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운동을 고민하며
지난 저녁, 멀리 독일에서 들려온 최정규 형님의 부고에 슬프고 괴로웠더니 꿈자리조차 하 뒤숭숭해서 잠을 잔 건지 어쩐 건지 몸이 으슬거리고 정신이 없다. 코로나19는 아니겠지.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당적이 몇 개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더민당과 녹색당의 당원이고, 그래서 이번에 위성정당 만드는 총투표에 두 군데 모두 참여해 역시 둘 다 찬성을 했단다. 나는 그런 거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하니 이런 저런 의견의 교환이 있었다. 어차피 정치적 지향으로 다투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도로 이야기는 끝났다.
정작 깊어진 이야기는 내 개인적인 전망과 경로다. 앞으로 뭘 할 것이냐. 뭘로 먹고 살 거냐. 천하 날건달같은 백수처지의 후배를 보면서 안타까움도 있었으리라. 원래 성심을 가지신 분이니 그냥 내 생각과 처지를 다 이야기했다. 먹고 사는 건 기능사 따서 그걸로 어떻게 해결을 하기로 하고, 솔직히 이번 총선 끝나면 지역정당운동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것까지 다 이야기했다.
기능사 따면 일이 있을 건지, 지역정당운동하려면 조직화를 해야 하는데 지금 뭐 인적 물적 밑천이라도 있는지 등등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선배는 결국 몇 가지 조언을 주었다.
먼저, 하던 걸 해라. 지금 네 나이에 기능사 딴들 그거가지고는 어디 취직도 안 된다. 그런데 넌 지금까지 해온 게 있잖냐. 책 보고 글 쓰고 토론하고 보고하고. 그런 거 해야지 지금 다시 현장 간다는 게 과연 얼마나 가능하겠나.
다음으로, 잘 하는 걸 해라. 그냥 글 써라. 어차피 현장조직이라든가 그런 거 오랜 시간 트레이닝이 있어야 하는 거고, 성격에도 맞아야 하고 그런 건데, 네가 그런 거 없이 갑자기 마음만으로 되냐.
그리고, 체력을 길러라. 우리 나이에 다시 노가다 뛰고 밤에는 조직하고, 이런 거 이젠 불가능하다. 술 끊고 운동만 해도 체력이 겨우 보존되는 지경인데, 20대 생각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술먹어가며 조직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너를 알려라. 다른 거 말고, 차라리 계속 글을 써서 발표하든가, 유튜브라도 꾸준히 찍어서 네가 생각하는 걸 자꾸 알리는 게 낫다. 그것도 시간 많이 걸린다. 글 쓰는 데 시간 걸리고 유튜브도 찍고 편집하는데 시간 장난 아니다. 차라리 그거 해라.
다 옳은 말씀이고 새겨들을 말씀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들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늦은 나이까지도 현장에서 자기를 갈아넣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떠올랐다. 술자리 파한 다음에 최정규 형님의 부고를 보고 통곡이 나온 건 아마도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차에 부고를 받았기 때문일 거다. 다들 그렇게 갈아 넣다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들 가고 있다. 천익이형이 그랬고 정규형이 그렇고...
다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하고싶은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시덥잖은 기본소득 따위 말고, 이 사람들이 스스로 짊어진 당위에 눌려 몸과 마음을 갈아 넣다가 쓰러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정신 산란한데, 일요일에 촬영한 영상을 새벽까지 편집하여 보내준 동지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돈 한 푼 안 나오는 이 짓을 하기 위해 그나마 휴일도 반납하고 일 할 건 다 하다가 새벽 3시가 넘도록 편집해서 보내주는 이런 활동가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려면 뭘 해야 할 것인가?
ㅆㅂ 진짜 로또라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