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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6/19
    만민법 이상일 뿐인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곰탱이
  2. 2009/06/19
    여름방학 과학사 스터디 예비모임^^... (4)
    곰탱이
  3. 2009/06/07
    자유와 방종의 차이(메모) (4)
    곰탱이
  4. 2009/06/03
    거꾸로 된 세상(학생 글) (2)
    곰탱이
  5. 2009/05/28
    과학사 같이 공부 하실 부~운!^^ 여기 붙어라^^. (14)
    곰탱이
  6. 2009/05/25
    사유재산제에 관한 단상 (4)
    곰탱이
  7. 2009/05/23
    기냥...(2)
    곰탱이
  8. 2009/05/15
    [강철군화]를 읽고... (2)
    곰탱이
  9. 2009/05/09
    미~쿡의 음모... (2)
    곰탱이
  10. 2009/05/06
    욕 먹고 있는 다수의 대학생을 바라보며... (10)
    곰탱이

만민법 이상일 뿐인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곰탱이님의 [거꾸로 된 세상(학생 글) ] 에 관련된 글.

 


똑같은 학생 글을 또 하나 올려 봅니다.^^

제목은 <만민법 이상일 뿐인가? 현실이 될 수 있는가?>입니다.

 

==================================================

 

<만민법 이상일 뿐인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는 수많은 민족과 그들의 언어, 관습, 풍습 등을 포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이 이방인들을 '로마'라는 이름 아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공통점을 찾아야만 했다.

법의 자질구레한 조문보다는 법의 기본 정신을 중시하는 형평법의 원리를 채택한 만민법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신과 이성 앞에서 모든 인간의 영혼은 평등하다는 자연법 사상에 기초한 만민법은 가히 혁명이라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소수의 철학자들 사이에서만 나타났고 대부분의 로마인들에게는 별 귀감을

주지 못했다.

만민법은 이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 시민들은 로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즉 로마에서 살고 있는 노예, 외국인, 야만인에게도

시민권이 부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들보다 '비천한 이들'이 자신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에,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특권을 나눠야 한다는 것에 큰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로마의 기득권층들 때문에 만민법은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자유, 평등이라는 가치는 인간의 역망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다.

이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민법의 진정한 실현은 가능한 것인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거대한 로마 제국과도 비슷하다.

국경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만민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민법의 실현은 과거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경제적 차이, 인종적 차이에 의해 우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지고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만민법의 진정한 실현이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국가 유토피아와 다름 없다.

만민법의 실현이 이상에 가까운 일일지라도 우리는 계속 만민법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로마가 내부의 통합에 실패해 무너졌듯이 우리도 서로 다름을 강조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평등해지는 날이 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역사 문화에서 오는 이질감을 거북하게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야 하고 서로 다름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할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지구촌 윤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몇몇의 철학자들에게만 귀감을 주었던 만민법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지구촌 시대에 걸맞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법을 만드는 데 영감을 주고 있다.

지구촌 시대의 만민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만민법 실현에

한발짝 나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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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과학사 스터디 예비모임^^...

여름방학 과학사 스터디 예비 모임을

6월 26일(금요일) 늦은 7시에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터디 하기로 하신 분 또는 하실 의향이 있으신 분은

위의 저 시간에 맞춰서

건국대학교 제2학생회관 220호 생활 도서관으로 오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마도 7월 4일 뒤풀이 때에는 과학사 공부를 먼저 한 경희대 학생들과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뒷풀이만 좋으신 분들도 환영합니다.^^

 

그럼 6월 26일에 뵙겠습니다.^^

 

곰탱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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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방종의 차이(메모)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결국 (자본의) 법률(실정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그렇다면 결국 자유란 (자본에 의한) 법이라는 <타자>에 의해 규정된 무엇이고,

이때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규정>되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따라야 할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자유>는 <자유>가 될 수 없고,

그리하여 자유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방종이라는 것도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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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세상(학생 글)

오늘은 같이 공부하는 학생의 글을 한 편 싣고자 합니다.

같이 공부하는 주제는 <인권>이고요,

교재는 [인권](최현 지음, 책세상, 2008)입니다.

