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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자본주의는 공정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공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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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지속된 임금에 대한 공격과 결합한 물가의 급격한 상승은 파업의 급증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운동인 개량적 캠페인도 만들었다. 지난 6월에 시작된 “요금납부 거부”(Don’t Pay) 캠페인1)이 그중 하나로, 이 캠페인은 자본주의가 정부 정책을 통해서 에너지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지난 20년 동안 자본주의 좌파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새로운 운동의 주된 운동 방식이 시위와 무급 ‘파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의 생계 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일반적인 이윤 실현 위기의 한 측면일 뿐이다. 자본가계급에 이윤 실현 위기의 해결책은 노동계급에 돌아가는 사회적 생산물의 몫을 줄이고 자본으로 가는 사회적 생산물의 몫을 늘리는 것이다. “요금납부 거부”(Don’t Pay)는 오직 '공정한' 가격 상한제를 통한 공정한 분배를 목표로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 운동이 “청구서의 금액을 영원히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조합주의자들의 구호인 ”공정한 하루의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수“의 반복이며, ‘공정한’ 착취에 대한 개량주의적 요구일 뿐이다.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이다.

 

개량주의자의 상징인 삼위일체(행동주의, 조합주의, 의회주의)가 “참을 만큼 참았다”(Enough is Enough) 캠페인2)에 동참했다. 이들의 5가지 요구는 실질임금 인상, 더 저렴하고 국유화된 에너지, 식량 빈곤 종식, 모두를 위한 괜찮은 주택, 그리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참을 만큼 참았다” 캠페인은 "권리", "국가적 망신", "정부의 임무", "애국적 제스처"를 이야기하고 "초고액 재산자"와 "대기업"에 대해 불평한다. “요금납부 거부”캠페인처럼, 이 캠페인도 다시 자본주의를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캠페인을 주장하는 이들은 부자들에게 세금이 부과되고, 국가 지출이 재분배되고, 노동당의 정치인들이 집권하기만 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공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노동계급 착취에 기반을 둔 이 체제는 결코 공정하게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지배계급과 노동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이 이 시스템의 유지에 전념하고 있다.

 

“요금납부 거부” 캠페인은 1989~93년에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던 “인두세 거부 운동”에 자주 비유해 왔다. 그러나 인두세 거부 운동은 노동계급을 직접 겨냥하여 “정치적으로 부과된 세금”에 대한 납부를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현재의 생계비 위기는 시장 법칙의 결과이다. “요금납부 거부” 캠페인은 에너지 회사에 대한 과세와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한 세수의 사용을 요구한다. 하지만, 에너지 회사들은 세금이 낮은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하여 그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고, 국가는 에너지 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에너지 회사는 세금을 피할 수 있다. Bulb를 포함한 29개 에너지 회사의 경우처럼, 회사가 파산하면 국가가 이를 매각해 납세자에게 회사 부채를 떠넘긴다. 국가에 의한 모든 가격 상한제는 복지 혜택 및 사회적 임금에 대한 지출을 줄이는 것과 함께 노동계급에 추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기업에 지불될 것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매년 에너지 요금을 납부할 여유가 없기에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가을 이전에는 21억 파운드의 미납금이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회사들은 미납금을 처리하기 위한 합법적인 전략을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요금납부 거부”캠페인은 선불미터기를 설치한 사람들에게는 납부하지 않으면 전력이 차단되기 때문에 납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선불미터기의 설치가 “요금납부 거부”에 직면한 에너지 회사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요금납부 거부”캠페인은 선불미터기 설치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대와 취약 가구에 가스와 전기를 무료로 제공하기 위한 에너지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결합할 때만 효과가 있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최근 연금 연령 증가에 대한 투쟁에서 저소득 가구, 학교, 스포츠 센터 및 대학에 무료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선의의 활동가들이 모인 소규모 그룹에 의해서 마법처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에서 진정한 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요금납부 거부” 캠페인은 2022년 10월 1일까지 목표했던 "100만 건의 요금납부 거부 약속"을 달성하지 못하고, 목표의 5분의 1보다 못한 성과를 보였다. 새로이 디데이로 정한 12월 1일까지 100만 개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파업이 진행될지는 불분명하다.

 

자본주의에서 생계 위기에 대한 노동계급의 유일하고 진정한 즉각적인 대답은 투쟁을 우리 자신의 손에 맡기자는 것이다. 우리를 위한 투쟁을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활동가들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자기 조직화가 필요하다. 그 투쟁은 자본의 다른 측면, 즉 자본가계급이 주는 끔찍한 임금에 대한 공격과 자본가계급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일반적인 공격으로 옮겨져야 한다. 가을과 겨울에 걸친 파업 물결은 지난 30년 동안에 가장 크다. 하지만 “요금납부 거부”와 “참을 만큼 참았다” 캠페인은 개량주의적 행동주의를 촉진함으로써 더 나은 임금과 조건을 위한 투쟁과 장기적으로 자본주의의 전복을 의미하는 임금 체계와 계급사회를 끝내야 할 필요성 사이의 연관성을 훼손한다. 게다가 이 캠페인들은 노동자들이 정치적 기관을 발전시키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노동계급의 긴급한 작업을 약화한다.

 

노동계급의 공격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해결책이다. 노동자 스스로가 파업위원회를 통해 대중파업을 지도하는 통일된 계급투쟁이 우리가 직면한 공격을 중단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산이 조직되고 계급과 임금 노동이 완전히 폐지되는 새로운 생산체제만이 마침내 자본주의 체제에서 착취와의 투쟁을 끝낼 것이다.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자본가계급을 전복하고 사회를 이끌 노동계급만이 이것을 만들 수 있다. 자본주의를 더 좋게 만들자는 개량주의자의 막다른 골목은 잊어버리자. 우리에게는 승리할 세계가 있다!

 

2023년 3월 12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주>

1) “요금납부 거부”(Don’t Pay)는 영국의 에너지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캠페인으로, 에너지 회사의 요금청구서 납부거부와 선불계량기 폐지를 요구하는 캠페인이다(번역자 주).

2) “참을 만큼 참았다”(Enough is Enough)는 영국의 생활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캠페인으로, 실질 급여 인상, 에너지 비용 절감, 식량 빈곤 종식, 부자 세금을 요구하는 캠페인이다.

 

 

<출처> 「오로라」(Aurora) 62호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3-03-12/capitalism-cannot-be-made-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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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 : 독자의 소리

독자의 소리 photo_2021-01-06_18-24-52.jpg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은 2012년부터 「코뮤니스트」를 발간하고 있는데, 이번에 창간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동지들의 지지와 관심, 그리고 비판과 충고가 있었기에 꾸준한 발간이 가능했습니다.

 

이제 지난 10년을 반성하고 평가하면서 앞으로의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코뮤니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환영하며, 동지의 소중한 조언은 저희를 돌아보고 발전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이 되었다는 말에 조금 놀랐습니다. 처음 책을 받고 코뮤니스트의 정확한 뜻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던 기억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입니다. 많이 가진 것도 아니면서 허영심 가득 약자를 이해한답시고 여기저기 기부는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얼마나 고달픈지 경험하고서야 세상을 둘러보게 되었던 자신이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혁명”, “투쟁”, “자본주의” 평소 거칠다고 생각했고 불편했던 단어가 많았지만, 어떤 호는 꼼꼼히 읽고 또 읽기도 했고 아예 책장을 넘겨보지도 못한 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1호에 실린 국제정세(코로나19와 자본주의)는 매일 매일 늘어나는 코로나 환자 상황보다 전 세계 노동자 현실이 더 비참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두에게 같지는 않다’는 「코뮤니스트 투사」의 글은 가슴 아팠고, 또 잊고 있었던 고 김용균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글도 기억납니다. 러시아혁명 100주년 특집호를 통해 다루었던 ‘문재인 정부와 미국의 사드 배치 강행을 규탄한다.’ ‘코뮤니즘 : 장애를 없애는 실제 운동’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노동조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간간히 분함도 느끼면서 낯설고 어색하던 단어들이 우리 삶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으며, 각호 표지 디자인을 이해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한밤중 국도를 운전하다 캄캄한 시골 마을 집집마다 작은 불빛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소박하고 아름다워 차를 세워 잠시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코뮤니스트」가 한밤중을 밝히는 아름다운 불빛이 되기를 희망하고, 어설픈 독자지만 (감히) 세계적인 혁명 흐름의 작은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성실히 구독하겠습니다.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 뜨겁게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창간 20주년, 30주년 ~~ 새로운 누군가 축하 메시지를 쓸 수 있기 기대합니다.

 

2022년 10월 25일

독자 진영

 

 

 

독자의 소리를 작성해 달라는 문자를 받고 아직도 가지고 있던 2012년에 만들었던 「코뮤니스트」 1호의 제목과 주요 글들을 읽어봤습니다.

 

당시에도 문재인과 박근혜의 대통령 선거에 있어 자칭 사회주의 세력 일부가 선거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했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당시보다 지금은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칭하는 세력이 아예 소수화되어 버렸는지 없는지 모르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제가 코뮤니스트 운동의 방향과 전망을 얘기하기는 아직 실력이 안 되고, 책이 나올 때마다 아는 지인들에게 많이 일방적으로 구독을 요구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면 읽기 어려워서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소수가 만들다 보니 이론을 편하게 전달하거나 한국화하지 못해 관심이 많지 않은 이상, 읽고 소화하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저 또한 줄을 쳐가면서 읽어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최근 자주 드는 생각인데 지하철이나 버스를 비롯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 폰에 중독된 상황에서 솔직하게 드는 생각은 몇 권의 인쇄매체가 사회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학가나 지식인 사회가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맑스주의의 쇠퇴와 현실 적합성이 없다고 주장할 때, 러시아혁명부터 현실 계급투쟁까지 근본적, 원칙적 역사관과 전망을 가지고 「코뮤니스트」를 발행하며 활동하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동지들에 경의를 표합니다.

 

2022년 10월

신정현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어렵고, 힘든 길 꿋꿋하게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뮤니즘’, ‘코뮤니스트 운동’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는데, 「코뮤니스트」를 통해 조금은 되었습니다. 제게는 어려운 내용이 많아 지금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술술 읽을 수 있고, 책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앞으로 20년, 50년, 100년 계속 「코뮤니스트」의 묵직한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2022년 11월

독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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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Ⅲ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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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이르자 스탈린은 당-국가 기구 전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제 그는 농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것에 자신감을 느꼈다. 많은 스탈린주의자에게 이 시기는 소비에트 생산양식의 “사회주의적 변혁”이 일어난 시기였다. 그들은 강제 집산화 프로그램이 농민에 대한 강제 수용, 사적 생산의 종료, 모든 공장의 재국유화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5개년 계획의 산업화 프로그램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를 대체한 것이었다. 이것은 대체로 사실이지만, 이러한 조치를 “사회주의”라고 계속 말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스탈린은 그것에 관해 거침없이 말했다. 이것은 “위로부터의”(당시 그가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표현) 혁명이었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사회주의는 생산자 자신이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레닌이 소비에트 권력의 초기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는 공장으로 가서 노동자 스스로 경영하도록 촉구했다. 이것은 러시아에서 만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세계혁명의 확장에 달려있었다. 세계혁명의 확장에 실패하고 1918~21년 내전 기간에 계급의식을 가진 많은 노동자가 사라지자 러시아 혁명가들은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레닌 자신도 명확한 해결책이 없었고 1921년 이후 사회주의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그의 글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앞서 설명한 이른바 “자유 독재” 시기인 1920년대의 활발한 논쟁은 사실 딜레마를 숨기고 있었다. 사회주의가 자기 생산물 생산자의 통제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맑스주의 이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만이 이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붕괴가 당을 새로운 국가로 남겨둔 이후 역사는 이미 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내전 동안 발전한 경찰기구의 더욱 적극적인 사용과 국가산업을 강제로 현대화하기 위한 군국주의 동원 프로그램의 채택이 필요했고, 그것은 스탈린주의의 모든 주요 구성요소를 갖고 있었다. 스탈린주의의 승리는 스탈린과 그의 동료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모든 문제를 제쳐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장되었다.

 

그들에게는 사회주의에 관한 어떤 이론보다도 소련의 산업화라는 실질적인 과제가 더 중요했다. 후진국에서 산업화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투자에 대한 독점적 통제를 통한 국가였다. 스탈린은 1929년에 의제를 정했다.

 

“중공업은 국가 보조금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제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는 고사하고 문명국으로서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 (「레닌주의의 문제」, 모스크바 1940, 303쪽)

 

그리고 여기에는 국유화(즉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와 생산자 자신이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사회화를 동일시하는 많은 사람의 혼란이 있다. 이것은 결국 국가 소멸의 길로 가는 한 걸음으로 보여야 한다. 국가가 결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회주의”가 훨씬 더 중앙집권화된 국가 기구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스탈린주의자들만이 국가 소유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사회민주주의 운동 내에서도 널리 퍼진 믿음이었다. 하지만 국가 소유는 이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단일 자본주의 실체에서 집단 자본주의 실체로 이전할 뿐이다. 임금노동자의 처지에서(그리고 맑스가 말한 임금노동의 존재는 자본주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둘 다 자신의 잉여생산물 처분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5개년 계획에 따라 생계비가 엄청나게 오른 것으로 계산되었다. 집산화 재앙은 4년 만에 기초 식료품 가격의 8배 상승을 이끌었다. 임금이 억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득세가 인상되었고, 여기에 임금 격차 및 다른 인센티브가 도입되었다. 일부 산업에서는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40배까지 벌어질 수 있다.1) 문제는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트가 당시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보다 형편이 더 나았는지가 아니라(당시 서유럽 노동자의 1/4은 실업 상태였다) 그들이 실제로 생산수단에 대해 동일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탈린주의자들(그리고 실제로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자본주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그들의 모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형적인 19세기 기업가(틀림없이, 시가와 중산모를 갖춘 남성)를 찾고 있지만, 그러한 인물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19세기 말의 독점 자본주의가 지배계급이 지구의 잉여가치를 처분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집단적인 기업 자본주의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이클 라이먼(Michael Reiman)의 다음 관찰과 어떻게 다른가?

 

“…스탈린의 강령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민과 분리되고 인민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지배적인 사회계층의 존재가 필요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스탈린주의의 탄생: 2차 혁명 직전의 소련」, 인디애나, 1987년, 120쪽)

 

우리는 이미 이 지배계급을 낳은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보여주었다. 첫째, 당내의 모든 잠재적 반체제 인사들의 모든 권력 위치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치적 그리고 물리적 제거. 둘째 젊고 새로운 계급의 노멘클라투라를 만들었는데, 그들의 다수는 첫 번째 5개년 계획에서 훈련받은 노동자의 자녀들이었다. (한 가지 역설은 그것이 “전(前)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특별 주택, 특혜 상점, 별장(dacha), 고등 교육 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별개의 계급이 되었다. 그들은 서유럽의 지배계급처럼 자유롭게 부를 축적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이러한 특권을 그들의 자녀에게 물려주고 항상 지배계급에서 역할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잉여가치를 집단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국가 기구가 설정한 모든 목표를 향해 돌렸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소비에트 체제 내에서도 경쟁 압력을 가져왔고, 이는 또한 “사회주의 계획”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약화했다,

 

존재했던 것은 아마도 일어나고 있는 계획의 반영으로 추정되는 목표 설정 체제였다. 모든 목표 설정 체제와 마찬가지로 그 목표들이 한 일은 경제가 기능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 관리자들은 종종 그들의 프로젝트에 자원을 전용하기 위해 경쟁했고 중앙은행의 지원을 얻기 위해 근본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국영은행과 재무부의 역할은 명시된 “계획”이 무엇이든지 간에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매우 중요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엉터리 국가 체제는 화폐 폐지를 향해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실제로 우리가 위에서 보았듯이 경제에서 금전적 유인책의 역할이 커졌다. 화폐 문제는 어떤 체제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평가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비록 우리가 여기서 그 문제를 완전히 다룰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하에서 화폐는 생산의 실제 가치를 왜곡하는 또 다른 수단을 나타낸다. 생산 자금을 조달하고 통화 공급을 통제하는 사람들도 경제 관리의 주요 수단을 통제한다. 그들은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화폐적 가치를 사용하는데. 이것이 존재하는 한 사회는 가치 법칙에 지배될 것이다. “필요의 영역”에서 사회주의 영역으로의 도약은 화폐가 폐지되어 노동시간 자체가 “탈상품화”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에만 사용되기 전까지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는 또한 개인이나 추상적인 집단 자본주의 국가에 우리의 잉여가치를 수용하고 지시할 지배계급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스탈린주의는 소련이 너무 낙후된 자본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소련에서만 나타났다. 어떤 면에서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혼합 경제를 예고했지만(보기를 들어 “인민”이 국유화된 산업을 소유한다는 구실), 실제로는 독특한 맥락에서 발생한 자본주의적 구성체였다. 그것은 중국과 쿠바와 같은 국가의 모델이 되었지만, 진정한 혁명가들과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코뮤니즘의 요람이 아니라 묘지였다. 이것은 우리가 퇴치해야 할 유령이다.

 

결론

 

러시아혁명은 스탈린이 1928년 소련의 확실한 지도자가 되기 훨씬 전에 이미 패배했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퇴보는 세계적인 계급 운동의 패배와 그에 따른 스탈린주의 반(反)혁명에 맞선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의 약점에서 비롯되었다. 스탈린주의는 볼셰비키혁명의 당연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희망과 노력과의 완전한 단절이었다. 노동계급의 자유 대신에 스탈린(그리고/또는 그가 대표했던 성장하는 자본가계급)은 전례 없는 잔혹한 당 독재를 발전시켰다.

 

코뮤니즘 대신에, 특히 잔혹한 국가자본주의의 변종이 발전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반인 상품생산과 임금노동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전면적인 국가통제와 강제노동은 “사회주의의 업적”이라고 거짓으로 그려졌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의 수중에 집중된 생산수단에 대한 처분권이 없는 임금노동자로 남았다. 러시아에서 스탈린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특히 퇴행하는 국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 등장한 “혼합경제”의 특정 요소를 예상했다. 여기에서도 국유화된 산업은 “인민의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독특한 맥락에서 발전한 극히 예외적인 자본주의적 구성체였다.

 

스탈린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심각한 패배를 안겼던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쿠바나 중국과 같은 일련의 국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지배 형태이자 정치 경향으로서 스탈린주의는 민족주의와 국가자본주의 강령을 토대로 행동했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복종, 테러, 혁명의 포기, 코뮤니스트의 대량 학살,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의 조장, 여성에 적대적인 성도덕 전파, 임금노동에 대한 미화에서 완전히 반동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스탈린주의는 다소 퇴보한 “사회주의 실험”이 아니라, 반대로 혁명의 무덤을 파는 자들, 특히 반(反)코뮤니즘의 음흉한 변종이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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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 이형로

 

<주>

1. 머빈 매튜스, 「소련에서의 특권 : 코뮤니즘 아래의 엘리트 생활양식에 대한 연구」, (Alen and Unwin, 1978)

2. (역자) 결론은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믿지 못할 친구들: 스탈린주의”, 「코뮤니즘을 위하여」를 인용했다. 이 팸플릿을 발행한 CWO는 ICT의 영국 지부이다.

