에 미친 영향, 그리고 인도차이나에서의 장기전이 프랑스 국민에 미친 영향 등은, 1930년대 모가 특히 일본을 지칭하면서 글을 쓸 때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의도를 잘 예증해 준다.”
“전쟁의 첫 단계에서 겪는 전술적인 희생이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대가라고 모가 믿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이 과정을 지속시켜 주는 촉매제는 초반기의 후퇴 기간 주에도 주도권을 유지하는 일이다. 작전상 이 말은 부분적인 승리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전쟁은 그러한 전쟁에서, 군사적인 주도권이 기술적인 우위와 상관이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점은 세 번째의 가정과 연관된다. 즉 공산주의자들은 군사적, 그리고 정치적인 견지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의 엄격한 훈련 하에 작전을 펼치는 <인민의 전쟁>이 매우 적응성 있는 병기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주 잊혀지는 사실이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에게 적응성을 주는 것은 병기고에 있는 무기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정오쯤에 점심 먹으면서 무릎팍 도사 재방송을 보았다.
그런데 게스트로 야구선수 양준혁이 나왔다.
양준혁은 자기 스스로 2인자라 칭하더라.
그럼 일인자는?
난 이승엽일 줄 알았는데(홈런과 장타력 땀시^^),
이승엽이 아니라 한 해 시즌 MVP라는 것 같더라.
양준혁은 자신으니 프로야구 15년 동안 한 번도 최우수 선수상을
타지 못했다더라.
그런데도 15년 동안 3할대에, 두 자릿수 홈런 등 꾸준한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더라.
또 무슨 신기록도 여러 개 가지고 있더만.
자기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자기 어머니라 했을 때,
뽀뽀해 주고 싶더라^^.
하여간 양준혁을 보면서, 예전에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쐬주 한잔 같이 하고프단 생각을 했더랬다.
양준혁에게 좀 필이 꽂혔던 건 선수협을 선수노조로 만드려고
했을 때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진우와 함께...
글고 보니 송진우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수구나^^.
물론 좋아하는 야구 팀은 없다.
프로야구 초창기 땐 자이언츠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양준혁이 그러는데, 프로야구 살려면 롯데가 커야 한다고 하더만...
부산팬이 프로야구에 아주 열렬한 팬이라서 그렇다더라^^)
송진우, 양준혁...
아 정말 술 같이 마시고픈 야구 선수 또 있다.
최동원...
국내 최고 투수였기도 하거니와,
처음 선수협 만들 때, 선수협과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하려다 미운털 박힌...
김시진...
작년 생존 자체가 너무 불안정하기만 했던 현대 선수들과 같이 했던
전 현대 감독...
이선희, 오리 궁뎅이 김성한 등...
이들이 스타라서 익숙해지고 친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쐬주 한잔 부딪치고 싶은 야구선수들이다^^...
톡톡튀는 참신한 키치 예술 취향 |
당신은 새로운 것을 찾고 독특함을 개발하고 싶어합니다. (항상 그런건 아니겠지만) 다들 따라하는 패션, 누구나 흥얼거리는 노래, 너도나도 사보는 베스트셀러, 아줌마들이 떠들어 대는 연속극, 모두 신물 나는 것들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의 이 정체불명 괴상한 이야기는 당신의 취향과 일맥상통합니다. 당신은 너무 직관적인 것만 찾을 뿐 도통 좋아하는 것에 기준이 없다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이한 걸 좋아하긴 하지만, 뭐가 얼마나 어떻게 특이해야 좋은지 당신도 잘 모를 겁니다.
** 근데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고^^...
|
오늘 아침 먹으면서 유선 방송 영화 채널에서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았다.
한 세 번 정도 보았는데...
그때마다 뭘 써야지 하면서도 게으른 탓에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늘은 짤막하게라도 써야지 하면서...ㅋㅋ
아마도 아주 짦을 것 같다. ㅋ~~~
천하장사와 마돈나...
그 결합이 참 부조화다.
아주 속되게 이만기와 마돈나를 합치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처럼...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죽 한 그릇에 자신을 파는 에셔>처럼 자신을 자본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처럼
마돈나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천하장사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모습...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 팔기 위해서 처절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처럼,
마돈나 역시 천하장사가 되기 위해 엄청난 고난(멸시와 폭력)을 겪는다.