수업 시간에 같이 공부했던 내용과 관련한 내용을 에세이 형태로

공책에 정리한 것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학생 글은 재미 있고 신선해서 욕심 같아선 여기에 다 싣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이 학생이 허락한다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글도 이 글 쓴 학생에게 허락을 이미 받았습니다.)

아마도 근대 실정법에서 정해진 시민권과 관련한 에세이라 여겨집니다.

근대 실정법 초기에 시민권은 부르주아 성인 남성(자본가 성인 남성)에게만 주어졌고,

노동자 계급, 여성, 외국인 등은 아직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한 상황을 비꼬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재미 있는 글이 될 것입니다.

제목은 <거꾸로 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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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열혈 법학도였던 기자 A는 법 제정 60년을 기념하여 정부가 주최한 행사에 취재차 참석하게 되었다. 그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나라에 법이 나타나면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 받는 살 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법은 자유와 평등과 같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인간의 권리를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법을 사랑했으며, 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강박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오늘 정부가 마련한 축하 자리에 그는 꼭 가야 했다. 자신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낌 없는 지원을 해 준 법에 감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행사장에 도착한 기자 A는 운이 좋게도 그가 존경하는 고매하고 고결한 법무부 장관과 가까운 거리에 마련된 좌석에 앉게 되었다. 그는 가슴이 떨려왔다. 법과 가장 가까운 인간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그에게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그의 만족감과 행복은 오래가지 못 했다. 장관의 주변에 두 남자가 앉아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장관의 오른 쪽에 앉은 대머리의 남자가 말했다.

 

- 이번에 새로 제정될 양도세 법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양도세는 낮추어야 합니다. 요즘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문제야 재산세나 증여세에도 있지만 양도세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죠. 지금처럼 높은 양도세는 우리가 쌓은 재산을 조금씩 갉아 먹을 뿐입니다. 노동부 장관도 같은 생각을 하고 게신답니다.

 

- 이보세요. 양도세를 완화한다고 하면, 언론에서는 재벌들을 위한 법 제정이라 비난할 게 분명합니다.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장관의 왼쪽에 앉아 있던 머리카락이 희끗한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대머리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 우리가 일반 국민들의 경제 생활을 방해합니까? 그들도 충분히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제도와 기회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지켜 주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자유와 평등!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는 데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작년에 제정된 증여세 인하 법안도 무사히 통과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텐데요.

 

기자 A는 혼란스러워졌다. 법무부 장관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그가 존경해 온 법무부 장관이 그들의 말에 그 어떤 불쾌한 기색도 없이 앉아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법이 인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인간의 권리는 법을 지키기 위해 저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다. 그는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행사장을 벗어나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자 A의 눈에 세상이 거꾸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에 다리를 두고 걸었다. 나무들고 거꾸로 서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이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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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같이 공부 하실 부~운!^^ 여기 붙어라^^.

여름방학 중에 <과학사>를 같이 공부하실 분을 구합니다.^^

모 대학에서 <과학기술문명사>를 같이 공부했는데,

공부하니까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혼자 재미 있으려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그 재미가 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아서

같이 재미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안을 드립니다.^^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이냐 하면요.

우선 과학사를 고대부터 근대까지 훑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훑는 것이 아니고,

각 시대의 과학이 어떤 철학 사상 또는 이념과 결합하여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훑고자 합니다.

 

 

같이 공부할 내용을 제가 일단 이야기를 하는데요,

제가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할 예정입니다.

제가 일단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저처럼 이야기를 먼저 하시고 싶은 분이 생기면

그 분께 먼저 이야기를 하시도록 할 거예요.^^

 

 

그리고 교재는 먼저 제가 모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내용을

정리한 파일을 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할 것입니다.

또 제가 공부하면서 정리한 서양고대 철학에 관한 파일도 같이 보내 드릴게요.

그 파일 내용으로 부족하시리라 생각해서요,

 

그 파일에서 참고한 책 목록을 알려 드릴게요.

1) 『과학사신론』, 김영식·임경순 공저, 다산출판사, 2008.

2)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이병수·우기동 지음, 돌베개, 1991.

