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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더 이상 통일을 말하지 말자?

김창현 인제대 통일학부 외래교수가 임종석 전 국회의원이 지난 19일 ‘9.19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통일하지 맙시다’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쓴 글을 소개합니다.

  

1. 임종석 전 의원이 광주 김대중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9.19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평화를 선택하자”라고 하며 평화적 두 개의 국가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아마 정권이 교체되어도 판문점 선언 당시로 역사적 시계를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한 것 같다. 올해 초 북은 남북이 교전국이요 적대국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남북이 맺은 모든 합의를 무효화 한 바 있다. 무엇보다 향후 이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청년층들이 통일에 대한 거부감이 높다는 것도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로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와글와글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그리 낯선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많은 진보적 학자와 연구자들이 쉽게 내뱉지 못했을 뿐 실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연설에서 ‘남이 북보다 GDP 50배, 무역액 400배 넘었음’을 근거로 이미 체제경쟁은 끝났음을 선언하고 연이어 그는 통일보다 사이좋은 이웃이 되자며 평화공존을 운운한 바 있다.

 

혹자는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들므로-이것은 북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다-평화를 관리하며 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곤 했다. 통일 불가, 혹은 통일 재앙 이데올로기는 정식화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심리적으로 상당 부분 우리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느 순간 묘하게도 이들은 평화공존을 주장하며 통일의 단어 대신 평화를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 평화가 지속되면 그것이 곧 통일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틈만 나면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것도 그 맥락이 비슷하다. 오해하지 말라. 필자도 종전선언이 대단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그런데 이들이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아니 애써 빼놓는 부분이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미국이다. 도대체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통일 담론은 왜 생겼는지 하는 근본 문제이다. 미국이 전범국가인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분단시킨 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온 민족이 두 개의 정부를 만들고 전쟁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는가. 

 

이승만 정부의 지상목표는 북진통일이었고 실제 전면전에 이르렀다. 잠시 떨어질 순 있어도 결코 영구 분단은 허용되지 않는다. 역사적 필연이다. 진짜 평화는 통일되기 전까지 결코 오지 않는다. 이것이 본질이다.

 

외세의 강점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위험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툭하면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로 어마무시하게 몰려와 한미연합훈련을 펼친다. 요즘엔 수시로 일본이 그 훈련에 합류한다. 자위대가 한반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조만간 보게 될 것이다. 북은 갈수록 핵무기를 고도화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고 있다. 

 

하늘엔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이 날고 대북 확성기가 매일 떠들어 대고 있다. 서해 NLL 부근에서 언제 다시 교전이 벌어져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과연 두 개의 국가가 되면 평화가 올까.

 

3.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소원을 통일”을 부르며 자라났다. 분단이 길어지니 그 소원도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통일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통일은 평화적 방식과 전쟁에 의한 방식이 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전쟁을 하기 보다 차라리 영구히 분단되어 살자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임 전 의원을 비롯한 많은 학자의 고민이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통일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통일이란 무엇일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끊어진 혈맥을 잇고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국토를 하나로 만들고 민족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전제가 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짓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전 민족적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미국이 한반도 남쪽에 수많은 미군 부대를 지어놓고 북을 겨냥한 온갖 미사일을 가져다 놓은 조건에서 어떻게 통일과 평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미국은 끊임없이 북을 죽이려 하고 있다. 살인적인 경제제재를 펼치고 있고 한국전쟁 이후 하루도 제재를 하지 않은 날이 없다. 선제타격을 통해 북을 붕괴시키겠다는 의지를 꺾은 적이 없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라. 두 개의 국가가 되면 이 상황이 달라지는가.

 

4. 올해 초 북은 조선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아주 충격적인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연방제에 의한 평화적 통일방식을 포기하고 전쟁에 의한 통일의 불가피성-완정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은 1980년 조선노동당 제6차 당 대회에서 정식화한 이후 한 번도 연방제에 의한 평화통일을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에 따라 남의 대응도 상당히 고민이 커진 측면이 있다. 이 마당에 우리만 여전히 평화통일 그리고 화해 협력을 주장하는 것도 어이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보수적 시각의 많은 학자들은 “통일은 헌법적 가치”를 내세워 임종석을 비판하고 있다. 사실 소가 웃을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통일은 자유민주적 가치를 내세운 흡수통일로써 사실 통일방안이 아니라 전쟁을 통한 북한 붕괴론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적 학자들은 사실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또한 그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동안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합의를 이룬 후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냉정히 말하면 교류 협력을 통해 긴장 완화의 측면에 골몰했을 뿐 실제 근본적인 정치 군사적 대립 상황을 종식시키는 문제에 대해 귀 막고 눈 감지 않았던가. 왜 그랬을까? 반드시 미국 문제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누구보다 훨씬 더 심했다. 

 

남북이 맺은 수많은 합의를 미국의 눈치 살피느라 단 한 가지도 이행하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미국 무기 사들이고 방위분담금 올려주고 툭하면 한미연합훈련을 하며 오로지 미국의 선의에 기대 허락되는 범위에서 북과 교류할 뿐이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천금 같은 기회를 그렇게 다 날려버린 문재인 정부의 비서실장 임종석이 지금 와서 통일은 의미 없다고 하는 것이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5.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모든 문제는 느닷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북의 대한민국 교전국 규정은 그들의 분명한 결심과 이에 따른 행동이다. 필자가 볼 때 이것은 미국과 오랜 싸움을 이제 끝내겠다는 각오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관계를 분명하게 정리하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핵보유국 북이 교전국인 미국과 최후 결전을 하려는데 끝내 미국의 편에 서서 총부리를 들겠다면 그것은 동족이 아니라 적대국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북미 간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관계 정상화를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북에 대한 각종 제재와 적대 정책을 중단하고 종전 평화협정과 국교 수립, 그리고 주한미군의 조속한 철수를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남과 북은 서로 체제와 제도를 존중하며 맺은 약속을 귀하게 한발 한발 이행해 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궁극적으로 통일을 가져올 길이다. 따라서 미국이 현재 지구 도처에서 펼치고 있는 신냉전, 새로운 전쟁 정책을 막기 위한 진심 어린 투쟁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급박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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