이는 영화에서 천하장사 마돈나의 아버지가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결국 일하게 해 달라고 사장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런데 끝내 천하장사 마돈나는 천하장사를 통해 마돈나가 된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서 노동자 계급이 될 수 있을까?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그 아버지는 진짜 노동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여운을 영화는 남기는 것 같다.
진짜 노동자, 노동자 계급이 되기 위한 계급투쟁은 마돈나-되기(여성-되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감독이 의도했던, 안 했던 그냥 나의 생각일 뿐이다)
덧니 : 류덕환이라는 배우, 아직 어리지만 싹이 있는 배우인 것 같다.
지켜볼 만한 배우인 것 같다.
(88쪽)
** (나치 독일군의 반 게릴라전에서 얻은 게릴라의 특성)
“두 가지 사례, 즉 카민스키의 민병대와 차이코비치 분대 그 어느 것도 게릴라 운동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사례들은 상당히 중요한 하나의 사실, 즉 게릴라들은 식량보급과 활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지역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으며, 이 사실은 주로 서방의 침략군대에 의해 악용되었다. 즉 침략지의 비애국적인 주민들을 매수하여 괴뢰적인 지역민병대를 조직하거나 그에 유사한 방식으로 반(反) 게릴라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92쪽)
** (효과적인 반게릴라 작전)
“효과적인 반게릴라 운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침략군대 지휘관들이 적군의 물리적 측면에 정통해야만 하며 또 그 고장 주민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그 지휘관들은 주민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게릴라들의 민중적 기초를 빼앗아야 하는 것이다.”
--> 구사대
@ 제 4장 모택동의 혁명 전략 @
(97쪽)
** (모택동이 전쟁을 보는 관점)
“그는 하나의 시각, 즉 전쟁은 혁명의 산파이고 혁명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확인 가능한> 과정을 따른다는 관념을 빌어온 것이다.”
--> 그는 맑스, 엥겔스, 레닌, 클라우제비츠, 손자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과 중국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의 영향을 종합한(물론 일관되게 맑스주의 틀을 유지하면서) 전술론(또는 3단계 법칙)을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다. 이 3단계는 한편으로 맑스주의의 과학적 방법론인 구체-추상-구체의 방법을, 다른 한편으로 클라우제비츠의 방어 전쟁(적의 공격을 아군 진영 종심으로 깊숙이 끌어들임-적의 예봉을 꺾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적의 전투력을 급속하게 약화시킴-최후의 공세를 펼침) 단계를 원형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나올 모택동의 전투의 삼 단계와 비교해 보자.
(99쪽)
** (모택동의 전쟁에 관한 첫 번째 원칙)
“모택동이 초기 시절 1927년 중국 남부에서 농민조직가 및 선동가로 싸우면서 전쟁을 할 때 세운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한 생존 그 자체였다. 모택동은 시간에 대한 정치․혁명적인 감각을 군사작전 계획의 초석으로 여겼다. 서양의 군사가들이 거의 일생을 두고 제때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문제에 골몰하였던 반면, 모는 어떻게 시간을 벌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일생을 보냈다.”
-->이것은 모의 군사적 시간 개념이 서양 제국주의(자본주의)의 군사적 시간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모는 생존을 위해 시간을 질질 끄는 방식을 취했다면, 자본주의에서 시간을 질질 끈다는 것은 낭비이며, 비효율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는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는 반면에, 자본주의는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려 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모의 시간론을 노동운동 진영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임금을 낮추더라도 시간적으로 자본의 생산성을 낮추면서, 낮추어진 자본의 생산성만큼 공간적으로 노동자의 자기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될 것이다. 사용가치의 공동구매와 공동소비, 이를 통한 여성의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 그리하여 하나의 공동 생활권을 만들 수 있는 물질적 기초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종의 진지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99쪽)
** (서양 자본주의의 시간 개념)
“서양에서 시간 개념은 시간이나 날, 달, 년 수의 관점에서 파악된다. 이러한 용어 중에서, 특별히 비축되지 않은 시간은 낭비된 시간으로 간주된다. 특히 미국의 군사적 관점에서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은 교범에 제시된 원칙, 즉 병력의 절약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미국식의 군사계획에 있어서 병력을 증강시키는 경우, 군사적으로 최소로 필요한 만큼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것은 남북전쟁 이후 현재까지 지녀온 작전상의 원칙이었다. 소모전-다시 말해서 시간이 아니라 병력을 절약해야 하는 원칙이 우선시되는 전쟁-은 이제까지 전쟁의 한 보조형태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100쪽)
** (모의 시간 개념)
“모는 시간이 기술을 격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한정의 시간은 무엇보다도 무제한의 공간에 달려 있다. 서양의 저자와 달리 모는 하나의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는 문제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의 문제는 전쟁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그는 거듭 이 주제로 되돌아온다 : “우리의 저항 전쟁은 단시일 내에 결판날 수 없다. 단지 지구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장거리 여행을 통해서 말(馬)의 능역을 시험해 볼 수 있고, 장기간의 업무를 통해서 사람의 성격을 증명할 수 있듯이, 게릴라전은 장기간의 험난한 전쟁을 통해서 그 무한한 힘을 심증할 것이다.””
