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의 차이
앞서 포스팅한 사안은 내 생각엔 심각한 문제다. 즉 정치적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법적으로 처리를 넘기는 것의 폐해는 막심할 것이다. 문제는 어떤 하나의 사건을 볼 때, 그 사건을 법리적으로 보느냐 정치적으로 보느냐에 대해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정치의 '정상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적어도 그 판단에서 정치적인 측면을 더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예를 들면 피의사실공표와 관련된 정치적 입장과 법리적 입장의 차이가 그런 거다.
한상희 교수는 전형적인 법리적 측면에서 피의사실 공표죄를 이야기한다.
창비주간논평: 피의사실공표, 검찰과 언론의 기묘한 공생관계-한상희
제목은 검찰과 언론의 공생이라고 했지만 내용은 피의사실공표'죄'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법리적 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에서 한상희 교수는 검찰에 의해 이루어지는 피의사실공표가 어떻게 대중들의 여론을 형성하며, 법원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러면서도 피의사실공표죄의 구성요건과 그 처벌방식이 법리적으로 그닥 효과가 없는 이유는 뭔지를 이야기한다.
한상희 교수도 어쩔 수 없이 지적하듯, 법리적으로 볼 때 피의사실공표죄는 이를 죄로 하기 위한 작동방식의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죄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이걸 법리적으로 아무리 합당한 방법을 찾고자 한들 결론은 두리뭉실하게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검찰의 막후공작 차단" 같은 법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이 '피의사실공표죄'라는 건 죄로 만들기도 애매하고, 그것이 한상희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실질적으로는 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건 별로 없다. 한상희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건데, 그렇다면 이건 법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오히려 그 긍정적 가능성이 더 큰 거 아닌가? "그들만의 리그"를 더 속속들이 낱낱이 밝혀내는 게 사회에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이런 걸 정치적으로 볼 때는 진중권 같은 판단이 가능해진다.
뷰스앤뉴스: 진중권 "문은 노가 국민에게 준 권리 다시 빼앗았다"
물론 이 글을 보고 진중권이 검찰편이다, 태극기부대 편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또라이들도 많이 보인다. 난 어떻게 이 글이 검찰 편드는 걸로 독해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무튼 지난번에 경향신문 칼럼을 보고도 차악을 선택하지 말고 이제 최선을 선택하자는 그 글을 자한당 찍어주자로 독해하는 또라이들이 있는 걸 보다보니 이제 면역이 됐다고 할까, 아무튼 그다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여전히 노무현을 씹다못해 뼉다구까지 가루로 만들던 진중권이 노무현 정신의 상실을 통탄하는 건 매우 어색하지만, 진중권의 글 자체는 피의사실공표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입장을 제대로 취하는 글이다. 피의사실공표죄라는 건 기실 형사법상으로도 그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죄목이다. 마치 예전에 없어진 간통죄나 혼빙간음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피의사실공표죄의 문제점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오히려 이 글을 보는 게 더 적절할 듯하다.
그렇다면 피의사실공표죄를 정치적으로 판단할 때, 현재의 정치적 구도에 대한 윤곽은 보다 뚜렷이 보이게 된다. 그건 검찰이 장난질을 치는 것의 문제도 아니고 속칭 '기레기'들의 받아쓰기가 문제되는 것도 아니고, 법원이 여론 눈치를 보는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피의사실의 내용이고 그런 피의사실을 야기한 주체다. 피의사실 그 자체, 즉 그 내용과 주체를 건드리고 공론화하는 작업이 바로 정치이고 정치적 작업이다. 이게 자꾸 피의자의 '인권'과 결부되어서 문제가 되는 건데, 여기서 '법리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 하나가 덧붙여진다. 바로 '공인'에 대한 것이다.
이제 '인권'과 '공인'의 문제까지 흘러가면 이런 논쟁이 가능해진다. 보호되어야 할 인권은 무엇인가? 공인의 정보는 어디까지 공개될 수 있는가? 피의사실공표는 공인이라고 할지라도 보호되어야 할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가? 등등. 이건 단지 개별법의 조문 따지는 수준을 넘어선 이야기가 된다. 헌법 제37조제2항의 이야기가 되는 동시에 그래서 바로 정치적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어디까지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바로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난 법학자나 법조인은 법리적 이야기를 하길 원하지만, 정치인은 정치적 태도를 취하기 바란다. 정치인이 정치할 생각은 않고 그저 법조문을 따지고 있으려면 그냥 법조인 하면 된다. 왜 정치판에 기웃거리나? 의회가 만들어준 법이나 따지고 있을 노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