 

<출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22호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03-08-01/stalin-and-stalinism

 

<이전 글>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2875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Ⅱ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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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그리고 전복의 전망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그리고 전복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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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기후 위기는 세계 곳곳에서 폭염, 가뭄, 홍수, 빙하의 증발 등 기상이변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 위기 징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타났지만, 위기 요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시작되었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사회 확산과 맞물려 있으며, 자본주의가 지구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산양식이 되면서 더욱더 심화하였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폭염과 폭우 그로 인한 산사태, 가뭄 등의 피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후 재난은 지난 7~8월 중부지역의 집중호우로 인한 막대한 피해처럼 직접적인 피해와 갈등뿐만 아니라 재난지원마저도 철저하게 계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 재난의 피해는 대부분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몫이지만, 자본은 탄소배출권, 그린 경제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후 위기마저도 이윤 추구 수단으로 삼는다. 이것은 기후 위기가 철저하게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순수한 환경 문제가 아닌 인간사회의 생산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기후 위기의 배경

 

수많은 환경운동단체뿐만 아니라 세계 부르주아지 일부도 현재 기상 상황을 기후 위기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기후 위기 원인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등을 지목하고 있다. 환경운동단체와 이른바 진보좌파 일부는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 환경과 자연 파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들은 기후 위기의 해결책으로 불평등 타파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기후 위기와 사회경제체제와의 관계에 대한 접근은 피상적 수준에 그치면서,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내의 대안에 충실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철저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원인 분석이 미미할수록 나오는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혁, 정책 개선에 머물거나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의한 규제, 탄소 거래제에 대한 기대, 생태도시로 전환 요구는 규제 강화를 통해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규제와 제도 개선, 정책 전환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재생에너지와 사회연대경제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면 명확하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대안으로, 재생에너지에 관한 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윤추구와 독점이라는 관점에서 도입, 시행되고 이윤법칙에 지배받는 재생에너지 생산은 전혀 대안이 될 수 없다. 한때, (지금도) 사회연대경제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등등이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의 사회연대경제는 오히려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은 재생에너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과 독점화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뿐이다.

 

또한 자본과 지배계급은 녹색경제, 탈성장, 지역생산, 뉴딜정책 등등 자본의 이윤 추구를 마치 친환경적으로 미화하고 있다. 녹색은 껍데기에 불과한 데도 많은 환경단체와 진보좌파는 녹색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에서 자본에 녹색을 요구한다고 하여 친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 운동을 정지시키고 파괴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진보좌파, 즉 자본주의 좌파 환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내의 개혁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동조는 쇠퇴기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생명 연장 수단이자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후 위기는 자본축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점은 국제 부르주아 기구에서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보고서는 이런 점에서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난화, 빙하의 해빙 등 기후 위기의 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온실가스 농도는 1750년부터 감지할 수 있고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화 확산과 맞물려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상황은 악화하였다. 이는 자본축적의 세 번째 주기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결국 기후 위기의 원인을 피상적으로 분석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퍼트리는 진보좌파는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전복하기 위한 투쟁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 민족/국가 단위의 대안 역시 근본적 해결책에는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가 일국에서 불가능하듯이 기후, 환경 문제 역시 국가 단위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아시아를 비롯한 비유럽 지역으로 세계 공장 이전은 자본축적의 일환이며 이는 일국이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3. 기후 위기는 자본의 또 다른 이윤추구 기회

 

<사례1> 지난 8월 기후 위기에 따른 폭우가 중부지방을 휩쓸었다. 그러나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다. 반지하에 살던 장애인과 노동자 가족, 그리고 컨테이너 임시숙소에 머물던 이주노동자가 폭우로 인한 산사태에 목숨을 잃었다. (“이번 폭우는 기후재난, 반지하 없앤다고 문제 해결될까”, 「비마이너」, 2022. 08. 11)

 

<사례2> 당시 윤석열은 대통령실을 통해 자신도 침수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증거와 증언은 이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하였다. 윤석열의 집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엘리베이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자, 아파트 측이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조치를 경고했다. (“윤 대통령 아파트가 침수 피해?... '허위 영상'에 뿔난 입주민들”, 「한국일보」, 2022. 08. 12)

 

<사례3> 11호 태풍 힌남로가 지나간 포항 냉천 지류인 용산천 인근의 용산2리에 집들은 태풍당시 지붕만 남기고 통째로 잠겼다. 그 이전까지 어떠한 태풍에도 범람한 적이 없었던 하천이었다. 하지만 용산천 인근에 포항시가 아파트 허가를 내주면서 물길을 거의 직각으로 변경하였다. 피해 마을 주민은 "아이파크 때문에 이 지대는 전부 저지대가 된 거예요. 딴 것 없어요. 약한 사람은 죽어야 하고 돈 있는 사람만 사는 건 아니잖아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범람 안 된다던 포항시…수로 바꾼 '인재'”, 「대구mbc」, 2022. 09. 14)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주거는 계급적이고 빈부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기후 위기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몫이다. 물론 기후 위기의 피해뿐만 아니라 전쟁, 경제위기, 대유행 등 자본주의가 퍼트리는 온갖 고질병의 고통은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강력한 타격을 준다. 이쯤 되면 기후 위기에서 비롯된 각종 재해는 사회적 관계와도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호 태풍 힌남로가 할퀴고 간 포항을 방문한 윤석열에게 재해 약자는 자연재해인가? 아니면 인재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질문과 포항 용산천 범람은 기후 위기가 경제사회 체제와 밀접하고 계급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제기한 사건이었다.

 

자본은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전쟁, 대유행 등 각종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자에게 고통 분담과 희생을 요구했다. 노동자에 대한 고통 전가는 동전의 양면처럼 자본에는 이윤 추구의 기회이기도 하다. 경제위기 시에는 소자본에 대한 대자본의 집적과 인플레이션을 통한 사회적 약자의 부를 도둑질하며 부가가치를 증대시켰다. 최근 윤석열 정권의 재정 확보를 위한 국유 재산 매각 역시 이런 맥락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사례는 있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건실한 재정 확보라는 명분으로 한국석유공사 사옥 매각 후 그 건물에 임대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와 관련된 탄소배출권, 무늬만 친환경인 테크놀로지의 대표 사례인 전기자동차는 전기를 만드는 과정이나 전기자동차 생산과정이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고 수소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린란드 빙하가 녹자 희토류를 선점하려고 제프 베이조스, 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억만장자들이 광물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각종 위기는 고통 분담 이데올로기와 폭력을 통해 노동자에게는 고통을 가중하지만, 자본에는 집적과 집중의 기회이다.

 

4. 기후 위기 대책

 

1) 기후 위기에 따른 사회시설 제반에 대한 개선 요구

 

지난 8월의 폭우에 대한 대책으로 서울시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을 불허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는 주거의 공공성 강화라는 내용도 없고 반생태적 도시환경에 대한 근본 대책도 없다며 강력히 비판하였다. 수도권에서 반지하는 일반적인 주거 공간 중 하나다. 서울시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5%에 달하는 약 20만 호의 지하·반지하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이유는 높은 집값 때문이다. 즉,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택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이다.

 

비판의 핵심은 근본적인 문제는 위기를 상시화하는 서울의 도시 환경이라는 것이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은 빗물이 스며들 수 없고, 하천을 매립하거나 숨기며 물의 흐름을 막는 복개천은 홍수 위험을 높인다. 자연의 순환 시스템을 무시한 도시개발이 생태환경과 인간의 삶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반복되는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생태적인 도시계획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반생태적 도시환경 개선보다는 토건 자본을 위한 정책들의 나열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온실가스 감축 계획 재수립과 기후재난에 취약한 계층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서 대규모 정책 수립과 예산 확대를 정부와 서울시에 마련하라고 요구하였다.

 

2)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 탈성장, 지역경제

 

환경과 기후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지 대안인 녹색경제, 그린뉴딜 등의 명칭은 국경을 초월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을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권은 녹색성장을 주장하며 친환경 정책인 양 포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건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물이 4대강 사업이다. 문재인 정권 역시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과는 다르다며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을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기반 위에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린뉴딜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동시에 탈 탄소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녹색 일자리도 창출하고 지구도 살리고 돈도 버는 정책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명확한 목표 구체적 계획, 어떠한 규제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탄소배출 제로 의지와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 공허한 내용에 불과한 친자본적인 정책으로 이전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국제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 역시 이러한 맥락이다. 기후 위기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된 자본은 결코 이윤을 포기하지 않고 비서구권으로 공장 이전을 통해 탄소 배출 규제 및 배출권을 이용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 더 나아가 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이러한 철학 부재는 당연히 대안의 부재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자신의 무능과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해 장밋빛 청사진으로 제시했지만, 그들의 계급적 성격은 감출 수 없었다. 탈 탄소 문명을 탈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빠져 있고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에 맞춰져 있다.

 

3)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과 녹색경제 :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은 노동단체 비판처럼 자본의 이윤 중심이 아닌 노동자 관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 부르주아 기구의 탄소 저감제, 생태도시 조성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한가? 저소득 노동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한가? 또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을 부르주아지에 강제하지 않고 협조, 요청 정도로 실행 가능한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어떠한 긍정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자본의 이윤 축적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를 막는 것이 아니다. 즉 지금의 기후 위기 역시 철저하게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부르주아지에 협조, 요청이 아닌 기후 위기 대책을 제대로 시행할 계급성을 갖추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탄소배출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였기 때문에 탄소배출 제로에 대한 능력과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 더 나아가 환경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 없다. 따라서 세계환경협약을 통한 국제 부르주아지의 추진과제(탄소 저감, 그린 경제 등)들은 공허한 내용에 불과하다. 오히려 무능력과 무의지를 감추려는 부르주아 정부는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하지만, 결론은 자본의 이윤 추구룰 위한 새로운 방법은 없다.

 

자본의 이윤추구는 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고통 분담을 의미한다. 부르주아지는 자기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할 뿐이다. 그것이 환경과 기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채 탄소 저감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린뉴딜이나 녹색성장, 녹색경제 등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자본 축적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은 시급하고 꼭 필요한 사업이며, 도시 녹지 확보 및 재난 인프라 구축 역시 중요한 사업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정책을 잠시 살펴보자. 문재인 정권은 집값 억제가 아니라 집값 폭락을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 부르주아 정부와 정당들의 집값 안정 대책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 이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소유와 매매 및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의 삶에 전가될 뿐이다. 또한 공공임대주택 역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서는 철저하게 이윤추구라는 관점에서 시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부르주아 정부는 노동자 요구에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본 이익에 반하는 요구를 정책으로 시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정책과 제도 속에서 경험했다.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요구와 기대는 기후 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5. 결론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결론은 기후 위기와 환경파괴 원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라는 것이다. 약탈과 착취의 생산이 지속된다면 인류를 포함한 종 전체가 탈출구 없는 멸종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 결국 선택지는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종의 멸종을 포함한) 생태계 파멸이냐의 갈림길만이 놓여 있다. 부르주아지는 자본 운동을 억제하거나 중단시키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 오직 기후 위기, 환경파괴, 종의 멸종을 향해 폭주하며 달리는 자본 운동에만 매달린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각종 위기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자본주의 폭주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자본의 무한이윤 경쟁은 기후 위기가 일국만의 대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세계혁명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인류, 생산 및 환경 사이 새로운 관계를 건설하여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문제 제기 없이는 지구파괴를 막을 수 없다. 이윤추구 체제를 넘어서지 않는 대안과 정책은 결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지구파괴와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즘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지구를 파괴한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킨다.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노동자 희생과 지구 파괴를 멈출 수 있다!!

 

기후재난, 환경 파괴, 대유행, 전쟁, 생계비 위기...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만이 지구와 인류를 살릴 수 있다!!

 

2022년 9월 22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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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1부)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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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반

 

지금 우리가 중판을 찍고 있는 이 글은 CWO(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가 지금까지 만든 첫 번째 팸플릿의 1부이다. 이 글은 1975년, CWO의 전신인 혁명적 전망(Revolutionary Perspectives) 소그룹이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적 토대」라는 제목으로 별도로 발간했다. 오랫동안 절판되었으나, 이 글에 실린 맑스주의 경제의 핵심 개념에 관한 복잡하지 않은 설명은 혁명적 동지들이 오늘날 세계적 자본주의 시대에도 맑스의 시대에서처럼 동일한 근본적인 물질적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준다.

 

전후 경제적 호황의 끝이 명백해진 1970년대에 이 글이 작성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에 따라 맑스주의를 재발견한 코뮤니스트좌파의 혁명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이 글은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성장한 전후 번영의 시대가 인플레이션 위기로 바뀌어버렸는지 이해하도록 충격을 선사했다. 케인즈주의가 자본주의의 순환하는 경제적 위기 문제를 해결했다는 성명은 이제 허위로 드러났고, 자본주의 축적 순환은 또 다른 위기로 끝날 것이라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친 폴 매틱(Paul Mattick)의 주장이 그 정당성을 입증했다. 맑스와 케인즈에 대한 그의 연구는 우리에게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경제적 힘에 대한 맑스의 원래 분석을 더 깊이 연구하도록 고무했다. 전후 호황기 노동계급을 진정시켜 “자본을 위한 계급”이 되게 한 것으로 여겨지는 증가하는 소비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계급투쟁은 귀환했고, 이와 함께 맑스주의 - 러시아를 ‘기형의 노동자 국가’ 또는 국가주의로, 경제의 국가 통제를 사회주의로 가는 단계로 정의한 가짜 ‘맑스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성장이 노동계급의 확장에 따른 부불노동에서 빼앗은 이윤에 기반을 둔다는 뿌리 깊은 원칙에 기초한 맑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났다. 가치법칙의 이러한 ‘재발견’으로부터 분석은 우리가 맑스주의 경제의 핵심 개념: 자본주의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뒤이은 이윤율의 하락 경향으로 자연스럽게 데려간다. 이 핵심 개념들은 아직도 오늘날 세계적 자본주의가 맞이하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이해하는 기반이다.

 

지난 몇 년간, 원본 팸플릿 전체를 다시 출간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우리는 항상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첫 번째 문제는 1970년 작성된 글은 위기가 그 뒤로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해 그 무엇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두 번째 문제는 첫 부분과 그 제국주의 시대 또는 쇠퇴기에 자본주의의 발전 사이의 연결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이론적 발전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첫 번째 이론 부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쇄하고, 뒤이은 출간물들에서 맑스 사후 자본주의의 발전을 다루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지난 40년이 넘도록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ist Communist Party, PCInt)의 우리와 동지들은 이러한 발전에 대해 글을 쓸 이유가 있었고, 이제 우리의 의도는 이 모든 것들을 합쳐 맑스주의 이론적 틀 원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재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오늘날 이윤율 하락을 자본주의 작동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는 몇몇 강단 맑스주의자들과 쟁점을 다룰 것인데, 우리는 그 작동이 필연적으로 자기 붕괴하는 것을 보여주는 표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전쟁, 전 세계 노동계급의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 그리고 지구의 실제 존재를 위협하는 오늘날 제국주의를 추동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급박한 문제인지 그들은 대개 아무런 생각이 없다. 아래로 떨어지는 그래프와 표는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의식적인 혁명 운동 없이도 자본주의가 점진적으로 소멸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2) 역설적으로 이는 오래전,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사민당의 개량주의자들을 사로잡았던 종류의 생각이다. 그러했기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윤율의 하락이 자본주의의 존재론적 위기의 원동력으로 보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그 과정이 “태양이 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 시절 경제 기반의 존재 이유는 노동가치론을 재확인하는 것이었고, 이는 포화 시장에 대한 이론에 반대하여 자본주의 위기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싸워야 할 더 위험한, 정체성 정치와 기후 위기 운동과 같은 21세기의 계급을 넘나드는 개량주의 형태의 환상들이 있다. 이 환상들은 개량주의의 환상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성, 인종, 피부색, 국적이나 그 외의 무엇이든 정체성 자본주의가 한 계급으로서의 우리를 나누기 위해 사용하는 그 어떤 기준과 관계없이 임노동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적 투쟁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

 

오늘날 생활 수준이 떨어지고 굶주림이 확산하는 전쟁의 시대에, 이 글, 자본주의에 내재한 반복하는 위기 뒤에 있는 경제적 추동력과 종국에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맑스의 설명에 대한 개관은 특히 적절하다. 같은 이유로, 이 글은 모든 자본주의 이윤의 기반이 되는 부불노동을 하는 계급, 노동계급이 여전히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에 핵심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 메시지를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반들

 

모든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물질적 필요(음식, 주거지, 의복)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 근본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역사 유물론 관점의 토대이다. 맑스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 사람은 ‘역사를 만들’ 수 있도록 살아가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은 그 무엇보다 우선 먹고 마시고, 거주하고, 옷을 입는 등의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첫 번째 역사적인 행동은 물질적 삶 바로 그것을 생산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모든 사회에서, 일정량의 노동 시간이 인류의 물질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물질의 생산에 투여되어야만 한다. 노동자와 도구/기계, 그리고 원자재(생산수단)는 모든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어쨌든 생산이 계속되려면, 그것들은 반드시 통합해야 한다. 이러한 통합의 이뤄지는 특정한 방식이 사회 구조로 이뤄진 서로 다른 경제적 시대를 구분해준다. (4)”

 

따라서 인간 존재가 그들의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를 생산하는 방식(이를 생산양식이라 한다)이 특정 기간 그 사회 본질의 근본적인 결정 요인이다. 일정 수준으로서의 생산수단의 발전(가장 단순한 도구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에 이르기까지)은 그와 관련된 사회적 관계망을 포함한다. 이것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는 바로 그러한 연결의 총체이다. 그것은 다시 모든 법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상부구조의 진정한 기반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역사 유물론의 관점에서 출발하면, 역사적 발전 뒤에 있는 동력은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이다. 모든 사회에서 생산력은 특정 시기, 그 생산력이 원래 만들어진 사회적 관계망과 충돌을 일으킬 때까지 발전하고 확장하거나, 또는 점점 복잡해진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관계는 한때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하였으나 이제는 생산력이 더 발전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 이것이 물질적 생산력이 확장함에 따라 등장하는 사회 혁명의 시대이며, 이 시대는 사회적 관계와 옛 사회의 상부구조가 전복될 필요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 어떤 사회적 질서도 그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에 파괴되지 않는다. 우월한 새로운 생산 관계는 그들을 존재하도록 하는 물질적 조건이 과거 사회의 틀 속에서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과거의 생산 관계를 대체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는 문제를 풀기 위해, 그러한 책무를 피치 못하게 스스로 떠안는다. 왜냐하면 엄밀하게 조사해보면, 오직 그 해결방안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형성되는 과정에 있을 때만 문제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의 생산양식은 생산의 사회적 과정에서 마지막 적대적인 형태이다. 적대적이라 함은 개인적인 적대의 의미가 아니라,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 내에서 발전하는 생산력은 또한 이러한 적대를 해결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생산한다. 이에 따라 인류의 선사 사회는 사회의 형성과 함께 그 종말을 고한다. (5)”

 

중세시대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 생산이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 자본주의 생산은 결국 중세 사회, 정치적 법적 관계의 전복, 그리고 부르주아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길로 나갔다. 일단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공고해지자, 자본주의 역사적 책무는 전례 없는 세계적 수준의 규모로 사회의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되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 인류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생산 기반을 건설하기 위해 물질적 발전의 수준을 그 필요만큼 만들었다. (코뮤니즘)이 세기(약 1914년) 시작과 함께 자본주의는 코뮤니즘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는 그 역사적 책무를 완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연작의 목적이다. 그 뒤로 어떤 자본의 축적도 더는 생산력의 진보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않았다(여기서 ‘진보적’이라는 것은 높은 수준의 생산양식을 위한 조건을 발전시킨다는 의미). 따라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생산력의 발전은 그 어떤 것도 쇠퇴하는 기반에 서 있다 - 자본주의가 생산양식이 그러하듯 기울고 있다는 징후이다.

 

그러나 쇠퇴기 자본주의 분석을 계속하기 전에,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특징들과 자본이 확장하고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동안, 그와 동시에 사회의 생산력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자본을 무능력하게 하는 특정 객관적 한계를 부여하는 근본적인 추동을 개괄할 필요가 있다.

 

결국, 다른 생산양식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삶의 물질적 필요가 생산되는 과정이며, 단지, 이윤을 위한 자본주의 생산과 사회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생산의 근본적 필요성 사이의 모순이라는 특징을 가진 독특한 역사적 형태이다.

 

노동가치론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도구를 스스로 생산하는 사회에서는 그들 노동의 산물은 효용이거나 사용 가치이며, 이는 소비를 위한 물질 형태 또는 생산수단 일부로 기능하는 물질일 것이다. 노동의 분업이 없고 생산자는 자신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원시 사회에서 생산은 사용 가치의 형태밖에 없었다. 생산의 수준이 생업 경제를 넘어서서 발전하고 사람들이 그들의 산물을 교환하기 시작하면(물물교환) 이 산물에 상품의 특징 역시 부여된다. 상품은 효용(또는 사용 가치)의 물체(객체)라는 성격과 다른 상품으로 교환될 수 있는(교환가치) 물체(객체)라는 이중적 특징을 갖게 된다.