“모의 중요한 군사 저작들이 씌어졌던 1930년대에 서양의 군사적 관심은 산업문제, 즉 산업의 동원 및 그 전환 또는 산업의 파괴 등에 관한 문제였다. 서양의 모든 연구가들은 산업화가 전략에 미치는 충격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두에(Douhet)와 미첼(Mitchell) 같은 몇몇 연구가들은 산업의 심장부를 폭격함으로써 산업을 파괴시키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른 사람들, 드골(De Gaulle)이나 풀러(Fuller), 그리고 구더리안(Guderian)과 같은 전차병들은 도로나 철도, 또는 산업국가의 동맥을 차단함으로써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군의 경우 많은 전쟁의 문제는 수로를 봉쇄함으로써 천연자원이 산업적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심지어 해군까지도, 제한된 공간의 관점에서 생각하였다. 반면 모택동만은 그렇지 않았다.”
(100~101쪽)
** (군사적인 용어로서 <공간> 개념)
“군사적인 용어로서 <공간>은 사용 가능한 통신망을 제외한 사방면적에 장애물들을 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방 10마일의 산악 정글지역은 사방 수백 마일의 기복진 평야에 해당되며, 이것은 또 도로와 철도로 누벼진 사방 수천 마일의 면적과 동일한 것이다. 중국에서의 바로 그러한 공간이 시간, 혁명조직, 정치적인 응집력, 그리고 승리를 낳게 할 수 있었고 이 점은 모가 지닌 낙관론의 근거였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그러면 어떻게 모는 공간이 시간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101쪽)
** (모의 전쟁철학 : 물질보다는 인간 우선론)
“모는 힘의 비율을 재평가해 본 것을 근거로 처음으로 전쟁철학을 창출하였다. 투쟁의 초기에 총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는 어쩔 수 없이 ‘혁명에서 무기만이 효과적인 도구는 아니다’라는 명제를 설정하였다. 그는 “무기는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지 물질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군사적이거나 경제적인 수단이 없던 모는 “<힘의 비율>(the ratio of strength)이라는 것이 군사적․경제적인 힘의 비교뿐만 아니라 인력이나 인간의 정신을 비교하는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2쪽)
** (모의 <대체이론>)
“모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대체이론>이다. 총은 선전으로 대체하고, 공군력은 파괴로, 기계는 인간으로 대체하며, 기계화는 공간으로, 산업의 동원은 정치적인 동원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매일 매일의 실행 속에서 직관적으로 형성되며, 나아가 반성을 통해 전쟁이론으로 성숙된다.”
(102~103쪽)
** (모의 이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원의 중요성)
“모는 초기의 발표를 통해서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 첫째는 정치교육의 필요성이고, 둘째는 <민주적인> 군대의 필요성이다. (……) 모가 믿기에 정치적인 동원은 전쟁을 이기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 “인민은 물과 같고 군대는 물고기와 같다. 평범한 인민을 전국적으로 동원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바다를 만들 수 있고 적을 그 속에 익사시킬 수 있다.” 모는 진정한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의 정치적 전환의 동반물로서 군사적인 구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아마도 비겁하다는 건
자신이 세운 삶의 원칙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자신의 원칙을 버리는 것은 왜일까?
그건 타인의 시선 때문이리라...
타인의 시선이 결국 일종의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그 두려움이 사람을 겁쟁이로, 비겁한 자로 만든다.
