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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26/08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26/08/26
    풍샘더위..
    곰탱이
  2. 2026/08/21
    메모 24.
    곰탱이
  3. 2026/08/12
    메모 23.
    곰탱이

풍샘더위..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꽃샘추위라면, 

가을 시샘하는 더위는 풍(단풍)샘더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날이 아직도 더우니, 별 생각을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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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24.

- 칸트의 선험성 -

인식론의 수준에서 칸트의 선험성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이는 경험의 의미가 이중적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칸트의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순수직관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칸트는 ‘형이상학적 해석’과 ‘초월적 해석’이라는 이중적 해석을 내놓는다(리쩌허우, <<비판철학의 비판-칸트와 마르크스의 교차적 읽기>>, 피경훈 옮김, 문학동네, 2017, 106쪽.).

형이상학적 해석은 근대합리론에 기초한 것으로 시간과 공간 그 자체를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a priori) 것으로 본다. 칸트에 의하면, 이 선험적인 것은 뉴턴의 시공간과 같이 실체로서 ‘실재’하는 것이다(이는 데카르트의 자아개념(코기토)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코기토 역시 실체로서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선험적인 것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보편 필연적인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험적인 것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은 순수하게 주관적인 것으로서 개념화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초월적(transzendental) 해석은 시간과 공간이 경험에 적용되면서도 보편 필연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시간과 공간은 직관으로서 경험과 관계하는 ‘개념’이지만, 동시에 이 개념을 넘어서는 비개념적인 것으로서의 ‘이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경험적인 것으로서의 개념과 비경험적인 것으로서의 이념의 종합·통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작업은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그 기초가 정립된다고 할 수 있다.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당위, 실천을 통해 위의 작업이 가능하게 되는데, 이 당위, 실천은 역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칸트는 이러한 역사성을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맹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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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23.

- 칸트의 보편 필연성 - 

칸트의 보편 필연성은 이성의 선험적 형식(직관 형식(시간과 공간), 범주, 통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편 필연성은 경험적 내용에서도 가능성(가능태)으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험성'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그 근원이 존재하는데, 그 근원은 '물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주관으로서의 선험적 형식과 객관으로서의 경험적 내용이 상호 일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런데도 보편 필연성의 계기가 '선험적' 형식 속에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바로 합리론적 관념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헤겔 변증법으로 직결된다. 

(여기서 객관 내용으로서의 물자체는 애써 외면될 수밖에 없다. 이때 헤겔의 변증법은 한편으로는 관념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다른 한편으로 절대정신(의식)은 존재(경험적 존재)의 '반영'만을 통해 자신의 객관성, 보편 필연성을 입증할 수밖에 없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이 돼서야만 날아오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알튀세가 헤겔 변증법을 경험론과 동일한 수준이라고(유사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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