 

모든 상품은 인간의 노동으로 생산되며, 그 모든 상품은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인간 노동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 상품의 가치는 인간의 노동이 들어간 양의 추상적 개념이며, 그 상품에 포함되어 있다. 상품에 내재한 노동의 양이 측정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은 가치의 측정 도구이다. 그러나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 할지라도, 특정 상품의 가치는 어떤 개별 노동자가 그것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시간의 길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만약 그러하다면, 가치는 특정 개인이 얼마나 빠르거나 느린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상품의 가치는 생산력의 발전이 특정 수준에 도달한 사회에서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 시간의 평균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것이 교환을 목적으로 서로 다른 상품의 물리적 질적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해 준다.(보기를 들면, 그러므로 방직공이 15야드의 천을 생산하는데 평균 5시간이 걸리고, 목수가 테이블을 만드는 데 평균 5시간이 걸린다면, 15야드의 천은 하나의 테이블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상품의 가격이 가치와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테이블의 가격은 15야드의 가격과 같은 것이다.)상품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오직 교환의 과정을 통해서 만이다. 왜냐하면 한 상품의 가치는 오직 다른 상품에 의해서만 표현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가치법칙

 

상품 생산과 그것을 암시하면서 수반하는 노동의 분업이 자본주의 발전의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그 이전의, 이른바 자본의 원시 축적이 일어나기 전의 다른 특정 역사적인 조건들이 있다.

 

무엇보다 물물교환을 통한 교환은 화폐 경제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화폐는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가 표현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품으로서, 교환가치의 편리하고 표준화된 도구로, 이후에는 교환의 매개로 교역의 확장을 촉진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화폐의 일반적인 특징은 모든 다른 상품의 교환가치를 표현해주는 것인데, 이것은 화폐가 “일반적인 부의 물질적인 대표물”(6)이란 뜻이다. 이를 통해, 화폐는 역사적으로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고, 이는 상품 생산과 교역이 확장되면서 더욱 그러했다. 중상주의 시스템은 교역을 통한 화폐의 일반적인 형태로서의 부를 축적할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등장을 위한 또 다른 근본적인 전제조건은 스스로는 어떤 생산수단도 갖지 못하고 따라서 살기 위해서는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임금노동) ‘자유로운’ 노동자의 존재이다.

 

“... 노동자는 그의 노동이 포함된 상품을 파는 위치에 있는 대신, 바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것으로 내놓아야만 하며, 그것은 살아있는 자신의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이다. (7)”

 

임노동의 존재는 노동력이 이제 그 교환가치가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평균 노동시간 – 노동자가 자신의 물질적 필요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 이 되는 상품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로 표현되면서 노동의 교환가치는 노동자의 임금과 동일한 것이 되었다. 일단 노동력이 상품으로 전환되면, 잉여가치의 생산, 그러니까 노동자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고 스스로 재생산하는데 필수적인 가치를 초과한 그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치법칙에 따르면, 상품은 그 가치 또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노동시간의 양에 조응하여 교환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가치법칙의 작동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을 자본가가 그 자체로 판매하면서 이윤이 만들어진다.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자기 노동력의 교환가치와 동등하게 임금이 지불된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살기 위해 판매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그들 자신의 물질적 필요와 동등한 수준의 가치 생산에 필요한 시간 이상으로 더 오랫동안 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잉여가치이며, 노동자의 노동력에 의해 창조되고, 생산수단의 소유자에게 전용되는 것이자, 자본 이윤의 원천이다.

 

자본 축적

 

원래의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일어나고(역사적으로 원시적 축적은 상인들이 그들이 축적한 부의 일부는 생산 공장에 투자했을 때 발생했다), 자본주의가 생산양식으로 자리 잡고 난 이후, 자본주의는 그 자신의 확장을 위한 방법을 만들어낸다. 맑스는 이 사실을 묘사하기 위해 자본가와 노동자만으로 구성된 폐쇄 사회에서의 추상적인 단순 재생산 모델을 묘사했다. 전체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총생산은 불변 자본(원자재, 기계류 등)과 가변 자본(자본가들이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 그리고 잉여가치로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전체 고정자본이 자본이 한 번 순환하는 과정에서 모두 소모된다고 가정하면, 사회적 총생산은 아래와 같이 표현될 수 있다:

 

c + v + s

(역주: c는 불변 자본(constant capital), v는 가변 자본(variable capital), s는 잉여가치(surplus value)

 

만약 이 사회적 총생산을 다시 생산의 두 영역, 첫 번째 영역을 생산수단의 생산, 두 번째 영역을 소비 수단의 생산으로 더 자세히 구분한다면, 원래의 공식은 다음과 같이 정교화될 수 있다.

 

영역 I

c + v + s

영역 II

c + v + s

= 사회적 총생산

 

(자본가들이 생산된 모든 잉여가치를 소모하고, 따라서 사회적 총생산은 새롭게 재생산될 뿐,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 재생산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맑스의 도식을 따라가 보자:

 

영역 I

4,000c + 1,000v + 1,000s

영역 II

2,000c + 500v + 500s

= 사회적 총생산(9,000)

 

이 표는 가치로 두 영역의 관계를 묘사하는 추상적이지만, 각 영역에서 생산된 전체 가치가 실제 물리적인 물체의 형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두 영역의 관계를 묘사한다면, 생산의 순환이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두 영역 사이에서 일부 상품 교환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명확하다. 영역1에서 생산된 4,000 불변 자본(기계류, 기계 도구 등의 형태)은 동일한 영역에서만 분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형태기 때문에) 1,000v + 1,000s 로 표현되는 만큼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도, 자본가가 개인적으로 소비하지도 못한다. 다른 한 편, 영역2에서 생산 과정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2,000 만큼의 불변 자본은 소비자 제품의 형태로 남아있는 한 쓸모가 없고, 500v 와 500s는 영역2의 노동자와 자본가에 의해 소비될 수 있다. 재생산이 마찰 없이 계속되려면, 영역1에서 1,000v 와 1,000s는 영역2에서의 2,000c로 교환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단순 재생산을 위한 균형 조건은 아래를 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Iv + Is = IIC

 

이러한 추상적인 단순 재생산 개괄은 자본 축적이 근본적으로 자기 생산의 과장이며 이는 확대된 재생산, 다시 말해 사회적 총생산이 재생산 순환 동안 증가한 상황에서도 진실이다.

 

현실에서 자본가 사이의 경쟁은 자신의 경쟁자를 약화하기 위해 낮은 가격에 판매하도록 끊임없이 강요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상품을 더 싸게 생산해야 하고, 따라서 잉여가치 일부를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새로운 기계류의 형태로 돌려야 한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축적의 증가, 또는 확대한 재생산 역사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상술한 첫 번째 모델은 확대된 재생산이 여전히 근본적으로 노동자-자본 관계의 재생산으로 남아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산의 두 영역으로 돌아가서, 이제 만약 우리가 각 영역에서 생산된 잉여가치 일부를 자본으로써 생산 과정에서 되돌려 놓기로 하면, 그러면 각 영역의 잉여가치는 자본가들의 개인적인 소비를 위한 부분을 대표하는 A와 자본으로 변환되는 부분을 대표하는 B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Is = IA + IB

IIs = IIa + IIB

 

각 영역의 B 부분은 다시 불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세부 영역(IBc 와 IIBc), 그리고 가변 자본으로 축적되는 세부 영역(IBv 와 IIBv)으로 더 잘게 나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총생산 공식은 이제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영역1 Ic + Iv + IA + IBc + IBv

영역2 IIc + IIv + IIA + IIBc + IIBv

 

각 영역의 처음 세 측면의 재생산은 이미 단순 재생산 공식에서 다루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자본화된 잉여가치 중 일부를 다룬다. 단순 재생산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만약 확대 재생산이 발생한다면, IBv는 반드시 IIBc와 동일해야 하는 것이 명확하다. 확대 재생산이 발생하기 위한 두 영역 사이의 필수적인 교환은 단순 재생산에서의 두 영역 사이의 교환 공식과 결합하여 아래의 방정식으로 묘사할 수 있다.

 

Iv + Ia + IBv = IIc + IIBc

 

다른 말로 첫 번째 영역의 완전히 새로운 가변 자본과 비생산 소비로 떨어지는 동 영역의 잉여가치 부분은 반드시 두 번째 영역의 새로운 불변 자본과 같아야 한다. (8)

 

이 확대 재생산 모델에서, 자본의 축적은 불변 자본의 성장, 노동자 소비의 성장과 자본가 소비의 성장을 포함하는 자기-확대(self-expanding) 과정임이 명확하다. 따라서

 

“상품 생산은 자기 시장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잉여가치를 새로운 자본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한 그러하다(9)”

 

우리는 아래에서 자본의 자기-확대가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동반함을, 그 대신 자본이 “잉여 가치를 새로운 자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평균 이윤율 공식

 

우리는 어떻게 경쟁이 개별 자본가들이 지속해서 잉여가치 일부를 자본으로 변환시키도록 강제하는지, 따라서 자본의 축적이 어떻게 자기-확대의 과정인지를 보았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그리고 따라서 잉여가치의 생산)이므로, 특정 시점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까 이전보다 적은 이윤이 발생하는 순간, 자본가들은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전환하는 행위를 그만둘 것이며, 따라서 자본 축적이 중지될 것이다.

 

이윤의 증가는 (자본으로 돌리는) 잉여가치의 증가를 내포한다. 그러한 증가는 노동자가 더욱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해야 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착취율(s/v, 가변 자본 중 잉여 치의 비율) 또는 잉여 가치율의 증가로 이어진다. 자본가가 착취를 심화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노동일의 연장 (절대적 잉여 가치)

2. 노동력의 교환 가치의 절감 – 다시 말해, 노동자가 자신의 최저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상대적 잉여 가치). 이는 1) 보다 싼 식료품 가격, 그리고 2) 높은 생산성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노동 생산성 향상은 노동자가 주어진 시간 생산할 수 있는 교환가치 양의 증가를 포함한다. 한 편에서 사회적 노동 생산성은 그 자체로 전체 상품량의 증가 안에서 나타나는데,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 각 단일 상품의 가치는 하락한다. 증가하는 상품량의 생산을 포함하는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이에 더해 생산력의 발전을 내포한다. 기계류의 개선, 더 효율적인 기술의 도입 등, 이러한 것들은 가변 자본에 대한 불변 자본 비율의 증가라는 결과로 빚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숫자가 실제 증가해도, 새로운 기계류 등에 대한 투자의 증가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진 않는다. 가변 자본에 비해 더 증가한 불변 자본의 비율은 맑스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c/v, 불변 자본/가변 자본)의 고도화라고 지칭한 것이다. 이윤율 하락 경향으로 이어지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지속적인 증가(고도화)는 그 대가로 자본의 축적 능력에 실질적인 한계를 씌운다. 이윤율 그 자체는 s/c+v(잉여가치/불변 자본 + 가변 자본)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는 불변 자본의 감가상각과 대체, 그리고 노동자의 임금을 고려한 이후에 획득하는 잉여가치이다.

 

그러나 노동가치론의 입장에서 우리의 분석은 사회적 총생산에 대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특정 회사 또는 나아가 일부 산업의 이윤율에 대해서는 부차적으로만 다룰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이윤율의 평균 또는 일반 평균율의 형성이며, 이는 경쟁의 결과로 등장하는데, 이 법칙은 자본의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이윤율의 하락 법칙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중요하다.

 

맑스는 「자본론」 1권에서 상품 생산을 다루면서, 상품의 가격이 그 가치와 동일하고, 수요와 공급의 변동이 없다는 가정, 다시 말해 p = v임을 가정했다. 그러나 3권에서 그는 일반적으로 산업 자본이 더 발전하면, 상품 가격이 그 가치와 같아지는 경우는 드물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치에서 가격의 ‘일탈’은 가치 이론의 기반을 약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확고하게 확립해주는 것이다. 물론 개별적 가격도 언제나 어느 정도 가치와 관계가 있으나, 3권에서 맑스의 성취는 가치와 가격이 일치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 전체 경제 수준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 총 p = 총 v이다.

 

“... 가치에서 가격의 일탈은 서로 균형을 맞춘다... 같은 방식으로 사회의 모든 상품의 생산 가격의 합은 그 모든 가치의 합과 동일하다. (10)”

 

다른 것이 모두 동일하다면, 구성이 고도화된 상품의 가격은, 더 적은 노동이 포함되기 포함될 것이므로, 저수준 구성에서의 자본의 가치보다 낮아질 것이 명백하다. 이와 관계없이, 경쟁은 각 자본이 대체로 가격과 동등한 수준에서 판매하도록 강제한다. 따라서 고도화된 구성에서의 자본은 가치보다 높이, 낮은 구성에서는 가치보다 낮게 판매하도록 강제한다. 이 효과는 명백하다 – 저수준 구성에서의 자본이 고도화된 구성의 자본으로 가치가 지속해서 추출되는 것.

 

단일 산업 내에서 이러한 균등화의 원시적인 보기를 확인하기는 쉽다. 그러나 경향(처음에는 지역에서 시작하여 국가 수준으로 가는)은 결국 지구적 수준에서 자신을 확립하고, 이를 묘사하기 위해 우리는 맑스가 3권에서 제시한 다소 더 복잡한 보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산업의 모든 각 영역이 그 상품을 가치에 맞춰 판다면, 특정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다. 자본의 구성이 낮은 수준의 산업들에서는 높은 이윤을 창출하고, 고도화된 자본 구성의 산업에서는 이윤이 낮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전자에 더욱 끌릴 것이므로, 이는 산출의 대규모 증가와 과잉 생산 시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노동은 자신의 교환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이를 고정 자본으로 대체하려는 동기를 제공한다. 그동안 다른 산업들은 자본이 고갈되고, 성장은 느려지고, 산출은 둔화하며 가격은 증가할 것이다. 이 순환의 끝에서 자본의 고공 행진은 처음에 그러했던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명백히 고꾸라질 것이다. 모든 자본 운동과 가격 변동의 결과는 전체 경제 수준에서 평균 이윤율의 형성과 잉여가치 배분의 올바른 분배이다. 자본가에게 이 운동은 그 자체로 시장이 그의 제품에 그들의 ‘가치’가 아니라 가격을, 그것도 생산의 비용(비용 가격) 수준에서 치른다는, 더불어 이윤율이 평균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가격은 결코 임의적이거나 가치 관계와 독립된 것이 아니다.

 

“생산 가격과 평균 이윤율의 전반적인 하락과 상승은 노동 생산성의 변화 과정에서 바뀌는 가치 관계의 변화, 상품의 가치 내용의 변화, 그리고 총자본의 유기적 구성에서의 구조적 변화가 야기한다. (11)”

 

이는 자본의 구성과 고정 착취율이 다른 생산의 다섯 영역의 추상적 보기로 묘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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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평균 구성은 78c + 22v이며, 평균 이윤율은 22%이다. 따라서 가격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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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칙은 순환 과정의 끝에서 자본이 생산한 총가치 일부를 그들이 되돌려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은) 잉여가치, 결과적으로 이 상품 생산으로 그들 자신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이윤을 보증하지 않지만, 오직 잉여가치와 이윤이 사회적 총자본의 모든 나누어떨어지는 부분의 영역에 있는 양만큼만 확보하도록 해 준다... 투자된 자본 100은 그 유기적 구성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한 해에 그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이윤의 양은 같은 기간의 사회적 총자본 100의 부분에 떨어지는 양과 같다. (12)”

 

그렇다면 이 메커니즘은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산업들로 지속해서 가치가 흘러가는 것을 포함하며, 어떤 국가 자본에서도 자본의 집중 과정을 가속한다. 그러나 세계 시장의 생성,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세계화를 향한 이 추동 속에서, 자본은 자기 내부에서 확장, 이를 데 없이 확대된 이윤율의 균등화를 수반한다. 이는 발전이 불균등 교환에 발목 잡힌 낙후된 영역에서 가치를 뽑아내고, 따라서 그들의 주요한 축적의 과실의 대부분을 강탈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글에서 우리는 이윤율의 균등화 경향을 이윤율의 하락 경향과 함께 살펴볼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뚜렷한 특징을, 그 성장의 시기와 쇠퇴의 시기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를 기억해야 한다.

 

“이윤율이든 일반적인 경제 법칙이든, 그 무엇도 근사치, 경향, 평균을 제외하고, 즉각적인 현실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13)”

 

이윤율 하락 경향

 

그렇다면 자본의 축적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필수적 조건으로 하는데, 이는 다시 이윤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근대 정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며, 매우 복잡한 관계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없어서는 안 될 만한 것이다. 과학의 입장에서도 이는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물질적인 생산력이 이미 있고, 작동하고 있으며, 고정 자본의 형태 – 자본주의 그 자체의 역사적 발전으로 인해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자본을 현실화하기보다 자기-실현을 유예하는 특정 시점에 도달했을 때 - 로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14)”

 

헨릭 그로스만(Henryk Grossman)의 수치를 사용해 보기를 묘사하기 위해, 1:1 유기적 구성, 30 불변 자본과 30 가변 자본, 착취율 100%, 그리고 이윤율(s/c + v)이 50%를 가정해보자.

 

“유기적 구성이 (5:1)인, 다시 말해 250의 불변 자본과 50의 가변 자본, 그리고 같은 착취율이면 이윤율은 16.6%가 될 것이다.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모두 증가한다. 생산의 규모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고용된 노동자의 숫자도 증가한다. (16)”

 

그런데도 이윤율은 떨어지고,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는 생산된 잉여가치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이를 데 없이 성장한 고정 자본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스만의 수치를 사용하여 또 다른 보기를 상술해보자.

 

“... 200c – 100v – 100s(잉여 가치)의 구성에 따라, 고정 자본은 (총 잉여가치가 축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가정하면) 원래 크기의 50%로 증가한다. 자본 축적의 더 높은 단계에서 심각하게 더 높은 유기적 구성, 예를 들면 14,900c – 100v – 150v로는, 잉여가치의 증가한 양은 오직 추가적인 자본(AC)으로 1% 올리기 위해서 사용될 때만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17)”

 

이 분석에서 보면, 축적의 높은 단계에서 총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너무 크고 이윤율이 너무 작은 지점, 기존의 불변 자본이 생산된 전체 잉여가치를 흡수할 정도로 확대되는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 축적은 제한될 것임이 명백하다. (18) 더욱이 이 위기가 접근함에 따라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배분을 위한 가치의 비율 역시 감소하며, 이로 인해 자신의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자의 첨예한 투쟁이 불가피해진다 –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추가적인 축적을 위한 충분한 잉여가치의 부족에서 비롯된 해고와 실업, 생산력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는 무능력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붕괴를 향한 추동을 축적 과정 그 자체에서 찾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붕괴 경향은 자본의 주기적인 “과잉-생산” 위기로 나타났었다. 자본의 평가 절하, 대기업의 소규모 자본 흡수를 포함한 더 높은 수준의 자본 집중과 중앙집중화를 통해 이런 위기는 극복해왔다. 그리고 유기적 구성이 더 고도화되고, 더 높은 착취율로 결국 새로워진 축적에 이른다. 그런데도 새로워진 축적이 뒤따르는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의 역사는, 이윤율 하락 경향과 붕괴로의 장기적 경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위기가 초기의 붕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최종적 붕괴는 위기가 완전히 발전하여 어떤 역-경향들로도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19)”

 

현실에서 이윤율 하락 경향은 다양한 역-경향들을 불러일으키는데, 처음에는 하락을 성공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요한 것은 아래와 같다.