 

 

공부하는 시간은 매주 토요일 늦은 2시로 하고요,

장소는 일단 건국대학교 제2학생회관 220호 생활도서관으로 할 것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같이 공부하실 분이 많아지면

강의실을 빌려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로 하고자 합니다.^^

 

총 8회 정도 공부할 에정입니다.^^

 

그리고 예비 모임 날짜를 6월 26일 늦은 6시 30분으로 하고요

예비모임 장소는 건국대학교 제2학생회관 220호 생활도서관입니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재미를 느끼셨으면 합니다.^^

 

같이 공부하실 분은 덧글 달아 주시고요, 이메일 주소 알려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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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제에 관한 단상

사유 재산제와 관련하여 학생 공책에 한마디 쓰다가

나중에 까먹을 것 같아서 메모해 둘 겸 해서 적는다...

 

=======

 

사유재산제는 하나의 물건을 평생 소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평생 소유하면서 하나의 물건을 사용한다면,

이미 그것은 사유재산제가 아니다.^^

 

사유재산제는 이익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처분, 양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양도 처분한 것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소유를 했다고 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소유물을 잘 관리할 필요가 없다.^^

 

언제든 팔아서 이득을 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소유한 물건에

되도록이면 투자(관리, 유지하는 비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건 또는 아니건 간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

 

예로 든 '내 책상'은 팔 목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깨끗하게 하려 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 소유제는 팔 목적으로, 

그리하여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팔 목적'이 아닌, 정말로 나에게 유용해서 소유하는 것을 '점유'라고 한다.

아나키스트는 이 '점유'를 주장하는 것이다.

 

===== 

 

나중에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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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냥...

1. 아침에 일어났더니 온통 노무현 씨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판을 치고 있었다.

     잠을 좀 덜 꺁 상태에서 얼핏 드는 생각이 밝히지 못할 그 무엇이 두려워서

    벼랑에서 뛰어 내렸을까 정도...

    결국 그는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검찰이라는 작자들은 박차연 수사를 중단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돌아가신 양반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뭔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느낌이 화악...

 

2. 그러다가 학교에 나왔다.

   생활도서관에 왔더니 야구공이 있더라...

   그래서 간만에 투수 흉내를 내서(옛날 동네 야구할 때 투수를 했었다^^)

   공 던지는 흉내를 두어 번 냈더니

   지금 갈비뼈 있는 데에 담이 결린다...

   주무르고 해서 약간은 풀었는데도 여전히 결린다...

   뭐하러 공던지는 흉내는 내가지고서리... ㅉㅉ...

   네가 무슨 프로야구 투수냐...

   온갖 폼은 다 잡더만...

   아이들은 모두 여의도 갔는지 아무도 없다...

   나두 거기 가야 하는데...

   아이들 공책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얼렁 아이들 공책 첨삭해야지...

  

3. 다음 학기부턴 무엇인가 다른 방식을 찾아봐야겠다.

    나두 별로 공책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다...

    첨삭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다...

    그냥 필기 첨삭은 내가 들이는 공보다도 그리 큰 효과가 없는 듯하다...

    공책 내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

    다음 학기부터는 대면 첨삭 같은 것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얼굴을 맞대고 일대일로 공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열정도 좀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대면 첨삭할 수 있는 공간이 내게는 없다...

   공간 구하기가 참 어렵다...

   이 방법을 포함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다...

   학생 하나 하나와 눈빛을 교환할 수 있는, 한마디라도 서로 나눌 수 있는

   수업 방식을 고민해 봐야겠다...

   산오리 님 말씀처럼 정년(?)이 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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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화]를 읽고...

# 잭 런던, 『강철군화』, 곽영미 옮김, 궁리, 2009 #

 

