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에 머문 진보정치-검찰개혁 정국에 묻어가기 바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거지만, 소위 '검찰개혁'이라는 일대 과제를 정치적 명분을 위한 싸구려 소재로 전락시킨 책임을 최우선적으로 져야 할 당사자는 더민이다. 국힘이라고 별 차이 없다만, 현재의 집권여당은 분명히 더민이니까.
검경수사권분리의 문제부터 시작해 공수처문제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검찰개혁'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권정치세력은 보다 쉬운 길을 찾았을 뿐이다. 명분은 그럴싸하게 내세우면서 정치적 부담은 최소화하는 방법 중 가장 편한 게 바로 공수처같이 눈에 확 띄는 기관 하나 만들어내는 거였다.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들 정치세력이 검찰권력 자체를 해체하겠다는 결기까진 간 적이 없다는 거다. 검찰은 어떤 권력이든 잘 구슬려서 제 주구로 삼으면 좋겠다싶은 그런 유혹을 충분히 가질만큼 힘과 조직과 정보와 네트워크를 가진 기관이니까.
검찰을 정녕 개혁하고자 했다면 이 유혹을 떨쳐야 했다. 그러나 달콤한 유혹에 미련을 버리진 못하겠고, 그렇다고 언제 내 목을 물어 뜯을지 모를 맹수를 그냥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는 딜레마때문에 어영부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기껏 공수처 하느냐 마느냐에 정권의 명운을 건 듯 설레발이를 치는 거였다.
언제나 우스웠던 건, 이렇게 하면서 정치세력들이 하는 말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모든 힘을 다 가진 주체에게 중립을 지켜달라고 하는 건 그냥 그 주체가 돌부처이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래 신의 마음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거라서 꼴리는 대로 권능을 휘두를 뿐이지 미천한 것들이 중립을 지켜달라고 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신의 팔에서 던져진 심판의 불꽃은 그걸 쳐 맞는 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는다. 그 불꽃의 방향은 오직 신의 의지에 따를 뿐이다.
그렇다면 신을 보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정치적 중립을 요청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 그게 검찰권력 해체의 요체다. 그런데 기껏 하는 이야기가 공수처. 공수처를 설치하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이고 적폐청산의 지름길이며 산적한 사회적 문제-예컨대 노동문제-를 해소하는 첩경이라는 요설이 난무한다.
여기에 갈길 잃은 진보/좌파 일부가 자신의 전망을 개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화뇌동하여 묻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오늘날 검찰개혁의 장도에 분변을 뿌린 일차 책임은 더민이지만 그 위에 좋다고 뒹군 진보/좌파 일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와중에 더민이 꺼내든 게 공소청법/검찰청폐지법/국가수사청법 등이다. 아니 왜 일을 거꾸로 하나? 당연하게도, 더민류/국힘류들은 검찰이 가진 저 유혹적인 권능을 자기 것으로 하고 싶었기에 이런 발본적 검찰권력해체방안을 선뜻 내놓지 않은 거다.
그렇다면 이 와중에 진보/좌파가 먼저 선빵치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뭘했던가? 이제라도 치고 나갈 수 있는데 왜 자꾸 공수처 만지작 거리는 더민류 옆에 서서 눈치만 보고 있나? 원래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몰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다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 아니었나? 정책적 방향으로 다 가지고 있었던 방안들 아니었나?
검찰개혁만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너무 많이 보인다.
답답하다. 그냥 온라인 접속을 하지 않는 게 건강유지의 지름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