 

1. 노동자의 생활 수준의 하락 또는 생산성 향상에 의한 착취율의 증가. 우리는 앞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그 자체가 생산성 향상과 따라서 이윤율 하락에 대한 역-경향을 제공해 줄 수도 있는 잉여 가치율의 증가를 살펴보았다. (20) 위기의 때마다 자본가는 착취의 절대적 증가로 잉여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임금 삭감, 노동시간의 증가, 등).

2. 원자재 비용의 하락과 결과적인 불변 자본 요인들의 저렴화와 잉여 가치율의 비율적 증가. 유사하게, 더 저렴한 식재료는, 다른 모든 것이 같다면, 노동력의 교환 가치를 떨어뜨리고, 따라서 자본가의 생산 비용을 감소시킨다.

3. 해외 무역. 저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가진 해외의 자본에 가치보다 높은 수준에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가진 자본은 추가 이윤을 만들 수 있고, 따라서 이윤율 하락에 반격에 기여한다.

 

그러한 도구들이 이윤율 하락 경향을 특정 시기 동안 성공적으로 무효화시켰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들은 오직 문제를 악화시킬 뿐인데, 왜냐하면 자본의 축적은 가속하고, 유기적 구성은 더욱 증가하는 가운데, 더욱 노골적으로 장기적 이윤율 하락 경향이 그대로 두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윤율의 점진적인 하락은 위에서 개괄한 것처럼 경제적 위기에 의해 해소해 왔고, 이전보다 집중화되고 중앙집중화된 자본과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축적의 순환이 그 뒤를 따랐다. 모든 위기에서 순환의 처음에 설립된 이윤율은 그 이전 순환의 시작에서보다 더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고, 이윤율 하락의 역(逆) 경향은 더욱더 짧은 기간 이후 부적절한 것이 되고, 위기들은 그 자체로 더 자주, 그럴 때마다 더 심한 강도로 발생한다. 더욱이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역 경향들이 효과적일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보기를 들어 착취의 심화는 노동자들이 살아야만 하고 영원히 최저 생계 수준 이하의 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이 위기의 심화와 함께 격화되면서 강화된 계급 자체의 전투성에 의해서도 제한된다. 따라서

 

“역 경향의 힘이 정지함에 따라, 자본주의적 붕괴 경향은 통제 속에 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위기, 또는 자본주의의 죽음의 위기를 갖는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남아 있는 수단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영구적이고 절대적인, 그리고 보편적인 빈곤화밖에 없다. (21)”

 

우리는 축적이 특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다시 말해 자본이 세계적 규모에서 지배적인 생산양식인 곳에서, 가치법칙이 그 자체로 세계적인 법칙으로 확립될 때, “역 경향의 힘이 정지했다”라는 것을 볼 것이다.

 

-ER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ㅣ 김영욱

 

<주>

 

(1) 마침내 우리가 이제 공개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은 ‘Ant Pace’ 덕분이다. 그는 CWO의 오랜 지지자이며, 오래 전 스스로 원본 글 전체를 다시 입력하고 표를 재생산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그 첫 번째 부분이 여기에 실리게 되었다.

 

(2) 우리는 스탈린주의자 비밀 당원인 쌍둥이 로버츠(Roberts)와 카체디(Carchedi) 또한 사회주의가 단지 국가 통제 아래의 자본주의라 생각한 것 같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3)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p.17 (Lawrence and Wishart)

 

(4) 맑스, 「자본」 Vol. II, p.37 (Lawrence and Wishart)

 

(5) 맑스, Preface to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in Early Writings, p.426 (Pelican, 1975)

 

(6) 맑스, 「그룬트리세」, p.226 (Pelican). 귀중한 금속은 화폐를 위한 가장 적절한, 내구성이 있고 편리한 크기에, 균일한 물리적 질, 상대적으로 희귀한 - 물질을 제공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공유 재산이 아니고, 따라서 교환가치로 생산되는 객체인 것이다. 따라서 화폐는 그 자체로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이면서, 모든 다른 상품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7) 맑스, 「자본」 Vol. 1, p.147

 

(8) 부하린, 「Imperialism and the Accumulation of Capital」, 159페이지 (Merlin Press, 1972). 확대 재생산에 대한 전체 설명을 위해서는 이 작품과 부록을 보라.

 

(9) 매틱, 「맑스와 케인즈」, 76쪽 (Merlin Press, 1969)

 

(10) 맑스, 「자본」 Vol. III, p.157

 

(11) 매틱, op.cit. p.46

 

(12) 맑스, op.cit. p.158

 

(13) Engels to Schmidt in Marx/Engels Correspondence, p.553 (Progress Publishers, 1975)

 

(14) 맑스, 「그룬트리세」, op.cit., pp.748-9

 

(15) 매틱, ‘The Permanent Crisis’, in International Council Correspondence, November 1934

 

(16) op.cit. p.5

 

(17) op.cit. p.7

 

(18) 어떻게 이 지점에 도달하는지에 더 자세한 묘사가 필요하다면 아래 부록2에 재출간된 그로스만의 자본 축적 모델을 보라.

 

(19) op.cit., p.9

 

(20) 맑스는 이윤율의 하락 경행을 분석할 목적으로 잉여 가치율을 고정으로 가정했지만, 그가 다른 역-경향들과 달리 잉여 가치율의 증가가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맑스는 「자본론」 3권에서(예시로 209쪽, 법칙 그 자체 챕터를 보라) 이윤율이 잉여 가치율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떨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21) op.cit. p.14

 

2022년 8월 31일

「혁명적 전망」 20호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8-31/capitalism-s-economic-foundations-p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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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군국주의와 해체

군국주의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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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는 1990년 5월 소련이 붕괴하기 전 동구권이 붕괴한 지 몇 달 만에 '해체에 관한 테제'(「국제평론」 62호, 107호)를 채택했다. 1990년 8월 초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도록 이끈 사담 후세인에 대해 미국이 설정한 함정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집중한 것은 동구권이 사라진 첫 번째 결과였다. 대서양 동맹의 대열을 좁히려는 미국의 시도는 동구의 적이 실종됨으로 인해 붕괴의 위협에 놓였다. 1990년 10월 ICC가 해체 테제를 보완한 '군국주의와 해체' 소개 전문(「국제평론」 64호)을 논의해 채택한 것은 미국 주도의 주요 서방 국가들의 대(對)이라크 군사 공세를 준비했던 이들 사건 이후였다.

 

ICC는 2017년 제22차 국제대회에서 27년 전 채택한 본문을 기본적으로 확인한 해체 테제 '오늘의 해체 보고서' 「국제평론」 164호를 업데이트해서 채택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국주의 문제에 대한 보완적인 글을 우리에게 요구하는데, 1990년 10월의 상황과 비슷하다. 쇠퇴기 전쟁 문제에 대해 ICC가 수십 년 동안 스스로 부여한 분석의 틀을 잊어버린 결과 이 전쟁의 발발을 예견하지 못한 실수를 생각하면 그러한 조치는 더욱더 필요한 부분이다.

 

1) 1990년 "군국주의와 해체"라는 글의 1번 항목은 우리에게 맑스주의 방법의 살아있는 성격과 과거에 우리가 할 수 있었던 분석을 비판, 확인하거나, 또는 그것을 더 많이 만들도록 수정함으로써 끊임없이 우리에게 제시되는 새로운 현실과 맞설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세밀한 본문에서는 이 항목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현재 전쟁에 대한 일부 부르주아 "전문가들"이 만든 잘못된 해석에 직면했을 때, 프롤레타리아 정치 환경 대부분의 집단에 의해, 전쟁과 더 일반적으로,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맑스주의 방법의 근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용하다.

 

그 밑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있다: "인간은 존재의 사회적 생산에서 필연적으로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한, 즉 물질적 생산력 발전의 결정 단계에 상응하는 생산 관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 관계의 총체성은 사회의 경제 구조를 구성하는데, 이는 법적, 정치적 상부 구조를 형성하며 일정한 형태의 사회적 의식이 존재하는 진정한 기반이다. 물질적 경제적 기반이 사회생활의 다른 측면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은 종종 기계적이고 환원주의적인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엥겔스가 1890년 9월 조지프 블로흐(Joseph Bloch)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고 많은 다른 문헌에서)  "유물론적 역사 개념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역사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실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맑스와 나는 둘 다 이것보다 더 강력하게 주장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경제적 요인이 유일한 결정적 요소라고 말하도록 왜곡한다면, 그는 그 명제를 무의미하고 추상적인, 터무니없는 말로 변형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경제적 상황은 기본이지만, 계급투쟁의 정치적 형태와 그 결과들, 보기를 들어 성공적인 전투 후 승리한 계급에 의해 확립된 헌법, 법적 형태, 그리고 특히 이 모든 실제적 투쟁의 반영들, 즉 참여자들, 폴리의 두뇌, 즉 상부구조의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또한 많은 경우에 역사적 투쟁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고 특히 그들의 형태를 결정하는 이 모든 요소의 상호작용이 있는데, 이 요소들은 수많은 사고 속에서 (…) 경제 운동이 마침내 자체적으로 주장하게 된다."

 

분명히, 우리는 부르주아지의 "전문가"들에게 맑스주의 방법을 채택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한편, 노동자 운동, 특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본 원칙과 관련하여 맑스주의자이며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많은 조직이 전쟁의 원인에 대한 엥겔스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비판한 것을 주목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따라서 1990-91년 걸프전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었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뻔뻔하게 정의하여 걸프만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받아 왔다. 이란에 대항하여 이라크를 지원하게 했던 것과 같은 이익 때문에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원하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대(對)이라크 석유 군주"(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 Le Proletaire의 전단)를 작성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실, 걸프만의 위기는 석유에 대한 통제의 위기이다. 값싼 휘발유가 없으면 수익이 낮아질 것이다. 서구 자본의 이익은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중동에서 유혈사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며….(「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의 영국 지부) 이탈리아의 ICT 지부인 「코뮤니스트 투사」의 분석에 따르면, "석유는 거의 모든 생산 주기에 직간접적으로 존재하며, 독점적인 임대료 형성 과정에서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결과적으로 가격 통제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가 침체의 징후를 분명히 보이고, 엄청난 규모의 공공 부채, 유럽과 일본의 경쟁에 직면한 낮은 생산성에 빠진 생산적 기구와 함께, 미국은 세계 경제의 이러한 근본적인 변수인 석유 가격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중동에서 이후 30년 동안 일어난 일은 그런 분석과 모순된다. 이 지역(2003년 부시 주니어 행정부에 의해 시작된 전쟁과 같은)에서 미국의 다양한 모험은 미국 부르주아계급의 경제적 비용이 유가의 통제(만약 정말로 이 전쟁들로 인해 어떤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와 관련된 그 어떤 것보다 더 높았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직접적인 경제적 목표가 없다. 2022년 2월 24일 적대감을 촉발한 러시아도, 1989년 제국의 붕괴 이후 러시아가 약해진 틈을 타 20년 이상 나토의 국경까지 확장하기 위해 나토의 확장을 추진해 온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한다면, 러시아는 현재 파괴하고 있는 지역을 재건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머지않아, 서방에 의해 시행된 경제 제재는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를 더욱 약화할 것이다. 서방측에서는 이미 수백억 달러가 투입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와 같은 행동도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사실 현재의 전쟁은 ICC가 분석한 자본주의 쇠퇴기와 특히 쇠퇴의 정점을 구성하는 해체 국면의 전쟁 문제를 더욱 잘 보여주는 사례다.

 

2) 20세기 초부터 노동운동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역사적 쇠퇴기에 진입한 가장 중요한 징후로 부각했다. 이러한 역사적 시대의 변화는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GCF)」는 이러한 변화의 구체적인 특징에 대해 밝혔다.

 

"증강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전쟁은 (국가, 식민지, 제국 정복에 관계없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성숙하고, 강화되고, 확장되는 상향적인 움직임을 상징했다. 자본주의 생산은 전쟁을 정치 경제의 다른 수단으로 계속 사용했다. 각각의 전쟁은 더 큰 확장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열어 자본주의 발전을 보장함으로써 정당화되고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에 전쟁은, 평화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쇠퇴를 표현하고 이를 매우 가속한다.

 

전쟁을 생산과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의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과정으로 나타날 평화와는 반대로 사회의 발전에 대한 훼방꾼이자 족쇄인 부정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이고 경제적으로 결정된 과정에 도덕적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전쟁은 자본이 발전을 위해 외부 영역을 개방하는 필수적인 수단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러한 영역이 존재하고 폭력을 통해서만 개방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발전의 모든 가능성을 다 소진한 자본주의 세계는 근대 제국주의 전쟁에서 생산력을 심연 속에 집어삼킬 수밖에 없는 붕괴의 표현을 발견하고, 생산의 외적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끊임없이 가속하는 리듬으로 파멸에 파멸을 축적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전쟁과 평화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이 존재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상승기와 쇠퇴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단계에서 전쟁의 기능(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관계)에 차이가 있다. 1단계에서는 전쟁이 시장의 확장을 보장하는 기능을 하지만, 2단계에서는 생산은 본질적으로 파괴 수단, 즉 전쟁의 생산에 맞춰진다. 상승기에 전쟁이 경제 발전의 과정에 기여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기에는 쇠퇴기의 경제 활동이 본질적으로 전쟁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전쟁은 항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전쟁은 영원한 삶의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 대회」, 1945년 7월 국제정세 보고서, ICC 제3차 총회에서 국제평론 제18호에 발표되었다).

 

1945년에 공식화된, 이러한 분석은 새로운 세계 전쟁이 없는 동안에도 근본적으로 유효했다. 그 이후로 세계는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만큼 많은 죽음을 초래한 100개 이상의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은 동구권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 이후에도 계속되고 심지어 심화하여 왔는데, 이것은 자본주의가 붕괴의 단계로 진입하는 첫 번째 큰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1990년에 "사회의 일반적인 해체는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라는 문서에서 이것에 대해서 발표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단계는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적 위기, 국가 자본주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현상 등 쇠퇴기의 구체적인 특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더욱이, 해체는 자본주의가 쇠퇴기로 급락하는 모순의 정점으로 나타나는 한, 이 시기의 구체적인 특징들은 그것의 궁극적인 단계에서 여전히 더 악화한다. (...) 스탈린주의의 종식이 국가 자본에 대한 역사적 경향의 종식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징후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현재 제국주의 블록의 소멸은 제국주의의 사회생활에 대한 지배력의 문제에 대한 사소한 소명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근본적인 차이는 스탈린주의의 종말은 특히 비정상적인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에 해당하지만, 블록의 종말은 여전히 더 야만적이고, 비정상적이며, 혼란스러운 형태의 제국주의로 가는 문을 열 뿐이라는 사실에 있다. 1990-91년 걸프 전쟁,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특히 아프리카에서 20년 이상 지속된 많은 전쟁이 이러한 예측을 더욱더 잘 확인시켜 주었다.

 

오늘날 유럽의 심장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현실과 훨씬 더 큰 규모의 새로운 보기이다. 그것은 체제의 세계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전쟁의 완전한 비합리성에 대한 ICC의 논제를 웅변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국제평론」 제168호, 2022년 5월에 채택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과 중요성" 본문 참조)

 

3) 사실 1945년 GCF(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의 본문에 발표된 바와 같이 19세기 전쟁과 20세기의 전쟁을 구분하는 것이 완전히 타당하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는 고조기에는 전쟁이 경제 발전의 과정에 기여했던 반면, 쇠퇴기에는 경제 활동이 본질적으로 전쟁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의해 현저하게 표현되지만, 19세기의 각 전쟁에 직접적인 경제적 원인을 돌릴 수는 없다. 보기를 들어, 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 부르주아지에 재앙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였고, 이로 따라 결국 영국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히 약화하였으며, 19세기 중반에 프랑스 부르주아지가 지배적 지위로 향하게 하는 후자의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후자의 경우, 맑스 ("프랑스-독일 전쟁에 관한 총회 제1차 연설"에서) 프랑스와 독일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역동적인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독일 측에서는 프로이센 국왕이 당시까지만 해도 관세동맹(Zollverein)만 관리하던 소규모 게르만족 국가들을 왕국에 다시 편입시켜 제국을 세우려 했다.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의 합병은 이러한 결혼의 선물이었다. 나폴레옹 3세에게 전쟁은 근본적으로 프랑스의 산업 발전으로 위협받는 제2제국의 정치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로이센 측에서는, 군주의 야망을 넘어, 이 전쟁은 독일의 완전한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정치적 통합을 가능하게 하지만, 프랑스 입장에서 이 전쟁은 완전히 반동적이었다. 사실 이 전쟁의 보기는 엥겔스가 역사적 유물론에서 완벽하게 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회의 상부구조, 특히 정치와 이데올로기(정부의 형태와 국민감정의 구성)가 사건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사회의 경제적 기반은 독일의 산업 발전의 실현과 전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결정 요인으로 본다.

 

사실, 각 전쟁의 경제적 원인을 찾아 "유물론자"가 되려고 하는 분석은 맑스주의 유물론도 변증법적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망각"은 현시대 제국주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되는데, 이는 사회생활에서 군국주의를 매우 강화하는 것에 의해서 명확하게 정의된다.

 

4) 1990년의 "군국주의와 해체"라는 글은 개방적인 시기의 제국주의 분쟁에서 미국 권력이 취할 위치에 대해서 중요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진입한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그리고 걸프전 사건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세계는 "각자도생"의 경향이 완전히 운영되는, 국가사이의 동맹이 제국주의 블록을 특징짓던 안정과는 거리가 멀지만, 당장의 필요에 따라 지배되는 광범위한 자유주의로 나타날 것이다. 유혈 혼란의 세계에서, 미국 경찰이 점점 더 거대하고 잔인한 군사력의 사용으로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은 냉전 시대의 경쟁자가 몰락한 후에도 특히 1990년대 말, 옛 유고슬라비아와 21세기 초의 중동(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세계 경찰'의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했다. 유럽에서는 바르샤바 조약에 가입했던 나토, 심지어 소련에 가입했던 나라들(불가리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에 새로운 국가들을 통합함으로써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서구와 동구권이 세계를 공유하면서, 1990년에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그와 같은 세계의 새로운 분할이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쇠퇴기 동안, 다양한 제국주의 적대감이 분산되고, 세계(또는, 적어도 그 결정적인 영역)이 두 블록으로 나뉘지 않는 그런 상황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타난 두 개의 주요 제국주의 별자리의 소멸은 두 개의 새로운 블록("동구권 붕괴 후, 불안정성과 혼란", 「국제평론」 61호)을 재편성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글에서 그러한 과정의 모든 걸림돌과 특히 자본주의의 붕괴로 인한 걸림돌을 지적했다." 우리가 이미 강조했듯이 자본주의 사회 해체의 깊고 일반화된 현상에 의해 두 군사 집단 사이의 새로운 지구를 공유하는 경향은 반대에 직면하게 되고, 심지어 최종적으로 타협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 「국제평론」 제57호).

 

이 분석은 "군국주의와 해체"라는 소개 글에서 발전되었고, 30년 후, 세계가 두 개의 군사 블록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 이를 확인해 준다. 「국제평론」 제168호(인용)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과 중요성"이라는 글은 1990년 기사에 기초하여 발전되었는데, 이는 그들 사이에 지구를 공유하는 두 제국주의 블록의 재건이 여전히 의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군국주의에 관해서 우리가 1990년에 쓴 글을 상기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쇠퇴기의 시작 그리고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의 첫해까지만 해도, 비록 블록 리더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필요했지만, 제국주의 연합의 다른 파트너들 사이에 일정한 '동등함'이 존재할 수 있었다. 보기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 프랑스, 미국이라는 세 '승전국'이 운영할 수 있는 군사력 수준에서의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상황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상당히 바뀌었는데, 당시 '승전국'들은 이미 동맹국들보다 훨씬 더 강력했던 미국에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 모두 각 블록 지도자가 특히 핵무기 보유 덕분에 블록의 다른 국가들에 대해 절대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 "냉전"(방금 끝난) 기간 동안 강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가 더욱더 쇠퇴기에 빠져들게 됨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블록 사이 갈등 규모와 그에 관계되는 것은 점점 더 세계적이고 일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깡패들이 더 많을수록, 더 강력한 '깡패'가 되어야 한다.)