타인이 시선이 두려운 것은 잃어버릴 것이 다소간 있다는 뜻이다.
잃어 버릴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집착은 타인의 시선을 자신의 주위로 불러오고,
그 타인의 시선은 결국 자신을 폐쇄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개방을 가장한 폐쇄,
부처를 만났을 때 부처를 죽이지 못하는 비겁함...
우리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모순적인 존재임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비겁함과 두려움은 영혼을 좀먹는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덧니> 그런데 이러한 나의 생각도 일종의 집착이 아닐까, 두려움과 비겁함은 아닐까...
결국 집착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관계를 끊어야 할 수밖에 없구나...
새롭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거나 아님 말거나...
별로 아쉬울 게 없다...
정대세...
그는 속된 말로 하면 참으로 물건이다!
사람들에게 북한의 루니(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 겸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불리운다.
그는 어제 한국과의 경기 후반전에 수적 열세(한국 11명, 북한 10명, 북한 1명 퇴장)에도 불구하고 북한 진영에서 올려준 공을 한국 수비 2명을 제치고 골로 연결시켰다.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에 비하면 정대세 그는 한국 국대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선수인 것 같았다.
그는 북한의 원톱(1명의 스트라이커 또는 포워드가 상대 진영 중앙에서 골 사냥하는 골잡이라고 할 수 있음)으로 공격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미드필드 진영에서 수비도 가담하는 성실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박지성과 같은 체력만 더 키운다면 EPL(영국 프리미어 리그) 리거로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정말 물건이다^^.
생김새도 처음 볼 땐 우락부락하더니만 잘 뜯어보면 아주 정감 가는 얼굴이다.^^
그저께 정대세가 한국전과 관련하여 인터뷰할 때 "한국보다 실력이 두 배나 뒤지기 때문에 120, 140% 뛰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솔직하면서도 성실함이 묻어나는 태도였다.
이젠 암만 봐도 자알 생겼다^^!!!
어제 한국 축구 또 한 번 골 결정력에 대한 부족을 드러낸 경기를 하였다.
워낙 북한 골키퍼인 이명수가 잘 막기도 했지만 완벽한 골 기회가 서너 번 있었는데 그 기회를 다 놓쳤다. 그 중에서 한 골이라도 더 넣었으면 북한은 골을 넣지 못했을 것이다.
염기훈이 전반 초반 프리킥으로 넣고 난 뒤에 한국은 북한 수비벽을 잘 공략하지 못했다.
벌떼 수비 또는 밀집 수비라고 알려진 북한 수비를 뚫는 방법은 북한 공격 때 빠르게 역습을 하여 미처 수비 대형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즉 빠른 역습을 하는 것이 관건인데 전혀 그런 역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 진영에서 18명 정도(한국 진영의 골키퍼와 중앙 라인에 있는 한국 최종 수비수 2명, 정대세 1명 뺌)가 들어가 있으니 거의 우격다짐 식의 경기 양상을 펼쳤던 것 같다.
특히 후반 중초반부터 북한이 10명이 뛸 때에는 거의 그러했던 것 같다.
또한 골을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경기를 여유롭게 풀어나가기보다는 조급하게 풀어간 측면이 더 한국 선수들을 북한 진영에 묶어 놓았던 것이고 결국에 북한에게 실점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8명이 들어간 곳에서, 특히 골 문전에서 열댓 명이 있는 상황에서 골을 만들어 낼 공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 그래서 골이 나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 수비의 문제점은 다시 들어났다.
한국의 수비는 전통적으로 쓰리백이다. 쓰리백이라 함은 수비수를 3명 두는 시스템 전반을 가리키는데, 3-4-3 시스템이나 3-5-2 시스템 또는 이를 적절히 응용한 시스템이 포함된다. 어쨌거나 수비수 3명을 두는 시스템을 쓰리백이라 한다. 이에 반해 포빽은 수비수 4명을 두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수비는 전형적으로 쓰백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포빽 시스템을 도입하면 한국 수비가 대체로 무너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레서 이전 감독들이 포빽 쓰려다가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은 둘을 혼용하였다.