1. 『강철군화』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은 바야흐로 ‘강철군화’의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나라이다. 철거민을 비롯한 도시 빈민들이 ‘강철군화’에 의하여 짓밟혀 목숨을 잃고, 불에 타 죽는다. 수만의 평화적인 촛불 또한 ‘강철군화’에 의하여 ‘불법’(한국의 실정법이 보장하지 못하는 인권에 대한 모든 요구는 불법으로 매도 당한다. 실정법은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낼 수 있는 한에서만 시민권을 보장할 뿐이며, 이익을 내지 못하는 모든 인간 활동은 무가치한 것이며, 그런 활동을 요구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취급 당한다)으로 낙인 찍히면서 무참하게 꺼져 간다. 0교시 수업을 없애서 졸지 않고 수업하게 해 달라는 고등학생들,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대학생들, 생존의 위협을 그나마 덜 받는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고 한국인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 달라는 이주 노동자들, 최소한의 이동권 보장과 차별을 철폐해 달라는 장애인들, 성 소수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염원과 희망의 촛불이 ‘강철군화’ 앞에 서서히 꺼져 갔다. 이러한 모든 부당한 일들은 이미 『강철군화』에게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하에 더욱 광포하고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우리 시대를 배회하고 있는 ‘자본’이라는 저 유령이 날뛰고 있는 이곳, 이 시점에서 과연 잭 런던의 『강철군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혹자들은 『강철군화』가 소설 정치경제학이니, 소설 자본론이니, 100여 년 전에 이미 오늘날 자본의 첨예한 모순을 예견했느니 하면서 이 책을 칭송(?)하거나 아니면 일종의 예언서처럼 평을 하기도 한다(마치 맑스의 『자본론』을 자본주의를 딱 들어맞게 설명을 하고 있느니 또는 아니니 하는 부르주아들의 호들갑과 어딘지 모르게 무척 닮아 있다).

그런데 『강철군화』에 대한 이런 평들은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평들에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와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평들에는 ‘봐! 결국 해봐야 강철군화에게 무참하게 짓밟히잖아!’라는 교묘한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잭 런던은 이러한 평들에 깔린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는 『강철군화』에서 먼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이미 사회주의 국가를 꼭 올 수밖에 없는 사회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은 미완인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꼭 맑스의 『자본론』처럼!). 잭 런던은 20세기 초와 이로부터 700년이 지난 가상 시점 사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잭 런던이 우리에게 남겨 준 과제인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강철군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사회주의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잭 런던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니스트’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한 마리로 말한다.

 

“권력! 우리 노동계급이 그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2. 『강철군화』에서 나타난 노동계급의 권력 쟁취를 위한 실마리

그렇다면 이 권력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 처음에 잭 런던은 부르주아 의회를 장악하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 소설 전체에 걸쳐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환상인가를 너무나 절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이런 점에서 의회주의자들은 의회 진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회 장악이 아니라면 고전적인 방법대로 폭력 혁명을 통해 권력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우리도 힘으로 봉기하는 거지요.”

“그때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선혈 속에 잠겨 있을 거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필자 수정) 힘이란 게 어디에 있지요?”

 

도대체 폭력혁명을 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 즉 힘은 정말로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역사를 통틀어서 보면 대체로 그 힘이란 ‘강철군화’ 앞에서는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혁명은 도처에서 실패했고, 사회주의권은 무너져 버렸다. 이제 그 힘을 어디서 찾아서 권력을 쟁취할 것인가? 다시 의회주의로 돌아가서 자본주의 체제만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표를 통해서? 이미 잭 런던은 그것이 환상임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밝혀냈다.

그러면 도대체 그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또 어떻게 해야 그 힘을 현실화시켜 권력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잭 런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여자들이야말로 파업의 가장 강력한 추진 세력임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전쟁에 대해서 한사코 반대의지를 굳혔다. 그들의 남편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죽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또 그 총파업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사람들의 기분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대중의 유머 감각에 적중했다. 그 아이디어는 전염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학교에 걸쳐서 어린이들까지도 수업을 거부했으며, 학교에 오는 교사가 있더라도 텅빈 교실로부터 집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총파업은 거대한 국가적 야유회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총단결이라는 생각도 그처럼 확고한 증거로서 나타나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대적인 놀이판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위험도 없어졌다는 점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유죄인 판에, 어떻게 어떤 사람들만 처벌할 수가 있겠는가?”