 

- 무기 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환상적인 수준의 투자를 요구한다(특히, 주요 강대국만이 완전한 핵무기의 개발과 더 정교한 무기의 연구에 필요한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국가 사이의 원심력이 강화되는 경향은 국가의 적대감이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자본주의의 마지막 요소도 그와 같다. 부르주아지의 다른 분파들이 더 많이 서로를 분열시키는 경향이 있을수록, 위기는 그들의 상호 경쟁을 날카롭게 하므로, 따라서 그 분파들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서 국가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공개적인 역사적 위기가 세계 경제를 더 많이 파괴할수록, 더 강자들은 다른 나라 구성 요소들이 이탈하는 경향을 억제하고 통제하기 위해 블록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쇠퇴의 마지막 단계인 해체의 단계에서, 이러한 현상은 심각하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모든 이유, 특히 마지막 이유로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의 재건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혁명이나, 인류의 파괴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

 

오늘날 이 분석은 전적으로 타당하지만, 우리는 1990년 글에서는 중국이 언젠가 새로운 블록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이 미국의 주요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누락의 배경에는 중국이 주도적인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점, 즉 제국주의 블록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여건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중요한 오류이다. 게다가, 중국 부르주아지는 군사력을 지원할 수 있는 경제적, 기술적 힘을 스스로 보유하고 있어야 미국 부르주아지와 군사적으로 경쟁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1980년대 말 소련과 같은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이유 중에서도 중국이 (특히 대만과의 관계에서) 점점 더 커지는 군사적 야망을 확고히 하고 있지만, 아직 혹은 앞으로 오랫동안 중국 주변에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을 형성하려는 어떤 허세도 부릴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5) 우크라이나 전쟁은, 특히 핵무기에 대한 푸틴의 태도에서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블록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세계 전쟁은 제국주의 블록 구조의 궁극적인 단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한된 국가들과 관련된 전쟁이 동맹의 유희를 통해 전면적인 큰불로 변질하는 것은 구축된 제국주의 블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 열강 간의 제국주의 경쟁의 첨예화에서 비롯된 깊은 역사적 원인인,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다양한 동맹국들이 점차 분쟁에 개입하는 일련의 상황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왕위 계승자 암살 사건을 이용하여 세르비아 왕국을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세르비아는 영국, 프랑스와 함께 "트리플 협정"을 맺었던 러시아 동맹국의 지지를 즉시 받았다. 1914년 8월 초, 이 모든 국가는 서로 전쟁을 벌였고, 1915년 일본과 이탈리아, 1917년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이 그 뒤를 따랐다. 마찬가지로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했을 때, 1920년 폴란드, 영국,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조약의 존재는 비록 그들의 부르주아지가 그러한 충돌에 대한 특별한 욕구가 없었음에도 이 두 나라를 독일에 선전포고하게 했다. 유럽 3대 강대국 간의 분쟁은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오늘날 NATO 헌장 5조는 회원국 중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은 모든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1989년 이전에 바르샤바 조약에 가입했던 국가들, 심지어 발트 3국과 같은 소련이 NATO에 적극적으로 가입한 이유이다. 이제 핀란드와 스웨덴도 수십 년간 '중립'을 유지한 후에 동참하고 있다. 규정이 그렇게 적시되어 있는 상항에서, 우크라이나 국가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푸틴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가 두 블록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것은 제3차 세계대전이 현재 의제가 아니며, 다시는 그 전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세계정세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1990년 1월에 우리가 작성한 바와 같이: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분석에서, 프롤레타리아 해법인- 코뮤니스트혁명이- 홀로 인류 파괴(부르주아지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반대할 수 있지만, 이러한 파괴가 반드시 제3차 세계대전의 결과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강조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또한 해체 과정의 논리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맑스주의에 의해 부각된 '사회주의 또는 야만'의 역사적 대안은 '사회주의 또는 제국주의 세계대전' 그리고 최근 수십 년 동안 핵무기의 개발 때문에 더욱 무서운 '사회주의냐 인류의 파괴'의 형태를 가져왔다. 이러한 관점은 동구권의 붕괴 이후에도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파괴가 제국주의 세계대전이나 사회 해체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ICC가 이 문서를 채택한 이후 30년 동안 사건들은 제3차 세계대전이 아닌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종말론의 네 기수가 "생태적 재난, 전염병, 기근과 국지적 전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6) "문서 소개: 군국주의와 해체"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부문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들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기보다는 이 부분의 발췌문을 인용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노동계급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본적인 부분이다. 분명히, 이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슈투트가르트(1907년)과 바젤(1912년)의 국제회의가 강조했듯이]의 중심이었다. 첫 번째 제국주의 살육 사건(레닌, 룩셈부르크, 리프크네히트의 전투, 독일과 러시아의 혁명)에서 더욱 결정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 중요성은 전쟁 기간, 특히 스페인 내전 동안 변하지 않았으며, 물론 1939-45년 사이의 세기 중 가장 큰 대참사 동안에 그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 사실, 20세기의 시작 이래로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 및 그 혁명적 소수가 보기를 들어 노동조합이나 의회 문제보다 훨씬 더 많이 맞서야 했다. 전쟁이 죽음의 고통과 그 결과 인류의 생존에 드리워진 위협을 표현하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야만이 가장 집중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그렇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야만성이 과거 수십 년보다 훨씬 더 많이, (부시와 미테랑이 '새로운 평화 질서'의 예언을 좋아하든 말든) 세계정세의 영구적이고 만연한 요소가 되어, 점점 더 많은 선진국(이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서만 제한됨)이 관여하게 됨에 따라 전쟁 문제는 여전히 노동계급에 더 중요하다. ICC는 과거와 달리 새로운 혁명적 물결의 발전은 전쟁이 아니라 경제 위기의 악화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대규모 계급투쟁의 출발점인 노동계급 동원은 경제적 공격에서 비롯된다는 이 분석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같은 방식으로, 의식 수준에서 위기의 악화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막다른 골목을 드러내는 근본적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식 수준에서 전쟁의 문제는 다시 한번 첫 번째 질서의 한 부분을 담당할 운명이다.

 

- 인류의 파괴라는 역사적 막다른 골목의 근본적인 결과를 강조함으로써

 

- 프롤레타리아트가 오늘날 (다른 해체의 징후와 달리) 제한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위기, 쇠퇴와 해체, 중앙 국가에서 그것은 현재 국가주의 깃발 아래 등록되지 않는 범위에 이르기까지 구성함으로써. (13항)

 

그것은 전쟁이 위기 그 자체와 경제 공격보다 훨씬 더 쉽게 노동계급을 상대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그것은 평화주의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무력감을 줄 수 있고, 부르주아지가 그러한 경제적 공격을 계속해서 수행하게 할 수 있다." (14항)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무력감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방국가에서는 주류언론들이 쏟아내는 선전방송에 힘입어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어떤 강화를 증진하고 있는데, 한 편으로는 '독재자'(푸틴)인 '악'과 다른 한 편으로는 '민주주의자'(젤렌스키와 그의 서방 지지자들)의 대립을 보고 있다. 그러한 선전은 2003년 "위대한 미국 민주주의"의 주인인 부시 주니어가 이라크와의 전쟁 ("큰 거짓말" 사용, 유엔 "국제법" 위반, "금지된" 무기 사용, 민간인에 대한 폭격, "전쟁 범죄" 등)에서 푸틴과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분명히 효과가 더 적었다.

 

그렇긴 하지만, ICC는 중앙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트, 특히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 이전의 사회주의 블록의 국가들 사이의 차이를 내세우는 "가장 약한 고리"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기사 "계급투쟁의 일반화의 중심에 있는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 「국제평론」 31호와 토론 : “'가장 약한 고리' 이론에 대한 비판" 「국제평론」 37호 참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커다란 정치적 약점을 부각한다. 현재의 전쟁은 중앙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에도 부정적인 정치적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것은 고통받는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이 그것을 확실히 마비시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중국은 이미 급격한 인플레이션 상승(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시작되었지만, 후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에 따른 경제적 공격을 통해 이 전쟁의 결과를 느끼고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공격에 대한 계급투쟁의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의 계급 내 개입은 물론 심각한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전체 계급에 대한 공격과는 별개로 다음과 같이 결정된다.

- 근본적인 전쟁 문제의 중요성

- 오늘날 위태로운 무게에 대해서 계급 내 혁명가들이 의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

그러므로 이 문제가 우리 언론의 전면에 계속 등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시기, 이 문제가 국제적 사건의 전면에 있는 시기에는, 우리는 노동자들의 그것에 대한 특별한 감성으로부터 특별한 강조와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이익을 얻어야 한다. (문서 소개: 군국주의와 해체, 15항)

 

7) 30여 년 전에 제시된 이러한 방향은 오늘날도 완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한 우리의 선전에서는 혁명적 투쟁의 일반화를 위한 조건에 대한 우리의 분석, 특히 1981년 「국제평론」 26호에 실린 우리의 글 "노동계급 투쟁의 일반화를 위한 역사적 조건"에서 발전된 분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수십 년 동안 혁명가들은 파리 코뮌(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1905년 러시아혁명(러시아-일본 전쟁 중), 1917년과 1918년 독일에서의 제국주의 전쟁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었다고 여겼다. 또는 심지어 이것은 오직 세계대전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코뮤니스트좌파 단체들 사이에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분석인데, 이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역사적 경로에 대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직 ICC만이 이러한 분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맑스와 엥겔스가 생전에 발전시킨 고전적 분석으로 돌아갔는데, 이 분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은 자본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경제적 붕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전쟁에 아주 많은 반응을 보이게 되면, 그 나라의 부르주아지는 적대적인 행동을 끝내고 전쟁에서 퇴장함으로써 그러한 반응을 약화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1918년 11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을 의식한 부르주아지는 발트해에서 수병들의 봉기가 일어난 지 며칠 만에 협정국과 휴전협정을 체결하는 데 급급했던 것은 바로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조적으로, 어떤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트의 대규모의 전면적인 투쟁의 원인이 될 경제적 경련을 극복하고 끝낼 수 없을 것이다.

 

b) "전쟁은 승자뿐만이 아니라 패자도 발생시킨다. 패배한 국가들에서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혁명적인 분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서 생겨나는 복수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이러한 후진적 경향은 혁명가들의 진영에까지 파고들었고, 이는 민족적 코뮤니즘을 주창했던 KAPD(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의 경향과 KPD(독일 코뮤니스트당) 선전의 축이 될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볼 수 있다. 더 나쁜 것은 승전국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이미 나타났듯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는 순수하고 단순한 애국주의 정신이 아니라면 나태한 정신이었다.” (「국제 평론」 26호)

 

c) 부르주아지는 제1차 세계대전과 그것이 일으킨 혁명적 물결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에 중앙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심각한 정치적 패배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독일 측에서는 나치 테러를, 연합군 측에서는 반(反)파시스트 동원을 하여 이를 달성하였다. 반면에 지배계급은 특히 패전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부상하는 것을 막거나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하였다.  "가장 위태로웠던 이탈리아에서 부르주아지(...)는 즉시 정권을 바꾸고 그런 후에 동맹을 맺었다. 43년 가을에 이탈리아는 둘로 나뉘었다. 남쪽은 연합군의 손에 있었고, 나머지는 나치에 의해 점령되었다. 처칠의 조언(이탈리아는 스스로 국을 끓이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에 따라 연합군은 북쪽으로 진군하는 것을 늦추었고, 두 가지를 성취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은 독일군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게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반(反)파시스트' 세력에게 반(反)자본주의 투쟁의 지형에서 반(反)파시스트 투쟁의 지형으로 운동을 전환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 독일에서… 국제 부르주아지는 1918-19년과 유사한 사건의 반복을 피하고자 체계적으로 행동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연합군은 함부르크나 드레스덴과 같은 대도시에서 전례 없는 폭격을 통해 숙소의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몰살했다. 1945년 2월 13일, 히로시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두 배인 135,000명(히로시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두 배)이 폭격으로 사망했다. 군사적 목표로서 그들은 쓸모가 없었다. 게다가 독일군은 이미 철저하게 패했다) 그들의 목표는 노동계급을 공포에 떨게 하고 어떤 식으로든 조직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둘째, 연합군은 독일 영토 전체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들은 패배한 독일 부르주아지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영토를 직접 관리하려고 안달했다. 마지막으로 후자가 항복하고 그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연합군이 민간인들을 만났을 때 초래될 수 있는 폭발적 혼잡을 피하고자 수개월 동안 전쟁 포로를 붙잡았다. 1944년 후반 폴란드에서는 붉은 군대도 바르샤바에서 봉기한 노동자들을 학살하는 더러운 일을 나치 군대에 맡겼다. 1945년 초 부다페스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43 :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으로 야기되는 희생에 반대한다.” 「국제평론」 75호)

 

d) 제1차 세계대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출현은 이 전쟁의 특징에 의해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의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이 전쟁은 특히 탱크와 항공기와 같은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수단들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양측의 전투원들 간의 직접적인 교전의 가능성은 크게 제한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3차 세계대전은 어느 단계에서 핵무기에 관한 요구를 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분명히 그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8) 과거에 우리는 "혁명적 패전주의"의 구호를 비판해왔다. 이 구호는 특히 레닌이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제기하였고, 근본적으로 국제주의적인 우려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는 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들이 사회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기 전에 그들의 나라가 승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회-애국주의자들이 퍼뜨린 거짓말에 대한 비난이었다. 이러한 거짓말들에 직면하여, 국제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유리한 것은 한나라의 승리가 아니라 반대로 그 나라의 패배라고 지적했다. (프로이센에 패한 후 파리 코뮌이 이어진 것과 러시아의 대일 전쟁 실패에 따른 1905년 혁명의 보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후, "혁명적 패전주의"의 구호는 진정한 국제주의에 등을 돌린 자국의 부르주아 계급이 패배하는 것을 보기 위한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바람으로 해석되었다. 실제로 레닌은 1907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마르토프와 함께 제정된 개정안을 구체화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구호를 먼저 내세웠다. “그런데도 전쟁이 발발할 경우 [사회주의 정당들은] 전쟁을 조속히 끝내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가장 깊은 민중의 심연을 자극하여 자본주의 지배의 붕괴를 촉진할 의무가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의 전환"하라는 구호를 구체화한 것으로, 프롤레타리아는 다른 나라에서 계급의 형제들을 학살하기 위해 그들의 착취자들을 향해서 무기를 들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군인들이 여전히 그들의 장교들에게 총구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베트남 전쟁 동안, 미군이 상관에게 "우연히" 총을 쏘거나 폭탄을 장교들의 천막에 투척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어떤 식으로든 혁명적 공세의 기초를 구성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선전에서는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구호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는 구호를 함께 외쳐야 한다.

 

더 일반적으로, 무엇이 유효한지(국제주의 원칙의 방어)와 더는 유효하지 않은지(전술적 구호)를 강조함으로써 과거 전쟁에 직면했을 때 혁명가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은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의 책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는 슬로건이 앞으로는 현실적 관점을 구성할 수 없다면, 다른 한편으로 1907년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채택된 수정안, 특히 사상의 타당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혁명가들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온 힘을 다해 사용하여 가장 깊은 대중 계층을 선동하고 자본주의 지배의 몰락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이 구호는 현재 프롤레타리아트의 취약한 상황을 고려할 때 분명히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계급에 대한 코뮤니스트 개입의 신호탄으로 남아 있다.

 

2022년 5월

「국제평론」 168호, 2022년 여름호

국제코뮤니스트 흐름(ICC)

옮긴이 ㅣ 이명수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37/militarism-and-decomposition-may-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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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2023년 전망

2023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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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전망이 암울하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의미가 없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자본주의를 괴롭히고 있고, 전 세계의 임금 노동자들은 완전한 궁핍은 아니더라도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에 직면해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에 대한 경제적 선택지가 좁아짐에 따라 정치인들의 책략 여지도 점점 제한되고 있다. 지난여름 영국 총리의 빠른 교체는 '안정적인 정부'에 대한 영국의 명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헛소리 요소 외에도 무능 요소가 우스꽝스러운 결과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기사(1)에서 지적했듯이, 트러스(Truss)와 콰르텡(Kwarteng)의 속임수로 인해 노동계급의 심각한 생활비 위기가 더욱 악화하였다. 그러나 물론 더 넓은 맥락은 수십 년 동안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괴롭혀 왔고, 지옥 같은 전쟁 파괴를 통한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낮은 이윤율의 더 깊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이다. 우리가 현재 경제적 존재 이유를 정의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원본 문서를 업데이트하고 재발행하는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현시대에 대해 맑스가 분석한 이윤율 하락의 결과에 대한 정당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익성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 작년은 2007~8년의 폭락 이후 금융 투기꾼들에게 최악의 해였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주식 및 채권 시장은 2022년에 30조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 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가들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인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거나 근접했다. 이윤율은 금융 전문가들이 거의 논의하지 않지만, 특히 미국에서 '낮은 이윤율'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이 비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예상대로,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의 모든 소동이 끝난 후, 작년 이집트에서의 후속 조치의 대표들은 전년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당황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 목표가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체가 점점 더 위협받는다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우리를 오해하지 말자, 우리는 '기후 부정론자'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의 문제인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본주의의 능력이나 의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실 COP27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진지한 시도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수완가들에게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임이 입증되었다.

 

그런데도, 2022년은 머리기사를 장식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 폭풍, 가뭄으로 인적 비용이 증가한 해로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명목상 NATO 동맹국을 끌어들이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대리전쟁 끝에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으로 인한 난민 수를 1억 명이 넘게 늘렸다. 그것은 이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긴 군사적 충돌이며 전 세계의 판도를 바꾸는 요인이다. 자본은 수익성 위기를 상쇄할 경제적, 재정적 회피 수단이 바닥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 경제 강대국 간의 군사 경쟁이 표면화되었다. 경박한 언론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큰 전쟁이 돌아왔다"라는 것은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행동 연장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이 전쟁은 앞으로 일어날 더 나쁜 전쟁의 전조이다. 바이든( Biden)과 블링컨(Blinken) 모두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실제 위협을 연결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군사적으로 어느 세력이 가장 강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작년 러시아의 국방 예산 660억 달러는 중국의 2,930억 달러와 합쳐도 1조 천억 달러가 넘는 나토(NATO) 회원국의 총예산에 비하면 왜소하다. 그러나 러시아도 중국도 팍스 아메리카나에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특히 '평화(pax)'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에 450억 파운드의 군비를 지출하여 미국 다음으로 나토에서 두 번째로 큰 군비 지출국이 된 자금난에 처한 영국조차도 군비 지출의 지속적인 증가가 오늘의 추세다. 공공 부문 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자금을 지원할 "돈이 없다"라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다.(2)

 

나토의 국방부는 휴면 무기 생산 라인을 하루아침에 가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영구 전쟁은 무기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장기 생산 계약을 확보하는 데 달려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무기 제조업체에 그러한 장기 계약을 제시하고 무기 생산의 대규모 확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독일은 "군사 현대화"를 위해 천억 유로를 약속했다. 일본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 적어도 2023년에 우리가 전망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며, 특히 중국의 군사 공격을 배제할 수 없는 대만에서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종 해결책(집단학살)'을 축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꿀 힘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일단 깨어나면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꿀 힘을 가진 잠자는 거인인 노동계급뿐이다. 이것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위원회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뒷받침하는 틀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대응이 아니라 영구적인 초점으로, 즉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오늘의 투쟁보다 진정한 문제를 우선시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다. 지금은 초기 단계이지만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이 자신만의 계급적 기구를 만들 때 미래에 해야 하는 것처럼, 다른 국제주의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전쟁과 전쟁을 부추기는 쇠퇴하는 체제에 대한 세계 노동계급의 정치적 저항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3년 1월 27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주>

(1) 「혁명적 전망」 21호, 3쪽,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 "내년에는 국방 지출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되고 거의 500억 파운드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분명히, 영국 자본의 수호자들은 이제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 (영국 국방성 장관, 벤 월리스가 의회에 보고, 「파이낸셜 타임스」 2023년 1월 3일 자에서 인용)

 

<출처> 「혁명적 전망」 21호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3-01-27/the-outlook-for-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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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Ⅰ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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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국제노동자협회(일명 제1 인터내셔널)는 1872년 9월에 개최되었다. 격렬한 회의가 끝난 후, 바쿠닌은 다수결로 추방되었고, 그때부터 노동자 운동의 적색과 흑색 경향은 각자의 길로 가게 되었다.