쓰리빽은 전통적으로 공격, 수비가 분업화된 시스템에서 쓰는 것이다. 그래서 포지션 이동을 자유롭게 하면서 수비, 공격의 분업화를 해체시키는 현대 축구에 잘 안 맞고 포빼보다 뒤져 있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쓰리뺙에서 수비수는 거의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쓰리백은 철저한 지역 수비 체제, 즉 자기가 오른 쪽의 수비를 맡았다면 오른 쪽 수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비수들간의 분업화가 공고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협력 수비라는 것이 가능하기 힘들다. 또한 포지션 이동도 거의 불가능하다. 수비와 공격에서 철저한 분업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쓰리빽인 셈이다.
그래서 쓰리빽은 한 지역이 뚫리면 다른 지역도 자연히 뚫리게 되고 그래서 골을 허용할 수 있는 공간을 쉽게 내 줄 수 있다.
포빽은 쓰리빽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다. 포빽은 수비수가 4명이다.
이때 지역 방어와 대인 방어도 가능할 수 있다. 쓰리빽보다는 수비수가 1명이 더 많아서 협력 수비라는 것이 가능하다. 즉 수비에서 1명의 예비 부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포빽은 기본적으로 좌우측 수비수가 공격 때는 공격적인 특성을 가져야 한다. 공격, 수비형의 미드필더가 되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오버래핑을 해서 윙 포워드 역할을 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골을 넣는 수비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이영표가 토트넘에서 좀 불리한 상황에 있다. 골을 거의 못 넣기 때문이다). 포빽 시스템은 대학에서 다전공 제도가 있듯이 다전공을 철저하게 요구한다. 다전공을 하지 못할 경우 불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퇴출 대상 1호가 될 수 있다.
하여간 포빽 시스템은 엄청난 노동강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축구 시스템인 포빽 시스템에서 다전공 포지션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체력은 기본적이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이 체력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고, 체력이 안 되면 이동국 짝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박지성이 살아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체력이 문제가 되는 후반 중반때 포빽 시스템을 썼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골을 넣기 위해 공격수를 보강하려면 포빽을 쓸 수밖에 없고, 그래서 포빽을 쓴 것인데,
이 포빽 시스템이 정대세에게 한방 먹은 것이다. 수비에 구멍이 난 것이다.
둘이 협력 수비를 해도 모자라면 3명 이상이 달라붙어야 한다.
실은 포빽 시스템에서 미드필더들은 수비에 적극 가담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해야 하는데,
빠른 역습에서 체력이 달리면 자기 진영으로 빨리 돌아오지 못한다.
정대세를 우습게 보았고, 정대세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놓아준 게 잘못이다.
포빽 시스템의 문제가 여기 있다. 그 문제의 전형을 어제 한국 축구가 잘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여간 정대세, 정말 물건이다.
다음 달 말 월드컵 3차 예선전 남북한 경기 볼 만할 것이 될 것이다^^.
불교에서는 고(苦)를 당하지 않으려면 연(緣)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정말 200퍼센트 공감하는 말이다!!!
이번 설에 새삼스레 깨달은 지혜라고나 할까...
흐~~~...
도를 통한 사람이 그렇다던데...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도를 깨치는 경지라고 하더만...
글타고 도를 깨치는 사람은 되기 싫고...
하여간 인간적으로 아무리 해도 정이 가지 않는 존재...
아예 관심을 끊어야 한다.
술, 답배 끊는 것처럼!!!
그래야 고통을 받지 않는다.
상대해서 열 받고 스트레스 받느니, 아예 무시하고 사는 거다!!!
지나가는 개가 뭐라고 짖어대던 말이다.
언젠가 박 터지게 싸울 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쌩까고 사는 거다...
물 많이 마시고 아예 그 근처에도 안 가는 게 상책이지만,
아예 그런 조건을 안 만드는 게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아~~~ 몰라, 배째 하는 식으로 나가면 되지 않을까...
주위 사람 사정 이거 저거 고려해 주다 보면
서로가 상처 받는다, 그레서 서로가 미워하게 된다,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또는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살지 말고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살자!!!
에헤~~~ 고시레~~~ 잡귀야 물러가라!!!
개강하기 전에 푸닥꺼리 좀 해야지...흐흐흐...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아...이렇게 되는 거구나...란. 생각...정리가 되어지는 듯한 느낌..뭐 그런거? 전...대부분 절을 걍 떠나는 입장.이라는. ㅋ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조지콩> 저도 조지콩 님과 비슷합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말이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