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수준이 이따위라면...
한국의 보수정치인들이 정치할 생각은 않고 뭐든 날로 먹으려다가 벌어진 사태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의 사법화이다. 한국은 소위 '대륙법계' 국가다. 영미와는 달리, 그래서 법원리상 한국의 법원은 법창조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 법을 창조하는 권한은 오로지 의회만이 쥐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의회는 일만 났다 하면 법원으로 달려가고, 법원은 의회가 만들어놓은 법에 따라 판단하는 척하면서 법정의 법대 위에서 정치적 향방을 결정한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검찰이다. 정치권에서 법원으로 넘어가게 되는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형사재판의 외관을 쓰게 되는데, 이 형사재판에서 죄를 따지는 쪽에 서도록 되어 있는 기관이 바로 검찰이다. 그러니 의회에서 뭔 일이든 재판으로 해결하고 싶으면 바로 검찰에 고소고발을 하게 되고, 검찰은 이걸 냉큼 받아서 사건으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입맛에 따라 사건사고는 증폭되거나 은폐되고, 검찰의 권력은 날로 커진다. 이걸 또 해결하겠답시고 정치권은 검찰개혁이니 뭐니 난리버거지를 치지만, 기왕의 물고 물리는 사슬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으니 개혁은 무슨 얼어죽을...
보수정치권이 이런 닭대가리 짓을 하면 적어도 진보정치세력은 이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하는 짓보면 오히려 보수정치세력 싸다구 날릴 정도로 더 법 절차에 얽매인다. 결국 이것이 자기 발목을 잡을 것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그런다면 이건 진보정치라는 허울을 쓰고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고, 몰라서 그런다면 진보정치고 나발이고 그냥 민주당 가서 거기서 자리 잡을 일이다. 자한당이나 민주당이 할만한 일을 똑같이 한다면 그건 진보정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일 뿐이고.
난 계속해서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게 가지고 있는 문제점, 특히 진보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지적해왔는데, 진보정당이 이에 대한 반성과 대안을 고민하기는커녕 여전히 검찰과 법원에 기대는 행태를 정치로 착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이번에 자한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 관련 정의당의 고발 건이다.
신장식이가 변호사 되면서 법에 대해선 전문가가 됐나본데 정치적 깜은 겨우 그정도에 머문 듯하다. 신장식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정당입당강요, 이중당적 금지 위반, 이러한 행위로 인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걸어 황교안을 고발했다. 얼핏 보면 그럴싸 한데, 이건 여러 측면에서 진보정당이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우선 정당입당강요 등의 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의원 꿔주기를 시전했던 DJ를 부관참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긴데, 개별적 정당입당강요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검찰이 이 죄의 성립을 입증하지도 못할 것이다. 정치세력화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꼼수는 정치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긴 하지만 죄를 따져 물을 수 없는 사건이라는 성격도 있다.
더구나 이중당적문제를 거론하는 건 진보정당으로서는 치명적인 이야기다. 세상 어느 나라가 이중당적을 법으로 금지하나? 게다가 진보정치세력은 예전부터 이 정당법의 규정이 위헌적이라고 지적해왔다. 신장식은 여기 동의하지 않나본데, 이중당적의 문제는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정치세력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왜 개인의 정치적 위치를 국가가 개입해서 정리하나?
신장식의 고발내용으로 보자면 이제 검찰과 선관위가 나서서 정당에 입당한 사람들의 명부를 확보하고 그들의 이중당적을 죄다 수사해야 한다. 이걸 용인해야 하나? 그것도 진보정당이? 과거 민주노동당의 성수기를 맞이 했을 때, 그 전에 민주당계 당적 가졌음에도 민주노동당에 이중으로 입당하여 많은 공헌을 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지금 신장식의 태도라면 이런 사람들도 다 색출해야 해서 처벌해야 한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이렇게 정당입당강요죄나 이중당적금지위반죄를 죄로 다스릴 수 없게 되면 당연히 공무집행방해는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고, 정치자금법의 문제가 있는데, 이건 그냥 놔둬도 선관위가 판단하거나 검찰이 판단한다. 굳이 진보정당이 나서서 할 일도 아니다. 정 하고 싶으면 계속 언론플레이를 하든가.
이런 태도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후과 중 하나는 정당이 정치적으로 상대정치세력에 대한 선전공세를 하는데 전선이 흐려져버린다는 거다. 이 사안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즉 이러한 비상적이고 반민주적인 꼼수가 유권자들에 의해 심판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도덕윤리적 공세를 할만한 사안이다. 그런데 덜컥 이걸 검찰에 넘긴다. 검찰에 넘긴 후에는 결국 관심이 검찰에 집중된다. 검찰이 법원에 넘기면 법원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검찰이 무혐의나 기소유예해버리면 검찰을 비난한다. 이 와중에 해당 정당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려는 목적은 흐지부지된다. 법원이 사건을 각하하거나 기각하면 법원을 비난한다. 이 와중에 역시 해당 정당에 대한 비난은 더 사그라 들고. 오랜 시간을 거쳐 법원에서 이거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해봐야 뭐 엄청나게 큰 벌을 주지도 않을 거고, 설령 마음에 드는 벌이 나온다고 한들 이미 시간 다 지나고 난 뒤라 황교안에게 별로 해가 갈 일도 없다. 그럼 이따위 짓을 왜 하나?
조급하니까 그런 거다. 뭔가 하는 척을 해야 얼굴도 나오고 이름도 내보고 그 덕에 선거도 치르고 할 텐데 대중에게 어필할만한 건수를 찾기는 힘들고, 그런데 마침 자한당이 뻘짓을 하니까 지 전공 살려서 냉큼 고발장 만들어 검찰로 쪼르르 달려간다. 그래놓고 돌아와서는 검찰개혁하자고 하고 법무부장관 추미애가 권한남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독단을 부리는데도 거기 비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지금 진보정당이 할 일인가?
신장식이 고발장 접수하고 나서 올린 글에 "미래한국당의 미래는 한국에 없습니다"라고 올렸던데, 웃기고 자빠졌다. 이따위로 해서는 진보정당의 진보는 이땅에 없다. 자한당이나 더민당과는 다른 정치를 바라는 사람들 앞에서 걔들보다 더 자한당스럽고 더민당스런 짓을 하고 있는데 무슨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이 솟아오르겠나? 이게 더민당 위성정당인 더정의당이라고 비아냥거려도 할 말이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데, 신장식이 그 머리에 이걸 깨달을리는 없고, 그 옆에 있는 장석준이나 김정진이나 다들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다 포기한 건가?