 

또는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한다. 그 사건으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오늘날까지 혁명가들을 계속해서 분열시키고 있는 의견 불일치를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바쿠닌과 맑스

 

바쿠닌은 1814년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러시아군에서 잠시 복무했지만, 1836년에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그는 피히테(Fichte)와 헤겔의 생각에 끌렸고, 알렉산드르 헤르젠(Alexander Herzen)과 니콜라이 오가레프(Nikolay Ogarev)와 같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1840년 그는 독일 철학의 고향인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맑스는 1818년에 자유주의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5년 그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본으로 갔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역을 면제받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1836년에 그를 베를린 대학교로 옮기게 했다. 맑스 또한, 헤겔의 사상을 알게 되었고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와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의 영향을 받았다.

 

그 당시 유럽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산업화는 낡은 사회 구조를 뿌리째 뽑았고, 새로운 운동과 새로운 사상을 낳았다. 두 젊은이가 철학의 영역에서 점차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간 것은 1825년 러시아의 12월 봉기, 1830년 프랑스와 벨기에혁명, 1831년 폴란드 봉기, 1831년 프랑스의 카누트(실크 노동자) 봉기, 영국의 인민헌장 운동 등의 사건이 배경이었다. 둘 다 베를린의 젊은 헤겔계 사람들 사이에서 첫발을 내디뎠고, 아르놀트 루게(Arnold Ruge)와 알게 되었으며, 1842년 처음으로 진지한 책을 출판(드레스덴의 바쿠닌, 쾰른의 맑스)했다. 그리고 둘 다 1843년 국가 당국에 의해 첫 번째 탄압(바쿠닌이 스위스로, 맑스가 프랑스로 추방되는)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빌헬름 바이틀링(Wilhelm Weitling)과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고, 곧 그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1844년 파리에서 바쿠닌과 맑스는 마침내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바쿠닌은 나중에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당시 나는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형이상학적 씨름을 아직 벗지 못했으며, 사회주의는 본능적이었을 뿐이었다. 비록 나보다 어렸지만, 맑스는 이미 무신론자, 의식 있는 유물론자, 정통한 사회주의자였다…. 우리는 자주 만났다. 나는 그의 학문과 열정적인 헌신에 대해서 크게 존경했다…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솔직한 친밀감이 전혀 없었다. 우리 기질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맑스는 나를 감상적인 이상주의자라고 불렀고, 그가 옳았다; 나는 그를 허영심 많고, 음흉하고, 교활하다고 불렀고, 나 또한 옳았다.”

(제임스 기욤이 인용한 바쿠닌의 원고, 1871년)

 

맑스는 새로운 동지 엥겔스의 도움을 받아 이상주의 및 종교와 분명한 정치적 결별을 하고 자본주의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반면 바쿠닌의 정치는 범슬라브주의(슬라브 민족이 거대한 민주 연방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이상주의와 종교적 관념에 방해받았다. 바쿠닌이 슬라브 인들에게 호소했던 것과 같은 해에 맑스와 엥겔스는 「코뮤니스트 선언」을 발표했다.

 

1848년 혁명의 발발은 두 혁명가를 유럽 전역의 투쟁(파리의 바쿠닌, 프라하와 드레스덴, 브뤼셀, 파리, 쾰른에서 맑스)의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보았다. 그들은 모두 폴란드혁명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유럽 운동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랐다. 엥겔스는 특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슬라브 국가들을 반동(反動)의 산실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리고 그가 "비(非)역사적 민족"이라고 불렀던,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민족적 열망을 일축했다. 이 시기에 맑스는 바쿠닌이 러시아 스파이라는 소문을 다른 두 명의 특파원으로부터 받아 그 소식을 노이에 라이니슈 차이퉁(Neue Rheinische Zeitung)에 실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맑스는 그에 대해서 해명하고 범슬라브주의에 관한 대중의 의견 차이에도 그 후로 몇 년 동안 바쿠닌을 옹호했다. 그런데도 바쿠닌에 대한 그러한 근거 없는 비난은 훗날 그의 정적이 악용했다.

 

반(反)혁명이 일어났을 때 맑스와 바쿠닌은 추방되고 체포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1849년 바쿠닌이 색슨 당국에 붙잡혔을 때, 그것은 단지 또 하나의 일시적인 좌절로 보였다. 대신, 그는 감옥에서 감옥으로, 그리고 여러 나라로 이감되어 구타와 고문을 견디며 여러 번 감형된 사형 선고받고, 마침내 망명 생활을 했다. 1861년에 이르러서야 그는 시베리아에서 탈출하여 서유럽으로 다시 돌아와 정치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한편 1849년 맑스는 런던으로 피신하여 정치경제학 비판에 전념하였다.

 

수년간 투옥 생활은 바쿠닌을 비통하게 만들었고, 독일에 대한 증오가 다시 불붙으면서 훨씬 더 엄격한 범슬라브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헤르젠과 오가레프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폴란드와 이탈리아의 민족해방 운동에 투신했다. 분할된 폴란드에서 1863년 봉기가 일어났을 때, 바쿠닌은 자원했지만, 거절당했다. 그 후 그는 스스로 봉기에 참여하기 위한 자신의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봉기 자체와 마찬가지로 원정은 실패했고, 폴란드 반란군은 고립되어 분쇄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바쿠닌의 범슬라브주의 희망에 타격을 주었고, 마침내 바쿠닌이 자신의 정치사상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한편 런던에서는 폴란드 봉기와 미국 남북 전쟁이 1864년 제1 인터내셔널 창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로 이주를 계획하고 있던 바쿠닌이 부재하게 된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와 맑스는 런던에서 잠깐 만났다.

 

“[바쿠닌]은 오늘 자신이 사는 이탈리아(플로렌스)로 떠났다. 나는 어제 16년 만에 처음으로 바쿠닌을 보았다. 나는 그를 전보다 매우 좋아한다고 말해야 했다, 폴란드 운동과 관련하여 그는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자체를 조용히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했지만, 18개월간의 투쟁과 같은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폴란드에서 그러한 도발을 했다. 폴란드는 보나파르트의 영향과 두 번째로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농민사회주의를 선언하는 폴란드 귀족의 망설임이라는 두 가지로 패배했다. 지금부터 - 폴란드 사건이 붕괴한 후 - 그[바쿠닌]는 사회주의 운동에만 관여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는 16년 후에 내가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알게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맑스가 엥겔스에게, 1864년 11월 4일)

 

그 후 몇 달 동안, 두 혁명가는 우호적인 내용으로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제1 인터내셔널과 「자본」의 초안 문서를 교환했다. 제1 인터내셔널에서 맑스 영향력은 커졌고, 이탈리아에서 바쿠닌은 혁명적 사회주의, 집단주의, 아나키즘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정치적 기권주의, 반(反)국가주의, 연방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교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와 프리메이슨(Freemasons)의 급진적인 추종자들 사이에서 지지자들을 찾았고, 결국 「국제혁명협회」라는 비밀 조직을 설립했다. 그러한 비밀 집단의 '교리'는 바쿠닌이 국제 네트워크에서 혁명가를 다시 조직하려고 시도한 생각을 요약하고 있다. 1867년에 그와 그의 추종자 중 일부는 스위스로 떠났고, 새로 설립된 평화와 자유 연맹, 프랑스 제2 제국과 프러시아 왕국 간의 적대 행위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평화주의 조직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또한 몇 명의 대표단(그들 중 바쿠닌의 가까운 동지가 된 제임스 기욤)을 파견했는데, 맑스의 표현대로 단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다른 나라 노동계급의 연합이 궁극적으로 국제 전쟁을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제1 인터내셔널]은 그 자체로 평화 회의였다. 만약 「제네바 평화 회의」의 발기인들이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를 정말로 이해했다면 그들은 [제1 인터내셔널]에 가입했어야 했다.”

(맑스, 「평화와 자유 연맹」에 대한 「국제노동자협회」의 태도에 대하여, 1867년)

 

바쿠닌은 연맹의 중앙위원회에 선출되었지만, 방향에 영향을 미치려는 그의 시도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연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특성이 처음부터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몇 명의 지지자들을 더 얻었고, 그들은 1868년 「베른 회의」에 이어 연맹을 떠났다. 그들은 현재 제1 인터내셔널의 한 분파라고 선언한 「사회주의 민주주의 국제동맹」을 설립했다. 바쿠닌은 맑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친애하는 친구여, 나는 당신이 경제혁명의 위대한 길을 따라간 것, 우리를 당신과 함께 하자고 초대하고 부분적으로 국가적이고 때로는 전적으로 정치적 모험의 길에서 우리 에너지를 낭비한 사람들을 비난한 것이 얼마나 옳았는지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한다. 나는 지금 당신이 지난 20년 동안 해왔던 일을 하고 있다. 「베른 회의」에서 부르주아지와 엄숙하고 공개적인 결별 이후 나는 노동자들의 세계 외에 다른 사회와 환경을 모른다. 내 조국은 이제 「인터내셔널」이다. 이는 그 유명한 설립자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친구여, 내가 당신의 제자라는 것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나의 태도와 개인적인 의견은 여기까지다.”

(바쿠닌이 맑스에게 1868년 12월 22일)

 

두 혁명가가 이제 하나의 조직에서 함께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동맹은 연례 회의에서 자체 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 자율성을 보존하려고 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내부와 외부에서 활동하는 제2의 국제기구의 존재" 자체를 허용할 수 없었다. (IWMA 총회, 1868년 12월 22일) 맑스와 엥겔스는 또한 동맹의 강령, 특히 그들의 폐지가 아닌 "계급의 사회적 평준화"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동맹은 스스로 해산하고 회원들을 인터내셔널의 지역 부서에 가입시키라는 요청을 받았다. 1869년 7월 바쿠닌과 그의 지지자들은 마침내 제1 인터내셔널에 가입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 수 있겠지만, 동맹은 인터내셔널 내에서 비공식적인 조직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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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인터내셔널

 

바쿠닌이 처음으로 제1 인터내셔널에 가입하려 했던 방식은 맑스의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바쿠닌과 1869년 스위스에 나타난 러시아의 혁명적 테러 옹호자 세르게이 네차예프(Sergey Nechayev)와의 잘못된 연관성은 그것을 단지 확인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밝혀지기 전에 맑스와 바쿠닌은 농민 사이에서 토지의 사적 소유를 옹호하는 프루동주의자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잠시 힘을 합쳤다.

 

제1 인터내셔널은 항상 당시 노동계급 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정치적 경향의 불안한 동맹이었다. 그들 중에는 프루동, 블랑키, 라쌀레, 맑스 그리고 이후에 바쿠닌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맑스와 엥겔스는 인터내셔널 내에서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정치적 명확성을 위한 투쟁에 참여했다. 제네바 회의(1866년 9월)에서 독일과 벨기에 대표단 중 소수만이 코뮤니스트 사상을 옹호했다. 로잔 회의(1867년 9월)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커졌다, 그리고 브뤼셀 회의(1868년 9월)에서 그들은 마침내 광산, 탄광, 운하, 철도 등이 공동 소유재산이 되어야 한다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프루동주의자들은 여전히 토지의 사회화에 저항했다. 바젤 회의(1869년 9월)에서 집단주의적 입장을 옹호한 바쿠닌의 지원으로 마침내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제 파업의 중요성과 노동조합 조직 구성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도 있었다. 더욱 놀랍게도, 바쿠닌은 또한 총회의 권한을 확대하여 인터내셔널의 원칙에 반하는 어떠한 조항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을 지지했다. 맑스주의자들과 바쿠닌주의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가 발생한 부분은 상속권에 대한 문제였다. 바쿠닌이 보기에 상속권의 폐지는 미래 사회의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전제 조건인 동맹에 대한 그의 강령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맑스가 보기에 상속권에 대한 모든 문제는 생산 수단(이미 인터내셔널이 승인한)의 사유 재산 폐지로 해결될 법적 산만함이었다. 어느 쪽도 확실한 과반수를 얻지 못했고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 맑스와 바쿠닌 모두 불화의 씨앗이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바젤 회의의 전반적인 결과에 비교적 만족했다.

 

이 시기는 제1 인터내셔널의 전성기였다. 유럽에서는 리본 짜기, 비단 염색공, 스위스의 건설 노동조합과 작곡가의 파업, 벨기에의 웅덩이 노동자와 광부 파업, 프랑스의 면화 노동자와 광부 파업, 웨일스의 광부 파업 등 계급투쟁이 진전되고 있었다. 새로운 지지자들은 그러한 대의에 지지를 얻고 있었다. 1870년 리옹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바쿠닌이 직접 개입한 봉기의 시도가 있었다.

 

1871년 이러한 불만의 물결은 제2 프랑스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에 오랫동안 예상되었던 전쟁의 여파로 일어난 혁명적 봉기인 「파리 코뮌」에서 마침내 절정에 이르렀다. 비록 인터내셔널은 파리에서 영향력이 별로 없었지만, 맑스의 짧은 「코뮌」에 대한 보도는 가장 잘 알려진 공공의 방어가 되었다. 부르주아지의 눈에 「파리 코뮌」은 제1 인터내셔널과 동의어가 되었고, 그 구성원들은 이제 억압을 견뎌냈다. 맑스와 바쿠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파리 코뮌이 자신들의 강령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았지만, 그 사이에 두 혁명가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어 이제는 인터내셔널을 분열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러한 상황으로 이끌었다.

 

1869년 말, 바쿠닌이 러시아 스파이라는 소문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 비난은 지기스문트 보르크하임(Sigismund Borkheim)이 다시 얘기하였고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반복했다. 바쿠닌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바젤 회의」 명예 법원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모세 헤스(Moses Hess)는 1869년 10월 바쿠닌이 인터내셔널을 약화하고 총회를 런던에서 제네바로 옮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신상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바쿠닌은 (헤르젠과 오가레프조차도 과도한 것으로 판명된) 자신을 상대로 음모를 꾸몄다고 알려진 "독일 유대인"에 대한(발표되지 않은) 반(反)유대주의적인 장광설로 응수했다. 존경과 전술적 고려에서 바쿠닌은 맑스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 모든 공격의 배후에 있다고 잘못 생각했다.

 

다음 논쟁은 제1 인터내셔널의 제네바 지부인 「로만드 연맹(Romande Federation)」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곳에서 폴 로빈(Paul Robin)과 샤를 페론(Charles Perron)과 같은 바쿠닌의 추종자들이 편집한 「평등(L'Egalité)」은 총회의 업무에 대해 많은 불만을 제기했다. 1870년 3월 「일반 평의회」는 비판을 다룬 맑스의 답변을 회람했다. 그러나 맑스는 바쿠닌이 개인적으로 이 배후에 있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바젤 회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제 총회의 신용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바쿠닌에 대한 복수심을 품은 또 다른 러시아 망명자 니콜라이 우틴(Nikolai Utin)은 이제 그의 기회를 감지하고 「평등」을 인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맑스의 이름으로. 섹션 분할, 제네바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맑스의 추종자라고 선언하고 쥐라(Jura)에 있는 사람들은 바쿠닌의 추종자를 선언하며 둘 다 「로만드 연맹」 이름을 주장한다.

 

마침내, 앞서 언급한 네차예프(Nechayev)와 바쿠닌의 관계는 1870년 7월에 밝혀졌다. 네차예프는 매우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러시아 전역에 존재했던 비밀 혁명 그룹의 대표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는 러시아의 다른 혁명가들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고 심지어 그의 전(前) 동지 중 한 명을 살해하는 데 책임이 있었다. 네차예프는 또한 바쿠닌이 다른 노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러시아어로 「자본」의 번역(바쿠닌은 이미 출판사로부터 선금을 받았다) 작업을 포기하도록 설득하였다. 바쿠닌의 음모에 대한 애정은 그를 속이는 것을 볼 수 없게 만들었고 마침내 네차예프와 거리를 두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보르크하임과 우틴 같은 사람들은 이제 맑스의 의심을 살 수 있는 더 많은 탄약을 가지고 있었다.

 

1871년 9월 제1차 인터내셔널회의가 런던에서 열리기 전에 화해의 시도가 있었다. 총협의회의 비판자 중 한 명인 로빈(Robin)은 총회에 참석했고, 「제네바 동맹」은 바쿠닌과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해산을 선언했다. 이 회의에서 맑스는 1869년에 동맹이 실제로 해체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제1 인터내셔널 내에 비밀 조직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주라(Jura) 부문이 「로만드 연맹」(대신 주라 이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프랑코-프로이센전쟁 동안 프랑스를 지지하는 군대를 창설하라는 인터내셔널 규약을 위반하여 항소를 제기한 기욤을 지목했다. 「런던 회의」는 노동계급의 경우, 경제 운동과 정치적 행동은 불가분하게 통합된다는 인터내셔널 전(前) 선언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바쿠닌주의자들은 「런던 회의」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반대 의견은 이제 인터내셔널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주라(Jura) 부문은 자체 회의를 열었는데, 비록 그들은 그렇게 하라는 말에 분개했지만 주라 연맹(Jura Federation)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기로 동의했다. 기욤은 인터내셔널에 문서를 작성하여 회람하여 가능한 한 빨리 회의를 열 것을 요구했고, 총협회의 권위주의를 비난하였다. 벨기에에서는 총협회를 전면 폐지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스페인에서는 맑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 주변의 맑스주의자들이 「마드리드 연맹」에서 축출되었다. 총협회는 이러한 "내부 분쟁"에 맑스가 초안을 작성한 "국제적 가상의 분열"이라는 팸플릿으로 대응했다. 1872년 8월, 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와 카를로 카피에로(Carlo Cafiero) 같은 바쿠닌 추종자들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부분은 총협회와 결별하고 그들만의 회의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은 이제 「헤이그 회의」에서 맑스주의자들과 바쿠닌주의자들 사이의 마지막 대결로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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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회의

 

헤이그 회의는 1872년 9월에 열렸다. 처음 3일은 형식적인 절차로 진행되었고, 네 번째 날은 「파리 코뮌」을 계기로 국제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규탄하는 총협회의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성명서 낭독은 65명 정도의 대표자들이 열렬하게 환영하였다. 그들 중에는 처음으로 맑스와 엥겔스가 있었다. 바쿠닌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기욤은 바쿠닌주의자들을 대표해서 참석했다. 그 후 토론은 인터내셔널의 총협회 역할에 관한 문제로 넘어갔다. 총협회의 권한에 관한 맑스 안이 5일째에 통과되었다. 회의에서 총협회의 의석을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전하는 것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엥겔스의 이 제안은 바쿠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노동조합원들과 프랑스의 블랑키스트들을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정치적 행동에 관한 토론은 회의 여섯 번째 날과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 블랑키주의자들 중 한 명인 에두아르 베일랑(Édouard Vaillant)은 "정치 권력의 정복"을 위한 운동을 제안했다. 그것은 통과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총협회의 의석을 뉴욕으로 옮기기로 한 결정에 이미 너무 격분하여 인터내셔널이 "붕괴"했다고 선언한 프랑스 블랑키스트들이 퇴장한 후였다.