 

 

3.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 하나 - 여성의 해방을 위한 물질적 조건 확보

여기서는 크게 2가지가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처럼 보인다. 첫째,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 스스로를 반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 세력으로 형성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이다. 둘째, 노동계급의 총파업을 어떻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민중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놀이판으로 만들 것인가이다. 그런데 이 둘 중에서 선차적인 것은 첫째이다. 여성, 그리고 여성의 노동이 모든 사회적 생산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즉 자본을 만드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생산하는 노동은 가사노동, 돌봄 노동인데, 이 노동은 성별 분업화된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에게 부과되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의 할 일에 대해서 말해 보자. 첫째 할 일은 출발점은 가사노동, 돌봄 노동으로부터 여성이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의 사회화, 즉 상품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화를 시켜봤자 결국 여성의 몫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사노동, 돌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적으로 그 부담을 여성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즉 여성이 자본과 임금 노동자인 남성 노동자에게 이중적인 착취와 억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 노동계급--> 자본이라는 먹이사슬 체제처럼 구성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최소한의 신체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자본은 이 노동자가 기계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노동자 역시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데, 이렇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인간 ‘생산’ 노동에 대해서는 단 한 푼의 임금도 지불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생산 내부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부불노동(임금으로 지불되지 않은 노동)의 착취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을 가사노동, 돌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노동계급 자신 내부에서의 착취의 계기를 근절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경제주의적 경향은 여성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여성을 더욱 더 억압과 착취의 사슬로 옭아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제주의적 경향은 개별 노동자의 임금 상승에만 초점을 두는 것인데, 개별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의미하는 바는 임금 상승에 따라서 노동자 자기 생산을 위한 더 많은 요구를 여성에게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착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대 자본 투쟁은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조건 확보를 위한 투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의 모든 임단투 투쟁은 일단 아이들의 공동 양육과 공동 교육을 위한 물적 조건 확보에 맞춰져야 한다. 공동 양육과 공동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자본으로부터 쟁취해야 한다. 이렇게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될 때, 노동계급의 진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이는 노동운동이 고민하고 있는 지역운동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 둘 - 노동계급의 총파업을 대대적인 놀이판으로 만들기

둘째 할 일에 대해서 말하려면, 첫째 할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좀 더 할 필요가 있다. 공동 양육, 공동 교육은 철저하게 자본 교육, 제도권 교육으로서 공교육에 반대된다는 의미에서 반 자본 교육, 비 제도권 교육, 노동계급 교육으로서의 사교육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 사교육 체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상상력 풍부한 열린 인간을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 생산의 방법으로는 각 연령 별로, 각자 하고 싶은 영역 별로 코뮌을 형성해서 자신들이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각 코뮌들이 상호 의사소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는 사회적 개인들로 자신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회적 개인은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각 활동 단체들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의 부모나 누나, 형들이 파업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일상생활을 잠시 접고 여행 가듯이 파업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각 코뮌 단위로 각각의 깃발 아래서 먹고 놀고 자유로이 담소를 나누면서 휴식을 가지는 파업이 될 것이다. 물론 이 파업은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파업, 나아가서 모든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파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모든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사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사표 던지고 논다는데, 그것을 불법이라고 잡아 갈 것인가? 설령 잡아가더라도 감옥에는 온통 나의 동지들일 테니 그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감옥에서 놀면 될 테니까 말이다.

자본에 대항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이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라, 자본이 무엇을 하던 간에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세상을 끊임없이 만드는 일이다. 몇 푼의 임금 인상이 새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노동계급 자신 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악한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강철군화』를 완성하는 길일 것이다. 또한 자매, 형제애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를 우리 노동계급의 손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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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음모...

요즘 데레비에서 몬 쿡이란 광고를 해대고 있다...

배우 변우민이가 나와서 나 쿡하지 않아서 개고생하고 있어 라고 고해성사를 했었다.

그런데 이 쿡이라는 광고가 미국이 한국을 집어 삼키려는 음모를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는...

너 쿡 안 하면 개고생한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나 쿡할래를 안 하면 죽음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나 쿡할래!를 영어로 하면...

 

미~쿡이다...

 

그러니까 미~쿡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쌈이다...

 

바야흐로 한국은 미쿡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고...

 

당신은 나 쿡할래 하고 싶소?!

 

 

미~쿡! ?

 

 

믿거나 말거나...  

 

 

 

덧니> 아우~~~...

머리가 멍하다 보니, 이런 개구라나 생각나고...ㅠ...

얼렁 자판기 커피 마시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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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고 있는 다수의 대학생을 바라보며...

4.30 건대사태를 기점으로 다수의 대학생이 욕을 먹고 있다.

멍청하다고, 대학생의 본분을 망각하고서 자본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고,

앞으로 졸업하면 자신들도 노동자가 될 터인데 자기 존재를 기만하고 있다고...

