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입법의 추억과 검찰개혁

2004년 17대 국회에서 승리한 열우당은 기세를 몰아 "4대 개혁입법"에 나섰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언론법, 과거사법이 그것이었다. 탄핵정국을 정면돌파한 노통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낼 때도 됐다"고 선언했고,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대해선 참 할 말이 많고, 예전에 블로그에도 제법 올려놨더랬다.

경과만을 보자면, 2004년 연말까지 진행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은 도대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비롯해 온갖 투쟁역량이 왜 총동원되었는지 이유를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면서 유야무야 되었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니 어쩌구 했던 노통은 아니 뭐 이렇게까지야...하는 식으로 슬쩍 발을 뺐다. 열우당은 처음부터 내나 지들끼리도 서로 다른 소리를 하다가 급기야 의총에서 난장판을 벌이더니 원래 당론이 뭐였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아예 종을 쳐버리고 말았다.

결국 그 난장판을 거친 후 국가보안법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건재했고, 오히려 노통 재임 중에 국보범 사범들은 수시로 생산되었다. 내 사랑하는 동생들이 국보법으로 빨간 줄 긋게 된 게 그 때 일이다. 아, 그러고보니 얘네들 재심청구할만하지 않나 싶은데, 국보법이 아직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아직은 난망한가. 암튼.

이 과정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완벽하게 자리를 굳힌 사람이 박근혜. 17대 총선으로 이젠 걔들 다 망했다고 할 때, 천막당사 이벤트를 시작으로 거리투쟁, 촛불집회를 벌이면서 "나라를 살리겠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국보폐지투쟁대오에 맞먹는 보수진영 대단결을 이루어낸 게 바로 그 때다. 박근혜가 만들어낸 이 저력은 "4대 개혁 입법" 중 거의 유일하게 승리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개정 사립학교법을 노통 임기 말년에 로스쿨법과 바꿔 도로아미타불로 회귀시키는데까지 이어졌다. 더 나가 노무현-열우당의 몰락과 이명박근혜정권의 등장으로까지.

누군가 백년정당 어쩌구 했던 열우당은 사분오열되었고 그대로 노통의 레임덕을 불러왔다. 물론 "4대 개혁입법" 상황만이 원인은 아니었지만, 전략도 불분명한데다 진짜 그 개혁을 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열우당 패거리들의 작태가 개혁전반을 우스개거리로 만든 건 분명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 정권의 "검찰개혁" 과정에서 끊임없이 2004년 국보철폐투쟁의 기억이 오버랩된다. 정권이 최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건 검찰개혁은 제도적으로는 공수처 설치와 형소법 개정 등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태우는 시점부터 공수처법은 그냥 정권입맛에 맞는 권력기관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전락했다.

인적으로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배치하고, 검찰개혁의 청사진을 진작부터 그려왔던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앉히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인선은 출발에서부터 삐딱선을 탔고, 급기야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역적이 되고,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잡범이 예수로 추앙되는 사태가 도래하면서 졸지에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렸고. 졸지에 국민들은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을 강요당했다. 그것도 이상하게. 어제의 영웅에서 오늘의 역적을 지지하는 자 반(검찰)개혁주의자이고, 잡범에서 예수로 승화한 자를 지지하는 자 (검찰)개혁주의자가 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방정식인가?

전개양상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의회의 주도권을 여당이 잡게 된 것도,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명분에 진보정당과 시민사회가 총동원되었던 것도, 이후 오히려 정부여당이 제대로 된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갈지자를 걷는 것도, 섬세한 경로설정을 하지 못함으로써 번번히 상대방에게 빌미를 주는 것도 2004년과 2020년의 상황이 비슷하다.

싸움을 시작하게 해놓고 박물관 발언을 슬쩍 물릴 때까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던 노통이나, 조국을 장관으로 앉힘으로써 본격적으로 싸움을 붙였다가 1년 반이 지나도록 별다른 역할 한 번 없더니 이제 와서 사과발언으로 넘어가는 문통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두 번에 걸쳐 예정에 어긋나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 든 여당이 아비규환을 넘어 그야말로 아노미에 빠진 것도 열우당이 2004년 연말에 보여줬던 혼란상과 유사하다.

이 과정에서 최대야당인 국힘이 전열정비하고 어느덧 여당 코밑까지 지지율을 만회하면서 급기야 잃어버렸던 광역단위의 영역복귀까지 바라보게 된 것도 그렇고. 다만, 아직까지 국힘이 박근혜에 비견될만한 리더십을 굳히지 못한 것에서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이 와중에도 노동자에게 불리한 법률들은 두 당이 잘도 협력하는 것도 17대 국회와 비슷하다.

시민사회의 분열과 혼란, 피로감 역시 그때와 비슷한 듯하다. 더구나 지금은 2004년과는 달리 재앙에 가까운 감염병이 창궐하고 있어서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2004년 벌어졌던 "4대 개혁입법" 정국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교훈이라는 건 간단하다. 구라 쳐놓고 뒷수습 못하면 그냥 다 깨진다는 거. "4대 개혁입법"이 초창기에는 상당한 대중적 지지까지 얻었던 기획이었음에도 결국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 건 바로 정부여당이었다. "검찰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건 이제 검찰개혁이 필요없다고 생각되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토록 중차대한 "검찰개혁"을 상갓집 개취급 당하게 만든 정부여당의 오만함과 성의없음에 분노하는 거다.

2004년 이후 벌어진 일들이 2020년 후에도 똑같이 반복될 거라고 예상할 수는 없다. 더민이 저렇게 지뢰밭의 한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지만, 국힘은 여전히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고 있다. 국힘에는 아직까지 천막당사를 치고 촛불을 들고 우비소녀가 되어 거리를 돌아다니던 박근혜의 뒤를 이을 대세가 보이질 않는다. 이렇듯, 변수라는 건 워낙 다양하다보니 그때 벌어졌던 일이 지금 또 벌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이 난장판은 결코 좋은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나는 언젠가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될 거라는 희망과 검찰권력이 해체될 거라는 희망을 잃진 않을 거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요원한 상황이 이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졸속적인 "4대 개혁입법" 정국이 지난 후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결정이 이루어지던 때까지의 상황이 그렇듯, 이 대환장파티 양상의 "검찰개혁" 정국 이후 민주주의는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거다. 이 와중에 대중들만 피를 빨리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20/12/26 11:56 2020/12/26 11:56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