 

마지막으로 테오도르 쿠노(Theodore Cuno)는 연맹에 대한 조사 임무를 맡은 5명으로 구성된 특별 위원회의 보고서를 낭독했다. 이 위원회는 바쿠닌과 그의 추종자들이 "인터내셔널과 완전히 반대되는 규약"을 가진 비밀 그룹에 가입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의 축출을 지지했다. 스위스의 아나키스트 아데마르 슈비츠게벨(Adhémar Schwitzguébel) 제명 동의안은 통과되지 않았으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을 거부한 기욤은 바쿠닌과 함께 제명되었다. 그들의 제명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 중에는 맑스와 엥겔스뿐만 아니라 「파리 코뮌」의 퇴역군인 레오 프랑켈(Leó Frankel), 왈러리 안토니 브로블프스키(Walery Antoni Wróblewski), 오귀스트 다니엘 세라일(Auguste Daniel Serraillier)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은 절차상 추악한 부분이었다. 「연맹」을 조사하는 위원회 위원 중 적어도 한 명은 나중에 보나파르트주의 스파이로 밝혀졌다. 그리고 바쿠닌에 대한 소송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 위원회는 또한 바쿠닌을 절도 및 협박 혐의로 고발했다. 이것은 바쿠닌이 「자본」을 번역하기 위해 선금을 받았지만, 그것을 완료하거나 돈을 반환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바쿠닌이 모르는 사이에 출판사를 폭력으로 위협한 것은 네차예프였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2022년 6월

다이즈버즈(Dyjbas)

코뮤니스트 노동자조직(CWO)

옮긴이 ㅣ 이명수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9-02/150-years-on-the-split-in-the-first-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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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Ⅱ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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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 계급과 노동력 착취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 계급으로 나뉜다. 소수인 부르주아는 모든 생산수단을 통제함으로써 모든 권력(경제, 정치, 군사)을 효과적으로 유지한다. 다수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살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부과한 조건에서만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생산, 사무, 서비스, 운송 등)는 현대의 노예, 즉 임금 노예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 즉 재생산에 필요한 금액을 노동자에게 지불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임금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하는데, 그 차이를 잉여가치라고 한다. 우리는 자본가의 이윤에 기초한 이러한 메커니즘을 착취로 정의한다.

 

생산의 특정 조건에 따라 착취는 매우 낮은 임금과 매우 열악한 노동 조건, 또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더 나은 조건과 관련될 수 있다. 그러나 착취는 무시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남아 있으며,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 생산물을 빼앗기는 사회 계급의 분할에 기초한 이전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착취가 견딜 수 없고 힘들어질수록, 자본주의 체제는 과잉 축적의 주기적인 위기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6. 계급투쟁과 계급의식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경제위기가 잇달아 발생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은 착취당하는 전 세계 노동계급이 이루어내야만 한다.

 

자본주의 쇠퇴기, 위기가 지속하면서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을 더욱 가혹하게 공격할 수밖에 없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실업은 만연해진다. 점점 더 적어진 일자리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압력에 놓이게 된다. 노동계급은 처음에는 이러한 자본가 공격에 후퇴할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 생산의 특징은 결국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착취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게 만든다. 이러한 경제 투쟁은 노동계급이 자본가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단결하고 연대하면 승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계급으로서 집단적 힘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동이익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승리는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제 투쟁 승리의 의미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여서도 안 된다. 경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쟁취한 모든 승리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일정 기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이익에 대한 진정한 방어는 그들이 착취 체제 전체에 맞서 계속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즉 피착취계급이 유일한 잠재적 혁명 주체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수단 소유에서 배제되고, 자신의 노동 생산물에서 소외된 채 자본 이익에 반대하는 역사적이자 즉각적인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반드시 계급 통일과 자본에 대한 깊은 적대 의식을 가져야만 혁명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 영역에는 생산 관계 역학을 분석하고, 계급투쟁 경험에서 교훈을 끌어내고,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강령을 정교화하고 발전시키며, 이 과정에서 계급을 정치적으로 안내할 수 있는 조직 전위가 있어야 한다.

 

사실 “계급 본능”과 “계급의식”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계급 본능은 노동자 자신의 유산으로서 노동자 투쟁 속에서 싹트고 발전한다. 그것은 물질적 이해관계의 적대감에 의해 존재하게 되고, 이와 같은 적대감에서 비롯된 경제적, 정치적 모순을 양식으로 하여 살아간다.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가 사이 관계가 노동자 투쟁의 특정 일반화와 대립의 단단함을 함축할 만큼 충분히 긴장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계급의식은 계급 모순에 대한 과학적 관찰에서 생겨나며, 그러한 모순과 함께 성장한다. 그것은 계급의 역사적 경험이 양산한 자료에 대한 검토와 정교화를 양식으로 살아간다.

 

혁명과 함께 권력은 전체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것의 유기적 집합체(노동자평의회와 당)에 달려있다. 여기서 당은 일반적인 선동과 선전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은 평의회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지지·방어하고, 당의 투사들은 평의회가 당 구호를 승인할 때마다 매 순간 책임을 맡고,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 성공에 필수적인 당의 “정치적 방향”인 코뮤니스트 강령의 타당성은 평의회에 강요할 수 없지만, 정치적 투쟁을 통해 획득하고 방어해야 한다.

 

7. 파시즘과 반(反)파시즘 인민전선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 운동 강화에 대한 부르주아지 반응의 하나였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급진화된 소부르주아 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위기로 자신들의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다. 파시즘은 전투적인 행동과 공격적인 민족주의, 반(反)유대주의, 사회적 선동이 혼합된 기괴한 선전을 통해 이러한 범위 밖에서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 일부를 움직여 파시스트 운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한 것은 반동적 절충주의 강령이라기보다는 노동자운동 조직에 대한 테러였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에서 파시즘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체제 토대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경제의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주의나 중앙집권적인 조직에 맞는 권위적 통치 형태였다. 파시즘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뿌리째 뽑고, 모든 반대 시도를 분쇄하고, 사회 모든 영역을 국가 통제에 종속시킴으로써, 특히 자본 독재의 권위적인 형태임을 입증했다.

 

파시즘의 야만적 범죄 행위는 위기와 전쟁의 제국주의 순환에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잔혹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이런 이유로, 부르주아지의 일부 유급 도덕주의자가 파시즘을 반(反)부르주아 반란 또는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기꺼이 표현하려고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홀로코스트 공포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주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파시즘과 민주주의 사이 공생 관계를 숨길 신비화는 남아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파시스트는 인종주의를 심화하고 확대했다. 그러나 인종주의도, 반유대주의도, 민족주의도 파시스트만의 발명품은 아니며,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파시스트는 자본주의 밖에 서 있지 않으며 지배적 자본주의 관계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지배자들이 일상적으로 퍼뜨리는 원망과 이데올로기를 손에 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강화한다. 이러한 이유로 코뮤니스트는 다른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와 마찬가지로 파시즘과 싸운다.

 

노동계급에는 파시스트의 출현과 그들의 공격에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투쟁은 명확한 계급 기반에서 시작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 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를 파괴하기 위한 포괄적인 반(反)자본주의 투쟁의 일부이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캠페인과 다양한 반(反)파시스트 동맹에 대한 모든 참여를 거부한다. 이들은 노동계급을 “민주적”이지만 여전히 부르주아 국가 굴레에 묶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동적인 막다른 골목을 나타낸다. 반(反)파시즘 전체 논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덜 나쁜 것으로 방어함으로써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수호라는 개념은 계급 중립적 실체로서 국가라는 신화를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결국 굴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국가를 강화하고 국가 권력에 복종하며 자기 활동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국가에 속박하고 억압에 무방비 상태로 넘겨주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반파시즘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항상 실패한다. 국가가 최고의 반파시스트라고 자처하는 환상 속에서 또는 “반파시스트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포기한다면, 국가를 혁명적으로 전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재앙으로 빠지게 된다. 반파시즘은 국가를 미화하는 이념이자, 혁명을 포기하는 실용적인 경로로서,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겨냥하고 있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는 파시즘과 거리낌 없이 싸우며, 동시에 어떤 형태의 부르주아 권력과도 싸운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운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것의 뿌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부르주아 권력 내부에서 낱낱이 드러난다. 그들은 필요하거나 기회가 있을 때, 진정한 반동적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민주주의 가면을 벗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反)파시즘적 기능 내에서 부르주아 권력과의 동맹이 잘못된 것이며, 심각한 패배로 이어진다고 믿는 이유이다. 사실, 모든 파시스트 정권의 지지 기반을 구성하는 것은 부르주아지 자체이다. 대신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계급 단결”, 즉 모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방어하고 부르주아 권력에 대적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연합을 지지해왔다.

 

파괴적 발전을 위한 자본주의의 힘에 비추어 인류 앞에 서 있는 대안은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코뮤니즘이냐 야만이냐”이다.

 

8.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을 넘어선 투쟁

 

노동조합에 관한 우리 입장은 노동조합이 결코 혁명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본질에서 노동력 판매 조건을 계약하는 중재 기관이다.  20세기에 이르자 노동조합은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와 운명을 같이했는데, 점점 더 독점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고 생산을 계획할 필요성을 유지했다. 조합주의에 대한 우리의 반대는 단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던 실제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노동조합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수 활동가를 만났지만(물론 우리는 노동조합을 회피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실제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평조합원으로 활동한다), 결국 그 동지들이 실제로 보여준 경험(한국은 민주노조 운동의 쇠퇴)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노동 현장에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노동자 핵심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노동조합 모임과 노동조합이 소집한 행동에 개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주의자로서 우리는 노동자 투쟁에 개입할 때, 투쟁하는 노동자로 호명되는 평조합원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있는 곳에 개입(노동조합이 소집한 모임과 행동에도 개입)하여 노동조합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투쟁을 조직하고, 자본주의를 넘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구체적으로 방어하도록 촉구한다.

 

노동조합의 반(反)노동자적 기능을 인정한다고 해서 “경제 투쟁”을 무시한다거나 충분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의 당면한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할 수 없는 계급은 혁명을 위해 싸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노동조합 형태는 더는 유용하지 않으며, 그것은 부분적인 “작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진정한 투쟁에도 유용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노동조합 밖에서 일어나는 투쟁위원회,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등과 같은 다른 형태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노동조합의 관료적/조합주의적 실천에 과감히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유기적 조직에서 혁명조직(당)은 노동자들을 혁명 강령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정치적 투쟁을 계속한다.

 

혁명조직은 노동조합을 통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개입하기 위해 현장 및 지역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 노동자그룹”의 조직을 촉진한다. 이러한 국제주의 그룹은 노동자 투사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확고한 투쟁으로 이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투쟁 과정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의식적인 요소를 자기 조직화하기 위해 투쟁의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코뮤니스트 강령과 조직, 계급투쟁의 생생한 사건에서 경험으로 노동자 투사들의 의식을 풍부하게 한다. 이 그룹에서 활동하는 모든 노동자가 반드시 혁명조직의 구성원은 아니며, 그들은 반(反)자본주의와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활동을 포함한 근본적 지침을 공유한다.

 

9. 종교(신), 국가, 가족에 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은?

 

“신, 국가, 가족”은 노동자 운동이 시작된 이래 반(反)코뮤니스트 행동의 강령이지만, 오늘날에는 차고 넘치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과학적 발견에도 사회에 대한 종교적 통제는 여전히 매우 강력하며, 통합주의 국가나 성직자에게 증오의 씨앗을 뿌리기 쉬운 특히, 극빈 국가들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신을 믿는다는 것은 대부분 자신을 신의 정당한 대표자로 제시하는 사람들, 즉 지배계급 일부이며 그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며 그들을 먹여 살리는 부르주아 사회를 옹호하는 데 관심이 있는 다양한 종교 기관의 위계질서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것은 자연히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실용적인 실천, 즉 실천적인 유물론적 행동을 비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국가에 관련하여 우리가 자란 곳과 사는 곳에서 우리가 느끼는 유대감과 사랑, 그리고 같은 문화적 관습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본능적 친밀감을 "애국심"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애국심은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의미 모두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입장이다. 애국심은 유럽의 젊은 혁명적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국가를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 낡은 봉건 권력을 쓸어버려야 했던 18세기에 퍼졌다. 어느 나라가 하나의 국가이거나 치아파스나 팔레스타인과 같은 준(準)국가적 실체이거나, 유럽이나 아랍 세계와 같은 거시적 지역적 실체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애국심은 자본주의 국가를 뒤흔드는 계급투쟁을 제쳐두고, 국익 또는 투자 이익을 위해 노동자가 자본가와 팔짱 끼게 하고, 국외(다른 체제, 민족)에 존재하는 공공의 적에 맞서기 위해 가난한 자가 부자들과 연대하게 만든다.

 

 

가족에 관해서도 역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저분하게 작용했다. 사실 가족애(愛)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예측할 수 있는 무게가 있으며, 부부/동거애(愛)와 자식/부모애(愛)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가족 밖 집단의 대안이 될 때, 그것은 편협한 기준, 즉 다소 편하고 안심되는 함정 형태를 취한다. 이 함정에서 각각의 프롤레타리아트 커플은 원자화되어 각자의 거실로 고립되고, 개인주의로 밀려나 정치적, 사회적인 관점에서 더욱 무력하고 활력을 잃은 상태가 된다.

 

10. 자본주의 가족제도와 여성해방에 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은?

 

여성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지만, 사회 노동의 대부분을 수행한다. 착취, 가사, 차별, 성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날 재생산 노동(양육, 가사)이라는 역할은 주로 여성이 수행한다. 여성의 노동이 유급일 때조차 평균임금은 남성보다 매우 낮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항상 전쟁, 기아, 정리해고라는 가혹한 공격의 우선 대상이 된다. 부르주아지는 평등한 법과 성해방에 대해 수없이 떠들어대지만, 오늘날 여성은 사실상 여느 때 못지않게 기본권을 박탈당한다. 수많은 여성은 임신 중지권에 대한 법적 결정권을 박탈당하며, 심지어 자기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조차 거부당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은 광범위한 개선을 경험하지만, 이러한 개선은 주로 경제 호황과 자본주의 필요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승리였다. 자본주의가 노동시장과 사회생활에 여성을 참여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위한 기반을 닦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 관계 안에서 극복할 수 없다. 오늘날 여성 억압의 근원은 여전히 부르주아 소유 관계의 최후 보루인 가족에 있다. 자본주의 발전은 가족이라는 제도를 확실히 약화한다. 게다가 최소한 주도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부장적인 억압의 가장 노골적인 월권행위는 결혼 생활에서 이혼 권리와 폭력, 강간의 불법화와 같은 법적 규제로 제한된다. 그런데도 자본주의는 사회화의 기본단위로서 가족을 넘어설 수 없다. 여성해방은 자녀 양육, 가사, 환자와 고령자에 대한 돌봄이라는 과제가 사회화된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해방은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과 전체로서 노동계급 해방과 직접 연결된다. 그런데도 성차별과 성폭력에 반대하는 투쟁은 혁명 이후로 미룰 수 없다. 여성에 대한 반동적인 개념에 반대하여 단호하게 투쟁하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기본 과업이다. 코뮤니스트는 지배적인 부르주아 성도덕에 순응하지 않는 성적 지향을 기반으로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가부장적 억압과 차별의 핵심인 부르주아적 결혼과 가족에 대한 미화를 반대한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사회의 계급 분할을 무시함으로써 부르주아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여성 사이의 이해관계 모순을 위장하지만, 코뮤니스트에 여성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은 ‘전적으로 여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계급 단결과 연대를 위한 수단과 전제조건이다. 코뮤니스트 조직은 코뮤니스트 운동에 여성과 성소수자가 어떠한 제한도 없이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 여성해방 없이 코뮤니즘은 없으며, 코뮤니즘 없이 여성해방도 없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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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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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파와 치사율 감소를 위한 인명구조 안전조치가 이윤 창출 면에서 볼 때 수용력을 넘어 지나치게 지속되었다고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결론지은 한편, 정치인들은 값비싼 개혁방안을 담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들 안전조치가 하나씩 폐지되는 와중에도, 다수의 노동계급은 대유행의 굵직한 파장을 겪으며 끊임없이 노동한다. 상공회의소가 지휘하는 뻔뻔한 자본가계급은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더뎌지자, 노동계급의 혜택 제공에 대비를 위한 사회적 지출을 증대시키는 대신 임대료와 실업급여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해제했다. 노동조합 역시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매각 혹은 노동자 측과 협상하는 역할을 지속해왔으며, 조합원들에게 원치 않는 양보를 강요함으로써 노동계급 투쟁의 상승기류를 조정해왔다. 노동계급 투쟁에 활력소가 되는 주된 요구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인상과 주당 노동 시간 단축이라는 계층형 임금체계(tiered wage system)의 폐지를 포함한다. 노동조합은 자본가를 대신해 노동자들에게 계층형 임금체계를 강요했으며, 또한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의 소비력을 감소시킨 것에 대하여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또한 인력 부족으로 끊임없이 야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에서 이들의 요구는 노동조합이 지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신 그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인상률에서 임금인상 및 초과근무, 아니면 주당 7일 노동이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이는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켈로그 노동자들의 파업 일화이지만, 이미 오래전 일이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국가의 오랜 수레바퀴이며, 심지어 그들은 노동자들이 투표소로 오게끔 하는 데 “능력 감소” 속에서조차 지속될 것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수십여 년간의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서민들의 골칫거리를 관리하는데 무능해지고, 가치 있는 개혁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자기 계급의 타협적 가치를 보는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인, 더욱 엄격한 계급지배를 옹호하는 자들과는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열망에도 그러하다. 그들은 현실이 안정되면서 자유주의의 미덕과 강점을 강조하는 한편, 개혁이라는 달콤하고 값싼 것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문화전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정 짓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국의 막대한 군(軍) 예산을 증거로 이용하는데, 가치 있는 개혁을 이끄는데 올바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폐기물 생산과 군대는 자본가계급에 따라 다르게 여겨진다. 즉, a) 그것은 국가 자본의 국외 이윤을 증대시킨다는 것, b) 국가적 폐기물 양산은 생산의 합리화를 돕는다는 것, 그리고 c) 국가는 수요를 창출하며 다른 자본주의 형태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부르주아계급이 역사적으로 강했던 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노동자들은 체불 임금을 되찾을 수 없지만, 자본가들의 이윤 손실에 있어서는 가능하다. 죽을 각오로 임하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위기에 대한 비용을 내게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그들로부터 악랄한 공격을 받아 왔다. 물가 상승에도 임금은 그대로인데 노동시간은 늘어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의 적자에 대해 국가지출을 1조 달러까지 줄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자본주의는 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 체제이다.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의 반(反)체제적 투쟁을 없애고자 나설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계급을 억압하는데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장할 것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국가, 인종, 성적 억압과 같은 부분적 억압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의 지속에 부차적이다. 그들은 전(全) 자본주의 체제가 의존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억압은 임금과 노동, 잉여가치의 생산에 근거한다. 이들 민주적인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자유, 혹은 인권을 위한 싸움에 관해 횡설수설할 테지만, 노동계급이 정치권력 행사로부터 소외되어있다는 점은 자본주의 체제의 조건이다. 머지않아 이들 잠재적인 민주적 대표자들은 민주주의의 덕목을 거창한 말들로 그럴싸하게 포장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 억압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개혁에 어떠한 비용도 들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더욱 지배적인 자본가계급은 이 개혁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상류층 부르주아들은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인종 정책을 시행한다거나 또는 계급 활동을 막기 위해 노동력을 분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덜 받을 수 있다. 노동조합에 의한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특정 경제적 요구는 이 자본가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들은 또한 반(反)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혹은 외국인혐오증 법률 제정에 더 개방적일지 모른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노골적인 견제와 공개적 억압이 그 가치보다 더욱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쉽사리 깨닫는다. 이러한 권리는 무효화 할 수 있는 것이며, 노동계급이 끊임없이 개혁을 위한 투쟁에 발을 빼도록 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위해 물을 길어 나르도록 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조직력을 강화하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신장시킬 가능성을 열어주는 그들의 영역에서 투쟁하는 것 대신 말이다.

 

매 선거 주기 동안, 국가의 자본가 관리자들은 의료 개혁에 적용되는 공약을 걸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지출을 절대로 삭감하지 않겠다는 공약, 심지어는 주로 보험이 없는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는 공약이 가장 흔하다. 공공의료 지출을 직접적으로 반대한다거나, 국민건강보험의 시행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에 인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급의 평화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혁 가능성에 대한 환상 역시 여러 좌파와 진보당의 유권자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자본가의 “해악 줄이기” 논리는 좌파 진영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이윤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신념이 그 중심에 있다.

