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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 다녀온 이야기

아침가리...

그곳은 산 많고, 골짜기 깊은 두메산골 강원도에서도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가장 깊숙한 곳...

3둔 4가리 중 하나다...

 

몇 년 전 곰배령을 다녀올 때 방동약수나 적가리골을 다녀오면서 언제가 한번 꼭 가야지 했던 곳, 그곳...

바로 아침가리다.

 

 

 이슬비가 내리는 맑고 고요한 아침가리 계곡 

 

 

해가 잠깐 들어 아침에나 밭을 갈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고 하는 곳...

또는 밭이 하도 작아 아침에 다 갈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고 하는 곳...

어찌됐든 그곳은 사람들이 사람들 틈에서 견디지 못해 쫒기고 쫒기다 찾아 안긴 자연의 품일 것이다.

 

 

 아침가리 넘어가는 곳의 배추밭

 

 

깊은 협곡이라 평지가 거의 없는  50리 긴긴 계곡...

이곳에 처음 삶의 터전을 붙이고 숨어둔 이 누굴까...

관비와 눈이 맞아 떳떳하게 사람 많은 곳에서 살 수 없어 백두산으로 숨어든 임꺽정의 장인/장모 같은 사람일까...

그렇다면 저 밭에 농약을 뿌리는 사내의 조상은 사랑을 일구기 위해 도피한 그런 불우한 연인이었을까...

 

암튼 그렇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서 말이다...

이 풍경 좋은 아침가리로 처음 숨어들어온 이가 사랑을 일구기 위해 도피한 이었다면 더 좋겠다...

 

--- 재미없고 김빠진 고단한 잠자리에서 자는지 깼는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이 세상의 바보무리들 보다, 남의 눈을 속여 가며 자연의 욕망을 못 이겨서 생겨난 나 같은 사람이야 말로 더 많은 생명의 요소와 더 기운찬 기질을 타고 나지 않았는가? ---

 

세익스피어의 대사처럼 정말 사랑의 기운이 넘쳐나는 그/런 이들이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넘어 이 깊은 산골로 처음 들어와 살았다면

좋/겠/다...

 

 

 아침가리 가는 길 입구

 

 

무수한 상상이 접히고 또 접히든 이곳, 아침가리...

나는 드디어 그곳에 갔다...

 

오래도록 수많은 겹으로 상상이 쌓였던 곳을 방문했을 때마다 나는

떠나기 전 내가 상상해왔던 것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고픈 욕망이 든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전혀 다른(엉뚱하거나 또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거나) 현실에 막닥뜨려 기존의 상상을 모두 잊어버리기 일쑤다...

물론 간혹가다 강박관념처럼 간직했다 현실에서 막닥뜨린 실제의 '상상'에 환호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번 아침가리도 마찬가지다...

 

 

 산 입구/ 때로 혼자의 걸음이기도 하다.

 

 

 산으로 둘어가는 사람들

 

 

산에 들어간다는 건 무엇 때문일까...

때로 혼자이기도 하고, 혼자이고 싶기도 하고...

함께 이기도 하고, 함께이고 싶기도 하기 때문일까...

 

암튼 깊은 산일수록 산에 들면 나의 초라한 상상은 변화무쌍하고, 기상천외한 풍경에 의해 압도되기 일쑤다...

 

 

 아침가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만난 강원도의 수려한 산들...

 

 

아침가리에 대해 수많은 아름다운 상상을 했어도, 고곳 아침가리는 나의 상상을 비웃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길에서 본 수없는 야생화만 해도 그렇지만,

문득 나타난 탁 트인, 넓고 넓은 시야를 가득 채운 수려한 산들도 그러하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던 향기로운 칡꽃과

높은 곳만 보면 손끝이든 모자 위든 앉는 잠자리와

커다란 나무 위에 이파리와 열매를 모두 숨긴 긴 다래 줄기들도

나의 빈약한 상상 공간을 일거에 밀치고 들어오는 행복한 풍경이기도 하다.

 

 

 아침가리의 잔잔한 계곡물결

 

 

물...

특히 맑은 물은 찌든 세태를 씻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언제나 간절하다...

아침가리엔 50리를 흘러와 넓다랗게 흐르는 냇물이 온통 입을 대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맑다...

참 좋다...

 

 

 아침가리골에서 만난 수려한 바위계곡과 맑은 물

 

 

맑은 계곡은 거꾸로 얘기하면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계곡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사연 많은 옛 사람들의 신산한 삶처럼

이 계곡 역시 아름다운 자태 뒤엔 감출 수 없는 슬픔을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은 이 계곡을 쉽게 걷게 할 수 있는 냇가의 평온한 숲길에서 발견된다...

 

 

 아침가리 계곡 옆 숲길

 

 

계곡 옆으로 사람들이 걷기 좋을 만한 길이 끊길만 하면 다시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자세히 보면 자연이 만든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든 길이다.

 

이 깊은 골짜기에 사는 10가구도 안 됐을 주민들이 만들 길일까?

아마도 그렇진 않을 거 같다...

그 적은 사람들이 이런 길고 많은 공력이 드는 길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담???

아마도 일제시대 때 산림공출(무보수로 농민들을 시켜 나무들을 베어 바치게 했던 일)을 하면서 닦은 우마차길일 것이다...

계곡과 나무들의 크기에서 이곳과 비슷한 이녀비의 고향에도 비슷한 흔적이 있는 거로 봤을 때 더욱 분명한 거 같다...

 

그렇담, 불과 60-70년 전에 이곳에서 나무를 베고 나르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을까...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의 이녀비/ 무슨 생각을 할까...

 

 

매미소리가 커지고,

젖은 몸의 추위가 가시면서 점점 물속이 그리워질 정도가 되고,

사방이 밝아온다면.

 

계곡이 끝나는 증거이다...

 

절집에 들러 대웅전 옆 벽을 채운 심우도(尋牛圖)처럼,

소(도, 道)를 찾아 떠나는 곳은 산골이지만, 끝내 내가 살 곳은, 그리고 도(道)가 함께 있을 곳은 속세이기도 한다지...

 

암튼 계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만나는 것은 지친 발걸음을 달랠 수 있기에 반가움이기도 하지만,

수려하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 계곡을 떠나야 하기에 짙/은 아쉬움이기도 하다...

 

 

 언제나 편안한 미소가 아름다운 소도골님/ 이날 길잡이를 해주셨다...

 

 

암튼 꿈결같은 길이었다...

예전부터 꿈꾸워오든 길을 걸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걸음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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