 

사실 욕 먹어 싸다고 생각하면서도 맘이 편치 않은 것은

욕 먹는 다수의 대학생을 통해서 나의 무능력을 다시금 새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4.30문화제 때 어떤 사람은 나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에게 말했다.

-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요!

그냥 미안하고 무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건 내가 무슨 교육을 잘못 시켜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왜 다수의 학생들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 볼 때

뭐랄까 일종의 자괴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양쪽 다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쪽 다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서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할 수 있다면

양쪽 모두가 함께, 학교 안에서 당당하고 빵빵하게 문화제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대학생들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가?

사실 멍청하다.

그들은 진득하게 생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단히 즉흥적이다.

 

왜 그들은 진득하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서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들에겐 그럴 짬이 없다.

일단 그들이 1학기 동안 들어야 하는 학점이 평균적으로 18학점 이상이다.

대학원을 다녀본 사람은 1학기에 18학점을 공부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대학원에서 1학기에 9학점을 꽉 채워서 듣는다면 그 학기는 그냥 죽었다 해야 한다.

1주일에 4~5일은 밤을 새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공부해도 공부할 게 천지인데...

다시 말하자면 1학기에 평균 18점 공부하라는 것은 아예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인데,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하게 되면(한 번도 이러한 것에 대해서 이의제기해 본 적이 없다!)

대학교를 그만 다녀야 하고, 대학교를 그만 다녀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려서 골병 들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던가, 아니면 아예 굶어 죽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돌려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시간을 돌려 주는 투쟁이 즉각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사태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 투쟁은 먼저 일단 140~150 졸업 학점을 70학점으로 낮추는 투쟁이어야 한다.

그런 후에 학습 평가를 현행 A~F로 되어 있는 것을 패스-논패스로 바꾸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취직 시험 제도를 전 사회적으로 폐지하는 쪽으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투쟁을 통하여 모두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자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취업 거부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모든 노동자가 정규직화를 쟁취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전에 행인이 말씀하셨듯이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의사소통 체계가

거의 전무하다.

학생들의 생각을 진득하게 들어주고 같이 고민하며 연구하고 실천할 수 선생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며,

대학교의 학생-교수 사이의 관계 구조가 중세 시대 길드의 장인-도제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삶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을 뿐더러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가지기 힘든 상황이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 관계 또한 거의 부재하다고 본다.

특히 운동권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 관계가 단절되다시피한 상태는 이미 오래 전이다.

운동권은 운동권 나름대로 자기 조직 추스리기도 벅차서 조직원 이외의 삶에 거의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또한 이제 남남이 되어 버렸기에 일반 학우를 보는 운동권 학생의 시각은 싸늘하기만 하다.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과 함께...

일반 학생들 역시 운동권 보기를 돌 같이 한다.

이러한 의사소통 부재가 4.30 건대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을 관리하기 편해지며,

틈 날 때마다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사소통 관계의 복원은 위에서 제시한 투쟁을 통해서 복원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하는 투쟁 속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지를 모으는 과정(예전엔 이것을 사상투쟁(사투)이라고 했다)을 통해서 소통의 관계가 복원될 것이다.

이 속에서 대학의 새로운 민주주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앞에서 대학생들이 멍청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멍청한 이유는 그들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얼마나 먹고살기 힘든가를 말이다.

그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한 과정에는 오로지 혼자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 운동도, 진보 운동도 결국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뭉쳐서 싸워봐야 결국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니 결국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본에게 게겨서는, 자본을 쌩까서는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봐 왔고 세뇌되어 왔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증명을 그들은 '자본의 현실'을 통해 보아왔다.

그러나 운동권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세상이 온다는 '사실'에 대한,

단결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을 그들은 '노동의 현실'을 통해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사실'과 '현실'에 충실한 합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의 그러한 합리성이 곧 그들을 멍청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돌이 백만 배가 되어서 '우리'에게 되던져져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러한 돌파구를 하나의 유토피아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것인 것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돌파구는

사실상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돌파구이지 않을까?

그들과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목적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그들에게 증명해 보인다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대학과 대학생이 문제라고 얘기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얘기 맨날 얘기해 봐야 죽은 자식 뭐 만지기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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