 

노동계급에 이익이 될 만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정치인들이 유지함으로써,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 악용되는 것을 상당히 방지할 수 있기는 하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전을 저해하며, 잠재된 혁명적 파열을 방해한다. 그 대신 자본가계급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제도적 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계급 활동의 잠재성이 국가 자본을 안전하고 굳건한 길로 향하도록 한다.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사실상 배제된 노동계급은 선거주의에 휘말린다. 각 당의 권력은 국가관리를 위해 경쟁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축적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을 공고히 한다. 이들 정당은 노동자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개혁을 위한 양보를 제안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들이 ‘여러분의’ 표를 얻고 나면, ‘여러분의’ 대표자가 된 후의 정치적 협의에서 노동계급의 역할은 즉시 폐기되어 버린다.

 

다음으로는 ‘뉴딜’의 일부로서 합법화된, 국가보안기구 일부로 국가에 통합된 노동조합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의 불법화를 대가로 실업보험과 쥐꼬리만큼의 임금인상을 받았는데, 그나마 임금인상은 임금 정체 및 (임금) 삭감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한편 노동조합의 관료들은 국가 직책을 받으면서도, 회비를 걷어 들임으로써 봉급을 두둑하게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조합주의 조직의 일부로서 국가에 통합되기 이전에도 그들은 결코 혁명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입에 정치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영원한 대중조직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들의 기능은 언제나 노동력의 판매를 협상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적인 안녕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계급투쟁을 진일보하도록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영역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자본 영역은 이윤율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노동조합을 배척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노동조합에 있어서 노동자의 활동은 비밀투표에 참석하는 것, ‘민주당’에서의 선거 활동, 납세의무에 제한된다. 결국, 그들은 노동력 판매 협상을 누가 관리하도록 할지 결정하는 것에 관계될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부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므로, [노동조합]은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 죽어가는 자본주의의 사회‧정치적 고통이 끝날 때까지 존속해야 할 운명이다. 그들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공격이 제국주의 국가를 무너뜨릴 때야 비로소 패배할 것이다.1)”

(오노라토 데이먼)

 

심지어 자신을 “혁명적”, “평조합원” 혹은 “풀뿌리”라고 일컫는 노동조합조차 자본주의 내에서는 노동력 판매와 협상이라는 똑같은 기능을 한다. 일종의 노동조합을 주장하는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개혁주의적 목표를 품은 거대조직이 되느냐, 정치조직이 되느냐. 생디칼리스트 조직은 자본의 좌파 진영에 있는 또 다른 개혁주의의 수레바퀴이다. 생디칼리스트 조직의 명목은 기껏해야 계급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조합으로 엮는 것이다. 그들 역시 다른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동일한 구조적 강박의 압력에 굴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회원 이탈에 직면해야만 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관료적 구조를 채택해야 한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인정해야 할 때, 혹은 자본가가 상점의 처분 혹은 배송에 직면해야 할 때 말이다. 노동자 분열을 자본가의 노동 분업이 낳은 범주에서 극복하려는 그들의 철저히 양심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정치적 조직과 함께하는 정치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은 매우 본능적으로 그러한 분열을 드러내며, 그들의 협상 상대는 자본가와 연결되어 있다.

 

“결국, 기타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노동조합의 조합원 상당수조차 코뮤니스트 당이 개혁보다 혁명을 우선시한다는 이유로, 코뮤니스트 당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

(헤르만 호르터)

 

자본가계급이 노동자 해방을 시작하기에 유리한 이유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노동계급 대부분이 혁명적 상황 이외의 곳에서는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노동과 자본 없이 생산을 조직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에서는 임금노동 없이 자신들의 욕구를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생활 기준을 향상해 줄 가치 있는 개혁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노동계급의 잠재적인 에너지 대부분이 선거에 이용되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2020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와 그의 사이비 혁명적-개혁 플랫폼(임금체계 폐지의 대안인 아메리칸 잡스, ‘모두를 위한 의료서비스’ 전망이 포함된다)에 2019년 중반까지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캠페인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또한, 이들 봉사자 덕택으로 수천 가지의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그의 행사에 모금된 액수는 2020년 2월에만 4천 600만 달러였다.3)

 

노동자의 참여는 민주주의 체제의 투표제도 속에서 시작하고 끝나 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언, 집회 및 결사, 언론의 자유 등과 같은 권리에 대해 고려한다면, 만약 이러한 권리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반(反)하지 않고 체제를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국가에 의한 간섭은 없을 것이다. 어떠한 반대더라도 즉시, 개혁주의로서 자본주의의 토양에 양분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것이다. 이것을 요구하는 계급, 혹은 그 외의 계급은 민주주의 체제에 가장 깊이 개입되어있는 이들이다. 명목상 이른바 중산층 또는 중산계급으로 불리며, 주로 소부르주아 및 부르주아계급을 구성하는 이들이다. 이들 계급 일부는 경영이나 학계에 연루되어 있다. 그들은 신분 상승하지 못해 낙담한 이들이기 때문에, 더 잘 작동하는 체제를 원한다. 아니면 어떤 일부의 계급에서는 계급 및 구조적 모순이 극복될 수 있으며, 계급사회에서 대중을 위해 향상된 생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과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노동운동 속에서 노동자조직의 계급적 성격을 변화시켰던 바로 그 기회주의적 개혁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자본의 좌파와 자본가계급의 여타 진보적 기능으로 구성된 이러한 약속과 포부들은 이윤율이 감소하는 현실에 맞추어 상실되고, 자본은 노동계급에 더욱 공격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모순의 결과이다. 사회 체제가 지속해서 존속하려면 "시민사회 안에 있지만, 시민사회는 아닌" 어떤 계급인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율을 높여야 한다.

 

“자본은 흡혈귀와 같은 죽은 노동이며, 살아 움직이는 노동을 흡혈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 살면 살수록 자본은 그것을 빨아먹는다.”4)

(칼 맑스, 「자본」, 제1권, 제10장.)

 

전후 축적 사이클 종식의 결과로, 이윤의 부족을 가져온 조건에 해당하는 사적 소유를 위한 일련의 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다. 노동계급 중 가장 취약한 계급을 보조해 줄 사회적 비용을 위해 국가는 세율을 삭감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결국, 국가는 증가한 지출분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채에 더욱더 심각하게 의존하게 되는 한편, 이 모든 것은 잉여가치에 대한 상향 재분배 및 빈약한 수익률 강화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또한, 수익성 위기는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고, 대도시에는 더욱 이윤이 높은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기 위해 국가가 이전의 신성한 소를 거스르고, 경제의 최고점을 포기하도록 했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저렴한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도 이용했다. 값싼 상품을 수입하고, 착취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비율 증가는 대도시의 정체된 임금을 상쇄하는 것에 이용되었다. 정부는 이미 급상승 중인 지출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자본가의 이윤 감소를 낮추지도 않을 것인데, 이는 국가 자체의 소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적자지출에 더욱 의존하곤 했으며, 급상승하는 지출 비용에 자금을 대기 위해 조세를 미루곤 했다. 적자지출에 대한 국가 의존의 주요 영향은, 국가지출 비용이 막대한 비율로 증가하여 부채 상환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착취율을 증가시키지 않고 더욱더 많은 화폐를 유통함으로써 동시에 인플레이션 증가를 초래했다. 이 모든 것은 2021년 5월 당시의 직관에 반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회계연도 2022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년도 대비 100억 달러 증가했다.5) 대중 소비를 위한 모든 생산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무기 생산을 선호하는데, 무기는 생산도 소비의 수단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폐기물 생산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쇠퇴기가 시작된 이래, 국가가 초래한 폐기물 생산의 지출 비용이 계속 증가해왔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무엇보다도 생산을 합리화하는 것이며, 국가 자본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무기 생산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생산물에 대한 비생산적 지출 비율 및 이윤 창출을 위한 지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확대되었던 전쟁 시기에도, 국가는 활성화된 국가 자본 대부분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노동계급 전체를 고용상태로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년에는 미국 국가 자본의 약 80%가 활용되었고, 600만의 실업자가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자본의 구조조정에도 기타 모든 비생산적 지출 비용과 마찬가지로 특히 무기 생산의 경우 고용안정 및 안정적 사회 유지를 위해 이용된 사례로 남았다.6)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예산은 공공사업 혹은 사회적 행동을 위한 매우 조잡한 대체물이 되었다. 또한, 스스로 정부 적자를 양산하여 경제 전체를 지탱했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군국주의에 경제적 정치적 투자를 한다.7)

 

순전히 경제적 경쟁력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경제의 최고점이라 일컬어지는 곳에서 생산의 합리화에 있어서 무기를 선호한다. 국가는 제국주의적 목적을 관철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안전성에 위협이 되는 자본가와 노동계급을 억압해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제국주의의 목표는 국가협정, 외교적 협력, 또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위기에 대한 극대화된 표현을 선호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는 경쟁국으로서 경쟁국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기 생산은 시장성 상품 생산에 개입된 사적 자본형성에 반하여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유도한 무기 생산은 이들 상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감소시키지 않는다. 자본가계급은 특히 폐기물 생산의 한 형태로서 무기 생산을 지원하는데, 이는 생산능력 활용에 대한 유지 및 고용 수치 증가 모두를 위해 국가개입이 확대될 때 강화된다. 이때, 자본 축적을 급격히 감소시키지 않고, 국가의 소비력을 신장시키는 지속적인 자본형성이 있게 된다. 전자의 조건 아래에서는 구조적 모순을 강제적으로 완화 시킬 필요가 있는데, 제국주의적 목표를 실행함으로써 결국 주요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 및 다양한 강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후자의 경우는 자본가들이 군비 지출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역할은 국제적 시장과 국가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는 능력에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국가는 버터가 아닌 무기를 선호한다. 다른 지출 비용보다 무기 생산비용을.

 

“무기 생산(및 그에 수반하는 모든 것)은 시장에서 ‘궁극적’ 상품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정부는 민간자원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그것을 차입하고, 민간기업의 무기 생산을 유도한다. 비록 정부가 지불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생산비용 및 이윤은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기부―세금이나 대출 방식, 후자는 납세 지연을 함축할 뿐이다.―로 지불하는 것이다. 무기 생산자의 관점이 아닌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무기 경제는 성장을 통해 ‘궁극적’ 상품의 증가 부분을 시장에서 제거하여 결과적으로 (이윤) 생산투자를 감소시킨다. 자본의 축적 대신에 국가부채의 축적이 발생한다.”8)

(폴 매틱)

 

폐기물 생산은 이윤율에 상응하여 자본형성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한계를 드러낸다. 그것들은 국민소득을 공제한다. 폐기물 생산은 자본화된다거나 자본의 확충 혹은 소비에 사용될 수 없다. 무기 비용 지출 증가는 자본 축적의 비용이기에 또한 생활 수준을 저해한다. 개혁에 더욱 개방적인 미국의 정치인 일부에서는 아직도 “뉴딜” 정책을 민주주의 체제 역사상 최고의 승리로 여긴다. 1933년 ‘뉴딜’의 조건은 산업 활동 증대였다. 정부는 또한 주로 금융회사에 일련의 신생 지출 비용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했다. 노동계급 다수에게 호소하고, 정부를 강화하는데, 효과적인 자유주의 문구에 매료되었다. 당시 이것은 필수적이었다. ‘뉴딜’에 반대하는 자본가계급, 말하자면 투자은행가들 일부의 반대 때문이다. “잊힌 이들”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지지했던 산업가들로 밝혀졌다. 또한, 더 높은 상품 가격을 원한 농업기업들, 광산회사들, 상당한 양의 수익을 잃고 그들의 자본이 대규모로 평가 절하된 부실 철도회사, 금주령이 종식되기를 바랐던 주류생산업체로 밝혀졌다. 1937년 즈음, 산업 활동의 감소로 인해 반대 경향이 시작되었다. 임금향상과 생활 수준 개선을 요구했던 ‘뉴딜’ 정책은 상대적인 잉여가치율을 높이고, 지배적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을 시행함으로써, 이제는 착취율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폐기된 구호가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다. 더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정책이 아닌, 즉 이윤증대를 위한 생산성 향상, 노동 강화, 임금 삭감의 방식으로 물가를 낮추는 정책이었다.”9)

(폴 매틱)

 

일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후 사회적 국가의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은, 제국주의 전쟁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결과로 자본의 가치는 국제적으로 그 수치가 50%까지 하락했으며, 1973년까지 주기적으로 가장 장기간인 호황이 열렸다.

 

자본주의적 의료 개혁은 비용 절감 조치에 불과한 경향이 있다. 즉, 사회화된 의학의 이상향은 자본가계급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의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심지어 “사회주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물론, 이른바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불리면서도 자본 축적의 필요만을 충족시켰을 뿐이다. 이것은 개별적 기업의 노동력 유지비용을 줄였으며, 질병으로 야기된 이윤-재생산 붕괴를 제한했다. 또한, 이 모든 것은 노동계급의 건강에 관련하여, 모든 자본가계급의 주된 관심 속에 있다는 것이다. 복지개혁이 처음으로 시행된 데에는 항상 그만한 현실적인 경제적 이유가 있었는데, 계급조정에 대한 그들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자본가계급은 이러한 개혁을 가로막고, 그들의 적용 범위 혹은, 실질 자금을 줄이는 것에 관련된 노동계급에 반대되는 직접적 공격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보기로 들면, 영국의 경우 자본가 정치인들의 일부 약속에도, 공공의료 지출은 최근 들어 감소했다. 영국의 공공재정을 구제하기 위한 IMF의 대출 규제와 별개로, 국가는 대(對)의료 지출을 삭감해야 했다. 약 50년간 국가는 NHS(국민보건서비스)의 병원 수용력을 50%가량 축소 시켰다.10) 이른바 사회적 국가의 기원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노동자들의 급진화에 자극받은 부르주아지는 국가 경제의 고점적 지위에 대한 사법적 지위를 변화시켰으며, 자본을 능수능란하게 제공했던 NHS와 같은 포괄적인 의료보험 프로그램의 전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여러 주에서 국립의료보험서비스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적 투표 기계 및 사회주의에 대한 민주적 노동운동의 정의에 부합했다. 이는 노동계급의 관심을 혁명적 정치조직 형성으로부터 돌리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대신 노동자들은 올바른 정치인에게 투표하도록 설득당하고,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만 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뒷걸음질 치게 하고, 노동계급이 조직력을 키우는 것을 가로막는다.

 

단 하나의 국민건강보험제도도 갖추고 있지 않은 미국에는 전통적으로 올바른 정치인을 뽑으면 ‘국민건강보험’이 시행될 것이라고 믿는 일그러진 환상이 존재한다. 이는 체제를 위한 유권자 기반 유지와 노동자 오남용 제한에 있어서 훌륭하다. 전반적으로, 어떤 국가에서든 정치인들 대부분은 공공보건 지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계급-평화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건, 교육, 사회보험에 대한 공공지출 삭감은 은밀함과 기만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동계급에 유리한 지출 비용을 늘릴 힘은 높은 이윤율에 입각한다. 그래야만 국가는 그러한 전망을 위해 잉여가치를 재분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공공의료보험 개혁이 가장 시급했던 시기―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공격받았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국가는 노동자들이 폐망해가는 위기의 자본주의에 비용을 대기 위해 일터로 내몰고, 실업보험을 해지해 간다. 민관협력관계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던 대유행 초기, 국가는 내수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 2020년 2월 말까지, 주 대부분에서 시장 활동이 이미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11) 국가의 역할은 공공 소비를 위해 생산을 늘리는 것(축적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전쟁 당시와 유사했다)이었다. 수십 년간 과거의 연구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뿐만 아니라, 명목상 개인용 보호장비(PPE), 의약품, 수십 년간의 감소를 상쇄하기 위한 병원 수용력 확대가 그것이다. 어떤 국가들은 PPE 혹은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사재기했다. 이는 특정한 상품 가격 및 입찰 전쟁을 야기했다.12) 이는 체제에 위협이 있을 때 국가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다. 국가는 전 세계에 충분할 만큼 백신을 풍부하게 생산하는 한편, 대부분은 그것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 이는 최소한의 차질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백신 및 다른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의 치열함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과학을 따르라!”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은 임대료를 모으고, 그들의 영향력을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국민적 챔피언(제약 회사)의 능력을 옹호한다. 부분적 전면적 봉쇄조치, 중소기업으로의 소비 활동 촉진,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외출과 같은 이들 계획 속에서 보이는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건전성에 대한 국가의 우려는 또 다른 모순이다. 일부 자본가가 그러한 것들을 이윤 창출에 있어 과도한 간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현재의 코로나-19 안전조치는 철회되거나 완전히 폐지되었다. 국가는 또한 잉여가치 전체 양의 확대를 증대시키기 위해 특정 산업에서는 최저 연령을 낮추어 노동법 규제를 완화했다. 잉여가치는 노동계급을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윤을 촉진하기 위해 상향 분배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여건을 완화하고자 하는 일부 자본가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단지 이윤 창출을 위해 국민적 결속과 안전을 걱정하는 것일 뿐이다. 보험 접근성의 부족, 공공보건에 대한 정부의 지출감소는 빈곤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에게 대유행의 결과는 현실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상황 때문에 노동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타락, 실업으로 인한 파멸에 직면한다. 선거 주기마다 어떤 자본가가 그들을 통치할 것인지 만을 그저 투표하도록 노동자들을 끌어들인다. 그 대신, 노동자들은 체제에 이용당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국가의 조치를 단순하게 지지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을 쇠퇴기 자본주의의 위기와 연관 짓는 혁명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직만이 PPE, 더 나은 임금, 위험수당 또는 폐업 후 실업급여 수령과 같은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우리 계급 지형에 가져올 수 있다.

 

- B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옮긴이 ㅣ 지나

 

 

 

<주>

1. 「보르디가: 신화를 넘어」 중 66쪽 “조합의 질문에 대하여”(오노라토 데이먼 & 아마데오 보르디가), 런던 ≪프로메테우스출판≫. leftcom.org

2. 헤르만 호르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조직』 중 “코뮤니스트 정치조직”, 베를린 [KAPD]. marxists.org

3. 〔뉴욕타임즈〕 ‘셰인 골드마커’의 기사 〈베르니 샌더스, 2월, 4,600달러 모금으로 2020년의 기록을 세우다.〉 nytimes.com

4. 칼 맑스 『자본』 제1권, 제10장 “노동일” 중 제1편 “노동일의 한계들” marxists.org

5. 국방부 ‘회계연도 2022년 국방예산 발표’ defense.gov

6. 폴 매틱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제3호- 19~26쪽 (1971), ≪뿌리와가지≫ marxists.org & ‘폴 매틱’의 〔맑스 인터넷 아카이브〕 기고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

7. G. 콜코 『세기의 전쟁』 중 “1914년 이후의 정치, 분쟁, 사회과학”(475쪽), 뉴욕≪뉴프레스≫(1994)

8. ‘폴 매틱’의 기사 회고 〈국제적 사회주의-무기와 자본〉 연재 –제34호- #1. marxists.org (1968, 가을) 

9. ‘폴 매틱’ 『루즈벨트의 새로운 “뉴딜”』 -제5호-, -제5권-, 10쪽 ≪프로레타리아 전망≫. marxists.org (1939, 11월)

10. ‘시바 아난다치바, 레오 유뱅크, 헬렌 맥케나, 제임스 톰신, 데보라 워드’의 논문 “NHS 병원의 병상 수 : 과거, 사전설정, 미래”. kingsfund.org.uk

11.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비상사태 이전인 2월 말, 시장은 이미 10% 하락했다. 미국은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D. J. 트럼프-COVID-19 발생으로 ‘국가비상사태’ 선포, 백악관(2020, 3월 13일). 

 

12. ‘에스테스, C’의 기사 “국가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투를 위한 의료 장비를 얻기 위한 입찰 전쟁을 강요당하고 있다.”(2020, 3월 28일). forbes.com // ICT 북미 지부 저널-1919년, 세 번째 기사. (mcmxix.org)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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